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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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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1. 개요2. 조선
2.1. 왕실2.2. 측근2.3. 조정2.4. 정적2.5. 기타
3. 일본4. 명5. 기타 1부 인물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1부의 등장인물들.
실존 인물

2. 조선

2.1. 왕실

조선 제11대 왕비
文定王后 문정왕후[A]
성렬인명문정왕후
聖烈仁明文定王后[A]
존호 성렬인명(聖烈仁明)[3]
시호 문정(文定)[A]
출생 1476년( 성종 7년) 12월 15일 (음력 11월 29일)
조선 한성부
사망 1537년(인종 31년) 5월 16일[B] (음력 4월 8일)
(60년 5개월 1일 / 22,081일)
조선 한성부 경복궁[6]
능묘 무릉(茂陵)
재위 조선 왕세자빈
1488년 2월 ~ 1495년 1월 25일
조선 왕비
1495년 1월 25일 ~ 1506년 11월 18일
조선 왕대비
1506년 11월 18일 ~ 1537년 5월 16일[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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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거창(居昌)
전호 □□전(□□殿)
부모 거창부원군 신승선, 중모현주 흥안부부인 이씨
부군 조선 무종
자녀 1남 2녀(첫째는 공주, 둘째는 인종, 셋째 공주는 요절 }}}}}}}}}

2.2. 측근

2.3. 조정

2.4. 정적

2.5. 기타

3. 일본

4.

