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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들을 일컫는 말.
최소한 밝혀진 바로는 총 43회의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나치 독일 초기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까지는 반나치즘적 성향의 개인이나 단체 등 민간차원의 단독범 형태가 많았다. 이 시기에는 히틀러의 대중 접촉이 잦았기 때문에 개인의 암살 시도가 가능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히틀러는 대중 접촉을 끊으면서 민간의 암살시도는 불가능해졌고 군인이나 나치당 안의 반히틀러 세력에 의한 암살 시도만 가능했다.
이런 탓에 히틀러는 점점 자신과 접촉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여나갔고 암살 시도는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의 암살 시도도 있었으나 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2. 상세
가장 널리 알려진 히틀러 암살계획은 1944년 7월 20일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으로, 톰 크루즈 주연의 " 작전명 발키리"로 영화화된 바 있다. 이로 인해 히틀러는 극도의 불신에 빠져서 다수의 장성들을 숙청했고 이런 공포 분위기로 어느 장교도 히틀러에게 감히 나서서 의견을 말하지도 못했다고 한다.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암살 시도는 미수로 그쳤다. 히틀러 암살 시도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쪽을 참고할 것.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히틀러를 죽이는 42가지 방법"(42 Ways to Kill Hitler)이라고 하여 재현 다큐멘터리로 만든 적도 있고 한국에서도 더빙 방영된 바 있다. 국방군 장교 여럿이 히틀러가 탄 비행기를 폭발시키고자 시한폭탄을 장치했는데 고장이 나서 폭발을 모면한 사례 등 히틀러도 운 좋게 암살을 모면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도 암살 미수가 많아질수록 히틀러 재현 배우가 불안한 눈으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으로 그려내면서 그럴수록 히틀러는 불안감에 빠져 누구도 믿지 못했다고 나왔다.
- 주요 히틀러 암살시도
- 모리스 버보(Maurice Bavaud) 사건 -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나치 공개 행진에 참석한 히틀러를 권총으로 저격하려고 했지만 마침 쏘려는 순간 군중들이 나치식 경례를 위해 일제히 손을 드는 바람에 시야가 가려지면서 그만 기회를 놓쳤다. 이후 독일에서 출국하던 중 게슈타포에 발각되고 말았다. 스위스인으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계다. 한국식으로는 이름이 '바보'라고 발음되고 한국의 관련 다큐에서도 마찬가지로 표기되어 의도치 않은 웃음을 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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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거브로이켈러 맥주홀 폭파 사건 - 평범한 목공이었던
게오르크 엘저가 단독으로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린 사건.
그런데 아쉽게도 히틀러가 이상한 느낌을 느껴서 한잔만 마시고 맥주홀을 나가버렸다. - 섬광 작전
-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키리 작전(1944년 7월 20일 암살미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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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페어의 암살 시도- 알베르트 슈페어는 회고록에서 벙커에 독가스를 주입하여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히틀러에 대한 마지막 암살 시도이자 44번째 암살 미수가 된다. 근거도 현실성도 없어 일반적으로 슈페어의 허풍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