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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역대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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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송건호 |
제2대 김명걸 |
제3대 김중배 |
제4대 김두식 |
제5대 권근술 |
제6대 최학래 |
제7대 고희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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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양상우 |
제12대 정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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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양상우 |
제14대 김현대 |
제15대 최우성 |
<colbgcolor=#00B6AB><colcolor=#fff> 초대 한겨레신문 사장 송건호 宋建鎬 | Song Geo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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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7년 9월 27일 |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 |
사망 | 2001년 12월 21일 (향년 74세) |
학력 |
한성사립상업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학 / 학사) |
경력 |
대한통신 외신부 기자 한국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경향신문 편집국장 동아일보 편집국장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한겨레신문 사장 한겨레신문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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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민주화운동가, 역사학자. 본관은 은진(恩津)[1], 호는 청암(靑巖).'한국 언론의 사표', '해직기자의 대부', '민족지성' 등의 별칭이 따라다닐 정도로 한국 언론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언론인이다.
2. 생애
1927년 9월 27일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비야마을 331-6번지에서 아버지 송재찬(宋在瓚)과 어머니 박재호(朴在鎬) 사이의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선대는 대대로 충청도 회덕군 동면(현 대전광역시 동구)에 살았으나, 증조부 대에 이르러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증조부께서 가솔을 이끌고 옥천 비야곡으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 대전욱정공립심상소학교(현 대전신흥초등학교)[2], 한성사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곧 광복을 맞았다. # 광복 직후인 19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문부를 거쳐 1956년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3년 『대한통신』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으로서의 첫발을 떼었고, 이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신문사를 거쳤다. 여담으로 한국전쟁 당시 말기에는 철도청으로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밑의 손석희의 모친이 같은 사무실에서 짧게나마 근무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사임했다. 그 후 역사학 집필에 전념하여 '민족지성의 탐구',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한국현대인물사론' 등 역작을 연이어 출간하며 저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79년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공동저자로 참여했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옥살이를 하며 고문을 당했다.
같은 사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천관우와도 천관우가 5공에 가담하기 전에는 각별한 사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동아일보 기자직을 사임하고 고서점을 찾아다니며 역사 연구에 매진했던 송건호에게 1977년부터 민주화 운동에 함께 하자고 권유한 인물이 천관우였다. 이후 송건호가 1979년에 <한국현대사론>을 펴냈을 때도 천관우는 <창작과비평> 제52호에 서평을 싣고 "송건호 형[3]의 이 새 저술은 정통사학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현대사 개설'이라는 중요한 부분에 훌륭하게 선편(先鞭)을 지은 것이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정통 사학계에도 큰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하고 싶다.", "1979년의 현재로, 우리 현대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한국현대사론'에 필적할 것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이 저술은 성공적이었고 또 그만큼 축적된 근고(勤苦)의 산물이었다."라며 송건호를 극찬했다.[4] 하지만 천관우가 제5공화국에서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을 맡게 되자 송건호는 이를 변절이라 비판하면서 천관우와의 교류를 끊었다. 나중에 천관우에 대해 회고하기를,
"지성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을 알 수 없다고,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현실과 타협해버린 경우가 있어서 결국 사이가 서먹서먹해지고 그러는데 죽은 사람이지만 천관우가 그런 사람입니다."
정론직필을 찾아서 - 옥천 출신 언론인 송건호(충북일보)
1984년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련)를 결성, 초대 의장을 지냈다. 특히 월간지 말을 창간해 제도권 언론이 외면하는 노동자·농민의 실상과 민주화운동 등을 소개하는 한편, 1986년에는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이듬해 6월 항쟁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어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이끌었고 초대 사장 및 회장을 지냈다. 그는 이 시기에 편집권의 독립, 냉전보도의 자제 등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신군부에게 받았던 고문 후유증으로 1990년부터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고, 투병 생활을 하던 끝에 2001년 12월 21일 타계하였다. 제1회 심산학술상(1986), 한국언론학회 언론상(1991), 호암언론상(1994), 금관문화훈장(1999), 정일형자유민주상(2000) 등을 받았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평전인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가 발간되어 있다. 송건호 본인의 삶 자체도 훌륭하지만 전기문학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작품이다.
3. 송건호언론상
송건호의 타계 이후 고인의 바람인 민주적 언론문화 창달을 위해 청암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2002년부터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여 언론민주화에 기여했거나 사회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송건호언론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2014년 송건호언론상 수상자인 JTBC 손석희 사장의 어머니와 송건호 선생이 6.25 전쟁 말미에 철도청에서 한 사무실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다고 수상소감에서 송건호 선생과의 인연을 밝혔다.