5. 기타 1부 인물



[A]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 성렬왕대비 문정왕후에 대응해서 추정. [A] [3] 성렬은 원 역사 성렬왕대비 문정왕후의 존호로 나머지 두 글자는 여기에 대응해서 추정. 원 역사에서 중전 시절 존호인 제인원덕(齊仁元德)은 1505년 받은 것으로 작중 존호 묘사 없음. [A] [B]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와 동일하게 추정. [6] 작중 묘사 없음. 추정. [B] [8] 성종의 후궁 숙의 홍씨와 그 자식들의 반역 사건 때 그들을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했었다. [9] 조선시대 기준으로 미인이어서 재석 눈에 그렇게 예쁘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보다보면 제법 괜찮은 외모인 듯. [10] 재석의 말인 폴쇄를 직접 돌볼 정도였다. [11] 특히 불교를 탄압하던 아들 성종과 달리 손자인 무종은 불교를 옹호하진 않아도 방치하는 수준이라 탄압하진 않았기에 독실한 불교신자인 인수대비의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있다. 또한 인수대비가 아플 때, 원각사에서 불공을 하기도 했는데 신하들은 처음에 반대하나 "과인은 불교를 신봉하지 않으나, 대비마마께서 믿으시니 하는 것이고, 효를 위한 것이며 차후에 이런 일 없을테니 양해해달라."라고 하자 효를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까지 양해를 구하자 납득하고 넘어간다. 성균관은 무종에 대한 반감으로 반발하나 간관들은 불교를 신봉하지 않고, 방치하는 재석의 성향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2] 자순대비 앞에서 진성대군을 죽일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한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진성대군이 무종을 보고 겁먹을 때 대놓고 "너는 대군이니 일개 군들과는 다르다."라며 특별대우를 강조하는 등 높이 대우해줬다. 당장 후궁 소생들은 진짜 동생으로도 취급하지 않고 한갓 후궁 소생이라고 비하하지만 중전 소생인 진성대군은 비록 어머니는 다르더라도 자신의 진짜 동생이라고 강조하며 사적인 장소에서는 신이라고 칭하지 말고 소제라고 칭하라고 하면서 동복동생으로 취급하며 대우해준 덕분에 작중 잘 묘사되지는 않아도 대군이라는 점에서 자순대비의 생존, 그리고 무종의 비호로 왕족 중에서 위상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고, 무종도 외로운 탓에 진성대군과 형제로서 좀 더 가까워지길 바랐다. 당장 나뭇갓을 왕족들에게 몰수할 때, 대군들은 자식에게 세습할 수는 없어도 이를 몰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진성대군을 친형제라 언급하며 신료들 앞에서도 적통 대군과 나머지가 어떻게 같냐고 구분했다. [13] 이렇게 된다면 무종의 총신들은 세자라는 명분과 정통성까지 있는 인종을 내세워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무종에 의해 강화되어 조총과 화포까지 보유하고 있는 군사에 무관들을 잘 대우해준 성향까지 합쳐지면 세자라는 명분이 있는 이상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려고 했다간 불안을 품은 무종의 총신들과 무관들에 의해 바로 끌어내려지고 역적으로 몰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세자라는 명분은 조선 사회에서 매우 강력한 편이다. [14] 이 덕분에 무종의 총신들이 폭주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무종이 펼쳐놓은 정책을 이어가는 현상유지에 만족했다. 대신 박원종이 상업적으로 이득을 챙기기는 했지만, 이것은 재석도 오히려 칭찬해줄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으니 좋게 된 셈. 특히 총신들끼리도 서로 협력관계면서도 어느 정도 견제가 되는 구도가 되었지, 한 명의 권신이 장악하는 구조가 아닌 덕분도 있었으며 운 좋게 독보적 최고 권력자가 될 뻔한 유순정이 박원종의 뒤를 이어서 중전의 외조부가 된지 1년 만에 병사하는 등 행운도 겹쳐졌다. [15] 작가의 말에 의하면 배목인 패거리 잔당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16] 슈타인호프 작가의 소설에는 꼭 정호찬이라는 이름의 가상인물이 하나씩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 지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17] 재석이 죽은 뒤에도 손자 정일한(=사실은 재석과 상희의 손자)에게 무종은 백성들을 아낀 훌륭한 임금이었다고 늘 말해주었다고 한다. [18] 재석이 잘은 모르지만 주워들은 소련·나치·일제 등의 심문 기법을 대강 알려줬더니 이를 직접 죄수들에게 실습해보며 습득해서 수백 년을 앞서가는 심문의 달인이 된다. [19] 무종에 대한 충성이 깊고 상희와도 좋은 사이여서 재석이 죽은 뒤 기밀누설로 사형당할 수 있음에도 상희에게 재석의 죽음의 진실을 알려주었으며 상희가 난산으로 죽기 전까지 잘 돌봐주고, 재석과 상희의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양해 승지까지 오를 정도로 잘 키워준다. 