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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 Putschplan 2022 in Deutschland 2022 Germany coup d'état pl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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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히스뷔르거 운동의 일부 | |
독일 연방경찰에게 연행되는 하인리히 1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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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
2022년 12월 7일[1] | |
장소 |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전역 및 주변국 (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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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
하인리히 13세를 위시한 반란 세력의 권력 찬탈 및 왕정복고 시도 | |
주동 세력 | |
애국연합 (하인리히 13세) | |
결과 | |
쿠데타 계획 발각, 관련자의 체포 |
[clearfix]
1. 개요
도이체 벨레 보도 | 연합뉴스 보도 |
MBC 보도 | SBS 보도 |
TV CHOSUN 보도 |
2. 전개
2022년 12월 7일 독일 ZDF와 영국 BBC의 보도에 의하면 독일의 11개 주에서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라이히스뷔르거 운동 단체 '애국연합' 조직원 25명이 체포되었다. # 라이히스뷔르거 운동은 독일 제국을 신봉하며 독일인이 주축이 된 제국을 황제가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데, 이들은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불온한 외부세력의 음모로 건설된 '가짜 나라'라고 주장하며 일부는 법을 따르지 않고 납세를 거부하였다. #독일 연방검찰청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11월부터 무장 쿠데타를 계획해 왔으며 독일 국회의사당을 습격하고 보건부, 법무부, 외무부를 장악하여 독일 정부를 전복할 계획을 세웠고 우익대중주의,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기반으로 현대 독일연방공화국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1871년의 독일 제국을 모델로 한 새로운 나라 수립, 즉 왕정 복고를 기도했다고 한다.
이들은 무장하고 연방의회를 습격해[3] 연방의회 의원들을 인질로 삼고 올라프 숄츠 총리를 그 자리에서 처형하여 연방정부를 전복시키고 라이히스뷔르거스러운(Reichsbürgernarrativ) 임시정부를 구성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과 독일의 새로운 국가질서를 위해 협상할 계획을 세웠다. # 프랑스 24의 보도에 따르면 이 조직은 쿠데타에 성공했을 경우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협상할 목적으로 러시아 관리와 접촉했다고 한다. #
해당 단체는 회원의 무장 및 탄약 비축을 독려하였으며 구성원 대다수가 무장 봉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군 전직 영관급 장교인 뤼디거 폰 페스카토레[4]는 군사 조직 책임자로 군사 모집과 훈련, 뭔 장비, 무기, 탄약 및 차량 조달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독일 전역에 각각 250명으로 구성된 사실상의 군대인 '고향수호부대' 286개를 조직하려고 했다. 이들 부대는 시스템 전복을 위한 군사작전에 투입될 뿐 아니라, 이후 도시 지역을 적극적으로 감시한 후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좌파나 이슬람 무장조직을 해체하는 임무를 맡을 예정이었다. #1 #2 덤으로 이들이 크리스마스[5] 전에 독일에 내전을 유발하려고 했다는 증언도 입수되었다. #[6]
쿠데타 모의 세력 중 일부는 자체 화폐를 발행했으며 2022년 초에는 작센 지역에서 땅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2만 1천 명이 제국 시민과 직간접적으로 관계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단체에 소속되어 쿠데타를 모의한 인원은 총 25명이다. 당시 제국시민 추종자는 약 2만 3천 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들 중 10%는 폭력을 행사할 의사가 있으며 5% 가량은 연방 헌법수호청이 극우주의자로 분류한 인물들이다.
가담자들 중에는 현역 군인, 경찰과 대안 우파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출신 전직 연방의원이 연관됐다는 것도 교차 확인됐다. AfD 출신 전직 연방의원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법관이었다. 현직 변호사, 내과 의사, 농부, 점성술사도 이 단체에 가담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을 위한 대안 문서 참고하십시오.
더불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백신 거부자, QAnon 등과 동조하기도 했다. #
군 인사는 공수부대원, KSK 독일 육군 특수전사령부 인원이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KSK는 이 사건으로부터 2년 전에도 네오나치 활동을 벌이거나 부대 행사에서 나치식 경례를 한 데다 일부는 극우 민병대까지 양성하면서 테러 음모까지 하여 한 개 중대가 해체되기도 했다. 이 음모에 대한 내용은 KSK 문서의 네오 나치 활동 적발 문단에 자세히 서술되었다.
