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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80> 프시케 (Psyche) 마음과 영혼의 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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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 Ψυχή |
라틴어 | ANIMA |
그리스어 로마자 표기 | Psyche |
1. 개요
과거 인간 왕족이었던 마음과 영혼의 여신.다양한 미남미녀들이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간 시절 때도 사랑의 신을 한눈에 사로잡은 최고의 미녀였으며 여신이 되고 나서도 아프로디테 다음 급으로 아름다운 여신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의 첫사랑이자 아내.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이자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며느리이다.
2. 어원
고전 그리스어 프쉬케가 영어로 읽으면 사이키(psyche)로, 'Psych-'가 접두사로 사용되는 ('정신' 의 의미) 단어들의 직접 어원. 큐피드의 라틴어식 발음은 "쿠피도(Cupido)"이며 이는 ' 사랑'이란 단어를 일컫는 보통 명사이기도 하다.현대 그리스어로는 psychí로 읽는다. 라틴어로는 ANIMA(아니마)로 쓴다지만 로마인들도 이 인물을 이를 때에는 ANIMA보다는 '프시케'(Psyche)를 더 많이 썼다.
일반 명사로서의 프시케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진다:
- 프쉬케 (Ψυχή/Psyche): 고전 그리스어로 본래 숨으로 쓰인 단어로 마음과 영혼, 나비라는 뜻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프시케를 영양 섭취, 생식의 능력, 감각 능력, 욕구 능력, 장소적 이동의 능력, 표상 능력, 이성 능력 등 신진대사와 사고활동 전반의 생명작용 그 자체로 설명하려 했다.
- 신약 성서에서 이 단어는 생명, 영혼, 심혼으로 다양하게 응용된다.
- 비슷한 쓰임으로 프네우마, 또는 뉴마(πνεύμα/Pneuma)가 있다. 역시 숨, 호흡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이며, 그리스도교 신학에선 영(靈)으로 번역하여 영혼(프시케)과는 구분한다. 플라톤의 이분법적 인간학에선 사람을 몸(소마)과 영혼(프시케)으로 구분하지만, 신약 성경의 일부 텍스트는 인간이 나뉠 수 없는 단일체로서, 어떤 면에서는 몸(소마), 어떤 면에서는 영혼(프시케), 어떤 면에서는 영(프네우마)이라고 본다. 프네우마는 또한 성령(거룩한 프네우마)을 일컫는데 쓰인다.
3. 기원
프시케의 이야기는 오리지널 그리스 신화 중에는 없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대 로마에서 서기 170년 경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가 쓴 《 황금 당나귀》에서다. 도적 소굴에서 도적의 한패인 노파가 잡혀온 처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나온다. <황금 당나귀>는 AD 2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신화가 만들어지기에는 이미 늦은 시대인데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해피 엔딩으로 만든 것이 프시케 이야기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하지만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에도 에로스와 프시케의 모습을 조각한 유물이 남아있어, 아풀레이우스의 허구적 창작이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원전이 있긴 했는데, 아풀레이우스가 그대로 혹은 각색의 과정을 거져 자신의 소설에 기록했고, 헬레니즘 원전은 소실되어 아풀레이우스의 저작에만 전하는 듯하다.
4. 행적
옛날 어느 왕국의 3녀 중 막내 공주 프시케는 신의 혈통을 잇지 않은 인간 처녀임에도 굉장히 빼어나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당대의 신화 세계관 최고의 절세미녀로서 명성이 자자했으며 인품도 선량하고 상냥했다. 모든 인간들은 아름다운 프시케를 찬탄하고 칭송하다 못해 현세에 출현한 영혼의 여신으로 받들었으며, 자신들이 볼 수 없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보다 자신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인간 프시케를 더 좋아하여 아프로디테에게 올리는 제사를 게을리했다.[1] 묘사에 따르면 아프로디테의 신전은 향불이 꺼지고 기둥과 제단에는 거미줄이 쳐지고 먼지들이 누적되었다고도 한다.결국 이 모습을 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분노하였고, 아들 에로스를 불러 '저 오만한 인간 여자에게 금 화살을 쏘아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벌을 내려라'라고 명한다. 천한 추남인 남자나 못생긴 거지 등등 책 등에 따라서 다르게 묘사되는데(올림포스 가디언에선 끔찍한 괴물), 어쨌든 결국 가장 결혼하기 싫을 법한 남자의 요소들을 종합한 남자랑 결혼시키려고 했다. 아마 핵심은 '여자로서 정말 싫어할 만한 남자와 결혼하게 해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시케 본인의 잘못은 아니나 신전을 방치하고 여신을 무시한 것에 대한 분노의 메시지로 희생양이 필요했다.
현대인들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리스 신들은 의외로 엄청 쪼잔해서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신의 저주를 받는 일화가 많았다. 이는 현대인들이 '신'이라고 하면 자애로운 위대한 절대자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인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신들은 각자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수장이자 그 분야 자체로서 존재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현대인 기준으로는 굉장히 쪼잔해 보이는 것이다. 인간끼리 하는 사랑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고 바람도 피우고 무게감도 다르고, 하늘이 언제나 맑고 상쾌한 날씨인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재미있게도 아프로디테 자신도 신들이 그녀만 보면 반한다는 이유로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제우스의 저주를 받아 인간 남자인 안키세스에게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나눠 아이네이아스를 출산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으로서의 힘과 권능을 발휘해 반신도 아닌 평범한 인간인 프시케를 손쉽게 죽여버리거나 그 아름답다는 미모를 영원히 빼앗아 아무 것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못생기고 추한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2][3] 왜 아프로디테가 한낱 인간 따위의 목숨과 아름다움을 한 번에 빼앗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 수도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각 신의 역할 분담은 매우 엄격한 데다 운명의 여신들인 모이라이의 말은 제우스도 함부로 어길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만약 프시케가 이 일로 아프로디테에게 죽거나 아름다움을 빼앗길 운명이었다면 꼼짝없이 죽었거나 추하고 볼품없는 외모로 사방으로부터 조롱당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겠지만, 프시케는 말 그대로 행운을 타고났는지 그럴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
거기다 인간들과 이런저런 일로 엮인 신들도 인간에 대해 알게 된 바, 프시케같이 젊고 아름다운 절세미녀가 요절해 버리면 인간들의 마음 속에 더더욱 우상화, 신격화되어서 더 골치 아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정말로 프시케가 직접적으로 뭘 잘못한 게 없다. 신들이 아무리 쪼잔하다 해도 아예 거슬린다고 그냥 죽여버리는 짓까지는 안 한다. 프시케 이외에도 많은 전승에서 신들은 모욕을 당해도 당사자를 직접 죽인 사례는 상당히 적다. 대신 죽는 것만도 못할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신의 관점으로 보면,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찬사를 가로채고선 그걸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않고, 더구나 자신의 신전이 방치될 정도로 무심했던 것은 교만의 죄라고 볼 수 있다. 신과 인간이라는 명확한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프시케가 결백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신의 권위를 부정한 니오베나 카시오페이아가 받은 벌을 감안하면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단지 무관심 내지는 소극적 같은 직접적인 죄가 없어서 죽이기는 좀 꺼려진 모양.
날개가 달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연애의 신 에로스는 장난끼 넘치는 성격으로 신과 인간을 공평하게 사랑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이었다. 그 예로 고고한 척 이성과 예술을 찬양하며 사랑을 깔보던 아폴론을 겨냥해 사랑을 주입하는 금 화살을 쏘고 근처의 님프 다프네에게는 혐오감을 주입하는 납 화살을 쏜 사건이 있다.
프시케가 잠든 침실에 손쉽게 들어온 에로스는 사랑을 샘솟게 하는 황금 화살을 한 방 놓은 뒤 돌아와야 했지만 일이 틀어지고 만다. 전해지는 판본에 의하면,
1) 프시케의 미모에 놀라 실수로 자신을 찔렀다.
2) 프시케가 갑자기 눈을 뜨는 바람에 놀라서 실수했다.[4]
3) 프시케를 보고 한 눈에 반한 에로스가 어머니의 명령에 갈등하다 스스로 화살을 자신에게 박아버렸다는 전승도 있다.
4) 어떤 버전에서는 프시케를 보고는 그녀와 결혼시킬 최악의 남자에게 쏴야 할 화살을 자신에게 찔렀다고 표현했다.
더 살이 붙은 이야기에서는 이때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반하고 나서 다른 이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몇 가지 수작을 부려놨다고 한다. 보통 프시케의 입술의 아름다움을 훔치고 머리에 아름다움을 불어 넣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본다면 이는 이성적 매력을 뜻한다. 어쨌거나 프시케의 외모는 어머니가 그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다, 천상의 여신들을 수도 없이 봐 왔을 에로스를 넋이 나가게 만들 정도였다는 전승은 동일하다.
- 이윤기 버전: 이마에 단물을 부어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 대신 입술에는 쓴물을 부어 모두가 프시케를 아름답다고 여기기는 하나 사랑을 느끼게는 하지 못하게 했다.
- 토마스 불핀치(그래도 옮긴이는 이윤기):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뜰에 샘솟는 단물과 쓴물을 두 개의 병에 담아 내려온다. 먼저 프시케의 입술에 쓴물을 부어 이성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하고 화살침을 놓는 게 임무의 끝이었다. 하지만 실수로 그 화살에 자신이 찔려 사랑에 빠진 에로스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단물을 부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든다.
이때 사랑에 빠진 에로스는 순진무구한 아이에서 건장한 청년으로 모습이 성장했다고 해석된다. 옛 그리스 미술품이나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서양의 그림 작품들을 보면 프시케와 함께 그려지는 에로스는 거의 항상 건장한 청년으로 그려졌다.
이는 헬레니즘 시기의 작품과 후대의 문학, 미술가들의 해석이고 본래의 에로스는 프로토게노이라는, 카오스, 뉙스, 에레보스, 가이아와 같은 항렬의 태초의 근원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제우스 이전부터 존재한 오래된 신이자 육체적 사랑을 주관하는 에로스에게 철부지의 캐릭터성을 부여해 이와 같은 연애물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아프로디테와도 모자 관계라기보다 동아리나 유사가족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며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에는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를 부모와 자식이 아닌 연인처럼 묘사한 작품들이 많다. 헬레니즘 이전 시기의 에로스는 미청년으로 묘사되었다.[5]
한편 프시케를 찬양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구혼하는 이가 없자 이상하다 여긴 부모는 아폴론 신전을 찾아간다. 그리고 프시케는 인간과 결혼하지 못할 팔자이니 산에 버려두라고, 그럼 신들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끔찍한 괴물이 남편이 될 거라는 신탁이 내려진다.[6]
이에 대해서도 위의 단물과 쓴물 이야기랑은 별개로 그녀가 너무 아름다운 바람에 다들 감히 그녀에게 구혼할 용기를 내지 못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쪽으로 묘사하면서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보충 설명을 했다. 신탁도 남편 될 남자가 신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개구쟁이 에로스라는 점과 예언의 신이 다프네와 연관되어 에로스에게 가장 크게 데인, 아폴론이란 걸 상기해 보면, 거짓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했으면서 에로스를 괴물 취급하는 아주 절묘한 예언이다. 또는 신의 입장에서도 사랑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괴물같은 것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제우스조차 헤라에게 맨날 바가지 긁히면서 자신의 바람기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니 말이다. 에로스가 아폴론에게 반쯤 협박으로(...) 거짓 신탁을 내리게 하는 전승도 있다. 아폴론은 다른 신이 그런 말을 했으면 당장 박살을 내버렸겠지만 에로스에게는 다프네 일 이후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인기가 많은 신화이다 보니 여러 판본이 있고 그에 따라 신탁의 묘사도 조금씩 달라진다.
- 높은 산 위에서 독사 같고 맹수 같은 장난꾸러기를 신랑으로 맞이하게 될 것.
- 산꼭대기에서 그 처녀를 기다리는 신랑은 신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는 괴물.
- 그 처녀는 인간과 결혼할 수 없는 운명이니 피테스 산 정상에 데려다 놓으면 신랑이 데려갈 것.
자신들의 딸을 괴물에게 먹이로 바쳐야하는 신세가 된 왕과 왕비는 신탁을 거스를 수도 없어 관례에 맞춰 준비를 하고 결혼식을 가장한 화려한 장례 행렬로 프시케를 작별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알겠지만 오이디푸스, 페르세우스 등, 수많은 자들이 신탁을 어떻게든 피해보려다가 오히려 절묘히 맞아버려 최악의 비극을 겪는다.
산 정상에 홀로 남은 프시케는 서풍의 신 제퓌로스의 인도로 꽃이 만발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비경에 도착한다. 프시케가 제퓌로스에게 인도받은 경위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산 꼭대기에서 투신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도착한 곳은 신들이 살 법한 크고 아름다운 궁전이었고 규모는 물론 벽화와 조각에 보석이 장식된 가구들 역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호화로움이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시종들이 극상의 예와 솜씨로 요리, 음악을 비롯한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그리고 남편은 밤마다 프시케에게 찾아와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름도 모습도 어둠 속에 숨긴 채 절대로 불을 켜지 말라고 하며 자신의 모습을 보면 결별이 찾아올 것이라 경고하고, 이때 아내를 달래며 " 내 외모가 아닌 그저 나로서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힌다.[7] 고대 신화 속에서 디오뉘소스의 어머니 세멜레가 제우스의 본모습에 세트로 딸린 번개 혹은 제우스의 본모습이 내뿜는 신격을 버티지 못해 타버려 명을 달리했듯이, 자격이나 준비를 갖추지 않은 인간이 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금기에 속했다. 게다가 에로스는 아예 얼굴 보지 말 것을 확실히 말하기까지 한다.
