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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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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1군 요코하마 스타디움 · 2군 요코스카 스타디움 · 지방 홈구장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
과거 오사카 구장 · 카와사키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tbs채널2 로고.png TBS 테레비2
현역 선수 경력 츠츠고 요시토모/선수 경력
주요 인물 구단주 난바 토모코 · 감독 미우라 다이스케 · 선수회장 오오누키 신이치 · 주장 마키 슈고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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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영구결번3. 출신 선수들
3.1. 투수3.2. 포수3.3. 내야수3.4. 외야수
4.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개요

역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재적했던 선수들을 이 항목에서 정리한다. 현역 선수단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선수단 항목 참고.

상위 문서에서 언급했듯이 현존 12개 구단 중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함께 한국인 선수(재일교포 제외)와 별 인연이 없는 두 팀 중 하나다. 물론 재일교포 선수는 송재박이 1980년대 뛰었던 적이 있으며 그 유명한 모리모토 히초리가 입단하기도 했다만 먹튀.

2. 영구결번

강팀이던 시절도 있었고 다이요 시절도 포함하면 명구회 회원인 히라마츠 마사지(27번)와 마츠바라 마코토(25번)를 비롯하여 이시이 타쿠로(5번), 사사키 카즈히로(22번) 등 나름 레전드 선수들이 있지만 구단 정식 영구결번은 없다.[1] 레전드들과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것도 있고, 결번대신 번호를 물려주는 경향이 있는 일본야구 문화의 특성 덕분에... 그나마 미우라 다이스케가 은퇴하며 18번을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투수코치로 부임한 미우라가 사용하다가, 2021시즌에 감독에 부임하며 번호를 81번으로 교체했다. 어디까지나 '준'영구결번이라, 나중에 미우라의 뒤를 이을만한 투수가 등장하면 본인 합의하에 물려줄 가능성도 있다고 공언하였으며 2021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고졸 투수 코조노 켄타에게 18번이 부여되어 준영구결번이 해제되었다.

3. 출신 선수들

3.1. 투수

3.2. 포수

3.3. 내야수

3.4. 외야수

4.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정확히는 있었긴 했다. 1997년부터 2012년까지 등번호 100번을 구단에 큰 공헌을 한 저명한 인물들의 영구결번으로 삼았지만, 2013년부터 육성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이마이 킨타에게 이 등번호가 주어지면서 영구결번이 해체되었다. 이후 2015년 이마이가 방출된 후엔 그 해 이마이와 똑같이 육성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아미아 케이쇼가 이 등번호를 쓰는 중. [2] 소속팀이 강팀이었거나 선수생활을 좀더 했더라면 최소한 200승은 찍고 명구회 갔을지도 모르는 성적이다. [3] 일본 한정으로만 타이요-요코하마에서 뛴 선수로 사사키 카즈히로도 있으나 이쪽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경력이 있다. [4] NFL 캔자스시티 치프스 주전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의 아버지. [5] 정확히는 동료 왕징차오와 같이 입단했다. 왕징차오 역시 1군에 못 올라오고 2010년 방출. [6] 당초 벳토 이전 타이요의 감독이었던 미하라 오사무 당시 킨테츠 감독이 이적을 권유했지만 쿠와타가 퍼시픽 리그를 꺼려서 성사되지 않았다. [7] 3대 타격 타이틀(수위타자, 홈런, 타점)을 수상하지 못한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예도 있다. 대신 기요하라는 최고출루율을 수상한 적은 있다. [8] 2천안타를 치고도 아무런 상도 못 받은 인물은 마츠바라가 유일하다. 다만 베스트나인으로 한정하면 딱 1명 더 있는데 바로 주니치, 닛폰햄 출신의 오오시마 야스노리. 그러나 오오시마는 1983년 카케후 마사유키와 공동으로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수상한 바 있기에 마쓰바라만 더욱 작아보인다(....) [9]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당 포지션에서 가장 좋은 수비를 보인 선수'에게 골든글러브가 수여된다. [10]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 닛폰햄의 에나츠 유타카를 상대로 대타 동점홈런을 날리는 등 맹활약했다. [11] 하지만 본인은 이적 회견장에서 울면서 "요미우리로 이적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 다이요에서 우승을 맛보는게 내 목표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이요 훼일즈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하긴 오랫동안 뛰었던 정든 친정팀에서 1번도 우승을 맛보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으니 본인에겐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을 듯.. 이후 요코하마 구단에서 25번을 가장 기대되는 야수에게 부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드래프트 1순위로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최초에는 25번을 받았으며 (다음 해에 곧 2번으로 변경했고 2011년에는 FA 선언하고 소프트뱅크로 튀고나서 틈만 나면 전 소속팀을 디스하는 등 배은망덕의 길을 걷고 있다.), 거인으로 이적하기 전의 무라타 슈이치, 또 지금의 츠츠고 요시토모까지 쭉 25번을 달게 하고 있다. [12] 히로시마의 레전드와는 발음만 같은 동명이인, 히로시마의 레전드는 한자로 山本浩二, 이 선수의 아버지는 山本功児로 쓴다. 이 선수의 아버지도 현역시절 다이아몬드 글러브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등 괜찮은 선수였지만 전자의 선수가 후덜덜한 업적을 남겨서 빛이 바랜 감이 있다. [13] 거포 유망주라면서 2군에서도 홈런을 못 쳤고, 커리어하이인 해의 2군 타율이 .213이었다. [14] 보스턴과 몬트리올 시절 김선우와의 악연으로도 한국 팬들에게 알려진 선수. 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봉중근이나 서재응이 Jung Bong, Jae Seo로 표기되었던 것처럼 메이저 시절에는 주로 '오카 토모'라는 약칭으로 이름이 표기되었기에 메이저 올드팬들은 그 이름으로 더 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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