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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9:39:18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1] (2020)
The Last Dance
파일:lastdance.jpg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제이슨 헤이르
출연 마이클 조던
제작사 파일:미국 국기.svg ESPN 필름스, 만달레이 스포츠 미디어, NBA 엔터테인먼트
방송사 파일:미국 국기.svg ESPN[2], 넷플릭스[3]
수입사 파일:미국 국기.svg 넷플릭스
방송 기간 파일:미국 국기.svg 2020년 4월 19일 ~ 5월 17일[4]
공개일 파일:미국 국기.svg 2020년 4월 20일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2편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년 5월 11일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2편씩
구성 총 10화
상영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초기.svg 15세 이상 관람가[5]

1. 개요2. 공개까지의 과정
2.1. 1997-98 시즌 직전 불스의 상황2.2. 500시간의 미공개 영상 촬영2.3. 다큐멘터리 제작 결정까지2.4. 제작 발표부터 공개 까지
3. 에피소드 별 내용
3.1. 1화3.2. 2화3.3. 3화3.4. 4화3.5. 5화3.6. 6화3.7. 7화3.8. 8화3.9. 9화3.10. 10화
4. 출연자
4.1. 시카고 불스 구성원4.2. 농구인들4.3. 선수들의 가족4.4. 조던의 주변 인물들4.5. 언론인4.6. 그 외4.7. 과거 인터뷰 자료화면 등장인물4.8.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들4.9. 왠지 모르지만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
5. 평가6. 기타
6.1. 농구 다큐멘터리 제작의 부흥

[clearfix]

1. 개요

1997-98 시카고 불스에 초점을 맞춰 마이클 조던의 선수 경력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이전까지 미공개였던 500시간짜리 영상을 담고 있다. ESPN은 당시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조던의 불스를 독점취재 할 수있는 허가를 받고 시즌 동안 선수단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했었다.

2. 공개까지의 과정

2.1. 1997-98 시즌 직전 불스의 상황


첫번째 쓰리핏(3연패)와 마이클 조던의 첫번째 은퇴 및 복귀 이후 또다시 연속 우승을 이뤄낸 시카고 불스지만, 제리 크라우스 단장과 시카고 불스 선수단 및 코칭스탭과의 파열음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자신의 의붓딸의 결혼식에 불스 선수단을 전부 불렀지만 필 잭슨에게만은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크라우스 단장은 97-98 시즌을 앞두고 당시 아이오와 주립대의 감독인 팀 플로이드를 앉힌 후 전면적인 리빌딩을 하려고 했다.[6] 하지만, 제리 라인스도프[7] 구단주가 크라우스를 빼고 필 잭슨과 직접 만나서 1년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상황을 일단봉합했다. 하지만 크라우스 단장은 정규시즌 전승인 82승을 해도 필 잭슨의 임기는 97-98 시즌이 끝이라고 못박았으며, 매 시즌 마다 해당 시즌의 컨셉을 결정하는 필 잭슨은 이 시즌에 'Last Dance'라는 이름을 붙였다.

갈등은 필 잭슨과의 관계에서만 있었던게 아니다. 스카티 피펜의 경우 차고 넘치는 활약을 했고, 왕조의 2인자로서 확실한 공헌을 했지만, 연봉으로는 그런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다.
파일:9798bullssalary.png
피펜은 드래프트 당시 센트럴 아칸소 대학교라는 지잡대출신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었고,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아 1라운드 전체 5순위의 높은 지명 순번에도 불구하고 신인 시절에 가족들을 당장 먹여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맺은[8] 장기계약, 그리고 91년에 그의 강력한 요구에 맺은 5년 1천8백만 달러 연장계약이 시카고 불스의 성장과 그에 발맞춘 피펜 본인의 환골탈태급 성장[9], 그리고 불스와 조던,나이키가 주도한 대성공으로 NBA의 상업적인 규모가 커진 후에는 리그 전체 122위, 팀 내에서도 6위의 초라한 연봉을 받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문자 그대로 노예계약 수준. 보통 이정도의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라면 선수를 지키기 위해 계약 조정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불스 경영진은 계약 내용을 바꾸거나 재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고, 97-98 시즌을 앞두고 무릎 수술을 미루기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상황 변화를 이끌어내려던 피펜은 결국 시즌이 끝나고 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기에 1997 파이널 우승 직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시카고 컵스는 42년째 리빌딩 중이지 않냐고 리빌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마이클 조던도 필 잭슨 없이는 팀에 남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악감정이 쌓인 크라우스 단장에 대해서 조던은 좋게 말하면 짓궂은 농담, 나쁘게 말하면 인신공격을 계속 퍼붓는 수준까지 갔으며, 이는 자신의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도 다시 한번 표출되기까지 했다.[10]

