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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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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전경
아르헨티나의 경제 정보[1]
인구 46,404,703명 2022년 추정, 세계 31위
경제 규모(명목 GDP) 6411억 달러 2023년,세계 23위
경제 규모( PPP) 1조 2740억 달러 2023년, 세계 30위
1인당 명목 GDP 1만 3709달러 2023년, 세계 65위
1인당 PPP 2만 7261달러 2023년, 세계 66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빚) 89.4% 2019년[2]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Ca 2020년, 20등급[3]

1. 개요2. 산업 구조3. 쇠퇴 원인
3.1. 열악한 대외 신인도3.2. 실패한 경제 정책과 불안정한 내부 구조3.3. 잘못된 환율 관리와 통화가치의 하락3.4. 통계 조작
4. 그 외
4.1. 달러화 도입

[clearfix]

1. 개요

There are four kinds of countries in the world: developed countries, undeveloped countries, Japan and Argentina.
세계에는 네 가지 종류의 국가들이 있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다.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 197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4]
If a guy has been hit by 700,000 bullets, it's hard to work out which one of them killed him.
만약 어떤 사람이 총알 70만 발을 맞고 죽었다면, 그것들 중 어떤 것이 그를 죽였는지 알기 힘들다.[5]
라파엘 디 텔라(Rafael di Tella),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아르헨티나 출신 경제학자.
The World Cup is won, but the economy is out of the running.
월드컵은 우승했지만 경제는 예선탈락이다.
원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시절에 우승한 스페인에게 쓰던 말이지만, 아르헨티나에게 훨씬 잘 어울리는 말이 됐다.[6][7]

아르헨티나는 과거엔 선진국이었지만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지속적으로 경제가 쇠퇴했다. 오늘날에는 여러모로 경제가 불안한 나라로 분류된다. 1900년대 무렵에는 미국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세계 5대 경제 부국이었고 1913년 무렵에는 세계경제의 1.2%를 점유했으며, 캐나다, 호주보다도 소득수준이 높았다. 여기에 금 보유량도 5,900만 파운드나 되었고, 같은 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미 대륙 최초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정도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선진부국 아르헨티나로 대거 이민 갔을 정도였다.[8] 특히 농업대국으로 엄청난 양의 쇠고기와 밀 등을 수출했다. 1차, 2차 세계대전기에도 중립을 지키며 안정적인 번영을 구가하며 교육이나 복지수준도 높은 선진부유국이었다. 하지만 목축업 등 농업에 치중하다보니 1960년대 이후 점차 선진공업국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고[9] 정치적 혼란들이 몰락을 야기하여 결국 오늘날의 중진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는 지난 40년간 8차례 국가부도[10]를 경험했고, 2020년 들어서 통산 9번째 디폴트[11]를 경험하였다.

물론 아르헨티나가 주변 남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선 삶의 질이 높은 편이긴 하나 실제로는 내부 사정이 좋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많다.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 조짐이 보일 때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을 했는데, IMF가 손을 대면 댈 때마다 오히려 경제가 망하거나, 단기적으로 괜찮아지더라도 시간이 조금이 지나면 더 크게 폭망해버렸다.[12] 지난 40년간 8차례 이상 국가부도를 경험했고, 2020년 들어서 9번째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흔히 한국 언론에서는 베네수엘라와 함께 복지 포퓰리즘으로 망해버린 나라로 인용되어 퍼주기식 복지의 폐해라는 식의 보도가 남발된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몰락에서 페론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긴 하지만 이것은 전후맥락과 복잡한 내부사정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원색적인 왜곡으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논할 때는 왜 아르헨티나가 영국[13] 등과는 달리 경제구조 개혁에 실패하였는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요인은 1차 산업 위주인 산업/수출구조와 20세기 중반의 정치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2016년에도 가장 큰 수출 품목이 대두 부산물(16.75%)과 옥수수(7.11%), 콩기름(7.07%), 대두(5.73%) 순으로 농산물에 편중되었다. #

특히나 가장 큰 원인은 페론 시기 복지정책이 아니라 그 이후 군사정권기의 정책 실패로 지목된다. 정의주의자당 시기까지는 상향평준화식 복지정책을 고수하여 그래도 빈민율 자체는 낮았으나 1976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비델라가 신자유주의를 무리하게 들여오고 계획 없이 국가 경제를 망쳐버려서 현재와 같은 준 파탄국가로 만들어버렸다. 비델라는 1978년 월드컵을 유치하고 운영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탕진했다. 심판에게 용돈을 마구 쥐어주며 자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유리하게 경기를 유도하여 꺼림칙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일각에서는 비델라가 월드컵 우승과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맞교환했다고 평한다. 설상가상으로 후임자 레오폴도 갈티에리(1981-82 재임)는 되도 않는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비용손실과 더불어 패전하는 바람에 전쟁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여기에 1930년대 악명높은 10년 시기의 군부정권 시절부터 시작된 수입대체산업화가 페론 정권에서도 이어져 아르헨티나의 수출 경쟁력이 악화되었고, 이것은 정부의 재정수지 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라는 고질적인 쌍둥이 적자로 이어져 아르헨티나 경제를 좀먹는 양대산맥이 되었다.[14] 주류 경제학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아직도 쌍둥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페론주의라고 보며, 페론의 정책적 실책 역시 군부정권의 실정 못지 않게 아르헨티나 경제 몰락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마냥 옹호적으로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90여년간 추락해간 과정은 한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지만, 최소한 현재 페론주의 복지 정책이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로 가는 과정은 명확히 설명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세입을 넘어 과도한 정부 지출을 지속하면 채권자들이 정부의 부채 상환 능력에 의심을 가져 추가 대출을 거부하고 돈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이제 돈을 더 빌려오기 힘들어졌지만 재정에 펑크를 낼 수도 없는 정부는 복지 지출을 줄이는 대신에 그냥 무작정 돈을 찍어내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다. 이 과정에서 해외 자본이 철수하고 아르헨티나인들조차 가치가 지속적으로 폭락하는 페소를 달러로 바꾸려고 하면서 환율이 뚝뚝 떨어지며 외환보유고가 마르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아르헨티나는 원래 정부가 지정하는 공식 환율과 민간에서 통용되는 시장 환율의 차이가 제법 있는데, 외채를 상환하고 환율을 방어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공식 환율을 실제 시장 환율만큼 빠르게 떨어뜨릴 수 없으므로 두 환율의 차이는 점차 벌어진다. 이렇게되면 아르헨티나 경제를 지탱하는 농업 분야의 수출도 급락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농산물을 수출하여 들어오는 외화는 즉시 정부가 지정한 공식 환율로 강제 환전하게 되어 있는데, 공식 환율로 팔았다가는 손해를 엄청나게 보게 된 농부들은 농산물을 그냥 창고에 쌓아두고 최대한 버티는 쪽을 택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해외로 나가는 농산물에 수출세를 부과하여 정부 재정의 상당량을 확보하기 때문에, 농산물 수출이 줄어들면 외화를 벌어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 수지 적자도 더 심각해진다. 이렇게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 환율 폭락, 무역 수지 적자를 발생시키고 그 결과가 다시 재정 수지 악화로 돌아오는 연쇄 구조를 관찰한 경제학자들이 이제는 페론주의 복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이다.

