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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에서는 현재 《 프리퀀시》, 《 동감》등 여러 작품들과의 유사성이 지적되었으나 해당 작품들은 플롯 자체까지 표절당했다는 의혹을 받는 케이스는 아니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는 플롯의 유사성까지 지적되어 가장 논란이 되고있는 《 시월애》와의 유사성에 대해서 다룬다.2. 상세
표절 논란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너의 이름은.》의 개봉과 동시에 2ch 스레드에서 《시월애》표절 의혹을 받았고 당장 구글에 'イルマーレ 君の名は'라고 검색해 보아도 일본 웹사이트 #, #, # 쪽에서 제법 많이 표절 논란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영어권 사이트에서도 다방면으로 두 작품간의 유사성이 언급되고 있다. #, #[1]
한국에서 표절로 소송을 진행하거나 하지 않았으므로 점점 잊혀져 현재는 표절 논란보다는 《너의 이름은.》과 함께 보면 좋은 영화 정도로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과 함께 추천되고 있는 정도다. #, #
'너의 이름은 공식 비주얼 가이드북'에서는 당연히 시월애에대한 언급은 없으며 너의 이름은.에 영향을 줬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작품들은 오시미 슈조의 나는 마리 안에, 다카하시 루미코의 란마 1/2, 헤이안 시대의 도리카에바야 모노가타리[2], 그렉 이건의 단편소설 '대여금고[3]',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따로 언급한것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있다.
2.1. 유사점
남녀가 서로 시간을 뛰어넘어 소통한다. | |
시월애 | 2년의 시간차가 있는 남녀. 소통 수단: 편지 |
너의 이름은. | 3년의 시간차가 있는 남녀. 소통 수단: 몸 바꾸기[4] |
과거에 있는 사람이 미래에 있는 사람을 찾아감 | |
시월애 | 과거에 있는 남자가 먼저 전철에 있는 여자를 찾아가지만 그 당시의 여자는 남자를 모르는 상태 |
너의 이름은. | 과거에 있는 여자가 먼저 전철에 있는 남자를 찾아가지만 그 당시의 남자는 여자를 모르는 상태 |
서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이 서로 좋아하게 됨 | |
시월애 | 미래에 있는 여자는 과거 연인을 잊지 못하고 있었으나 과거의 남자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남자를 사랑하게 됨 |
너의 이름은. | 미래에 있는 남자는 아르바이트 식당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으나 점차 과거의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음 |
미래의 사람이 과거의 사람을 찾아갔으나 과거의 사람은 사고로 이미 죽은 상태 | |
시월애 | 미래의 여자가 과거의 남자를 찾아갔으나, 남자는 이미 과거 교통사고로 죽은 상태 |
너의 이름은. | 미래의 남자가 과거의 여자를 찾아갔으나, 여자는 이미 과거 혜성충돌로 인한 재난으로 죽은 상태 |
미래의 사람이 과거의 사람에게 정보를 전해 사망을 피함 | |
시월애 | 미래의 여자는 편지를 보내 과거의 남자가 사고 당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그 곳에 가지 못하게 하려 함 |
너의 이름은. | 미래의 남자는 과거의 여자를 산에서 직접 만나(일시적으로 두 시간이 이어져 물리적으로 만나는게 가능해짐) 여자에게 혜성 충돌이 닥친다는 사실을 말해줌 |
사망을 피한 과거의 사람이 미래의 사람과 재회함 | |
시월애 | 과거의 남자는 목숨을 건지고, 미래에서 여자와 재회함 |
너의 이름은. | 과거의 여자는 목숨을 건지지만 기억을 잃고, 미래에서 남자와 재회함 |
2.2. 차이점
하지만 일단 두 작품의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 차이점은 《시월애》는 편지를 주고받는 식이지만 《너의 이름은.》은 서로 몸이 바뀌는 식이다. ' 남녀가 서로 몸이 바뀐다는 것' 역시 《너의 이름은.》의 핵심 소재중 하나이며, 스토리 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지만 《시월애》에서는 그런 설정이 없다.《시월애》의 주인공들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집에 살지만,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은 사는 지역이 도시/시골로 크게 다르다. 때문에 사는 지역이 다른 도시 남자와 시골 여자가 서로 몸이 바뀌면서 평소의 삶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역시 《시월애》와 다른 점이다.
