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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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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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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6호
양산왜성
[ruby(梁, ruby=ヤン)][ruby(山, ruby=サン)][ruby(倭城, ruby=わじょう)] | Yangsan Japanese Fortress
파일:732587_424251_0018.jpg
<colbgcolor=#01454F> 이칭 물금증산리왜성(勿禁甑山里倭城)
물금왜성(勿禁倭城)
양산왜채(梁山倭寨)
이달성지(伊達城址)
증산성(甑山城)
형태 연곽식 산성
건설 1597년 (선조 30년)
구로다 나가마사
폐성 1598년 (선조 31년)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면적 23,703㎡
지정연도 1998년 11월 13일
건축시기 조선시대
링크 공식 홈페이지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산 15
1. 개요2. 위치 및 구조
2.1. 호포왜성2.2. 마사리왜성
3. 과거 모습 및 현황4. 교통5. 외부 링크6.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6호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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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조선왕조실록 보기 · 닫기 ]
> 대개 경상좌도의 동래 · 양산 · 밀양 · 청도 · 경산 · 대구 · 인동(仁同)에서부터 경상우도의 성산 · 선산까지 일로(一路)가 이미 적의 소굴이 되었으며,
웅천 · 창원의 왜적은 아직도 여전히 웅거하여 있고, 웅포의 왜적은 차츰 늘어나서 전보다 배나 성한데 험지를 점거하여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김해 · 양산 두 강에 정박한 적들은 서로 번갈아 출입하면서 순치(唇齒)처럼 서로 의지하여 부산 통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593년 6월 3일
적의 형세가 매우 성하여 울산 · 언양 · 양산 등지에 왜적이 산야(山野)에 가득하여 그 수를 알 수 없고 곳곳에 진영을 벌인 것이 가득하다.
조선왕조실록 1593년 8월 13일
이제 경상도에 적이 있는 곳으로는 울산의 서생포 동래 · 부산양산의 상용당(上龍堂) · 하용당(下龍堂) 김해 · 창원이며,
조선왕조실록 1593년 윤11월 14일
김해와 양산 두 읍의 사이에 삼차하(三叉河)와 칠점산(七點山)이 있는데 그 밑에서 왜적들이 대대적으로 둔전을 개간하고 또 큰 행랑을 지어놓고는 20명씩 부대를 편성해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595년 7월 8일
13일에 황신(黃愼)과 양산 땅 용당(龍塘)으로 나아가 적세를 탐심(探審)했더니, 동진(同陣)은 이미 불타 철거되고 우리 나라 사람이 밭을 만들었는데 밀이 무성하였으며, 북쪽에 인가 네 채가 있었는데, 복병으로 행장의 소장(小將) 3인이 각기 왜인 7 ~ 8인을 거느리고 머물러 있으면서 환자곡(還子穀)을 봉납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595년 11월 2일
흉적(兇賊)이 바다를 건너갈 생각을 하지 않고 울산과 양산 등지에 즐비하게 점거하여 소굴을 만들고 성을 쌓으며 더러는 산을 나와 배를 타고 곳곳에 하륙하여 노략질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597년 11월 28일
일후에 마땅히 수군으로 해로를 차단하고 육군 한 부대로는 사천 · 곤양(昆陽) 사이의 적을 곧바로 격파하고 한 부대로는 언양 · 양산의 왜적을 시살하고 한 부대로는 도산의 왜적을 공격한다면 일이 제대로 될 것인데 군량의 수송이 아주 긴급하다.
조선왕조실록 1598년 2월 2일
도산의 24일 전투에서는 수급을 많이 얻었습니다. 성 밑으로 들어가 물을 긷는 왜인을 유인하기도 하고 양산 · 동래 · 서생포 등지를 네 번씩이나 초탐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598년 5월 17일
도산의 24일 전투에서는 수급을 많이 얻었습니다. 성 밑으로 들어가 물을 긷는 왜인을 유인하기도 하고 양산 · 동래 · 서생포 등지를 네 번씩이나 초탐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598년 5월 17일

1597년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일대의 증산(甑山)에 정유재란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군이 쌓은 연곽식 산성. 양산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동래현에서 김해를 거쳐 낙동강을 타고 밀양 방면으로 진격하기 위한 교두보였으므로, 이미 구법곡에 구포왜성[1]과 하용당(下龍堂)[2], 상용당(上龍堂)[3]에 진을 치고 죽도왜성 및 김해읍성과 연계하며 주둔했다.