그동안 아르헨티나 자체적으로 상술했던 쌍둥이 적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노력의 강도가 부족하거나 지속적이지 못하였다. 보통 아르헨티나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 긴축 재정과 함께 외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면서 경제가 나빠지고 결국 정부는 인기를 잃는다. 결국 다음 선거에서는 좌파정권이 들어서고 바뀐 정부가 돈을 엄청나게 풀면서 처음 몇 년은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히 이러한 정책은 쌍둥이 적자를 더 심화시킬 뿐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쌓인 부채가 터지게 되고, 다시 우파 정권이 들어서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어 아르헨티나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화되었고, 이는 아르헨티나가 장장 93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락세를 거듭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기초 체력이 무너질수록 아르헨티나 경제는 국제 경제 상황에 더 쉽게 휘둘리게 되었고, 이제는 사실상 경제 정책의 성패가 아르헨티나인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70~80년대에 아르헨티나는 서방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 산업을 육성하려고 했는데, 얼나 지나지 않아 미국이 세계의 돈을 흡수하면서 외채 위기를 겪고 경제가 심각하게 망가졌다.[15] 2000년대 중후반에는 중국이 진공청소기처럼 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이고 동시에 미국이 농업 정책에서 실책을 거듭하면서 콩, 옥수수, 육류의 국제 가격이 폭등하여 아르헨티나 경제가 호조를 달렸지만, 2010년대에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되며 좋은 시절이 지나자 아르헨티나 경제가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 경제회복 과정에서 쌓아올린 게 꽤 되기 때문에 2012년부터 경기침체가 장기적으로 이어졌음에도 실질임금 수준은 남미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실질임금도 남미에서 높은 축이라 임금수준이 낮은 볼리비아 파라과이, 페루 등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러 온다. 남미 경제 모범국이라고 칭송받는 칠레나[16] 남미에서 정치적으로 부정부패가 덜하고 가장 깨끗하기로 명성이 높은 우루과이 등 다른 남미의 주변국들보다도 최저임금이 높으며 OECD에 가입한 멕시코보다 최저임금이 약 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

그러나 빈부격차가 매우 크고 부패문제도 심각하며 인플레이션율이 상당하다. 게다가 2015년 정권교체 이후로 심각한 재정 적자를 해결하겠다고[17] 공공요금이 폭등하자 재정을 무리하게 확장함으로써 겨우 유지하다시피 한 구매력이 급속히 위축되는 상황에 처했다. 그 대신 달러화가 싸지기는 싸져서 외국으로 물건을 사려고 많이들 오간다. 아닌 게 아니라 칠레와 파라과이, 브라질에서 물건을 사면 훨씬 싸기에 쇼핑하러 많이 다닌다. 더군다나 정권 교체 이후로 각종 공공요금과 보험료, 약값 등이 엄청나게 폭증한 탓에 아르헨티나 물가는 선진국 수준으로 비싸졌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18]

2018년 6월 들어서 IMF 구제금융을 다시 신청하였다. 상술하였듯 2015년 정권교체 이후로 경기침체를 극복하겠다고 외국자본에 우호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그런데 주로 금융업에 집중투자되고 제조업이나 IT분야로는 별로 흘러들어오지 않아서 중소기업들은 울상이 되었다. 경상수지 적자폭이 대폭 확대되고 국가는 외채를 남발하는데 내수시장은 별로 살아나지 않아서 불안불안하다는 평이 안 그래도 많았다. 결국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외국자본들이 대탈출하였고, 아르헨티나 당국은 버틸 수 없게 되어 결국 백기를 들었던 것. 아무튼 아르헨티나 경제는 격랑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8월 터키발 경제위기의 불똥이 튀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45% 초고금리를 책정하여 화폐 가치를 방어하였다. 2018년 8월 기준 아르헨티나 페소-달러의 가치는 연초 대비 38% 하락했으며 2018년 8월 말에 환율불안으로 화폐가치가 이틀에 걸쳐 대폭락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물가 상승률이 54%에 육박했다고 집계됐다. 1991년 이후 최고치이다. # 그래도 2020년에 36.1%로 낮아졌다. #

2019년 8월 12일 강경 키르치네리즈모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1차 선거 득표율이 높게 나오자 아르헨티나 주가는 하루 만에 37.93% 폭락하였고[19] 통화도 하루 만에 25% 평가절하되었다. # 이미 강경 키르치네르주의와 이에 따른 포퓰리즘 정책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우려는 틀리지 않았다.

2020년 5월 22일, 5억 달러 규모 채무를 지급하지 않아 또다시 디폴트가 발생하였다. [20]

IMF는 아르헨티나가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 2020년 8월에 650억 달러(약 78조 원) 규모 채무 재조정 협상에서 채권단과 합의점을 찾았다. #

2021년 6월 22일에 파리클럽과 채무조정에 합의했다. #

2022년 1월 13일에 아르헨티나 통계청은 2021년 12월 소비자 물가가 11월보다 3.8% 올랐으며, 2021년 연간 물가 상승률은 50.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

2022년 3월 25일. 국제통화기금(IMF)이 440억 달러(약 53조 7천억 원) 규모 부채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와의 합의안을 최종 승인했다. #

2022년 후반기를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75%로 올랐다. 미겔 페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는 국회에서 2023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올해(2022년) 물가상승률은 95%를 기록할 것이며 2023년도에는 60%를 전망한다."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청(INDEC)은 9월 공식 물가상승률을 14일께 발표할 예정인데 전문가들은 6.7%로 예상하고 있다. 10월 물가상승률은 7% 미만은 어려우리라 전망하였다. 수도세(10%), 전화·인터넷·유선방송(19.8%), 유류비(6%), 의료보험(11.53%) 등 각종 물가 인상이 예고되었고, 9월에 추진하려던 전기세와 가스세의 보조금 삭감이 10월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JP모건의 디에고 페레이라는 "2022년도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100%를 기록하고 2023년도에는 112%에 달할 것"이라고 현지 경제매체 암비토에 말했다. #

2023년 9월 13일 아르헨티나 통계청은 2023년 8월 소비자물가가 한 달간 12.4% 올라 최근 12개월 물가 상승률이 124.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 JP모건 체이스은 2023년 말까지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율이 190%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여기에 기준금리도 118%에 육박하였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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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업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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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아르헨티나 수출 구조

3. 쇠퇴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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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열악한 대외 신인도

