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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1:48:51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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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1281346311_untitled.jpg
파일:2018_ Lee_Seung_yuop_Basaball_Park.png
前 삼성 라이온즈 1군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Daegu Citizen Baseball Park
<colbgcolor=#074ca1><colcolor=#fff> 약칭 시민[1], 대구[2]
개장일 1948년 4월 20일
위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로 191 ( 고성동3가)
홈 구단 삼성 라이온즈 (1982~2015)
스펙 좌우펜스 99m
좌우중간 115m
중앙펜스 120m
펜스높이 3m
잔디 천연잔디(1948년 ~ 1994년)
애스트로 터프(1995년 ~ 2006년)
필드 터프(2007년 ~)
좌석 규모 13000석
500석 (2017~)[3]
덕아웃 3루(홈) / 1루(원정)

1. 개요2. 특징3. 내부 시설물4. 역사
4.1. 프로 야구 시절(1982~2015)
4.1.1. 열악한 시설4.1.2. 마지막 경기4.1.3.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마지막 기록
4.1.3.1. 정규시즌4.1.3.2. 포스트시즌4.1.3.3. 원정팀별 마지막 경기
4.2. 아마추어 구장으로 리모델링(2017~)
5. 교통편6. 이야깃거리

[clearfix]

1. 개요

파일:시민구장.jpg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동3가에 위치한 종합운동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48년에 개장하여 2024년 기준 76년이 된,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된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 대구구장 혹은 시민야구장으로 불리고, 삼성 라이온즈의 왕조 시절을 함께 하고 삼성 팬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주었던 야구장이며, 2017년 대구시가 이 구장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국민타자로 거듭난 이승엽을 기리기 위하여 이승엽 야구장으로 이름을 변경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넓이는 13,843㎡(4,187평). 좌측펜스 99m , 중앙펜스 120m, 우측펜스 99m, 내야 그물망 높이 5m이며, 좌석규모는 약 1만 석의 야구장. 프로야구 출범해인 1982년부터 1995년까지는 좌우 98m, 중앙 114m였고, 백인천이 감독으로 부임한 1996년 좌우 99m 중앙 120m로 잠시 늘렸으며, 이승엽이 홈런 신기록을 세웠고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이룩한 시대였던 1997년부터 2006년까지는 좌우 95m, 중앙 117m였으나[4] 이승엽이 일본으로 가고 선동열 감독의 부임으로 팀 컬러가 투수 중심으로 바뀌면서 펜스를 뒤로 밀어[5] 현재의 크기가 되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2018년부터 사회인 야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2. 특징

이 구장의 구조적 특징은 홈 플레이트와 백스톱의 거리가 매우 멀다는 것과 북서미북쪽으로[6] 지어진 탓에 오후 시간대 이 경기장을 찾는 원정팀 선수들과 팬들이 직사광선에 의한 테러를 당한다는 점이다.

이 구장의 홈플레이트에서 백스톱까지의 거리는 공식 야구 규칙에 규정된 규격 18m보다 3m 더 긴 21m다.[7] 이 때문에 투수의 와일드 피치나 포수의 패스트볼 등으로 인해 포수 뒤로 흘러가는 공이 나오면 다른 구장에서는 주자가 1베이스씩 진루하지만, 여기서는 2베이스씩 진루하는 경우도 있다. 포수 입장에서는 공이 빠지지 않도록 수비해야 하는 등 신경 쓸 부분이 많은 구장이었던 셈. 야구 해설위원 중에서는 아무래도 삼성 라이온즈 출신인 양준혁 해설위원이 이 부분을 매우 강조했다. 묘하게도 2015년 이 구장의 마지막 프로야구 정규시즌 경기였던 삼성 vs kt 경기에서 삼성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폭투 때 재치를 발휘한 것이다.

또 북서미북쪽으로 경기장이 지어진 탓에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오후 시간대가 되면 햇빛이 정확하게 1루 덕아웃과 관중석을 직격했기 때문에 이 쪽으로 오는 원정팀 선수들과 원정팀 팬들이 햇빛에 대한 불편을 겪었다. 이런 특색으로 인해 삼성은 1984년과 2000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 3루 쪽 덕아웃을 사용했다.[8] 1984 시즌과 2000 시즌에는 1루 덕아웃을 썼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것이 3루 덕아웃을 써서 그렇다"는 점쟁이의 말 때문에 1루로 덕아웃을 옮겼다가 선수들이 불편을 호소해서 다시 3루로 갔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우승에 대한 조급증 때문에 덕아웃 위치를 바꿨던 것은 일부 맞다고 한다. 그런데 우승 조급증을 풀어낸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의 홈 덕아웃은 3루 쪽이었다.

