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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1:28:12

망치와 모루 전술

1. 개요

Hammer and Anvil Tac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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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점이 모인 사각형이 모루(아군의 보병들), 청색의 점이 망치(아군의 기병대).

대장장이가 막 거푸집에서 꺼내 달궈진 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마구 두들겨 펴는 장면에서 착안한 군사전술로, 적 주력병력들이 아군의 보병들에 정신 팔려있는 동안, 아군의 기병대가 적들의 후미를 쳐 결정타를 날린다. '아무리 강한 쇠도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대면 꺾인다'는 데에서 착안했다.

2. 방식

흔히 말하는 '포위 섬멸'을 시행하기 위해 행하는 가장 기초적인 전술로,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동력이 부족한 대신 중무장한 '모루' 담당 부대와 별동대로서의 기동력이 좋은 '망치' 담당 부대[1]로 나뉘어져, 모루 부대가 상대 부대와 부딪혀 상대 부대를 묶어두는 동안, 망치 부대가 상대의 측면과 후방으로 돌아 들이치는 전략을 총칭한다.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망치와 모루 전술과 유사한 기동부대+방어부대로 나뉘어진 전술을 처음 실전으로 보여준 게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소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였으며, 이후 이를 보완해 실질적인 '망치와 모루'를 선보인게 바로 한니발 바르카 칸나이 전투였다. 이후 로마가 이를 착실히 받아들여 써먹은 뒤로는 거의 모든 전술의 표준이 됐다.

전술의 실행법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모루' 역할을 맡을 부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동안, '망치' 역할을 하는 부대가 적의 기동부대를 격퇴하고 적 본대의 측방과 후방으로 돌아 상대를 사방에서 공격하는게 끝이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 진영은 전방에서의 전투에만 집중하다 갑자기 측면과 후면에서 기습을 당하는 것이기에 아군의 승률이 크게 올라가는 것이다.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적의 맹공을 견디며 아군 기동대가 올때까지 버틸 수 있는 '모루'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대빠른 기동력과 돌파력으로 상대 주공을 꺾고 상대의 진형을 포위할 수 있는 '망치'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대이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으면 이 진법은 절대 사용해선 안되며, 그만큼 사용 난이도가 매우 높은 진법이다.[2]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모루의 견고함이다. 아무리 망치가 강력하다고 한들, 모루가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와해당하면 망치는 결국 아군 모루를 먼저 박살내고 들러붙을 상대 모루 부대에 포위당해 같이 박살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루가 튼튼하다면 망치가 다소 부실해도 상대 기동군을 방해하는 동안 아군 모루로 적 모루를 부숴버릴 수 있다. 이걸 잘 시행한 대표적인 전투가 바로 데르토사의 전투 파르살루스 전투. 양쪽 모두 승리한 군대의 망치가 상대 망치보다 부실했으나 모루는 훨씬 튼튼했고, 이를 이용해 망치를 담당할 기병은 철저히 상대의 망치를 막아내는 선에서만 활약하고, 모루끼리 부딫혀 밀어버린 전투에 가깝다.

거의 모든 전술전략의 표준과도 같은 전략이며, 때문에 다양한 진법이나 전략도 결국 이 "망치와 모루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느냐"가 가장 큰 골자가 된다. 이는 공군과 포병 등의 병과가 추가된 현대에도 마찬가지인 상황. 현대에 들어선 초장거리 무장인 대포 및 미사일과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각종 공군기와 드론, 인공위성 등에 의해 양상이 매우 복잡해지고 광범위해졌으나, 결국 그 근본은 아군의 '방어선(모루)'이 무너지기 전에, '공격부대(망치)'가 얼마나 빠르게 적 공격부대를 격퇴하고 적 방어선을 붕괴시킬 수 있느냐라는, 고대의 망치와 모루와 똑같은 양상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선 변화가 없다.

3. 역사

사실 '양익으로 상대를 감싸듯이 포위하는 전술' 자체는 동물들의 사냥 기술에서 나오듯, 거의 본능적으로 채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고대시대에도 수많은 문명들이 비슷한 사례를 활용한 경우가 나왔으나, 고대에는 전술보단 개개인의 무용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특성상 두드러지는 활용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3]

그러던 중, 폴리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 접어들면서 저러한 '양익을 통한 포위 전술'이 본격적으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전투가 바로 마라톤 전투였다. 해당 전투에서 그리스 중장보병대는 페르시아 부대의 양익을 먼저 격퇴하고, 이후 중군을 중심으로 양익이 페르시아의 좌우를 포위해 섬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이 나온 이유는, 그리스 중장보병인 홉라이트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홉라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대열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방패를 왼손에, 무기를 오른손에 드는 특성상 우측 반신을 보호할 수단이 적었고[4], 그 탓에 우측 반신을 대열 우측 아군의 방패에 의존해야 했고, 그 탓에 대열이 무너지면 신체 절반을 지킬 수단 자체가 없어지기에 자동으로 대열을 중시해야만 했다.

문제는 생물체의 심리상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려는 본성 탓에 자연스레 전진할수록 대열은 우측으로 점점 기울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그리스 홉라이트 진영은 가장 우측 진영인 우익에 가장 노련하고 강력한 부대를 배치하여 진열이 붕괴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시도했다. 이렇게 되니 상대 우익과 부딫히는 좌익은 여러 이유로[5] 우익 다음으로 잘 버티는 진영이 됐어야 했고, 그렇게 자연스레 고대 홉라이트 방진은 실력 좋은 베테랑을 양익에,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병력을 중앙에 배치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망치와 모루 전술을 활용할 수 있을만한 진영을 갖출 수 있었다.

다만, 고대 그리스까지는 여전히 우익 한 갈래만이 싸움의 향방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했다. 좌익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적 우익에 맞서 버티는게 중요했지, 좌익이 뭔가를 주도적으로 하는 요소는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병의 경우 당시 폴리스의 한계상 유의미한 숫자를 구하기 어려워 보병 중심의 전술이 주가 됐다. 그 탓에 진영과 별개로 싸움은 각 우익이 적 좌익을 얼마나 빨리 밀어버리고 중앙으로 도달하냐가 더 중요했고, 그 탓에 우리가 흔히 아는 포위전술이 아닌, 일종의 꼬리잡기처럼 서로 누가 먼저 상대 진영을 깨뜨리고 수적 우위를 차지하냐의 싸움이 더 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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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에파미논다스라는 인물이 제안한 사선대형이 이 전술의 시발점을 알리게 됐다. 에파미논다스는 기존의 통념과도 같던 상식을 뒤집어, 상대 우익과 마주보는 아군 좌익에 정예병을 배치하는데다 예비대도 모조리 좌익에 때려박아 역으로 좌익을 가장 강력하게 꾸리는 변칙 전술을 사용했다. 그 결과 스파르타는 최정예인 우익이 상대 최약체인 좌익에 박살나는 모습에 사기가 무너져 패퇴하였고, 테베는 새로이 패권국으로 서게 됐다. 그 결과, 기존의 '아군 우익이 상대 좌익을 얼마나 빨리 무너뜨리느냐'의 치킨 싸움에서, 상대의 주 펀치 진영을 분쇄시키면 더 쉽고 빠르게 적을 포위 섬멸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 뚫리게 된 셈이다.

