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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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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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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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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등장 인물과 관현악 편성3. 줄거리
3.1. 서곡3.2. 1막3.3. 2막
4. 서곡들
4.1. 레오노레 서곡 제 2번 (Ouvertüre Leonore II op.72a)4.2. 레오노레 서곡 제 3번 (Ouvertüre Leonore III op.72b)4.3. 레오노레 서곡 제 1번 (Ouvertüre Leonore I op.138)4.4. 피델리오 서곡(Ouvertüre Fidelio op.72)
5. 여담


파일:external/static01.nyt.com/18FIDELIO-master768.jpg
피델리오(201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中) : 피델리오(레오노레) & 플로레스탄
(출처 : The New York Times)

1. 개요

Fidelio Op.72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선배 모차르트가 작곡한 징슈필들에 이어 19세기 초반에 나온 독일어 오페라 중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베토벤은 이미 30대 초반 시절부터 오페라를 작곡하려고 동시대나 선배 오페라 작곡가들의 대본을 비롯해 수많은 연극 대본과 소설을 탐독했다. 하지만 이들 중 베토벤의 입맛에 맞는 대본은 별로 없었고, 그나마 '베스타의 불(Vestas Feuer)' 이라는 희곡에 시험 삼아 약간의 음악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1798년에 프랑스의 극작가 장-니콜라 부이이가 집필한 희곡 '레오노르, 또는 부부애(Léonore, ou L'amour conjugal)' 의 대본을 접했는데, 이 희곡은 사실 문학성 면에서는 별 볼 일 없는 범작 구출극이었다. 하지만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자코뱅 당파가 단두대로 수많은 반대파들의 목을 날렸던 공포 정치 시기의 흉흉한 분위기 덕분인지, 프랑스에서는 꽤 인기 있는 연극으로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상연되자마자 피에르 가보가 같은 이름의 오페라로, 이어 1804년에 페르난도 파에르가 '레오노라(Leonora)' 라는 이름의 두 번째 오페라로 선보인 바 있었다.

베토벤은 비록 먼저 작곡된 저 오페라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찬가지로 부이이의 저 희곡에 상당히 끌렸는지 변호사이자 극작가였던 요제프 존라이트너에게 독일어 번역과 오페라 대본 각색을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3막 짜리 오페라가 '레오노레' 라는 제목으로 1805년 가을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1월 20일에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하지만 이 초연은 당시 나폴레옹 프랑스군을 이끌고 을 쳐바른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고, 극장에 온 청중들도 대부분 독일어를 아예 모르거나 서투르게 구사하는 프랑스군 장교들이었다.

결국 이 초연 무대는 시원하게 망했고, 베토벤은 후원자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 부부, 친구들과 극장 관계자로부터 오페라가 너무 장황하니 2막으로 줄이라는 제의를 받았다. 결국 슈테판 폰 브로이닝의 도움을 받아 오페라를 좀 더 간결하게 압축하는 개작을 단행했다. 이 1차 개정판은 1806년 3월 29일에 초연되었지만, 역시 결과는 영 좋지 않았다. 그나마 베토벤이 흥행주들과 극장 관계자들에게 빡빡 우겨서 4월 10일에 재차 공연되었지만, 미적지근한 비평계를 뒤집지는 못했다. 덕분에 베토벤은 빡쳐서 개작을 의뢰한 리히노프스키 공작 부부와 브로이닝 등을 격하게 디스해 이들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1807년에는 빈 대신 프라하에서 공연하려는 계획을 잡았지만 이것도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1814년에 독일 극작가이자 나비 연구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트라이치케에게 존라이트너의 대본을 개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트라이치케가 손을 본 새 대본으로 두 번째 개작을 단행해 5월 23일에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피델리오' 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다. 같은 해 11월 나폴레옹 전쟁의 전후처리 과정과 논공행상을 위해 전 유럽의 높으신 분들이(...) 소집된 빈 회의 당시에 개회 기념식으로 피델리오가 상연되었고 베토벤은 '빈의 영광'이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작품이 초기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

두 번의 개정을 거쳐서야 이 오페라는 제대로 대박을 쳤고, 이후 여타 극장 무대들에도 오르기 시작해 19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독어권 오페라극장들의 상시 상연작 중 하나로 정착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하도 이 오페라에 데였기 때문인지, 이후 후속작을 내놓지 않아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완성작이 되었다.[1]

2. 등장 인물과 관현악 편성

무대는 18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국영 교도소로 설정되어 있다.