3. 내부 시설물

야구 친구 - '리모델링' 대구 시민 운동장 공개

4. 역사

파일:attachment/1954airforcebaseball.jpg
1954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공군 야구단과 육군 야구단 한국실업야구 개막전 때 모습이다. 관중석 겸용으로 만들어진 펜스가 눈에 띈다.

파일:attachment/namjunbaseball1950.jpg
역시 비슷한 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촬영한 남선전기 야구단의 모습. 슬레이트로 만들어 놓은 임시 벤치가 눈에 띈다.

파일:DaeguCStadium_1948.png
1960년대 시민운동장 항공 촬영 사진

파일:attachment/taegu.jpg
1970년대 사진. 시민운동장 뒤편의 공장은 옛 대한방직 대구공장으로 현재는 스펙트럼시티쇼핑몰( 이마트 칠성점, CGV 대구), 대구은행 제2본점, 침산푸르지오, 대한동아침산무지개아파트, 침산쌍용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간혹 삼성그룹의 모태 기업 중 하나이자, 핵심 계열사인 제일모직 대구공장(현재는 이전)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이 둘은 위치가 다르고 붙어 있지도 않았다. 옛 제일모직 공장은 현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비교적 가까이에 있었을 뿐, 하얀 지붕(대한방직 공장)이 있는 위치에서 한참 우측에 있으므로 위 사진에는 옛 제일모직 공장이 보이지 않는다.

4.1. 프로 야구 시절(1982~2015)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KBO 리그 첫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삼미 슈퍼스타즈 삼성 라이온즈 경기였다. 1982년부터 2015년까지 경기 시작 순간과 경기 종료 순간에 차임벨을 울렸다. 학교 등에서 들을 수 있었던 '도-미-솔-도' 음계의 차임벨이었다. 경기 종료음은 경기 시작음의 역순.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364652_image2_1.jpg
과거의 모습. 왼쪽이 주 경기장, 오른쪽이 야구장이며, 주 경기장 밑에 있는 운동장[10] 삼성 라이온즈 대구 홈 경기에 한하여 무료 주차장으로 개방하여 사용했으며, 경기 종료 1시간 후까지 주차할 수 있었다.[11] 운동장 옆의 다른 흙바닥은 테니스장으로 사용됐으나, 2020년대 들어서면서 철거되었고[12] 그 자리에는 대구시민운동장 다목적체육센터가 들어섰다.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364653_image2_1.jpg
야구장. 사진 2장은 모두 남쪽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2014년 대구 / 리그 타자들 성적.
2013년 대구 / 리그 타자들 성적.

4.1.1. 열악한 시설

아 이 망할 야구장!
2011년 4월 1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정전 사태 당시 강명구가 한 말
야빠들이나 야구인들 사이에서 무등 야구장과 나쁜 쪽으로 자웅을 겨뤘던 야구장으로 악명이 높았다.[13] 아니 같은 팀의 2군 시설인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와도 비교되었던 최악의 야구장이다. 특히나 2010년대 들어서 강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팀 전력과 다른 구장, 특히 이미 신 구장의 삽을 뜬 무등 야구장과 비교되어 야구 인프라 확충 떡밥 기사를 쓸 때마다 항상 단골 손님으로 등장했다. 2010년대에 들어선 후에는 포항 야구장의 완공으로 '제2홈구장보다 시설이 노후화된 제1홈구장'이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14]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노후화다. 1948년에 건설된 유물급 경기장이다. 물론 몇 번이나 증개축하긴 했지만 워낙 낡을 대로 낡은 터라 구장 자체의 안전 상태에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안정성 최하위 등급을 맞고 부랴부랴 H빔으로 보강한 것. 일부 좌석에서는 이 H빔이 관중의 시야를 가렸다. 선수 라커룸도 외벽이 떨어져 나가고 시멘트 가루가 바람에 마구 날리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환경을 보유했었다. 거기에 돌바닥이나 진배없는 인조 잔디 구장이라[15] 허슬 플레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병원으로 직행할 정도였다.[16] 물론 낡은 구장이라도 꾸준히 증축, 리모델링을 해준다면 현대식 구장에 뒤지지 않는 쾌적한 환경이 갖춰질 수도 있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보다도 오래된 펜웨이 파크 한신 고시엔 구장이 그 대표적인 예다.