프시케는 여왕같은 호사를 누리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세상과 단절된 처지였다. 처음에는 두려웠던 남편도 시간이 지나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밤에만 만날 수 있는 정체불명의 남편만으로는 외로움이 다 해소될 수 없었다. 점차 궁전이 감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표현들을 보면 투명한 시종들은 유능했으나 인간관계를 기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프시케는 실제로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른 죄인이다. 이 당시에 프시케가 '직접적'으로 아프로디테를 모욕한 건 없었지만, 아프로디테에게 돌아갈 찬사를 자신이 받아 신전이 방치된 원인이자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 행동하지도 않았다. 아프로디테가 받아야 할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칭송을 받으면서도 그 결과가 어떻게 찾아올 것인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아프로디테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는 것만 믿고 교만해 신들을 능멸했다가 거미가 되어버린 아라크네와 마찬가지의 죄를 지은 것.
매일 낮 동안 반복되는 우울함에 지친 프시케는 결국 에로스에게 언니들을 만나게 해달라 간청한다. 에로스는 조금만 더 참으면 우리의 아이가 태어날 텐데, 그러면 당신과 아이 모두 신이 될 수 있지만 못 참으면 둘 다 인간으로 남고 말 거라며 만류한다. 그러나 아내의 눈물 어린 서러운 애원에, 혹은 몇번 거절하다가 계속된 실랑이에 지쳐 승낙하고만 에로스는 언니들의 호기심과 말을 조심하란 충고를 남기고 제퓌로스를 부른다. 그렇게 프시케처럼 날아서 이동한 두 언니는 죽은 줄 알았던 막내와 오랜만의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언니들은 화려한 궁전과 동생이 준 온갖 값어치 높은 선물들, 보이지 않는 시종들의 마법같은 조화를 보고 질투심이 생겨 버린다. 판본에 따라선 화려하지만 혼자서 외로이 있는 프시케한테 안쓰러움과 동정심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이들 둘의 남편들 중 한 명은 아내에게 땡전 한 푼 안 주는 구두쇠에다 대머리였고 다른 한 명은 중병에 걸려 아내가 병수발을 직접 해야 하는 등, 자기들의 처지와 비교되니 더더욱. 두 언니는 프시케에게 남편에 대해 묻자 프시케는 일단 낮에는 사냥을 다닌다고 둘러댄다. 두 언니는 쌍으로 프시케에게 신탁을 언급하며 등불과 단검을 숨겨두었다가 그 모습을 불빛으로 확인한 뒤 괴물이면 참수해 죽여버리라고 권유했다.
아폴론 신탁을 기억해 보렴, 네가 무시무시한 괴물과 결혼할 팔자라 하지 않았니.
이 근방의 사람들이 말하길 네 남편은 커다란 괴물 뱀이고 널 산해진미로 살찌워 잡아먹을 속셈이란다.
우선 잘드는 칼과 등잔을 준비해 숨겨놓고 그가 잠들면 불을 켜봐.
소문대로 괴물이 맞다면 칼로 그 목을 도려내야 네가 산다.
두 언니의 꾐에도 남편을 믿으려 한 프시케였으나, 밤에만 찾아오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남편보다는 가족인 두 언니의 말에 더 끌렸는지 결국 굴복했다. 전해지는 내용에 따라 막내가 여지껏 새신랑의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언니가 질투 외에도 의혹이 생겨 칼을 쥐어준단 묘사도 있다. 사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봤을 땐 질투가 아니라 진짜 동생 걱정하는 언니 마음이었다 한들 의혹이 생길 법한 상황이다. 더 단순한 이야기로 프시케가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행동했다고도 한다.이 근방의 사람들이 말하길 네 남편은 커다란 괴물 뱀이고 널 산해진미로 살찌워 잡아먹을 속셈이란다.
우선 잘드는 칼과 등잔을 준비해 숨겨놓고 그가 잠들면 불을 켜봐.
소문대로 괴물이 맞다면 칼로 그 목을 도려내야 네가 산다.
일단 남편의 정체를 알아내기로 마음먹은 프시케는 밤일을 치른 뒤 그가 잠시 잠든 틈을 타 숨겨놨던 단검을 손에 들고 등불에 불을 붙인다. 불빛에 드러난 괴물은 새하얀 날개를 가지고 묘사에 따라서는 신들 중 최고의 절세미남이었고 프시케도 그에 대해서 들은 게 있었던지라 자신의 남편이 사랑의 신 에로스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천상의 미모에 홀린 새댁은 상황도 잊고 더 다가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여기서 눈치빠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날붙이를 손에 쥐었지만 상대방의 미모에 놀라 본래 목적도 잊고 몰래 미모를 감상(...)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건 에로스가 프시케의 침실에 몰래 들어와서 한 행동과 정확히 똑같다. 판본에 따라서는, 신랑의 정체에 너무 놀라 뒷걸음질치다가 에로스의 금화살에 실수로 발을 찔려 에로스에게 순간적인 열렬한 사랑을 느끼고, 갑자기 깊은 키스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부부는 알게모르게 서로 닮는다는 것을 은유한 전개과정인 듯하다.
그러다 그만 부주의로 등잔 기름 한 방울을 그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만다. 어깨에 뜸을 놓는 감각에 놀라 깨어난 에로스는 등잔과 단검을 들고 있는 프시케를 보며 분노와 실망을 터뜨린다.
어리석은 여인아, 사랑(에로스)은 의심하는 마음(프시케)에 깃들 수 없다는 것을 몰랐는가?
그렇게 싸늘히 돌아선 사랑의 신은 망연자실한 프시케를 버려둔 채로 창밖으로 날아 사라진다. 더 장황한 버전의 대사는
에로스 문서로. 이때 프시케는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 눈물들이 땅에 떨어져
도라지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도라지의 꽃말도 '소망, 영원한 사랑' 이다.여러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금기는 신성한 것이고 에로스는 신으로서 입밖에 꺼낸 말을 지켜야 했으며 프시케는 그걸 깬 후환을 받아야 순리였다. 프시케가 제일 먼저 저지른 죄가 사람들의 숭상을 받는데 두려움이 없어 신의 비위를 거스른 것이라면 이번에는 신의 존안을 허락없이 봐 금기를 깨트린 것이다. 게다가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남편으로서 자신의 얼굴을 보려 하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에로스가 자신을 감춘 것은 자신의 정체가 신임이 인지되는 순간 프시케가 지아비를 더 이상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사랑이 아니라 본인보다 높은 신으로서 경외감과 두려움으로 대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두려움이든, 신에 대한 경외감이든, 자신의 외모를 보고 반하든, 지아비가 신이라는 것을 알면 더 이상 진실한 사랑과는 거리가 있기에 일부러 모습을 감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에로스가 정말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이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와 꽃 따기 내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아프로디테를 잘 따르던 님프 페리스테라가 아프로디테를 도와줘 아프로디테가 이겼다. 화가 난 에로스는 이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해 화풀이로 페리스테라를 비둘기로 만들어 버린 전력이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이것을 미안하게 생각해 비둘기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에로스가 떠나가자 화려한 궁전 역시 사라져 폐허가 되어 버렸고, 이후 프시케는 절망해 강에 몸을 던졌지만 에로스를 두려워한 강의 정령들이 그녀를 몇 번이고 물가로 밀어냈고, 목동의 신 판이 나타나 프시케를 위로해 준다.[8] 이후 프시케는 언니들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다. 프시케가 소박을 맞았으며 그 남편이 사실 사랑의 신이었단 것을 들은 언니들은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프시케의 자리를 차지할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막내가 괴물에게 바쳐졌던 산으로 올라가서 제퓌로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들을 저번처럼 실어다 달라 기도하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당연히 제퓌로스가 이를 들을 리 만무했고 언니들은 그대로 죽게 된다. 이현세의 만화에선 아예 제퓌로스가 프시케의 언니들에게 너희에게 어울리는 곳은 궁전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대사를 하며 떨어뜨린다. 판본에 따라 제퓌로스가 착한 프시케와는 달리 악심만 가득한 언니들에게 벌을 내려서 바람이 중간에 끊기게 했다거나, 프시케가 언니들을 찾지 않고 바로 에로스를 찾아 길을 떠나기에 더 이상 그녀들이 등장할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다. 혹은 다른 판본에서는 언니들이 질투심이 나서 프시케를 부추긴 게 아니라 외로움에 힘겨워하던 프시케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남편의 정체를 알아보라고 한 것이었고 이후 프시케가 소박을 맞고 돌아오자 프시케에게 우린 너가 힘겨워하는 게 걱정돼서 그랬던 것이었는데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울면서 사죄하는 것으로 등장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프시케가 언니들의 악의적인 목적을 알고 에로스가 언니들과 재혼할 것이라며 거짓말을 해, 언니들이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게 만든다는 버전도 있다.
프시케가 에로스의 아이를 임신한 원작에서는 상황이 더 기구하다.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프시케는 낮 동안의 외로움과 우울함이 커지고 자연히 가족들 생각에 향수병이 도져버린다. 이 상태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친정 식구들이 걱정하는 투로 신탁을 말하며 칼을 쥐어주고 유혹한다.
분명 네 신랑은 신탁에서 독사 같고 맹수같다 했었지?
안그래도 이 골짜기에 그런 끔찍한 뱀이 나타난다더라.
그게 만약 네 신랑이라면 너와 뱃속의 아이는 한꺼번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이 단검과 등잔을 챙겨두렴. 오늘밤 살며시 정체를 확인하고 뱀이면 목을 쳐버리는 거야.
아니라면 얼굴 좀 본다고 뭔 큰일이 나겠니.
그 말에 넘어가 그날 밤 에로스를 엿보다 들켜 소박맞은 프시케는
데메테르와
헤라를 찾아가 하소연하지만 두 여신 모두 아프로디테와의 친분이 더 중요해 외면해 버린다. 정확히는 이를 해결해주기보다는 무조건 아프로디테에게 싹싹 빌라고 조언하고, 아프로디테가 프시케를 때리려는 걸 말렸다. 헤라가 비록 가정을 수호하는 여신이고 에로스가 불신을 안겨줬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가정을 깨트린 건 남편 에로스를 의심한 아내 프시케였고, 남편의 정체를 의심해 칼까지 든 불경을 저지른 프시케를 무조건적으로 도울 수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아테나를 숭배하던 어떤 폴리스에서 아레스를 흉보는 말을 한 어떤 시민을 아레스가 난도질하여 살인했는데도 아테나조차도 자업자득이라고 이복동생 아레스의 살인행위를 묵인했는데, 헤라와 데메테르 정도면 그나마 선처를 배푼 셈이다. 애초에 헤라는 도움을 주긴 커녕 프시케를 벌주지 않은 것만 해도 선처를 베푼 게 맞다. 헤라는
다나오스의 딸들이 첫날밤에 남편들을 집단학살하고 그 목들을 레르네의 샘(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다나오스의 딸들 중 하나인 아뮈모네와 연애하고 나우플리오스를 낳은 대가로 준 샘) 근처에 파묻자, 분노하여
히드라를 레르네의 샘으로 보내 늪지대로 오염시키고 오랜시간 사람과 가축을 해하게 한 전력이 있었다. 유일하게 남편
륀케우스를 도망치게 한 휘페름네스트라는 아버지 다나오스에 의해 감금되었으나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아프로디테의 대사로 보아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일인데,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 지지와 그리스 지지로 분열되어 적이 되어 반목했다가 전후
오디세우스의 귀향 지지로 다시금 화합했던 올림포스의 주신들끼리 분란거리를 재차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안그래도 이 골짜기에 그런 끔찍한 뱀이 나타난다더라.
그게 만약 네 신랑이라면 너와 뱃속의 아이는 한꺼번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이 단검과 등잔을 챙겨두렴. 오늘밤 살며시 정체를 확인하고 뱀이면 목을 쳐버리는 거야.
아니라면 얼굴 좀 본다고 뭔 큰일이 나겠니.
에로스가 어깨를 다쳐서 돌아오고 결국 추궁 끝에 그간 일들을 실토하자, 아프로디테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프시케의 외모가 워낙 뛰어났다 보니 결혼 전부터 올림포스에도 소문이 자자해서 미의 여신인 자신의 신경을 건드렸는데, 프시케를 비참하게 만들려고 보낸 아들은 배신을 때리고 도둑 장가를 들었으니 그럴 만하다. 거기다 이 스캔들의 전말이 천상계에 쫙 퍼져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더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남편을 찾아 정처없이 방황하던 프시케는 우연히 데메테르의 신전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흩어져 있던 곡식 낟가리들과 도구들을 잘 정돈해 신전을 힘이 닿는 만큼 정리한다. 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속죄와 자비를 바라는 행동이었다. 사실 방황하던 때부터 프시케는 신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당시에는 도시국가 사이사이는 무법천지나 다름없었고, 안전은 여행자의 책임이었다.