참고로 딸 셋의 아버지라 행동거지에서 티가 나서 남장여자란 것을 금방 눈치챘는데, 재석은 이미 아는줄 알아서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뒤늦게 알아채고 정호찬을 추궁한 재석은 바보가 되었다(...). [20] 그러나 정보는 철저하게 수집해서, 정보를 건네받고 수사에 나선 한성부와 포도청이 금위사를 견제하려고 다른 건수를 찾아내려고 했으나 삽질만 했다. [21] 재석에게 발탁되지 않았다면 출세하지 못한 채 그저 그런 관리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고 재석 역시 정호찬이 없었다면 배목인이나 계해사화 등 역모로 살해되거나 폐위되었을 것이고 재석과 상희의 아들은 신분이 들켜 살해당하거나 천민고아로 비참하게 살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2] 말년에 들인 첩은 상희와 그녀가 임신한 재석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첩이라고 위장한 것이다. 상희는 잠시 정호찬의 집에 지낸 적이 있어 부인과도 아는 사이니, 정호찬이 아내에게만은 어느 정도라도 사정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을 것이다. 절대로 상희를 NTR한 게 아니다. [23] 사냥꾼 시절에는 일부러 가죽 값을 잘 받기 위해 짐승의 눈알을 노려 쏠 정도로 활솜씨가 좋았고 조총을 얻은 뒤에는 몇 차례 전란에서 원샷원킬의 무쌍을 펼친다. 사격 솜씨 외에도 덩치도 작은 편이라는데 남자 한둘은 가볍게 때려눕힐 정도로 몸싸움도 잘한다. [24] 재석이 '꽃다지'가 연상되는 고다지로 운을 맞추기 위해 고씨를 택했다. 대마도 정벌에서 다지와 함께 공을 세운 다른 백정들 중 몇 명도 함께 성을 받았다. [25] 이 덕분에 고향에선 양반들도 다지의 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딸이 왕의 지근에 있다고 위세를 부렸다간 왕이 집안을 풍비박산 낼 거라는 걸 다지도 잘 알기에 절대 위세 부리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가족들도 오만한 성격이 아니라서 문제가 될 처신은 하지 않았다. [26] 백정에 여자임에도 내금위에 들이는 것에 별 반발이 없었던 이유는 신하들이 보기에는 그저 임금이 미녀를 가까이 두고 싶어서 군복을 입혀 데리고 다니는 괴상한 취미 정도로 인식되었기 때문. 사실 진짜 이유는 재석의 신뢰도 있지만 다지가 상희는 왜 남장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는데(본인이 여성이고 명사수답게 눈썰미가 좋아서 눈치챈 것으로 보인다) 당황한 재석이 술술 불어버렸다는 것. 그나마 미래 얘기까지 떠벌리진 않았고, 재석은 입을 막으려고 지근에 두고 있다. 2부에서 보면 재석이 죽은 뒤에도 칠십대까지 살면서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은 것 같다. [27] 재석은 원자 황이가 혼인할 나이가 되면 이장곤과 다지 사이에서 낳은 딸과 짝지어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백정 여자가 양반가 부인이 된 것도 기절초풍할 일인데 그 딸이 중전이 된다면 신분제의 벽을 허물고 능력 위주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듯. 비록 이른 죽음으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다지의 외손녀가 중전이 되었다. [28] 중반부터 등장하고 가상 인물임에도 캐릭터성도 성공적이고 인기캐릭터여서 2부에서는 캐릭터 성을 일부 계승한 다지의 외손녀가 중전으로 등장한다.(다지가 양반집 딸인 버전이라 보면 된다.) [29] 이장곤의 능력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으니 명분상으로는 원래는 처벌해야 하지만 그를 추천해준 이극균의 체면을 보아 북방에 좌천으로 봐준다고 하였다. 당시 이극균이 신임받는 고위 중신이라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30] 상술한대로 급하게 쏜 화살로 한방에 암살자 얼굴을 맞춰서 죽였다. 여진족 원정 때는 방책 위에서 엉덩이를 까고 도발하는 여진족의 엉덩이를 맞추려고 쐈는데, 전투가 끝나고 보니 영 좋지 않은 곳이 날라가서 죽어있었다. [31] 물론 중종반정에 대해 알 리 없는 다른 사람들은 "박원종은 주상을 어릴 때 양육한 월산대군 부인의 동생이라서 잘 대우해준다."라고 생각한다. 연산군이 어릴 적에 월산대군의 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이 신경쓰던 문제는 연산군에게 총애를 받은 최측근이었다는 것이었다. [32] 물론 전리품만 횡령하지 군량에 손을 대지 않는 선은 지키고 있다. 재석도 박원종의 비리를 기록은 해두되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덮어주고 있다보니, 덮어줄 수 있는 잘못은 왕이 직접 덮어주고 있다보니 대놓고 횡령을 하더라도 일정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유지된다. 그리고 이만큼 박원종은 누나를 잘둬서 주상의 총애를 받는 행운아로 여겨진다. [33] 훗날 재석은 이 사실을 알고 훈장이라도 주고 싶은 기분이라고. [34] 이때 신수근으로서는 원자 황이나 진성대군 중 아무나 밀어도 입신은 무조건 보장되었다. 