3. 주요 용의자
3.1. 하인리히 13세
핵심 주동자 2명 중 한 명인 자칭 "로이스 프린츠"[7] 하인리히 13세(Heinrich XIII. Prinz Reuss, 71세)는 1918년까지 독일 동부 튀링겐 주의 일부였던 로이스게라 후국과 로이스그라이츠 후국을 다스렸던 귀족 가문인 로이스 가문 출신이며 딥 스테이트 음모론의 추종자다.하인리히 13세는 2009년에 가문과 연을 끊었고 귀족이었던 조상을 찾으려면 5대조까지 올라가야 하는 방계 중에서도 방계라고 한다. 현 로이스가의 수장인 하인리히 14세와는 10촌 사이로 매우 멀며 하인리히 14세는 그는 그저 음모론에 빠진 정신이상자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실제로 독일 제국은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프랑켄 지역에서 부흥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랑켄계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선제후가 되고 안스바흐 방계인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가 튜튼 기사단에 입단하여 동프로이센 지역에서 창설했던 프로이센 공국을 1618년에 상속받아 동군연합을 이룬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8]의 융커가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 제국의 핵심이었고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동프로이센 지역 융커는 이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에게 전부 제압당해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 제국 정계에서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 로이스가는 독일 제국의 극히 마이너한 후국의 귀족이다. 로이스가의 로이스그라이츠 후국과 로이스게라 후국은 독일 연방 시기 로이스가의 작위를 올려 준 오스트리아 제국과 더 가까웠다.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관세동맹에 불참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완승을 거두고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고 나서야 독일제국에 참가한 만큼 프로이센의 정통성과는 합스부르크 가문 이상으로 멀어진다. 심지어 독일 제국의 황실인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자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직계 후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까지 멀쩡히 살아 있다.[9] 독일 제국의 정통성과는 거리가 먼 가문의 방계 후손을 중심으로 독일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것부터 이들의 이기적인 이념을 잘 볼 수 있다.[10]
3.2. 독일을 위한 대안
대안 우파 내지 극우 정당인 AfD 출신 전직 연방의원 비르기트 말자크빙케만(Birgit Malsack-Winkemann) 베를린 지방법원 판사가 해당 모의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AfD 전체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이미 독일을 위한 대안 당원이 극우 과격주의 발언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특히 2020년에는 대변인 크리스티안 뤼트가 '독일이 나빠질수록 대안당은 좋아진다', '이민자들을 가스로 처리하거나 총으로 쏴야 한다' 등의 발언을 내뱉어 논란이 커져 정당 전체가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의 공식 감시대상으로 지정되어 사찰을 받게 되었다. 뤼트는 이후 퇴출 조치되었지만 뤼트만이 문제가 아닌데도 한 명만 선 긋는 것으로 끝났으니 좋아 보일 리가 없어서 독일에서도 지지층을 제외하면 보수 성향의 시민들에게도 '비호감 정당'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쿠데타 모의에 소속 당원이 참가했고 반동주의 단체이자 해당 쿠데타 모의를 주도한 애국연합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겹친 데다 대안당 자체가 이러한 성향들을 지지에 이용해 왔던 지라 극우의 준동에 대안당의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
대안당은 정당 차원에서 쿠데타 모의의 검거가 진행된 당일 극우의 모의들에 반대하며 독일 정부의 검거작전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 대안당과 이 사태와의 관계는 조사에 들어갔으므로 이 부분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4. 진압 작전 및 수사
해당 단체는 2021년 11월에 결성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헤센 주 헌법수호청에서 처음 첩보를 감지해 2022년 초부터 수사 중이었다. 즉, 독일 정부는 진작에 이들의 모의를 파악하고 일망타진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2022년 12월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체포 및 수색 작전이 실시되었는데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GSG 9를 포함하여 연방 및 각 주의 경찰 특수부대 약 3천 명이 독일 전국 16개 중 11개 주에서 130여 곳을 동시에 습격했다. 그 결과 최소 25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도 각각 한 명씩 총 둘이 체포되었다.