그 외에 1막 중반부의 간수들과 후반부의 죄수들(모두 남성합창), 2막 후반부의 군중들(혼성합창). 그리고 1막 후반부에서 죄수 두 명(모두 바리톤 혹은 베이스)이 남성합창에 섞여 단역으로 등장한다. 모차르트 시대의 징슈필들과 마찬가지로 레치타티보가 없고, 노래 사이의 대사는 그냥 연극 식으로 연기한다.

관현악 편성은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2/ 팀파니/현 5부(제1 바이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이외에 2막 후반부에서 무대 뒤의 트럼펫 주자가 별도로 필요하고, 레오노레 서곡 제3번을 끼워서 연주할 경우 트롬본 주자도 한 명 더 필요하다.

3. 줄거리

3.1. 서곡

막이 오르기 전 관현악단이 흔히 오페라 제목과 같은 서곡을 연주한다. 다만 이 서곡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서곡들' 항목 참조.

3.2. 1막

막이 오르자 자키노가 마르첼리네에게 결혼하자고 징징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르첼리네는 여느 때처럼 캐무시하고, 자키노는 삐져서 일하러 가버린다. 혼자 남은 마르첼리네는 피델리오에 대한 연심을 담은 아리아를 부르고, 이어 로코가 피델리오와 자키노를 데리고 등장한다. 로코는 피델리오가 마르첼리네와 하루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피델리오 쪽에서 좀처럼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아 약간 초조한 기색이다.

로코는 피델리오에게 권력 보다는 돈이 최고라면서 피델리오를 설득해 보지만, 피델리오는 당연히 예전처럼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이어 로코가 은연 중에 플로레스탄이라는 대역죄인이 지하 감옥의 독방에 수용되어 있다는 말을 내뱉고, 피델리오는 속으로는 뜨끔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한다.

로코와 피델리오, 마르첼리네, 자키노가 저마다 심경을 고백하는 4중창이 끝나면 관현악이 연주하는 짤막한 행진곡과 함께 교도소장 돈 피차로가 등장한다. 피차로는 로코에게 국왕의 특사가 며칠 후면 도착한다고 귀띔하면서, 플로레스탄이 절대 그들 눈에 띄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이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면서 한층 격앙된 어조로 아리아를 부르고, 간수들은 교도소장의 꼬장을 두려워한다.

피차로는 로코에게 특사가 오기 전에 플로레스탄을 끔살시키라고 설득하지만, 로코는 차마 못하겠다고 발뺌하기 시작한다. 짜증난 피차로는 로코에게 '어쨌든 지하 감옥에 구덩이 하나는 파놓으라'고 고압적으로 지시하고 로코와 함께 퇴장한다. 이 대화를 숨어서 엿듣던 피델리오는 빡쳐서 '비열한 자여! 어디로 서둘러 가는가?(Abscheulicher! Wo eilst du hin?)'라면서 상당히 극적이고 장대한 아리아를 부른다. 이 아리아는 기교적으로도 어렵지만, 분노와 남편에 대한 걱정, 부부애라는 다양한 감정이 혼재되어 있어서 소프라노 가수들에게 상당히 까다로운 곡으로 손꼽힌다.

로코가 마르첼리네와 함께 다시 들어오자, 피델리오는 죄수들이 너무 어두컴컴한 방에서만 지냈으니 하루 정도는 감옥 마당에서 햇볕을 쬘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로코는 이를 승낙하고, 죄수들을 마당으로 데려가라고 지시한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죄수들은 잠깐이나마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자유를 만끽하지만[2], 이 소식을 들은 피차로가 당장 감방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한다.

결국 로코는 마지 못해 피델리오와 자키노에게 죄수들을 다시 감방에 가두라고 하고, 죄수들은 서운해 하면서 맥없이 감방으로 돌아간다.

