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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노르웨이 왕실 The Royal House of Norway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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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자 | <colbgcolor=#fff,#1f2023> 하랄 1세 하르파그리 |
현 군주 | 하랄 5세 |
군주 직함 | 국왕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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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 국왕인 하랄 5세와 소냐 왕후,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이다. |
노르웨이 왕가의 정식명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이다. 덴마크 왕국의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 칼 왕자가 1905년 호콘 7세로 즉위했기 때문에 실제로 덴마크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분가다.[1]
독일과 북유럽 왕가들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수많은 제후국들간의 정략결혼으로 이렇게 성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만 해도 정식 왕조명은 홀슈타인고토르프[2]로마노프(Гольштейн-Готторп-Романовской)이다.
2. 하랄 5세
노르웨이의 현 국왕은 1991년 즉위한 하랄 5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3. 가족
3.1. 아들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부부.
호콘 왕세자와 결혼한 동갑내기인 '메테마리트 셰셈 호이뷔'라는 여성은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홀어머니 밑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자랐으며 공부에 흥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고등학교를 1년 늦게 졸업했다. 졸업 후 야간대학에 다니다 마약에 빠지게되고, 교환학생으로 떠난 호주의 딸기농장에서 일했으나 암페타민과 코카인 소지혐의로 추방당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당시 유행하던 집단섹스하는 마약파티에 빠져들었고 '지하 세계의 보스'라 불리던 마약밀매조직 보스와 동거하며 1997년에 아들 ' 마리우스 보르 호이뷔'를 낳았다. 링크[3] 마리우스의 친부는 10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난교파티를 계획하다 감옥에 갔고 메테마리트는 미혼모로 오슬로에서 식당 종업원에서 일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워낙 잘 놀기로 유명했던 메테마리트는 마약파티에서 친해진 방송국 직원을 통해 케이블 방송 <데이트 프로그램>에 일반인 참가자로 출연하며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링크 그러다가 한 음악축제에서 호콘 왕세자와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4]
호콘 왕세자는 궁전을 나와 메테마리트와 그녀의 아들 마리우스와 함께 오슬로의 아파트에서 동거했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발표하지만 당연히 그녀의 난잡한 과거는 엄청난 논란이 되었고[5][6] 90%대를 자랑하던 왕실 지지도가 50%로 반토막이 나더니 아예 왕실 폐지 시위까지 일어났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왕이 앞장서서 반대할 만한 사안이지만, 정작 아버지인 하랄 5세는 전국민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왕세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반대하지 않았다. 본인도 선왕 올라프 5세의 반대를 극복하고 평민 출신인 소냐 왕후와 9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 듯.[7] 오히려 9년은 너무 길었다고 할 정도.
물론 왕의 허락과는 달리 국회 승인은 당연히 나지 않았고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주다시피 해서, 결혼하기 며칠 전에 궁여지책으로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기획했다. 메테마리트는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조신하게 차려입고 왕세자와 같이 나와서 언론 앞에서 다소 두리뭉실하게 자기가 과거에 좀 험하게 살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뿐이라며 눈물 쏟아내며 감성에 호소했는데, 웃긴 것은 이게 또 제대로 먹혀서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섰고 기어이 국회 승인을 받아 결혼했다.[8]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 후 3개월간 왕세자비 수업을 받으며 거칠었던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우아한 왕세자비로 변신했다.[9] 남편 호콘 왕세자와의 사이에 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와 아들 스베레 망누스 왕자를 낳았으며 각종 공무행사에 참가하고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노르웨이를 홍보하는 한편, 유엔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로 선정돼 아프리카 주민을 위한 자선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소외 계층을 돕는 등 큰 잡음없이 왕실생활에 적응하는 듯 했다. 이 부분은 2014년 12월 14일에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Surprise Secret에서 다루었다.