어쨌든 자신의 신전에서 곡식과 도구들을 정리하는 것을 어여쁘게 본 데메테르는 프시케에게 조언을 해 준다. " 아프로디테에게 무조건 싹싹 빌어라. 그게 네 살 길이다." 이는 정확했는데,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굉장히 속좁고 쪼잔해 보이긴 해도 직접 가서 잘못했다고 빌면 또 용서해 주기도 한다. 신전이 어질러진 이유는 무더위에 농부들이 지쳐 정리도 안 하고 돌아갔단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 데메테르가 딸내미를 찾기 위해 떠도는 바람에 자기 신전도 관리 못할 정도로 피폐해졌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만일 이렇게 되면 프시케는 에로스를 찾아 무더운 여름에 떠돌아 다녔다는 얘기가 된다. 데메테르가 프시케에게 직접 말을 건낸 이유도 자기와 묘하게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졌건 홀몸이건 금기를 어기고 내쳐져 혼자가 된 프시케는 각오를 굳힌 뒤 시어머니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직접 찾아가 용서를 빈다. 그 전에 아프로디테가 화가 나 프시케를 현상수배했다는 버전도 있다. 현상금은 '아프로디테 여신이 직접 일곱 번이나 키스를 해 주는 것'이었다. 이러니 수많은 남자들이 혈안이 되어 프시케를 잡으러 다녔고 결국 프시케는 자진출두할 수밖에 없었다. 분기탱천한 아프로디테[9]는 '요망한 네년 때문에 잘난 내 아들이 상처를 입고 몸져 누웠다'며 실컷 화풀이를 한다. 버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시종들을 불러 매질을 하는 버전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자신의 시녀들 중 솔리시토(우울)와 트리스티에(슬픔)에게 채찍질을 가하라고 명령했다가, 프시케가 배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든 몸을 웅크리는 것을 보고 에로스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깨닫는다. 그것을 보고 더욱 비웃으면서도 일단 때리는 것은 멈춘다. 또한 매질까진 안 해도 갖은 욕을 퍼붓는 버전도 있다. 이후 아프로디테는 용서를 받고 싶다면 자신이 내리는 임무를 해 내라고 명령했는데... 그 임무라는 것이 하나같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네 가지 임무가 특별한 의미나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즉, 용서해주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여신은 두 가지를 간과했다. 에로스가 아직도 프시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프시케가 생각 이상으로 심지가 굳은 여인이라는 것. 프시케가 각각의 임무에 임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도움의 손길이 프시케에게 다가온다.
- 1) 아프로디테의 신조(神鳥)인 비둘기 모이용 곡식 분류작업.
- 난점: 신전 곡물창고에 산처럼 쌓아놓은 밀, 보리, 기장, 살갈퀴, 콩, 볼록콩을 철저히 분리해 따로 모아 놓아야 하는데 시간제한이 그날 저녁이 되기 전까지.
- 해결: 뒤에서 에로스가 조종하는 개미군단이 분류작업을 끝마친다. 신들의 연회에서 실컷 놀다 온 아프로디테는 한 눈에 이를 간파했고 그 분노는 더 깊어진다. 애초에 해내라고 준 업무도 아니고, 자신의 분노를 거스르고 프시케를 도울 신은 에로스뿐이니. 결국 아프로디테는 식사라며 검은 빵 하나를 던져주고는 프시케에게 곡물창고 바닥에서 잘 것을 명령한다.
- 2) 황금양의 양털 모아오기.
- 난점: 이 황금양들은 인간쯤은 가볍게 끔살하는 괴수들이었다.[10] 아프로디테의 의도는 한 마디로 양들로 하여금 프시케를 죽일려는 것이었고 프시케는 이를 모르고 있었다.
- 해결: 강의 신이 프시케에게 황금 양은 낮 동안은 잔인하고 난폭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잠을 자러 다른 들판으로 간다고 조언해 주었다.[11] 프시케는 밤까지 기다렸다가 황금 양들이 낮 동안 돌아다닌 들판의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황금 양털을 걷어 돌아왔다.
- 다른 이야기에서는 양들이 물을 마신 후 간지럼을 느껴 덤불에 몸을 긁는데 이 과정에서 덤불에 양털이 남아 프시케는 이를 회수만 했다. 물론 이것도 강의 신이 알려주었다. 이것도 에로스가 강의 신을 매수했다는 설이 있다.
- 혹은 정오가 다가오면 양떼는 그늘과 강변으로 이동하니 이때 덤불과 둥치에 걸린 양털만 모아오라 강의 신이 일러준다.
- 3) 검은 샘물 길어오기[12]
- 난점: 험준한 산꼭대기에 위치해 가파르고 미끄러운 위험한 길인데다 샘 근처에는 드래곤들이 지키고 있었다.
- 해결: 갑자기 독수리가 날아와 항아리를 낚아채더니 검은 샘물을 가득 담아다 주었다. 인간은 절대 저 샘에 다가갈 수 없으니까 내게 항아리를 달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자료에 따라 이 독수리는 제우스의 것이며 에로스가 움직인 것이라고도 한다. 비둘기가 아프로디테의 신조이듯 제우스를 상징하는 새가 독수리이다. 드래곤이 살고 있는 산을 짐까지 지고 오르내리는 독수리가 평범한 새일 리는 없고, 그나마 아프로디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제우스에게 에로스가 열심히 로비를 펼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에로스와 관계없이 그냥 제우스가 프시케를 가엽게 여겨 도와줬다는 전승도 있다.
- 4) 마지막 임무는 저승의 여왕 페르세포네에게서 아름다움(美), 혹은 화장품을 받아오는 것.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내가 네 남편을 간호하느라 아름다움이 상했으니 받아오너라"라고 한다.
- 난점: 인간이 저승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 밖에 없으므로 결국 죽으란 소리였다. 게다가 위의 셋과 달리 이건 하데스의 영역이라서 에로스는 물론 제우스조차도 수작을 부릴 수가 없다.
-
해결: 절망한 프시케는 탑에 올라가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탑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와 그녀에게 저승의 입구와 어떻게 하면 무사히 저승에서 나올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
페르세포네가 준 상자에 절대 호기심을 품지 말거라. 그건 인간이 열어선 안 된다."라 경고한다. 평범한 탑이 갑자기 입이 생겨 말을 했을 리 없으니 탑에 깃들거나 숨은 어느 신이 충고해 주었을 가능성이 큰데, 에로스가 숨어서 말했다는 버전도 있고 마침 그 자리를 지나가던 제퓌로스나
타나토스가 도와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타나토스가 운명이 다 된 사람을 데리러 오는 저승사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타나토스가 도와줬다는 버전은 프시케가 여기서 죽을 팔자가 아니라는
해피 엔딩 복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혹은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인
데메테르가 도와줬다는 버전도 있다. 어쨌든 프시케는 탑이 알려준 공략법대로 간식을 이용해 지옥 번견
케르베로스 앞을 무사히 통과하고 저승의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내어 강을 건넌 뒤 페르세포네에게서 미(美)가 담긴 상자를 받아온다.[13] 페르세포네는 프시케에게 저승의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주며 환대했지만,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저승에 속하게 되어 떠날 수 없다는 것을 프시케는 미리 알고 있었기에 죄인이라는 이유로 이승에서 가져온 거친 빵을 먹겠다며 거절했다는 버전도 있다. 본인이 이 방법으로 명왕 하데스의 아내가 된 당사자인 만큼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페르세포네가 뜬금없이 물귀신 작전을 펼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인간 영웅이 저승에 와서 하데스나 페르세포네를 만났다는 신화는 프시케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그 중 환대의 의미로 음식을 내주었다는 신화는 프시케에게만 있는 것을 보면, 저승의 관습 때문에 진수성찬을 내주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그보다는 페르세포네가 프시케를 시험해 보려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애초에 페르세포네가 겉으로만 봤을 때 프시케를 친절하게 환대했다고 한들, 아프로디테와는 거진 원수지간에 가까울 정도로 악연이 매우 깊은 신이었다. 2세대 티탄 신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이라는 막강한 혈통과 신분을 지닌 페르세포네가 아테나와 아르테미스처럼 영원한 순결을 맹세해 처녀신이 되려 하자, 처녀신들이 점점 권력을 쥐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프로디테가 에로스를 시켜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에게 반하고 제우스와 작당해 납치혼을 일으키게 만든 흑막이었기 때문이라는 전승이 있다. 납치의 수모를 겪고 명계의 여왕이 되고 나서는 성격도 지위에 걸맞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이들에게는 차갑고 인정사정없이 바뀌었는데, 하데스의 불륜 상대 혹은 납치혼 이전에 사귄 연인이었던 코퀴토스 강의 뉨페 멘테를 맨발로 가차없이 밟아죽이고 박하로 만들기도 했다. 언제는 아프로디테와도 누가 아도니스를 차지할지 쟁탈전까지 벌인 연적이기도 한데,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가 잠시 맡겨놓은 갓난아이 아도니스의 미모에 반했는데 그가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하자 돌려주겠다는 약속도 파기하고[14] 자신의 첩으로 삼아버리며 "한번 명계로 들어온 이상 무엇이든 다 나의 소유다."라며 아프로디테를 도발하기도 했다. 칼리오페의 중재안을 이행할 생각 없이 8개월 동안 둘이 공유하는 애인 아도니스를 독점하고 있자,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아레스를 사주하여 아도니스를 죽여 명계의 백성으로 만들 만큼 굉장히 두뇌회전이 뛰어나고 냉철한 면모가 있다. 특히 하데스와 아도니스 건만 봐도 페르세포네로서는 아프로디테를 미워할 이유가 충분하며 그 아프로디테의 명령을 받아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지러 왔다는 프시케가 내심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오직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산 자의 몸으로 명계까지 찾아오는 위업을 이룬 프시케 개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법하다. 그만큼 명계의 여왕이란 자리에 걸맞은 카리스마와 위엄, 냉철한 머리를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여신이다. 이명부터가 "공포의 페르세포네이아"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많은 경외와 숭배를 받았으며, 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에도 꾸준히 언급된다.[15]
이승으로 나온 프시케는 자기도 저승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살짝 상자를 연다. 또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었다기보다는 남편인 에로스에게 더 아름답게 보여서 사랑받고 싶었더라는 소박한 소원이었다고 한다. 이런 복잡한 생각없이 에로스의 얼굴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그놈의 호기심(상자에 든 것이 인간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것 등)을 또 못 이겨서 결국 상자를 열어본다는 버전도 있다. 열린 상자 속에 들어있던 것은 영원한 잠으로 프시케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느끼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잠이라고 하니 거의 코마 상태에 빠진 상태였을 것이다. 저승세계의 잠, 혹은 스튁스의 잠이라고도 한다. 하데스와 아도니스 건으로 아프로디테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페르세포네가 아프로디테를 골려주려고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은 '신의 잠'이 담겨있어서 인간 기준에서 영원히 잠드는 거였다고 한다. 안에 들어있던 것이 신의 아름다움이라 인간으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는 설과 충분한 수면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준다는 은유라는 설이 있다.
이 때쯤 몸을 추스린 에로스가 그녀를 발견해 판본에 따라 화살촉으로 찌르거나, 신은 인간과 달리 잠의 기운을 만지고 다룰 수 있어 프시케의 몸에서 걷어내 상자에 도로 담아서 잠을 깨운다. 호기심 좀 자중하라는 잔소리를 한 뒤 임무를 마저 완수하도록 보내놓고 자신은 올림포스로 날아가 제우스에게 프시케의 일을 주청한다. 원본인 황금 당나귀에서는 제우스가 항상 말썽꾸러기 어린아이였던 에로스가 성숙한 청년이 되어 정중히 부탁하는 걸 가상히 여기고, "네가 나한테 금 화살을 막 쏴대서 내가 바람둥이로 낙인찍혀 버렸다"며 책망하는 척 하다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 달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나왔고 데메테르가 아프로디테에게 "나도 딸 때문에 겪었던 일(하데스)이 있었는데 그냥 인정해."라고 하며 제우스를 지지한다. 결국 제우스의 열렬한 중재로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제우스라도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던 게 에로스는 신들도 두려워하는 권력의 소유자이다. 대표적으로 다프네 이야기로, 아폴론이 에로스의 활을 무시하며 깔보았다가 제대로 피를 봤었다. 만일 제우스가 에로스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분노한 에로스가 화풀이랍시고 신들과 인간들에게 마구잡이로 금 화살과 납 화살을 쏴댔다면, 신이 인간을 사랑해서 책무를 내팽개치거나 반대로 인간을 증오해서 마음대로 없애버릴 수도 있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증오하고 사랑해선 안 될 사람들이 윤리를 어기고 사랑하는 등 세상이 사랑으로 인한 아수라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더 무서운 건 이게 인간만이 아닌 신들에게도 효과가 똑같이 적용되며, 소유자인 에로스조차 정통으로 맞은게 아니라 찔려서 다친 것만으로도 효과를 거스를 수가 없다. 이러니 신들에게 쐈다간 뭔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납 화살을 쏘면 다음에 쏘는 화살은 무조건 금 화살이라는 말은 없기에 이론상 에로스가 금 화살은 아예 쏘지도 않고 납 화살만 쏴대서 저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진짜 자칫하면 세상이 서로 간의 증오로 가득한 골치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징벌을 내리는 모습이 많이 부각되지만, 역으로 신을 잘 대접한 인간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는 것 역시 신이다. 프시케가 비록 신들의 입장에서 잘못한 것은 있지만 잘못을 반성하며 벌도 충분히 받았으니 제우스가 중재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3권에서는 프시케가 올림포스로 올라오면, 사람들이 자신을 제쳐놓고 프시케를 찬미하는 일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아프로디테가 순순히 에로스와 프시케의 결혼을 허락하는 걸로 나온다.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의 아프로디테는 처음에는 제우스의 제안에 말도 안 된다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제우스가 '에로스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어린 아들이 아니에요. 자식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면 그 모습이 추할 수도 있어요.'라며 설득하고, 아프로디테 옆에 있던 아폴론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며 제우스의 말에 호응하고 그 외에 다른 신들도 제우스의 의견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자 결국 고집을 꺾는다.