아르헨티나는 19세기는 물론,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40년동안 도합 10차례나 디폴트를 선언했을 정도로 대외신인도가 열악하다. 21세기 들어 디폴트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구조조정을 통해 외채를 갚는 대신, 배째라 하고 나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산을 강탈하는 정책을 반복하여 왔고, 이로 인하여 대외 신인도가 크게 훼손되었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고는 마이너스를 찍고 있고, 페소화 가치의 폭락과 높은 인플레이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 9월 9일에는 석유 회사 YPF 국유화 관련 주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제공하지 않고 주식을 강탈한 것과 관련하여 16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들었다. YPF 국유화를 진행한 2012년 당시 재무부 차관인 악셀 키실로프(Axel Kicillof)는 '바보들'이나 계약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다. 키르치네르 집권 당시 아르헨티나가 다른 투자자들에 대한 신용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 여기에 2020년에 일어난 국가부도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종자, 비료, 석유 공급의 중단으로 곡물수출량이 크게 감소해서 국제 곡물가격 상승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고 극단적인 가뭄과 함께 발생해서 아르헨티나 내의 식품 물가 상승으로 초인플레까지 발생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그래도 팜파스 초원 특유의 토질 덕분에 식량난 걱정은 크게 엄두에 두지 않아도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까지 발생한 것이다.

3.2. 실패한 경제 정책과 불안정한 내부 구조

#1
#2
#3
노동운동·파시즘 결합 ‘페론주의’ 주인공

전반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몰락에는 군부정권부터 페론 정권, 민주화 이후 문민정권들의 경제정책 실패와 불안정한 내부정세, 부실한 경제구조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총체적으로 맞물려 발생했다. 아르헨티나는 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부터 호세 펠릭스 우리부루 주도의 쿠데타를 시작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형세를 보여왔고, 이것이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경제 구조적 문제와 연계되어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즉, 알려진 것보다 더 이른 시기인 1930년대부터 아르헨티나는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었던 셈이며, 이는 후안 페론이 집권하고 있던 1946년 ~ 1955년까지의 시기에도 꾸준히 하락세가 이어져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1930년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53년간 쿠데타가 무려 6번이나 발생한 것도 아르헨티나의 몰락에 일조하기도 했다.[21] 이 과정에서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등, 포용성과 거리가 먼 남미 정치권 특유의 문제점들도 아르헨티나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난다.[22]

전술했듯이 아르헨티나는 대공황 이전까지 서유럽 국가들을 능가하는 부국이었으며, 20세기 초에는 캐나다 호주보다도 1인당 GDP가 높았을 정도로 선진국의 대명사로 통했던 국가였다. 대공황과 1930년부터 시작된 쿠데타로 전성기가 꺾이고 하락세를 탄 이후에도 1966년까지 일본보다 1인당 GDP가 높았고, 1988년까지 대한민국보다 1인당 GDP가 높았던 부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전성기는 농축산업을 위시한 1차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뒷받침이 되었고, 여타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산업화가 저조해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였다. 여기에 1930년 우리브루 주도의 쿠데타 이전에도 1919년의 비극적인 주간과 1920년 ~ 1922년까지 2년간 지속된 파타고니아 반란 등, 노사갈등이 격화된 상태였고, 이것이 1930년 쿠데타 이후 13년간 이어진 악명높은 10년 시기동안 노사갈등이 끊임없이 벌어졌으며, 1943년 파블로 라미레즈가 통치하던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1955년 페드로 아람부루 주도의 쿠데타로 페론이 실각한 이후, 아르헨티나의 정국은 혼란을 거듭했고, 이는 가뜩이나 대공황 이후 하락세를 걷던 아르헨티나의 경제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1976년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주도하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후 비델라를 위시한 군부독재자들의 실정과 호세 마르티네즈 데 호즈(José Martínez de Hoz, 1963, 76-81 재임) 경제부 장관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함으로써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권력에 눈이 먼 몇몇 인사들 때문에 나라 전체가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걸음을 옮겨버린 것. 그 결과 국내의 산업기반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2020년대까지도 초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를 번갈아가면서 겪는 데다가 2022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이 무려 73.5%에 달하는 파탄국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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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적갈색의 PRN이라고 씐 군사집권기 때 빈민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가 일어나 세계적으로 신흥국들이 우후축순 무너졌던 시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아래의 페론주의에 대한 변론을 읽을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더디게 성장하긴 했으나 이는 후안 페론이 빈민들부터 당장 구제하지 않으면 경제개발을 했을 때 빈부격차가 수습 불가능해진다고 결론을 냈기 때문이었다.[23] 그래서 후안 페론은 경제 개발을 하기 전에 빈민 구제 정책과 복지 정책을 먼저 시행했던 것이다. 페론은 빈민 구제정책을 시행하면서도 1947년에는 철도를 비롯한 주요 기간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전 국토에 걸쳐 공업화를 단행하는 등, 경제 개발을 위한 이런저런 밑밥을 다져놨다.[24] 이런 상태를 호르헤 비델라가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특히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를 유치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유치권을 따내고자 FIFA 직원들에게,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승리하게 만들려고 심판들에게 저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쥐어주느라 정부의 국고를 지나칠 정도로 탕진했음이 매우 큰 요인이었다.[25]

그나마 페론은 고생해가면서 자신이 집권할 때부터 빈곤율 10% 이하인 상태를 계속 유지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페론이 사망한 1974년에는 5.8%에 도달, '아르헨티나의 자랑거리'처럼 여겨질 정도로 빈곤율을 낮추어 놓았다. 그런데 비델라는 퇴임 1년 전인 1980년에는 당시까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 빈민율이던 무려 37.4%, 이전의 6배 이상으로 뻥튀기시켜 놓았다.

게다가 경제성장이라도 제대로 이루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비델라가 집권한 1976년부터 1981년까지 햇수로 6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무려 3번이나 기록했으며, 시장개방을 목적으로 외채를 잔뜩 들여와 1979년에는 10.2%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긴 했으나 그것이 1980년에는 1.5%로 폭락했다. 이로 인해 비델라 집권 1년 전인 1975년에 78억 달러 정도였던 외채가 군사정권이 완전히 붕괴한 1983년에는 무려 450억 달러로 늘면서 아르헨티나는 GDP 대비 외채 비율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고치를 자랑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26]

심지어 쿠데타가 일어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6년간 아르헨티나에서는 무려 40만 곳이 넘는 회사가 파산한 데다가 1980년에는 3월에 지역외환은행(BIR) 파산을 시작으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은행 4곳을 포함한[27] 금융기관 37개가 파산하고 은행 예금의 25%가 소멸했다. 아울러 실업률도 비델라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반 년 전인 1975년 10월에는 3.8% 정도였지만, 1982년에는 무려 18%까지 상승했다.