또한 둘 다 과거의 인물이 사고로 죽는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시월애》에서는 교통사고라는 개인의 비극에 그치는 반면 《너의 이름은.》에서는 사망의 원인이 혜성의 낙하라는 지역 단위의 대규모 재해이며, 재난물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개인만 피하면 그만인 재난인 교통사고와, 개인만 피한다고 끝이 아닌 재난인 혜성 낙하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전개를 보인다.
또한 '미래의 사람이 과거의 사람의 죽음을 바꾸려고 하는' 전개의 과정 역시 상당히 다르다. 《시월애》는 미래의 여자가 과거의 남자에게 편지를 보내 곧 벌어질 사고를 직접 알려주고 남자가 자신의 죽음의 운명을 피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의 경우 2가지 부분이 이와 다르다.
1. 과거의 사람이 자신에게 닥칠 비극을 알게된 계기 - 《시월애》에서는 과거의 사람이 미래 사람이 보낸 편지로 아직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사고를 피하지만, 《너의 이름은.》의 경우 과거의 사람은 이미 사고를 당해 죽었지만, 몸 바꾸기를 통해 영혼만 미래에 있는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폐허가 된 자신의 마을을 보고 자신이 사고를 겪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미래의 사람이 알려줘서 알게된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기억해낸 것.
2. 죽음의 운명을 바꾸는 과정 - 《시월애》의 경우 남자가 자신에게 닥칠 비극을 알게되고 단지 그 장소에 가지 않는 것으로 해결되지만, 《너의 이름은.》의 핵심 스토리 라인인 '혜성 충돌'은 개인이 피한다고 끝인 비극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의 사람 한명만 구하는 게 아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 주민 전체를 대피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도 작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시월애》에는 없는 스토리라인이다. 또한 《너의 이름은.》의 경우 미래의 남자가 과거의 여자 몸 속에 직접 들어가서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식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결말 부분에서 재회하는 방식 역시 다르다. 《시월애》는 두 사람 모두 기억을 잃거나 하지 않고 바로 약속한 대로 만나지만[스포일러], 《너의 이름은.》은 작중에 일어난 모든 일이 꿈속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사건을 해결한 이후의 두 사람이 기억을 잃어서 그저 '무언가를 찾고있다'라는 것만 희미하게 기억한 채 7년 이상[6]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하게 재회하는 식이다.
2.3. 클리셰의 차용인가? 표절인가?
시간을 잇는 매개체를 통한 소통 문서에서도 나와있지만 이미 시간을 초월한 의사소통이라는 소재는 예전부터 줄곧 쓰였던 클리셰중 하나이며[7] 시간대가 다른 두 사람이 시간을 초월한 특정한 매개체를 통해 연결됨 → 미래 사람이 과거 사람에게 곧 닥칠 불행(죽음,사고 등)을 알게됨 → 힘을 합쳐 그걸 막으려고 애씀 이라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 작품들은 상당히 많다.해당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지금까지 나온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 채리티가 남긴 말(1967년)[8]
- 프리퀀시(2000년 4월)
- 동감(2000년 5월)[9]
- 시월애(2000년 9월)
- 과거로부터 온 일기(2004년)
-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년)
- 미래를 걷는 소녀 (2009)
- 멈춰진 시간 속에서[10](2014년)
- Man In The Window(2015년)
- 너의 이름은.(2016년)
특히 채리티가 남긴 말(원작 소설은 1967년에 나왔으며 영상화는 1985년)의 경우는 이런 스토리이다.