이렇게 불스의 핵심 선수들과 프런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결국 돌이킬수 없는 파국이 일어난 97-98 시즌이 불스 왕조의 마지막이 될 것은 여러모로 자명했다.

2.2. 500시간의 미공개 영상 촬영


그 전까지는 컵스 화이트삭스, 베어스는 물론이고 실내축구팀 시카고 스팅스에게도 관중 동원이 밀리던 시카고 불스 프랜차이즈의 운명을 바꾸고, NBA 전체 인기를 견인한 선수가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자, NBA에 관련된 영상을 제작하는 NBA 엔터테인먼트(NBAE)의 한 프로듀서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 시즌이 될 시카고 불스의 1997-98 시즌을 영상으로 기록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를 현재 NBA 커미셔너이며 당시 NBAE의 책임자였던 아담 실버는 NBAE의 사명이 리그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경기 후 기자회견이나 단편적인 녹화물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평상시에는 공개되지 않는 모습까지 모든 것을 담는 것을 추진했다.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와의 협상은 쉽게 끝났지만, 조던과 필 잭슨이 동의해야한다는 단서가 달려있었다. 라커룸을 통제하는 필 잭슨의 경우 카메라 촬영진을 내쫓을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전제하에 이에 동의했다.[11] 자신의 대외 이미지와 관련 권리를 세심하게 관리해온 마이클 조던의 경우는 NBAE와 조던 양측의 동의 없이는 해당 영상이 공개될 수 없다는 단서하에 이에 동의했다. 커리어동안 언론에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일이 몇 번 있는 조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건인 셈.[12]

그리고 시카고 불스가 두번째 쓰리핏을 달성하고 조던이 6번째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까지 포함한 500여시간의 촬영 결과물은 약 20년 동안 뉴저지 시코커스에 있는 NBA 라이브러리에 잠들어 있었다.

2.3. 다큐멘터리 제작 결정까지


이 영상물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촬영을 이끈 앤디 톰슨 프로듀서를 포함해 언젠가는 이를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프랭크 마셜, 스파이크 리, 대니 드비토등이 제작자로 언급되었으나 조던과의 대면 미팅 까지 간 경우는 없었다.

다큐멘터리의 길이의 문제도 있었다. 1997-98 시즌에 마이클 조던이 그렇게까지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우승을 하려 했던 것을 이해하려면 조던의 커리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5년 전까지만해도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으로 80분짜리였다. 1997-98 시즌에만 집중해도 이걸로는 부족했다.