이후 1595년 즈음부터 강화회담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될 기미가 보이자, 1597년 일본군은 울산왜성과 양산왜성을 쌓으며 다시 전쟁에 돌입할 기미를 보였다. 이중 양산왜성은 기존의 최전선을 이루던 구포왜성 및 하용당의 진영보다 서북측으로 약 7.5km 떨어진 양산군 물금 땅의 증산(甑山)에 쌓았으며, 새로운 최전방 요새선을 구성했다. 한국 측에는 다테 마사무네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심지어 문화유산청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등재되어 있으나, 이는 와전(訛傳)으로 일본에서는 축성자를 구로다 나가마사로 보고 있다. #

그러나 정유재란이 발발한 뒤 울산성 전투가 벌어지는 등 전진시킨 전선을 유지하기 버거워지는 상황이 벌어지자 1598년 상반기에 이곳에 주둔하던 구로다 나가마사 구포왜성으로 본진을 물려 버리면서 완공한 지 불과 반 년이 채 되지 않아 폐성되고 마는 운명을 맞이했다. 얼마 되지 않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위독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구로다 나가마사 구포왜성마저 버리고 서생포왜성까지 군을 물리면서 퇴각 준비를 한다. 즉 다른 왜성보다 실제로 사용한 기간이 매우 짧다.

2. 위치 및 구조

파일:그림133142.png
양산왜성 위치관계도[4]
파일:스크린샷 2025-01-17 145414.png
양산왜성 항공사진 (1948)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산 15, 산 15-1, 산 15-2, 산 16, 산 34-5, 산 47, 산 69, 증산리 691
양산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서안(西岸)에 솟아 있는 해발 133.1m의 증산에 위치한다. 현재는 증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 모두 퇴적되거나 매립되어 물가와 많이 멀어진 상태지만, 정유재란 당시에는 양산천의 하류 부분이 매우 넓어 호포역에서부터 증산 기슭 바로 앞까지 모두 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성에서 바로 배를 띄워 낙동강으로 진출할 수 있는 입지에 있었다. 예로부터 황산역(黃山驛)이 있어 교통의 중심지였고, 왜성을 쌓을 때 황산역에서 석재를 조달해 썼다고 전해진다.

서남측에서 동북측으로 비스듬히 뻗은 증산의 산마루부터 능선을 따라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다. 석축은 대체로 1 ~ 2m 정도로 높게 남아 있지는 않으며, 석재는 자연석과 거친 할석을 썼고 잔돌을 끼워넣어 막쌓기(乱積み)로 쌓아올렸다. 모서리는 주로 선돌(立石)을 사용한 타테이시즈미(縦石積み)로 쌓아올렸으나, 긴 면과 짧은 면을 서로 엇갈리게 조합하는 산가지쌓기(算木積み)도 일부 확인된다. 면적 291,089m², 둘레는 1.5km이다.

정상부를 넓게 삭평하여 남북으로 길쭉한 방형의 제1곽을 두었고, 북측에 천수 및 바로 이어지는 동측의 타몬야구라(多門櫓) 기단을 배치하고는 그 바로 앞에 마스가타 고구치(桝形虎口)를 두었다. 그 동측 바깥에는 동서로 길쭉한 제2곽을 놓았으며 북측에 굴절부 1곳, 남측에 외부와 통하는 마스가타 고구치가 1곳 있다. 제2곽의 동북측으로 연달아 이어지는 제3곽은 제2곽보다 한 단 낮은 계단형으로 설치했고 가장 끄트머리에 동남측으로 통하는 마스가타 고구치가 1곳 있으며, 출입구의 모서리에서부터 동쪽 능선으로 짧게 뻗은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따로 떨어진 방형의 데쿠루와(出郭)와 사이를 연결한다.