-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전혀 모르던 두 남녀가 서로 소통할수 있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점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 그러던 중 과거의 인물이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 미래의 인물은 과거의 사건을 조사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과거의 인물에게 알려줌으로써 과거의 인물이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 마지막에 서로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즉, 타임슬립이 가능하고 과거의 이벤트를 수정하는 멜로 라는 장르를《시월애》가 개척한것은 아니다. 이것만 놓고보면 소재와 플롯의 유사성에 대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사실 현대의 대부분의 창작물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에 이미 나온 이야기, 소재들의 조합일 수밖에 없는데, 웬만한 소재와 이야기들은 수십년 전에 이미 나올대로 나온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문화권을 초월해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대의 환경 속에서, 무슨 독방 같은데서 외부와 교류를 단절한 채 홀로 창작을 하는 게 아닌 한 선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창작물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존재할 수 없다. '완전한 창작은 없다'거나, '자기가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남들도 이미 예전에 생각해봤던 것이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현대의 창작물에 있어 중요한 것은 비슷한 소재, 플룻이라도 어떻게 차별화시키고 조화롭게 엮어내는가이다.
사실 이미 대부분의 스토리가 정형화되어 구축되어 있는 현대의 창작 환경에서 이렇게 유사한 플롯들을 지닌 작품들이 다수 나오게 되는 것은 현대 창작물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상술했듯이 이미 나올 만한 스토리나 소재는 한참 전에 다 나온 지 오래이기 때문. 하렘물을 예시로 들자면, 최근 작품들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요소가 조선시대 소설인 《 구운몽》에서 이미 다 확립되어 있었다. 결국 표절이냐 아니냐의 요건은 그런 익히 알려진 클리셰로 부터 얼마만큼 차별화를 하였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 플롯도 비슷하고 세부 디테일 사항까지도 유사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표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상술한 해당 작품들 모두 세부적인 소재 및 전개('과거 사람이 죽게되는 사건', '과거 사람과 미래 사람이 소통하는 수단', '과거 사람과 미래 사람과의 관계', '미래 사람이 그걸 해결해가는 과정' 등)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는 딴판이라 봐도 될 정도로 크게 다르다. 즉 이미 《시월애》 이전에도 비슷한 플롯이 있었고, 이후로도 비슷한 플롯의 작품은 꼭 《너의 이름은.》이 아니더라도 몇몇 있었지만, 이 중에서 어느 작품도 세부 사항까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클리셰라는 것 자체가 '틀에 박힌 것'이라는 의미에서 보이듯이, 비슷한 플롯을 차용했으면 큰 전개는 그나물에 그 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 사람이 시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과거 사람의 죽음을 구하려 함'이라는 플롯에 전반적으로 해당하는 클리셰를 사용하면 해당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스토리상의 오리지널리티의 범위가 애초부터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
실제로 해당 플롯을 차용한 상기에 나열된 작품들은 대부분 '과거 사람과 미래 사람의 관계, 과거 사람이 죽게된 계기, 미래 사람이 과거 사람을 구하게 되는 과정' 등 세부적인 요소만 다를 뿐 전체적으로는 플롯적인 면에서 보면 그게 그거인 비슷한 스토리들뿐이다.
2.4. 독창성의 여부
상술하였듯이 《너의 이름은.》은 《프리퀀시》, 《시월애》 등과 차별화되는 점도 없지 않다.대표적으로 몸 바꾸기라는 요소를 들 수 있으며, 이는 스토리 라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소재로 《시월애》에서 사용되지 않는 소재이다. 또한 혜성을 이용해 개인 단위의 사고가 아닌 재난물의 요소를 차용했으며, 이는 작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를 전부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개로 나타난다.