그것을 보-기 합동전술로 끌어올린 것이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3세로 이어지는 마케도니아군의 기본 전술이 된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이 전술의 초기 개념을 잡고 헬라 연합군과 벌인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효력을 증명해보인 바 있다. 마케도니아 군은 중보병 방진인 팔랑크스가 정면에서 적을 붙드는 동안(모루) 기병대가 기동성을 살려 적의 측면과 후방에 진출하여 강타하는(망치) 전술을 처음으로 확립하였다. 이를 위해 필리포스는 대규모의 기병대를 양성했다. 망치의 핵심은 기병의 충격력 그리고 기동력에 있었다. 적이 측후방을 돌파하여 우회하더라도 항상 치명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었다. 예비대가 투입되거나, 측면의 병력을 전환하여 재배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병이 대열을 갖춘 채로 이동시키거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병은 적이 대응하기 전에 망치 역할을 수행하기에 알맞았다. 필리포스 사후 마케도니아군과 전술을 계승하여 완성시킨 것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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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해서 완성된 전술이 역사에 첫선을 보인 것이 알렉산드로스 3세 이소스 전투다. 알렉산드로스는 BC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 BC 333년 이소스 전투, BC 332년 티로스 전투에서 이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였으며 모두 수적으로 불리함에도 페르시아를 개박살내고 페르시아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필리포스 당시 편제는 15개 기병대대(1대대당 200명) 3000명과 16열 16오 256명으로 구성된[6] 6개 중대로 이루어진 6개 대대의 중보병으로 이루어졌다(기타 척후병 등도 물론 존재함).

알렉산드로스 치하 마케도니아가 보여준 전술은 에파미논다스의 사선대형에서 얻은 '적의 주 기동부대를 아군 기동부대로 무찌르는 것'이 핵심이 되어, 기마부대가 적 기마대를 박살내고 크게 돌아 적 보병진을 포위해 같이 섬멸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에파미논다스의 사선대형에서 보병 좌익이 맡았던 역할을 기동력과 선회력이 더 좋은 기마 부대에게 맡김으로써 더 효율이 극대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이후 한니발 바르카가 세심하게 다듬어서 전장의 예술 단계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칸나이 전투였고, 이곳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기동력 좋은 기마대가 망치처럼 양익으로 포위하고, 보병이 모루처럼 적을 받아내는 전술이 완성됐다. 이는 칸나이에서 된통 당했던 로마가 자마 전투에서 그대로 선보이며 한니발의 전법을 완전히 흡수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망치와 모루 전술은 서양 전쟁사에선 일종의 '상식'이 되었고, 특히 로마는 군제 개혁을 필두로 이 '망치와 모루'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군단을 발전시켜가며[7] 지중해를 비롯한 고대 유럽 및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재패하며 패왕으로 발돋움했고, 로마의 태평성대를 견인하는 주요한 힘이 되었다.

이러한 '카르타고-로마식 망치와 모루 전술'은 보병 체급이 어느정도 맞는 상황에서, 기병이 더 우월한 세력이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제국 시기 로마는 기병의 양성에 전념했고, 기병 능력이 좋은 누미디아 유목민 세력이나 게르만 세력, 혹은 훈족 같은 유목 세력을 용병으로 포섭하는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후기 로마 시대가 되면서 전통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 자체가 쇠퇴기를 맞이하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훈족으로 대표되는 유목민의 도래였는데, 기동력 자체가 차원이 다른 기마병을 주력군으로 쓰던 유목민의 도래로 더 이상 전통적인 보-기 연합 형식의 망치와 모루로는 유목 기마대의 기동력을 따라잡는게 불가능했고, 그 탓에 점차 보병은 함정이나 요새와 같은 장애물로 적 병력을 막는 '장벽'의 역할을 하고, 망치는 중갑화되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마가 무너지고 도래한 중세 봉건제도는 기존의 상비군 체제가 아닌, 농민 징집병+귀족 기사의 이원화가 되면서 모루의 전문성이 급락하게 됐고, 반면 망치는 기동력과 더불어 장갑까지 갖추게 되어 더더욱 보-기 연합 형식보단 기병의 단독 전투를 기반으로 적의 보병진이 적 기사의 돌격을 얼마나 저지할 수 있냐로 바뀌게 됐다.

다만, 백년전쟁 등을 계기로 전통적인 봉건제가 붕괴되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상비군의 등장 등이 겹치게 되며 자연스레 망치와 모루 전술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상비군의 도입으로 과거처럼 다시금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갖출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과거보다 더욱 유기적인 진영 구축 등을 훈련시킬 수 있게 되면서 모루의 내구도나 망치의 전술적 역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포의 등장은 더 이상 구체제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을 쓸 수 없는 종말이 왔음을 의미했다. 기병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일방적으로 적 모루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대포'와, 기병의 돌격력을 쉽게 저지할 수 있는 파이크+총의 조합인 테르시오의 도래는 기병이 더 이상 전장의 주력이 아님을 의미하게 됐다. 하지만, 대포는 여전히 기병에게 약했고, 패주하는 적을 쫓는데는 기병만한게 없었기 때문에 먹고 먹히는 상성관계 속에서 전투의 양상이 매우 복잡해졌을 뿐, 여전히 망치와 모루로 대표되는 포위 전술은 그 빛을 잃는 수준까진 아니었다. 다만, 기병은 주로 측면 공략과 같은 부차적인 요소를 맡았고, 적의 모루를 직접 공략하는건 같은 전열보병 대포에게 역할이 넘어가면서, 다시금 고대에 가까운 근본적인 진영 싸움이 주류가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로 오게 됐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참호전 탱크의 존재는 다시금 '망치와 모루 전술'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제 전투의 양상은 참호로 대표되는 대규모 '진영'을 모루로, 탱크나 폭격기, 전투 헬기와 같은 기동력과 돌파력이 좋은 부대를 '망치'로 삼는 대전략으로 변화된 것이다.

반면, 동양의 경우는 망치와 모루 전술이 쇠퇴하는 기간 없이 꽤 오랫동안 활용됐으나, 역으로 서양과는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는 동양 사회에선 서양의 봉건제와 같은 요소가 없었기 때문인데, 막강한 신정일치국가인 이슬람 계통 국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유목 제국이나 극동의 동아시아 국가들 모두 왕권의 힘이 막강했고, 특히 유목 제국의 경우 기병대를 어마어마한 양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에 굳이 '모루'를 쓸 필요 없이, 막강한 기동력의 기마대를 활용해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는 포위 전술을 쓸 수 있었고, 반대로 정주국가는 이러한 유목 기마대를 막기 위해 모루를 극단적으로 강화시키거나 요새와 같은 방어선을 그어버리는 전술을 가져오는 양상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그나마 용병으로나마 이들을 고용하던 서방과 달리, 동방측은 아예 정주국과 유목국이 서로 국운을 걸고 싸워댈 정도로 살벌하게 전투하는 경우도 많았던 탓에 이러한 교류가 흔한건 아니었고[8], 그 탓에 서방과 달리 극단적인 총력전이 주가 된 것도 있었다. 반대로, 이러한 총력전 같은 양상만 지속됐기에 평화기도 길었고, 그만큼 서방에 비해 쇠퇴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서 제국주의의 도래 이후 서방의 식민지화가 가속됐고, 완전한 현대에 가까운 2차 대전 이후에는 서방 중심의 체제를 받아들이며 서로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21세기 동방 지역의 급부상으로 과거 중세 시기 극동의 전략가들이 재평가되었고, 그 과정에서 동양만의 특유한 전술들이 재발굴되며 중세만의 '망치와 모루 전술'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단순 전술이 아닌, 대전략 단계로 망치와 모루를 구현했던 한 고제 한신의 전략이라던가, 최초로 육상전이 아닌 해상전에서 망치와 모루에 가까운 학익진을 구현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례가 있다.

