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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42:30

경주 손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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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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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be673> 사로 6촌 신라 6부 성씨 시조
알천 양산촌 급량부 이씨 알평
돌산 고허촌 사량부 최씨 소벌도리
취산 진지촌 본피부 정씨 지백호
무산 대수촌 점량부 손씨 구례마
금산 가리촌 한기부 배씨 지타
명활산 고야촌 습비부 설씨 호진
삼국사기 기준. # 삼국유사에서는 돌산 고허촌(사량부) 소벌도리를 정씨로 취산 진지촌(본피부) 지백호를 최씨로 기록했다. 또한 6촌의 순서도 셋째가 무산 대수촌(점량부), 넷째가 취산 진지촌(본피부)이라고 기록했다. # }}}}}}}}}


신라 6성{{{#!wiki style="margin: -15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230><tablebordercolor=#fafafa>
慶州 孫氏 (月城 孫氏)
경주 손씨 (월성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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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05050> 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비조 구례마(俱禮馬)
시조 손순(孫順)
중시조 손경원(孫敬源)
집성촌 대구광역시 군위군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주시
경상북도 문경시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북도 영주시
경상북도 예천군
경상북도 의성군
충청남도 부여군
인구 68,486명(2015년)

1. 개요2. 시조3. 경주 양동마을4. 기타5. 역사 인물6. 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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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 손순(孫順)은 신라 42대 흥덕왕 시절 인물로 당시 깊은 효성으로 말미암아 국효(國孝)로 불리던 인물로, 후에 석종고사에 실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경주 손씨는 68,486명으로, 역사적 기준으로도 2,000년 안팎으로 지속된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고성(古姓) 중 하나이다.

2. 시조

동국통감 따르면 신라 유리왕 때 6부 촌장 중에 무산 대수촌의 촌장 구례마가 있었고, 구례마의 손자 손직이 손씨(孫氏)를 유리왕으로 부터 사성 받았다고 기록되어 진다. 시조 손순은 구례마와 손직의 후손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시조 손순은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신라 흥덕왕 시절[1], 시조 손순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한 형편에 먹을 것이 부족하였는데 자식이 어머니가 먹을 음식을 계속을 뺏어 먹자 아내와 논의하여 자식을 취향산 땅에 묻기로 하였다. 이후 손순은 산에 올라 땅을 파는데 석종이 나왔다. 손순과 아내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자식을 땅에 묻지 않았다. 이후 집에 돌아와 종을 치니 멀리 있는 왕궁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종소리를 듣고 손순을 불러 연유를 들었다. 흥덕왕은 손순의 깊은 효심을 하늘의 뜻으로 여겨 집과 쌀을 주고 벼슬을 내렸다. 손순은 종이 나온 곳에 홍효사(弘孝寺)라는 불교 사찰을 지었는데 이 곳에 종을 메달았다고 한다. 홍효사는 현재 절터에 ‘월성 남사리사지 삼층석탑’만 남아 있다. 이 석탑은 보물 제907호로 지정되었다.

3. 경주 양동마을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의 집성촌으로 6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반 집성촌으로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주 양동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10번째로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이다.

4. 기타

경주 손씨, 밀양 손씨, 평해 손씨는 같은 시조에 다른 본관을 두고 있다. 경주 손씨는 대종가(大宗家)[2]로 나머지 손씨가 분적하였다.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경주손씨(慶州孫氏) 78,450명, 밀양손씨(密陽孫氏) 274,665명, 평해손씨(平海孫氏) 12,831명으로 기록되었다. 일직 손씨는 경주 손씨와 관련이 없다.

5. 역사 인물

조선 시대 경주 손씨의 과거 급제자는 총 61명으로, 문과는 21명, 무과는 4명, 사마시는 36명이 있다.

6. 현대 인물


[1] 법흥왕때 라는 설도 존재. [2] 밀양 손씨 종친회에서는 밀양 손씨를 대종가(大宗家)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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