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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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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행적 · 어록 · 평가 · 패러디 ·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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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조왕건 궁예.png
극중 궁예의 모습[1]
1. 개요2. 특징3. 극중 행적4. 어록5. 평가6. 영향
6.1. 대중적 인식 6.2. 패러디
7. 여담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 인물로, 궁예라는 인물이 사극에서 조명된 첫 사례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왕건이고 궁예는 반동인물임에도 드라마 전반부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고, 배우 김영철의 열연 덕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 '태조 왕건' 전반부(궐기와 태봉국 멸망까지)의 ' 진 주인공'처럼 취급받는다.

태조 왕건 총 200회 중에서 궁예는 120회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 실제로는 전체의 60%에서 등장했다. 원래는 80회 정도에서 최후를 맞는 것으로 계획되었으나 궁예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100회, 110회, 120회까지 계속 수명이 연장되었다. 그리고 궁예의 출연이 연장됨에 따라 원래 156회 정도로 기획되었던 태조 왕건의 전체 분량도 200회까지 늘어났다. 궁예의 출연이 40회 늘어남에 따라 드라마 전체 분량도 44회가 늘어나게 된 것.

배우는 김영철(성인), 맹세창(소년). 한때 궁예 배역으로 이덕화가 거론됐지만, 지극히 평면적인 요승 기믹이 될 것을 우려해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2]

일본판 성우는 우메즈 히데유키(성인), 오모토 마키코(소년).

극중 무력 최강인 견훤과도 겨루어 승부가 나지 않았던 최강자 반열에 들어가지만 유감스럽게도 본인이 직접 무력을 쓰는 장면은 딱 두 번만 등장한다.

2. 특징

김영철의 열연 덕분에 강렬한 인상과 함께 수많은 명대사들을 남겼으며 당시 아이들 사이에 관심법이나 법봉[3]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고[4] 또한 김영철 특유의 억양을 흉내내는 것도 유행했다. 김영철은 이전에도 탄탄한 연기력의 중견 연기자였지만, 궁예 역 이후로 크게 인기가 폭발하여 2000년도에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중년 연기자 중 본좌급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물론, 김영철이라는 배우가 연기력과 발성이 출중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버릴 부분이 없긴 하지만, 초반부와 전반, 중반부에 초강력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여 국민들과 언론의 폭발적인 인기와 찬사를 받게 되었고, 이 때 김영철의 카리스마에 대해 여러 신문사들이 언급하길, "궁예가 환생한 것 같다."라고 기사를 쓰거나 같은 이환경 작가의 드라마였던 용의 눈물 태종 이방원 역의 유동근과 더불어 "산도 움직일 것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5] 특히 고통을 참으려고 술에 취해 망나니짓을 벌이는 궁예의 연기는 진짜 술을 마시고 만취해서 찍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엄청난 연기를 펼쳐서 '주폭 연기의 교과서'로 불린다.

이환경 작가를 비롯한 드라마의 제작진들이 처음부터, 궁예를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6] 드라마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간 것과, 또 궁예 김영철의 신들린 연기로 궁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시청률이 높아지자 인기에 편승해 드라마 방영 횟수를 크게 늘려 궁예가 120화까지 계속 등장하게 됨에 따라 주인공인 왕건(태조)이 시청자들과 언론의 주목을 제대로 못 받게 되어서 태조 왕건이 아니라 '태조 궁예\' 또는 '미륵 궁예\'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최수종 페이크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굴욕도 당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가 얼마나 존재감이 막강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통계가 있는데, 궁예가 사망하는 120화에서 최고 시청률 65%를 찍었고 다음 주 121화는 시청률이 55% 밖에 안 나왔다. 10%p나 떨어질 정도로 궁예의 존재감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의 이름이 ' 태조 왕건\'이라는 사실을 망각 혹은 무시하게 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궁예가 죽은 이후 드라마가 종영된 줄 알았던 시청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

