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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21:12:10

쇼카쿠급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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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ig_of_japanese_aircraft_carrier_Shokaku_in_1942.gif 파일:external/stephenesherman.com/ijn-carrier-shokaku-0009.jpg
翔鶴
Shokaku-Class Aircraft Carrier

1. 개요2. 제원
2.1. 설계의 특이점
3. 함생4. 평가5. 기타
5.1. 대중매체에서의 쇼카쿠급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 쇼카쿠(翔鶴(상학) しょうかく).

기존의 히류급 항공모함을 대형화시켜 개량한 정규항공모함이다. 쇼카쿠와 즈이카쿠로 총 2척이 건조되어 활동하였다.

쇼카쿠(翔鶴; 상학)[1]급 1번함 쇼카쿠는 진주만 공습을 비롯해 수많은 해전에 나섰던 항공모함이며 이름의 한자인 '상학(翔鶴)'은 각각 '날다'와 장수의 상징 '' 을 의미한다. 2번함 즈이카쿠는 쇼카쿠처럼 수많은 해전에 참여하였으며 이름의 한자인 '서학(瑞鶴)'은 각각 '상서로움'과 장수의 상징 '학'을 의미한다.

2. 제원

전장 257.5m
전폭 26m
흘수선 8.87m
기준배수량 25,675t
만재배수량 32,105t
최대출력 160,000hp
최대속력 34.2kt
연료탑재량 5000t
항속력 18kt로 9,700 해리
무장 40구경 12.7cm 연장 고각포 8기, 25mm 3연장 기관총 12기
(개량하면서 계속 바뀜)
함재기 수 상용 72기(함전 18기, 함공 27기, 함폭 27기)
+보충기 12기(함전 2기, 함공 5기, 함폭 5기)
최대 84기[2]
비행갑판 242.2X29(m)
승무원 1,660명
자매함 즈이카쿠
번호 이름 진수 취역 최종 설명
1 쇼카쿠 1939-06-01 1941-08-08 1944-06-19 필리핀 해 해전에서 침몰
2 즈이카쿠 1939-11-27 1941-09-25 1944-10-25 레이테 만 해전에서 침몰

2.1. 설계의 특이점

쇼카쿠급은 다이호를 제외하면 일본의 가장 선진적이고 고성능을 갖춘 나름 수작이었다. 기관부 출력부터가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함선이었고[3] 일본 해군 최초로 구상선수가 도입되었다. 덕분에 실전에서 카탈로그상으로 나온 속도보다 빠르게 달리기도 했다. 산호해 해전 당시 근처에 있던 즈이카쿠의 호위대로 붙어있던 구축함 우시오의 사관이 40노트로 착각할 정도로 내달려서(쇼카쿠의 승조원쪽 증언으로는 34.5노트 정도였다고 한다.) 쫓아가지 못한 일도 있었으며 산타크루즈에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 쇼카쿠의 퇴각을 결정했을 때도 옆의 구축함들보다 빠르게 달렸다.

또한 과거 선배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함교를 우현에 설치했으며,[4] 방어력과 데미지 컨트롤에도 신경을 많이 쓴 함선이었다.

격납고 안에는 소화지휘소가 3군데 있어 더 빠른 소화지휘가 가능했다. 그리고 소화장치로 포말식 소화장치를 설치하고[5] 소화 펌프의 증설 및 강화가 이뤄졌으며 연료탱크 주위를 물로 채워 폭파 위험을 줄이고, 밀폐형 격납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측벽을 일부러 얇게 설계해 내부 폭발이 일어났을 때 그곳으로 폭발력이 새어나가도록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실전에서도 이 설계로 인해 몇 번이나 폭탄을 얻어맞았음에도 기관부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었다.[6] [7]

이후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거듭된 개량을 받을 수 있었는데 미드웨이 해전 이후 가연성 물질을 제거했고, 산타크루즈 이후에는 수리공들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으며 마리아나 이후에는 폭격에 대한 방호력도 차곡차곡 올라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완성될 즈음이면, 이미 미국은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양산하던 시기인데다 그동안 무시했던 미군의 어뢰가 위협적인 공격수단으로 성장했고 이에 대한 대비는 부족했다. 전쟁 초중반의 미국 어뢰가 "설마 터지겠어?"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었다. [8]