학산문화사에 발매한 그리스 로마 만화에선 아프로디테가 프시케를 벌하려 한 이유가 본인의 명예를 깎아먹었다는 것인데, 그걸 참작했는지 에로스에게 상처를 입히고 페르세포네의 선물인 잠을 훔쳤다는 이유로 에로스와 프시케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제우스는 실수를 한 건 오히려 그녀가 신처럼 완벽하지 않은 필멸자라는 걸 보여준 것이고, 상처 문제는 에로스 본인이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일축하며 에로스의 뜻을 묻는다. 이에 에로스가 결혼을 요청하자 승낙해 주는 식으로 나온다.
그리고 제우스도 다른 올륌포스 12신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이제 슬슬 에로스에게 결혼이라는 족쇄를 채울 때가 왔다(...)."는 식으로 얘기하자, 에로스에게 직접 피해를 입었던 다른 신들도 흔쾌히 동의한다.
따지고 보면 올륌포스 12신 전원이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의 피해자들이며 신화에서 강간미수, 강간, 치정살인, 납치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성범죄와 비극들도 이들 모자가 원인이다. 강간마의 대명사인 제우스, 포세이돈부터 시작해서 헤르메스, 아폴론, 아레스를 비롯해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신들이 틈만 나면 욕정에 사로잡혀 여성을 강간하거나 불륜을 밥 먹듯이 일으킨 것도 근본적으로 보면 에로스의 소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트로이 전쟁은 에로스의 금 화살로 일어난 비극 중 단연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16] 이 전쟁으로 인해 올림포스 신들까지 아카이아 연합군과 트로이군 지지 세력으로 갈라져 10년에 걸친 분열과 싸움까지 벌였다.
- 특히 혼인과 가정 윤리의 여신이자 신들의 여왕인 헤라는 날이면 날마다 불륜과 강간을 연달아 저지르는 남편 때문에 뒷목 잡고 고생해야 했고, 에로스의 폭주로 인해 불륜을 일으키는 가정을 일일이 찾아가며 신벌을 내리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리고 헤라는 애초에 혼인과 가정의 여신이기에 에로스와 프시케의 결혼은 자신의 직무상 찬성하는 게 당연했다.
- 아폴론은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를 나란히 조롱했다가 둘의 보복에 의해 매번 하는 연애마다 실패로 끝나는 저주를 받았으며, 첫사랑인 다프네에게 집착에 가까운 욕정을 느껴 강간미수까지 갔다가 끝내 다프네가 스스로 월계수로 변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어른이 된 에로스는 이 사건을 들먹이며 델포이 신전을 방문할 프시케의 부모에게 거짓 신탁을 내리지 않으면 또다시 사랑의 쓰라림을 맛보게 해주리라고 협박했고, 아폴론은 다프네 사건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떠올리곤 곧바로 협박에 응했다.
- 사랑과 진작에 담을 쌓은 처녀신 아테나와 아르테미스 역시 본인을 따르는 여사제와 신도들이 에로스의 화살을 맞아 욕정에 들린 남자들에게 강제로 겁탈당하거나 불륜을 나눈 탓에 어쩔 수 없이 쫓아내거나 억지로라도 잔인한 신벌을 집행하느라 골치를 썩었다.
- 프시케의 시련에 종지부를 찍어준 페르세포네 역시 처음에는 이복 언니들처럼 순결의 처녀신으로 살려고 했지만, 처녀신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우려한 아프로디테의 견제에 의해 에로스의 금 화살을 맞은 하데스에게 납치혼을 당하고 1년의 절반은 명계에서 살게 되었다. 이들 모자 때문에 소중한 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온 세상을 대기근에 빠트린 데메테르 역시 피해자인 건 마찬가지이다.[17]
이런 래퍼토리가 지겨울 정도로 지속되다 보니 저마다 개성이 확고하고 자존심 강한 신들은 에로스의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것 자체를 굴욕적으로 여기게 되었고, 제우스의 설득대로 에로스에게 족쇄를 채울 때가 왔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 신들이 수백년에 걸쳐 수많은 인간들과 상호작용을 쌓으며 성숙해진 것도 있다. 민폐나 다름없는 아프로디테의 ' 사랑'의 영향력을 상당 부분 축소시켜 더 이상 쓸데없는 치정에 놀아날 필요 없이 각자 해야 할 업무와 영역에 매진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프시케와 에로스의 결혼은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의 폭주를 골칫거리로 여겼던 올륌포스 12신에게도 커다란 축복이자 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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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와 프시케의 혼례 인사, 휴 더글러스 해밀턴, 1792-1793, 캔버스에 유채,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소장. |
이후 둘의 사이에서는 기쁨과 환희, 쾌락의 여신 헤도네(Hedone)가 태어난다. 헤도네는 기쁨, 쾌락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환희'. 로마의 볼룹타스(Voluptas)에 해당한다. 어찌 보면 신분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은 프시케에게 어울린다.
5. 평가
의도치 않게 신들을 상대로 불경죄를 지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며 주어진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영웅이다. 새드 엔딩과 배드 엔딩이 일상다반사인 신화 속에서도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여신의 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인간 시절에도 여신으로 칭송 받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과 착하면서도 결단력 있고 강직한 인품을 겸비한 절세미녀였고, 사랑의 성취와 여신이 된 인간이라는 고진감래에 걸맞은 감동적이고 완벽한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 서사와 이미지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호감형이다. 선악의 잣대로 나눌 수 없는 극단적인 양면성과 입체적인 면모를 보이는 신화 속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드물게 결점과 하자가 없는 깨끗하고 선량한 인간이라 오늘날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이다.
시어머니 아프로디테와의 관계 서사만 봐도 일목요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신화 속에 최초로 기록된 악독하고 성질 더러운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당한 대표적인 네임드 며느리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물론 프시케는 며느리가 되기 이전부터 올림포스에도 소문날 정도로 신적인 미모를 지녔다는 이유로 아프로디테에게 온갖 질투와 미움을 받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도 처음부터 프시케를 며느리로 맞아들일 생각 따윈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명령불복종하고 직무유기까지 저지른 아들의 계략에 의해 원치 않게 시어머니가 된 억울한(?) 케이스이다. 아프로디테는 어디까지나 아래의 스미르나에게 그랬듯이 프시케에게 똑같이 사랑해서는 안 될 존재를 사랑하는 저주를 내리고자 금화살을 쏘라는 명령을 내렸건만, 그나마 자기 편들 줄 알았던 소중한 아들이자 최측근인 에로스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자기가 가장 증오하는 인간 여자에게 제멋대로 도둑장가를 들었으니 엄청난 분노와 배신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뤄낸 둘의 로맨스마저 잠시 파탄나버렸고 이 파란만장한 스캔들의 결말이 올림포스까지 알려지면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는 신계에서도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그간 모자와 사이가 좋지 았았던 신들로부터 사이 좋게 조롱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돌아온 에로스는 어머니께 사죄하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자, 아프로디테는 평소보다 굉장히 화를 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격렬한 비난과 분노를 퍼부었다. 프시케도 죄인이지만 상관이자 주군인 어머니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죄인을 도둑장가와 세뇌나 다름없는 그릇되고 잘못된 방식으로 아내로 맞이한 에로스 역시 패륜을 일으킨 죄질이 더 심한 죄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에게 처벌을 내려 감방 안에 가두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에로스와 의절하지 않고 프시케의 등잔에서 떨어진 기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아들이 걱정되어 헌신적으로 간호해주었다. 에로스의 행동도 엄연히 명령불복종에 패륜이기에 당연한 조치였지만 그나마도 의절까지 안 가고 일시적인 감금 처분으로 끝낸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19] 또한 이 이야기가 로마 시인에 의한 작품이어서 그렇지 사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시케처럼 신을 상대로 불경죄를 저지르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인간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스 신화에서 웬만한 인간들은 특별한 혈통이나 능력, 운이 뒷받쳐주지 않는 이상 신들의 눈 밖에 나면 죽음, 타르타로스로 끌려가거나 동식물로 변신당하는 최후를 맞이하며 심하면 니오베처럼 온 가족이 몰살당한다. 당장 칼리스토도 자의로 신을 모독한 게 아님에도, 제우스에 의해 강제로 강간당하고 상관인 아르테미스와 헤라에 의해 2차 가해까지 당한 가장 억울한 피해자였다. 본인이 의도치 않게 사생아 아르카스를 낳은 게 헤라에게 들켜서 어린 아들의 유무와 상관없이 곰으로 변해버린다.
거기에 자만심 등으로 인해 신의 권위를 손상입히는 경우 더욱 끔찍한 결말을 맞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인간의 오만함을 휴브리스라 하여 인간이 항상 주의해야 할 하나의 대죄로 보았다. 아프로디테도 자신에게 감사 제물을 바치지 않은 히포메네스와 아탈란테 부부가 키벨레 여신의 노여움을 사도록 유도해 사자로 변하게 하여 영원히 여신의 전차를 끌고 다니게 만들어 버리거나, 자신의 연적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오직 신이 아닌 인간 남자만을 사랑하게 될 테지만, 결국 사랑의 끝이 불행해지는 저주를 내린 전력이 있다. 아프로디테가 스미르나와 아탈란테, 히폴리토스 때와 달리 임신 유무와는 상관없이 프시케를 동식물로 둔갑시키거나 치정극에 휘말리게 하지 않고 시집살이랍시고 부려먹고 시련만 내린 건 굉장히 관대하고 자비로운 처분이다.
다음은 휴브리스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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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르나: 사실상 프시케의
안티테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반대의 결말을 맞이한 비운의 여인이자 프시케가 될 수 있었던 또다른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에 부모는 자기 딸이
아프로디테보다 더 아름답다고 자랑스러웠으며, 본인 스스로도 아프로디테보다 아름다운 본인의 외모로 명성을 누리며 이를 암묵적으로 즐겼다는 점, 그로 인해 죄인이 되어 아프로디테의 미움과 에로스의 저주를 받아 수난을 겪었다는 점에서 프시케와 공통점이 많다.
차이점은 프시케는 에로스의 금화살을 피했지만, 스미르나 본인은 금화살의 저주를 그대로 맞아버렸다. 아프로디테의 축복을 받아 인간이 된 조각상 여인 갈라테아와 피그말리온의 딸 파포스의 아들 테이아스(혹은 키니라스)와 켄크레이스의 딸로 할머니의 이름을 딴 파포스 왕국의 공주였다. 아프로디테와 비견될 정도로 굉장히 수려하고 아름다운 미녀였는데, 테이아스와 켄크레이스는 자기 딸이 아프로디테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우쭐댔고, 스미르나 본인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머리카락은 자기가 훨씬 예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결국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를 시켜서 스미르나에게 금화살을 쏘라고 명령하고, 그렇게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스미르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 키니라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버지에게 욕정을 품은 스미르나는 결국 유모의 도움을 빌려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기절시킨 뒤 동침을 벌여 사실상의 근친상간을 저지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테이아스는 사랑하는 딸의 패륜에 수치심과 배신감을 느끼고 죽이려 들었고, 스미르나는 무서워서 얼른 파포스를 빠져나가 9개월간 방랑했다. 자신의 신세에 한탄한 스미르나는 아프로디테에게 사죄를 하며 제발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존재로 만들어줄 것을 기도했고, 그렇게 스미르나의 몸통은 나무줄기에 의해 휩싸여가기 시작하고 스미르나는 몰약나무 한 그루가 된다. 하지만 임신 중이었던 스미르나는 나무의 몸으로 아버지 테이아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아도니스를 낳았다.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나무가 된 어머니의 몸 밖으로 태어난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가 데려가게 된다.[20] 아름답고 순수한 처녀였는데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저주를 받아 아버지를 정을 통하는 죄를 의도치 않게 저지르고, 아들까지 빼앗겨버린 최대의 피해자인 셈.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의 저주를 받아 인생을 완전히 종치고 나무로 변하고 아들까지 빼앗긴 스미르나와 달리 프시케는 역으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의 저주를 회피하고 오히려 자기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을 빼앗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점. 그리고 프시케는 스미르나처럼 동식물이 되지 않고 온갖 고생살이를 견딘 끝에 남편으로 맞아들이고 여신이 되는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 히폴리토스: 처녀신 아르테미스를 향한 존경으로 영원히 비혼과 동정을 지킬 것을 맹세한 아테네의 왕세자였다. 문제는 그 존경이 너무 과한 나머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비웃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모욕하고 능멸하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분기탱천한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더러 테세우스의 후처 파이드라에게 금화살을 쏘라고 명령하고, 파이드라는 금화살을 맞아 처음 본 상대이자 의붓아들 히폴리토스에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파이드라는 같이 사랑의 도피까지 벌이자고 하지만 히폴리토스는 패륜과 불륜을 동시에 저지르자는 계모의 정신나간 요구에 질려버리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결국 자존심이 짓밟히고 증오심을 느낀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가 날 겁탈하려 들었다고 무고하는 유서를 쓰고 자살한다. 결국 히폴리토스는 유서를 읽고 화가 난 테세우스에 의해 고국에서 추방당하는 것도 모자라 테세우스의 기도를 들어준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괴물에 의해 끔찍하게 죽임당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아르테미스는 히폴리토스의 결백함을 증언하고는 시체를 가져가서 조카이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부활을 명령해 간신히 되살리지만, 운명의 여신들과 하데스의 항의를 받은 제우스에 의해 아스클레피오스와 히폴리토스는 벼락을 맞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버렸다. 스미르나처럼 아프로디테를 신성모독했다가 금지된 사랑과 엮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희생양.
