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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4:38:07

은전군

조선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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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d400> 초대 - 제2대 -
은전군 풍계군 완평군 인양군
제3대 -
이헌용 이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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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전궁 초대 궁주
<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장종의 왕자
은전군 | 恩全君
출생 1759년 10월 4일
조선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망 1778년 10월 16일 (향년 19세)
조선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소 경기도 과천군 남면 당정리[1]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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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찬(禶)
부모 부황 장조 의황제
모친 경빈 박씨
형제자매 5남 3녀 중 5남
배우자 군부인 평양 조씨
(郡夫人 平壤 趙氏, 1758 ~ 1817)
자녀 양자 1남
연재(憐哉)
별칭 하엽생(荷葉生)
작호 은전군(恩全君)[2]
시호 효민공(孝愍公)
}}}}}}}}} ||
1. 개요2. 생애3. 사후4. 미디어에서5. 후손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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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왕족으로 사도세자의 5남이자 막내 아들이었으며 억울하게 희생된 비운의 왕자였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이찬(李禶), 자(字)는 연재(憐哉)[3], 별칭은 하엽생(荷葉生),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어머니는 경빈 박씨 빙애(氷愛)이다.[4] 의소세자 정조, 은언군, 은신군의 이복 남동생이다.

2. 생애

1759년( 영조 35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세 살되던 1761년(영조 37년), 의대증이 있던 사도세자가 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발광하여 그의 생모인 수칙 박씨 빙애를 구타하고 살해했다. 빙애를 구타할 때 사도세자는 빙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돌이 갓 지난 왕자 은전군도 칼로 치고 문 밖 연못에 던져버려 죽을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영조의 계비이자 은전군에겐 새할머니가 되는 정순왕후 김씨가 은전군을 구하여 이름을 '하엽생'(荷葉生), 곧 '연잎이'라고 불렀다.

고작 세 살의 나이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구타당해 죽은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약 1년 뒤에 아버지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죽었다. 당시 혜경궁 소생의 적자 정조도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하루아침에 부모를 모두 잃었기에 상궁들이 은전군을 길렀다고 한다. 사도세자 정조를 견제하던 노론 벽파의 강경파는 은전군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손에 어머니를 잃었기에 아버지에게 적개심을 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자녀들 중에서 그를 유독 주목하며 왕위계승자로 추대하려고도 했다. 은전군을 추대하려던 이들 중에는 정조의 친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친정인 풍산 홍씨 일족들도 끼어 있었다.[5]

1771년(영조 47년) 종친부 유사당상이 되었고, 이후 수덕대부, 오위도총부 도총관, 사용원 제조, 흥록대부, 현록대부를 거쳐서 이복형인 은언군과 함께 수은묘에서 전작례를 행하였다.

1776년(영조 52년)에 영조가 사망한 후, 이복형인 정조가 즉위하였다. 정조는 자신의 대리청정을 방해하고 전횡한 홍인한, 정후겸을 처형하고 고모 화완옹주를 사저로 내쳤다. 하지만 조정의 지배자들이었던 그들을 내치자 홍상범, 효임 모자가 강용휘, 전흥문을 포섭해 존현각에 침투시킨 것(정유역변, 정조 암살 미수 사건)을 시작으로 풍산 홍씨를 비롯한 그들의 잔여 세력이 대거 역모를 꾀했고 차례로 처형당했다. 이때의 주모자 중에는 정조의 친 외삼촌 그러니까 혜경궁 홍씨의 친동생인 홍낙임도 끼어 있었다. 이덕일 세력이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사도세자에게 적대적이었다"는 걸 강조할 때 홍인한 외에도 써먹는 떡밥 중 하나이다. 참고로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바로 현빈, 한지민 주연의 역린인데 영화에 대한 평가가 나쁘다.

이들이 은전군을 옹립하려 한 것으로 드러나자, 온 조정 대신들이 대의를 위해 은전군을 법대로 죽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조는 모든 대신들 및 삼사에서 은전군에 대한 사형 요청을 수십번이나 했을 때 처음엔 '내 형제 중에 은신군 이진은 일찍 죽고, 은언군 이인은 병약해서 목숨만 겨우 붙어 있다. 겨우 사람 꼴 하고 있는 건 은전군 뿐이니 양해해 달라' 유일한 브라더야 살려주라. 라고 거절했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의 요구가 완강하여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은전군에게 자진[6]할 것을 명했다. 물론 은전군은 역모를 꾸민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죽을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고 반항했다. 특히 왕족은 자신도 모르게 역모의 수장으로 추대된 경우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영문도 모르고 죽는 은전군은 반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들이 은전군의 사형을 강력히 주장했고 정조도 이에 못이겨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사약을 내려 은전군은 강제로 사약을 먹고 죽게된다. 이때가 1778년(정조 2년), 은전군의 나이 갓 20세 때의 일이었다.(만 19세)