제1곽의 서남측으로도 통하는 마스가타 고구치가 1곳 있다. 제2곽과 마찬가지로 동서로 길게 뻗은 제4곽과 이어지는데 남측에 돌출부가, 북측에 평문(平入り虎口)이 1곳씩 있다. 서남측으로 1단 낮은 부곽과 이어지며 그보다도 1단 낮은 지점에는 방형의 서측 데쿠루와가 있다. 이쪽 부곽은 지금은 버려진 국군의 초소가 있던 곳으로, 현대에 판 참호와 헬리콥터 착륙장 등이 남아있어 그만큼 낙동강 방면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밋밋한 방형인 반대편과는 다르게 동북측으로 제4곽과 통하는 평문이 확실하게 열려 있고, 서남측으로 통하는 마스가타 고구치가 있으며 그 주변에 목조 건축물이 올라갔을 기단이 배치되어 있어 돌출부를 조성했다. 그 서측 능선을 따라 노보리이시가키가 산 아래까지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다.

성 전체로 보면 서북측을 따라 길게 해자를 판 것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제4곽의 북측 출입구 바깥으로는 해자 가운데 흙다리(土橋)를 놓아 출이발 수 있게 했으며 흙다리 양측으로도 해자를 ㄱ자로 꺾어 판 흔적이 있다. 또한 제2곽 북측 해자 바깥에는 짧지만 일자형 토루(土壘)가 1곳 있다. 전체적인 구조와 배치가 대마도의 시미즈야마 성(清水山城)과 유사하다.

산의 동남측 경사면 아래쪽에는 산록거관(山麓居館)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왜성 가운데 산록거관의 존재가 명확하게 밝혀진 곳은 드문데, 증산리 691번지의 외곽을 따라 방형의 일본식 석축이 아직도 잔존한다. 흥덕암 서측에 있는 모서리에서 왜성 특유의 기울기를 가진 곡선형 석축을 볼 수 있고, 조선시대 도자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2.1. 호포왜성

<colbgcolor=#01454F><colcolor=#fff> 호포왜성
[ruby(弧, ruby=ホ)][ruby(浦, ruby=ポ)][ruby(倭城, ruby=わじょう)] | Hopo Japanese Fortress
파일:soffice03.jpg
형태 연곽식 평산성
면적 미상
건설 미상
미상
폐성 미상
위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525