4. 전술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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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스 전투의 경우와 기본을 섞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알렉산드로스를 필두로 이루어진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군에 비하여 약 절반의 수로 이루어져 수적으로 열세를 보였다. 단, 차이점은 그리스군의 경우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일대를 평정하면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이 주축이었으나 페르시아군의 경우는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징집병이었다. 즉 지휘관이 부대를 컨트롤할 수 있는 선택지 차이와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또한 기병의 비율이 그리스군이 좀 더 높았다. 따라서 알렉산드로스가 고안한 전술이 망치와 모루 전술이다.

먼저 팔랑크스로 이루어진 중장보병대는 '모루'가 된다. 기병대는 '망치'가 된다. 기병대는 측면으로 몰아서 배치되거나 혹은 양익 배치된다. 대개 기병력에서 열세가 있다면 일익 배치를 선호하고 기병력에 우세라면 양익 배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익 배치 시엔 오히려 이쪽에서 측면 공격을 받고 우르르 밀려버릴 수 있으므로 반대쪽에는 기병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지형을 선택한다(주로 강이나 절벽). 혹은 파르살루스 전투처럼 기병을 견제할 수 있는 보병, 참호 등을 파도 좋다.

이후 전투가 시작되면 아측(당연히 위 전술을 사용하는 쪽이 아측)의 기병들은 주변의 보병들과 함께(경우에 따라서는 기병들만 단독으로) 닥치고 전열을 이탈한다. 이렇게 하면 적 기병대 역시 아측 기병대를 따라 떡밥을 덥썩 무는데, 이때 따라오던 보병대와 소수의 기병대가 적 기병대를 묶어놓는다. 그 사이 아군의 주력 기병대는 적 전열의 뒤로 이동하게 되면 모루(아군 보병대)에 얹은 쇠(적군)을 치는 망치(아군 기병대)의 형상이 완성. 이후 망치가 쇠를 때리듯 측면(중앙을 치면 기병대가 포위된다)부터 야금야금 적의 보병대를 녹이면 적들이 앞은 막히고 뒤에선 말이 밟는 형세가 된다. 포위망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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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와 모루, 혹은 양익포위 전술의 완성이자 교과서인 칸나에 전투도. 카르타고는 망치가 될 기병전력이 우위였기 때문에 이를 양익에 배치했으나, 모루가 될 보병전력이 로마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였다. 한니발은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보병전력을 一자가 아니라 앞으로 볼록 튀어나온 八자 모양으로 배치한 후, 서서히 뒤로 물리면서 로마의 보병대를 포위망 안으로 유인시켰다. 실제 한니발이 칸나에 전투 과정에서 직접 통제한 전력도 화려해 보이는 기병부대가 아니라, 전선 중앙의 보병 전력이었다. 이러한 계산된 퇴각전술은 자칫 진짜 패주로 돌변해 버리거나[9] 압도적인 질량 앞에 찌그러져 버릴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이 아니다. 칸나에 전투가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위전술의 이데아로 추앙받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5. 주의점

여기서 주의해야될 건 - '모루'가 튼튼해야 된다는 것과 망치가 날카로워야한다는 것. 망치가 떨어지기도 전에 쇠가 모루를 부수면 답이 없다. 포위망이 닫히기도 전에 모루가 무너지면 적에게 각개격파당하기 십상이기 때문. 포위망이 완성되어도 모루가 무너지면 소위 혈로를 뚫었다고 표현한다. 포위망을 탈출한 아측이 우선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망치가 무뎌서 상대의 양익을 제압하고 포위하지 못한다면 결국 모루가 버티지 못하므로 망치의 충각력도 매우 중요하다.

즉 지휘관의 역량, 베테랑 군사들의 역량, 적군의 패닉이 3위일체가 되어야 일어나는 전술의 극치인 셈이다. 그래도 실제로 이 상황에서 모루가 박살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모루가 무너지는 경우는 기병이 돌아올 때까지 보병이 버티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아군 쪽으로 피하면 되지 않나(완전 포위가 아니라 U자 포위니) 싶지만 전열이란 어디까지나 정면이 생명이다. 고로 모루가 버티질 못하면 그냥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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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치와 모루 전술이 실패한 예는 데르토사에서 하스드루발 바르카가 스키피오 형제를 상대로 싸운 회전에서 나타났다. 데르토사의 전투 칸나이 전투 바로 다음에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인데 하스드루발 바르카는 자신의 형인 한니발 바르카가 칸나이에서 썼던 전술을 그대로 흉내낸다. 그러나 로마 기병은 카르타고 기병을 맞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텼고 중앙의 카르타고 보병은 로마 군단병의 맹공에 돌파당해 다 같이 패주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즉 유효한 전술이긴 하지만 아무 때나 성공하는 무적의 전술은 아니라는 것이다.[10]

아군 기병 전력이 월등하면 이런 것 필요 없이 그냥 닥치고 찍어 누르면 된다. 그리고 이소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가 기병을 일익 밀집 배치한 것도 한정된 전장에서 기병 전력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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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망치가 돌파에 성공하지 못하고 모루를 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르스크 전투. 당시 독일군 중부집단군 방면에 형성된 돌출부는 폭만 200km 이상일 정도로 매우 거대했고 이를 잘라내기만 한다면 하면 포위섬멸에 성공하는 상황이었지만, 독일군 북익이나 남익 모두 최종 목표인 쿠르스크는커녕 그 절반까지도 가지 못하고 진격이 돈좌되고 만다.


의외로 불공평도 큰 문제가 된다. 모루가 된 부대는 빛나는 전공을 세우기 어려운데 피해는 크게 입기 마련이고 반대로 망치 부대는 피해도 얼마없는데 큰 전공을 세우기 마련이라 모루를 맡은 부대의 불만이 커지기 쉽다. 때문에 지휘권이 완고하게 자리잡은 독재국가가 아니면 서로 모루를 하기 싫다고 싸우느라 작전부터 못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6. 유리한 이유

훗날 팔랑크스 전술은 도태되어 사라졌지만 망치와 모루 전술 자체는 유효했기에 계속 살아남았다. 특히 망치와 모루를 이용한 이중포위를 완성시킨 칸나이 전투에서는 정면과 측면에서 밀려드는 부대의 "질량" 때문에 포위된 쪽은 가해지는 힘의 방향쪽, 즉 U자나 O자 포위의 중앙으로 밀려서 과다밀집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도 무리. 굳이 예를 들자면 반죽을 사방에서 누르면 위로 쑥 솟는 것을 상상해보자. 사람은 위로 못 솟으니 빽빽한 공간에 밀리게 되는데 이쯤 되면 칼도 휘두르기 어렵다. 칸나이 전투가 딱 이런 꼴이고 한니발 바르카가 노린 것도 이런 것이다.