이렇게 경제를 말아먹자 당연히 군부독재 정권에 불만을 품고 반발하는 세력들이 늘어만 갔다. 그러자 호르헤 비델라의 2단계 후임 독재자인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이런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1982년 2분기에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의 청사진과는 달리 안 그래도 상황이 심각한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더더욱 망쳐버렸다. 게다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군 영국군을 이겼다고 거짓보도하는 데 또 돈을 엄청 썼다. 물론 이 거짓보도는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 다녀온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양심선언으로 들통나서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그렇게 된 걸 라울 알폰신이 해결하려고 노력해서 좀 진정되나 싶었으나 또 재발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후안 페론이 경제발전까지 희생해가며 얻어낸 귀한 금자탑을 호르헤 비델라와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사리사욕만 챙기려고 무너뜨린 것이다.[28] 결국 호르헤 비델라를 포함한 군부 독재자들 때문에 후안 페론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여 수습한 게 완전히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적어도 페론은 외세로부터 경제독립을 주장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고 있는 외채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줄이려고 노력했다.[29]

군부 세력이 워낙 경제를 크게 망쳐놓은지라 이후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이 퇴진한 후 문민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라울 알폰신 민선 대통령(1983-89 재임)이 아우스트랄 프로젝트 등 정말 별의별 짓거리를 다해도 경제가 전혀 회생하지 못했다. 위의 빈민률 그래프만 봐도 어떤 정권도 페론 축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했음을, 심지어 가장 낮았던, 그리고 다시 오르기 직전인 1994년만 해도 페론 정권 말기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런 짓이 1983년에 군부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라울 알폰신이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종결될 때까지 계속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터무니없이 심각하게 망가졌다. 라울 알폰신은 아우스트랄 정책까지 내놓으며 정말 별짓을 다해가며 눈물 겨운 노력을 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살리려 발악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라울 알폰신은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시리아계 출신인 카를로스 메넴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퇴진했다. 이후 카를로스 메넴,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에두아르도 두알데,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마우리시오 마크리 등 이후의 모든 아르헨티나 대통령들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되살리려 노력했지만, 비델라가 망친 경제상황은 이제 고질병이 되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조금 나아지나 싶으면 터지고 또 회복되는가 싶으면 재발하기를 반복하여 계속 발목을 붙잡는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에 이런 큰 고질병을 심어놓은 장본인이 바로 비델라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2000년대 키르치네리즈모 시기의 정책에서도 드러나는데 2001년 디폴트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채와 관련된 법률적인 검토를 소홀히 하고 무리한 채무 재조정을 시도하였고, 이는 2014년 또다른 디폴트의 원인이 되었다.[30] 또한 2005년 IMF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동일 노선을 표방하던 베네수엘라의 자금을 빌려다 썼는데, IMF의 대출금 이자보다 베네수엘라의 대출금 이자가 높았던 탓에 사실상 순수히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 경제에 추가적인 부담을 안기게 되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집권기의 아르헨티나 경제는, 2001년 디폴트로 인한 경제위기의 기저효과 및 페소화 평가절하로 인한 경쟁력 획득,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31], 가급적 적자 재정을 운영하지 않고 재정적 건전성 유지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잠시 침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것이 훗날 또다른 경제위기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도 경제가 파탄난 다른 나라들처럼 미국 달러를 자국의 공용화폐로 사용하며 한때 1미국 달러 = 1아르헨티나 페소[32] 고정환율까지 실시해봤지만 수출급감의 후유증을 낳는 등 여기를 해결하면 저기서 터지고 또 저기서 해결하면 거기가 터지는 등 마치 두더지게임식 돌려막기만 반복된다. 빈부 격차를 줄임 → 물가 인상 → 물가 안정 → 경상수지 적자 → 환율 고정 정책 → 자국 화폐가치 추락 → 물가 인상 → 물가 인상 억제 정책 → 수출경쟁력 하락 → 빈부 격차 커짐 → 빈부 격차를 줄임 이런 식의 무한반복이 되는 통에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으며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그러니까 물가, 빈부격차, 환율, 수출 등의 분야에서 하나 터지는 걸 메꾸면 그것 때문에 다른 게 터지는 일이 반복되어 경제 발전이 안되고 있다.[33]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아직도 1차 산업 위주의 산업/수출 구조이다. 2016년에도 가장 큰 수출품목이 대두 부산물(16.75%)과 옥수수(7.11%), 콩기름(7.07%), 대두(5.73%) 순으로 농산물에 편중되었다. # 수출 품목의 60%가 농업인데, 어차피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으로는 공산품 만들기도 힘든 거, 농산물 가공, 부산물 가공 등의 산업을 융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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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잘못된 환율 관리와 통화가치의 하락

군사정권의 실책으로 인해 통화정책이 불안정했는데 1980년대에 외채문제로 인해 두차례 정도 경제가 파탄난 전적이 있었고 1990년대에 1달러 1페소 정책을 펼쳤다가 수출급감으로 다시 한번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34] 그렇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환율하락으로 수출이 늘면서 일단 경제가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었는데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외환보유고가 줄기 시작하자 일반인들의 환전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버려, 아르헨티나 국민이 해외여행을 하려면 정부에 여행사유 등을 일일이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환전 신청 중 약 80%를 거절하하고 달러가 아니라 여행지의 화폐로 환전받게 했으나,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가 대선에서 당선되자 환전규제를 해제하였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대대적인 수입 규제를 하는데 이게 풀리지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 물건을 수출하려면 건별로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내에서 단 하나라도 생산되는 물품이면 수입이 금지된다. 또 외국기업이 아르헨티나에 물건을 팔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수출해야 한다. 국제금융망에서 너무 자주, 그리고 오래 퇴출되는지라 사실상 국가단위의 물물교환을 무역정책이랍시고 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0월에는 국가보유액을 보존하기 위해 수입 허가에 대한 규정을 발표했다. #

이러니 정부가 주장하는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암시장 환율, 'Dolar Blue'라고 부름)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아르헨티나 여행기 같은 걸 보면 꼭 등장하는 대목. 암달러 환율 파악은 여기서 할 수 있다.

결국 2015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환율 방어를 포기하였고, 2016년 현재는 공식 환율과 암환율간 괴리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다르게 말하면 페소화의 가치 폭락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아르헨티나의 통화 가치는 계속 폭락 중이며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보여왔다. 2019년 당시 500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참고로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2020년 대한민국의 외환보유고는 4200억 달러였다.[35]

통화가치가 폭락하자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더욱 문제가 심화되었는데,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공업기반이 사실상 시망 수준인지라 공산품을 거의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다. 환율이 똥값이 되니 당연히 생활물가도 하늘을 모르고 솟구쳤다.

하지만 통계조작을 한다느니 해도 얄궂은 사실은 70년대 말-80대 초, 80년대 중후반,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보다는 확연히 낫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통계조작을 시작했다는 평을 듣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평균 경제성장률 8%대를 기록한 현대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통계조작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성장한 부작용으로 물가가 급상승하자 물가억제책을 마련하다 안 먹혀서였다고 한다. 같이 통계조작을 지시한 대통령으로 손 꼽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도 현대 아르헨티나 기준으로 본다면 경제성적표로는 상위권이다.