대구구장보다 연식은 덜 됐지만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도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었는데, 현재 대구구장 다음으로 가장 오래되었던 구장으로서 1960년대에 건립되었고 대구구장보다 3천석이 많은 1만 3천 석의 좌석, 대구구장보다 1m 더 먼 121m의 중앙 펜스를 가지고 있지만 이쪽은 구단 자체의 지속적인 관리와 리모델링을 통해 구장에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대한 현대화시켰던 사례다. 문제는 대구구장이 지어질 당시의 대한민국의 상황은 1909년의 미국이나 1924년의 일본과 비교해 매우 열악했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만큼 사건사고도 상당히 많았다.
대구 야구장보다 안 좋은 1군 야구장은 없습니다.
허구연 해설위원, 2012년 8월 14일 포항 야구장 첫 1군 경기 해설 중. 1분 35초를 참고.
야구 인프라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해설가인 허구연이 삼성을 대차게 깠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낡을 대로 낡은 야구장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삼성의 2홈 포항 야구장은 허구연의 의견이 반영된 야구장이기도 하고... 야구의 인기가 증가하고 삼성 라이온즈가 2011년부터 다시 부흥기를 맞으면서 점차 대구의 야구장 시설 개선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고, 이는 곧 대구에 새 야구장 건설을 요구하는 야구팬들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이후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계속해서 야구장 개선이 미루어졌다가 광주광역시 야구장 신축이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대구에서도 신 야구장 건설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4.1.2. 마지막 경기

파일:2015_good_bye_daegu.citizen.baseballpark.jpg [18]
보고 계십니까? 들리십니까? 당신이 뛰었던 꿈의 구장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34년간 멋진 추억을 남겨둔 대구 시민 야구장,
고맙습니다.
2015년 10월 2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러진 kt wiz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명재 캐스터의 클로징 멘트 #[19]
정규시즌 편성된 경기 중에 마지막 경기는 2015년 9월 9일 kt wiz전이다. 참고로 2015 시즌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우천취소 경기는 kt전 1경기, 두산 베어스전 1경기, NC 다이노스전 1경기, SK 와이번스전 2경기 등이 있으며 SK와는 개막 2연전 미편성 1경기까지 포함해서 3연전을 하게 된다. 9월 2일 잔여일정이 확정되면서 마지막 경기는 2015년 10월 2일 KT전으로 결정되었다. 경기 결과 및 내용은 바로 아래 항목인 원정팀별 마지막 경기 kt wiz에 서술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마지막 정규리그 홈 경기 시구는 박충식 선수협 사무총장, 시타는 양준혁 해설위원, 시포는 이만수 해설위원이 했으며 삼성을 거쳐간 김시진, 우용득, 이선희, 함학수 등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고별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늘상 대구구장을 까기에 바빴던 허구연이 대구구장 고별전의 해설을 맡았다. 중계는 한명재 캐스터.

마지막 경기 다음 날 최훈이 '내 청춘'이라는 만화를 그려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진짜 마지막 경기는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함에 따라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나왔다. 도박 사건으로 삼성이 역스윕을 당하며 2차전이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베이스볼 투나잇의 돌멩이 ' 굿바이 대구시민야구장'도 많은 야구 팬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이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사를 간 이후 삼성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저렇게 된 건 구장을 옮겨서가 당연히 아니고 계속된 전력 유출과 도박 파문으로 인한 선수단 분위기 저해, 오랜 기간 유지된 왕조로 인한 신인 육성 미비, 모기업의 스포츠 분야 지원 축소 등이 주된 이유이다. 라팍으로의 홈 경기장 이전은 그야말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었다. 무엇보다도 라팍 이전 후 삼성 타선은 타자 친화 구장에 걸맞지 않게 거포 육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멸치들만 가득했고 두산 베어스, SSG 랜더스, 키움 히어로즈 등 타격이 강한 팀들에게 먹잇감이 되기에 너무나도 좋은 구장이 되고 말았다.