- 니오베: 7남 7녀를 둔 자신이 아들과 딸 둘밖에 낳지 않은 레토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자랑하면서 백성들이 레토 여신에게 바치던 제사를 강제로 중단시키고 대신 자신을 섬기라고 강요했다.[21] 이 모습을 보고 분노한 레토의 자식인 아르테미스와 아폴론 남매의 화살을 맞아 자식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남편 암피온은 충격으로 자살하며, 니오베 자신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돌이 되어 버린다. 아폴론이 막내아들을 향한 화살을 쏠 때 막내아들이 용서를 빌자 살려주려 했지만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어쩌지 못해 죽어버렸다는 전승과(정반대로 그래도 소용없다며 쏴 죽였다고도 한다.), 용서를 빈 막내아들과 니오베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한 막내딸만은 차마 죽일 수 없어서 그 둘만은 살려줬다는 전승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이 즐비한 신화 속에서도 가장 참혹한 결말중 하나이다. 이쪽은 일가족 전원이 몰살하고 니오베 본인의 피까지 끊겨버렸다.[22]
- 아라크네: 자신이 아테나 여신보다 방직 솜씨가 뛰어나다고 자랑했으며, 아테나와 길쌈 대결을 하게 되었을 때도 실제로 근소 우위를 점할 정도로 승리했다. 그러나 길쌈 대결을 하면서 신들의 왕 제우스가 레다와 레토, 마이아, 에우로페 등 다른 여신, 여성들과 바람을 피우거나 그리스인들에게 숭배 받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편과 트로이 편으로 갈라져 적이 되어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여 대결 상대이던 아테나의 분노를 더욱 돋우었고, 결국 아테나의 저주로 거미가 되고 만다.
- 카시오페이아: 자신, 혹은 자신의 딸 안드로메다의 미모가 바다의 님프 네레이데스보다 우월하다고 자화자찬했다가 네레이데스와 그 아버지 네레우스의 진노를 사 괴물 고래인 케테아에 의해 나라가 홍수로 파괴되고 딸 안드로메다를 인신공양할 처지에 이르렀다가, 지나가던 페르세우스에 의해 구출되어 딸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 익시온과 페이리토오스 부자: 남신의 사랑을 받다 못해 아내로 간택당한 프시케와 정반대로 두 부자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인간의 몸으로 여신, 그것도 삼주신의 정실부인에 해당하는 최상위 권력을 가진 여신들을 탐내다 못해 아내로 맞이하려는 오만한 짓을 저지른 대가로 잔인한 천벌을 받은 케이스. 익시온은 아내 디아의 아버지이자 장인어른인 에이오네우스를 고작 지참금을 주기 싫다는 어치구니없는 이유로 불태워죽이는 극악무도한 패륜아였는데, 제우스의 선처와 용서를 받은 것도 모자라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까지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문제는 익시온은 자신이 죄질에 비해 너무 과분한 용서와 영광을 누린 걸로도 만족치 않고 올림포스 신궁에서 만난 신들의 여왕이자 최고신 제우스의 정실부인 헤라에게 음탕한 성욕을 품고 구혼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결국 화가 난 헤라에 의해 이 소식이 제우스의 귀까지 들어가자 제우스는 시험삼아 헤라를 닮은 구름의 님프 네펠레를 만들어서 익시온에게 보낸다. 네펠레가 헤라인 척 연기하며 정말 나를 사랑하냐고 물어보자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하고는 침대에서 동침을 나누고 이 사실을 신궁에서 떠벌리고 다니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 결국 분노가 폭발할 대로 폭발한 헤라와 제우스에 의해 타르타로스로 쫓겨나 영원히 불 붙은 수레바퀴에 묶여 매달리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익시온의 뒤를 이어 테살리아의 왕이 된 페이리토오스는 이복 형제들인 켄타우로스에게 첫 부인을 잃고 난 후 아테네의 영웅이자 왕이었던 친구 테세우스와 새 아내가 될 여자를 찾다가 지하세계의 여왕이자 하데스의 정실부인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으려고 들었다. 테세우스가 점찍은 헬레네와 달리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이라는 막강한 지위와 혈통을 가진 완전한 여신이다. 어린 헬레네를 아내로 삼으려 했던 테세우스조차 최소 반신도 아니고 (그것도 남편이 삼주신인) 순혈 여신을 아내로 삼으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페이리토오스가 어지간히도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이미 남편이 있는 여자를 건드리려는 것만 해도 명백히 선넘었는데 여신을 건드릴 셈이냐고 강하게 만류했지만[23] 페이리토오스는 뻔뻔하게도 친구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되도 않는 똥고집을 부리며 지하세계까지 찾아가 그 당사자이자 페르세포네의 남편인 하데스 앞에서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고 싶다는 말을 그대로 해버린다. 결국 페이리토오스는 이를 괘씸히 여긴 하데스에 의해 망각의 의자에 앉아 죽지도 못하고 산 채로 지하세계에 박제되어 영원토록 만인의 조롱거리가 되고 본인 스스로도 자기가 벌 받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 타뮈리스(Thamyris): 음악의 신 아폴론의 아들 필라몬과 님프 아르기오페의 아들 타뮈리스는 탁월한 시재(詩才)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트라케 지방의 천재 음유시인이었다. 즉, 아폴론의 손자.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아홉 명의 무사이 여신들보다 더 뛰어난 목소리를 가졌다고 자랑하며 오만해지고 무사이 여신들에게 도전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무사이의 압승과 타뮈리스의 완패. 무사이 여신들은 신에게 도전한 타뮈리스에게 저주를 내려 커리어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목소리를 영원히 빼앗고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
- 피에리데스(Pierides): 피에로스 왕의 아홉 딸들인 피에리데스는 예술과 학문, 음악, 즉석 작곡작사에 훌륭한 재능을 가진 불세출의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찌르는 명성에 오만해진 피에리데스는 무사이의 성지인 헬리콘 산까지 달려가 무사이들에게 도전을 하였고, 인간 아홉 자매와 신족 아홉 자매들은 음악 경연을 벌이게 된다. 피에리데스는 튀폰의 공격을 받아 동물들로 변신해 아프리카로 달아난 신들의 치욕을 서사시로 노래했고, 무사이는 하데스에게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전 세계를 방랑하는 데메테르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결과는 무사이 여신들의 압승으로 끝났고, 헬리콘 산마저 무사이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감동받은 나머지 너무 기뻐서 지하로부터 샘물이 신난 것처럼 치솟아 페가수스마저 말발굽으로 억눌러야 했다. 똑같이 신들의 치부와 악행을 까발리는 직물을 짰지만, 적어도 기술과 순수 능력만큼은 근소 우위로 아테나를 정정당당하게 이긴 아라크네와 달리 이쪽은 완벽히 대패한 셈. 하지만 피에리데스는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여신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져버린 자기들만 억울하다는 듯이 화를 퍼붓는 뻔뻔하고 찌질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분노한 무사이에 의해 자매 전원이 까치로 변해버리는 형벌을 받는다.
- 마르시아스: 사튀로스 남성 마르시아스는 아테나가 던진 피리를 연주하는 기량을 닦아 훌륭한 피리 연주가가 되었지만 점점 오만해져 아폴론에게 누구의 악기 연주가 더 뛰어난지 우열을 가리자고 도전했다. 아폴론은 이를 받아들였고 패배한 쪽은 살가죽을 벗겨죽이는 형벌을 받자는 조건 하에 두 신들은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몇날 며칠이 지나도록 승부가 끝나지 않자, 아폴론은 리라를 거꾸로 연주하는 능숙한 솜씨를 보이면서 너도 거꾸로 연주해 보라고 한다. 하지만 피리는 리라와 달리 구멍의 위치가 다 정해진 목관악기라 거꾸로 연주하는 건 불가능했고, 결국 아폴론의 압승으로 끝났다. 대결이 끝나자마자 아폴론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신에게 도전한 벌이라며 마르시아스를 나뭇가지에다 거꾸로 매달아놓고 산 채로 살가죽이 아주 느리고 천천히 뜯겨져 벗겨죽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고, 마르시아스는 고통스러워하며 아비규환의 비명을 지른 채 죽어간다. 심지어 심판을 맡은 무사이는 똑같이 아폴론에게 도전했다고 패배해 버린 마르시아스가 아폴론에게 살가죽을 벗겨 끔찍하게 죽는 형벌을 받자, 오히려 그 광경을 다 함께 기뻐하며 음악을 감상하듯 편안히 즐겼다고 한다.
- 소 아이아스: 트로이 전쟁 종전 직후 고향에 돌아가다가 아테나 신전에서 도망친 카산드라를 강간한 일로 아테나의 노여움을 산다. 결국 아테나가 일으킨 거센 폭풍에 의해 배가 침몰하고 암초까지 떠밀렸는데 "나는 맨몸으로 신을 이겼다!"고 자랑하며 사실상 자길 죽여달라고 외치는 꼴이나 다름없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 이 모습을 보고 아카이아 연합군을 돕던 포세이돈마저 세상에 뭐 저런 오만방자한 인간이 있냐고 분노하고 파도를 일으켜 암초를 파괴해버렸다. 이렇게 아카이아군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10년 내내 아키아아군의 수호신 역할을 해왔던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어그로와 증오를 끌 대로 끌어버린 소 아이아스는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못 돌아가고 바다 밑으로 익사해버렸다.
이 외에도 더 많다. 신을 모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운한 결말을 맞는다. 예외적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아프로디테, 아레스에게 상처를 입힌 디오메데스의 경우, 디오메데스가 결코 독단적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아테나의 가호와 지시, 개입에 의해서 꼭 해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저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아테나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저런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위의 신을 모독한 사례들과 똑같이 비교하기는 힘들다. 애초에 아테나 스스로도 디오메데스에게 "다른 신들을 보면 절대 함부로 무력을 행사하지 말되, 아프로디테가 끼어들면 그때나 창으로 한번 찔러주고 말아라"고 분명히 신신당부했었다.
결국 디오메데스도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아이네이아스에게 상처입힌 죄로 인해 처벌을 받았는데,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시켜 그의 부인이자 아르고스의 왕비 아이기알레이아에게 금화살을 쏠 것을 명령해 아이기알레이아는 처음 본 남자인 코메테스[24]에게 한눈에 반해 불륜을 저지르고, 그와 작당해 남편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이렇게 디오메데스는 빈손으로 나라 밖으로 추방당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아테나도 이때는 아프로디테가 디오메데스가 고국에게 버림받는 처벌을 내렸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이쯤에서 처벌을 줬으면 됐으니까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게 고작이었고 아프로디테도 이쯤에서 복수하는 걸로 만족하고 물러났다. 그 후 이탈리아 북부 지방까지 도달한 디오메데스는 자신의 명성을 알고 있는 한 나라의 왕으로부터 환대를 받으며 그 왕의 딸인 공주와도 결혼하고 새 나라를 세우는 창업군주가 되는 등, 올림포스 12신들을 건드린 인간 치곤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다른 전승에 의하면 오뒷세우스와 공모하고 팔라메데스를 잔인하게 살해한 업보로 인해 아카이아 연합군에게 복수심을 품은 그의 아버지 나우플리오스 2세와 오이악스[25] 부자의 간계로 아이기알레이아에게 버림 받아 참혹하게 죽었다는 결말도 있지만, 이건 인간에게 복수를 당한 거지 신벌은 아니다.
목동의 신이자 사튀로스 판도 아폴론의 리라 연주보다 자신의 팬플루트 연주가 더 훌륭하다고 떠벌리다 음악대결까지 벌여 패배하고도 타미리스와 피에리데스, 동족인 마르시아스와 달리 끝까지 무사히 살아남았는데, 이는 판이 아폴론과 사이가 친한 헤르메스의 아들이자 아폴론에게는 조카 격인 존재이면서 엄연한 불로불사의 신이기 때문에 처벌을 피한 거지 판의 연주소리가 더 좋았다며 편파판정이라며 격렬하게 항의한 미다스 왕만 두 귀가 당나귀처럼 길어지는 저주를 받았다.[26]
이다스 역시 자신의 약혼녀이자 오르코메노스의 공주 마르펫사를 빼앗아가려는 태양신 아폴론에게 크게 반발하며 주먹으로 냅다 때려눕히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 이 역시 중재자를 자처한 제우스가 마르펫사가 직접 택하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자고 한 제우스의 난입 덕분이라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와 똑같다. 마르펫사의 선택을 받은 덕에 아폴론의 저주도 안 받고 살아남은 경우이다.[27]
오뒷세우스도 신, 그것도 삼주신을 모독한 인간이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몇 안 되는 사례로 꼽힌다.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퀴클롭스 괴물 폴리페모스의 눈을 영원히 멀어버리게 하고 이를 삼주신 포세이돈의 영역인 '바다' 위에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떠벌리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포세이돈의 저주 섞인 증오를 사서 덮쳐오는 파도에 휘말려 익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비와 사경을 넘나들며 미지의 섬에 표류하는 행적을 반복하고 구사일생한 끝에 20년 만에 귀향에 성공했다. 20년간 지속된 본인의 공석을 틈타 이타카의 왕위와 페넬로페의 새 남편 자리를 탐내며 궁중에서 온갖 패악질과 민폐를 부리던 구혼자들과 그 공범들을 모조리 처형한 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아버지 라에르테스,[28] 여동생 크티메네,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를 비롯한 소중한 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여생을 살아가는 해피 엔딩을 맞이했다.