실제로 1화부터 궁예가 퇴장하는 120화까지 각 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 누구의 얼굴이 나오는지를 살펴보면, 궁예가 혼자 나오거나 왕건 등과 나란히 나오는 경우가 절반을 넘어간다. 사실 궁예가 죽은 직후 120화를 마무리하는 나레이션에서 한 시대( 태봉)가 가고, 새로운 시대( 고려)가 온다는 말을 하여 다음 화부터 2부가 시작됨을 암시했지만 궁예의 죽음(마지막)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이를 상기 못한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작 궁예를 연기한 김영철 본인은 촬영하는 내내 주인공도 아닌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와서[7] 최수종 서인석에게 미안해했다고 한다. 훗날 서인석은 드라마 중반부까지 궁예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고 자기는 묻히는 것 같아서 조기 하차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행히 본격적인 후삼국 후반부 에피들에서는 정말 아들과 갈등속에서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견훤 그 자체가 된 것 같은 명연기를 펼쳤고, 마지막 200화까지 왕건과 더불어 극을 이끌어 갔다.

이환경 작가의 전작 ' 용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도 당시 정치적인 관점에서 국민들과 정치인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등장하는 궁예와 아지태를 당시 현실의 주요 정치인들과 비교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이에 궁예와 아지태로 비교된 정치인들은 거세게 반발하는 사태도 생겨났다. 배우 김영철은 그야말로 신들린 카리스마 연기로 폭발적인 찬사와 인기를 얻었지만 오랫동안 궁예 연기를 하면서 장기간 안대를 착용하는 바람에 후유증으로 인하여 양쪽 눈의 시력이 달라져 부동시로 인해 한동안 고생을 했으며, 원래 2.0이었던 시력이 0.2로 떨어졌다고 한다. # 사실 이 사례 말고도 대부분의 애꾸눈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상당한 부담이긴 하지만. 거기다가 항상 머리를 민 상태로 추운 겨울에 경기도에서 촬영을 하느라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극초반엔 상의탈의하고 폭포 앞에 앉아있는 장면까지 나온다.

용의 눈물 이방원, 야인시대 시라소니와 함께 이환경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캐릭터 한국 사극에서 무척 보기 드문 특이한 캐릭터다. 단순히 광기어린 폭군이나 흑화 캐릭터는 이전이나 그 이후에나 흔하지만, 강력하고 기이한 카리스마를 가졌으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속과 예측할 수 없는 광기로 다른 사람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캐릭터는 드물었다. 또한, 세상과 백성을 구원하려는 고결함 아래에 욕망과 선민사상이 슬그머니 감춰져 있고, 뛰어난 능력 이면에 나약함과 어리석음이 숨어있는 다면적인 캐릭터는 궁예뿐이다.

이런 여러가지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상에서도 궁예의 관심법이나 그런 것을 관련으로 여러 합성 요소나 은어들이 탄생하는 듯,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독보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으며 태조 왕건의 엄청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끌었던 최고의 공신이다.

3. 극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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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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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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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향

6.1. 대중적 인식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궁예는 곧 김영철이자, 김영철은 곧 궁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다. 궁예의 대중적 인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지금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궁예의 토막 영상이다. 이 장면 후 조회 때 기침을 한 신하를 때려죽이는 장면이 이어졌던 걸 생각하면 소름이 쪽 끼친다. ‘관심법’ ‘마구니’ ‘짐은 살아있는 미륵이니라’ 등 수많은 유행어를 낳은 궁예는 전무후무한 카리스마를 뿜는 캐릭터다. 200회 중 궁예가 죽는 120회까지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은 궁예였다고 할 수 있다.
- 황진미(2020), '[드라마는 시대다] 궁예 ‘관심법’ 지금도 회자… 블록버스터 사극의 기념비', 국민일보, 2020년 10월 31일 링크
우리에게 궁예의 이미지는 드라마 < 태조왕건>을 통해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 그의 일생은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물론 김영철 배우의 열연이 한몫을 했겠지만 궁예의 일생 자체가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사람들을 화면으로 빨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 드라마로 인해 궁예가 재조명되었지만 우리는 단지 그를 광인(狂人)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는 단지 증오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일까?
- 운민(2022), '궁예는 실패한 영웅이었을까? 안성, 포천에서 찾은 그의 흔적', 오마이뉴스, 2022년 1월 7일 링크
배우 김영철은 요즘 동네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TV 프로그램 ' 동네 한바퀴'로 친근하나 아직도 궁예왕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도 적잖다. 2000~2002년 만2년 넘게 방영된 TV사극 '태조 왕건'에서 궁예왕 연기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궁예왕=김영철'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 삼국사기'와 ' 삼국유사' 편찬 시기가 정치사회적 의도 아래 고려의 정통성을 강화할 무렵이니 궁예왕은 승자 기록에서 우호적으로 표현될 리 만무했다. 더구나 대중적인 드라마가 이미지를 덧씌우며 고착됐다.
- 박미현(2022), '[박미현의 '옛 신문 속 강원도 읽기'] 42. 태봉국 궁예왕 유적지를 찾아', 강원도민일보, 2022년 6월 17일 링크