하지만 몸 바꾸기 역시 1979년에 나온 야마나카 히로시의 동화 《내가 그녀석이고 그 녀석이 나이고》(おれがあいつであいつがおれで)를 시작으로 수많은 창작물에서 상당히 많이 쓰여온 소재라 일일이 표절 여부를 따지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하게 쓰이고 설정이며, 작중 남녀 주인공들의 포지션인 평범한 도시 남자와 전통 문화를 간직한 시골의 여자라는 소재 역시 상당히 흔한 설정이다. 물론 재난물 역시도 앞서 말했던 소재들과 같이 소재 자체로만 놓고 보면 흔해빠진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너의 이름은.》 스토리 전개의 핵심 소재인 시간을 잇는 매개체를 통한 소통, 몸 바꾸기, 재난 등은 이미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작품(시간 이어짐 - 1967년, 몸 바뀜 - 1979년)을 시작으로 수많은 창작물에서 우려먹어진 사골급 소재들을 차용한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소재들은 딱히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재의 개별적인 면이 아니라 조합적인 면에서 보면 약간 다르다. 《너의 이름은.》을 구상하는, '시간을 잇는 매개체를 통한 소통', '미래 사람이 과거 사람을 구함', '몸 바꾸기', 재난물 등의 소재들은 하나하나만 각각 놓고보자면 흔한 클리셰지만 '이런 소재를 모두 차용한 작품의 선례가 있었는가'를 따지면 그러한 작품은 매우 드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제작진들이 앞서 말한 작품들과는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해당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SF미스터리 비쥬얼 노벨 게임 Remember11이 존재한다. 2017년 신년 게임 개발자 인터뷰에서 해당 게임의 제작자가 2016년에 가장 인상깊은 장르매체로 너의 이름은을 선정하며 자신도 과거작에서 같은 소재와 연출을 사용했었는데 너의 이름은 쪽이 너무 잘 만들어졌다고 억울해한다. Remember11의 경우 어른의 사정으로 해답편=진정한 후반부가 누락된 채 발매되었고, 그로 인해 후반부까지 명작이던 작품이 에필로그 이후 괴작이 되어버리면서 많은 논란과 게임의 진상에 대한 고찰들을 만들어냈다.
너의 이름은.의 시놉시스 | 시월애의 시놉시스 |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천년 만에 다가오는 혜성
기적이 시작된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다 낯선 가족, 낯선 친구들, 낯선 풍경들... 반복되는 꿈과 흘러가는 시간 속, 마침내 깨닫는다 우리, 서로 뒤바뀐 거야? 절대 만날 리 없는 두 사람 반드시 만나야 하는 운명이 되다
서로에게 남긴 메모를 확인하며
점점 친구가 되어가는 ‘타키’와 ‘미츠하’ 언제부턴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자 자신들이 특별하게 이어져있었음을 깨달은 ‘타키’는 ‘미츠하’를 만나러 가는데...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너의 이름은? |
1999년에 사는 은주(전지현 분)는 자신이 살던 '일마레'라는 집을 떠나면서 우편함에 자신 앞으로 오는 편지를 바뀐 주소로 보내달라는 부탁 편지를 남긴다. 하지만 편지는 우편함을 통해 1997년에 사는 성현(이정재 분)에게로 간다. 은주와 성현은 이 우편함을 통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은주는 성현에게 부탁하여 과거에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도 하고 성현은 은주에게 부탁하여 미래에 있을 자신이 읽어보고 싶은 자료를 얻기도 한다. 서로 다른 시간이지만 같은 곳을 걷기도 하고 성현은 은주를 위해 와인을 맡겨놓고 은주는 과거에 성현이 맡겨놓은 와인을 찾기도 한다. 이렇듯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지내던 차에 은주는 성현에게 과거에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장소로 가서 둘의 이별을 막아달라고 부탁하는데... |
또한 《너의 이름은.》의 홍보는 《시월애》 등의 메인 플롯인 '시간을 잇는 매개체를 통한 소통'와 '과거의 인물과 미래의 인물의 사랑'이 아닌 '몸 바꾸기' 부분을 메인으로 이루어져 왔다. 공식 포스터, 예고편 및 시놉시스등 어디에서도 두 사람이 다른 시간대의 인물이라고 밝혀져있지 않다. 작중에서 같은 시간대에 몸이 바뀌는 줄 알았던 둘에게 3년의 시간차가 있었고 과거의 인물이 이미 사망했다는 것은 극의 중반부에서 밝혀지는 중대한 스포일러중 하나이다. 이는 시놉시스부터 '과거의 인물과 미래의 인물의 교류'라는 시간여행적 요소를 전제하고 진행되는 《시월애》와는 다른 점이다. 같은 소재이더라도 처음부터 밝혀지는 요소인지, 아니면 반전적으로 밝혀지는 요소인지가 다른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의 '몸 바꾸기' 부분을 메인으로 홍보된 《너의 이름은.》에서, 이러한 판타지적인 이상현상의 원인으로 생각되었던 아름다운 혜성이 사실 재난의 원인이고 과거의 인물의 사망 원인이 되었다는 설정은 나름대로 독창적인 면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작중에서 언급되는 무스비를 비롯한 일본 신화에 대한 소재 등 《너의 이름은.》만이 지니고 있는 독창성 역시 충분하므로, 독창적인 면이 아예 없다고는 보기 어렵다.
