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그리스어 : Ἐπαμεινώνδας에파미논다스는 사선대형을 고안하여 스파르타의 패권을 무너트리고 테베를 강대국으로 이끈 고대 그리스의 명장이다. 그가 지휘하는 테베군은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을 붕괴시켰고 이는 스파르타의 압제 하에 신음하던 메세니아[1]의 헤일로타이들의 해방으로 이어졌다.
2. 생애
에파미논다스가 젊었을 때인 기원전 382년에 스파르타의 사령관 포이비다스가 테베의 파벌 간 갈등을 이용하여 테베의 카드메이아[2]를 장악하고 꼭두각시 참주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테베의 반스파르타파 귀족들이 추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에파미논다스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추방을 면했다 한다. 이후 아테네로 망명 갔던 테베의 반스파르타파 귀족들이 테베로 참입하여 친스파르타파 참주를 암살하자 에파미논다스는 이 틈을 타서 테베의 청년들과 함께 봉기하여 테베 내 스파르타군 세력을 청소하였다. 아게실라오스 2세가 지휘하는 스파르타군이 테베를 재차 침공하였으나 에파미논다스가 이끄는 군인들은 요새를 이용하여 스파르타군의 침공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고 스파르타군은 테베 근교의 농촌들을 약탈한 후에 회군하였다.이후 테베군의 지휘를 맞게 된 그는 다른 보이오티아 세력과 연합하여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승전 이후 테베군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군하여 스파르타가 다시 재기하지 못하게 만들 목적으로 기원전 7세기 이후 스파르타의 노예(헤일로타이)로 착취당하던 메세니아인들을 해방시켰다. 메세니아의 해방으로 주요 경제 기반이 붕괴된 스파르타는 이후 다시는 과거와 같은 지역강국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3] 메세니아 상실 이후 스파르타인 귀족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식민도시 타렌툼 등으로 이주하거나 카르타고로 간 크산티푸스처럼 해외에서 용병 대장으로 활약하게 되었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 스파르타 본토는 '특이한 문화를 지닌 이색 관광지' 수준으로 입지가 추락해 버렸다.
여하튼 레욱트라 전투 이후 에파미논다스의 명성은 절정에 달하였고 그동안 스파르타와의 잦은 전쟁으로 고생하던 아르고스나 엘리스 같은 이웃 도시들의 열렬한 지원에 힘입어 펠로폰네소스 반도 각지에서 스파르타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테베의 귀족들은 승전하고 돌아온 에파미논다스의 입지가 너무 강해질 것을 우려해서 상당한 견제를 하기도 했다.
테베를 고대 그리스 세계의 패자로 만든 명장 에파미논다스는 2차 만티네아 전투에서 전투를 거의 승전으로 이끄는 와중에 전사하였다.
3. 평가
고대 지중해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인지도는 비교적 낮은 편인데, 이는 에파미논다스의 초기 생애 관련한 기록 상당수가 실전된 것[4] 및 그의 전사 이후 27년만에 테베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공 및 테베 파괴 명령으로 완전히 멸망했던 것, 그리고 그가 동성애자[5]여서 어린이용 위인전 등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점을 들 수 있다. 그의 사선대형은 마케도니아군의 망치와 모루 전술로 계승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군사적 능력 외에도 고결한 인품으로 두루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크세노폰 같은 동시대 그리스인들은 그가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는 절제된 삶을 살고, 가진 것을 동지들과 나누며 뇌물을 거부하는 청렴한 인품의 소유자라고 칭찬하였다. 스파르타가 테베에 친스파르타 정권을 세울 당시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추방을 면했던 그는 이후 스파르타군을 쳐부수고 명실상부한 그리스 최고의 장군으로 명망을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금욕적인 삶을 유지했다고 한다.
테베란 도시 국가는 과거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 스파르타와 다르게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와 손을 잡았다고 까이는 편이지만 에파미논다스는 여기서도 예외인데[6], 스파르타를 지원하던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서 그를 뇌물로 매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7]
4. 여담
[1]
스파르타 서쪽에 위치한 이웃국가.
[2]
테베의
아크로폴리스, 전설 상의 테베의 시조
카드모스에서 따온 장소.
[3]
고대 스파르타인들이 군사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메세니아에서 수탈하는 농산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도 에파미논다스의 열전을 실었으나 불행히도 실전되고 말았다.
[5]
에파미논다스는 결혼을 하지 않고 남성 애인만 두었다.
[6]
물론 시대가 다르긴 하다.
[7]
그리고 사실 페르시아와 손을 잡은건 아테네, 스파르타도 다를 바 없어서 페르시아 전쟁 동안에야 둘 다 페르시아와 적대했지만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지들끼리 싸우면서 전세의 유불리에 따라 페르시아와 손을 잡았다 말다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