<colbgcolor=#e71a0f><colcolor=#ffffff> 쌍방울 SSANGBANGW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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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명 | 속옷 및 잠옷 제조업 |
창립일 | 1963년 3월 1일 |
설립일 | 2008년 5월 2일[1] |
대표이사 | 이형석 |
기업 형태 | 중견기업 |
상장 유무 | 상장 기업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 2008년~)[2] |
종목 코드 | 102280 |
매출액 | 965억 4,347만 원(2019) |
영업 이익 | -103억 6,702만 원(2019)[3] |
순이익 | -436억 9,230만 원(2019)[4]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90(무학동 50-1) |
웹 사이트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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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쌍방울그룹 계열의 대한민국의 의류 회사. 지금은 해체된 프로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의 모기업으로 유명하다. 라이벌인 BYC처럼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업체다.창업주 겸 회장은 이산(而山) 이봉녕[5]이고 2대 회장은 아들인 이의철이다.
2. 역사
1954년 전라북도 익산(당시 이리시 또는 익산군)에서 이봉녕-이창녕 형제가 설립한 '형제상회'가 기원이다. 1962년 이리시 인화동 2가 57번지에 삼남메리야스공업을 설립하고[6] '삼남표'로 사업을 개시하다가 이듬해인 1963년에 쌍녕섬유공업사[7]로 사명 변경 후 1964년부터 '쌍방울표' 브랜드를 쓰기 시작했다. 1965년 서울판매부 설치 후 1973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쌍녕섬유공업'이 되어 이듬해 상공부로부터 수출전환업체로 지정받았고, 1976년에 공업진흥청으로부터 품질관리업체 지정도 받고 국제양모사무국으로부터 울마크를 획득했다.1977년에는 쌍방울로 사명을 바꾸고 1978년 여성용 내의 및 란제리 '뉴인나'를 선보인 후, 1979년에 업계 최초로 HP 시리즈 3000 III # 컴퓨터를 도입해 산업공정의 전산화를 꾀하고 1980년대 초반까지 보온메리, 백수메리(남녀용 고급내의), 러브메리(여성용 내의), 스타메리(아동용 내의), 미드리오(여성용 팬티) 등을 냈고 스타킹용으로 'HI-POWER'를 내놓기도 했다. 1981년에는 쌍녕방적을 합병한 후 1984년 4월에 스타킹공장을 세우고 7월 여성용 파운데이션 란제리 브랜드 '실버벨'을 출시했고, 10월엔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같은 해에 무역부문을 '쌍방울상사'로 분할시켰다.
1984년 미국 쟈키 사와 기술도입 계약을 맺어 동명의 내의 브랜드를 들여오면서 해외 브랜드 도입도 시작, 1986년 미국 리(Lee) 사와도 기술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동명의 데님 및 캐주얼웨어 브랜드를 들여오고 국내 최초로 메리야스 제품이 KS 마크를 받았고, 1987년에 독자 내의 브랜드 '트라이(TRY)'까지 출시했고, 이를 기반으로 1989년에는 한일합섬[8]을 제치고 프로야구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를 창단하는 등[9] 1980년대에는 호남 연고 기업 중 금호그룹 다음으로 잘 나가는 기업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아예 본사를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에 차리기도 했다. 그리고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동계 스포츠에 투자도 좀 했다.
1992년 유아용 내의 앙떼떼, 1995년 란제리 '샤빌'을 각각 출시한 뒤, 같은 해엔 중국 지린성 훈춘시에 첫 해외법인 '훈춘트라이침직유한공사'를 설립했다. OEM이 아닌 중국산 트라이 제품은 이 공장 생산품이였다.
그러나 본사는 무주리조트 같은 비 내의사업 확장에 지나치게 치중해 막대한 빚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7년 10월 14일에 부도나 15일 화의신청을 했고,[10] 1998년에는 회사정리절차로 돌입해 법정관리를 받았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자신의 저서 <불황의 경제학>에서 아시아 외환 위기를 설명할 때 사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스키 리조트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나중에는 마이클 잭슨에게 팔려고 시도한 속옷 회사"에 대해서 비꼬듯이 인용하기도 했다.