이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에서 가장 큰 대테러 진압작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법의 불꽃 작전도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었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독일 정보부는 라이히스뷔르거 운동 지지자들이 독일 전국에 걸쳐 약 1만 6500명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한동안 이들에 대한 검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2월 13일 페터 프랑크 검찰총장은 연방의회에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는데 이 국가전복 기획의 내막을 수백 명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일제 단속 결과 석궁과 날이 넓고 무거운 흉기, 가스총, 총기 등 90여 개의 무기가 발견됐고 이에 더해 40만 유로의 현금과 금화, 은화, 600만 유로 상당의 금괴가 보관된 물품보관함에 대한 단서 등이 발견됐다. #
5. 반응
5.1. 독일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곧 총기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당국 간 정보교환 절차를 개선하고 보건당국은 특정인의 총기 소지가 적절한지 의구심이 있는 경우 총기 규제당국에 이를 통보해야 한다. 아울러 반자동 총기를 금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5.2. 러시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본건과 러시아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러시아 역시 언론보도를 통해 해당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고도 언급했다. 한편 주독 러시아 대사관은 자국 여성 1명이 체포되자 독일 수사당국에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5.3. 미국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 미국이 독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정부 파트너와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있으며 요청이 있으면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 # #6. 전망
독일에서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국민투표 등으로 입헌군주제 복고를 주장만 하는 것은 딱히 나치즘 같은 것은 아니니 문제는 아니지만[11] 이 사건의 파장이 심해지면 독일 왕정복고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어 단순히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마저 법적 제지에 들어갈 가능성도 생겼다. 이미 독일 제국의 흑백적기는 하켄크로이츠를 피해서 독일 극우주의자가 애용하던 국기여서 금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 이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수도 있게 되었다.독일 연방군에서도 가담자가 나온 만큼 숙군에 들어갈 가능성도 생겼다.
6.1. 독러관계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증명할 만한 증거나 정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양국은 별다른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다.6.1.1. 러시아의 입장
러시아는 아무 입장을 보이지 않았지만 과거부터 여러 차례 유럽의 극우 정당들을 후원해 왔고 # 러시아 측 극우주의자들도 이 사건에 동조했으나 현재로써는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증거는 없다. 만약 러시아가 이 사태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 큰 파장이 일 것이다.6.1.2. 독일의 입장
독일 입장에서도 러시아와의 갈등을 마냥 반긴 건 아닌데 처음부터 당사자 중 하나로 참전한 것도 아니고 애매한 시점에서 독일이 참전해 봤자 크게 얻을 것도 없는 사실상 무조건적 지원군에 가깝게 병사와 물자만 소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군은 독일 재통일 이후 2021년까지 계속된 군축으로 인해 과거 국방군이나 서독군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나서 재무장을 시작했으므로 이 사건이 독일-러시아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만약 러시아와의 연관성이 사실이라면 독일 입장에선 끓어오르는 반러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를 상대로 강경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는 만큼 독일 입장에서도 설령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찾아내도 성급하게 드러내긴 힘들어졌다.
7. 여담
같은 날 페루에서는 아예 대통령인 페드로 카스티요가 친위 쿠데타를 벌이려고 했으나 군대는 물론 자신의 행정부와 여당, 내각까지 포섭하는 데 실패해 곧바로 의회의 의결로 파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해당 사건은 여당이었던 자유 페루와 다르게 카스티요 본인은 온건한 경제 정책을 편 탓에 여당과 내각의 지지를 잃은 상태에서 궁지에 몰리자 벌인 최후의 발악이었다. 이미 쿠데타 직전에도 지지율이 20% 이하일 정도로 민심을 잃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제출되어 가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공교롭게도 쿠데타 모의가 발각된 다음날인 12월 8일 독일에서는 새로 도입한 재난경보문자 시스템을 실험하기 위해 전국에 테스트 경보를 울렸는데 검거와는 무관하게 이미 11월 중순 경에 시험 작동을 하겠다고 예고했으므로 우연히 시간이 맞은 셈이다. 해당 시스템이 앞으로 재난이나 테러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의도치 않게 도입 시기가 적절한 셈이었다.
하인리히 13세는 여자친구 비탈리아 B를 통해 러시아 외교관들에게 접근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들을 도와준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 유럽 극우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였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극우 세력들은 러시아를 블라디미르 푸틴의 마초적 이미지, 기독교 근본주의, 고질적인 호모포비아 문제로 인해 남성적이고 다양성에 저항하는 나라로 비춰지는지라 미국, 영국 등 '다양성으로 나약해진 서구 열강'에 맞설 수 있는 강대국처럼 보고 유럽의 우파들은 정치적 올바름, 미투(Me too) 등 페미니즘 운동, 각종 캔슬 컬처 등 서유럽의 문화적 기조에 대하여 큰 반감을 가지는지라 독일과 프랑스의 극우 세력이 러시아에 호감을 갖는다. #
아돌프 히틀러가 학생 시절에 미대 진학에 떨어진 뒤 군대에 입대한 게 이후의 경력과 이어졌기 때문에 미술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을 함부로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 사건 이후 이 우스갯소리가 재조명되었다.