00년대 초까지는 매년 NBA우승팀들의 한 시즌 스토리를 다룬 비디오가 VHS 테이프 형식으로 발매되었고, 88년의 Come Fly With Me부터 시작해 Air Time, Michael Jordan to the Max 등 마이클 조던이 주인공인 비디오도 수차례 발매되어 많이 판매되었다. [13] 문제는 이 비디오들은 공통적으로 60분 미만의 상영시간에 맞춰 제작되었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담을 수가 없었다. 조던의 시카고 시절 전 커리어를 다룬 비디오는 은퇴 직후 발매된 His Airness가 있는데, 커리어 초창기 몇년을 하일라이트 비디오와 인터뷰 몇번으로 떼우고, 나머지 시즌도 화려한 장면과 나레이션 위주로 대충 넘어가는 수준에 도박 스캔들 같은 부정적인 건 언급도 하지 않는다. 97-98시즌을 다룬 공식 비디오 Unforgetta-Bulls (unforgettable를 활용한 말장난. 이런 비디오들은 이런식으로 이름이 붙혀졌다. 예를 들어 96시즌은 Unstoppa-Bulls)는 시즌 전 피펜의 부상-위기-조던을 필두로 으쌰으쌰하는 모습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나옴-피펜의 복귀와 함께 신나는 음악으로 넘어감, 이런 식으로 하일라이트와 인터뷰 위주로 정규시즌을 고작 10여분 정도로 떼우고 만다. 이런 식의 다큐멘터리라면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밖에 다룰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10부작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가 큰 성공을 거두고 2016년초에 467분짜리 ' O.J. :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비평가의 찬사를 받으면서 바뀌었다. 미국 대중들이 장편, 멀티 에피소드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6~2003년에 방영된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HBO 시트콤 Arli$$의 프로듀서 마이크 톨린은, 이 시트콤에 게스트로 나온 조던의 에이전트 데이비드 폴크에게 1997-98 시즌 영상물의 존재에 대해 들었다.

상황이 바뀐 이후 톨린은 조던이 비즈니스 측면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과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해 논의했고, 조던의 97~98 시즌에 집중하면서도 전체 커리어를 포괄하는 6~8화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제작 계획을 제시했다. 그리고 대화 끝에 2016년 6월에 조던의 샬럿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었는데, 이 날은 우연히도 르브론 제임스의 캐벌리어스가 첫 우승 퍼레이드를 하는 날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마지막 장에는 톨린과 그의 회사 만달레이 스포츠 미디어가 제작해온 다큐멘터리, 영화, 쇼의 목록이 있었다. 마이클 조던은 오른쪽 아래에 있던 '아이버슨'을 보고 이걸 제작했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하자 "이걸 3번 봤으며, 나를 울게 만들었다."고 조던은 답했다.

그리고 조던은 약간의 고민 끝에 다큐 제작에 동의했다.

2.4. 제작 발표부터 공개 까지

공식적인 제작 발표는 2018년 5월 15일에 나왔다. 2019년에 나올 10부작으로 만들어질 마이클 조던과 1997~98 시즌의 시카고 불스에 대한 이 다큐멘터리에는 미공개 500시간 분량의 영상이 반영될 것이며, 제이슨 헤이르가 감독, 마이크 톨린이 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

2018년 12월에는 첫 트레일러가, 2019년 12월 24일에는 공개 일자가 2020년 6월로 확정되면서 새로운 트레일러가 공개되었다.

6월 공개 시점은 NBA 파이널이 6월 초 중순에 진행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래는 무난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상황이 미국에서도 심각해지고, 루디 고베어의 확진 판정 이후 NBA 시즌이 중단되고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집에 갇히게 되면서, 볼 수 있는 스포츠 생중계가 전멸해버린 스포츠팬들은 공개 날짜가 확정되어 지금쯤이면 마스터본이 나올 시기가 된 이 라스트 댄스를 주목하고,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보여줘요라고 ESPN을 닦달해댔다.

ESPN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광고시간에 내보내고 있던 관련 광고의 마지막 장면 자막을 'Coming in June'에서 'Coming Soon'으로 바꾸었고, 3월 31일 "팬들의 요청에 따라" 최초 공개 일자를 4월 19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

그리고 4월 19일 이후 매 일요일마다 ESPN에서 2편씩 연속으로 방영되었다.

3. 에피소드 별 내용

이하 메타크리틱 각 에피소드 항목에 있는 내용 요약을 번역한 것이다. #

3.1. 1화

1997년 가을,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는 8년 동안 6번째 우승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필 잭슨 감독이 "라스트 댄스"라는 이름을 붙인 이 과제에는 클럽의 프론트 오피스와의 긴장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3.2. 2화

마이클 조던은 1997-98 시즌을 부상당한 사이드킥 스카티 피펜 없이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피펜과 불스 프론트의 계약에 대한 갈등은 최고조에 올랐고, 팀의 우승 도전은 최악의 초반 성적을 겪게 된다.