이러한 평가는 배우 김영철의 탁월한 연기력과 작가 이환경의 몰입감 좋은 각본에 기인한 것이기에 그들의 능력과 노고는 충분히 높이 평가 받을 필요가 있다. 다만 그런 이면에 궁예가 그저 '나중에는 무자비하게 무고한 사람들을 때려 죽이는 광기 서린 폭군'이자 ' 아지태라는 아첨꾼에게 속고 그렇게 독선 때문에 멀쩡한 수도까지 옮긴 후 나라를 점점 망친 미치광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미륵을 참칭해서 인생을 망친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단선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드라마 궁예의 인지도를 높이면서 실존 인물 역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과는 별개로, 궁예에 대한 드라마의 묘사는 삼국사기의 기록 및 기존 인식[8]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명연기를 보인 김영철 배우나 극본을 쓴 이환경 극본가의 잘못은 아니고, 대중적 관심에도 제대로 된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학계 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6.2.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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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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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편의 모습은 1기 (1회~32회) 오프닝에서의 궁예. 인자하면서도 자신만만한 미소 ?를 짓고 있고 후광이 비치고 있다. 왕건은 무표정으로 눈에 힘을 주고 있고, 견훤은 다소 당혹스러워 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대비가 된다. 이 때만해도 궁예는 난세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돕는 참 미륵으로서의 모습을 보였었고 그 자신이 본인을 미륵이라 칭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은 그를 미륵이라고 칭해주었었다. 이 때만 해도 궁예가 왕건, 견훤보다 잘 나가던 시절임을 보여준다. 오른편은 2기 (33회 이후) 오프닝에서의 궁예. 환하게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면서 상대를 노려보는 듯한 섬뜩한 표정을 짓는다. 후광도 비치지 않으며 얼굴에 음영이 져있다. 왕건은 무표정이고 견훤은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이와 대비가 된다. 북벌에 집착하다가 점점 뜻을 잃고 잔혹한 폭군이자 마구니로 타락하는 궁예를 암시하는 듯 하다. 반면 견훤은 자신의 제국인 후백제를 세우고 이 때만해도 궁예에게 밀렸지만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었고 왕건은 궁예의 밑에서 있으며 점점 타락하는 궁예를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또한 가운데 사진의 안대에서도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초기의 안대는 짚으로 만든 것이고 즉위 직후엔 가죽으로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타락한 후에는 가사와 안대 모두 금박으로 바뀌었다. [2] 반대로 제5공화국에서는 김영철이 타 영화사와의 계약 때문에 전두환 역할을 고사해서 이덕화가 맡게 되었다. [3] 당시 국내의 학교에서 체벌 존치와 폐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나던 과도기였기 때문에 체벌이 이뤄지는 학교에서는 종종 몽둥이를 법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예 교사가 몽둥이에 펜으로 '법봉'이라고 대놓고 써놓는 경우도 있었으니 ' 태조 왕건'의 궁예가 끼친 영향을 알 만하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써놓는 사례도 있었다. [4] 그리고 방송된 지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궁예질이라는 신조어로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 [5] 참고로 김영철은 훗날 대왕 세종 장영실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맡기도 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왕들 역할을 맡았다. [6] 이환경 작가는 인터뷰에서 왕건보다는 궁예 견훤에게 더 애정이 간다고 밝혔다. [7] 물론 초, 중반까지 비중을 보면 궁예도 주연급이긴 했다. [8] 초기에는 공명정대한 리더의 자질을 보였지만, 말년에는 그릇된 정치를 하여 결국 폭군으로 전락한 군주라는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