3.1. 역대 수상자
회차 | 년도 | 수상자 | 주요이력, 수상이유 |
1회 | 2002 | 정경희 | 한국일보 논설위원 |
2회 | 2003 | 위르겐 힌츠페터[5] | 5.18 민주화운동 보도 |
3회 | 2004 |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 보도지침 폭로 |
4회 | 2005 | 강준만 | 월간 인물과 사상 창간 |
5회 | 2006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 동아일보 해직 언론인들이 결성 |
6회 | 2007 | 조용수 | 민족일보 창간 |
7회 | 2008 | MBC PD수첩 제작진 | 시사고발 |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 | YTN 낙하산 사장 임명에 항거 | ||
8회 | 2009 | 최문순[6] | MBC 노조위원장, 대표이사 |
최상재 | 민주언론노조 위원장 | ||
9회 | 2010 | 최승호 | MBC PD수첩 제작 PD |
옥천신문사 | 지역언론 | ||
10회 | 2011 | 서중석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
11회 | 2012 | 한홍구 |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
뉴스타파 | 대안언론 | ||
12회 | 2013 | 경남도민일보 | 지역언론 |
프레시안 협동조합 | 인터넷언론 | ||
13회 | 2014 | 손석희 | JTBC 보도 담당 사장 |
14회 | 2015 | 변상욱 | CBS 대기자 |
15회 | 2016 | 김동춘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16회 | 2017 | JTBC 뉴스룸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다수 특종(태블릿 PC 입수 등) 보도 |
17회 | 2018 | 김주언 | 보도지침 폭로 |
18회 | 2019 | 임은정 |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
19회 | 2020 | 정용욱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20회 | 2021 | 자유언론실천재단 | |
21회 | 2022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 |
22회 | 2023 | 뉴스타파 | 재수상 |
4. 둘러보기
금관문화훈장 수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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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조택원 무용가 |
1975 안수길 소설가 |
1976 홍종인 언론인 |
1977 최석채 언론인 |
1978 방정환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
1979 고유섭 미술사학자 |
1980 전봉초 음악가 |
1981 김소월 시인 |
1982 이효석 소설가 |
1982 조지훈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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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홍승연 언론인 |
1983 천관우 언론인 |
1983 이육사 독립운동가, 시인 |
1984 이원수 아동문학가 |
1984 장발 미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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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강소천 아동문학가 |
1986 홍진기 언론인 |
1987 김남중 언론인 |
1990 모윤숙 시인 |
1990 주시경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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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김상만 언론인 |
1994 나운영 음악가 |
1994 이숭녕 국어학자 |
1995 공병우 한글연구가 |
1995 김소희 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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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문신 미술가 |
1995 정명훈 음악가 |
1995 이대원 미술가 |
1995 류경채 미술가 |
1996 송석하 민속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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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신용호 기업인 |
1996 조병화 시인 |
1997 신순남 미술가 |
1997 홍두표 언론인 |
1997 최창봉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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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정진숙 출판인 |
1997 고병익 역사학자 |
1998 방우영 언론인 |
1998 김연준 작곡가 |
1999 방일영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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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방종현 국어학자 |
1999 김세형 음악가 |
1999 이유태 미술가 |
1999 김흥수 미술가 |
1999 장준하 독립운동가,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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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송건호 언론인 |
2000 황순원 소설가 |
2000 백남준 미술가 |
2000 서정주 시인 |
2001 김기창 미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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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김천흥 국악인 |
2001 장우성 미술가 |
2001 김수영 시인 |
2001 최영희 역사학자 |
2002 임권택 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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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오지호 미술가 |
2003 박동진 국악인 |
2003 윤석중 아동문학가 |
2004 구상 시인 |
2004 이혜구 음악사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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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박성용 기업인 |
2005 정세영 기업인 |
2006 신상옥 영화감독 |
2006 김동원 연극인 |
2006 차범석 극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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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조남철 바둑기사 |
2007 송도균 언론인 |
2007 노성대 언론인 |
2007 송범 무용가 |
2008 박경리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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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이청준 소설가 |
2008 김영랑 시인 |
2009 유현목 영화감독 |
2010 전숙희 수필가 |
2010 앙드레 김 패션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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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김영환 군인, 6.25전쟁기 해인사 폭격명령 거부 |
2011 박완서 소설가 |
2012 지관 해인사 주지 |
2012 이건희 기업인 |
2012 허동수 기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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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김형규 국어학자 |
2013 이우환 미술가 |
2014 호머 헐버트 선교사, 한글 체계화 공헌 및 한글 보급·한글 홍보 공로 |
2014 전형필 문화재수집가 |
2014 이은관 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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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백성희 연극인 |
2016 임영웅 연극인 |
2017 박맹호 출판인 |
2018 최인훈 소설가 |
2018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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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정지용 시인 |
2018 황병기 국악인 |
2020 서세옥 미술가 |
2019 김성환 시사만화가, 대표작《 고바우 영감》 |
2020 손창근 미술품소장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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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여정 영화배우 |
2021 이어령 문화부장관, 작가, 정치인 겸 문학평론가 |
2021 박서보 화가 |
2022 송기숙 작가 |
2022 송해 희극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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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우창 문학평론가 |
2022 김지하 시인 |
2022 이정재 배우 |
2022 황동혁 감독 |
2023 이미자 대중음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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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조수미 성악가 |
2023 이미경 기업인 |
2024 이문열 소설가 |
[1]
#
[2]
1934년 증약사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1935년 진학을 위해
대덕군 동명공립보통학교(현 대전동명초등학교) 2학년에 전학, 이후 6학년 때 대전욱정공립심상소학교에 전학하였다.
[3]
천관우는 1925년생으로 송건호보다 두 살 연상이다. 이 시절의 '형'이라는 말은 지금처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 아니라 친분 있는 성인끼리 붙여주는 일종의 예의를 지킨 호칭에 가까웠다.
[4]
천관우 또한 고대사와 관련해
일본서기의 주요 기사를 그 주체를 왜가 아닌 백제로 바꿔 해석하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식민사학이 만들어 놓은 고대사 구도의 틀을 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5]
유일한
외국인 수상자이다.
[6]
제36~38대 강원도지사를 역임했다. 역임기간은 2011년 4월 28일 ~ 2022년 6월 3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