일본 항모설계의 결정체처럼 여겨지고는 있지만, 함선으로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항공모함으로서의 완성도는 다소 미묘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의외로 이런저런 불만도 있었던 군함이었다.
파일:OC9DrQp.jpg
위에서 부터 아카기, 카가, 쇼카쿠의 비행갑판 비교

일단 짧고 좁은 비행갑판이 지적됐다. 아카기야 원체 태생부터가 컸으니 그렇다쳐도, 자신보다 함체가 작은 카가와 비교해도 함의 길이는 10m 길었음에도 비행갑판은 오히려 6m 더 짧았다. 또한 원래는 함교가 왼쪽에 설치될 예정이었는데, 건조 도중 설계상의 문제로 함교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좌우 무게 밸런스 문제로 함교를 갑판 안쪽으로 끌어오는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안그래도 넓지 않은 비행갑판이 더욱 비좁아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갑판을 효율적으로 쓰기 어려운 함이었던 것. 여기에 격납고도 그리 넓지 않다는 문제도 지적되었다.

원래는 완성과 동시에 제1항공전대의 기함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이러한 문제로 인해 함재기의 설계를 담당하는 항공본부, 작전에 운용하는 제1항공전대 상층부, 실제로 함을 쓰게 되는 제1항공전대 조종사 모두에게 낙제점을 받으며 결국 기함건은 취소. 제1항공전대의 기함은 아카기에서 변동되지 않은채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후 아카기가 격침되고 난 뒤에야 1항공전대로 이동되어 1번함인 쇼카쿠가 기함자리를 맡게되지만, 얼마 안있어 다이호가 취역하자 곧바로 기함자리를 내주고 만다. 한마디로 구형함에게서는 기함자리를 빼앗지 못한 반면 자신보다 신형함에게는 너무도 쉽게 기함자리를 내어줬다는 것이 이 함의 성능을 논함에 있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여러모로 해군이 기대했던 신형 대형 항공모함의 성능에는 2% 모자랐던 셈.[9]

항해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허리가 얇고 선체 자체는 높아 파도에 배가 크게 요동치는 경우가 많았다. 진주만 공습 당시 일지에는 쇼카쿠가 아카기의 3배, 소류의 1.5배는 흔들린다고 기록되어있고, 준요에서 근무하다 쇼카쿠로 이동해온 군의관의 수기에는 배가 흔들려서 도저히 못해먹겠다는 불만이 적혀있었을 정도. 고속항해시에도 비행갑판에 전해지는 진동(엔진의 진동이 선체의 뼈대를 통해 그대로 전해지는 현상)으로 인해 함재기의 이착륙이 어려웠다고도 한다. 덕분에 그 넘치는 기관부 출력을 풀로 사용하는데 제약이 많았던 모양.

사실 쇼카쿠급 자체는 기존의 일본항모와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 이전의 사상으로 설계된 함이었고, 일본 해군 상층부도 함재기의 공격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비장갑항모인 쇼카쿠급의 한계를 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은 쇼카쿠급이 완성됨과 동시에 장갑항모인 다이호의 건조에 착수했다. 다만 다이호의 선체설계에도 쇼카쿠급의 설계가 다수 반영됐으며 다이호가 대전기 일본 항모의 결정체로 여겨지고 있다.

3. 함생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에 5항전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이후 소속부대가 바뀌는 와중에도 항상 함께 움직였으므로 두 배의 행적은 같다.

3.1. 전쟁 초기

태평양 전쟁은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되었고, 총 6척의 항공모함(아카기, 카가, 히류, 소류, 쇼카쿠, 즈이카쿠)이 이 임무에 동원되었고 진주만을 공격했다. 쇼카쿠는 이후 라바울 공격에 참가했고 라바울은 일본군의 손에 떨어졌으며, 실론 해전에서 영국군을 묵사발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3.2. 산호해 해전

1942년 5월, 쇼카쿠는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방면으로 진출한다. 미군은 이를 막기 위해 항공모함 렉싱턴과 요크타운을 보냈고, 5월 7일에 쇼카쿠의 정찰기가 미군 항모전단을 발견한다.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즉시 함재기를 보내지만,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에 속해있던 제6전대(기함 아오바) 소속의 중순양함 후루타카 키누가사가 다른 곳에서 적 항모를 발견했다고 연락해온다. 연락을 받은 쇼카쿠는 눈앞의 항모를 먼저 처리하기로 하고 공습을 감행, 문제의 항모를 처리하지만 이 항모는 사실 미군의 유조선이었고, 진짜 미군 항모는 후루타카와 키누가사가 보고한 바로 그 위치에 있었다! 미군은 포트 모로즈비 침공부대를 5항전으로 착각하고 총공격을 감행했고,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의 유일한 경항모 쇼호는 처참하게 침몰했다. 쇼카쿠의 정찰기가 식별을 잘못하는 바람에 미군 항모를 격침시킬 기회를 놓치고 쇼호만 무의미하게 침몰해버린 것.