3.3. 3화

증오스러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배드 보이즈" 우승 팀의 핵심멤버로서 마이클 조던을 잔혹하게 괴롭혔던 데니스 로드맨은 1997-98 시즌 초반에 조던이 사실상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동료다.

3.4. 4화

경영진이 이번 시즌이 불스의 감독으로서의 필 잭슨의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계속 이 독특하고 특이한 재능 집단을 또 다른 우승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처럼 보인다.

3.5. 5화

NBA 연속 우승, 올림픽 드림팀에서의 주연으로서의 활약으로 마이클 조던의 명성이 1990년대초 누구에게도 비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서, "에어 조던"이라는 그의 이미지는 그를 엄청나게 중요한 문화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3.6. 6화

마이클 조던의 엄청난 명성은 엄청난 정밀 조사를 야기했고, 1993년 시카고 불스가 3연속 우승을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조던의 도박에 대한 물음표가 드리워지면서 이는 정점에 이른 것처럼 느껴졌다.

3.7. 7화

마이클 조던이 6번째 NBA 우승을 위해 팀 동료들을 거세게 몰아붙인다. 농구에서의 지배에 대한 그의 격렬함과 굶주림은 1993년 그가 농구를 떠날때의 생각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3.8. 8화

마이클 조던은 상상할 수 있는 아주 작은것조차도 적에게 맞서기 위한 동기부여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5년 복귀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을때, 그는 경기력을 되찾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했다.

3.9. 9화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가 NBA 파이널에서 유타를 꺾은지 거의 1년이 된 1998년 5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동부 컨퍼런스 우승자를 가리는 잔혹한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면서 6번째 우승을 향한 그들의 여정은 더욱 도전적인 것이 되었다.

3.10. 10화

1998년 6월, 6번째 우승과 "더 라스트 댄스"의 완벽한 결말을 원하는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는 NBA 파이널에서 유타 재즈와 재대결을 벌인다.

4. 출연자

과거 자료화면을 제외하고 총 90명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4.1. 시카고 불스 구성원

4.2. 농구인들

몇몇 세대가 다른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던의 피해자들[14]

4.3. 선수들의 가족

4.4. 조던의 주변 인물들

4.5. 언론인

4.6. 그 외

4.7. 과거 인터뷰 자료화면 등장인물

4.8.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들

영상을 제작하거나 기사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람들을 섭외하고 취재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특히 인터뷰 대상이 별 이유없이 거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취재 과정이 생각처럼 이뤄지진 않는다. 아래 언급된 말론과 러셀은 조던과 별다른 인간적인 갈등이 없었는데도 인터뷰를 거부했고, 반대로 조던과 갈등이 있던 그랜트는 인터뷰를 했다. 룩 롱리처럼 인터뷰를 거절한게 아니었는데도 취재진의 단순한 누락으로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왔다안나왔다를 두고 억측을 하는건 별 의미가 없다.

4.9. 왠지 모르지만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

5. 평가


||<-3><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bgcolor=#333><tablebordercolor=#333> 파일:메타크리틱 로고.svg ||
스코어 90 / 100 점수 9.2 / 10 상세 내용



||<-2><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93208><bgcolor=#f93208> 파일:로튼 토마토 로고 화이트.svg ||
신선도 97% 관객 점수 95%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파일:IMDb 로고.svg
]] ||
( IMDb Top 250 TV 16위{{{#!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14181c><tablebordercolor=#14181c><tablebgcolor=#fff,#191919><:> 파일:Letterboxd 로고 화이트.svg ||
( XXX위{{{#!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c0><bgcolor=#fc0> 파일:알로시네 화이트 로고.svg ||
전문가 별점 4.3 / 5.0 사용자 별점 4.5 / 5.0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5><bgcolor=#005> 파일:키노포이스크 로고.svg ||
별점 9.0 / 10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f0558><bgcolor=#ff0558> 파일:왓챠피디아 로고 화이트.svg ||
별점 4.4 / 5.0