일단 2008년과 2010-11년 사이에 고성장을 기록했고, 군부 독재정권 때처럼 외채를 수백억 달러씩 빌려오는 짓을 하지 않았고 리울 알폰신이나 카를로스 메넴처럼 재임 후반기에 죄다 까먹지는 않아서[36] 그렇다. 비 페론주의자 출신이자 전직 대통령인 마크리도 재임초반부터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2%로 까먹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2017년에도 이러한 사정이 변하지 않아서 오히려 환율이 내려가는데 반해서 물가는 그에 비례해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물가수준이 낮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크게 높아졌다. 거기에다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페소화의 가치가 최저치를 나타내면서 아르헨티나에선 비상에 걸렸다. #

3.4. 통계 조작

통계조작도 일상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상승률은 실제 상승률의 절반 정도라는 게 중론이다. 아르헨티나 자국 내의 민간연구소는 물론이거니와 국제기구에서도 믿을 수 없다며 무시당하고 비판받는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처럼 정부기관의 통계를 신뢰할 수 없는 국가의 생활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른 정상적인 나라의 경우 그냥 평균 임금과 명목환율, PPP환율 등 몇 가지 지표만 따져보면 대충 답이 나오지만, 이런 막장스러운 동네는 환율부터가 난장판이라 뭘 기준으로 해야될지도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경제지표의 기본 중 기본인 물가상승률, 중요한 사회지표인 빈곤율까지 조작이 일상이라고 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다만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 종식 이후 그래도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민간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들이 있다. 이 기사를 보면 대학, 싱크 탱크, 노동조합 등에서 측정한 아르헨티나의 빈곤층은 30%에 이르는데, 정부는 4.7%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이 14년 9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의 33%는 하루 4∼10달러, 10.9%는 하루 4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줄인 것이 이 정도인 수준. 하지만 다른 남미국가들의 사정이 이보다 별로 좋지 않아서[37] 볼리비아나 파라과이는 아르헨티나보다 경제적인 여건이 훨씬 좋지 않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아르헨티나로 들어왔다. 사실 최저임금도 남미에서는 꽤 높은 편이었다. 2018년부터는 옛말이 되었으며 특히 볼리비아는 2000년대 후반까지 최저임금이 월 10만원도 안되던 동네라서 더더욱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었다. 물론 지금은 남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 같이 사실상 지옥도로 변한 나라를 제외하면 모두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하고 최저임금도 뒤따라 올라감으로써 큰 차이는 없게 되었다.

4. 그 외

일단 이래봬도 G20 회원국에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2위의 경제대국이다. 다만 이것도 2002년에 저점을 찍고 크게 올라서 그렇지 2000년대 초반에 1인당 GDP가 2천달러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근데 사실 이건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도 다 마찬가지인데, 2000년대 중반에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였고 그 여파가 201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과 관련 통계가 아무리 막장이라도 이 나라는 워낙 사기급으로 뛰어난 자연 환경을 타고난 덕에 주민들이 먹을 게 부족해서 굶어죽지는 않는다. 광활한 땅에서 각종 농산물, 쇠고기가 넘치도록 생산되기 때문에 먹거리만큼은 확실히 저렴하다. 수출도 많이 한다. 그러나 마크리 전 대통령의 우파 정책 이후론 옛말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육우 국내 소비에 대해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육우 수출보다는 소의 부산물과 과거 70년 이상 소비하지 않던 생선, 해산물 등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또 새로운 효자 수출상품으로 부각되었다. 소 육우를 수출에만 치중한 결과 생산량 부족으로 국내 소비량이 부족하여 어미소 도축도 하고 일부 물량은 이웃국가 우루과이 등지로 부터 수입도 하고 있다. 우유는 가격이 세계 순위권까지 폭등했다.

1970년대 초반의 아르헨티나는 선진국으로 가기 직전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사벨 페론의 실정 속에서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호르헤 비델라가 쿠데타로 집권함으로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고친다면서 오히려 손을 안 대는 게 더 나았을 수준으로 망가뜨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학정도 학정이었으나 경제를 잘 운영해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빈민율을 뻥튀기해놓고 여기저기 돈을 필요 이상으로 빌려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자국의 은행이란 은행들을 죄다 파산시켜 버렸으니 매국노도 이런 매국노가 없는 셈이다.

현재 경제를 자유시장으로 풀어주고 있는데, 가정용 난방의 가스비 보조금을 줄여 400%을 인상하기로 했다. # 그렇지만 아르헨티나의 빈민들과 중소기업들 반발이 극심한데, 단순히 전기료와 가스비만이 아니라 전철비나 기차 삯, 비행기 삯 따위도 줄줄이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통제를 풀어주면서도 외화 유출을 막겠다며 수입사전허가제도를 법제화하는 바람에 이웃 나라에게 엄청나게 비난받는다.

2018년 10월 26일, IMF에서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64조원 규모의 조건부 구제금융 지원을 하기로 확정했다. # 단, 그 조건이라는 것은 재정 적자 0이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국내총생산(GDP)의 2.7% 정도가 재정적자인데 이를 아예 없애는 조건으로 빌려오는 돈이니만큼 재정적자가 한 푼도 나오면 안되는 상황인데 이로 인해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전대통령은 골치를 썩었었다. 정권은 다시 페론주의 정당인 정의주의자당 소속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에게 인계되었고 2022년 2월 6일 중국과 일대일로 서명한 상태이다. 이젠 IMF도 전면에 나서서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려보기 위해 나섰는데, 워낙 상태가 개판이다 보니 경제부흥에 성공한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리란 말도 나온다.

정작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엄청난 실정을 했다. 그나마 라울 알폰신 카를로스 메넴이 성공이야 못했지만 어떻게든 명줄만은 붙여놓았던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기어이 호르헤 비델라 시절로 되돌려버렸다. 그나마 성장률은 올렸던 비델라와 달리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경제정책은 인플레가 가속화되고 성장률은 성장률대로 하락하여 보기좋게 실패했다. 코로나 19 사태를 해결한답시고 공공요금 동결, 무이자 할부 정책, 현금 지급, 세율 대폭 인하 등 무리한 정책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는 아예 땅으로 떨어져 버렸으며 설상가상으로 2023년 전세계적인 가뭄으로 인해 농업국가인 아르헨티나는 곡물 생산량이 대폭 감소해, 그나마 가난할지언정 밥은 안 굶는다는 말이 무색해졌으며 이제 10번째 국가부도 위기에 놓여 있다.

2022년 6월 기준,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오늘이 가장 싸다"고 할 정도로 매일 물가가 올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월급을 받는 족족 물건을 사서 쟁여놓거나 브로커를 통해 달러로 바꿔 놓는다고 한다. 어느 아르헨티나 정육점 주인의 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에 쓰이는 소고기 부위도 많이 비싸져서 이제는 소 내장,간 등의 부속물과 닭고기도 섞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베네수엘라[38]처럼 식자재 마트 주변 쓰레기통에서 음식물을 주워 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

2022년 8월 22일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에 있는 파라과이의 한 마을 상점에 강도가 들었는데,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가 워낙 낮다보니 직원이 강도에게 아르헨티나 페소를 건내자 강도가 가져가길 거부하고는 자리를 뜬 일이 일어났다.