2021년에는 암흑기를 딛고 정규시즌 144경기를 마치도록 KT와 공동 1위로 마감했고 이후 타이브레이크 경기에서 패하며 정규시즌 2위로 결정되어 라팍의 첫 포스트시즌 경기가 열렸지만, 삼성은 단 1승조차 거두지 못하고 두산에게 업셋당했다.

4.1.3.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마지막 기록

4.1.3.1. 정규시즌
4.1.3.2. 포스트시즌

삼성의 2015 시즌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정되면서 2015년 한국시리즈가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이 되었다.
4.1.3.3. 원정팀별 마지막 경기

4.2. 아마추어 구장으로 리모델링(2017~)

홈 구장으로 쓰던 프로팀이 떠난 후 이 야구장의 거취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고, 2014년 12월에 대구광역시에서 대구시민운동장 종합운동장(주경기장)을 지역 축구 팀인 대구 FC를 위한 축구전용구장으로 개조하며 야구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공원을 건설한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하지만 인천 숭의야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잃었던 사례가 있던 만큼 야구계에서 반대했고,[29] 외야를 철거하고 존치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대구 지역 야구 인프라가 부족한 만큼, 사회인 및 아마야구의 활성화를 위해 야구장 시설은 그대로 존치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야구계에서 꾸준히 제기했다.

이에 대구광역시에서 지역 야구계의 의견을 수렴, 야구장 전면 철거 대신 1, 3루석 좌석과 외야석을 철거하는 등 리모델링을 통해 규모를 축소하고, 사회인 야구 및 지역 유소년 야구 경기장으로 활용된다. 안전등급 E등급을 받은 것이 걸리지만, 리모델링으로 중앙의 지정석 부분만 고치면 되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기사에 따르면 규모는 5,000석 규모로 전체 좌석의 반이 줄어드는 셈이니 그 때가 되면 규모가 꽤 작아질 것으로 보인다.[30] 사업비는 총 33억 5,000만 원.

2017년 6월 2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2018년 초에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됐다. 1루와 3루 내야에는 간이 좌석이 마련됐고 일부 내야석은 불펜으로 재탄생했다. 중앙지정석과 전광판, 조명탑은 그대로 존치됐다. 외야 관중석 자리는 잔디 산책로로 꾸며졌는데 2018년 3월 13일부터 사실상 개방되었고, 3월 17일에 공식 재개장하며 야구장 이름의 유래가 될 뻔한 이승엽을 비롯해 이 야구장에서 청춘을 보낸 이만수, 김시진, 강기웅, 양준혁 등이 개장 행사에 참석했다. 역사는 70년째지만 사실상 새로 지어진 신생 야구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사회인 아마추어 야구 경기장으로 사용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구 북구 갑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정희 前 대구 북구의원이 시민운동장을 전면 개조해 스포츠 마이스 복합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야구장을 철거한 뒤 e-스포츠, 드론 실습장, 증강 현실 체험장 등이 가능한 스포츠 콤플렉스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다만 대구에서 민주당이 당선 되는 일은 없고 후보 자체의 존재감도 없으므로 그러려니 한 수준에 그쳤다. #

5. 교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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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야깃거리


