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 Die Reichspräsidentenwahl von 1932 후보자들의 선거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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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월 29일 1925년 4월 26일 1925년 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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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3월 13일 1932년 4월 10일 1932년 대선 |
→ | 선거 금지 | }}} | |||
투표율 | 82.9% +5.9%p | ||||||||
선거 결과 | |||||||||
후보 |
[[무소속(정치)| 무소속 ]]파울 힌덴부르크 |
에른스트 텔만 |
아돌프 히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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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율 | |||||||||
53.0% | 10.2% | 36.8% | |||||||
득표수 | 19,359,983 | 3,706,759 | 13,418,517 | ||||||
당선인 | |||||||||
무소속 파울 폰 힌덴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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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진행된 대통령 선거로, 독일 역사상 마지막 직선제 대통령 선거였다. 중도좌파에서 우익까지 제도권 정당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예상대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동시에 힌덴부르크에 대적해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가 30% 후반대를 득표하며 바이마르 공화국의 종말을 예고한 선거이기도 했다.2. 후보자
후보 | 정당 | 지지 정당 |
아돌프 히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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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텔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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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어도어 뒤스터베르크[사퇴] | 철모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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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폰 힌덴부르크 |
[[무소속(정치)|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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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독일 중간계급 제국당 · 독일 국가당 |
3. 결과
1932년 독일국 대통령 선거 | ||||||
<rowcolor=#707070> 후보 | 정당 | 1차 투표 | 결선 투표 | 비고 | ||
<rowcolor=#707070>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수 | 득표율 |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8,651,497 | 49.5% | 19,359,983 | 53.0% | 당선 |
아돌프 히틀러 |
|
11,339,446 | 30.1% | 13,418,547 | 36.8% | |
에른스트 텔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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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3,341 | 13.2% | 3,706,759 | 10.2% | |
테어도어 뒤스터베르크 | 철모단 | 2,557,729 | 6.8% | [A] | ||
기타 후보 | 116,304 | 0.3% | 5,472 | 0.01% |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무난히 과반득표로 1차 투표에서 결선 없이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히틀러의 선전으로 0.4%p차이로 과반 득표에서 모자라 결선 투표가 치러졌다. 철모단의 테어도어 뒤스터베르크 후보는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A]
결선투표 결과는 예상대로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압승이었으나,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과 공산당을 뺀 모든 정당의 지지를 받은 힌덴부르크와 붙어 무려 36.8%로 40%에 가까운 표를 받아 대선전했다. 힌덴부르크는 대다수의 지역에서 이겼지만, 전쟁 영웅으로 얻은 인기와 모든 정당의 지지를 받은 정치적 후원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5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정도를 득표하면서 사실상 패배하였다. 포메른 지역에서는 히틀러가 무려 52.6%를 득표하며 압승했고, 대도시 지역에서도 힌덴부르크는 공산당과 접전을 치르면서 고전했다. 힌덴부르크를 포함한 기성 정치인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불만과 공산당, 유대인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선동 등이 합쳐져 나온 결과였다.
에른스트 텔만은 1차 선거에서 13%를 얻으며 선전했으나 히틀러만은 막아야한다는 일부가 힌덴부르크에 투표하고, 또다른 일부가 히틀러(...)[5]에 투표하면서 예상보다 낮은 10.2%에 그쳤다. 그러나 베를린과 라인란트 등에서 힌덴부르크와 접전을 벌이는 등 선전하였다.
참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올린 히틀러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올라갔다. 힌덴부르크는 대통령 직에 오른 지 2년 만에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했고 이후 대통령직을 아돌프 히틀러가 받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