또한 빽빽하지 않아도 포위당한 것 자체로 전투력이 저하되는데, 그 이유는 포위 당한 쪽의 바깥쪽 둘레는 포위한 쪽보다 짧다. 이렇게 접촉된 면적의 차이는 포위당한 병사들이 그들보다 많은 수의 적과 접촉하게 되며 따라서 일대일이 아닌 1 대 2, 1 대 3의 싸움을 해야 하는 병사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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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이 그런 상황을 설명해 주는데 흑점들이 빨간점들에 의해 포위된 상황이다. 흑과 적색의 점들은 각각 22개씩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두 세력은 같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 포위당한 흑점은 포위한 빨간점에 비해 훨씬 좁은 길이로 싸워야 하며 그로 인해 22개 중 14개의 점들만 전선에서 싸우게 된다. 그에 비해 빨간점은 22개 점들 모두 전선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14개의 흑점 중 8개의 흑점은 1대 2로 싸우는 불리한 처지가 되며 전투가 계속 진행된다면 이들 흑점들은 곧 무너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안에 대기하고 있던 흑점이 무너진 흑점을 대신해 바깥쪽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신한 흑점도 마찬가지로 1대 2의 상황에 몰릴 것이며 따라서 이들은 곧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된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파일:망모1.png 파일:망함.png
파란 점이 빨간 점을 포위한 상태에서 - 파란 점 둘이 빨간 점 하나를 쓰러트리면 파란 점 넷이 빨간 점 둘을 상대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포위가 된다면 포위 당한 쪽이 포위한 쪽에 비해 훨씬 불리한 상황 속에서 전투를 해야한다. 망치와 모루 전술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포위의 효과는 부대의 측면공격 및 후방공격에 대한 방어의 취약성, 사방이 공격받음으로써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부대 지휘의 어려움, 공간이 제한됨으로써 유동적인 전투상황에 대응한 기동의 어려움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11] 사방이 공격 받음으로서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같은 맥락으로,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이것이 사기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직선의 전열을 맞대고 싸우는 경우 패색이 짙어지면 도망가면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지만, 완전 포위당했을 경우 글자 그대로 도망갈 곳이 없어진다. 꼭 죽거나 죽을 정도의 치명상이 아니라도 싸우다가 전투 불능이 된 경우(체력을 완전 소진하거나, 무기·방어구가 파손되거나, 눈·손·팔·다리 등에 데미지를 입었거나), 보통 상황이면 뒤를 보고 달려서 목숨은 건질 수 있는 반면 포위된 상황이라면 붙잡혀서 끔살되거나 노예로 팔리지 않도록 아군이 분전해주기를 빌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서 정말 살기 위해 죽도록 싸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적들이 도망치기 좋도록 공격하기 좋은 방향으로 포위를 풀어주는 장군들도 있었다.[12]

그리고 영어권 전쟁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수도 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flank와 outflank이다. 이들 단어들과 함께 양익포위로 시작된 완전포위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적의 일익만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식의 설명이 이어지는데(개요의 그림만 봐도 일익포위를 묘사하고 있다.) 포위의 효과가 포위시의 외원과 내원의 길이 차이에 따른 수적 우세라면 이 경우에 그 설명력이 더욱 떨어진다.

현실의 병사들은 RTS 게임의 유닛들처럼 죽을 때까지 맞고 쏘는 초인들이 아니다. 부상이나 장비 파손으로 무력화되기도 하며 전황이 극히 불리해지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그리고 대개의 경우 한쪽 방향의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최대의 전투력이 나온다. 팔랑크스, 전열보병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각개전투를 벌이는 현대에 와서도 엄폐물 뒤에서 싸우기 때문에 측후면을 잡히면 불리해진다.[13]

뒤통수가 서늘한 채로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 가스불을 껐는지 기억이 안 나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자신은 모루를 상대로 잘 버티고 있더라도 양익, 혹은 단익이 돌파돼 자기 뒤통수가 칼을 맞을 위험에 처해진다면 순식간에 전투력은 떨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포위 위험에 처해 있고 정돈된 철수가 불가능할 때 차선책은 원형진, 혹은 방진을 구축해 뒤통수의 안전을 확보하고 외부의 구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이게 성공한 경우가 1951년 2월 벌어진 지평리 전투다.

7. 현대에서

망치와 모루 전술은 현대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전술이지만, 개인화기의 보급과 포병, 공군 등 극단적인 화력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근접전 중심이었던 고대의 전투보다 피아간 거리가 훨씬 멀어진 관계로 쓰기가 더 어렵다. 아무리 멀리서 쏘거나 달려와야 겨우 수 ㎞에 불과한 고대 전장에 비해서 현대 전장은 이미 수십~수백㎞ 단위로 스케일이 커졌으니... 하지만 보병 간 소전투도 기본 골자는 망치와 모루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고,[14] 특히 개별 전투/전술 규모를 넘어 작전술/전략 단위에서는 망치와 모루, 혹은 포위섬멸전 개념이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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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의 프랑스 전역 역시 망치와 모루 전술의 고전 중 하나. 영불 연합군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전략 상 최우익인 벨기에 방면이 망치, 알자스-로렌 지역이 모루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개전 초 독일의 B집단군이 네덜란드/벨기에 방면으로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등 공세에 나서자 예측이 맞았다고 판단하고 주력부대들을 B집단군 방면으로 밀어넣었다. 그 사이에 주력인 A집단군과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 아르덴 숲 지역을 통과, 영불해협까지 내달리면서 포위를 완성한다. 보통은 상대의 공세를 받아내는 수세적인 역할을 하기 마련인 모루도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며 상대의 전력을 흡수, 포위된 전력의 규모를 더 키우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특이한 점.

그 외 독일군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키에프 포위전, 스몰렌스크 포위전 등 거대한 포위전을 여러번 성공시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강군(强軍)의 이미지를 확립한다. 그러나, 망치를 뒷받침해 포위망을 닫을 보병전력의 기동력 부족으로 포위망 안에 갇힌 소련군 상당수의 탈출을 허용했다는 것이 옥의 티다.

다만 막대한 물자를 소모하는 현대전의 특성상 굳이 적군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보급선만 끊어도 충분히 효과를 보인다. 적군의 후방에 강하병을 떨어트리는 공수작전도 크게 보자면 망치와 모루 개념이다.[15]

인천 상륙 작전은 교과서적인 성공사례. 인천 외에 제안된 군산이나 평택 등은 적 후방의 보급선을 절단하지도 못하고 잘 발달된 교통로를 이용한 전과확대에도 불리했기에, 인천이 상륙작전에 매우 불리한 여건이었음에도 작전을 강행했는데 대성공. 물론 북한군이 정석적으로(?) 당해준 탓도 컸다. 사실상 망치가 이동하는데 제약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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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적용 사례로는 걸프 전쟁 당시 다국적군 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가 실시한 헤일메리 기동작전(Hail Mary Play)이 있다. 슈워츠코프는 해병대 병력 등을 이용해 이라크군을 점령한 쿠웨이트 영토 안에 고착시킨 뒤, 20만 미군 지상병력과 장비를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라크 영내를 통해 수백㎞를 기동시켜 쿠웨이트에서 후퇴하는 이라크군의 주력을 성공적으로 포위, 섬멸하였다.[16]

또한 합동작전에서도 망치와 모루 전술은 유효한데, 육군이 모루 역할을 하고 공군이 망치 역할을 해도 된다. 과거 중세 이전의 지상전 위주의 전투에서 기병은 현대전에서 직접적으로는 기갑이 계승했지만 공군 전투기 역시 기병의 포지션에 있는 병종이다. 특히 공군은 하늘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기동이 기병보다 훨씬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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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전술 단위에서는 시위대와 경찰기동대의 대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 이전에 시위가 심할 때 볼 수 있었는데 총기소지 및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는 사회 특성상 냉병기 위주인 고대식 전투가 재현된 것이다. 무거운 장비를 갖춘 일반 기동부대는 모루 역할을 담당하고 장구를 가볍게 해서 기동성을 살린 체포 전담중대( 백골단)는 좌우에서 밀어닥치는 망치 역할이다.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아무튼 고대전의 전개 양상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전경대와 시위대 모두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80년대에는 전경대에 대항하는 사수대 조직이 시위대에 있었다. 이 집단은 시위대 쪽의 중보병. 전투력 좋은 시위대로 구성된 사수대를 앞세워서 각목과 쇠파이프로 전경대 대열을 뚫는 것이 목표였다. 혹은 소규모 집단으로 산개해서 게릴라처럼 전경대의 대열을 무너트린다. 왜냐하면 80년대에는 가두시위 자체가 허가가 안 났고, 가두시위의 목적인 거리로 나가서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알리는 행동을 하려면 무조건 전경대를 뚫어야 했으므로.[17] 이런 경우는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쇠의 위치를 강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당시 학생운동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화염병은 공격용 무기로는 잘 안 쓰였다고 한다. 제작과 취급이 위험했고(꾸벅꾸벅 졸면서 화염병 만들다 화재가 나는 일에, 불 붙이고 거꾸로 들면 위험하다든지...