이후 미군과 일본군은 치열하게 상대를 탐색했지만 양쪽 모두 더 이상의 공격은 못했다. 쇼카쿠 함재기들도 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출격은 해봤지만, 쇼카쿠 정찰기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당연히 허탕을 친 끝에 쇼카쿠(?)로 돌아왔고, 쇼카쿠 함재기들은 안전을 위해 폭탄을 버린 후 착함한다. 그러나 착함하려던 순간, 쇼카쿠 함재기들은 눈앞의 항모가 쇼카쿠가 아니라 요크타운임을 알았고,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이후 쇼카쿠는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의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키누가사까지 징발해와서 결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문제의 어벙벙한 정찰기는 쇼카쿠로 돌아오던 중에 길을 잃었고, 조종사들은 일본 구축함에 의해 구조되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조종사들은 예비군이었고, 본래의 정찰병은 배가 아파서 출격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5월 8일,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미국의 항공모함 렉싱턴(CV-2)에게 뇌격처분 받을 정도의 타격을 입히고 요크타운까지 중파시킨다. 그러나 미군 역시 함재기로 공습을 가했고, 즈이카쿠는 재빨리 구름 속으로 숨어서 공습을 피했지만 쇼카쿠는 그러지 못해서 폭탄 3발을 맞고 전방 엘리베이터 및 함수 쪽 비행갑판과 격납고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고 함재기 연료보관고에 화재까지 발생했다. 즈이카쿠의 승무원이 "아 쇼카쿠 격침된 듯..." 이라고 할 정도의 피해였지만 쇼카쿠는 살아남았고, 후루타카와 키누가사, 그리고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으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즈이카쿠는 무사했지만 함재기 대부분을 잃었으므로 공중엄호는 불가능해졌으며, 경항모 1척과 중순양함 2척을 잃은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는 후퇴한다. 일본은 전술적 승리는 얻었지만 포트 모르즈비 침공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전략적인 승리를 얻었다.

이 해전은 항공모함끼리 겨룬 최초의 해전이며, 렉싱턴이 침몰, 요크타운을 대파시키긴 했지만 쇼카쿠의 함체가 피해를 입어 수리가 필요했으며 즈이카쿠 역시 항공대의 보충을 해야 했으므로 당분간 작전이 불가능해졌다. 쇼카쿠는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둘리틀 특공대의 도쿄 공습 때문에 손상을 입은 항공모함 류호가 도크에 들어앉아 있었기에 수리가 늦어졌다.

이후 5항전의 미숙함을 언제나 비웃던 1항전( 아카기, 카가)승조원들은 "풋내기들에게 깨지는 미군 따위는 두려울 게 없다"며 2항전(히류, 소류)을 데리고 미드웨이로 진격하지만 그들 모두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멸한다. 일본군은 최강의 항공모함 4척을 잃어버린 것이다. 특히 아카기와 카가의 1항전은 일본 해군 최강의 전력이었고, 숙련도와 실전경험 등, 모든 측면에서 다른 항모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1항전과, 그 다음으로 숙련된 2항전을 잃은 이상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워야 했다.

3.3. 과달카날 전투

미드웨이 해전 이후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류조와 함께 일본에 남은 세 척 뿐인 정규항모가 된다. 류조가 정규항모로 취급받지만 크기는 경항모 수준이었으므로, 사실상 쇼카쿠급 두 척이 일본 유일의 정규항모가 된 것이다. 이들을 보조하기 위해 정규항모만큼 거대한 상선개조항모 준요가 따라왔고, 진짜 경항모인 즈이호도 가세한다. 그리고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1항전의 자리를 계승했다.

그리고 과달카날의 혈전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일본군 제 8함대[10] 사보섬 해전에서 승리하며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미 해병대를 고립시켰으므로 제해권을 지키면서 과달카날을 점령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역시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정예부대를 총동원해서 과달카날을 지킬 생각이었으므로 혈전은 불가피했다.