6. 기타

6.1. 농구 다큐멘터리 제작의 부흥



[1] 영등위 심의 신청 제명 [2] 미국 내 [3] 미국 외, 미국에서는 7월 이후 [4] ESPN 방영 기준 [5] 사유는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1990년대 전성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다소 높은 수위로 표현된 주제, 그리고 대사, 약물, 모방위험 요소에 유해성이 있으며 구체적, 지속적이지 않아 15세이상관람가' [6] 실제로 플로이드는 조던이 은퇴한 98-99시즌부터 4년간 불스의 헤드코치를 맡았다. 하지만 팀 불화가 갈데까지 간 불스는 상단 표지에 있는 인물 다섯명이 모두 팀을 떠났다(조던, 필 잭슨은 은퇴, 피펜은 휴스턴, 커는 샌안토니오, 로드먼은 홀드아웃뒤 방출되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행). 그렇게 아무 것도 남지않은 불스에서 4년동안 49승 190패 (승률 .205)라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성적을 남긴채 불스 헤드코치를 사임하고 뉴올리언스 호네츠를 2년 더 이끈뒤, 대학농구 USC로 돌아갔고, 2017년 텍사스 엘-파소 대학을 마지막으로 농구 감독직을 은퇴하였다. [7] 시카고 불스 및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구단주 [8]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는 막상 이 계약을 맺을때 앞으로 더 좋은 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이런 장기계약을 맺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피펜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재계약이나 계약 갱신을 안해줌으로써 후회를 확실하게 하도록 해줬다 [9] 피펜의 모교 센트럴 아칸소에서 2020년 기준 아직까지도 NBA 선수는 피펜 딱 1명만 배출됐다. [10] 막상 라인스도프 구단주와 조던의 관계는 현재 좋다고 한다. 이젠 NBA 구단주 모임에서 얼굴 보는 사이이기도 하고. [11] 이 때문인지 실제로 필 잭슨이 라커룸에서 촬영진을 내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12] 90년대 초에 조던의 부정적이거나 인간적인 결함을 상세히 다룬 Jordan Rules가 출판되었을때, 조던은 몇주동안 책을 쓴 샘 스미스 기자와 얘기도 안 했다고 한다. 스미스는 80년대부터 불스를 다룬 시카고 트리뷴의 유명 기자였고, 팀과 동행하면서 밀접취재를 하며 불스의 여러 선수들과 친분이 있고(특히 그랜트와 매우 친했다) 조던과도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으나, 개인적이거나 민감한 부분, 라커룸에서 일어난 갈등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에 대해 서운해했기 때문. 특히 책 자체가 제목처럼 당시 압도적인 영향력과 인기를 누리고 있던 조던의 부정적인 내용을 주로 다뤘기 때문. 다만 책이 조던을 부정적으로만 그린 것은 아니고 그때까지 완전무결한 이미지였던 조던의 인간적인 결함을 드러낸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한 얘기들까지 전부 책으로 냈기에 기분이 상한 것이다. [13] 다른 대부분의 스타들은 한두개 정도 나오는게 보통이었다. [14] 사실 동시대 선수들 대부분은 조던 때문에 크고작게 커리어에서 손해를 봤다. 조던은 시카고 시절 13년, 사실상 12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6번의 우승과 6번의 파이널 MVP, 5번의 정규시즌 MVP, 10번의 퍼스트팀과 10번의 득점왕을 쓸어갔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전성기였다면 수상실적에서 당연히 손해를 볼 수밖에... 피해를 안 본 선수라면 컨퍼런스와 포지션이 다르고 파이널에서 붙은 적이 없는 데이비드 로빈슨과 하킴 올라주원 정도? 반면 같은 컨퍼런스인 패트릭 유잉(조던의 팀에게 플레이오프에서 5전 전패) 이나 마크 프라이스(4전 전패) 등은 정말 질리게 당했다. 