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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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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테크
KT Tech | KT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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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white> 기업명 정식: 주식회사 케이티테크
영문: KT Tech Inc.[1]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2001년 10월 12일[2]
해체일 2013년 3월 8일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황새울로312번길 26
대표이사 문정용
업종명 기타 무선 통신장비 제조업[3]
규모 대기업
모기업 KTF (2001.10.12 ~ 2009.06.01)
KT (2009.06.02 ~ 2013.03)[4]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웹 아카이브)[5]

1. 개요
1.1. CI1.2. BI
2. 역사
2.1. 피처폰 시절2.2. 스마트폰 시절2.3. 청산
3. 역대 수장
3.1. 분리 이전3.2. KT테크 사장
4. 출시 기종
4.1. 피쳐폰
4.1.1. 2G 4.1.2. 3G
4.2. 스마트폰4.3. 인터넷 전화
5. 온게임넷 스타리그 후원

[clearfix]

1. 개요

KT계열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2001년 KTF의 통신단말기부문에서 분사하여 KTFT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6]

피쳐폰 시절에는 핏츠(FITZ)에버(EVER) 브랜드로 휴대폰을 출시하였으며, 피쳐폰에서 스마트폰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테이크(TAKE)로 시리즈 네이밍을 교체하였다. 테이크 스마트폰에는 독자개발한 테이크 UI가 탑재되었다.

KT 계열이다 보니 KTF 시절부터 KT 전용으로만 제품을 출시하였으며[7] 경쟁사들과는 달리 플래그십 제품보다는 보급형 제품을 많이 출시하였다.[8] 가격에 비해서 비교적 기능이 다양하다는 장점이 존재하며 버스폰의 강자로 군림했다. 물론 버스폰으로 장사가 잘 될리는 없지만 자회사의 힘으로 버텼다. 이때 사실 KT에서 돈이 크게 안 되는 이 회사를 심하게 팔아버리고 싶어했고, LG에 팔기로 결정이 났으나 무산되었다. 물론 그 후에 그럭저럭 팔리는 폰도 나오고 그래서 그냥 자회사로 두는 듯했다.

EVER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 위용이 어느 정도였냐면, 과거 폰덕들 사이에서는 피처폰 절대 본좌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모기업인 KTF가 KT에 합병된 이후 나온 일부 제품은 조금 나사빠진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1.1. CI

파일:KTFT.jpg 파일:KT테크 로고.svg
<rowcolor=#ffffff> 2001 ~ 2009 2009 ~ 2013

1.2. BI

파일:FITZ 로고.jpg 파일:KT테크 EVER BI.svg 파일:EVER 로고(후기).jpg 파일:TAKE 로고.jpg
<rowcolor=#ffffff> 2001[9] 2002 ~ 2007 2007 ~ 2010 2010 ~ 2013[10]

2. 역사

2.1. 피처폰 시절

2G 피처폰 시절에는 DMB 지원 기종[11]이나 X6000이나 X8000, X9000 등 일부 기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176×220 해상도( QCIF+)의 LCD를 써 평가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3G 피처폰 시절이 되자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우선 3G 시절에 나온 피처폰들은 동영상 재생 기능이 의외로 강력했는데, 칩셋 스펙에 명시된 해상도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동영상 재생 프레임이나 비트레이트를 보장했고, 피처폰 주제 내장 동영상 플레이어가 SMI 자막 기능이나 동영상 북마크 기능까지 지원해서 PMP폰으로 쓸만했으나 정작 이 점을 거의 홍보하지 않았다. 동영상 재생 기능은 SKT에서 PMP폰으로 홍보하던 기종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고 오히려 능가하는 면도 있었다. 피처폰에 내장된 파일 탐색기 기능도 스마트폰 시절의 탐색기 앱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기능을 자랑하기도 했다. 특히 동영상 부분을 좀 더 이야기 하자면 밑 문서에도 있지만 당시 PMP가 대세이던 시절에 슬라이드 폰인데도 타사들 기종들을 비교 했을때 에버 폰들은 무려 동영상 30프레임을 지원하였다. 화면 크기만 작았지 사실상 PMP와 다를 바 없었을 정도.