법정관리 기간 중에 1998년에는 마라톤팀을, 1999년에 쌍방울 레이더스를 각각 해체하는 등 구조조정을 벌여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2000년에 국내 최초로 언더웨어 패션쇼를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이듬해에 지식경영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2002년 애드에셋 컨소시엄[11]에 인수된 뒤에도 예전의 명성까지는 아니지만 회복세를 보였고, 이듬해에 세계 최초로 140수 극세번수를 개발했다. 2004년에는 SBW홀딩스가 최대주주인 클레리언파트너스( 2003년 인수)와 옛 경영진들이 이끄는 청소용역업체 구창관리시스템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파산하자, 결국 대한전선에 매각되어 방적공장을 쌍영방적으로 분사했고, 2006년 3월 '트라이브랜즈'로 사명 변경 후 2008년 4월 기존 법인이 'TEC&CO'로 전환되어 신규법인 '(주)트라이브랜즈'로 인적 분할됐고, 2010년 레드티그리스로 넘어가 '(주)쌍방울트라이그룹'이 되었다.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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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사가 예전보다 그럭저럭 되었는지, 같은 해에 본사를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구 호텔블루펄)으로 옮겼다. 2011년 9월부로 예전 명칭인 '(주)쌍방울'로 도로 바꿨고, 회사 심볼도 예전의 것으로 돌려 놓았다. 2014년에는 대주주 지위가 특장차 업체 (주)광림에 넘어갔다. 2019년 토종 속옷 업체인 남영비비안을 인수했다.
BYC와 마찬가지로 남성 흰면삼각팬티를 계속 생산한다. 본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속옷을 찾는 수요(청소년 아들에게 흰 삼각을 사 입히려는 부모님들 포함)가 제법 있다고 한다.
3. 역대 로고
1975 ~ 1989. 4. | 1989. 4. ~ 2006 |
1965년부터 '쌍방울표' 마크를 제품에 부착하기 시작하여 1975년 10월 13일 회사 로고로 등록(제43306호)하면서 초기 버전을 세련되기 다듬었다. 1980년 4월에는 메리야스의 주 원료인 목화의 이미지를 담고자 목화꽃 형태로 변경하여 9월 17일 등록(제71873호)했는데 두 개의 원을 중첩시켜 기존 이미지를 형성시켰다.
1980년대 후반 들어 종전의 메리야스 중심에서 겉옷, 란제리 등 브랜드 중심의 사업을 통해 종합의류업체로의 변신 시도, 무주리조트 사업 같은 타 계열사들의 활약 등으로 모기업으로서의 정립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어 1987년 12월 1일부터 CIP 작업에 착수, 그 시기는 제2의 도약 기점인 논현동 신사옥 이전 시점으로 잡고 완료 시기를 1988년 10월 28일로 잡았다. 동시에 각 사업부의 일관된 광고 효과증진을 위해 BIP(Brand Identity Program) 개발 작업도 진행하여 두킴디자인에 관련 작업을 맡겼다.
두킴디자인 측은 먼저 <쌍방울 CI 기본편>, <쌍방울 CI 활용편>, <쌍방울 BI편> 등 기획안 총 3편을 내서 완성한 후, 쌍방울 측은 이를 가지고 임직원 및 각계의 반응에 대한 분석 과정을 거쳐 당사의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이미지에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최종 확정 후, 1989년 4월 10일부터 로고를 바꾸고 1990년 7월 <SBW Corporate Identity Manual>을 내어 이를 최종 확립시켰다.