2022년 아르헨티나의 달러 환율은 한 가지가 아니다. 지속,반복되는 경제위기와 페소화 약세 속에 고갈돼 가는 외환보유고를 방어해야 하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계속해서 새로운 달러 환율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공식 달러, 카드 달러, 자유 달러, 증권 달러(MEP), 해외유출 달러(CCL),저축 환율, 해외여행 환율, 외국인 관광객 환율, 대두 달러등 여러 이름이 붙은 달러 시세가 있다. 암달러 환율 파악은 이곳과 이곳에서 가능하다.

아르헨티나에선 정부가 1인당 월 200달러(약 26만원) 매입 상한제, 수입 사전 승인제 등 여러 외화통제 조치를 시행한 탓에 개인이나 기업이 마음껏 달러를 사지 못한다. 이 때문에 달러 암시장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암시장 시세가 '자유 달러'라는 이름으로 공표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외환 암시장에서의 비공식 달러 환율을 중요하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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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달러 환율은 아르헨티나 국민이 해외에서 신용카드나 현금카드를 사용할 때 적용되는 환율이며 공식 환율에 30% 특별세금과 45% 소득세 선지불이 추가되며 저축 달러 환율은 1인당 월 200달러를 구매할 때 적용되는 환율이고, 증권 달러 환율과 해외유출 달러 환율은 페소나 달러로 발행된 채권이나 주식을 합법적으로 사들여 달러로 판 후 이를 각각 국내와 해외 계좌로 입금할 때 적용되는 환율이다. 두 환율을 합쳐 금융 달러 환율로 부른다.

자유 달러 환율과 금융 달러 환율은 공식 환율보다 더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페르난도 카무소 라파엘라 캐피탈 CEO는 금융 달러 환율과 자유 달러 환율이 실질적인 환율이라며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은 경제 위기를 잴 수 있는 체온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두 달러 환율은 아르헨티나 주요 수출품인 대두의 수출대금을 공식 달러 환율로 계산한 후, 이 대금의 70%를 달러연동 예금증서로, 30%는 저축 달러로 살 수 있게 해 한시적으로 공식 환율보다 15%가량 우대 환율을 기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정부가 주장하는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암시장 환율, '달러 블루'라고 부름)이 2배 넘게 차이가 나고 공식 환율을 적용하는 자료들에 낚이는 경우가 있다. 페소를 미국 달러로 환전할 때 부과하는 PAIS(Impuesto Para una Argentina Inclusiva y Solidaria) 세금이 있으며 35%에서 45%로 인상되었다. https://www.afip.gob.ar/impuesto-pais/caracteristicas/cuanto-se-paga.asp 경제계는 공식 외환보유고보다 블루마켓(외환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미국 달러가 더 많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4.1. 달러화 도입

초인플레의 지속으로 화폐가치가 급락하자, 2023년 대선 후보인 ' 자유전진'(La Liberdad Avanza, LLA)의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39]는 아예 달러라이제이션 정책을 제안하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10%p 이상의 격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실제로 이와 같은 정책이 실행될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비교적) 중도 탈페론주의 후보인 파트리시아 불리치는 이중 통화 시스템을 제안했고, 페론주의 후보인 세르히오 마사는 당연히 달러화에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밀레이는 당선 이후 “중앙은행 폐쇄는 타협이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재차 확인했지만,"점진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고 급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란 말과는 다르게 온건파 카푸토 장관 내정과 정치적,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적어도 점진적인 방식으로 금융 개혁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국영기업을 민영화시켜 달러화 정책의 초기 자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레이는 당선 1주일 만에 27일 미국을 전격 방문하였으며, 방미 기간 국제통화기금(IMF)과 미 행정부 인사들을 만나 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차기 정부 경제정책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정부 부채의 이자 지급을 줄이기 위한 채무 조정에도 나서고 IMF가 제시하고 있는 경제 개혁 조치를 신속하게 이행함으로써 외환보유고를 확충할것이란 예측이 있다.

밀레이의 차기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로 거론되는 에밀리오 오캄포 아르헨티나 세마(CEMA·거시경제연구센터) 교수는 “16개월 안에 모든 페소가 달러로 교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대 경제장관 내정자이자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에서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카푸토는 과거 자신이 운영하는 싱크탱크 보고서를 통해 “페소 폐지는 아르헨티나 재정 적자라는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마법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등이 달러를 공식 화폐로 사용 중이고, 소말리아, 짐바브웨 등은 자국 화폐와 달러를 병용하고 있다. 그 중 에콰도르는 달러화 도입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성공한 경우로 꼽히는 사례로, 에콰도르 정책자들은 달러를 사용하는 파나마의 안정적인 인플레를 보고 달러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래리 서머스 재무장관에게 달러리제이션을 협의했다. 이에 미국 중앙은행(Fed)과 협의하에 달러가 공수되었고, 2000년 1월, 자국 통화인 수크레를 폐기하고 달러를 법정 통화로 채택했다. 중앙은행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찍어내지 못하도록 해 달러화 수입량을 기준으로 통화량을 맞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였다.

에콰도르의 인플레이션은 달러화 정책 실시 이후 3년만에 한자릿수로 빠르게 안정화되었고 4~5년차엔 2~3프로 까지 하락했으며, 그 이후로도 한 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감소시키는데 성공했다. 경제 성장 또한 십수년 동안 석유산업 호황과 함께 안정적으로 이룩하는데 성공했으며, 기업인들이나 외국 투자자들도 에콰도르는 협소한 시장, 각종 수입규제, 세금제도의 불안정성으로 사업에 어려움이 있지만 미국 달러를 사용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는 것에 동의했으며, 국민들 또한 이에 지지하는 여론을 보인다. 물론 달러화가 수출경쟁력 약화를 야기하고 수출부진의 원흉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이 많은데다 정부에서도 무역 적자에 대해 고심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물가안정효과와 자산가치 보전이 확실해 여야,국민 모두 달러제도를 폐지하자면 맹렬히 비판하는 여론이 강해향후 수십년간은 폐지될 일은 없어보인다. WSJ는 전문가들이 달러화로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으나 고질적 문제인 공공재정 악화를 개선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아르헨티나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가 달러화를 선언한 경우는 전무했으며, 그동안 달러화는 극심한 경제 불안을 겪는 개발도상국이 채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달러 도입 시 아르헨티나가 받게 될 가장 명확한 혜택은 금리이며 아르헨티나 은행 시스템의 모든 예금이 달러화되면 아르헨티나의 금리는 달러 시장 금리에 따라 좌우된다. 아르헨티나의 금리가 세 자릿수대에서 한 자릿수대로 대폭 감소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것만으로도 아르헨티나의 은행 시스템은 지금보다 훨씬 안정화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재정적 신뢰도가 추락한 경우 자국 통화 대신 달러를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다만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준비와 은행 시스템을 뒷받침할 대규모 초기 자금이 필요하지만, 문제는 아르헨티나가 둘 다 부족하다는 점이다. 달러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점에 법적 계약, 은행 예금, 정부와 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미국 달러로 전환해야 한다. 그에 앞서 일정 기간 자본 통제를 해제해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실제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방안도 불확실성이 만만치 않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순외환보유액은 마이너스(-)라 기업이 무역에 필요로 하는 달러를 내줄 능력이 없으며, 정부는 파산 상태인 편이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고 경제 개혁을 한다고 해서 바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국민의 페소를 새 법정화폐인 달러로 바꿔줘야 하는데, 달러가 바닥났다.또한 정부의 공식 환율은 1달러당 356페소지만, 암시장의 ‘블루 달러’는 1000페소를 넘어섰다. 달러화를 추진할 때 이 교환 비율은 문제가 될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2023년 11월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은 153억달러(약 19조8000억원) 적자다. 국제금융센터는“아르헨티나가 달러를 도입할 여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는 2018년 IMF에서 빌린 440억 달러의 차관을 갚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밀레이 캠프는 국영 기업 주식과 국채 등을 해외 펀드에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그 자산을 누가 살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는 중국에도 수십억달러의 위안화 빚을 지고 있다.