조카 전계대원군의 아들 철종이 즉위한 후, 1850년(철종 1년)에 대사헌 서영순의 상소로 복권되었다. 1871년(고종 8년)엔 고종이 '효민'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3. 사후

묘소는 양주군 문곡(文谷)에 있었으나, 후에 경기도 과천군 남면 당정리(현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미좌(未坐)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후에 위치가 잊혔다.

4. 미디어에서

파일:한중록 은전군.png }}} ||
<colbgcolor=#94153E>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의 은전군
파일:이산 은전군.png }}} ||
<colbgcolor=#94153E> 〈이산〉의 은전군

5. 후손

평양 조씨 조성의 딸 조씨(1758 ~ 1817)와 결혼했지만, 20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자식이 없다. 대신 형 은언군의 아들 풍계군 이당을 양자로 삼았는데, 은전군과 풍계군 둘 다 죽은 이후에 이루어진 입양이다. 이는 철종 2년인 1851년에 이루어진 조치로서, 은전군을 죄인이 아니라 왕족으로 복구하고 가독을 되살리기 위해 사후에 처리된 것이었다. 이후의 계보에 대해서는 풍계군 완평군 항목 참조.

6. 둘러보기

<colbgcolor=#2917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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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현효대왕 도정궁 사손
 
 
진종 소황제 장조 의황제
 
 
 
 
정조 선황제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순조 숙황제 상계군 전계대원군 남연군 풍계군 진안군
 
 
 
 
 
 
 
 
 
 
 
문조
익황제
철종
장황제
익평군 회평군 영평군 흥녕군 흥완군 흥인군 흥선헌의대원왕† 완평군 완성군
 
 
 
 
 
 
 
 
 
 
 
 
 
 
헌종
성황제
고종
태황제
덕안군† 경은군 청안군 완림군† 완순군 완영군† 흥친왕 완은군† 인양군† 의양군 예양정 완창군
 
 
 
 
 
 
 
완효헌친왕† 순종
효황제
의친왕 영친왕 풍선군† 영선군 경원군
 
 
청풍군 창산군
※ 실제 혈통이 아닌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선은 친자, 점선은 양자 관계임
※ 왕족 / 황족으로서 정식 봉호가 있는 사람만 기재함
※ 은신군은 영조의 동생 연령군의 후사를 이었으나 당시에는 장조 의황제의 아들로 간주하여 그 후손들에게 황족 작호를 수여함
※ † 기호는 사후 추증된 인물이며, 흥선헌의대원왕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수립 이전 사망한 왕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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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2] 봉호는 충청남도 논산시의 옛 지명인 은진(恩津)에서 유래했다. [3] 할아버지 영조가 은전군을 보고 가련하다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 [4] 생전에는 경빈이 아니었다. 세자의 승은을 입었으나 세자의 후궁에 맞는 첩지를 받지 못하고 단지 궁녀의 품계인 종6품 수칙(守則)의 신분이었다. 1899년( 광무 3년) 사도세자가 장조 의황제로 추존되면서 같이 경빈으로 격상되었다. [5] 은전군 추대에 홍낙임의 이름이 나온 건 당시 집권당의 반대파여서 끼워넣은 것. 당시 역모기록을 읽어보면 가담한 게 아니라 이름이 나온것에 불과했다. 홍계능과 몇몇이 태전 서갑편을 이야기하며 주고받은 말들을 역모로 몰았는데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반정은 10년을 준비해야하고 홍낙임은 외척이라 그때쯤이면 왕의 신임을 받아 군권을 가지고 있을테니 그런 인물을 끌어들이면 유리할 것이다" 정도의 언급이었고 본인은 그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정조가 직접 불러서 해명받고 무죄방면하고 속명의록에 기록하게했다. [6] 자살 [7] 태조 왕건》에서 견금강, 《 무인시대》에서 이의방의 동생이자 조선 왕실 조상 이린( 태조 이성계의 6대조), 《 불멸의 이순신》에서 무의공 이순신, 《 정도전》에서 조준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