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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23:40:15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후지쓰배에서 넘어옴
파일:baduk_test3.png 폐지된 바둑 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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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88-1fu.jpg

제1회 후지쯔배 초대 우승자인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우승 결정 직후이다. 상대는 린하이펑 九단.

파일:후지쯔_우승컵.jpg

후지쯔배 우승컵을 들고 있는 마지막 우승자 박정환. 우승컵이 항아리로 되어있는 특이한 모양새를 확인할 수 있다.

1. 개요2. 역사3. 대회 목록4. 대회 이력5. 여담

1. 개요

후지쯔배(世界囲碁選手権富士通杯)는 일본기원에서 1988년 창설한 국제 바둑 기전이자 최초의 메이저 세계 바둑 대회. 이 타이틀은 본래 응씨배가 가져갈 예정이었지만, 당시 바둑 최강국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응씨배 창설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기원 측에서 전자 회사 후지쯔의 후원을 받아 급조한 것이 유래. 이후 창설된 토요타덴소배와 함께 유이한 일본 창설 메이저 국제 기전이었다.

2. 역사

대회는 1988년 1회부터 해마다 열리며, 세계 각국에서 예선을 통과한 24명[1]이 단판승부를 통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형식으로, 결승전도 단판승부이다. 경기룰은 생각시간 3시간에 1분 초읽기 10회[2][3], 우승 상금은 1500만엔. 이는 20년간 같은 금액을 유지했다.[4]

1회 대회 당시 16명 중 한국 기사는 3명이 초대되었는데,[5] 3명 모두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창설국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5회 대회까지 일본 기사들이 우승을 독점했지만 6회 유창혁의 우승을 기점으로 한국 기사들이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 5~24회까지 단 4번을 제외하고 한국이 우승을 쓸어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우승자 연혁을 봐도 유창혁,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박정상, 강동윤, 박정환 등 쟁쟁한 한국 기사들이 번갈아가며 우승을 차지하는 식이었으니 어찌보면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기념비적인 기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6]

하지만 2011년 24회를 마지막으로 후지쯔배의 폐지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최초의 바둑 세계 대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7] 이전부터 후원사 후지쯔의 지속적인 경영 악화와 일본 바둑의 몰락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무엇보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직격탄을 맞은것이 큰 원인. 때문에 마지막 대회는 간사이 지방에서 32강 토너먼트를 5일 만에 속행시키는 등 차질이 많았다고 한다.

3. 대회 목록

4. 대회 이력

회차 년도 우승자 전적 준우승자
1 1988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1:0 린하이펑 九단
2 1989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1:0 린하이펑 九단
3 1990 린하이펑 九단 1:0 녜웨이핑 九단
4 1991 조치훈 九단 기권승[8] 첸위핑 九단
5 1992 오타케 히데오 九단 1:0 왕리청 九단
6 1993 유창혁 六단 1:0 조훈현 九단
7 1994 조훈현 九단 1:0 유창혁 六단
8 1995 마샤오춘 九단 1:0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
9 1996 이창호 九단 1:0 마샤오춘 九단
10[9][10] 1997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 1:0 왕리청 九단
11 1998 이창호 九단 1:0 창하오 八단
12 1999 유창혁 九단 1:0 마샤오춘 九단
13 2000 조훈현 九단 1:0 창하오 九단
14 2001 조훈현 九단 1:0 최명훈 八단
15 2002 이세돌 三단 1:0 유창혁 九단
16 2003 이세돌 七단 1:0 송태곤 四단
17 2004 박영훈 六단 1:0 요다 노리모토 九단
18 2005 이세돌 九단 1:0 최철한 九단
19 2006 박정상 七단 1:0 저우허양 九단
20 2007 박영훈 九단 1:0 이창호 九단
21 2008 구리 九단 1:0 이창호 九단
22 2009 강동윤 九단 1:0 이창호 九단
23 2010 쿵제 九단 1:0 이세돌 九단
24 2011 박정환 九단 1:0 추쥔 八단

5. 여담



[1] 제1회는 16명, 마지막인 2011년 24회는 32명 - 7개 지역구 예선을 거친 29명(대한민국 6명, 일본 13명, 중국 6명, 대만·북미·남미·유럽 각 1명)과 전 대회 3위내 입상자 [2] 2002년 15회까지는 덤이 5집반이었지만 2003년 16회부터 한국처럼 6집반. 그리고 마지막인 2011년 24회는 생각시간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3] 이 형태는 바로 이전의 6시간에 육박하는 장기전 위주의 바둑에서 탈피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훗날 하나둘씩 창설되는 바둑 세계 대회 룰의 본보기가 되어왔다. [4] 중간에 2000만엔으로 잠깐 인상시킨 적은 있었으나, 후원사의 재정 문제로 16회 때 다시 복구시키고 준우승 이하의 상금은 오히려 대폭 줄이기도 했다. [5] 해당 기사는 당연히 조훈현, 서봉수가 발탁되었지만, 나머지 한명은 장두진이 선발되는 약간의 이변이 있었다. [6] 한국 바둑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2000년대 우승한 기사만 봐도 당시 한국 바둑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 중국도 4번의 우승 기록이 존재하긴하나, 중국 바둑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 초반에 후지쯔배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만의 무대로 남아버리게 되었다. [7] 마지막 우승자는 박정환 九단. 박정환의 우승은 이세돌 이후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8] 첸위핑 九단의 병세 악화로 결승전 직전에 쓰러져서 국제 바둑 기전 사상 첫 기권승이 나왔다.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 여담으로 3위결정전도 기권승이 나왔다. [9] 여담으로 당시 대회에선 한국기원 소속의 선수들이 16강에서 전부 탈락하며 세계 바둑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때는 한국 바둑이 대회 초창기같은 약체가 아니었고, 떨어진 기사들이 무려 리즈 시절의 서봉수, 이창호, 유창혁이었다. 물론 한국기원 소속이 아닌 한국 국적 기사를 포함하면 조치훈이 8강에 진출하긴 했다. [10] 고바야시 九단의 이 대회 우승은 2023년까지 일본 국적 기사의 마지막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었으나, 2024년 응씨배에서 이치리키 료 九단이 우승하며 27년만에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