결국 제 버릇 개 못 줬는지 개인 비행기에서 자신의 비서를 손찌검하고 욕설한 것이 밝혀졌다. 링크 1 링크 2 노르웨이 왕실은 왕세자비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런 것이라며 사과 성명을 냈으나, 피해자인 비서 힐데 하랄드스타트는 메테마리트의 사과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의 전 남친이 과거에 찍은 섹스 테이프를 유출하겠다고 하거나 그녀의 가족들이 결혼 전 사생활을 언론에 폭로하며 구설에 올랐다. 참고로 그녀의 아버지는 35살 연하의 스트리퍼와 재혼했으나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이혼했다. 링크 그리고 2012년 궁전 직원이자 친구인 동성애자 부부가 인도인 대리모를 통해 쌍둥이를 출산하자 비자가 만료된 그들을 대신해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직접 인도에 가서 비밀리에 그들의 아이를 노르웨이로 데리고 왔다. 문제는 노르웨이에서는 대리모가 불법이기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콘 왕세자를 눈이 삔 남자로 취급한다. 또한 2010년 이후로 호콘 왕세자 부부는 이혼설에 휩싸이고 있는데, 부부관계는 사실상 끝났지만 어쩔 수 없이 체면[10]상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11]
2018년 10월 메테마리트 왕세자비가 성명을 통해 희귀한 형태의 만성 폐질환 섬유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
한편 메테마리트 왕세자비가 결혼 전에 낳았던 아들 마리우스 호이뷔는 당연히 왕위 계승권은 없지만 왕세자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공식 행사에도 같이 참석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의붓아버지인 호콘 왕세자를 그냥 '호콘'이라 부르고 친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자주 만난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에도 호콘 왕세자가 직접 데려다 주고 친아빠도 만나서 웃고 얘기할 정도로 잘해주며 실제로 두 사람의 사이는 좋다. 마리우스의 친아버지는 출소 후 전직 모델과 결혼했는데, 그 남자의 결혼식이 왕실을 주로 다루는 잡지에 마치 스타처럼 생중계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전자전인지 마리우스 호이뷔는 여성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3.2. 딸 메르타 루이세 공주
메르타 루이세 공주.
오른쪽의 남자는 전 남편 아리 미카엘 벤(1972~2019).
이렇듯 메테마리트 왕태자비의 행실이 계속 구설수에 오르다 보니 차라리 호콘 왕세자의 누나인 메르타 루이세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 쪽도 이 쪽대로 문제가 있어서, 자신에게 죽은 자가 보이고 동물 및 혼령과 대화가 가능하며 천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다며 2007년에 '천사 학교'까지 세웠다. 링크[12] 노르웨이 언론들은 진지하게 공주 지위를 박탈시키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크게 비난했다. 같은 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단으로 왕실의 사진을 도용한 서적을 판매하면서 크게 물의를 일으켜 역사상 처음으로 왕족이 법원에 출두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전 남편인 아리 벤 역시 왕실의 일원으로 국내의 정치나 정당에 대해 그 어떤 발언도 해서는 안 되는 위치임에도 2006년에 자신은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해 크게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 메르타 루이세 공주 부부에 대한 지지도도 매우 낮았으며, 호콘 왕세자 부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기괴한 행동을 하고 다니다 보니 그냥 예정대로 호콘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메르타 루이세 공주와 아리 벤도 평탄치 않은 과정을 걸쳐서 결혼했다. 공주는 물리치료 수업을 받다가 담당 교수의 소개로 그 교수의 아들인 아리 벤과 만나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도 부군감인 아리 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리 벤이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마약 합법화를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는 풍문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왕실의 휴가 사진을 몇십 장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바람에 발칵 뒤집혔다. 왕실 경호 문제도 있고 사생활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난리가 났으며 평소에도 그렇게 SNS를 애용한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메테마리트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라서 반대 여론은 좀 있었을지언정 결혼식은 순조롭게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 14년 만인 2016년에 별거를 발표했으며, 2017년에 정식으로 이혼함으로서 근대 노르웨이 왕실 최초의 이혼한 왕족이 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 아리 벤의 외도설이 꾸준히 있었던지라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슬하의 세 딸들은 전처럼 계속 공동으로 양육하기로 결정하는 등 원만하게 이혼했다.