2.5. 유사성의 고의성 여부
창작물은 소위 말하는 시대정신의 산물인데다, 사람이 생각하는 게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마련인지라 서로 참고하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게 있다. A나라에 사는 B와 C나라에 사는 D는 서로 만난 적도, 서로의 작품을 교류한 적도 없지만, B와 D는 유사한 시기에 유사한 내용의 작품을 내놓는 사례가 적잖이 발견된다.[11]현실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당장 위에서 비슷한 《 시월애》와 비슷한 플롯의 예시로 든 《 프리퀀시》는 《시월애》와 같은 해에 고작 5개월의 차이[12]를 두고 개봉했다. 더 재미있는 점은 《프리퀀시》에서 쓰인 핵심 소재인 '과거의 인물과 미래의 인물이 무선으로 대화한다'는 소재는 한국 영화 《 동감》에도 쓰인 바 있는데, 두 영화의 개봉일 차이는 고작 1개월[13]에 불과하다. 국가간의 문화 교류가 현재보다 훨씬 적었던 2000년대 당시의 상황과, 제작에 몇 개월-몇 년 정도의 긴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인 영화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서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세 창작물이 서로 우연히 비슷한 소재를 쓰게 됐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는 현대에도 자주 벌어지는 일들 중 하나로, 근래의 예를 들자면 《 오버워치》와 《 팔라딘스》 의 예를 들 수 있다. 재미있게도 또한 두 게임은 모두 《 팀 포트리스 2》의 기본적인 시스템 요소를 차용한 작품이며,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발매 시기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서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두 창작물이 비슷하게 나온 경우인 셈.
또다른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아이디어를 배출한 케이스'로 우는 천사와 SCP-173도 있다. 두개 모두 '누군가 보고있을때는 움직일 수 없지만 아무도 보고있지 않을때만 움직일 수 있는 괴물, 사람의 눈이 깜박여지는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사람을 공격하기에 눈을 최대한 깜박이지 말아야한다'라는 설정이 그야말로 판박이다. SCP-173는 2007년 봄에 4chan /x/ 게시판에 처음 투고되었는데 이는 우는 천사가 처음 등장한 닥터후 Blink 에피소드 방영일인 2007년 6월보다 몇 개월 앞서있다. 다만 닥터후는 특정 에피소드만 독자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시나리오 집필 후 해당 시즌 전체 에피소드를 모두 촬영한 다음 시간을 두고 방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성, 촬영, 방영까지 2년~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Blink의 시나리오 작성 자체는 SCP-173보다 먼저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Blink의 시나리오가 유출되어 SCP 재단이 그걸 따라했을 리도 없고, Blink의 시나리오를 작성할 시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SCP-173을 닥터후 제작진이 따라했을리도 없다. 즉 동일한 시기에 서로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도 완전히 똑같은 아이디어를 배출한 사례는 이렇게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창작물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례로 미적분의 발명을 들 수 있다. 동시대에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각각 미적분을 발명했는데, 발표는 라이프니츠가 앞섰으나 미적분의 개념을 먼저 생각해낸 것은 뉴턴이었기에 표절 여부를 두고 영국학회와 독일학회가 대립하였다. 현대에는 양측 모두 미적분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개념과 기호 등의 수학적 완성도가 높아서 현대의 미적분은 라이프니츠의 체계를 따르고 있다.
물론 너의 이름은은 시월애와 동일한 시기에 나온 작품이 아니지만, 위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 작품을 참고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특정 작품과 비슷할 수도 있다'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즉 '아이디어' 자체가 도저히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어메이징하게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라면 (쉽게말해 거의 상대성 이론을 최초로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 급 정도는 되어야한달까) 스스로 배출해낸 아이디어도 이미 다른 사람이 배출해낸 아이디어와 겹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신카이 감독이 이러한 유사점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없으므로 초안의 제작 과정에서 《시월애》를 참고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참고하지 않고 제작되었음에도 비슷한 소재를 쓴 탓에 우연히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는지는 확답하기 어렵다.