파일:스크린샷 2025-01-18 111758.png
항공사진에 찍힌 호포왜성의 위치 (19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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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그림2023456.png
항공사진과 규슈대 『왜성지도』를 종합한 대략적인 추정 구조도
양산왜성과 마주보는, 양산천의 동안(東岸)에 왜성이 1개소 더 존재했었다. 현재는 호포(湖浦)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호포(狐浦) 또는 호포(弧浦)로 썼는데, 양산왜성이 있는 곳에 있던 황산역과 연계되는 호포원(狐浦院)이 있었다. 구포에서 낙동강을 따라 양산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 금정산의 동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산줄기의 기슭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성의 정체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왜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나, 그 축성 주체가 누구인지, 심지어는 임진왜란 때 쌓은 성인지 정유재란 때 쌓은 성인지조차 불명확하다. 기록에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그동안 조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규슈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왜성지도』[6]에 수록되어 있는 지도가 현재로서는 알려진 유일한 호포왜성의 구조도로, 연곽식 평산성이었으며 북측에 데쿠루와가 1곳 있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항공사진이 찍혔을 때는 이미 동남측에 마을과 경작지가 들어섰고 지형 일부가 무너져 내린 상태여서 정확한 형태를 볼 수 없으나, 『왜성지도』와 비교 대조하여 보면 호포마을 뒷산 정상부에 천수 기단을 조성하고 그 남측 앞으로 제1곽을 둘렀다. 제1곽의 남측과 서측으로 복잡한 형태의 출입구를 두었고, 서측으로 연이어 수 곳의 부곽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2곽과 제3곽까지의 형태는 항공사진과 『왜성지도』에서 일치하는 지형이 있어 추정이 가능한데, 제2곽은 서측으로 마스가타 고구치를 열어 제3곽과 이었고, 제3곽은 북측으로 마스가타 고구치를 두었다. 그러나 그보다 서측의 부곽들은 항공사진을 찍은 시점에서는 이미 경작지가 들어서 있어 『왜성지도』와 형태가 상이하다. 지형으로 보았을 때 낙동강 쪽으로 돌출된 구릉지의 끝부분까지 연곽식의 부곽을 연달아 배치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제1곽의 남측으로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는데 경사면을 따라 몇 단의 부곽을 계단형으로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서측으로 마스가타 고구치를, 동측으로 어긋문(喰違い虎口)을 열어 외부와 통하게 했다. 어긋문 바깥으로는 해자를 팠으며, 성의 북측의 독립 구릉지에는 9자 형태의 데쿠루와가 존재했다. 그 사이에는 선착장(舟入り)으로 상정할 수 있는 직각의 굴곡들이 항공사진에서 관찰되나 정작 『왜성지도』의 실측에는 포함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구포왜성의 전진기지(出城)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그렇다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양산왜성을 쌓을 때 연결성으로써 쌓았거나, 장문포왜성 송진포왜성의 관계와 같이 쌍성(雙城)으로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

안타깝게도 호포왜성은 현재 아예 흔적도 없이 멸실되어 버린 상태다. 양산대로를 놓으면서 성 중심부가 이미 훼손되었는데, 부산 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과 호포차량기지를 건설하면서 산줄기를 통으로 잘라내 깎아버린 탓에 그나마 남아있던 잔존부까지 남김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1년에 양산왜성을 답사하던 일본인 학자들이 시간을 쪼개어 성의 서북측 모서리 일부만을 탐사했는데, 2012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부산광역시 측이 호포차량기지를 건설할 때 부산박물관에 협조를 구하기는커녕 일말의 통지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초적인 지표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지하철 건설을 강행했다는 뜻이다. 부산박물관이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건설 막바지여서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해당 부지는 호포왜성뿐만 아니라 호포역원의 자리이기도 해서 이전부터 도자기 조각이 수습되는 등 나름 중요한 유적지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역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

이유야 어찌되었든, 현재에는 흔적을 찾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 몇 안 되는 왜성이다. 호포마을 곳곳에 왜성의 석축처럼 보이는 돌담들이 남아있기는 하나, 이 중 왜성의 석축은 없고 모두 현대의 석축이다. 왜성의 성돌을 빼 썼을 가능성은 있지만 알 길이 없다.

2.2. 마사리왜성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사리왜성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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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거 모습 및 현황

4. 교통

5. 외부 링크

6.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6호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산성으로, 임진왜란 때 왜장 다데마사무네가 쌓았다고 한다.

산의 정상을 깎고 큰 돌을 이용해 산성을 쌓아 근거지로 삼았다. 지형에 따라 동쪽과 서쪽의 2곳에 성을 쌓고, 양쪽으로 통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7. 관련 문서


[1] 현재는 부산광역시 소속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낙동강 동쪽 하안(河岸)은 대부분 양산군에 속했다. [2]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의 명진초등학교 및 화명고등학교가 있는 시가지 지역이다. [3] 현재 가야진사가 있는 원동의 지역이다. [4] 적색이 중심거점, 황색이 연결거점, 녹색이 진출거점 및 데지로(出城) [5] 사진의 우측 상단 모서리에 9자 모양의 외곽부가 보이고, 우측 하단에는 어긋문이 보이며 그 사이 중간중간에 직각으로 꺾인 석축들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6] 일제강점기에 군 측에서 조사하여 작도한 왜성 지도 모음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