여담으로 아리 벤은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 중 한 명으로 밝혀진 바 있다. 2007년 노벨평화상 뒤풀이 파티에서 둘이 담소를 나누다 갑자기 케빈 스페이시가 담배 피우러 나가자며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아리 벤의 고환을 만졌다고. 아리 벤은 너무 당황해서 얼떨결에 '나중에'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는데 다행히 그 이상의 행위는 없었던 모양. 케빈 스페이시는 20대 초반 내지 그 이하의 어린 연령대에 선이 가는 미모의 남자들을 밝히는 것으로 워낙 유명한데, 메르타 루이세와의 결혼식 사진이나 신혼 초 시절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수염을 기르기 전의 아리 벤은 곱상한 미소년이었다.[13][14] 아리 벤 역시 그 즈음엔 자기가 수염도 없고 비교적 어린 청년처럼 보였을 때라 스페이시의 타깃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메르타 루이세와 이혼한 이후 별다른 논란없이 살던 아리 벤은 이혼한지 2년 여만인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자살했다.
전 남편의 사망 이후 메르타 루이세는 2019년부터 미국인인 듀렉 베렛(Durek Verrett)이라는 인물과 교제 중이다. 듀렉 베렛은 아이티, 노르웨이, 인도 혈통이며 전직 배우 겸 모델이다. 그런데 듀렉 베렛도 메르타 루이세와 아리 벤 못지않게 정신 빠진 양반이었는데 자신을 샤먼이자 렙틸리언이라고 자칭하며 대체의학을 옹호하고 항암 치료를 사기로 규정하는 등, 만만치 않은 광기를 보여 준다.
4. 현황
여하튼 호콘 왕세자나 메르타 공주나 여러모로 문제가 되었던 사람들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면서 노르웨이 왕실은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많이 망가졌다. 그 불똥은 남매의 부모인 하랄 5세과 소냐 왕비에게까지 튀었다.현재 유럽의 내로라하는 왕실의 왕세자비/왕후들이 과거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개차반 이력을 가지고도, 한 나라의 왕세자비/왕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메테마리트의 공이 지대하다 못해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해도 모자랄 정도다. 유명해서 늘 뒷담화 대상이 되는 캐서린 미들턴과 메리 도날드슨은 왕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조건이 좋다고 할 법한 중산층 출신 집안에[15] 평이하고 무난한 성장배경과 과거를 가졌고,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는 아버지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정권 하의 고위 각료로 재직한 문제 많은 집안 출신이지만 본인의 과거와 처신에는 문제가 없었고, 메건 마클은 왕자비가 된 후 잡음이 좀 있고 그다지 좋지 못한 성장환경이었긴 해도 결혼 전이나 후나 심한 논란이 될 일을 한 적은 없으며[16] 그녀의 전남편 트레버 엥겔슨도 할리우드에서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사람이며 딱히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요한 프리소 왕자와 결혼한 마벨 비서 스밋은 90년대 유럽에서 악명을 떨쳤던 마약왕 클라스 브뢰인스마와 사귀었지만, 어쨌든 마약 복용을 비롯한 범법 행위는 하지 않았고 미혼모로 아이를 낳지도 않았다.[17] 괜히 메테마리트가 넘사벽 취급받는게 아니다. 전직 누드 모델 출신인 소피아 헬크비스트도 메테마리트급으로 난잡한 과거때문에 논란이 많지만 누드모델 시절의 행적이 좀 난잡하긴 해도, 메테마리트처럼 마약을 소지하다 외국에서 추방당한 범죄 이력도 없고 범죄자의 애를 낳고 동거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소피아는 결혼 이후로는 오히려 공무에 열심히 임하며, 2021년 기준으로 큰 논란 없이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다.