에버의 대표적인 히트작은 2G 시절 X6000, X9000과 T1000 등. 부분적인 멀티태스킹과 같은 당시에는 생각도 못 했을 법한 기능들이 끼워진 경우가 많았고, 최적화도 상당히 잘 되어서[12], 상당히 팬도 많았다. 그 중 에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단종이 되더라도 그 제품에서 WIPI 기반 게임이 쌩쌩 돌아갔다는 점이다.[13] 실제로 나온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삼성, LG 제품에서 버벅이는 딜레이 현상에서 발생하는 와중에 X9000 이후의 에버 제품에서는 2년이 지나도 버벅이지 않는 기이한 기술력을 자랑했었다.[14] 역시 피처폰 최적화의 본좌라 불릴 만 했다. 또한 3G 폰인 W350(2008년 출시)도 폰덕들 사이에서는 2009년경 출시되는 비슷한 출고가의 피처폰들에게 꿀리지 않는 명기로 평가받기도 했다.

문자입력 방식이 천지인 자판인 것도 숨은 장점 중에 하나.[15] KT 자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천지인 자판을 사용한 것은 KTF의 듀얼 LCD 기술과 천지인을 상호 라이선스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특허 내용은 폴더를 열면 외부 LCD가 꺼지고 닫으면 내부 LCD가 꺼진다는 내용.

더욱이 한두 기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에버의 제품 대부분이 가성비가 좋았는데, 같은 가격대의 같은 시기에 출시된 타사 휴대폰보다도 훨씬 좋았다. 2007~2008년에 이미 어도비 플래시를 실행할 수 있게 하거나, 외장 메모리 삽입이 가능하거나,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거나, USIM 금융, 내비게이션, 고해상도 AMOLED 디스플레이 등을 제공하면서도 출고가는 오히려 훨씬 더 낮았다. 다른 회사들은 이러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 성능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피처폰 시절에 카메라 화소나 DMB, 블루투스, 외장 메모리 지원과 같은 당연한 것들 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사들이 잘 신경쓰지도 않고,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주지도 않던 카메라 플래시, 128화음, 셀프카메라 화소, 동영상 재생 스펙, GSM 로밍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위에서 언급된 X9000, W350이 대표적인데, 각각 2005, 2008년 출시 모델이 외장 메모리와 다양한 동영상 코덱 지원 덕에, LCD 해상도로 트랜스코딩 후 별 무리없이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었다. 거의 간이 PMP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 PMP 시장 활성화가 몇 년은 더 걸렸음을 고려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거기다 거의 완벽한 WIPI 지원으로 게임 성능도 대단했다. 인기는 높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당대의 명품 기기였다. X6000 역시 LCD 사양 대비 너무 낮은 칩셋으로 버벅거리는것을 제외하면 기능면에서 타사 기기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상으로도 타사 피처폰보다 훨씬 다양하고 전문적인 기능들을 제공하여 ppt, pdf, hwp, bmp, gif, xls, doc, swf, txt, jpg, mp3, mp4 파일을 열고[16] 편집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파일 할당 테이블, 디스크 검사, 포맷 기능들을 제공하는 파일 탐색기, 삼각함수나 순열, 로그함수, 무리수 등을 처리할 수 있는 계산기 등을 피처폰 시절에 탑재했다. 게다가 전자사전 기능만 제공하던 타사와는 달리 바탕화면에 오늘의 단어를 설정하여 하루에 한 번씩 단어나 회화를 바탕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점과 같은 세심한 기능들을 제공한다는 점, 타사의 통합 검색 기능이 주소록과 메시지 함만 뒤적거릴 때 통화 내역, 메모, 메시지, 이벤트, D-Day 등을 탐색할 수 있는 통합 검색 기능을 제공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또한 실력이 된다면 QPST를 이용해 내부 데이터를 막 뜯어 고칠 수 있었다. 요즘 나오는 다른 회사의 단말기들은 대부분 EFS Explorer의 접근을 막았으며, 무단 개조이기 때문에 보증이 날아가는 문제점이 생긴다. 스마트폰과 다르게 오딘같은 거로 밀 수도 없다.

그리고 EV-W100 모델의 경우 버튼음이 130여 개나 탑재되었으며[17], 그 이후로 출시되는 핸드폰들은 그 이상의 다양한 효과음들이 추가되었다는 점이 있다. 심지어는 MP3 음장 기능도 어지간한 MP3 플레이어나 PMP도 이 정도로 자유도 높게 제공할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강력하며, ID3 태그를 한국 최초로 적용하여 파일 크기, 비트율, 샘플링 레이트, 가수 이름 등의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가사도 볼 수 있다. 동영상 재생 기능 역시 당시 타사 피처폰들보다 좋아 비디오 해상도는 QVGA, H.264, 400kbps, 30fps 또는 QVGA, mpeg-4, 1200kbps, 30fps으로, 오디오 품질은 AAC, 320kbps, 48KHz 수준의 피처폰으로써는 상당한 수준의 화질의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로 책갈피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바로 그 지점부터 재생하거나, 꺼진 위치부터 다시 재생하거나, 자막을 보거나, 화면을 캡쳐하거나, 3D 리믹스 사운드 등을 설정할 수 있어 PMP스러운 UI를 제공한다. 멀티태스킹 기능 역시 한 번에 15개의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제조사를 막론하고 멀쩡한 단말기조차 멀티태스킹을 최대 4개로 제한한 SK텔레콤의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과연 피처폰의 절대 본좌로 불릴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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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스마트폰 시절