2023년 12월에 '라이히스뷔르거'(제국의 시민) 운동 관련 단체 소속원 27명을 체포해 기소했다. #
사실 이 사건 외에도 선진국에서 쿠데타 모의&시도가 있었던 게 없는 일은 아니다. 당장 2차 대전 이후 서유럽 국가에서도 명백한 쿠데타 시도가 1961년 프랑스 쿠데타 시도[12], 23-F[13] 이렇게 두 번 있었으며, 비유럽권 선진국에서 일어난 쿠데타 시도까지 합하면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친위][15]과 진리국[16],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친위]도 포함된다[18]. 계획으로 그친 것에 한하면 이탈리아에서는 1964년, 1970년, 1974년 세 차례 쿠데타 모의가 있었고, 영국에서도 1974년 쿠데타 음모가 있었다고 하며( 참고자료), 스페인에서도 23-F 실패 이후에도 1997년까지 적어도 세 차례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17년( #), 프랑스에서도 2021년 극우 음모론자가 쿠데타를 계획하기도 했다. #. 물론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와 경제력, 국제적 위상[19]을 감안하면 설령 이들 계획이 실제로 진행되었어도 2024년 볼리비아 쿠데타 시도[20]와 같이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2024년 11월에는 2024년 독일 쿠데타 모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왕정 복고도 아니고 나치즘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종 청소도 계획했다는 점에서 2022년의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볼 여지가 있다.
[1]
독일 경찰이 검거 작전을 시행한 날짜다.
[2]
다만 2차 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쿠데타 시도는
1961년 프랑스 쿠데타 시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일어났다),
23-F 이렇게 두 번 있었고, 특히
스페인에서는 23-F 실패 이후에도 1997년까지 적어도 세 차례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고 한다.
[3]
이는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4]
옛 동독 무기를 관리하는 임무를 담당하며 불법으로 무기 중 일부를 선물하거나 판매한 혐의로 1999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5]
2022년 크리스마스로부터 17일 전에 반란 모의자들이 검거되었다.
[6]
당연히 이들이 예정한 날짜에 쿠데타를 일으켰어도
1982년 케냐 쿠데타,
2024년 볼리비아 쿠데타 시도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보이면서 그 즉시
독일 연방군에게 반나절 만에 진압당했을 것이므로 성공률은
진리국 건국,
기무사 계엄령과 똑같이 0을 넘어 마이너스였을 것이다. 저 둘의 실현 가능성이 어느 수준이었는지를 고려하면 애국연합이 얼마나 헛된 망상을 품었는지 알 수 있다.
[7]
독일어에서 Prinz는 "작위보유자의 아들"에게 부여하는 작위인데 프린츠의 아들도 같은 원리로 프린츠 작위를 부여받으므로 이 하인리히 13세는 마지막 로이스 후작의 증손자뻘이지만 계승권자조차 아니라서 뭐라고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다. 한편 영어로는 독일의 후작인 Fürst도 Prince로 번역해 버리기 때문에 개념의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 하인리히 13세는 왕자도 아니고 후작도 아니고 후작영식도 아니다. "로이스 추 쾨스트리츠 후작가"의 진짜 당주인 하인리히 14세와는 족보상 사촌이 되는데 방계의 방계의 방계였던 하인리히 13세의 아버지가 하인리히 14세의 할아버지의 아들로 입적된 것이라 혈통상의 촌수는 훨씬 멀어서 타인과 마찬가지다.
[8]
당시에는 오늘날
작센안할트 일부와
폴란드
루부스키에 일부를 포함했다.
[9]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외에도 호엔촐레른 가문은 이전 세대부터 워낙 아들을 많이 낳은 터라 현재에도 직계 후손이 많다.
[10]
물론 왕정복고를 주장한 만큼 하인리히 13세 본인이 황제가 되는 게 아니라
오토 폰 비스마르크 혹은
호르티 미클로시처럼 수상이나 섭정 등을 맡고 호엔촐레른 가문의 후손을 황제로 옹립하려는 계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술했듯이 계승법에 따라서 왕위 요구자가 엄연히 있는 판이라 본인이 참칭할 명분도 없고 해 봤자 다른 왕당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11]
사실 나치즘도 국민투표로 시작되긴 했다.
[12]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일어났다.
[13]
다만 이쪽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으로부터 고작 6년도 안 지난 민주화 초창기였던 시대상도 감안해야 한다.
[친위]
친위 쿠데타 모의
[15]
이쪽은
선진국에서 발생한
쿠데타로선, 실제로 성공 직전까지 갔던 드문 사례다.
[16]
옴진리교가 계획한
신정국가 쿠데타.
[친위]
[18]
미시마 사건과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도 있지만 내란선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19]
다만
오스트리아만큼은 국력이 다소 약한 편이지만,
강대국으로 취급받는
독일,
프랑스,
대한민국,
일본에 비해 약하다는거지, 엄연한
강소국이다.
[20]
쿠데타 주동자였던 후안 호세 수니가가 부하들에게 체포되며 3시간 만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