그래서, 사실상 시위대도 전경대와 제대로 맞붙으면 이기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뒷쪽의 일반 학생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 요량으로 사수대가 작정하고 위협용으로 바닥에다 던진 것이고 직접적으로 경찰을 공격하는 수단은 아니었다고 한다. 혹은 데모를 시작하며 학생 대열이 학교 정문을 나올 때 사용했다. 정문에서부터 경찰 대열이 막고 있기에 일단 화염병을 던져서 거리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문제는 화염의 특성상 어디로 퍼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또한 당시에 의도적으로 경찰을 항해 던진 케이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한 사항은 각 해당 문서 참고.

8. 대중문화에서

8.1. Europa Universalis III

군대를 만들 때 보병과 기병을 적절히 섞어서 배치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병만 배치하면 돌격 능력이 떨어져서 적에게 피해를 잘 입히지 못하고, 기병만 박아넣으면 기병이 방어력이 뛰어난 적 보병진에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제 풀에 사기가 떨어져 후퇴해버리는데, 두 병종을 섞으면 보병이 적 보병을 상대하는 사이 기병대가 적 보병진의 측면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한 부대에서 보병이 기병보다 많을 때는 기병도 보병의 방어력 보너스를 같이 받고(모루), 기병 4개 연대까지는 추가로 측면 공격(Flanking) 보너스를 받는다(망치).

8.2. Hearts of Iron IV

망치와 모루 전술과도 같지만 포위섬멸과도 같거나 유사하다. 일명 '촉수메타'. 전투 유지력이 높은 사단으로 적의 사단과 전투를 진행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전선에 묶어둔 후(모루), 다수의 기동력이 높은 사단으로 전선의 취약지점을 뚫고 우회 기동하여(망치 이동) 적의 보급을 끊어버리거나 공격하는 방법이다.(망치를 모루에 때림)[18] 현대전 특성상 포위섬멸진을 하려면 지형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포위하려는 적이 점령한 프로빈스의 최소 3개 사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3개 사단은 지형적인 특성(다른 여러 면이 바다)이거나 하는 특수상황에서의 이야기이다. 바다가 아닌 완전한 내륙인 경우 최소 6개 사단을 요구한다! 이마저도 프로빈스의 상태에 다르며 어떤 지형은 8개 사단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어찌 되었든 저 사단 수는 말 그대로 포위정도만 할수 있는 정도의 수로 이 상태에서 공격이 들어갈 경우 오히려 잔여 보급이 상당히 남아있는 적 사단의 방어 태세에 아군이 패배해 적이 탈출해 버리거나 역으로 아군 사단들이 포위당할 수도 있다.[19] 포위한 적에게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가해 신속히 섬멸하거나 보급이 소모될 때까지 기다린 후 보급이 거의 소모되어 약체화된 상태에 공격하는 법, 여기에 나온 전술처럼 적 사단과의 전투로 적 사단을 묶어버리고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적을 초과시켜 와해해버리는 방법이 있다.

이 전략의 큰 문제점은 포위하는 적의 사단이 많아질수록 부담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망치와 모루를 이용해 포위하는 것까지는 쉽지만 망치를 모루에 때리는 것이 자주 수틀리는 것이 문제다. 망치에 해당하는 포위하는 사단은 전방위를 방어해야 하는 부담이 주어지는 데다가 이동시 조직력 감소로 인하여 일시적으로는 상대편보다 약하다. 예를 들어 1 프로빈스의 6개 사단을 12개 사단이 포위 했다고 가정을 한다. 그런데 포위섬멸로 무너진 전선에 적군의 예비 사단이 도착하였고, 적이 포위당한 사단과 예비 사단이 함께 한곳에 지속적인 공격을 취할 경우 버티지 못하고 전선이 무너지는데 이를 막으려면 그 위치에 더 많은 사단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단을 넣는다고 해결되는 것 또한 아닌데, 적의 공격력이 더 높을 경우 아군 사단의 조직력 소모가 빠르게 늘어나게 되고, 결국 그 사단이 후퇴하게 되는데 이는 아군 진영의 방어력을 급감시켜 버리므로 아군 진영의 조직력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물론 전장 너비에 따라 사단이 나누어진다. 다만 사단이 패배한 경우 예비대가 충원되지만 예비대가 충원되는 속도도 제한돼 있고, 현재 전투중인 사단들이 완전히 패배할 경우 예비대와 상관 없이 모든 사단들이 후퇴해버리게 된다. 이런 경우는 방어력이 높은 다수의 보병 사단을 그곳에 배치하거나 기동성이 높은 절대다수의 기동 사단을 배치해야 한다.

만약 제공권이 상실되고, 근접항공지원기/폭격기에 의해 사단이 계속 소모되고, 암호화, 복호화 등의 문제로 적이 전략/전술의 시점에서 더욱 더 큰 우위를 달성할 경우 아군 육군은 더욱 불리해진다. 이러한 일을 막으려면 결국 제공권도 잡아야하고 암호화, 복호화 연구 또한 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그러한들 육군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공군을 비롯한 요소가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점령하고 소모되는 것은 육군이다. 포위하는 육군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전략은 모루와 별개로 망치가 강철보다 수가 많고 강력해야 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전략을 게임 내에서 사용을 안 할 수는 없는데, 적 사단과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적의 장비와 인력만 소모될 뿐이고 장비와 인력은 금방 보급, 충원이 이루어진다. 즉 아무리 많이 싸워도 적의 사단이 멀쩡한 이상 전선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20] 결국 사단을 영구적으로 해체해버림으로써 적이 사용 가능한 사단을 줄여 상대의 전선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DLC로 NO STEP BACK이 출시함으로써 이런 망치 모루 전술은 더 어려워졌는데, 열차가 다니지 못하거나 보급허브가 없는 곳을 마구잡이로 질주하며 포위하다간 역으로 보급이 줄어들어 역포위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패치로 인해 보급이 부족해질수록 사단 공방 페널티가 정말 뼈아플 정도로 다가오기에 장비가 많더라도 조직력이 개판이 나서 모두 전멸할 수 있다. 대신 보급망이 끊기면 나만 죽는 게 아닌 상대도 죽으니 적군의 열차로와 보급 허브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형성하면 상대 보급도 차단할 뿐더러 포위망도 단단히 할 수 있다.

8.3. X-COM 시리즈

리부트 X-COM 시리즈의 전투에서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엄폐효과로 회피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엄폐효과는 적 근처의 엄폐물이 아군의 사선을 가로막을 때에 발동한다. 따라서 엄폐물이 사격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21] 주로 적의 측면에서 적을 공격하면 적이 엄폐효과를 누릴 수 없어 아군이 유리하게 싸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라인배틀하는 본대(모루)와 우회기동하는 특공대(망치)를 나눌 필요가 있다. AI는 특별히 망치와 모루 전술을 쓰지는 않지만, 리부트시리즈에서 아군이 우회기동당했을 경우 해당 대원이 flanking 당했다는 대사를 한다.