2010년 후반에는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2010년 9~10월 사이에 스마트볼을 출시하려다가 11월에야 출시했다.[18] 후속 제품으로 테이크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때 소지섭이 광고하기도 했다.

인기도가 워낙 없어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지 참신한 기능들은 꽤 만들었다. 테이크 UI 항목에 나열된 혁신 기능들이 이런 한탄을 불러일으킨다.[19]

2.3. 청산

2012년 8월 10일 KT가 KT테크의 청산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2013년 1월 완전히 폐업했다. 폐업했지만, 안드로이드 업데이트와 A/S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최소 1회 업데이트 정책과 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하여 철수 몇달 뒤 모기업인 KT가 모두 완료하였다. 노키아 등 외산 폰들의 위탁 A/S도 철수 이후 3년 동안 계속 진행된다. 2015년 기준, 고객센터에서는 A/S에 대한 별다른 공문이 내려오지 않았고, 2016년 이후에는 KT테크 홍대센터 기준, 노키아, 델, KT테크(에버 포함) 모두 부품 공급이 중단되었다. 어찌보면 그냥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기는 아까운 제조 회사였지만 브랜드 가치도 그리 높지 않아서 인수해갈 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테이크 시리즈 보유자를 대상으로 보상기변 이벤트를 하였다. 시중가보다 조금 더 싸긴 하다.

철수 이후 KT M&S에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유지 계약이 종료되면서 2015년 5월 7일자로 홈페이지가 닫혔다. 일부 KT 대리점에서는 그 이후 시점에도 테이크 시리즈를 수리해 준 적이 있었다. 이외의 수리 방법은 중고로 동일 기종을 구입해서 자가수리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 아직도 쓰고 있다면 그만 보내주자

3. 역대 수장

3.1. 분리 이전

3.2. KT테크 사장

4. 출시 기종

4.1. 피쳐폰

4.1.1. 2G

※ 출시순으로 나열되었습니다.

4.1.2. 3G

4.2. 스마트폰

4.3. 인터넷 전화

5. 온게임넷 스타리그 후원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다섯 번씩이나 후원[47]한 덕에 스타크래프트를 오랫동안 본 팬들에게 친숙한 편이다. 홍진호 임요환에게 3연벙을 당했던 스타리그 4강전이 열렸던 대회가 첫 번째 EVER 스타리그 2004였고[48], 박성준의 주 종족인 저그 이병민의 주 종족인 테란을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꺾고 우승한 대회가 두 번째 EVER 스타리그 2005, 이제동이 8대[49]이자 온게임넷 마지막 로열로더가 된 대회가 세 번째 EVER 스타리그 2007이었으며, 박성준이 저그 최초의 골든 마우스 수상자가 된 대회가 네 번째 EVER 스타리그 2008, 모기업이 스폰싱한 구단의 선수는 우승할 수 없다는 징크스를 깨고 모기업 스폰서 구단 선수인 이영호[50]가 우승한 대회가 다섯 번째 EVER 스타리그 2009였다. 또한 온게임넷이 단독 중계하던 시절인 2003년 초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의 첫 스폰서[51]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기묘하게 스타크래프트와 운명을 같이 했음을 알 수 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끝난 해가 2012년[52]인데, KT테크 또한 그 해를 끝으로 KT가 휴대폰 제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EVER(피처폰), TAKE(스마트폰) 브랜드가 청산되었으니... 사실 KT테크가 청산된 이유는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피처폰이나 저가 중심의 스마트폰을 주로 제조했던 KT테크는 고가는 삼성전자 애플에, 저가는 중국산 스마트폰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자본잠식 상태가 되어 청산을 결정했던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를 대표했던 스타크래프트와 피처폰 시장이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2010년대에 이르러 동시에 쇠퇴한 것이다.