트로이 목마 작전을 혼자서 수립하고 지휘하여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끔찍한 불행과 나락에 빠뜨려 미움 받아온 오디세우스 본인의 업보와 포세이돈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소 아이아스의 비참하고 추한 말로를 생각하면, 오뒷세우스는 프시케와 디오메데스보다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다. 오뒷세우스 역시 신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지혜와 꾀만으로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괴물 폴리페모스를 격파하는 업적을 이룬[29] 것을 높이 사고, 수호신을 자처한 아테나의 가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30] 아킬레우스도 자기 몸 안에 흐르는 테티스의 피만 믿고 하급신에 해당하는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에게 어그로를 끌며 모욕했다가, 아주 제대로 피를 봤었다. 이때 아킬레우스가 한 짓은 명백한 신성모독이었지만 그리스군을 무조건 편들던 헤라가 제우스의 질책도 무시하고 헤파이스토스를 보내면서까지 살려두고 불공평할 정도로 테티스와 아테나, 포세이돈의 가호까지 받은 탓에 운 좋게 살아남은 경우. 이것만 봐도 파리스와 헬레네로 벌어진 트로이 전쟁에 이르면 올림포스 신들과는 절대 엮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신상에 최선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슈에서 벌어지는 신들의 행태는 신이라기 보단 신통력을 손에 쥐고 민중을 핍박하는 귀족과 왕족의 막장질에 가깝다. 귀족과 왕족의 막장질과 다른 게 있다면 신들은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들이 살만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신을 잘 대해 준 인간에게는 반드시 보답한다는 데서는 왕족과 귀족보다야 낫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신들의 막장짓이 유명해서 그렇지 신들이 인간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신들을 모독하는 등의 일로 인하여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고, 반대로 신들을 잘 대접해주는 경우에는 확실히 보상을 받는다.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어느 마을을 찾아갔다가 모두에게 박대당하고 마을을 싹 물로 쓸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환대해 준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집은 신전으로 바꾸어 신전을 관리하게 해 주고 한날 한시에 죽게 해 달라는 노부부의 소원도 그대로 들어줬던 일이나, 미다스 왕이 자신의 의부(혹은 스승)인 실레노스를 극진히 대접해 줘서 디오뉘소스가 보답해 줬다는 스토리도 있다(미다스 왕의 황금 손 일화는 왕의 탐욕이 문제였지 디오뉘소스는 순수하게 호의를 베풀었고, 소원을 빌었을 때도 만류했다. 그나마도 미다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싹싹 빌자 그것을 해결해 줬다.). 마냥 착취만 하는 건 아니다. 이는 그리스 뿐만 아니라 거칠고 호전적인 전사들로 유명한 북유럽 신들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에로스는 사랑, 프시케는 영혼을 뜻한다고 풀이된다. 프시케는 저승에 갔다가 살아 돌아왔고 영원한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으므로 고치에서 잠들어 있다가 "재생", "부활"하는 나비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시케는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될 때 나비 날개를 단 처녀로 많이 묘사된다. 이 때문인지 프시케는 나비의 뜻도 가지고 있다. 다만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 πεταλούδα(petaloúda, 페탈루다)'란 단어를 더 널리 쓴다. 물론 '프시히'(프시케의 현대식 발음) 역시 문맥에 따라 나비란 뜻으로 쓸 수 있다. 또한 영혼은 정신과 밀접하기에 정신병을 뜻하는 Psychosis는 물론 Psychology(심리학), Psychiatry(정신의학)등의 단어에서 정신을 뜻하는 접두사 'Psych-' 는 프시케Psyche를 어원으로 한다.
두산백과에서는 에로스와 프시케를 모델로 소녀와 그녀를 괴롭히는 소년을 조각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그 뜻은 영혼(프시케)을 괴롭히는 애욕(에로스)의 법칙이라 한다. 이러한 에로스와 프시케의 관계는 인간의 생명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결국 영혼과 애욕이 만나 딸아이 쾌락을 얻었으니 이 신화의 주제는 영혼의 고통을 견뎌내고 사랑의 희열을 얻는다가 될 것이다.
신화 외적으로 현대인이 보기에 인신공양의 형태를 한 납치혼에 가까운 형식으로 신부를 데려온 신랑, 그리고 부부 관계가 아닌 마치 불법업소에 들른 손놈처럼 신원은 물론 얼굴까지 숨기고 일방적인 육체관계만 가지고 사라지는 에로스의 행동은 프시케 입장에선 남편이 아닌 괴물로 의심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사실 심의 때문에 프시케가 성숙한 성인 여성으로 묘사되는 서적이 많지만, 당시 시대상 평균수명이 엄청 짧은 시대이다보니 여자는 10대 초중반, 즉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시집갈 나이로 간주했다. 프시케가 나이가 차도 시집을 못 가서 부모가 근심했다는 대목이 나온 것으로 볼 때, 그 때 프시케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봤자 1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서민 여자면 세상물정을 익힐 기회나 있지, 공주인 프시케는 대접을 받으며 궁궐 안에서만 지내고 행차는 정해진 시일에만 했으니 세상 물정을 제대로 몰랐을 게 뻔한 상태였다.
아프로디테를 향한 신성모독으로 파멸한 스미르나와 히폴리토스의 선례를 보자면 아프로디테가 프시케를 비천한 자에게 시집 보내는 것으로 끝내려 한 것은 당대 그리스 신 치고는 꽤나 관대하고 자비로운 처분이었다. 이런 어머니를 먼저 설득하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가 미워하는 그 인간 여자한테 도둑 장가나 들어서 고부갈등의 골을 키워놓고 자신을 의심했단 이유로 무책임하게 일방적인 파혼을 선언한 에로스는 여러 모로 새 신랑으로선 낙제감이다. 에로스 자신도 첫사랑인지라 서툴렀다는 점을 감안해 줄 수는 있다. 프시케가 자신의 말을 어기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에로스에게 직접 상처까지 입혔는데도 죽이기는 커녕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았고, 미리 경고를 한 데다 몸이 다 낫기 전에도 어머니의 뜻을 거슬러 프시케를 도운 것을 보면(정황상 제우스까지 움직일 정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온갖 난봉꾼이 난무하는 그리스 신화에선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비록 자신이 떠나긴 했어도 프시케와 헤어진 슬픔과 상사병으로 앓아누웠고, 프시케를 구하러 직접 뛰어다닌 걸 보면 완전히 순정파. 프시케가 가족을 보고 싶다고 할 때 신이 되지 못한다고 만류하려 했다는 판본도 있는 것을 보면, 프시케가 완전히 신이 되어 자신과 동등한 위치가 되면 정식으로 가정을 차릴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로스가 자신의 모습을 감춘 이유가 신과 인간이라는 신분차 때문에 프시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꽤 높다.
신성모독 건만 빼고 봐도 에로스는 프시케한테 화낼 자격이 없다. 결국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명령에 따라 프시케의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날붙이(화살촉)을 들이대려고 한 것은 에로스 자신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프시케의 침실에 몰래 들어와서는 프시케의 미모를 실컷 감상해 놓고, 정작 프시케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안 된다는 건 빼도 박도 못한 내로남불이다. 에로스도 기분파라 화를 내면서 떠나버렸으나, 막상 곰곰히 생각해 보니 후회가 된 듯하다. 결국 원전 작가의 의도에 따라 고생하는 프시케를 보고 마음을 돌려 처음부터 했어야 했을 정식 결혼식을 제우스의 주례로 올리게 된다. 인간 출신의 프시케는 파경이 아닌 신벌이 두려워서라도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처지였다. 파경은 단지 본인의 불행으로 끝나지만 신벌은 가족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옛날식으로 보자면 프시케가 시련을 겪으며 데메테르, 페르세포네와 안면을 트고 이 소식이 제우스의 귀에도 들어간 이후에나 신분상승의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프시케를 죽인다 해도 에로스는 비난받을 거리가 하나도 없다. 프시케가 에로스에게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기 힘들고, 신들이 안다 쳐도 아프로디테를 필두로 한 신들은 감히 인간인프시케가 에로스를 상처 입힌 것만을 문제 삼으며 사건을 묻어버릴 것이다. 에로스가 그리스 신답지 않게 인간인 프시케를 소중히 아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엔딩 후에는 기쁨과 환희의 여신 헤도네(로마 신화의 볼룹타스)를 낳고 화목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커플 외의 주신들 중 가장 멀쩡한 부부 생활을 보여준 것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인데, 당시의 풍습인 납치혼 형식으로 페르세포네를 정식적으로 아내로 맞이한 하데스마저 딱 한 번이지만 코퀴토스 강의 님프 멘테와 바람피운 적이 있고 페르세포네도 아도니스를 애첩으로 들여 1년 4개월 동안 자신과 함께 지낸다는 식으로 납치혼에 대한 보복 겸 맞바람을 피웠다. 반면, 프시케와 에로스 부부는 결혼 이후 바람 한번 피웠다는 얘기조차 없다.
선악 기준이 뚜렷하지 않은 신과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모든 등장인물들, 특히 고귀한 신분의 공주들 중 나우시카와 더불어 가장 정상인이다. 악행을 저지른 전적이 전혀 없고 확연히 선인이라는 점도 특징. 판본에 따라 언니들에게 복수하고 방랑길을 떠난다는 버전도 있기는 하다.[31] 또한 대부분 배드 엔딩으로 귀결되는 여러 인간들과 영웅, 왕족들과 달리, 못말리는 호기심으로 계속 불행을 자초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해피 엔딩, 그것도 닫힌 결말로 끝났다는 점도 이채롭다.
귀한 신분이었지만 잃을 게 없는 거지로 전락한 세상 물정 모르는 착하고 아름다운 미녀 주인공이 자기보다 고귀한 신분의 남자를 만나 시집 가는 이야기, 자기보다 더 예쁘고 뛰어난 여자 주인공을 질투하여 괴롭히고 학대하고 여러 고난과 시련을 내리는 계모/시어머니 포지션의 악역[32], 여자를 질투하고 잘 안 되기를 바라고 견제하는 언니들[33], 핍박 받는 여인에게 자연스레 다가오고 선뜻 도움을 주려는 유능한 조력자들[34], 괴물인 줄 알았던 남편이 사실 절세미남에 고귀한 왕족/신족 신분이란 점, 금기를 깨는 바람에 이별하고 재결합하기 위해 시련을 겪는다는 점 등 후에 여러 동화와 민담, 21세기에 들어 눈에 띄게 범람하고 있는 로맨스 소설과 로맨스 판타지 애니/만화/드라마/영화 장르에 클리셰와 모티브가 된 부분이 많다.특히 서양과 한국의 고전 동화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작품을 꼽자면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팥쥐, 미녀와 야수가 있다. 노래하고 뛰노는 종달새 같은 경우 거의 캐릭터와 이벤트만 바꾸어놓은 짝퉁 수준이다. 개구리 공주는 성반전 버전. 이런 형식의 신화와 설화는 전세계에 도처한 "잃어버린 남편을 찾아서" 타입으로 구분되며 한국 역시 구렁덩덩 선비라는 설화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저승에 해당하는 지하세계를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탐험하고 죽음까지 경험했다가 부활에 성공한 것은 엄연히 영웅의 신화적 업적에 해당한다. 프시케의 경우 외모만 아름다울 뿐, 보통 대중이 생각하는 위풍당당하고 강인한 고대 그리스식 영웅상과 대비되게 공주에서 거지 신분으로 전락한 연약하고 가녀린 인상의 여성에다가 그런 영웅적인 부분이 부각되지 않은 것뿐이다. 신화 속 유일무이한 강인한 여성 영웅의 표상인 아탈란테처럼 1인분의 몫을 할 만한 뛰어난 전투력과 무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메데이아와 오르페우스처럼 마법과 음악을 비롯한 독자적인 전공 분야만으로 괴수를 혼자서 처치하는 영웅적인 활약을 선보인 것조차 아니다. 시련을 받는 과정 역시 비운의 여주들이 흔히 치르는 시집살이처럼 그려졌고, 아프로디테가 시킨 네 과업들도 아래의 헤라클레스처럼 혼자만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대부분 에로스와 에로스가 사주한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무력하고 수동적인 인상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물론 앞서 말한 셋은 순수 인간임에도 그 신으로부터 직접 거두어져 영재교육을 받았거나 부모 중 한 사람으로부터 신의 피를 이어받은 반신인 케이스라 신과 아무런 혈연도 인연도 없었던 평범한 인간인 프시케와 비교하기에는 애매하긴 하다. 냉정하게 보면 프시케가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에로스의 도움 덕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남편과 재회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려고 한 것이나, 그 무시무시한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 앞에서 시험을 능수능란하게 회피한 것을 보면 절대로 보통 배짱이 아니다. 고전적인 영웅상의 핵심 조건인 무력과 지혜가 없을 뿐이지, 프시케 역시 영웅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일신의 용맹과 행동력을 지닌 인물이다.[35]
이러한 프시케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행적과 서사가 비슷하다. 둘 다 올림포스 12신에 해당하는 지위 높은 여신( 헤라, 아프로디테)의 미움과 저주를 받고 자신의 죄와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36] 여신이 주는 온갖 시련을 받고 저승까지 갔다와 자신을 미워하던 여신에게 인정받고 그 여신의 자식(헤베, 에로스)과 결혼하여 정식으로 부부 관계가 되었으며, 그 자신도 진정한 불로불사의 신으로 각성한다. 그 여신들이 자발적으로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자식들을 배우자로 주고 사위/며느리로 맞아들인 것 또한 공통점. 남성들이 주인공인 절대다수의 신화에 비해 이 유형의 신화들은 분명 여성 중심으로 서술되기에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렇게 사랑의 승리, 평범한 인간이 지하 세계를 거쳐 진정한 영웅, 신으로 거듭나는 과정, 부활, 고부갈등까지 여러가지 신화소가 복합된 프시케와 에로스 신화는 지금도 인기 있는 스토리이자 소재로 많은 가상 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다.
