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법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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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병로 |
제2대 조용순 |
제3·4대 조진만 |
제5·6대 민복기 |
제7대 이영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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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유태흥 |
제9대 김용철 |
제10대 이일규 |
제11대 김덕주 |
제12대 윤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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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최종영 |
제14대 이용훈 |
제15대 양승태 |
제16대 김명수 |
제17대 조희대 |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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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496><colcolor=#fff> 출생 | 1935년 4월 1일[1] |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2] | |||
사망 | 2022년 11월 14일 (향년 87세) | ||
서울특별시 | |||
본관 | 해남 윤씨[3] | ||
호 | 산남 (山南) • 산은 (汕隱) | ||
재임기간 | 대법관 ( 김용철 대법원장 제청 / 전두환 대통령 임명) | ||
1986년 4월 17일 ~ 1993년 9월 23일 | |||
제9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
1989년 10월 30일 ~ 1993년 9월 24일 | |||
제12대 대법원장 ( 김영삼 대통령 임명) | |||
1993년 9월 27일 ~ 1999년 9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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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496><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윤웅, 어머니 이정원 | |
형제자매 | 남동생 윤전[4] 및 4남매 | ||
배우자 | 오현 | ||
자녀 | 아들 윤준[5], 윤영신[6] | ||
학력 |
광주고등학교 (졸업 / 2회) 연세대학교 법정대학 (법학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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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불교 | ||
약력 |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 합격 제21대 청주지방법원장 제24대 전주지방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1986.04. ~ 1993.09.) 제9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제12대 대법원장 (1993.09. ~ 1999.09.)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영산대학교 명예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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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법조인으로, 제12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孤山) 윤선도의 12대손이다.[7] 독립유공자 윤봉현은 6촌 재종형(再從兄)이다.
장남은 윤준 제50대 서울고등법원장이다.
2. 생애
1935년 4월 1일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에서 현산면장을 지낸 아버지 윤웅(尹雄, 1898. 4. 1 ~ 1950. 7. 2)과 어머니 연안 이씨 이정원(李貞媛, 1898. 10. 29 ~ 1978. 5. 26)[8] 사이의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주고등학교[9]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연세대학교 졸업 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장, 전주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 전두환 정부에서 대법원 판사(대법관)에 임명되어 1993년까지 직을 수행하였다. 대법관 재임 중이던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직을 겸하였다.
1993년 9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제12대 대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당시에는 고위직 재산공개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는데, 그 결과로 김덕주 현직 대법원장이 자진사퇴하고, 그 외에도 위장전입· 명의신탁 등의 방법으로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았거나 부동산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다가구주택을 지어 세를 받은 것 등이 드러나 빈축을 산 법관만 무려 2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는 등 법원 전체가 부정부패한 집단으로 공분을 사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당시 분위기에서 마침 사법부 내에 청백리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던 윤관은 대법원장으로 최고의 적임자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윤관은 당시의 재산공개 과정에서 출가한 자녀들의 재산까지 모두 합쳐 고작 5억 원대로 신고되어, 대법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시기 감사원장이던 이회창도 대법원장으로 강력 추천되었으나, 청렴도에서 윤관에게 밀려 결국 물을 먹었다고 한다.[10]
1995년 2월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 #이 발생하여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최초로 대국민사과를 하였다. 법원 직원 10명이 경매입찰 보증금 약 300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기소되었고, 주범의 경우 징역 15년이 확정되면서 이에 대해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국민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것.
대법원장 재직 당시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및 비자금 사건의 3심 재판을 내렸다. 자세한 것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참조.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행정법원 설치도 윤관 대법원장 때 이루어졌다.
그 후 1999년 9월까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중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순화하기에 노력하였다. 대법원장 퇴임 후 법무법인 화우 고문 변호사, 영산대학교 명예 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2022년 11월 14일 오전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법원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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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타
청렴결백을 가장 중요시한 법조인으로 집으로 뇌물이 오면 일체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장남인 윤준(제26회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16기)도 아버지와 같은 직업인 판사이다. 윤준 판사는 아버지가 졸업한 연세대 법대가 아니라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서 판사가 되었다.[11]
남동생인 윤전(尹銓, 1940. 6. 17 ~ )은 제8회 사법시험 합격 후 형과 같이 판사로 재직했다.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사직하였고 법무법인 윤에서 변호사로 근무했다.
[1]
음력 2월 28일.
[2]
#
[3]
어초은공파(漁樵隱公派) 28세 金변 항렬.
[4]
변호사
[5]
제50대
서울고등법원장
[6]
조선일보 논설위원.
[7]
윤선도의 장남 윤인미(尹仁美, 1607. 3. 15 ~ 1674. 4. 25)의 후손이다.
[8]
이승탁(李承鐸)의 딸로 청백리 이후백의 후손이다.
[9]
2회 졸업생이다. 대법원장-법무장관-검찰총장 등 사법권의 핵심이 같은 시대에 모두 광주고 출신으로 채워진 적이 있었으며 박상천 법무장관은 6회, 김태정 검찰총장은 7회 졸업생이다.
[10]
한편으로는
YS의 정치적인 의중에 따라 이회창이 최종 후보에서 배제되었다는 설도 있었는데, 실제로 YS는 이회창의 대쪽같은 성격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대법원장을 맡기기에는 위험할것같아 그를 배제하였다고 훗날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회고하였다.
[11]
고대법대 79학번으로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판사가 되었다. 2011년 2월 10일 단행된 고위법관 정기인사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으로 발령받아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전직 대법원장의 아들이 현직 대법원장의 손발 역할을 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되는 셈이니 당연.
관련 기사 현재는 수원지방법원장, 광주고등법원장을 거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재직 중이고,
2016년 진행된 이태원 살인 사건 항소심 재판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이영선 항소심 재판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