과달카날에 진출한 쇼카쿠는 8월24일,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고, 미끼로 내세운 류조를 덥석 문 미 해군 항모부대를 찾아내고 정찰기로 통해 확인된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하여 중파시킨다. 그러나 일본군도 류조를 잃었고, 나구모 주이치는 쇼카쿠와 즈이카쿠를 퇴각시킨다. 과달카날로 향하던 수송함대는 원래 엄호 담당이었던 류조를 잃은 데다, 주력함대에게까지 버림을 받은 꼴이 되고 만다. 제8함대 기함 초카이, 제6전대(기함 아오바), 제2수뢰전대(기함 진츠), 수송함 3척으로 구성된 수송함대는 안간힘을 썼지만 미군의 공습에 견디지 못하고 철수한다. 미 해병대를 무찌르려면 수송부대가 과달카날에 가서 일본군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이게 실패한 것이다. 작전 실패의 원인은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철수해버린 탓이었기에 나구모는 욕을 바가지로 퍼먹는다.

1942년 9월, 쇼카쿠는 21식 레이더를 달았다. 아직 성능 면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일본 항공모함 중 히요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 레이더는 이후 쇼카쿠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쇼카쿠, 즈이카쿠, 준요, 즈이호는 미군 항모들을 공격한다. 엔터프라이즈는 정찰용으로 띄운 급강하폭격기 2대로 즈이호를 중파시켰지만 미리 이륙한 일본군 함재기들은 호넷을 공습해 큰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는 스콜 속에 가려져 있었고, 결정적으로 즈이카쿠의 함재기들이 제때 출격하지 못했다. 쇼카쿠는 레이더를 갖고 있었기에 타이밍을 맞췄지만, 즈이카쿠에게는 레이더가 없었던 데다가 쇼카쿠로부터 20km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딩가딩가 놀고 있냐 즈이카쿠 미군은 쇼카쿠를 때려잡기 위해 몰려왔지만 쇼카쿠의 레이더가 이때 빛을 발했다. 미군이 몰려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곧바로 연료를 옮기는 등의 대책을 실천한 것이다. 이후 쇼카쿠는 호넷 공격대의 공격을 받아 폭탄 4발을 맞아 후방 비행갑판 및 격납고가 파손 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미리 준비를 했기에 침몰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즈이카쿠와 준요는 엔터프라이즈를 발견, 대대적인 공습으로 엔터프라이즈에 폭탄 2발을 맞추고 전선에서 후퇴하게 만들었다. 호넷은 미군에 예인되었지만 준요에게 발목을 잡혔고, 이에 미군은 호넷 처분을 결정하고 어뢰 및 함포를 쏘는 와중에 추격 온 적 함대를 발견, 결국 호넷을 버리고 퇴각한다. 이후 호넷은 일본 구축함에게 나포될 뻔했지만, 폭발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일본군은 호넷을 어뢰로 처분한다. 일본군의 승리였지만 즈이카쿠와 준요는 함재기 대부분을 잃었으므로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이후 일본군은 즈이카쿠와 쇼카쿠를 일본에 돌려보내고 준요만 과달카날에 남겨두게 된다.

그 후 벌어진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일본 연합함대를 말 그대로 박살 내버린다. 준요는 함재기 보충을 받지 못했기에 전투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후퇴하게 된다.

산타크루즈 해전 이후 본토로 귀환하여 수리를 끝낸 쇼카쿠였지만 함재기들은 지상에 배치되어 소모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것이 쇼카쿠에게는 치명상이 되는데, 과달카날에서 항공전력을 소진했으니 보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육성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게다가 지상에 배치된 함재기들은 연이은 격전으로 소모되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쇼카쿠는 빈 깡통이 될 판국이었다. 일단 머릿수는 채워놓았지만, 이착함조차 제대로 못하는 조종사들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1943년에도 몇 번 출격하기는 했지만, 미군이 임무를 마치고 철수한 후였기에 제대로 싸우지는 못했다.