말론은 파이널에서 2년 연속 물먹은 것도 모자라 득점 2위만 4년연속 했다. [15] 여담으로 버드는 92시즌, 조던이 29세가 된 시즌까지 뛰어서 조던과 커리어가 꽤 겹치는데도 87년 이후 한번도 플레이오프에서 조던과 붙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80년대의 거물급 선수들 중 조던이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번도 시리즈를 따내지 못한 상대로 남았다. (이는 데니스 존슨이나 케빈 맥헤일 등 이후 팀을 옮기지 않고 셀틱스에서 은퇴한 버드의 당시 동료들도 마찬가지) 다른 조던의 선배급 선수들의 경우, 매직은 파이널에서 한번 붙어 졌고, 아이재아 토마스는 조던을 3연속 탈락시켰지만 91년에 스윕당했고, 압둘자바는 91년 파이널 전에 은퇴해 플레이오프에서 붙은 적이 없고, 도미니크 윌킨스는 93년에 한번 붙어 스윕당했다. 버드는 88년 이후 전성기 모습을 되찾지 못했는데, 불스는 그 이후 우승권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피스톤즈와 달리 셀틱스는 커리어 초반에 붙은 넘을 수 없는 강자의 느낌이 강했다. 특히 86년 셀틱스는 80년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이 무적함대를 상대로 63점을 퍼부은 조던의 위엄과, 그렇게까지 날뛰었는데도 불스를 기어이 제압한 셀틱스의 위엄을 동시에 볼 수 있다. [16] 1991년 파이널은 매직의 마지막 파이널 진출이기도 했다. 시즌 직후 에이즈로 매직이 은퇴하기 때문. [17] 자존심 강하고 쪼잔한 조던이 바클리의 발언에 심기가 불편해진 채 거리를 뒀고 바클리가 이에 대해 따로 풀 생각을 안 하면서 거리가 멀어졌다고 한다. [18] 밀러가 에이스였던 시절 최강전력이 바로 97-98시즌 페이서스였다. 이 때 인디애나는 올스타 주말 전까지 동부 1위를 달리고 있었으며(최종승률은 동부 2위이나 디비전 우승자 마이애미에 밀려 3번 시드), 무엇보다 이때 페이서스는 신구 전력의 조합이 절정에 다른 해였다. 팀의 주축은 마크 잭슨-밀러-크리스 멀린 등 노장들이었지만 젊은 제일린 로즈나 트레비스 베스트 역시 벤치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고, 무엇보다 이때 데일&안토니오 데이비스와 릭 스미츠로 이뤄진 골밑은 인디애나 역사상 최강이라고 할 법했다. 99-00시즌에도 강력했지만 주전 가드라인이 두살을 먹어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고(특히 잭슨의 하락세가 컸다), 노화로 전력 외가 된 멀린의 공백은 성장한 로즈가 기대 이상으로 메꿨지만 무엇보다 안토니오 데이비스가 시즌 전 트래이드된 것이 컸다. 스미츠가 엄청난 장신에도 불구하고 피지컬이 약해 샤킬 오닐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는데, 데일 데이비스의 뒤를 받쳐주는게 키는 작지만 황소같은 완력을 지닌 안토니오였다면 천하의 오닐도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AD는 이 시점에서 벤치멤버급이 아니었기에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강력한 골밑과 탄탄한 전력 덕분에 98페이서스는 00년을 능가하는 굉장히 무서운 팀이었다. [19] 물론 이건 제작진의 개그로서, 이 자막이 나간 후 한동안 인터넷에서 개그짤로 돌았다. 이건 마치 "문재인(67)-삼청동 주민"이라고 자막이 나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니. [20] 95년 MLB 파업 사태 당시 조던의 복귀 떡밥이 돌때 클린턴은 실직문제에 대한 기자회견 도중 "제가 대통령이 된 이후 61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조던이 불스에 복귀한다면 그 수치는 610만 1개가 되겠죠"라고 공식석상에서 농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언급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것. 