왕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정치에 파워가 있다기보다는 외국 귀빈 대접, 해외순방, 봉사활동 이외에는 별 할 일도 없는, 국민들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위한 상징적인 존재다 보니 전세계 어딜 가나 아직도 왕실을 유지하고 있는 30여 개 국가에서는 영웅담이나 선행보다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재 왕위 계승 서열 2위, 즉 왕세손의 자리는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이다. 호콘 왕세자가 태어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르웨이는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 서열 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메르타 루이세 공주는 1990년 이전에는 왕위 계승권조차 없었지만, 1990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첫째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계승권이 주어지는 것이 법적으로 확립되었다. 단 메르타 루이세 공주는 법이 개정되기 전에 태어난 1971년생이라서 왕위 계승권은 가지되 순위는 호콘 다음인 2위가 되었다. 조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4위로 밀려나갔으며, 그녀의 세 딸들도 계승권이 있다. 2004년생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는 법이 개정된 1990년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첫째인 만큼 우선권을 가진다. [18]
오슬로에 있는 왕궁에 가까이 가보면 벽에 무슨 초등학교 건물도 아닌데 별 장식도 없이 노란색 무광 파스텔 톤으로 페인트 칠이 되어있다. 비교적 깨끗하긴 하지만 왕궁 뒤 연못에는 커다란 건축용 PVC 파이프 자재가 물에 나뒹굴질 않나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다. 예로부터 노르웨이 왕실은 영국 왕실과 친분이 있어서 오슬로 시청에 가면 그런 두 왕실간의 교류의 역사를 표현한 그림이나 휘장도 구경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의 왕궁은 으리으리한 영국 왕궁의 모습과는 얼핏 외관상으로 봐도 차이가 있다. 왕궁도 검소함의 끝이다. 이는 본래 노르웨이가 왕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독립하려고 했던 흔적이 남은 것이다. 독립 당시에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노르웨이의 국부인 프리드쇼프 난센[19]이 공화정으로의 독립을 적극 지지했으나, 막상 신생 공화정권의 초대 대통령으로 난센 본인이 추대되자 그런 큰 지위를 맡을 수는 없다며 거부한 탓에, 덴마크 왕실의 제안으로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다.[20] 이때 군주제를 거부하던 공화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해, 군주에게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아무 권한도 주지않는 체제로 가기로 한 것이다.[21]
2022년, 노르웨이 16-20세 청소년의 9%는 공화국을 원한다고 한다 (오슬로 시에서는 7%). 현 국체 유지파는 76%. #
[1]
때문에 1953년까지는 노르웨이 왕족들도 덴마크의 왕위 계승 자격을 갖고 있었으나, 1953년의 헌법 개정으로
크리스티안 10세의 후손에게만 계승권을 부여하게 되면서 노르웨이 왕족들은 덴마크의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되었다.
[2]
러시아 제국 황제
표트르 3세의 아버지가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1700년
4월 30일 ~ 1739년
6월 11일)이기 때문.
[3]
사실 메테마리트는 마리우스를 낳기 전에도 15살 연상의 남자랑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그 남자의 친구였던 '지하 세계의 보스'라 불리던 마약밀매조직 보스와 바람 펴서 마리우스를 낳은 것...
[4]
한 인터뷰에서 메테마리트의 어느 점에 반했냐는 질문에
호콘은 그녀의 카리스마에 반했다고 대답했다.
[5]
다만
노르웨이가 타국에 비해 2~30대 여성들 중에
미혼모의 비율이 매우 높은 환경인 탓에 '미혼모의 나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라서 메테마리트가 미혼모라는 점보다는, 마약 복용 및 난잡한 과거 때문에 더 문제가 된 것이다. 아무리 개방적이고 동거가 결혼보다 많은 노르웨이라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왕세자가 왕궁을 내팽겨치면서까지 이렇게 지저분한 과거가 있는 여자와 동거하겠답시고 나가는 일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6]
노르웨이는 메테마리트가 결혼할 당시인 2001년에도 50% 이상의 아이들이 미혼모한테서 태어날 정도. 다만 여기서 미혼모라고 함은 결혼만 안 했다 뿐 사실상 혼인과도 같은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소리이다. 여러 남자와 관계해 애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조차 못하거나, 10대 때 무책임하게 가진 아이이거나, 메테마리트의 케이스처럼 덜떨어진 남자와 대책없이 아이를 낳은 미혼모의 경우는 아무리 북유럽이라고 해도 당연히 곱게 봐 주지 않는다.
