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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00:06:59

94식 산포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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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사포 <colbgcolor=#fefefe,#191919> 91식 10cm 곡사포, 92식 10cm 캐논포, 12cm 캐논포, 96식 150mm 곡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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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ype_94_75_mm_mountain_gun_model_1934_in_the_Great_Patriotic_War_Museum_5-jun-2014.jpg
九四式山砲 (きゅうよんしきさんぽう)
1. 개요2. 제원3. 개발4. 특징5. 배치6. 실전
6.1. 일본군6.2. 중국군
7. 미디어

[Clearfix]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육군이 운용한 산포. 정식 명칭은 94식 산포(九四式山砲)다.

2. 제원

파일:attachment/type_94_75mm_mountain_gun_00001.jpg

3. 개발

원래 일본군에는 41식 산포라는 이름의 75mm급 산포가 있었다. 해당 산포는 그럭저럭 쓸만하다고 평가되었으나, 다른 야포에 비해 위력이 약간 열세였고 사격시 안정도가 양호하지 못하다는 결점이 수차 지적되었다. 이런 문제는 41식 산포를 개량하는 것 정도로는 해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때문에, 1920년에 제정된 방침인 "41식 산포에 비해 위력을 한층 강화하고 안정이 양호한 형식을 연구하라"에 따라 새로운 산포의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이로 인해 1931년에 개발을 시작하여 1932년에는 프로토타입인 시제 산포가 완성되었는데 몇번의 개량과 실험을 거쳐서 1935년에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94식이란 이름이 붙은 경위가 특이한데, 이는 1934년(황기 2594년)에 만든 최종 개량판의 형식을 딴 것이다.

기본적인 작동원리는 독일 국방군의 산악포와 프랑스군 M1897 75mm 야포를 혼합해놓은 형태이며, 다만 산악지역에서의 사용을 위해 상하각도와 좌우각도를 최대한 크게 만들어놓은 것이 개량점이다.

4. 특징

일단 개량형이므로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5. 배치

94식 산포는 채용된 이후 육군의 1개 보병 연대에 4문씩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동시에 산포가 편성되는 사단의 포병연대가 보유하는 주화기로 사용함과 동시에 기존에 배치된 41식 산포를 대체할 병기로 보급되었으나 생산량 부족으로 혼용되어 사용됐다.

여기에 더해서 태평양 전쟁때는 작전지역의 지형과 도로상황 등을 따져서 일반 야포가 편성되는 사단의 연대에도 배치된 사례가 많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꼭 산악전에서만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며, 여러 전선에서 널리 사용된 화포라는 이야기다.

6. 실전

6.1. 일본군

1943년의 영국 육군의 노획 후 조사에 의하면 94식 산포는 41식 산포에 비해 분해가 손쉽게 이루어지며, 크게 잡아서 11개의 부품으로 대포의 기본 기능을 살리면서 정밀하고 위력있는 무기라 평가하고 있다.

6.2. 중국군

중국에선 전작인 41식 산포와 함께 국민혁명군 육군과 중국공농홍군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본이 패망한 후에 중국에 남겨진 94식 산포는 모두 중국측에 압수되었으며, 약 230문 정도 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당시에도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이 산포를 애용했다. 당시 중국은 도로 및 차량 사정이 좋지 못하여 중포는 쓰기 힘들었지만, 이런 산포는 말 몇필이 간단히 끌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애용했다. 중일전쟁 종전 직후부터 산서 군벌 옌시산 휘하의 타이위안 병공창 주도로 복제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생산된 94식 산포들은 민국 36년식 산포라는 명칭을 부여받으며 국민정부군의 사실상의 제식 화포로 자리매김한다.

국부천대 이후 대륙에 남은 94식과 36식 산포들은 전부 중국 인민해방군에 노획되어 공산군의 주력 화포가 된다. 중공은 아직 기술이 없어서 중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 94식 산포를 대거 카피생산했다. 그리고 중공군이 이 산포들을 6.25 전쟁에 투입하는 바람에 UN군은 매우 피곤한 상황을 겪었다. 물론 전체적인 화력이야 당연히 사단 포병들마저도 105mm, 155mm 화포로 무장한 유엔군이 압도적인 우세에 있었다. 하지만 중공군은 94식의 높은 운용탄력성을 살려 곳곳에서 포격을 가하고 빠지는 식으로 유엔군을 괴롭혔다.

당장 장진호 전투당시 하갈우리 진지를 밤마다 정확하게 사격하는 통에 골치덩어리가 된 75mm 포가 바로 94식 산포였다. 이 녀석을 잡기 위해 일부러 야포 중 1문을 150m 이상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에, 이동한 화포가 혼자서 먼저 발포하면 이걸 잡으려고 94식 산포가 발포하는 것을 노려서 다른 야포들이 일제히 대포병사격을 하는 낚시까지 쓴 끝에 간신히 2문을 파괴했을 정도니 파괴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산악 지형에서의 운용에 적합한 산포가 산악전에 쓰였으니,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전쟁기념관 야외전ㆍ시장에 건물 정면 쪽으로 1문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담장 철거 및 이에 따른 리뉴얼이 이루어지면서 위치가 옮겨졌다. 6.25 전쟁 때 노획한 물건이라서 그런지, T-34 같은 다른 노획장비와 똑같이 시퍼런 녹색 페인트로 떡칠을 해놓았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94식 산포를 현역에서 은퇴한 다음에도 한동안 예포로 활용하였다.

7. 미디어

7.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파일:external/www.imfdb.org/GBW_cannon_01.jpg
파일:external/www.imfdb.org/600px-GBW_cannon_02.jpg
파일:external/www.imfdb.org/GBW_cannon_03.jpg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94식 산포
일본 육군 관동군 보병들이 중국 마적들을 향해 발포하는 장면으로만 나온다.

7.2. 집결호

처음에는 국민당군이 사용하여 주인공 구지디의 부대를 맹폭해서 정치장교를 폭사시킨다. 이에 빡친 구지디는 포로는 필요없다는 명령을 내려서 이후 포로사살 혐의로 영창에 간다. 이후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구지디는 이 산포를 이용해 한방에 중국 국민당 육군의 스튜어트 전차를 관광보내는 위엄을 보여주고 퇴장한다.

7.3. 봉오동 전투

월강 추격대가 94식 산포를 동원하여 독립군을 토벌한다. 물론 봉오동 전투 당시 일본군 편제에는 포병이 없었기 때문에 고증오류이다.




[1] 開脚式砲架. 오늘날 대부분의 야포 포대가 사용중인 방식으로, 이동 중에는 접고 방렬시 V자 모양으로 전개할 수 있는 포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