[1] KT테크의 WCDMA 인터넷전화인 EV201-909W의 판매 당시엔 쿡앤쇼 공식 홈페이지에서 KTFT에서 KT테크로 명칭이 수정된 이후 KT Tech의 약칭으로 KTT로도 표기되었다. [2] 초기에는 KT테크가 아닌 KTFT였다. [3] 휴대폰 사업. [4] 모기업인 KTF KT와 합병하면서 자연스레 KT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5] KT테크는 2013년 해체되었지만 홈페이지는 2015년까지 운영되었다. 2015년 당시 서비스 종료 안내문 [6] 정식 등기명은 "주식회사 케이티에프 테크놀로지스"였으며, KTFT의 뜻에 해당한다. [7] LGT로도 출시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기는 하다. # 경쟁사인 SK텔레텍 역시 LGT 전용 스카이 휠(IM-8500L)을 출시한 적이 있다. [8] 삼성, LG의 경우 플래그십이 메인이기에 보급형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KT테크의 경우 당초 보급형 제품 위주로 출시해서 그런지 보급형 제품임에도 플래그십 못지않게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9] 2001년에 출시된 기기는 KTF-X1000 하나뿐이므로 해당 기기에서만 적용된 브랜드가 되었다. [10] KT테크의 마지막 브랜드이며, 2013년까지 존속했지만 마지막 출시기기가 2012년에 나왔으므로 명줄은 사실상 2012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11] EV-KD300, EV-KD330, EV-KD350, EV-KD370 등 [12] MSM6100, 6500 이상의 칩셋을 탑재한 X9000 이후 기종 한정, 5천대 칩셋을 넣을때도 타사대비 최적화가 좋긴 했다. [13] 단, 6천대 칩셋을 탑재한 KTF-X9000 이후에 나온 기종 한정이다. 특히, KTF-X6000, KTF-X8000은 MSM5500에 QVGA LCD를 탑재한 관계로 기본적인 메뉴 구동도 느려터졌고 게임구동 성능이 좋지 않았다. 대신 기능면에서는 아주 좋은 평을 받았다. [14] 단, T시리즈 등 일부 QCIF 기종은 MSM5100 저성능 칩셋을 사용하여 버벅임이 심하였다. [15] 2010년쯤 이후로 발매되는 폰에는 천지인과 나랏글 중 선택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SKY 자판도 추가되었다. [16] 애니콜 일부 기종에서는 일정 용량 이하의 일부 파일만 제한적으로 열 수 있고, 스카이 기종은 문서 파일을 CSD로 변환해야 한다. [17] 기본적인 버튼음에 MIDI 표준 악기를 모두 추가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른 톤의 악기 소리가 나게 한 것이다. 이를 활용해서 유사 전자 악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 [18] 에버에서 직접 만든 건 아니고 정확히는 폭스콘 ODM이다. [19] 삼성 터치위즈의 전유물이라 알려진 듀얼 스크린도 이 회사가 2년 먼저 개발했고, 2016년에 나온 누가에서야 안드로이드 기본기능으로 탑재되었다. 또한 안드로이드 4.0 이전에 홈 버튼을 꾹 눌러 최근 실행한 어플을 확인하는 기능도 만들었다. [20] 한솔엠닷컴 사장. [21] 특이하게도 혼자 EVER(에버)가 아닌 핏츠(FITZ)라는 브랜드를 달고 출시되었다. 이 제품은 예외로 KT테크에서 개발한 모델은 아니고, KTF에서 자체개발한 제품이다. [22] 금융서비스 특화(UICC 호환) 단말. KT테크의 첫 번째 자체개발 단말이자, 최초의 에버 브랜드 기기이다. [23] 국내최초 바코드 인식기능 탑재폰. [24] 길어서 어색하게 보일 수 있으나 언론에 언급된 공식 펫네임이다. [25] KTF-X3500의 KT 공급용 제품이다. [26] 에버의 마지막 E시리즈로, 이후에는 EV-DO 지원 기종도 그냥 X시리즈로 출시하였다. X8000, X9000이 그 예. [27] 에버 최초의 QVGA 기종이나, 칩셋은 MSM5500을 사용하여 게임 성능에서 그닥 좋은 평은 받지 못하였다. 다만 모바일 게임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가격 대비 매우 좋은 성능을 보여주어 에버 최고의 명기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 기종부터 EV-DO를 지원하는 모델도 그냥 X시리즈로 출시되었다. [28] 에버 최초로 MSM6500 칩셋을 사용한 제품이다. 이전까지는 QCIF 기종에는 MSM5100을, QVGA 기종에는 MSM5500을 우려먹었다. [29] 휴대폰 최초로 7.9mm라는 매우 얇은 두께로 출시되어 이목을 끌었다. 이름인 넘버7도 7.9mm의 앞부분인 7에서 비롯된 것. 