3.4. 필리핀 해 해전

맥아더의 진공에 놀란 일본군이 비야크 섬에 지원병력을 보내기 위해 16전대(기함 아오바)를 주축으로 한 혼작전을 진행하던 도중, 중부 태평양 방면에서 진격하던 미 해군은 불사신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해 총 15척의 항공모함을 동원해서 공격해온다. 정규 항공모함만 7척이라는, 어마어마한 전력이었기에 일본군은 혼작전을 중단한 후 쇼카쿠를 비롯한 항공모함 9척으로 맞서게 된다. 언제나 기함을 담당하던 쇼카쿠였지만, 이번에는 일본군의 신형 장갑항공모함 다이호에게 기함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의 정규항모는 다이호, 쇼카쿠, 즈이카쿠의 3척이었고, 개조항모인 히요와 준요를 제외한 나머지 4척은 경항모였다. 게다가 함재기 조종사들의 역량도 매우 부족했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은 경항모 3척을 미끼로 내세우고, 주력부대를 뒤에 배치해서 미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오자와의 진형에 의해 부족한 구축함 전력이 분산되어 버렸고, 미군 함대에 대한 선제 공격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미군 잠수함들에게 틈을 보이게 된다. 결국 쇼카쿠는 미국 가토급 잠수함 카발라의 뇌격에 가스 누출과 폭탄 유폭으로 대화재가 일어난 걸 전원이 나가는 바람에 못막아서 격침되고 말았다. 퇴함 절차는 생존자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비행갑판에 집결시키는 과정은 개념있게 진행되었는데 사람들을 다 찾아서 모아놓고는 점호를 하는 등의 뻘짓을 하면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점호 도중에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나고 배가 앞으로 수직에 가깝게 기울어지면서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인명피해가 또 크게 늘어나고 말았다.침몰 당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함내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 팔다리가 날아가는 등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후의 결과와 즈이카쿠의 운명에 대해서는 즈이카쿠 항목 참조.

4. 평가

일본에선 1항전인 아카기와 카가를 최고의 수훈함으로 치지만, 해외에선 이들 쇼카쿠와 즈이카쿠를 최고의 수훈함으로 쳐주는 편이다.

미국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과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요크타운과 쇼카쿠는 여러 피해를 받았지만 질기게 살아남아 상대를 괴롭혔고 동생들인 엔터프라이즈 즈이카쿠는 두 나라 해군의 항공모함 중 가장 운과 실적이 좋았던 등 비교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요크타운급 3자매에게 준 피해는 쇼카쿠가 많았고 엔터프라이즈의 경우 동부 솔로몬 해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타격을 입어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에 쇼카쿠도 들어간다.

적의 공격이 닥쳐오면 쇼카쿠가 즈이카쿠를 대신해 폭탄을 얻어맞곤 해서 붙은 별명이 '불운전담함', '피해담당함'이며, 필리핀 해 해전 이전까지 즈이카쿠가 피격당한 적이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평가가 깎이는 감이 있다.탱커 그러나 즈이카쿠의 강운의 비결도 사실 쇼카쿠가 즈이카쿠 몫의 악운을 끌어안아주었던 것뿐이고, 쇼카쿠도 충분히 활약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쇼카쿠 역시 상당한 수훈함이고 기함으로써의 활약도 했던 만큼 깎아내려질 만큼 모자란 배는 아니다. 즈이카쿠를 대신해서 폭탄을 맞았다는 대목에서 알수 있듯이 둘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작전했기 때문에, 이를 거꾸로 뒤집으면 즈이카쿠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것이지 반대로 쇼카쿠 대신 얼마든지 얻어맞을수도 있었다.

오히려 즈이카쿠는 일본군 상층부로부터 "결정적인 순간에는 전공을 세우지 못한다"며 구박받은 배였다. 즈이카쿠(함대 컬렉션) 문서에는 "비구름 아래로 숨어 공격을 피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쪽도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거나, 비행갑판에 문제가 생겨 함재기가 출격을 못 하고, 미묘하게 전장에 떨어진 곳에 있었던 등의 이유로 남들이 싸우고 있는 와중에 혼자 띵가띵가 놀거나 하는 에피소드도 많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언제인지는 일본어 위키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제때 출격을 하지 못하고, 쇼카쿠와는 20km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쇼카쿠에게만 미군의 공격이 집중된 것은 일본어 위키에 나와 있다. 산호해 해전에서 즈이카쿠가 스콜 속에 숨었던 적도 있으므로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면 상층부에서 째려보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게다가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엔터프라이즈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전략적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전술적 승리라면 거둔 적이 있지만, 그것이 전략적 승리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이 일본군에게는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엔터프라이즈를 상대로 맞서 싸운 것은 대단한 무훈이다. 엔터프라이즈에게 언제나 지기는 했지만,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없었다면 일본군은 주간전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을 것이다. 야간전이야 중순양함과 수뢰전대가 어떻게든 한다고 해도, 주간전에서는 답이 없다. 쇼카쿠 자매가 없다면 엔터프라이즈에게 맞설 항공모함은 덩치는 크지만 느린 준요, 경항공모함 즈이호, 그리고 (미끼가 되지 않았다면) 속도는 빨라도 덩치가 작은 류조밖에 없다. 나머지 떨거지들은 고장난 상태라 도움이 안 된다. 이 정도 세력으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와스프, 새러토가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일본의 쓰레기같은 전함들이 미 항모전단을 이길 가능성도 없다. 구축함한테 지는 야마토와 나가토한테 무엇을 바라겠는가. 결국 누군가가 전선을 지탱해줘야 했고, 그게 바로 쇼카쿠와 즈이카쿠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일본 해군이 그나마 싸움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일본은 물론 미국 역시 훌륭한 함선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5. 기타

