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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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 | 생애 | 인간관계( 베토벤의 여인들・ 불멸의 연인) | 이야깃거리 | 작품 세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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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
(해당 없음) | |||||
베토벤의 다른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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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이데 |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 피아노 트리오 제4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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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오 |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크로이처" | 첼로 소나타 3번 | 엘리제를 위하여 | 에로이카 변주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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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푸가 | 디아벨리 변주곡 | 장엄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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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8년 11월 11일 빈 무지크페라인 대공연장 |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지휘,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 |
교향곡 제1번 C장조 작품 21 / Sinfonie Nr.1 C-dur op.21 / Symphony no.1 in C major, op.21
1. 개요
번호 그대로 베토벤이 생애 처음으로 발표한 교향곡이다. 작곡 시기는 1799년부터 1800년까지. 선배들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각각 25살, 8살에 첫 교향곡을 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30대에 들어서 비로소 교향곡을 처음 낸 베토벤은 다소 늦은 셈이다.하지만 그 전에도 물론 교향곡 창작에 대한 베토벤의 열의는 대단했고, 실제로 만약 완성했다면 수십 곡을 완성할 수 있는 방대한 초고(스케치)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 작품으로 나온 것은 이 곡 하나 뿐이어서, 고전파 선배들과는 달리 굉장한 공을 들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가장 초기의 곡인 만큼 아직 선배들의 강한 영향력에 놓여 있는데,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통해 관습화된 규칙을 깨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실제로 이 곡은 요즘의 평과 달리 처음 소개되었을 때 '상당히 색다른 작품' 으로 평가받아, 이후 발표하는 교향곡들과 마찬가지로 활발한 논쟁을 유발했다.
2. 곡의 형태
전형적인 4악장 형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1악장의 느린 서주 첫머리에 C장조라는 기본 조성을 쉽게 예상하지 못하도록 다른 조성의 화음을 갑툭튀시켜 의표를 찌르고 있다.[1] 다소 파격적인 서주 뒤에 나오는 빠른 본론 부분은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제시부에서는 현악기들이 가볍고 경쾌한 1주제를 연주한다. 스포르찬도와 붓점 리듬으로 점차 추진력을 얻어가면서 2주제로 넘어간다. 2주제는 딸림조인 G장조로 제시되며 목관이 먼저 제시하고 제1바이올린과 다시 주고받는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발전(전개)부로 넘어간다. 전개부에서는 계속 전조가 일어난다. 다양한 악기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웅장하고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팡파르가 멈추면서 목관이 다시 C장조로 이어준다. 모든 악기들이 1주제를 다 함께 연주하며 재현부로 넘어온다. 재현부는 제시부와 비슷하게 진행이 되다가 끝을 맺는 종결부(코다)는 기존의 작곡가들보다 더 늘려놓아 균형을 깨고 있다.2악장에서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소나타 형식을 쓰고 있지만,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몇몇 후기 교향곡들에서처럼 당시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서는 잘 쓰지 않았던 트럼펫과 팀파니를 약한 팡파르처럼 뒷배경에 깔아주는 대담함도 보여준다. 3악장은 고전 교향곡의 미뉴에트로 되어 있지만, 미뉴에트라고 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추진력도 훨씬 강해 훗날 많이 쓰게 되는 스케르초를 예견케 한다.
마지막 4악장에서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느린 서주를 뒀는데, 전체 관현악이 한번 꽝 때려준 뒤 약간 밍기적대는 식으로 가다가 본론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도 1,2악장과 마찬가지로 소나타 형식을 쓰고 있다. 소나타라기엔 살짝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재현부에서 2주제가 나오고 1주제를 또 반복한다. 베토벤이 1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한게 아닐까 싶은 부분이다.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현 5부(제1 바이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라는 전형적인 고전 시대의 2관 편성 스펙.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아직 많이 보급이 안된 클라리넷을 중용해 완벽한 목관악기 셋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3. 초연
첫 공연은 1800년 4월 2일에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의 부르크테아터(부르크 극장)에서 있었는데, 베토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처음 시도한 '아카데미' 음악회였다. '아카데미' 는 당시 상업적인 의도로 행해진 음악회를 일컫는 단어였는데, 당시 관현악 음악회는 그리 보편적인 공연 형태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작곡가의 수익을 의도하고 치르는 상업적인 공연은 드물었다.이 음악회에서는 선배인 모차르트의 교향곡[2]과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의 아리아 몇 곡이 베토벤의 자작곡인 7중주,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함께 공연되었다. 선배들의 곡을 적절히 섞어놓고 자신의 작품과 비교하도록 한 전략이었는데, 비평가들의 견해는 엇갈렸지만 대중적으로는 크게 성공했다.
4. 여담
20세기 초반에 이 곡보다 먼저 완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교향곡 하나가 발견돼서 한참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위작. 그래서 이 곡이 '2번' 으로 수정될 일은 없다. 자세한 사항은 예나 교향곡 문서 참조.
[1]
처음 나오는 화음은 C장조가 아닌, F장조의 5도 7화음(기타 코드식으로 하자면 C7b)이다. 그 뒤에 나오는 화음들도 마찬가지로 C장조를 교묘히 피하고 있다. 적어보자면
V7/IV - IV -
V7 - vi -
V7/V - V 으로 시작한다.
[2]
정확히 무슨 곡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