페소를 달러로 전면교체하기 위해서는 달러 대출을 받아야하는데 아르헨티나 정부는 대출을 위한 최소한의 외환보유액도 없는 상황이다.WSJ는“달러화 전환을 위해 300억달러 이상의 준비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 서반구 담당 국장을 지낸 알레한드로 베르너 경제학자는 WSJ에 “우선 전체 본원통화를 달러로 전환하려면 자본 시장에 접근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밀레이에 반대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달러화로 전환을 위해서는 400억~600억달러(약 51~77조원)에 달하는 달러화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과거 유로화 도입 이후에도 부채가 늘어나 부도 위기를 맞은 그리스의 사례를 보면 화폐 전환을 통해 재정 낭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영국 이코노미스트·미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융 전문가들은 페소 교환 비용 등 최소 300억~4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밀레이 측은 “이미 아르헨티나 경제는 계약과 대규모 거래 등에서 사실상 달러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 국민이 은행 체계 밖에 보유한 달러화만 25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부실한 제조업 등 아르헨티나의 허약한 경제 체질을 바꾸고 무분별한 부채 증가를 차단하려면 화폐 개혁을 포함한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아르헨티나 경제 매체 암비토 피난시에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아르헨티나에 있는 달러는 2460억 달러 규모로 추정한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10%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이 돈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각 가정에 쌓여있을 뿐이라는것이며 과거 에콰도르의 경우에도 장롱 달러가 은행으로 다시 모여든 경우가 있다.

달러화는 세계 경제에 잘 통합된 국가에선 효과적이지만, G20 국가들 중 가장 폐쇄적인 경제구조와 체제를 가진 아르헨티나엔 잠재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골드만삭스는“경제학에서 모든 것이 그렇듯 공짜 점심은 없다.”며 “달러화를 채택하고 유지하면서 혜택까지 누리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상 100% 통화 대체를 하게 되는 만큼, 아르헨티나는 앞으로 자국 거시 경제 정책을 스스로 설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며, 통화 정책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국가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의 달러화 계획에 대해 "중앙은행이 페소화와 함께 사라지면 사실상 최후 대출 기관(Lender of last resort)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디폴트 과정을 훨씬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긴급 유동성 투입에 제한을 받게 되는 점도 문제인데, 실제로 에콰도르는 달러화 이후 두 차례나 채무 불이행을 맞았다. 더더군다나 40년 동안 디폴트 10회 선언할 정도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아르헨티나인만큼 주의가 요구되어진다.

