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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22:43:49

94식 37mm 속사포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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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type_94_37_mm_anti-tank_gun_00001.jpg
九四式三十七粍速射砲
1. 개요2. 제원3. 개발
3.1. 94식/98식 전차포
4. 특징5. 문제점6. 운용7. 실전8. 미디어

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과달카날에 전시된 94식 37mm 속사포 리뷰 영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용한 대전차포. 정식명칭은 94식 37mm 속사포(九四式三十七粍速射砲)다. 속사포란 명칭은 문자 그대로 빠른 발사가 가능한 포를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포구초속이 빠른 포란 의미도 내포한다.

2. 제원

  • 중량: 327kg
  • 포구구경: 37mm
  • 포신길이: 1,706mm (46구경)
  • 포구초속: 648m/s
  • 최대사거리: 6,700m
  • 상하각도: -10도 ~ 25도
  • 좌우각도: 좌우 각각 30도
  • 폐쇄기: 수평반자동폐쇄식
  • 사용탄: 94식 대인유탄, 94식 철갑탄, 1식 철갑탄
  • 생산수량: 3,400여문

3. 개발

원래 일본군에는 11년식 평사보병포라는 물건이 있었다. 이 무기는 르노 FT에 장비된 37mm 전차포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프랑스 퓌토 37mm 보병포(Canon d'Infanterie de 37 modèle 1916 TRP)의 영향을 받아 1922년에 채용된 구경 37mm의 보병포로 직사에 의한 기관총 진지섬멸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포탄 작약량이 적은 탓에 포탄의 폭발 반경이 잘 해봐야 5m 정도로 매우 부족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쓰레기 박격포 VM-37 수준의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원래 주 목표인 적군 진지에 대해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대전차포로의 활용도 28구경이라는 짧은 포신과 낮은 초속 탓에 관통능력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는 이 무기가 애초에 대전차 능력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진 물건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좀 더 나은 화포의 필요성에 따라 1933년부터 94식 37mm 속사포가 개발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설계는 1933년 7월에 시작되어 다음해 2월에 기술시험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후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최종적인 평가는 실용성은 충분하지만 중량의 경감과 사격자세의 저하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받아들여 9월에 제2호 시제포가 만들어졌으며 1935년에 약간의 개량을 거쳐 1936년에 제식화되었다.

3.1. 94식/98식 전차포

파일:pic111103.jpg
九四式/九八式三十七粍戦車砲
94식 37mm 속사포의 전차포형. 94식 전차포는 원본 속사포의 설계를 유용하여 95식 중전차의 부포용으로 개발되어 하고, 97식 경장갑차 테케의 주포로 사용되었다. 98식은 기존 94식의 개량형으로, 후기형 하고와 특 2식 내화정 카미의 주포로 사용되었다.

4. 특징


이렇듯 적어도 전작인 11년식 평사보병포보다는 여러모로 나았기 때문에 일본군의 주력 대전차포로 사용되었다.

5. 문제점


결국 이런 문제점은 해당 속사포의 명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였다.

6. 운용

94식 속사포는 보병연대의 속사포 중대에 4문씩 배치되었다. 속사포 중대는 4개 분대(전포대라고 부름)로 구성되어 1문에 1개분대씩 편성되었다. 분대는 분대장, 포수, 포수예비, 장탄수, 전령, 탄약수(5명) 및 연기가 빠져 나오지 않았을 때 세곤(포 구멍을 닦을 때 쓰는 막대기) 담당으로 합계 11명으로 구성되었다.

포를 방열시엔 분대간 거리는 약 100m로 분대 후방 300m에 소대본부(2개 분대를 관리), 또 300m 후방에 중대본부가 설치되었다. 중대본부와 소대본부는 유선전화가 있었지만 소대본부와 각 분대사이엔 전령이 달려가서 연락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포진으로 지형과 상황에 따라 각 지휘관이 판단하여 운용하였다.

7. 실전

기존의 일본군이 보유한 대포들보다는 나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본군은 일단 여기서 만족하고, 치하의 방어력도 중거리에서 94식 속사포의 포탄을 전면장갑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지정하는 등 일본군 대전차포의 표준으로 한동안 군림했다. 당장 3,400여문이라는 많은 생산량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 타이트하게 만들어져서 신형포탄을 사용한 화력증대가 불가능하므로 1941년에 포미를 강화한 1식 37mm 속사포 개발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1식 기동 47mm 속사포가 개발되는 등 후속 대전차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의 고질적인 무기부족 문제는 94식 속사포가 퇴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94식 속사포는 일선에 남아 스튜어트 경전차, 마틸다 II 등 일본군 입장에서 강력한 경전차, 보병전차를 계속 상대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포탄은 튕기고 그 다음에는 속사포와 운용요원이 함께 죽는 일만 남았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지속되어서 나중에는 75mm 전차포와 전면장갑 60mm를 자랑하는 M4 셔먼을 상대하다가 박살나거나, 만주 작전때는 T-34 IS-2를 상대로 포격한 다음 개박살나는 것으로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1선에서 활약했다고 쓰고 학살당했다. 이후 소련군에 의해 노획된 포들은 50만명을 무장시키기 충분한 다른 노획 무기와 함께 만주에 침투한 팔로군에게 제공된다.

일부는 폭격기 요격을 위해 Ki-45 토류에 탑재되었다. 항공기를 상대로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수동 장전인 탓에 연사속도가 느렸기에 연사가 가능한 Ho-203 기관포로 교체되었다.

8. 미디어

8.1. 영화

8.1.1. 마이웨이

할힌골 전투 장면에서 이 속사포들이 등장한다. 대놓고 밝은 아침에 전장으로 이동하던 일본군이 본진에서 멀리 가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이 건설한 부교를 타고 공격해오는 소련군의 대규모 BT 전차부대와 맞서게 되는데 포탄세례 속에서 급히 행렬 뒤에 있던 94식 6륜 트럭에 실린 포와 포탄을 내려 장전한 후에 발포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물론 전투 장면 자체가 일본군의 개막장 대전차 전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라 별다른 활약은 못하며, 이내 빠르게 돌파해 들어온 BT 전차들의 공격에 얻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