8.4. 걸즈 앤 판처

TVA 10~12화의 결승전 부분에서 이 전술이 구현되었다. 여기선 본대가 망치, 마우스 전차가 모루였다. 다만 20대 중 진짜 모루 역할을 할 마우스와 정찰 역할의 3호 전차 각각 한 대씩만 시가지에 모루로 덜렁 던져놨던지라, 기묘한 방법으로 공략당해 마우스가 격파당하면서 망치로 찍기 전에 모루가 먼저 쪼개지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23]

8.5. 글래디에이터

출처
오프닝 장면의 전투가 전형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이다. 궁수, 포병(투석기와 노포), 보병으로 이루어진 로마군 레기온 본대(모루)가 게르만족의 앞에서 대적하고, 그 사이 막시무스 장군의 기병대(망치)가 게르만족의 뒤를 치는 망치와 모루 전술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다만 나무가 빽빽한 숲속에서 기병을 운용하는 것은 영화적 허용에 가깝다.

8.6. 월드 오브 탱크

게임 내에서는 측면 우회(Flanking)라고 흔히 부른다. 방어력이 좋지만 둔한 중전차가 맞붙어서 전선을 형성하면(모루) 기동성이 좋은 중형전차나 전투 경전차가 측후면을 우회하여(망치) 장갑이 얇을 수밖에 없는 옆구리와 뒤를 때리는 식이다. 당연히 서로 측면을 때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측면이 뚫리는 것을 저지하려는 중형전차끼리의 교전, 이런 중형 전차를 멀리서 저격하여 견제하는 구축전차 등이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

현재에는 중전차의 전면장갑을 그냥 뚫어버릴 수 있는 고관통 포가 많아졌기에 모루가 멀리서 박살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며 양팀간 실력 차이가 나게 되면 방어가 약한 곳을 찾아낸 뒤 중형전차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울프팩을 시전해서 적 방어선을 뚫어버리는 소련식 종심교리 비슷한 것에 밀리는 경우도 많다.[24][25]

8.7. 은하영웅전설

은하영웅전설 등의 게임에선 측면, 후면 장갑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방어력 높은 함대를 정면에 배치해서 막다가 적 후방으로 우회한 함대를 닥돌시키면 2~3개 함대라도 방향만 잘 맞으면 1분만에 갈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8.8. 창세기전 시리즈

흑태자 그라테스 대회전에서 사용해 실버 애로우 연합을 격멸했다고 하는 ' 사선대형'으로 후일 클라우제비츠가 이 전술을 개량해 광정면우회기동이라는 전술로 재탄생시켜 제피르 팰컨이 승리했다.

8.9.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8.10.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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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크루세이더 킹즈 2

시스템상 전투에 대한 조작은 좌우익과 중군의 병력 구성을 맞추고 지휘관을 임명하는 것과 싸울 장소를 선정하는 것, 공격하러 갈지 상대가 공격해올 때까지 기다려 방어할지 정도지만, 병력 편성으로 충분히 망치와 모루 전술을 쓸 수 있다. 유지력이 좋은 창병과 중보병 등을 중앙과 한 쪽 날개에 모루로서 몰아주고 나머지 날개에 주력군을 넣으면 주익이 상대편을 빠르게 박살내고 중앙과 반대편 날개 순으로 측면 협공(flanking)을 가해서 패주시킨다. 망치의 경우 중기병 등 충격력 좋은 병종이 선호되며, 이를 적극 활용할 경우 플레이어 자신과 지휘관 문화권을 중기병 특화로 맞추어 각각 상비군 보너스와 전술 및 전술발동 상 보너스를 취할 수 있다.

8.12. 토탈 워 시리즈

냉병기 시대 및 초기 화약무기 시대의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의 특성상,[29] 플레이의 기본 중 기본이 된다. 일방적인 양학이거나 영웅 유닛의 맹활약이[30] 아닌 이상 전투에서 모루와 망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특히, 측후면을 공격당하면 포위 내지는 순식간에 큰 피해를 입은 판정을 받아 사기가 떨어지고, 사기가 떨어지면 병사들이 전의를 잃고 도주하며, 사기가 떨어져서 도주하는 부대가 생기면 그 옆의 부대도 그 영향으로 또 사기가 떨어져서 도주하는 식의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게임 시스템상, 측후면을 확보한 것이 어느쪽인지 여부가 대부분의 전투의 승패를 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따라서 별다른 이유가 없으면 망치와 모루 전술을 채용하는 것은 필수에 가깝다.[31] 물론 적 장군의 지휘력이 뛰어나고, 사기가 높은 병과들이라면 이것만으로 모랄빵이 나지는 않지만, 측후방에서 기병 돌격을 받으면 기병돌격에 대한 창의 저지력이나 방패 보너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 순식간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전열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된다.

당연히 AI를 비롯한 적도 같은 생각을 하므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다양한 전술이 동원된다. 강이나 절벽 등의 지형을 통한 기병의 우회 저지, 기병의 이동을 방해하는 울타리 설치, 우회하는 적 기병을 저지하기 위한 보병의 매복, 측후면을 포위당할 것을 대비한 방진형태의 부대 배치, 적 기병이 도착하기 전에 빈약한 적 보병진을 짓밟는 정면돌파, 우회하다가 만난 기병대간의 전투 등 망치와 모루에 관련된 모든 상황을 겪어볼 수 있다.

옛 작품의 AI는 우회에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로마2부터 AI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기병대를 이용한 우회를 시도하거나, 보병과 사격병과를 이용해 망치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는 등 전술면에서 옛 작품 보다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생겼다. 토탈 워: 워해머로 넘어가면 보병진 모루를 정면에서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는 괴수나 지형을 무시하는 비행유닛, 마법 등으로 모루가 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여전히 망치와 모루가 전술의 기반을 맡고 있다. 오행 시스템을 채용해 장수의 중요성이 높아진 토탈 워: 삼국에선 충격 기병에 특화된 선봉장, 창병에 특화된 용장, 원거리 병력에 특화된 책사 조합을 자주 활용하는데, 이 조합이 가장 자주 쓰이는 이유는 모루와 망치 전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이다.[32]

사람끼리 붙는 멀티에서는 당연히 서로 이걸 사용하려 하므로, 포진 단계에서 지리한 니가와 배틀로 종종 흘러간다. 이러한 무한 대치 상태를 막기 위해 시간제한이 있으며, 시간이 다 되면 공격측의 패배/방어측의 승리가 되는 시스템이다. 먼저 적 원거리 유닛의 사거리로 뛰어들어야 하는 공격측이 불리하므로, 공격측 가용 전력이 약간 높게 잡혀있다.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방어측이 크게 유리하다. 모루를 잘 셋팅 해 놓고 망치만 잘 컨트롤 해주면 되고, 복병을 활용하기도 쉽기 때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론이고 경우에 따라서 공격측이 공성병기나 장궁병, 경보병과 같은 사거리가 특출나게 긴 유닛으로 짤짤이를 하며 역 니가와를 시전할 수도 있다.