6. 왜 제우스는 프시케를 넘보지 않았는가?
한국과 일본, 서양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 세계의 그리스 로마 신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올림포스 최고의 바람둥이 남신이자 희대의 연쇄강간마인 제우스가 아프로디테보다 더 아름답기로 이름난 절세미녀 프시케를 먼저 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편으론 왜 프시케에겐 눈독들이지 않은 거냐고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37][38]냉정하게 보면 제우스도 처음엔 프시케에게 관심을 갖다가도 결국 사정상 포기하고 그만 물러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지도자인 제우스로서는 한낱 인간인 프시케보다는 아프로디테의 권위를 더 존중하고 우선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아프로디테는 엄연히 우주적 권능을 지닌 미와 사랑의 신이며 우라노스의 직계 혈통이자 자신의 이모/고모이면서 엄연한 맏며느리[39] 혹은 딸[40]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세상 모든 인간들이 프시케를 자신을 능가하는 미의 여신이라고 찬양하는 탓에 올림포스 12신 중에서도 상당히 다혈질에 변덕도 심한 그 아프로디테가 어느 때보다 분기탱천한 상황인데, 제우스마저 프시케를 함부로 편들었다가는 신계와 인간계 사이의 질서와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또한 제우스 본인마저 아프로디테를 폭발시키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뜨거운 견제와 보복을 받아 최악의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제우스는 이처럼 음탕한 강간마 이전에 최고신이라 프시케와 관계를 맺는 건 객관적으로 봐도 위험 부담이 매우 크다.
프시케가 인품이 선한 절세미녀라 해도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아프로디테가 받아야 할 미의 여신으로서의 명예와 찬양, 지위를 일시적으로 빼앗았다. 차라리 이 모든 명예를 겸손하게 거절하고 아프로디테에게 돌리겠다고 하면 모를까 프시케 본인도 이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않고 즐기기까지 한 신성모독을 지은 엄연한 죄인이기 때문[41]. 애초에 제우스 눈에 세상 모든 미녀들이 다 들어왔을 리도 없으며 제우스는 한번 눈에 들어온 여성을 향한 욕정을 품다가도 만약 그 여성과의 결혼으로 인해 앞날이 어두워지면 망설임 없이 포기한 사례가 몇 번이고 나왔다.[42] 이 부분은 사실상 제우스가 포기했거나 관심이 없었다고 설명하면 끝이다.[43]
그래도 제우스는 프시케 자체를 싫어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의 신격을 손상시킨 죄인이라 직접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코지를 가한 적은 없다.[44] 프시케에게 신성모독당한 아프로디테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입장에 따라 직접 개입하지는 않되 에로스의 부탁 혹은 협박에 따라 프시케를 할 수 있는 선에서 은밀하게 도와줬다. 프시케가 과업을 다 이루고 속죄하자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대접하며 둘의 결혼을 축복하고 신으로 만드는 역할을 주선했다.
프시케가 기간토마키아와 트로이 전쟁 전후에 태어난 인물이라서 제우스가 굳이 건드릴 이유가 없었기에 관심이 없었다는 가설도 있다. 제우스가 그동안 강간과 불륜을 일삼고 다닌 이유는 기간토마키아 때 기간테스에게 맞설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마침내 희대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낳고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한 후부터는 헤라 이외에 다른 여자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묘사가 없다. 그리고 헤라클레스 한 명을 만들기 위해 시제품처럼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난 제우스의 자식들과, 이를 비롯한 영웅들이 너무 많아지자 그들을 숙청하기 위해서 신들이 벌인 행동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신화의 세계에 실제 역사를 대입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는 편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타임라인은 일반적으로 '기간토마키아/헤라클레스의 올림포스 등극-헤라클레스의 후배뻘 영웅들이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네이아스의 로마 건국'인지라 로마 시대에 기록된 프시케 신화는 기간토마키아와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일로 끼워맞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한 파리스의 심판 이후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트로이 전쟁 발발 전에 있었던 일일 수도 있다. 신들의 시간 관념은 인간의 그것과 전혀 같지 않다보니, 황금 사과를 놓고 신들끼리 다툼을 한 것이 파리스가 태어날 때부터 장성한 청년이 될 때까지 지속된 거라고 한다. 애초에 신화이고 주된 스토리에서 벗어난 신화라서 언제 시점에 끼워넣든 상관없긴 하다.
7. 미술작품
자세한 내용은 프시케(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보통 미술작품에선 나비 날개를 지닌 여성으로 묘사되고 그녀에게 사랑에 빠진 에로스가 아이에서 청년으로 변했다는 이유인지 보통 에로스는 프시케의 나이(청년기)에 맞춰 청년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어떤 작품에선 둘 다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아직 사랑에 빠지기 전의 나잇대에 맞춰서 어린아이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미지. 이 외에도 다른 작품들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1]
한 전승에선 그녀가
아프로디테의 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당연히 아무 관계도 없는 여자가 자신의 딸이라는 소문이 들려오니 아프로디테는 분노했다.
[2]
당장 트로이 전쟁 당시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변장을 간파하고 여신을 상대로 차갑게 쏘아붙이는 헬레네에게 "네가 누리는 절세미인으로서의 명성은 모두 내가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의 아름다움을 도로 빼앗아 아무것도 아닌 초라하고 못생긴 여자로 만들 수 있으니 말조심해라."라고 제대로 겁을 주어 입 다물게 한 적이 있다. 헬레네는 평범한 신분의 인간이 아니라 트로이 전쟁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트로피이자 본인이 파리스에게 준 선물인 데다 신화상 극소수에 불과한 최고신 제우스의 반신 딸이라는 고귀한 신분이었다. 최고신의 혈통을 물려받은 반신 격인 존재라 아프로디테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는데도 이 정도로 강하게 경고할 수 있었다.
[3]
아폴론은 똑같이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카산드라 공주의 예언 능력에서 설득력을 빼앗아, 한번 준 그의 예언술을 없는 것만도 못한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그 아폴론의 시녀들이자 학문과 음악, 예술의 여신들인 무사이 여신들도 타미리스라는 인간 청년 음유시인이 자기가 무사이들보다 뛰어난 목소리를 지녔다고 자랑하자 목소리를 영원히 빼앗기는 저주를 내려 보복했다.
[4]
이 경우 에로스는 프시케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신이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면 프시케를 보고 크게 동요하고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5]
아뇰로 브론치노,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
[6]
한 전승에선
제우스와 황천의 신들도 두려워 하는 자라고 말하는데, 바람둥이인 제우스는 물론, 전승에 따라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와 사랑에 빠진 이유가
에로스의 화살을 맞아서이다. 특히 이 둘은 3주신으로 가장 강력한 신들이었으니 신탁이 더욱 두렵게 느껴졌을거다.
[7]
다른 판본에선 "나를 동등한 인물로서 사랑해주길 원하지, 날 신 처럼 경외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이유를 댄다.
[8]
달리 말하면 정령과 올림푸스에 들지 않은 하급신들조차 프시케의 죽음을 에로스가 원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화도 나고 언약도 지켜야 하니 떠나긴 했지만 에로스는 여전히 프시케에게 가호를 내려주고 있었다는 소리.
[9]
프시케는 의도치 않았다지만
아프로디테의 영역인 아름다움을 침범하고, 사랑을 의심하고 배신해
신성모독한 죄인이나 마찬가지다.
[10]
전승에 따라 이 양들은 헬리오스의 양이라고 한다.
[11]
다른 이야기에선 양들이 사나운 괴수들이란걸 알던 프시케가 양들에게 죽임 당할 바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끉자며 강으로 다가갔는데, 이때 강의 신이 "고통받는 프시케여. 너의 불쌍한 죽음으로 내 강을 더럽히려 하지 마라."라고 말하며 날씨가 선선해지면 양들이 순해지니 그때 양털을 깎으라며 방법을 알려준다.
[12]
스튁스 강의 물이라는 버전도 있다.
[13]
물론 카론이나 케르베로스 외에도 아프로디테가 계산해둔 함정들이 여럿 있었다. 당나귀를 끌고 가는 절름발이 마부라든지, 옷감을 짜고 있는 세 여인이라든지, 강에서 배를 같이 태워달라는 영혼들이라든지...이들에게 말을 걸었다간 그들의 일을 대타로 영원히 해야할 판인지라 무시하고 거절하며 길을 가야 했다.
[14]
하데스 건 때문에 나름 앙금과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자신도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모양.
[15]
과거의 자신이나 어머니
데메테르처럼
아프로디테에게 딱 걸려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하며 남편을 찾아 방랑하는 프시케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의 시험을 통과하자 약속대로 프시케의 상자에 아름다움(이 아니라 신들조차 견딜 수 없는 영원한 잠)을 담아주었지만.
[16]
물론... 트로이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최고신
제우스에게 있다. 기간토마키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버린 그 하늘의 별과 같은 영웅들을 숙청하기 위해 커다란 사건을 일으킬 필요를 느낀 제우스가 에리스를 시켜서 결혼식 한복판에 황금사과를 떨구라고 지시했다.
[17]
뿐만 아니라
제우스는 하데스의
페르세포네 납치를 도왔고,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찾다가 포세이돈에게 겁탈당했다.
[18]
이 둘의 결혼식은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졌는데, 신화에서 이렇게 많은 신들이 모인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한 그림에 많은 신들을 묘사할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많이 그려지는 다른 신들의 연회는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이다. 보통 이러한 그림에선 신랑 신부인 에로스와 프시케가 가운데에 있고, 그 옆에 제우스와 헤라가 앉으며, 나머지 신들은 서열대로 앉는다.
[19]
올림포스 가디언에서도 아프로디테는 제발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프시케에게 그동안 쌓여온 증오와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해 "넌 내 아들을 망쳤어! 에로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내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는데, 감히 내 명령을 어기고 널 아내로 삼아? 그래서 그 벌로 방 안에 갇혀 있어!"라고 소리지르며 프시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공포에 질린 프시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떤 벌이든 다 받겠다고 애원한다.
[20]
스미르나는 살아생전
아프로디테로 인해 고통 받았지만,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인해 자신과 아버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아도니스의 외모에 이번엔 아프로디테가 반해버려 거꾸로 고통 받게 만들었다. 아도니스는 어머니 스미르나의 존재나 그녀가 아프로디테로 인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의도치 않게 어머니와 아버지(겸 외할아버지)의 복수를 대신 했다고도 볼 수 있다.
[21]
즉 다른 휴브리스의 예시들처럼 오만한 언행을 보였다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주신 제우스의 아내이자 태양신과 달의 여신의 어머니를 자기보다 못하다고 모욕하고 그 권위마저 짓밟은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미친 짓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22]
니오베의 조카손자 아가멤논은 피는 못 속이는지 아카이아군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맡은 양반이 출항을 앞두고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숲에서 그가 가장 아끼는 숫사슴을 죽이고 내가 사냥을 더 잘한다고 떠벌렸고, 트로이 전쟁에서는 아폴론의 사제인 크뤼세스를 조롱하고 쫓아내는 짓을 저질렀으나, 이피게네이아 하나만 잃은 것만 빼면(심지어 그 이피게네이아마저 제물로 바쳐져 죽을 뻔하다가 아르테미스가 변덕을 부려 살려냈다.) 적자 오레스테스가 왕위도 잇고 미케네의 왕권도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이들의 어머니이자 유일한 역린인 레토는 모욕하지 않았기에, 맏딸 하나 잃는 것과 아카이아군 병사들이 역병에 시달려 죽는 걸로 끝낸 듯. 다만 본인도 끔찍한 죽음은 피하지 못했다.
[23]
물론, 테세우스도 아직 죄를 짓지 않은 무고한 여자아이였던 헬레네를 납치하는 추한 만행을 저지른 시점에선 이런 말할 자격은 없다. 스파르타의 어린 공주를 대낮부터 납치하고 죄 없는 히폴리토스를 죽인 이후부터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24]
디오메데스의 친구 스테넬로스의 아들이다.
[25]
팔라메데스의 형제.
[26]
위의 니오베와 마르시아스 일화를 생각하면 이것도 아폴론이 엄청난 선처를 베푼 편이다.