3.3. 2막

2막 플로레스탄 아리아 신이여! 여긴 너무 어둡습니다(Gott! Welch Dunkel hier) Jonas Kaufmann (2015)
매우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의 무대를 배경으로 관현악단이 무겁고 긴 전주를 연주한다. 굶주리고 상처 투성이인 플로레스탄이 쓰러져 있다가 힘들게 몸을 일으켜 '신이여! 여긴 너무 어둡습니다!(Gott! Welch Dunkel hier!)' 라고 탄식한다. 이어 자신의 리즈 시절을 회상하는 '인생의 봄날에(In des Lebens Frühlingstagen)' 라는 아리아를 부르는데, 환상 속에서 레오노레가 언젠가 자신을 구출할 것이라고 끝맺는 이 아리아도 피델리오가 1막에서 부른 아리아 만큼 대규모에 극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 플로레스탄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아리아를 다 부른 뒤 플로레스탄은 노래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쓰러져 의식을 잃고, 때마침 로코가 피델리오를 데리고 피차로의 지시 대로 구덩이를 파러 내려온다. 로코와 피델리오가 한창 구덩이를 파고 있을 때 플로레스탄이 다시 깨어나고, 플로레스탄은 저 구덩이가 자신이 죽어서 묻힐 무덤인 것을 알아차린다.

로코는 플로레스탄이 아내에게 유언을 전하고 싶다는 요청에 '소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면서 거절하지만, 피델리오가 죄수에게 죽기 전 마지막으로 포도주을 조금 주도록 해달라는 청은 받아들인다. 아직 남장한 아내를 못알아보는 플로레스탄은 피델리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복받을 거라고 덕담을 해준다.

이어 호출 신호가 들리면서 피차로가 지하 감옥으로 내려온다. 피차로는 이제 플로레스탄을 죽일 때라고 하면서 칼을 빼들고 플로레스탄을 처형하려고 하지만, 피델리오가 모자를 벗고 머리를 풀면서 자신은 피델리오가 아니라 플로레스탄의 아내 레오노레라고 소리친다. 피차로는 원플러스원두 명 다 죽일 수 있겠다면서 칼을 휘두르지만, 그 순간 레오노레가 숨겨놓았던 권총을 뽑아 겨누자 쫄아서 칼을 떨어뜨린다.

동시에 무대 뒤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오는데, 자키노가 국왕의 특사가 왔다고 황급히 전한다. 피차로는 이를 박박 갈면서 특사를 마중나가기 위해 로코와 퇴장하고, 둘만 남은 레오노레와 플로레스탄은 재결합의 기쁨을 노래하는 2중창을 부른다. 이 2중창 뒤에는 곧바로 피날레(대단원)가 이어지게 되어 있지만, 말러가 그 사이에 레오노레 서곡 제3번을 연주하는 아이디어를 도입한 이래 이렇게 상연하는 오페라극장과 오페라단이 많다. 피날레 무대 준비해야 하는 스탭들 수고를 덜어주는 정도의 센스

피날레에서는 죄수들과 군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특사인 돈 페르난도가 억울하게 투옥되어 있던 정치범들을 석방한다는 국왕의 칙령을 낭독한다. 이어 플로레스탄이 레오노레와 함께 등장하고, 로코는 믿었던 사위감을 NTR 당해서 좀 아쉬운 눈치지만 레오노레가 남다른 용기와 부부애로 남편을 구해냈다고 페르난도에게 보고한다. 페르난도는 두 사람의 용기와 신의를 찬양하면서 레오노레에게 플로레스탄의 쇠사슬을 풀도록 하고, 피차로는 반대로 그 동안 죄수들에게 가한 가혹행위의 책임을 물어 투옥시킨다. 군중들도 레오노레와 플로레스탄의 부부애를 찬미하면서 다소 시끌벅적하게 막이 내린다.

4. 서곡들

두 번의 대규모 개정을 거치면서 베토벤은 이 오페라 하나를 위해 무려 네 개의 서곡을 작곡했다. 이 서곡들은 관현악 연주회에서도 자주 연주되고 있는데, 특히 레오노레 서곡 3번이 가장 많이 선호되고 있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4.1. 레오노레 서곡 제 2번 (Ouvertüre Leonore II op.72a)

1805년의 초연 때 사용된 서곡이다. 당대는 물론,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오페라 서곡으로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대규모의 곡이다. 2막 초반부에서 나오는 플로레스탄의 아리아를 중심 선율로 삼고 있고 이후 오페라의 전개를 암시한다. 초연 당시 오페라의 제목은 레오노레였고, 이 서곡은 현재 '레오노레 서곡 제2번(Ouvertüre Leonore II op.72a)' 으로 불리고 있다.