초슬림 카드폰으로도 불렸다. [30] 에버의 마지막 qqVGA 기종이다. [31] LG텔레콤에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모종의 이유로 베이퍼웨어가 되었다. # 원본 모델은 EV-KD330. [32] 이름은 블랙큐브이지만 실버 컬러도 선보였는데, 이는 '블랙큐브 실버'가 맞지만 편의상 '실버큐브'로 많이 불렸다. [33] 플러스홀릭 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후기형 에버의 브랜드 슬로건으로도 채택되었다. [34] 다른 명칭으로는 플러스스타일 폰이 있다. [35] 방향조작 부분에 터치스크린 형태의 보조LCD가 탑재되었다. 상황에 따라 모양과 기능이 변하는데, 애니콜의 소울폰과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프트웨어적 사용자 편의성은 소울폰보다 우세했다. 디자인에서는 별자리를 형상화한 문양으로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36] 기가바이트가 개발한 휴대폰을 KT테크(당시 KTFT)가 수입만 하여 출시한 제품으로, 배터리 분리 시 KT테크 기업정보는 기입되었지만 EVER 브랜드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KT Tech 사명 변경 이전 유일한 스마트폰 제품이다. [37] 국내 최초로 DMB/FM튜너가 동시에 내장되어있는 휴대전화다. [38] 에버의 첫 번째 풀터치 바형폰으로,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한 배우를 섭외한 CF로 스토리라인을 이어가는듯한 마케팅을 보여주었다. 타사 제품들과 다른 유선형의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39] 예외로 EVER 브랜드가 아닌 KT테크 상표만을 달고 출시되었다. 극도로 심플함을 강조한 각진 디자인이 포인트이다. [40] 2010년 출시된 폭스콘 ODM 제품이며, 마지막으로 에버 브랜드로 출시된 모델이다. [41] 2010년 출시. KT테크 최초의 독자 개발 스마트폰이자, 브랜드가 에버에서 테이크로 전환된 첫 번째 단말. 이때부터 라인업 브랜드는 테이크를, 제조사 브랜드는 단순 KT테크만을 사용하였다. [42] 기본 모델명은 KM-S220이지만 KM-S220H로도 기입되었다. 메인보드 돌연사 제품이 간혹 나왔지만 큰 이슈는 되지 않았다. [43] 테이크 최초 LTE 모델. [44] 개발이 완전히 완료된 직후, 납품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회사의 해체가 결정되어 세상빛을 못 보게 되었다. 일부 양산품이 존재하며 남겨진 단말은 임직원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이로인해 올레내비의 당시 지원단말 명단에 KM-E200이 추가되었다. [45] KT테크의 인터넷 전화이다. 기기 소프트웨어나 몸체 자체에 에버 로고가 표기되진 않았으나, 당시 쿡앤쇼 공식 판매처에서 에버 브랜드로 홍보하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에버 브랜드가 적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46] 쉬림프폰이라는 명칭은 공식 명칭이지만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내부 소프트웨어는 슬림팬더나 터치스타와 유사하다. [47] 비공식 대회로 기록된 이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도 있었다. 순서상 첫번째가 이 대회이며. 여섯번을 후원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대회 우승자가 구단 선수였던 홍진호이다. 다만 이때는 동료이자 후배 동생인 이윤열도 같이 임대선수로 활약을 했다. [48] 덤으로 감동의 골마 팀킬 짤도 이 시즌에 나왔다. [49] 사실 이제동이 아홉 번째로 기록이 될 수 있었으나 승부조작으로 양대리그를 박살낸 마재윤이 여덟 번째 로열로더. 그러나 조작한 댓가로 온게임넷 MBC GAME에서 그의 이름과 전적 기록은 삭제되었다. [50] 위 괄호안에 언급한대로 홍진호가 우승을 했긴 했으나 포장 전문가 어느 분 때문에 스타리그 우승자 대우는 커녕 찬밥 신세로 만들었다. [51] 반대로 스타리그를 먼저 스폰서로 내세우고 훗날 프로리그 스폰서가 된 SKY가 있었다 [52] 정확히는 스타크래프트 1 한정. 스타크래프트 2까지 포함하면 201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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