[7]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왕실에서 평민과의 결혼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요즘이야 평민과의 결혼이 왕실의 인식을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어서, 다른 군주제 국가들의 왕실도 평민과의 혼인 비율을 높이는 추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메테마리트 하나 때문에 대부분의 평민 왕실 신랑/신부들이 과거 이력이 개차반인 건 기본이요, 대다수가
왕실과의 혼연을 통해 인생 역전을 노리는 경우여서 결혼 후에는 명품에 돈을 탕진하거나 성품에 문제가 드러나면서 평민 출신 왕실 혼인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많이 생겼다. 이러한 논란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자유로운 인물은
스웨덴의
빅토리아 왕세녀의 남편인 다니엘 공 정도. 오히려 다니엘 공은 이런 망나니 평민 출신들 때문에 생긴 선입견의 피해자로, 과거 행적도 평소 행실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혼인 전까지는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판을 받았다. 하지만 결혼 이후로는 부부 관계가 좋고, 미래의 여왕의 부군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고 있어서 부군계의 끝판왕
앨버트 공을 잇는 인물이라는 평도 있을 정도.
[8]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메테마리트는 어두운 과거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청산한 후 새 삶을 사는 본보기인 양 미화된 면이 많은데, 사실은 그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뒷 얘기가 있다. 둘의 약혼이 발표되고 난 후, 메테마리트의 전 남친이 그녀가 마약을 복용하고
섹스하는 장면을 찍은 섹스 테이프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자 왕실에서는 그 섹스 테이프를 사려고 그녀의 전 남친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를 못 봤다. 그 전 남친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날, 즉 왕후가 되는 날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9]
메테마리트 왕세자비는 주로 소녀스러운 패션을 즐기는데, 문제는 키가 무려 182cm로 크고 외모도 다소 강하게 생겨 안 어울린다.
[10]
메테마리트와 연애하던 시절의
호콘은 스스로가 가난한 미혼모인 메테마리트를 구해 주는 백마 탄 왕자님노릇에 심취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고, 실제로 이런 이미지가 있다. 이러니 이제 와서 이혼한다고 하면 그의 이런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
[11]
최근 왕세자 부부가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파파라치 사진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며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려고 애쓰는 메테마리트와는 달리 호콘은 전혀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12]
등록비도 무진장 비싸다. 6개월 비용이 12,000 노르웨이 크로네(한화로 약 230만원)이며 총 3년을 수강해야 수료된다.
[13]
사실 결혼에 골인한 것도 외모가 메르타 루이세 공주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메르타 루이세가 남동생
호콘 왕세자의 18세 생일에 참석한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왕세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짤도 있다.
# 이 짤 하나로 메르타 루이세와 프레데리크 왕세자의 결혼이 잠깐 거론된 바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고 메르타 루이세는 아리 벤과 프레데리크 왕세자는
메리 도날드슨과 결혼했다. 프레데리크 왕세자와 메르타 루이세 공주 세대의 왕족들은 자국인 또는 외국인 평민 내지는 귀족과의 연애 및 결혼을 선호하는 추세이며, 왕족간의 결혼이 더이상 성사될 수가 없는 이유는 아무리 연애 결혼이어도 국민들 눈엔
정략결혼이라며 부정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14]
18세 미만의 동아시아 미성년 소년 연쇄 성추행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15]
캐서린 미들턴의 부모는 영국 항공 승무원 출신의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며 메리 도날드슨의 부모는 대학 교수와 대학 교직원 출신이다.
[16]
다만 마클의 경우 왕실 이탈 전후의 행보로 인하여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다.
[17]
게다가 요한 프리소 왕자는 마벨과의 결혼으로 인해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고 그와 마벨의 자녀들도 계승권이 없다.
[18]
오빠가 하나 있긴 한데 어머니가 미혼모로 낳아서 데려온 아들이라 왕위 계승권은 없다.
[19]
북극 탐험에 있어서 혁혁한 공을 세워서, 뒷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로알 아문센에게 큰 영향을 준 그 탐험가 난센이다.
[20]
물론 이게 왕국으로 독립하게 된 유일한 계기는 아니고, 국민 대다수가 공화정보다는 왕정을 선호한 탓도 있었다. 다만 공화주의자의 세력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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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르웨이는 총리 임명장도 국왕이 아닌 국회의장 명의로 나오고, 왕은 허울 뿐인
귀족 작위만 내리는 권한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