누이동생의 아들이 왕이니 왕의 외숙부가 되거나 딸이 중전이니 국구가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 이황을 민 이유는 이황의 정통성과 무종의 총신들이 실권을 쥐고 있다는 명분과 실리, 무종에 대한 충성심 때문으로 추정된다. [35] 무종의 죽음의 비밀을 아는 궁인과 내관들은 모두 의문사당하고 어의는 관례대로 당시 내금위 당직군사들 호송 하에 북평으로 유배가던 길에 여진족의 습격으로 전멸당한 것을 보면 영 좋지 못한 방법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36] 이 사건은 '양도왜란'이라 불리고 있다. [37] 이 때 유순정의 손녀가 한 번 딸로 잘못 언급되는 오류가 있다. [38] 물론 박원종이 조카딸을 내세웠지만 급사한 것도 있다. [39] 무종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비록 사림이지만 군공을 세운 공신이며 무종에게 중용되었던 탓에 자신들의 동지로 인정하며 받아주었고, 사림 측에게는 사림의 성골이라는 점으로 대표격이 되는 등 유순정은 양대 세력이 불만을 품지 않을 대상이었다고 한다. [40] 원 역사의 중종반정의 3대장에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이 추가된 것이다. [41] 박원종도 죽일 생각까진 없었고 그냥 고생 좀 해 보란 심보였는데, 뜻하지 않게 많은 적군을 만나 진짜 죽을 뻔 했다. [42] 유담년은 박원종이 누나를 잘 둬서 출세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3] 원 역사에서는 삼포왜란 진압 때 활약했고 야인 속고내를 사로잡자는 회의 중 조광조가 야인을 계책을 써서 잡는 것은 왕도가 아니라며 반대하고 중종이 이에 동조하자 "예로부터 밭을 가는 건 종에게, 길쌈하는 것은 여종에게 물으라고 했는데 이런 문제는 저희 무신들의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라고 중종에게 항변하기도 했다. [44] 노산군(단종)을 아냐고 하는 재석에게 노산군은 안평대군과 측근들에게 휘둘렸다고 말했다. [45] 원 역사에서 전라도 구례 일대에서 미륵을 자처하던 사이비 교주였다고 한다. [46] 상희가 남사당패 시절 이 자를 치료해준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해 병세가 원 역사보다 나아져 더 큰 망상을 벌인 나비 효과라고 한다. [47] 1부에서는 현대와 미의 기준이 달라 지금 기준으로 미인은 추녀라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2부 시점에서 미의 기준은 현대 한국과 거의 같아졌다. 재석의 처남 임숭재가 장녹수와 별개로 재석 취향의 미모를 가진 무희들을 모아 여성 아이돌 그룹을 조직한 적도 있는데, 아마 이 때문에 재석의 개인적인 미적 취향이 후대에 영향을 준 듯하다. [48] 상희가 자신이 미래인이란 것만 빼고 모든 사정을 말했다고 한다. 재석이 임금인 것은 모르며 상희와 불륜관계인 팔자 좋은 한량 정도로 생각하는 듯. [49] 이전부터 분명 돈이 궁할 텐데 재석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복선은 있었다. 사실 비밀경찰의 수장으로서 임금이 수시로 만나는 여자에 대해 감시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50] 실제 소 모리노부는 중종 4년부터 대마도주였고 삼포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51] 강제개명을 한 이유는 본래 이름 종의성의 성(盛)자가 부친 종재성의 성 자와 겹쳐서 피휘를 지키라는 이유로 개명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피휘를 하는 관습이 없고 반대로 통자라 하여 조상이나 주군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대대로 물려쓰는 관습이 있다. 때문에 종성순은 원래 이름의 통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 쪽에서 문화적 고려 없이 그 글자를 뺏어버린 것. [52] 이 노승이 종성순의 부친 종재성을 암자에 봉해줬기 때문. 의심병에 걸린 재석은 이 노승을 배목인패의 잔당으로 생각하고 증거도 없이 잡아들이지만 묘사되는 것을 보면 배목인과는 관련이 없는 평범한 승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53] 작가가 밝히길, 실록에는 병사라고 기록되어 있다지만 금위사 문서에는 암살 사실이 그대로 적혀있다고 한다. 2부에 재석도 눈 뜨자마자 2주 동안 책 뒤적거린 걸로 스스로 알아냈고, 경성군 뒷담을 까던 사림들도 무종의 암살 사건을 안다는 식의 언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공표만 못했을 뿐 정설로 취급받고 있다. 금위사 문서가 후에 소실된다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종성순의 실종, 뒤이은 몇몇 내관과 궁인들의 의심스러운 죽음, 이후 암행이 중단되고 내금위에 외국인 복무가 금지되었다는 것을 실록을 통해서 알 수 있을테고, 승정원일기 전반부가 소실되지 않는다면 그날의 내금위 군사들이 유배가던 어의를 호송하다 여진족의 습격으로 살해당했다는 것도 알 수 있을테니 무종 암살설은 미래의 역사학자들에게도 정설로 통할 것으로 보인다. [54] 따지고보면 이름없는 소금장수에서 중원 황제국 시조가 된 후송 황실이 가장 떡상했다고 볼 수 있지만 나비효과가 아닌 재석이 직접 은혜를 베푼 가문 중에서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55] 명에서 처음 복제한 총기로 처음 생산된 수량 전부가 성능 실험을 위해 보급이 되었는데 일선 고위 장수들이 조총성능을 의심하여 치중대에 전부 지급이 된 것이다. [56] 글을 한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라 고심했었지만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도 없어 그대로 임명하고, 대신 남곤을 부명마사로 임명해 단점을 보완한다. [57] 재석 스스로 작명 센스가 구리다고 생각한다. [58] 하지만 후손인 석탈왜의 시대에 와서 경인왜란과 을미동정이 터지고 조선의 최종 승리로 북해도의 독립이 보장되어 석탈왜는 대추장의 자리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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