미국의 정보부는 쇼카쿠의 진수를 알고 함명을 알아냈는데, 이게 음독인 쇼카쿠가 아니라 훈독인 '카제즈루'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게 전달되고 영자화 되는 과정에서 꼬여서 '카데쿠루'가 되었다. 일본군[11]의 함명 작명 시스템을 알고 있던 미국 정보부는 당연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 함명을 알고는 일본에서 신형 전함을 건조했다라는 착각을 했다고 한다. 다만, 대형 순양함 알래스카급이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건조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데, 애초에 신형 전함을 잡기 위해서 대형이라고는 하지만 순양함을 새로 건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생각했던 '카데쿠루'가 실은 순양전함과 중순양함 중간 정도의 물건이었던 B-65 초갑순이었다는 설도 있다.

쇼카쿠는 즈이카쿠와 동형함이라 그런지 외형상 거의 차이가 없었는데, 심지어 함재기 조종사들조차 배를 헷갈려 서로의 배에 잘못 착함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12] 구별을 위해 카타카나 'シ'(시), 즈이카쿠에는 'ス'(스)를 적어두긴 했지만[13] 크게 도움은 안 되었다고 한다.

미드웨이로 출진한 1항전과 2항전은 갑판 위에 커다란 일장기를 그려넣었는데, 산호해 해전에서 쇼카쿠 함재기들이 미군 항모에 착함할 뻔한 사고 탓이었다. 적과 아군은 구별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였는데, 문제는 미군 조종사들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일장기를 표적으로 삼아서 폭격해왔다는 점이다.

중순양함 아오바와는 악연으로 엮인 사이. 산호해 해전에서 5월 7일 쇼카쿠에게 아오바의 제6전대가 미군 항모전단의 위치를 알려줬는데도 무시함으로써 공습할 기회를 날리고 경항모 쇼호가 침몰했으며, 여기서 기회를 날리는 바람에 다음 날에 안 해도 될 전투를 벌이다가 쇼카쿠가 대파되었고, 그 여파로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사보섬 해전에서 아오바가 가져온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지키지 못한 것도 쇼카쿠이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쇼카쿠와 즈이카쿠에게 버림받고 적의 공습에 시달린 수송함대에 속해있던 것도 아오바다. 이 외에도 아오바가 16전대 시절 실시한 혼 작전은 비야크 섬의 일본군을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필리핀 해 해전에서 참패하면서 비야크 섬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쇼카쿠가 이 해전에서 침몰함으로서 아오바와 쇼카쿠와의 악연은 끝나게 된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즈이카쿠가 미끼 작전을 성공시키고, 그 덕에 아오바의 16전대가 레이테 섬 돌입에 성공하면서 마지막 체면은 건진 게 위안. 첨언하자면 아오바와 쇼카쿠는 엔터프라이즈의 '비교대상' 항목 맞수 부분에 나란히 실려있으며, 둘 다 몇 번이나 침몰 직전까지 얻어터지고도 살아남았기에 자주 비교된다.

전쟁말에 일본 항모는 각종 위장 무늬를 칠했는데 쇼카쿠만은 침몰 당시까지 별다른 위장 도색을 하지 않았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이 당시 중화민국의 통화발행량의 2배가 넘는 40억 위안의 위조지폐를 찍어내 중화민국에 뿌려 중화민국의 경제를 마비시키는 작전을 실행했었는데 이 때 위조지폐 양산에 든 비용이 쇼카쿠급 항공모함 한척과 비슷했다. 그런데 중화민국 국민정부에서 전비를 충당한답시고 무려 1,890억 위안을 제 손으로 찍어내 뿌려버리는 바람에 일본의 작전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오히려 중화민국 정부가 막 찍어내 질이 조악한 진짜 화폐 대신 질 좋은(?) 일본산 위조지폐가 더 많이 쓰이는 기현상까지 생겼다고. 이 작전의 책임자는 이러한 기현상을 보고 "중국은 실로 사람을 두렵게 하는 나라다."라는 촌평을 남긴 바 있다.