현 로고는 방울 두 개의 연상 이미지인 두 원의 결합된 상태를 기본 모티브로 하여 각각의 원은 기업과 고객을 상징토록 하여 고객과 더불어 번영하는 쌍방울의 이미지를 창출토록 했고, 그리고 원 두 개 중앙에 꽃의 이미지를 배치하여 조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종합 패션 메이커로서의 상징성을 부각토록 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전 세계 고객과 상생하며 꾸준이 발전코자 하는 쌍방울그룹인의 다짐'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15]
4. 역대 임원
4.1. 구 쌍방울 법인
- 대표이사 사장
- 이봉녕 (1973~1979)
- 이의철 (1979~1990)
- 신계균 (1990~1997)
- 이의종 (1997)
- 김태식 (1997)
- 남성희 (1997~1998)
- 최연식 (1998~1999)
- 백갑종 (1999~2002)
- 이익우 (2002)
- 박기순 (2002)
- 송영호 (2002~2004)
- 장부웅 (2004)
- 최세모 (2004)
- 김성구 (2004~2005)
- 이호림 (2005~2007)
- 김창린 (2007~2008)
- 대표이사
- 전국엽 (2002)
- 법정관리인
- 김종철 (1998~1999)
- 백갑종 (1999~2002)
- 이익우 (2002)
4.2. 신 쌍방울 법인
- 김창린 (2008)
- 정태영 (2008~2010)
- 최제성 (2010~2013)
- 최우향 (2013)[16]
- 양선길 (2013~2018)
- 방용철 (2018~2020)
- 김세호 (2020~2024)[17]
- 이형석 (2024~)
5. 기타
- 1987년에 배우 길용우와 최명길, 한인수, 정욱이 트라이 모델이었고, 1988년에 배우 이덕화 트라이 전속 모델이었고, 1989년에 배우 최불암이 각각 전속 모델이 되었다. 이 중 1990년에 방영된 배우 이덕화가 출연한 트라이 TV 광고가 유명하다. 문짝을 내리치면서[18] '꽝!'하는 마지막 신과 '트라이'라고 외치는 외국 성우가 압권이다. 1992년에는 배우 정애리가 거치다가, 그 외에도 씨름선수 이만기 가족들과 농구감독 최희암, 방송인 이한우 가족들도 1994년에 광고모델로 나왔고, MBC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진도 1995년에 광고모델로 나왔다.[19],[20] 1999년에는 유동근 주연으로, 2003년에는 이효리와 권상우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고, 2007년 20주년 행사장에도 드립까지 치면서 나왔다. 이후 2011년엔 이재룡- 유호정 부부가 리메이크했지만 일부 케이블 채널에서만 방송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자 가수 태진아와 이루도 2017년에 광고 모델로 나왔다. 2020년에 마스크 광고에서 계열 4사 대표들이 출연했으며 배우 김수현도 동년도에 광고 모델로 나왔고, 배우 구혜선도 2022년에 광고 모델로 나왔다.
- 1990년대 말 유사 상표로 쌍방아가 있었는데, 대충 보면 쌍방울로 보여서 착각하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상표 그림이 방울 두 개가 아니라, 방아 찧는 토끼 두 마리인 걸 알고 멘붕이 왔다.[21] 유사 상표 중에는 왕방울도 있었다.
[1]
현 법인 설립일.
[2]
거래 정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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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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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안 이씨
[6]
이러한 연유로 쌍방울은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로 널리 알려졌다. 모태가 된 쌍방울
익산공장은 현재도 운영 중이다.
[7]
雙(두 쌍)鈴(방울 령). '녕' 자 돌림 두 명이 만든 회사라는 뜻의 이름이다.
[8]
지금은 몰락했지만, 당시는
프로스펙스로 유명한
국제그룹을 꿀꺽할 정도로 잘 나가던 정경유착의 수혜주였다. 프로야구 제8구단 창단 신청서를 낼 때 연고지로 선정한 곳이
마산이었다.
[9]
사실 알고 보면 쌍방울과 미원그룹(現
대상그룹)이 컨소시엄 형태로 KBO에 창단 신청서를 냈으나, 모종의 사정에 의해 쌍방울 단독 운영으로 창단하게 됐다.
[10]
흥미로운 게
2000년대 중반에 대한전선이
무주리조트와
남광토건 등에 막 손댔다가
2015년엔 사모펀드 IMM PE로 팔렸다.
[11]
네티션닷컴, 금호종합금융, 국민은행, 세종증권, LG투자증권 등이 참여함.
[12]
2008년
5월 쌍방울 친환경 패션쇼.
[13]
2011년
3월 쌍방울 기업설명회에서 선보인 패션쇼.
[14]
모델은
가수 이승아이다.
[15]
이하 출처: <쌍방울 30년사(1993)> p422, 435~436.
[16]
폭력조직 '목포새마을파' 활동
[17]
창립 최초의 사원 출신 대표이사
[18]
문짝을 내리칠 때 나는 효과음은
김벌래가 만들었으며, 이 씬은 여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후속편에서는 두 남녀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는 했다.
[19]
특히 광고 말미에 일용엄니 역의
김수미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실제로도
군산시 출신이다.
[20]
이듬해
1996년 초, 쌍방울
상품권 탄생한 이래, 훈훈한 정을 나누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21]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소개된 사연 중 이 쌍방아 이야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