2.6. 법률적 해석
다음은 페이스북에서 변호사이자 변리사인 김정욱이 남긴 글 전문이다. #( a)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에 대한 "표현"만을 보호할 뿐 "아이디어" 그 자체는 보호하지 않습니다. 대사와 배경장면이 표현의 영역에 있습니다. 또한 비문언적 표현으로 플롯 등의 부분도 저작권의 대상이 되지만, 필수장면, 즉 그러한 장면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저작권자의 권리의 보호 못지않게 아이디어를 자유로이 사용하여 문화발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저작권법의 취지 때문이고 미국 등의 경우도 우리와 같습니다. 주관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시공간이 어긋난 두 사람의 사랑은 아이디어이고, 서로 마주쳤을 때 처음에 못 알아보는 것은 필수장면으로 보여집니다. 사고가 나서 이미 사망했다는 내용은 일반적인 구성이나 필수장면으로는 보기 어려워 저작권법의 표현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시월애'와 '너의이름은'의 주인공들의 대사는 전혀 다르므로 문언적 표현에 있어서 유사성은 전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부 유사하기는 하지만 아이디어의 영역으로 보이며 따라서 표절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
단순한 아이디어 정도는 '법적인' 표절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서로 원수인 가문의 남녀가 가문의 뜻을 어기고 사랑에 빠진다'는 플롯이 나왔다고 해도, 같은 플롯을 차용한 다른 작품이 이 작품을 표절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웬만한 아침 드라마가 다 표절이 되어버린다. 큰 흐름 이외에도 세부적인 부분 전체까지 유사하다면 표절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큰 흐름 자체를 표절로 간주하면 고전 작품에서 답습해오던 모든 스토리 기법들이 표절로 전락해 창작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 로미오와 줄리엣>조차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연극 <피라모스와 티스베>[14]의 이야기를 원형[15]으로 하고 있는데 대충 줄거리를 보면 사랑에 빠진 '원수 집안의 남녀가 함께 도망치기 위해 한명이 죽은 척을 하는데, 그걸 진짜 죽음으로 오해한 연인이 자살하자 다른 한명도 따라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대충 봐도 <로미오와 줄리엣>과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과 《시월애》는 기본적인 흐름 자체는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너의 이름은》'의 경우는 몸이 뒤바뀐다는 요소가 있고, 《시월애》에서는 과거의 인물의 사고가 개인의 사고에 그치는 반면 《너의 이름은.》 혜성 충돌이라는 소재를 통해 마을 단위의 사고를 가정하여 재난물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스토리 전개에서는 운명의 붉은 실에 관한 미신적 이야기나 일본 신화와 관련된 내용 등 《시월애》에 없는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우의 다른 예시들을 생각해보면 보통은 비슷한 소재를 차용했더라도 충분한 재해석과 재구축을 가미했다면 표절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이 예시로 상술했던 오버워치와 팔라딘스를 들 수 있는데, 두 작품 모두 팀 포트리스 2에서 기본적인 소재를 따왔지만, 충분한 재해석과 재구축을 가미했기 때문에 두 작품을 팀 포트리스 2의 표절 작품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이는 제작진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라 팀 포트리스 2의 제작사인 Valve는 오버워치 건으로 오버워치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에게 자사 게임의 표절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도 표절 논란을 제시할만한 껀덕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블리자드 역시 팔라딘스의 제작사인 Hi-Rez Studios에 표절 논란을 제기하지 않았다.[16]
결국 여러가지 면을 고려해 보면 설령 진짜로 스토리를 고의적으로 표절했다고 해도 대놓고 베낀 수준이라 보기는 어려우며, 충분히 독자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인 표절 요건이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저작권 위반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원 저작자가 고소하지 않은 이상은 표절이라 판결나지 않는다. 보통 저작권 요소에 민감하기 마련인 이런 콘텐츠 업계에서는 확실한 표절이라면 이의를 제기하기 마련이겠지만,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법적 싸움으로 가도 표절이라고 확답받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술하였듯 법률적으로는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기 때문.