[1] 2009년까지 사용되었다가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와 약칭을 구분하기 위해 2016년부터 다시 사용되고 있다. [2]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되었다가 2016년부터 새로 개장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의 약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삼성 라이온즈가 홈구장으로 사용할 당시에는 중앙지정석 이외에 테이블석이 없던 시절에는 약 13,000석이었다가 테이블석이 계속 생기면서 마지막으로 사용한 2015시즌 기준 10,000석이 채 안됐었다. 이후 리모델링으로 내외야 대부분의 좌석을 철거하며 좌석이 매우 줄어들었다. [4] 홈런은 중앙보다 좌-우측 펜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관계로 광주 무등 야구장보다도 홈런이 많이 나왔다. [5] 정확히 얘기하면 앞쪽에 있던 펜스를 없앴다. 이승엽의 56호 아시아 홈런 신기록 탄생 순간을 보면 이승엽의 홈런 타구는 앞 펜스와 뒤 펜스 사이 공간에 떨어졌다. 당시 홈런 신기록 이벤트를 준비하던 삼성 응원단 관리업체 직원이 이 자리에 서 있다가 홈런볼을 손쉽게 주울 수 있었다. [6] 북서쪽과 북북서쪽의 중간 방향 [7] 사실 사직 야구장의 백네트가 이 경기장보다 더 뒤에 있었다. 설계 당시 야구는 물론 관중석을 이동시켜서 축구, 럭비 등의 종목을 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만들어졌기에 백네트가 뒤에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사직 야구장의 사용 목적이 야구 경기로만 한정되고 2021년과 2022년에는 경기장 시설을 전면 개보수하면서 홈플레이트에서 백네트까지 길이를 18m로 줄였다. [8] 3루를 홈으로 썼던 구장은 이곳과 목동 야구장이 있으며 1980년대에는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숭의야구장 3루 덕아웃을 홈으로 쓴 적이 있다. 2023년 기준으로 3루 덕아웃을 홈팀이 쓰는 곳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은 포항 홈경기나 광주 원정경기를 제외하면 3루 쪽 덕아웃을 사용한다. [9] KBO 리그 단일시즌 2위 기록은 1999년 이승엽이 기록한 54호, 3위는 2003년 심정수 2015년 박병호가 기록한 53호. [10] 사진 상 어두운 흙바닥. 이후 대구 FC가 2019년부터 대구시민운동장을 리모델링한 DGB대구은행파크로 홈구장을 옮긴 뒤에는 잔디를 새로 깔아서 유소년 축구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11] 다만 저 자리를 임시로 개방해서 주차장으로 활용했던 것을 제외하면 경기장 인근에 주차장이 거의 없다시피했기 때문에 이 또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 얼마나 열악한 부대시설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2] 어차피 대구 시민들에게 있어서 테니스의 메카는 두류공원에 있는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이기 때문에 시민운동장에 있는 테니스장을 굳이 남겨둘 필요가 없었다. [13] 무등 야구장은 2014년부터 새로 지어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KIA 타이거즈의 새 홈구장이 되었기 때문에 프로 경기는 더 이상 열리지 않지만, 무등 야구장은 광주광역시의 광역시치고는 부족한 재정과 홈팀 해태 타이거즈가 너무 돈이 없어서 현상 유지를 못한 것일 뿐 1966년에,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1948년에 지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라는 돈이 많은 야구단에 가려져 무등 야구장과 도찐개찐인 상태를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14] KIA 타이거즈의 경우 제2홈구장 월명종합경기장 야구장의 시설도 그리 좋진 못했고,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완공 이후엔 제1홈구장의 시설이 압도적으로 좋아졌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는 지어진 지 오래된 것치곤 시설은 괜찮은 편이고 리모델링도 여러 번 거치면서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보다는 훨씬 낫다. 울산 문수 야구장도 제1홈구장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최근에 지어진 구장인 데다가 증축할 수 있는 부지까지 있어서 나쁘지 않고 발전의 여지도 있다. [15] 2004년에 그라운드를 인조 잔디로 바꾼 무등 야구장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상황이 너무도 똑같았다. 광주처럼 대구도 인조 잔디 밑으로 충격 흡수를 위한 장치를 깔지 않은 채 인조 잔디를 그냥 깔아버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조 잔디는 더 딱딱해졌다. 무등 야구장의 돌바닥 인조 잔디에서 뛰던 홍세완은 무등 야구장의 인조 잔디 때문에 고질적 무릎 부상이 악화돼 조기에 은퇴했는데, 대구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인천고등학교 시절 무릎 인대 부상을 입고 고질적인 무릎 통증을 호소했던 박진만. 