클린턴은 조던과 골프를 치기도 했는데, 조던은 현직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에게조차 거침없이 트래쉬토킹을 했다고 한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도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현직 국회의원인 정청래와 이벤트차원에서 스타를 할때 가차없이 핵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21] 조던과 인간적인 갈등을 빚었던 그랜트나 조던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도 출연했기 때문에 꼭 조던이 싫어서 안 나왔다고 볼수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별로 할 얘기가 없어서...라고 할 수 있다. 93년에 드래프트된 러셀은 조던과 딱히 개인적으로 친한 것도, 오랜시간 동료였던 것도, 라이벌이거나 원수지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의미있는 접점이 97, 98파이널 뿐이고 이중 할 얘기라면 그 중 98년 6차전에서 그 플레이 뿐인데, 이건 98년 경기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말 질리도록 많이 얘기된 주제다. 이에 대한 러셀의 입장도 마이클 조던 항목에 나와있지만 수십년 전에 이미 나왔고, 수도 없이 반복해왔다. 굳이 나와서 똑같은 말을 한번 더 하는게 큰 의미는 없다. [22] 룩 롱리를 주인공으로 한 호주 ABC 방송의 'One Giant Leap'에 따르면 출연을 거절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호주에 있기 때문에 취재를 오지 않아 등장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주전 센터였던 것치고 이상할 정도로 비중이 적어서 약간 서운함을 표했는데, 조던을 포함한 불스 동료들도 롱리의 비중이 너무 적다고 의아함과 불편함을 표했다. 조던은 "뭔가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롱리의 비중이 적은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는데, 롱리가 화려하지 않고 주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작진이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23] 사실 1차전의 33점차 대승과 조던이 시리즈 내내 맹활약한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92년 파이널은 시카고가 홈에서 2차전을 내주고, 3차전 승리 수 4차전을 내주는 등 2대2에서 5,6차전을 승리한데다 최종 6차전은 불스가 뒤지다가 역전해 4점차로 이길 정도로 전체적으로 접전이었다. 실제로 1차전을 제외하고 평균점수를 보면 포틀랜드가 2점 밖에 뒤지지 않는다. 드렉슬러 본인도 24.8점 7.8리바운드 5.4어시스트로 (40.7%로 낮은 야투율을 빼면) 제 활약을 해주었는데도 조던의 맹활약으로만 많이 기억되는 시리즈. [24] 이것도 위의 러셀과 마찬가지로 딱히 새롭게 말할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샤크가 조던의 아들관해 본의 아니게 굴욕을 줬고, 95 플옵에서 탈락시키기도 했지만 오닐 본인은 조던이 역대 최고선수이며, 칭찬 밖에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펜을 두고 론 하퍼나 스티브 커나 다를 바 없는 조력자일 뿐이라고 해 설전을 할 정도. 사실 오닐은 조던이나 빌 러셀처럼 그 위대함을 논하는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면 그냥 시원하게 인정하기 때문에 본인이 95년에 조던을 꺾은 걸 두고 별 어그로를 끈 적도 없고, 그냥 조던의 대단함을 칭송했을 뿐이다. 굳이 어그로라면 자신을 MDE라고 한 적이 있는데 레이커스 쓰리핏 시절 샥은 그렇게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선수였다. 사실 이것도 어그로라고 볼 순 없는게 그만큼 자신이 압도적인 빅맨이란 걸 강조한거지 한번도 조던보다 자기가 뛰어나다고 한 적이 없으며, Inside the NBA패널들이 역대 모든 선수들을 상대로 드래프트게임을 하는 편에서 (참가하지 않은) 오닐에게 1순위로 누굴 뽑겠냐고 하자 당연한 듯 마이클 조던이라 답했다. [25] 카터 중심의 다큐이기 때문에 전설이 되어버린 태업질을 무한쉴드친다는 것을 주의해서 감상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