5.1. 대중매체에서의 쇼카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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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에선 '쇼가쿠'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현행 일본어 표기법과도 맞지 않는 잘못된 표기이다. 이런 표기대로라면 도쿄 도교가 되어야 한다. [2] 상시 노천 계류기 28기(함전 14기, 함공 6기, 함폭 8기) [3] 엔진 출력만 따지면 야마토급 전함(153,000마력)과 무사시(150,000마력)보다 더 높다. 다만 야마토의 기관부는 항해 안정성을 위해 출력제한을 걸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관 자체의 최대출력은 야마토급이 더 높다. [4] 원래는 좌현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중간에 설계가 변경되었다. 다만 여기에 함의 외곽에 함교를 설치하여 비행갑판을 최대한 넓게 쓰는 기존 일본 항공모함의 설계와는 달리 함교가 비행갑판에서 솟아오르는 형태로 제작되었고, 이것이 비행갑판을 좁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5] 미드웨이 이전 일본 항공모함에는 이산화탄소 소화장비와 비눗물과 해수를 혼합한 소화액을 살포하는 장치가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전훈으로 탄산수소나트륨 기반의 포말소화액을 이용한 소화장치가 설치되었다. [6] 대신 저 측벽 설계로 인해 갑판의 지지력이 약했다. 그래서 유독 쇼카쿠가 크게 다치고 돌아왔던 것. 이는 다이호에 와서 개선된다. [7] 설계미스에 가깝다. 갑판부를 측벽이 지지한다면 모노코크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하중을 지탱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보강재를 붙여서 세미모노코크 구조에 가깝게 만들어 보완할 수 있다. [8]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적 함재기의 공격에 폭탄 6발, 어뢰 3발, 함재기 2대를 맞고 회생불능이 된 항공모함 호넷을 자침할 때, 미국 구축함이 어뢰 16발을 쏴서 9발을 명중시켰음에도 침몰하지 않았다. 심지어 호넷은 배수량 제한으로 TNT 180kg에 대응하는 어뢰 방호력만 갖춘 상태였음을 고려하면 명중시킨 어뢰들 중 제대로 작동한 것은 한 발도 없었던 셈이다. 후에 일본 해군이 호넷을 인양하려 했지만, 화재가 너무 심해서 인양을 포기하고 어뢰 3발만으로 침몰시켰다. [9] 묘하게 이점에서도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과 닮은 점도 있는데 요크타운급 역시 구형함 렉싱턴급들에게 늘상 기함자리를 내어주다가 렉싱턴급들이 전부 최전방에서 물러난 뒤에야 기함 자리를 맡았고 이후 에식스급이 취역하고 치른 첫 대규모 해전인 필리핀 해 해전부터는 냅다 에식스급 렉싱턴이 기함자리를 꿰차버렸다. [10] 기함 초카이와 제6전대(기함 아오바)를 주축으로 한 함대. 초카이, 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 카코, 텐류, 유바리, 유나기가 작전에 참가했다. [11] 중순양함과 순양전함은 산, 경순양함은 하천의 이름, 항공모함은 신화, 전설 속의 날짐승, 전함은 역사 속에서 '쿠니(율령국, 律令国)'라고 불리던 지역명 [12] 원래 일본의 항모는 둘이 한 조로 짝을 지어 운용하는 것을 전제로 두척씩을 건조했었고, 이 둘이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는 왼쪽에 함교를, 다른 하나는 오른쪽에 함교를 설치했었다. 이후 쇼카쿠급을 만들 때는 상술했듯 좌현 함교 설계 자체가 문제가 많음이 밝혀지고, 여기에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지 않아?'까지 겹쳐 쇼카쿠급은 둘 다 오른쪽에 함교를 두었던 것이다. [13] 원래 일본 항모들은 착함 식별을 위해 함명의 첫 글자를 갑판에 가타카나로 적어두었다. [14] 보통은 해전맵 특성상 베이스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