물론 표절이라는 개념이 법률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윤리적인 차원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기에 꼭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대중들에게서 발생한 표절 논란 자체가 합당하지 못하다는 근거가 될 순 없기는 하다. 법적으로 표절 판결이 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도의적인 표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제작자가 실제로 표절한 것이 맞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적거나 증거부족 등으로 법적인 표절까지는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7. 결론
이 문단은
이 문단은
표절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독창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 플롯이 이미 수도없이 많이 쓰였다는 점은 표절 논란에 대한 옹호 근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의 이름은.이 그렇게 흔하디 흔한 스토리 플롯에서 큰 차별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토리의 독창성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도 볼 수 있다.
비슷한 스토리 플롯을 가진 작품이 한둘이 아닌데 굳이 《시월애》만 놓고 비교하면서 '시월애 표절이다'라고 까기 보단 차라리 비슷한 플롯을 가진 작품들을 전부 나열해놓고 '독창성이 부족하다'라고 비판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비판이다. 기존에 다른 작품들도 많이 답습하던 클리셰를 답습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특정 작품의 표절이라 보긴 어렵겠지만, 스토리의 독창성 부분에서 비판을 받을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
이는 평론가들의 평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혹평을 한 평론가이든, 호평을 한 평론가이든간에 《너의 이름은.》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스토리의 소재 자체를 하나하나씩 뜯어보면 그렇게 참신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어디선가 본 흔한 소재들의 조합이라는 것.
여러 평론가들의 리뷰에서도 보이듯, 《너의 이름은.》은 흔한 클리셰를 여러 답습하였기 때문에 스토리의 독창성 면에서 딱히 뛰어나다고 호평받고 있지는 않으며, 이 작품이 평론가들에게 있어 높은 점수를 받는 부분은 스토리가 아닌, 영상미와 연출 부분이다. 상술하였듯이 하나하나만 따져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흔한 소재, 클리셰들을 가지고 훌륭한 영상미와 연출 효과, OST의 조화로 요리하여 잘 녹여내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뿐이지, 스토리가 참신하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 신카이 마코토는 본래 스토리로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었다기보다는 훌륭한 영상미와 연출 효과로 유명한 감독이었으며, 이는 《너의 이름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너의 이름은.》의 표절 논란에서 '표절이다'보다는 '독창성이 부족하다' 정도가 정당한 비판일 것 이며, 팬이더라도 이 정도의 합리적인 비판은 수긍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터넷 상에서 소모성 언쟁이 종종 발생하는 이유는 클리셰의 답습으로 인한 유사성을 '무작정 표절이라고 몰고가는 극성 까들'과 흔한 클리셰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스토리 독창성 부족에 대한 비판 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극성 빠들'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논란이 먼저 나왔던 일본 및 해외 웹에서는 표절 논란 역시 시들해진 반면, 한국에서는 《너의 이름은.》이 개봉된 지 채 2주가 되지 않았고, 《시월애》와의 플롯 유사성 떡밥이 국내 웹에 널리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식지 않은 떡밥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실제로 본 논란은 《너의 이름은.》의 일부 팬들이 표절 논란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전까지는 스토리 면에서도 독창적이라는 등 지나친 추앙심을 보였으나 이번 표절 논란으로 인해서 결국 흔하디 흔한 클리셰라는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었기에 독창성을 운운하였던 팬들은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3. 《 반딧불 언덕에서》 표절 논란
1 2우다 코노스케 감독의 ' 반딧불 언덕에서'라는 애니메이션의 연출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있다. 신카이 마코토 본인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우다 코노스케 감독은 보면서 "어?"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으나[17] 감독 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변환되었다면 그것은 오리지널이라며 문제삼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
[1]
다만 두 번째 링크의 경우 시월애가 아니라 시월애의 공식 리메이크 미국 영화인 《레이크 하우스》(Lake House)와 비교하고 있다. 다만 어차피 이 작품은 시월애의 미국판 로컬라이징에 불과해 연기 방향이나 매우 작은 요소 말고는 차이가 없어서 거의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2]
남자아이가 여자로, 여자아이가 남자로 황궁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3]
원제는 The Safe-Deposit Box. 아침에 깨어나보면 타인의 몸에 들어가있는 남자 이야기다. 여담으로 그렉 이건 작가가 너의 이름은을 감상하고 자기 작품하고 어느정도 닮은거 같다며
언급하기도 했고(물론 줄거리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신카이 마코토 또한 그렉 이건이 자기 작품에 대해 감상을 남긴게 영광이라며 초기 플롯이 대여금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트윗
[4]
엄밀히 말해 서로 '직접 소통'하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 일기나 메모로 의사소통을 주고받긴 하지만 그 매체 자체가 시간을 뛰어넘는 매개체가 아니다. 편지 자체가 시간을 초월하는 《시월애》와는 다르게 스마트폰과 일기 자체는 그냥 평범한 물건이다.