[27]
하지만 이다스는
제우스의 묵인 아래 태양신까지 이기면서 마르펫사와 힘들게 결혼해 놓고(...)(파혼했는지 아니면 불륜인지는 불명이지만 어느 쪽이든 마르펫사 입장에서는 불륜이다.) 포이베 공주와 약혼을 한다. 하지만 제우스의 아들이자 반신 폴뤼데우케스에 의해 포이베와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지와 재산을 모조리 빼앗기고, 아폴론 때처럼 크게 불만을 품으며 형제 륀케우스와 함께 디오스쿠로이 형제와 결투를 벌이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살해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다스를 선택하고, 그 이다스와 함께 늙어가면서 살아가고자 염원한 마르펫사는 불륜을 저지른 이다스에게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우스와 디오스쿠로이 형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예전에 아폴론의 폭력적인 결혼 강요를 물리치고 이다스와 마르펫사의 선택에 힘을 실어줬던 제우스가 이번에는 이다스와 마르펫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역할로 등장하는 것이 내로남불이자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28]
어머니 안티클레이아(
헤르메스와 키오네의 손녀이자 거짓말과 도둑질, 사기의 명수 아우톨리코스의 외동딸)는 아들 오뒷세우스를 미친 듯이 그리워하다가 오랜 기다림에 지쳐 병상에 누워 사망했다. 나중에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저승으로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러 온 오뒷세우스와 눈물겨운 재회를 하여 포옹을 하지만, 이미 육신을 잃고 영혼만이 남은 안티클레이아는 아들의 감촉을 느낄 수 없었고, 오뒷세우스 역시 어머니를 부르짖을 뿐 어머니와 손이 닿을 수 없었다.
[29]
심지어 트로이 전쟁 세대의 영웅들은 페르세우스와 카드모스, 테세우스, 메데이아,
헤라클레스, 아탈란테, 멜레아그로스, 벨레로폰을 비롯한 이전 세대의 영웅의 종족과 달리 신족 출신의 괴물들과 마주칠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오뒷세우스는 전쟁에서 아카이아군의 승리에 가장 크게 공헌한 전쟁 영웅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만나볼 기회조차 없었던 괴물을 직접 퇴치한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30]
아테나는 본인부터가 지혜와 이성, 전쟁, 전략전술의 여신이기 때문에 특히 지략이 특기인 영웅과 괴물을 퇴치하는 영웅들을 굉장히 총애하고 전폭적으로 뒷바라지하는 성향이 크다. 당장 오뒷세우스의 시대보다 훨씬 더 오랜 과거에서 활약한 대선배들인 카드모스와 벨레로폰, 페르세우스만 해도 모두 괴물과 인연이 깊은 영웅들. 이들은 아테나의 가호 아래 모두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강력한 괴물을 쓰러뜨린 것으로 공적을 인정받은 인물들이다. 적진에서 부하들과 함께 고립된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지략으로 폴리페모스를 쓰러뜨리고 빠져나간 오뒷세우스의 모습에서 과거 자신이 지원했던 영웅들이 생각났던 듯. 특히 앞서 말한 셋들은 카드모스를 빼면 아테나가 직접 조달해준 아이기스 방패와 여타 신들의 무기들, 신족 출신 동물인 페가수스를 통해 괴물을 쓰러뜨린 것이기에 홀몸으로 이긴 것은 아니다. 반면 순수하게 자신이 짠 지략과 두뇌만으로 아테나가 가장 증오하는 나라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괴물 폴리페모스마저 쓰러뜨린 오뒷세우스는 아테나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의 취향과 모두 부합한다. 그래서 아테나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오직 오디세우스의 귀환에 초점을 맞춰 여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후원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일리아스에서 소 아이아스가 아테나는 여느 인간들에 비해 불공평할 정도로 오디세우스를 너무 편애한다면서 오뒷세우스 맘충이라고 비꼬면서 조롱했을 정도. 오디세우스를 심히 편애하는 아테나에게 반감과 불만을 품은 것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오디세우스 개인뿐만 아니라 아카이아군 전체의 수호신 중 한 명인 아테나를 오디세우스 맘충이라고
신성모독한 시점부터 소 아이아스는 아테나에게 단단히 찍히고 사망 플래그를 꽂은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아테나 신전에서 무고한 피해자인 카산드라 공주를 강간하는 흉악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을 결정적인 계기로 아테나를 완전히 폭발시켜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
[31]
나우시카와 달리 공주가 아닌 크레타 섬 출신의 님프지만
브리토마르티스도 눈에 띄는 악행이나 신을 모욕한 죄를 저지른 적 없는 순수한 피해자이자 온건한 성향의 인물이며 미노스에게 아홉 달 넘게 강간 위협을 당하며 쫓겨다녔지만, 끝내 고난을 극복하고
여신이 되는 해피 엔딩을 맞이한 점에서 프시케와 비슷하다.
[32]
아프로디테와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의 계모. 프시케의 친모는 사랑하는 막내딸이 만인의 경외와 숭배를 받되 시집가지 못하는 걸 보고 걱정되어 남편과 함께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신탁을 물을 정도로 딸을 몹시 사랑하는 어머니이다.
[33]
프시케를 질투한 두 언니들이 작정하고 갈라놓으려고 일부러 프시케더러 남편이 괴물이면 죽이라고 꼬드긴 버전만 있는 건 아니다. 하나뿐인 막내동생이자 혈육인 프시케를 걱정한 언니들이 등불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한 뒤 정말 신탁대로 무섭고 끔찍한 괴물이면 망설이지 말고 칼로 찔러 죽이고 친정으로 돌아가라며 진심 어린 자매애를 담아 다독이고 독려하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올림포스 가디언에서는 후자를 그대로 채택하여 내보냈다. 실제로도 자기들의 가까운 가족이 배우자에게 시집 혹은 장가를 갔는데 아직까지도 신원이나 얼굴을 모른다고 하면 같은 가족으로서 두려움과 불안, 걱정을 느끼고 그에 맞는 대비를 갖추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언니들은 신데렐라의 두 새 언니들이나 팥쥐와 달리 프시케와 부모가 똑같은 친자매 지간이며 그 이전에 프시케를 질투해 괴롭히거나 핍박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프시케가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에로스를 향해 고향의 언니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다고 그리움을 토로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매우 가깝고 다정한 우애를 나눈 사이였다.
[34]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투명한 상태로 프시케에게 화려한 의식주를 제공한 시종들과 쌀들을 차곡차곡 분류해준 개미들, 해가 질 때쯤에 양털을 가져가라고 조언한 강의 신, 독수리를 시켜서 드래곤들이 지키는 검은 물을 대신 떠준 제우스, 프시케에게 산 자의 몸으로 명계로 가는 방법을 알려준 탑의 정령. 사실상 계모인 왕비가 실권을 장악한 고국에서 추방당하고 거지 고아가 된 백설공주에게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한 집과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준 일곱 난쟁이들과 신데렐라에게 아름다운 드레스와 마차, 유리 구두를 선물한 요정. 야수에 의해 성 안에 감금당한 벨에게 맛있는 진수성찬과 노래를 대접하는 식기도구가 된 시종들. 하늘에서 내려와 베짜기를 대신 해주고 콩쥐에게 고급 한복을 준 선녀.
[35]
애초에 프시케는 신벌이 다른 사람들에까지 가게 하는 것을 피하게 하려고 본인이 신탁에 따라 괴물과의 결혼을 스스로 결정했고, 아프로디테가 내린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에 절망하긴 했어도, 일단 시도는 본인이 하고 봤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계속 도와준 것도, 이런 책임감 있는 성품에 반한 것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36]
물론, 완벽한 선인으로 묘사되는 프시케와 달리 헤라클레스는 저주가 아니더라도 현대 기준으로 보면 성격이 매우 폭력적이고 오만한 쓰레기이며 수틀리면 묻지마 살인을 일으키고 다닐 정도로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악랄한 시한폭탄, 민폐 덩어리이기도 했다. 허나 이때만큼은 자의가 아니라 헤라가 미치게 만들어 첫 번째 부인 메가라와 어린 두 아들을 죽였다.
[37]
대부분의 신화에서
제우스는 상대가 자신의
딸,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사촌, 오촌, 누나, 여동생, 손녀, 증손녀 등등이라고 해도 마음껏 납치하고 강간해 왔다. 신, 인간 가릴 것 없이 유부녀도 예외 대상은 아니었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스파르타의 왕 튄다레오스의 왕비이자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 디오스쿠로이의 어머니 레다, 암피트뤼온의 아내이자
헤라클레스의 친모 알크메네, 별의 여신이자 페르세스의 아내 아스테리아가 있다.
[38]
아스테리아는 1세대 티탄 신 코이오스와 포이베 슬하의 2녀 중 둘째로 남편 페르세스와 결혼해 마법과 교차로, 주술을 관장하는 강력한 여신 헤카테를 낳았으며, 어머니와 달리 밤의 여신 뉙스와 더불어 제우스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대한 권능과 영향력을 자랑하는 여신이다. 레토의 여동생이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이모이기도 하다. 이쪽은 강간당한 피해자들인 레다와 달리 강간미수로 끝난 사례인데 성추행이나 다름없는 제우스의 구애와 스토킹을 뿌리치고 도망치기 위해 메추라기로 변신해 도망치다가 독수리로 변신한 제우스와 추격전을 벌인 끝에 거대한 바윗덩어리 섬으로 변신해 어디로 마음 편히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고 다녔다. 언니가
헤라의 추적을 피해 무사히 조카들을 출산할 수 있도록 도피처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렇게 섬이 된 아스테리아는 '오르튀기아'라고 불렸다가 장성한 첫째 조카 아폴론이 이모에게 영광을 기리고자 신전을 세우면서 '빛나다'를 의미하는 '델로스 섬'으로 바뀌었다. 제우스의 사악한 저주와 괴롭힘 때문에 두 번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불쌍한 여신이지만 조카들 덕분에 많은 신도들이 방문하고 순례하는 성지가 되고 딸 헤카테 역시 사촌 동생 아르테미스와 같은 달의 여신이자 원수인 제우스가 감히 손댈 수 없는 올림포스의 막강한 명신으로 출세했기에 자식복과 조카복은 최고인 셈.
[39]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딸이라 사실상 12인의 티탄들과 이복 남매지간으로 촌수상 제우스보다 1세대 앞선 이모이자 고모이기도 하며, 신들의 여왕
헤라와의 적장남이자 매번 자신을 위해 아스트라페를 만들어주는 최고의 장인이자 측근인
헤파이스토스의 정실 부인이기도 하다. 다만 아프로디테는 신계에서 가장 못생긴 추남신인 헤파이스토스를 혐오하는지라 남편의 이복형제들인 아레스와
헤르메스를 비롯한 다른 남신들, 아도니스와 아이네이아스의 아버지 안키세스를 비롯한 인간 남자들과 바람 피우는 일이 잦고 헤파이스토스 역시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불륜 행각을 만천하에 까발리고 나서 포세이돈의 제안에 따라 이들에게 바쳐진 제물 중 절반을 자기가 차지한다는 식으로 깔끔하게 해결을 하고 오직 대장간 일에만 전념 중이다. 물론 정식으로 이혼했다는 묘사가 없는 이상 법적인 부부 관계는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
[40]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신화와 전승에서 아프로디테를 바다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일컫는 것과 대조된다.
[41]
다만 이런 계통의 신성모독을 한 죄인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다른 신성모독자들은 본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신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신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 적이 있고 신으로부터 경고를 받아도 정신을 못 차리던 반면에 프시케는 본인이 나서서 신성모독을 하지는 않았으며 신에게 경고를 받고도 반성없이 본인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은 인물은 아니다. 더군다나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방치된 데메테르 신전을 보고 여신의 신전을 방치해둬서는 안된다며 스스로 나서서 치워주는 봉사를 한 것을 보면 신에 대한 경외심은 분명히 있다.
[42]
여신들 중 최고로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의 미모를 인정했지만, 다른 남신들을 모두 몰아내고 홀로 독점하지도 않았으며 되려 남신들의 전쟁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헤라와의 적장남이자 가장 못생긴 추남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시켜 정식으로 맏며느리로 삼았다. 똑같이 네레우스와 도리스가 낳은 50명의 딸들인 네레이데스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명성이 자자한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넘봤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예언 때문에 미련을 접어야 했다. 대신 자신의 손자이자 뮈르미돈 민족의 왕 펠레우스와 강제결혼시켜 손자며느리로 들였고 그렇게 둘 사이에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났다.
[43]
신화를 재구성한 한국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에선 제우스가 아프로디테가 올림포스 회의장의 식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걱정을 표하자, 이유를 알고 있다는 헤르메스에게 프시케 이야기를 듣고서는 "얼마나 예쁘길래 그 아프로디테가 질투하냐?"고 얼굴을 붉히며 호기심을 보였으나 바로 옆에 있던 헤라한테 귀를 뜯어잡히면서 "예쁘면 뭐 어쩔 건데요?"라는 일갈을 듣고 혼쭐이 나는 씬이 나온다.
[44]
정실부인이자 셋째 누나인
헤라와 둘째 누나 겸 처형
데메테르 역시 프시케를 싫어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우호적이었지만,
아프로디테의 권위와 그녀와의 친분을 더 우선시해 직접 도와주지는 않았고 "아프로디테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면 용서해 줄 것이다."라고 조언하는 선에서만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