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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1940년)

한국독립당
(1930년)
(해산)
한국국민당
(1935년)
(개별 합류)
한국국민당
(1935년)
한국독립당
(1935년)
조선혁명당
(1937년)

[[한국독립당(1940년)|
한국독립당
]]

[[한국독립당(1940년)|
한국독립당
]]
국민당
(1945년)
신한민족당
(1945년)
파일:한국독립당 당기.png
한국독립당
창당일 1940년 5월 8일
해산일 1950년 6월 25일[1]
이념 한국 내셔널리즘
보수주의
삼균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우파 ~ 우익

1. 개요2. 역사
2.1. 해방 이전2.2. 해방 이후
3. 성향4. 기타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당.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인사들이 많이 활동한 정당이었다.

2. 역사

2.1. 해방 이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동할 당시 여당으로, 전국연합진선협회가 무산된 뒤 1940년 3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했던 세 당이 한국독립당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1940년 5월 8일 3당이 해체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한국독립당이 3.1 운동의 정맥을 계승한 민족운동의 중심적 대표 정당임을 천명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치 체제로 운영되는 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활동을 벌였다. 상해의 한국독립당과 만주의 한국독립당은 같은 이름의 당으로 합쳐지는 것으로 명맥을 잇게 되었다.

당의 군대로 1939년 한국독립당 당군을 결성했고, 이는 한국광복군의 전신이 되었다. 참고로 1931년 무렵 활발히 활동한 '한국독립군'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 군대는 지청천 등의 주도로 만주에서 결성된 또다른 한국독립당의 당군이었다.

2.2.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자 1945년 11월 국내에 당으로 공식 등록하고 활동했다.

반탁 운동으로 미군정과 갈등을 겪으면서 활로를 찾기 위해 한국민주당을 비롯해 안재홍이 이끄는 국민당, 이갑성이 이끄는 신한민족당 등에 통합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김구와 한국독립당이 내건 조건은 상대측 입장에선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통합 정당의 강령은 임시정부의 삼균주의를 계승하고 총재와 당명 역시 한국독립당이 정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민주당의 경우는 이승만이 중간에서 갈등을 부추긴 탓에 큰 저항을 보였다. 결국 통합운동은 한국민주당이 불참한 상태에서 한국독립당과 국민당, 신한민족당이 통합되며 끝났다. 허나 한국민주당이 빠진 통합의 효과는 한국독립당이 당초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이후 김구가 남북 협상에 참여하면서 보수 쪽 지지자가 이탈하고, 총선에도 불참하면서 당은 몰락하고 만다. 단, 김선 등 일부 당원들은 무소속으로 5.10 단독선거에 출마했다. 그 후 지청천, 신익희는 대한국민당으로, 이시영은 자유당을 거쳐 민주국민당으로, 이범석은 자유당으로 가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임시정부의 정통 계승자였던 한국독립당은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힘으로 당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김구의 지지 세력이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계열에게 흡수되면서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김구까지 암살되자 사실상 정당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49년 말쯤이 되자 지방도당들이 하나둘씩 해산되거나 중앙집행위원회도 제대로 열지 못할 정도로 쇠락했다. 출처

1949년 6월 전향자들을 교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관제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이 결성 되었을 때, 한국독립당 계열 인사들도 반강제적으로 가입되곤 했었는데 대표적인 인사가 문학가 정지용 같은 케이스였다.

이후 1950년 조소앙이 한독당을 탈퇴하고 무소속으로 그 해 5월 30일에 열렸던 2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나[2] 다음달 바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북협상 당시 함께 방북했던 김규식과 함께 납북되었다. 당 차원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총선에 참여하자는 현실파를 중심으로 총선에 총 19명의 후보를 내었으나 한명도 당선되지 못했고, 다만 중간파들의 선전이 두드러졌던 선거이니만큼 조소앙처럼 한독당 출신 무소속 후보들이 꽤 많았다. 한독당은 전체 19명 중 거의 절반인 8명을 전라북도에 후보를 내는 등 나름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똑같이 중간파 출신 정당인 민족자주연맹과 다르게 한석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안습.

한편 북한이 1950년 6월 7일 남북 평화통일이라는 명분으로 개최한 조평통 확대위원회에 한독당이 참여한 것이 확인된다. 이는 총선에서 참패한 후 여전히 김구 노선 유지를 고집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시점까지는 정당으로서 나름 기능을 해왔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며 완전히 해산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3. 성향

흔히 보수주의 정당으로 알려져있지만, 1945년 8월 28일 재중경 한독당 제5차 대표자대회 선언을 보면 우파정당이라고 보기엔 꽤나 쇼킹한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이는 조소앙 삼균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1.당강(기본강령): 계획경제, 민주공화국, 국비교육.
2.당책(행동강령): 지자체 실시로 중앙과 지방의 균권제, 토지 국유 원칙, 토지 인민에게 분급, 극빈 농민 우선권, 교육비는 국비로, 적산은 모두 몰수하여 국유로, 매국적과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를 징치하며 그 재산을 몰수해서 국영사업에 충용하고 토지는 국유로, 봉건 파시스트 등의 일체 반민주의 경향 숙청.

즉, 당시 구분으론 공산주의, 사회주의 정당만 아니면 죄다 우파로 분류되다 보니 한국독립당도 우파 계열로 분류된 것이지, 내용을 찬찬히 놓고 보면 현대에선 우익 정당이라고 보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굳이 계열 분류를 하자면 민족주의, 독립주의, 반제국주의 정당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4. 기타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소속된데다, 당의 대표적인 인물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인물인 김구라서 그런지, 해산된지 70여년이 지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한독당의 후신 정당을 자처하는 정당들이 가끔 탄생하기도 한다. 예시로 김두한이 소속되었던걸로 유명한 한국독립당(1963년) 21세기한독당, 한국독립당(2022년)이 존재한다. 물론 주류 정당은 아니다.

1949년 한독당의 당수였던 백범 김구를 암살했던 범인 안두희가 한때 한독당에 입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육군 소위로 포병사령부에 몸담으면서 극우 집단인 서북청년회 정회원이었던 안두희는 암살 이전 백범과 면담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1949년 6월 26일 백범이 있던 경교장 서재에서 백범을 암살하였고, 재판정에서 '한독당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역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백범을 암살한 이유도 그가 한독당을 지휘하는 당수이자 1948년 남북협상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명백한 암살 행위라 재판정에선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6.25 전쟁이 터지면서 사면 복권된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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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 미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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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한 해산일은 알 수 없으나 김구 암살을 기점으로 정당으로써의 역할을 잃었다. 그러나 2대 총선 이후까지도 정당으로서 활동이 나오다가 이후부터 기사에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6.25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2] 당시 상대가 바로 유석 조병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