[스포일러]
두 사람이 편지로 소통하게 되는 시작점은 미래의 은주가 이사를 가며 우체통에 남겨두고 간 편지인데, 과거의 성현은 사고를 피한 후 은주가 편지를 남기고 떠나기 직전에 은주를 만나러 온다. 즉 은주 입장에서는 영화의 사건들이 벌어지기 이전 시점에서 성현을 만난 것. 그래서 성현은 기억이 있지만 은주는 기억할 것이 없다(...)
[6]
타키 기준으로는 7년, 미츠하 기준으로는 10년. 영화 후반부에 혜성 충돌(2013년)로부터 8년이라고 언급되는 부분이 나오며 둘의 재회는 그로부터 2년 후라고 신카이 감독 본인이 밝힌 바 있다.
[7]
해당 문서에만 이 둘을 제외하고도 16개의 예시가 있다.
[8]
윌리엄 M 리(William M. Lee)의 단편SF로 1967년에 처음 발표됐다. 한국에서는 지금은 절판된 《시간여행SF걸작선》에 수록되어 정식으로 소개된 적 있다. 1985년에 《
환상특급》의 에피소드중 하나로 리메이크 된 바 있다.
[9]
다른 작품들은 미래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의 죽음이나 사고를 막으려는 것이지만 해당 작품은 과거의 인물이 미래의 인물에게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해듣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차이점이다.
[10]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작품
[11]
'까치 까치 설날은~'이라는 동요의 첫 부분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봄바람('솔솔 부는 봄바람~')의 앞부분과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두 곡의 발원지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연히 비슷한 멜로디가 나온 것이지 표절은 아니다.
[12]
프리퀀시는 2000년 4월 28일로 시월애의 2000년 9월 9일보다 빠르다.
[13]
동감은 2000년 5월 27일로 1개월 늦다.
[14]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지은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설화인데 사람들이 아는 대부분의 그리스 신화, 연극들이 바로 저 변신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15]
스토리 원형이란 개념으로, 예를 들어 늑대와 춤을이나 아바타가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가진 스토리 구조/플롯과 인물 구조를 원형으로 하여 재창조한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매트릭스와 슈렉 같은 작품도 비주얼적으로 혹은 클리셰를 깬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받지만 스토리/플롯만 보면 원형이 되는 신화가 존재하고 영웅의 길/영웅 서사라 불리는 그 이야기 구조(플롯)를 그대로 차용해 만들어졌다. 표절과는 다른 개념. 애초에 이 스토리 원형이란 개념을 모르면 플롯(이야기의 흐름)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표절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로버트 토비아스가 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20가지 플롯(2007)이나 존 트루비의 이야기의 해부(2008)에 나온 이론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작물이던 신화던 모든 이야기들은 몇 가지 분류의 이야기 구조(플롯) 안에 반드시 포함되게 되어있다. 음악으로 말하면 플롯은 코드에 해당하고 구체적인 에피소드/대사/장면은 그 코드를 바탕으로 한 멜로디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김태원(음악인)은 코드에는 주인이 없다는 말을 했고,
머니코드라고 하는 것도 존재하는 것.
[16]
사실 창작물 업계에서 기존 클리셰 가져다 쓰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에 남을 찔렀다가 자신도 찔릴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선의 차용은 용인하고 넘어가는 일이 흔하다.
[17]
비슷하다는 건 당사자도 느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