(↑ 레오노레 서곡 제2번. 연주는 요하네스 프리츄 지휘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4.2. 레오노레 서곡 제 3번 (Ouvertüre Leonore III op.72b)

베토벤은 1806년 레오노레의 1차 개정판 초연을 준비하면서 기존의 서곡 대신 새로운 서곡을 하나 더 작곡했다. 이 서곡은 '레오노레 서곡 제3번(Ouvertüre Leonore III op.72b)' 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레오노레 서곡 3번은 초연에 사용된 서곡 2번을 개작한 것인데, 소나타 형식을 취하면서도 재현부를 대담하게 축소한 2번과 달리 재현부를 더 확대해 거의 교향시 급으로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곡으로 만들었다.

이 레오노레 서곡 3번은 후배인 바그너 등으로부터 고금의 가장 뛰어난 오페라 서곡 중의 하나로 예찬되었다. 나중에 최종적으로 작곡된 피델리오 서곡이 있지만, 상술한 것처럼 말러가 시도한 이래 2막 시작 전의 전주곡이나 2막 후반부의 2중창과 피날레 사이에 간주곡처럼 끼워넣어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또 독립된 관현악 서곡으로 콘서트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곡이다.


(↑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연주는 최희준 지휘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4.3. 레오노레 서곡 제 1번 (Ouvertüre Leonore I op.138)

두 번 모두 실패로 끝난 초연 뒤, 베토벤은 1807년 프라하 공연을 계획하면서 이번에는 기존의 두 서곡이 너무 길고 거대하다고 생각 베토벤은 오페라를 시작하기 위한 오프닝의 용도로 상당히 많이 감량하고 압축한 서곡을 다시 작곡했다. 하지만 계획이 취소되면서 이 서곡은 베토벤 생전에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다.

때문에 베토벤 생전에 이 서곡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그의 사후 유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복잡하고 거대한 앞선 두 서곡에 비해 가볍고 심플한 이 작품이 최초의 레오노레 서곡일 거라고 오판한 출판업자에 의해 '레오노레 서곡 제1번(Ouvertüre Leonore I op.138)' 이라는 제목으로 사후 출판되었다. 네 개의 서곡 가운데 가장 덜 연주되는 곡이다.

4.4. 피델리오 서곡(Ouvertüre Fidelio op.72)

1807년 프라하 공연이 취소된지 7년만인 1814년 이 작품은 다시 무대에 올려지게 됐는데, 베토벤은 작품 전체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치고 제목까지 바꿔버렸다. 아울러 새로운 서곡을 작곡했는데, 과거의 서곡들과는 달리 오페라와 아무 관련이 없는 주제로 짤막하고 생기있는 서곡을 썼다. 베토벤은 이전의 레오노레 서곡들이 2막의 줄거리 전개를 너무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본편 2막이 사족 마냥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피델리오 서곡은 현재까지 이 오페라의 서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 피델리오 서곡. 연주는 강석희 지휘의 전주시립교향악단)

5. 여담


[1] 베토벤은 임종하기 직전까지도 수많은 작품들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잘 알려진 10번 교향곡 외에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옮기는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미사곡 분야에서 처음 손댄 미사 C장조가 2% 부족한 작품 취급받는 것에 비해 그야말로 제대로 각잡고 만든 장엄미사는 바흐의 미사 B단조와 더불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을 감안하면 베토벤의 후속 오페라가 실현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2] 이 장면에서 흐르는 감동적인 합창곡이 "죄수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O welche Lust im freier Luft"(Oh what joy in the open air)이다. [3] 정체는 바로... [4] operabase사이트의 통계를 보면 2013/14~2017/18시즌 기준 전세계 오페라극장의 공연횟수 집계를 보면 공연된 오페라작품중 37위에 랭크되어 있으니 최초의 오페라장르가 시작된 1597년이래 수많은 오페라 작품들중에서 꽤 상위권에 속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