8.13. 폴라리스 랩소디

휘리 노이에스 왕자의 땅 병탄을 막기 위해 출전한 두 노장( 브라도 켄드리드, 바스톨 엔도)은 어떠한 의사소통 없이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여 휘리 노이에스를 몰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퓨아리스 4세는 이를 망치와 모루에 비유하였다. 정확히는 전술적인 측면이 아닌 전략적인 측면에서의 망치와 모루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이후로 계속해서 라이벌로 여겨져 왔던 두 노장의 합작품으로, 서 브라도는 록소나 수비를 지원하며 모루 역할을 하고, 반대로 바스톨 엔도 장군은 다벨의 군세를 꺾기 위해 나서 망치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는 서 브라도가 기병 돌격의 최강자이며 바스톨 엔도가 방어전의 대가라는 것. 즉, 망치와 모루 역할이 바뀌었다. 그러나 70세를 바라보는 이 두 노장은 단 한번의 의견교환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 완벽한 망치와 모루를 만들어냈다. 바스톨 엔도 장군은 다벨의 본토를 공략해 다벨군이 자연스럽게 후퇴하여 자신들에게 덤비게 만들었고, 모루가 되었다. 그리고 서 브라도는 최강의 기병 군단으로 일컬어지는 록소나의 정예 기병대를 이끌고 다벨군의 뒤를 추격하며 망치가 되었다. 작중에서 그야말로 기적같은 위업이었다고 말하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 평생 단 한번 마주친 라이벌끼리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완벽하게 모루와 망치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라이벌 관계였으며, 이 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레프토리아 회전에서는 서로가 위험할 정도로 위험하게 싸울 정도로 경쟁심에 불타는 관계였다. 이들이 대적하던 하이낙스는 '저 바보들은 서로 공을 다투다가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 이 때문에 휘리 노이에스 또한 둘이 모이면 옛날처럼 둘이서 견제하느라 힘이 빠질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 완숙된 상태로 만난 두 사람은 아무런 의견교환도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전술은 파국을 맞이했다. 우선 휘리의 기책에 의해 '모루' 역할을 맡은 사르토니아 군이 큰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뒤늦게 난입한 서 브라도가 아직까지 '모루'에 의해 붙잡혀 있던 다벨군을 분쇄하는 대신 휘리를 찾아 너무 깊숙히 들어가버린 것이다. 거기에 서 브라도가 휘리와의 때아닌 일기토에서 전사하기까지 하면서 굳게 믿고 의지하던 지휘관을 잃은 록소나 기병대가 붕괴함은 물론이고 록소나 군의 지원을 기대하다가 적절한 철수 시기를 놓친 사르토니아군이 거의 전멸하기에 이른다. 서 브라도의 돌출행동은 다름아닌 자살을 위한 것. 키 드레이번에게 자신의 검 복수를 빼앗기고 무사로서 다시 없는 수치를 당한 서 브라도는 자결하려고 했지만 복수도 자신을 죽이지 못했는데 시시한 칼로는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33] 그러던 차에 오왕자의 검인 휘리가 나타났음을 알게 된 서 브라도는 휘리를 자신을 죽일만한 검이라 여기고 그 칼에 자신을 던진 것이다.

8.14. 스틸 디비전 시리즈

스틸 디비전 2 캠페인에서는 보병 사단 포병들이 적을 고착시키고 이동능력이 뛰어난 기갑, 자주포, 기계화보병 사단들이 적진의 후방을 포위한다. 완전히 포위당한 부대는 4턴 후에 모든 자원이 고갈되어 전투불능이 된다. 그러나 바그라티온 작전이 배경인 게임 특성상 독일군은 대부분의 경우 적의 빈틈이 보여도 부대의 수가 부족해서 망치질을 시도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련군은 거의 독일보다 병력이 3~4배가 더 많으며 전차와 차량화보병도 훨씬 많기 때문에 빠르게 이동해 독일군의 후방을 망치질해서 포위하기 좋다. 독일의 경우 포위당하기 전에 철수해 전선을 좁히거나 아군을 포위하러 기동하는 소련군을 역포위해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1편과 2편 모두 일반 전술 전투에서는 후방을 차단당해 적진에 포위당한 유닛들은 사기가 2배로 빨리 깎이는 패널티를 받는다. 공수부대 특수부대 같은 일부 정예부대는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사기를 유지한다.

9. 기타

파일:일본과 러시아에 압사당하는 한국.jpg

망치와 모루 전술은 이런 용도로도 쓰인다는 드립도 있는데 러일전쟁 당시의 정치풍자 그림엽서이다.