박진만은 내야가 흙바닥이던 숭의야구장 수원 야구장을 홈으로 쓰던 시절에는 무릎 통증이 덜했으나 인조 잔디 내야 그라운드에서 뛰는 삼성 이적 후에는 무릎 통증의 빈도가 잦아졌다. 결국 2010년 말 삼성을 떠나기로 한 박진만은 새 팀을 찾는 과정에서 "천연 잔디 그라운드를 홈으로 쓰고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춘 수도권 팀에 가고 싶다"라고 대놓고 얘기할 정도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열악한 시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결국 박진만은 이 조건에 모두 부합하던 고향팀 SK 와이번스로 이적했고 거기서 은퇴했다. [16]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도쿄 돔에서 이진영이 3루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자 삼성 코칭스태프는 '그런 수비를 대구구장에서 했으면 석 달은 병원에 누워있게 되었을 거다'라며 자조적인 멘트를 남겼다. 당시 삼성의 핵심 선수였던 박진만도 '3류 구장에서는 3류 플레이밖에 나올 수 없다'며 동조했다. [17] 당시 오승환은 자기도 불 끄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18] 마지막날 야구장에 온 관객에게 구단에서는 이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 10장을 종이갑에 담아 배포했는데 종이갑에 바로 이 사진이 붙여져 있다. [19] 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 멘트를 살짝 바꿔서 클로징 멘트를 남겼다. [20]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승리팀은 1982년 3월 28일 5:3으로 승리한 삼미 슈퍼스타즈다. [21]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승리투수는 1982년 3월 28일 3실점 완투승을 기록한 삼미 슈퍼스타즈 인호봉이다. [22] 도루를 시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동점 연장10회 2사라 히트 앤드 런 사인이 나와서 일찍 스타트를 걸었고, 폭투로 3루 주자가 홈인하는 끝내기로 경기가 끝났다. 기록 상으로는 '이지영의 도루로 2루 진루, 최민구의 폭투로 홈인'이었다. [23] 캐스터 : 한명재, 해설 : 허구연 [24] 캐스터: 한명재, 해설: 허구연, 이종범 [25] 캐스터 : 한명재, 해설 : 허구연 [26] 그 시즌, 한화는 8월 15일 ~ 8월 16일의 포항 2연전으로 삼성과의 원정경기를 마쳤다. [27] 여담으로 이때 시리즈에서 한화가 삼성을 7년만에 스윕했었다. [28] 한화 이글스가 제일 먼저 대구시민운동장을 떠나게 되었다. [29] 이 때 인천광역시청에서 사회인 야구 시설을 지어 주겠다고 했는데, 만들어준 게 위치도 구린데다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의 악취로 악명높은 송도LNG야구장이다. 거기다 인천시는 2016년 12월에 531억 9,800만 원을 받고 인천도시공사에 매각했으며, 12월 30일부터 3년 간 도시공사로부터 임대를 받았지만 냉열을 활용한 물류센터를 지을 부지로 활용할 수 있어 계약기간이 지나면 철거할 가능성도 있다. 그로 인해 대체 야구장 10곳을 짓기로 했지만, 그 중 2곳을 제외하면 신축도 지지부진한 입장이라 접근성이 좋은 야구장 하나를 잃은 꼴이 됐다. [30] 결국 과거 중앙지정석으로만 쓰던 500석 정도만 남겨둔 채 모조리 다 철거되어 현재 500석 규모로 매우 줄어들었다. [31] 1985년은 부산 구덕 야구장에서,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4년 한국시리즈는 모두 잠실 야구장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32] LG 트윈스의 창단 첫 우승. [33] 두 번 모두 삼성이 4연패로 물러났다. [34] 해태 타이거즈와의 1987년 한국시리즈 4전 전패를 당하면서 상대 팀 홈구장인 무등 야구장에서 해태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이 것이 KIA가 유일하게 무등 야구장에서 확정한 우승이다. [35] 1982년 한국시리즈 동대문야구장이 중립 경기장으로 쓰였고, 1984년 1986년, 1993년, 2001년, 2004년 한국시리즈는 모두 잠실에서 끝났다. [36] 심지어 5차전에 끝나버리는 바람에 상대 팀 홈인 잠실에서 시상식을 했다. 만약 6, 7차전에 끝났으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시상식을 했을 것이다. [37] 총 7경기가 열렸다. vs MBC - 6월 5일~6일, 9월 4일~5일, VS 삼성 - 6월 20일(더블헤더), 9월 11일 [38] 삼미가 대구에서 홈 경기를 치른 것은 홈구장이던 숭의야구장의 리모델링 공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프로 원년에 한정해서는 삼미 말고도 지방팀이 서울에서 홈경기를 열고 수도권 팀이 지방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종종 열렸다. [39] 카카오맵에서 지도상에는 이승엽 야구장이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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