[1] 주로 무장한 충각 기병대가 여기 속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궁기병류 같은 경기병이나 경보병이 맡기도 한다. 현대전에선 탱크 전투헬기같은 기동부대들이 맡는다. [2] 물론 후술할 파르살루스 전투처럼 망치가 부실해도 이를 보강할 전략이 있으면 상관없으나, 이 전투는 카이사르군의 '모루'였던 군단병이 폼페이우스의 '모루'인 군단병보다 숙련도가 훨씬 뛰어난 정예병이었기에 모루끼리의 전투에서 카이사르가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 있어서 사용할 수 있던 변칙 전술이다. [3] 더 정확하겐, 청동기가 보급되기 이전 시대에는 방어구의 질이 낮은데다 전차 등의 존재로 모루가 무른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명확한 기록이 남은 사례가 적다. 그나마 있는 것도 신화적인 면모가 섞여있어 어떤게 진실이고 어떤게 신화인지 구분하기 힘든 점도 있어서 명확한 판단이 힘들다. 물론 막연하게 추측하자면 해당 시대에도 저러한 '망치와 모루'와 흡사한 전술 자체는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할 순 있다. [4] 흔히들 홉라이트가 중세 중보병처럼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했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보통의 홉라이트는 투구+흉갑+정강이 보호대 정도가 전부라 허벅지나 팔과 같은 부분을 보호할만한 수단이 필요했다. [5] 보통 우익이 최정예병인 특성상 총지휘관도 우익에 배치되는 만큼, 좌익에는 부지휘관급 인사가 가고, 그만큼 우익 다음의 정예병이 자리잡아야 했다. 또한, 서로 우익이 좌익을 빠르게 무너뜨리면 꼬리잡기마냥 빙빙 돌며 서로 진영이 파괴되는 만큼, 최대한 아군 우익이 적 좌익을 무찌르는 동안 아군 좌익이 적 우익을 상대로 버텨야 했을 것이다. [6] 마케도니아 보병대를 이루는 방진(方陣, Palanx)의 기본단위를 말하며 산티그마(Santigma)라고 한다. [7]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누누히 지적하는 것이 바로 부대의 유기적인 진형 구축 능력과, 진형이 붕괴되지 않도록 사기를 유지하는 능력이었다. 로마는 군단병 체제로 들어서기 전에는 고대 그리스와 흡사하게 재산 및 나이에 따라 병종이 정해지고, 이들도 비교적 짧은 시기만 복무하였던데다 1년 남짓한 임기의 집정관들이 이들을 통제하였기에 총지휘관도 자주 바뀌었으나,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이후엔 총사령관(임페라토르)의 지휘 아래에 비교적 통일된 무장으로 무장한 병력들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물론 이 탓에 군단병이 사실상 임페라토르의 사병화가 됐다는 문제도 있지만. [8] 그나마 교류가 아주 없던 것도 아니었으나, 이것도 유목국가와 교역을 하지 않으면 어차피 약탈할게 뻔해(...) 하는 교역이기도 했다. 즉, 용병으로써의 고용보단 그냥 정세 안정을 위한 자구책에 가까웠던 셈. [9] 지휘관이야 전체 상황을 아니까 특정 부대만 뒤로 물리고 나머지는 멈춰 있으라고 할 수 있지만 각개 병사들은 옆 동료들이 물러나고 있는 걸 보면 자신도 같이 물러나지 않으면 적들 사이에 고립될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지휘관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 애초에 실행되지 않는 전술. [10] 다만 이 사례는 모루의 문제라기보다 망치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모루라고 무한정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망치도 신속하게 적의 후방에서 들이쳐야 하는데, 이 경우 그것을 실패한 것이다. [11] 보급의 어려움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공간적 제한도 큰 요소인데 사지에서 포위를 당하거나 부대 배치가 이상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거의 망했다고 보면 된다. [12] 과거의 병법을 보면 많은 장군들이 적에게 약간의 희망을 주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상술한 필사의 각오를 다진 적의 항전도 이유지만 도주시엔 전열은 커녕 지휘마저 통하지 않으므로 보다 쉬운 전후처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패배중에도 군기와 전열을 유지하면서 체계적으로 철수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고 성공적인 철수는 기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13] 시스템으로 넣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전투력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 RTS게임조차 완전포위되면 굉장히 위험하다. 스타크래프트의 질럿 VS 저글링 싸움이 그것으로, 질럿과 저글링은 일반적으로 1:3~1:4 교환비가 나오는데, 코스트도 4:1 비율이라서 진형싸움을 상당히 많이 탄다. 이 때, 질럿이 지형을 등지거나, 일렬로 늘어서서 싸우면 질럿이 거의 무조건 이기지만, 저글링이 기동성이 훨씬 빠르고, 숫자도 더 많으므로 평지라면 비교적 손쉽게 포위할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 싸우면 백이면 백 질럿 쪽이 진다. [14] 정확하게는 망치와 모루가 수시로 교대 가능한 것에 가깝다. 엄호조와 충격조로 나뉘어 충격조가 기동하는 사이 엄호조가 교전으로 적을 붙들어 놓으면, 충격조가 유리한 위치에서 화력을 투사해 섬멸 혹은 포위섬멸하고, 아직 적이 남아있다면 역으로 충격조가 엄호조가 되고 엄호조나 예비대가 충격조 역할을 하는 식이다. [15] 앞에서 싸우는 본대가 모루, 보급선 끊어먹는 공수부대가 망치. 근데 이 경우는 공수부대가 적 본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념이 약간 다르다. 공수부대가 요충지를 선점하고 버티는 와중에 본대가 분단된 적을 털고 나서 구원하러 오기도 하니 오히려 공수부대가 모루 역을 맡는다고 볼 수도 있다. [16] 단 육군사관학교의 나종남 교수는 1990년대 이후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가 격멸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연합작전 미숙, 미 해병대의 과도한 공세로 적 조기이탈, 육군과 공군의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 등으로 제시하였다. “공화국수비대는 격파되었는가?”:사막의 폭풍작전 중 다국적군의 연합 및 합동작전 분석 또한 걸프전에서 다국적군 기동의 실상은 망치와 모루의 응용이라기보단 그저 거대한 모루로 이라크군을 격멸한 것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즉 적 방어선의 약점이나 간격을 파악하고 해당 지점으로 우회 침투하거나 돌파하는게 아닌, 그저 적 병력에 정면으로 선형으로 전진하여 넓은 전선에서 접촉하여 파괴하는 전면 공격에 가까웠단 것이다. [17] 이 당시에는 전경 방어벽이 대학교 정문 앞에 세워졌다. 그래서 정문에서부터 화염병 투척 등 데모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8] 다만 여기서 몇 가지가 빠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취약지점이 아닌 곳을 공격하던가, 적을 전선에 묶어놓지 않고 포위하던가, 기동력이 떨어지는 사단으로 포위하던가. [19] 초보자가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로 무리하게 파고들어갔다가 포위되는 것인데 이런 경우 이동시 소모된 조직력으로 인하여 사단을 빼내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20] 인력과 장비가 떨어지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강대국들은 대체로 공장과 인력이 많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 [21] 적의 방패표시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위치 [22] 정찰병을 망치 역할로 쓸 때는 일반적으로 샷건을 들려준다. [23] 사실 3호가 깝죽거리다가 탈락하지만 않았어도 이 사단은 안 났다. [24] 방어선 간을 보는 1파, 울프팩으로 충격을 줘서 뚫어내는 2파까지는 비슷하지만 월탱 게임 시스템상 방어선을 뚫어낸 2파가 그대로 돌파를 시전하지 제 3파까지 돌입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므로 제파식 전술과는 차이가 좀 있다. 다만 팀의 구축전차들이 기동형 구축인 경우는 2파가 뚫고 들어간 뒤에 3파로 기동형 구축들이 우르르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구축이 구축자리에서 내려와서 같이 밀고 들어가는 시점에서는 뚫린 팀의 전황이 거의 패배에 임박한 경우가 많지마는. [25] 은근히 자주 보이는 모습으로 중형전차 대신에 중전차가 망치를 담당할 때도 있다. 이 경우는 양팀 모두 중형전차가 중전차보다 많을 경우에 발생하는데, 중형전차들이 주 전선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정신없이 플레이하는 와중에 느긋하게 뒤로 돌아온 중전차들이 중형전차나 멀리서 지원하는 구축전차들의 얇은 측후방에 중전차 특유의 대구경에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고폭탄을 박아넣어 빈사로 만들고, 판을 순식간에 끝내버리는 장면이 많이 보인다. [26] 체력이 가득 찬 자신의 차량도 수리가 가능하며, 긴급 전투속도 부여에는 10초가 걸린다. 사용 비용은 없으며 사용 후 다시 수리하여 적용시켜줄 수 있다. 모루 차량인 처칠도 어밴던난 것을 망치 영국이 수습했을 때 수리해주면 사용이 가능하다. [27] 공병 한 명당이므로 4인일 시 총 2.1, 5인일시 2.625 증가한다. [28] 3에서 2.25로 감소함. [29]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엠파이어: 토탈 워 나폴레옹: 토탈 워,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한 토탈 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 같은 경우는 화기가 전장을 지배하던 시대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은 보병의 일제사격 후 착검돌격이나 냉병기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기병대가 존재하는 등, 냉병기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30] 그마저도 토탈 워: 삼국 연의 모드, 토탈 워: 워해머 시리즈, 토탈 워 사가: 트로이 한정이다. 그리고 이 영웅들이 하는 역할도 궁극적으로는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일인 망치 또는 일인 모루 역할이다. 혹은 적장과의 결투로 빠르게 제거해서 모랄빵을 내는 용도이거나... [31] 망치 혹은 모루가 상대편에 비해 너무 약해서 정석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을 사용하면 필패인 경우라거나, 유목민 궁기병만으로 이루어진 부대처럼 망치와 모루 개념 자체를 쓸 수 없는 경우, 망치 대신 모루와 사격 전력을 충실하게 갖춰서 상대가 먼저 돌격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경우, 또는 망치가 기동할 공간이 없는 공성전/수성전 등. [32] 기병, 궁병이 강한 데 비해서 보병의 전투력이 약한 삼탈워 특성상 모루는 상대 모루를 무너뜨리기보단 상대 모루와의 싸움에서 오래 버티기 위해 쓰이며, 그 용도로 쓰는 데 있어 가장 가성비가 좋은 유닛이 방패와 창으로 무장해 화살 공격도 잘 막고 기병도 잘 상대하는 '호위 창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계속 삼탈워가 발전하면서 양손검병 등 모루를 부수는 모루가 나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호위 창병이 대세. [33] 복수는 그 칼을 다룰 역량이 안되는 사람이 잡으면 스스로 목을 찌르게 하는 마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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