단기간 내 달러화 도입은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90년대 카발로 장관의 태환정책[40]으로 방향을 바꿀지 모른다는 추측들도 나오고 있다. 밀레이 당선자가 페소를 달러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미 아르헨티나의 암시장에선 달러 거래가 일상화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비공식적 달러 사용국화(化)'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며, 전반적으로 달러화는 국가의 선택이 아닌, 한 나라의 통화 정책이 실패하면서 나타나는 결과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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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en.wikipedia.org/wiki/Argentina [2] https://ko.tradingeconomics.com/argentina/government-debt-to-gdp [3] https://www.kcif.or.kr/front/data/interCredict.do [4] 일본 아르헨티나냐면, 일본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고 아르헨티나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쿠즈네츠가 이 말을 한 1973년의 일본은 전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나라였다. [5] 아르헨티나 경제 몰락의 원인이 너무 복잡하고 장황해서, 경제학자들조차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6] 정확한 시기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이후. 스페인의 월드컵 성적은 명성에 비해 상당히 초라한 편이라 더욱 그렇다. [7] 우승 횟수부터 스페인은 1회(2010), 아르헨티나는 3회(1978, 1986, 2022)로 큰 차이가 있고, 스페인은 명백한 선진국이라 경제가 제일 나쁠 때도 지금의 아르헨티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상태였다. [8] 대표적으로 엄마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현실이었다. 1930년대까지 프랑스에서는 매우 부유한 사람을 두고 "아르헨티나 사람같이 돈이 많다(riche comme un argentin)"라는 표현이 존재했을 정도였다. 또한,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나치 독일의 주요 간부들이 수준 높은 삶을 보장해주면서도 신변을 보호해주는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정착했을 정도였다. [9] 너무 과거의 이야기긴 하지만,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GDP는 1962, 64, 65년에는 세계 9위였고 66년에는 10위였다. 1인당 GDP로 따져봐도, 62년에는 이탈리아보다 높았고(당시 아르헨티나는 1,230$, 이탈리아는 고작 890$였다.)64, 65년에도 이탈리아에게 밀리긴 했지만 거의 차이가 안 났으며, 66년 기준으로 봐도 일본과 스페인보다 위에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2020년에 브라질과 러시아를 제치고 역대 최고 순위의 GDP를 찍은 한국의 GDP 순위가 10위이다. 2020년 세계은행 통계 기준 30위 정도까지 추락한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있다. [10] 디폴트와 모라토리엄은 모두 '국가부도'로 번역되나, 디폴트는 실제로 국채를 지급하지 못하여 채무불이행이 발생한 상태, 모라토리엄은 채무불이행이 발생하기 전 채권자들과 채무 조정 등을 진행한 상태를 의미하여 조금 다른 의미이다. 아르헨티나의 국가부도는 디폴트에 해당한다. [11] 19세기에 디폴트를 한 번 낸 적이 있다. [12] 이때문에 진보/좌파 진영에선 미국과 IMF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워싱턴 컨센서스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들곤 한다. 굳이 아르헨티나가 아니더라도 미국과 IMF의 요구에 따라서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대규모 구조조정(긴축재정, 고금리, 공기업민영화, 외환시장 전면 개방 등)을 단행한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중진국 함정에 갇히는 악순환에 빠졌다. [13] 한때 영국병으로 불리던 암흑기가 있었다. [14] 누적된 쌍둥이 적자를 견뎌낼 수 있는 국가는 전세계에서 미국 정도밖에 없으며, 그나마 미국은 엄청난 경제 규모와 자국의 돈이 기축통화라는 이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대부분의 국가라면 당연히 국가 경제가 추락하게 된다. [15] 사실 이 시기에 개발도상국이 외채로 돈을 빌려 경제 발전에 나선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로 이때 외자를 잘못 빌렸다가 나라 경제가 붕괴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말고도 수십 개국에 달했다. 서유럽과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경제가 대호황을 겪으며 유동성이 넘쳐 흘렀는데, 덕분에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선진국 자본의 투자 수요와 잘 살아보고자 하던 후진국의 모험이 맞아떨어지면서 당시 후진국들은 국제 자본 시장에서 비교적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아르헨티나 경제도 닉슨 쇼크 석유 파동의 여파에 노출되기는 했지만, 이때는 오히려 해외로부터 돈을 빌리기가 더 쉬워졌다. 미국이 남미에 돈을 빌려주며 닉슨 쇼크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고, 석유 파동으로 급등한 유가 덕분에 엄청난 달러를 벌게된 중동 산유국들은 이 돈을 유럽 은행에 예치했다가 남미 등에 짭잘한 이자로 빌려주었다. 그러나 1980년대로 들어와서 폴 볼커의 미친 듯한 미국 금리 인상을 겪으며 국제 자금 유동성이 말라버려서 경제의 기반이 약한 국가들은 빌린 돈을 상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상술한 수입대체산업화의 고질적인 문제도 있었으며, 경공업부터 차근차근 공업화를 시작한 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중간재 위주의 공업으로 공업화를 시작한 탓에 품목이 겹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의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턱없이 낮았다. 한편 이 위기를 잘 타넘고 선진국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국가도 드물게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한국이다. 당시 한국도 부정 부패, 정부의 무의미한 예산 낭비, 남북 대결에 의한 막대한 국방비 지출 등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기에 세계 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16] 다만 칠레도 자세히 보면 구리, 금, 석유 등 광업이나 축산업, 농업 등 1차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빈부격차가 심각하긴 하다. [17] 하지만 문제는 정작 재정적자는 별로 안 줄었다. 소비감소추세가 여전하여 세수가 생각보다 늘어나지 않은 데다가, 기껏 세수를 확충한다 해놓고선 외채를 마구잡이로 남발하고 국채 이자율이 높기 때문에 국가재정의 상당수를 이자 지불에 쓰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18] 이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는 오늘날의 베네수엘라가 있다. 베네수엘라는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서 물가가 폭등했고 물건도 수입감소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값싸게 구하려면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암시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암시장 환율이 일반시장환율의 3-4배 이상씩 되기에 지독한 바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유가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바가지를 써야만 한다. 오히려 인접국인 콜롬비아나 브라질에서 구매하기가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생필품 사려고 국경을 넘기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19]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모든 종목이 하한가를 찍어도 코스피 지수는 30% 하락이라는 점과 비교해보자 [20]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저금리를 시행하여 시중에 달러화가 넘쳐나던 시점임에도 디폴트가 발생하였다. [21] 각각 1930년, 1943년, 1955년, 1962년, 1966년, 1976년에 쿠데타가 발생했다. 후안 페론 역시 장교 시절 쿠데타에 가담한 전적이 있고, 악명높은 10년 시기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던지라 아르헨티나 몰락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22] 군부정권만 해도 노조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극우 가톨릭 세력과의 결탁, 그리고 1970년대 더러운 전쟁 시기의 납치, 고문으로 악명이 높다. 페론 역시 유권자를 매수하거나 후원세력을 동원하고 공무원직과 정치 계약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얻었으며, 집권 기간 동안 금괴 1200개, 비행기 1대, 요트 2대, 자동차 19대, 아파트 17채, 귀금속 1500점을 착복하는 등의 부패를 일삼기도 했다. 여기에 대통령 무제한 재선 허용 개헌을 추진하는 등 독재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3] 군사정권 시기에 빈민율이 너무 극심해서 상대적으로 묻혀 보이지만, 페론이 막 정권을 잡았을 때도 아르헨티나의 빈민율은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페론이 빈민 구제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24] 다만 국유화의 부작용도 없지 않았는데, 아르헨티나는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이전, 대서양의 무역 거점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독립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로부터 철도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를 많이 받은 국가였고, 국유화의 대상이 된 기업/자본들과 기간 인프라들은 대부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것이었다. 당연히 페론의 국유화 조치에 반발한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아르헨티나산 농산물 수입 중지를 비롯한 금수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1949년부터 경제 성장이 멈추게 되었고 이후에도 군부정권의 실책과 함께 아르헨티나 내의 외국자본 투자유치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여기에 나치인사들의 망명을 받아들여서 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더욱 악화되기도 했으며, 국유화로 인해 인플레를 촉발하여 아르헨티나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었고, 보호주의 정책과 맞물려 경쟁력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이때 발생한 인플레가 1950년대 초중반에도 이어져 실질임금의 하락을 야기했고, 이는 1955년 페드로 아람부루의 쿠데타로 이어져 페론의 몰락을 야기했다. [25] 참고로 2015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비델라 정권은 자신들이 불법처형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는 돈세탁을 하여 해외 비자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26] 1975년의 아르헨티나: GDP 524억 달러, 외채 78억 달러, GDP당 외채 비율 약 14.5% / 1983년의 아르헨티나: GDP 1040억 달러, GDP당 외채 450억 달러, 외채 비율 약 43.2%. 한마디로 8년 만에 순 외채도 아니고 GDP당 외채 비율3배나 뛰어올랐다. [27] 이는 쉽게 말해 한국으로 치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같은 해에 한꺼번에 파산한 것 그 이상이다. [28] 그렇다고 경제성장이라도 이룩했냐면 그렇지 않았다. 페론은 경제성장과 빈민률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는 잡았는데 군사정권은 둘 다 놓친 것이다. 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란 불가능했다. [29] 더구나 페론은 그렇게 오래 집권하지도 못했다. 페론이 대통령 직을 맡은 기간은 귀국 이후 수행한 임기까지 합쳐도 10년밖에 안 된다. 그 중 제대로 일한 기간은 9년인데, 9년이라는 시간 안에 빈민 구제와 경제 개발을 동시에 한다는 건 당시 아르헨티나의 사정상 불가능했다. [30] 2001년 디폴트와 관련해서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일화가 매우 유명하다. [31] 베네수엘라, 러시아, 브라질 등 자원 부국들이 대체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막대한 원유를 통해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가 국제적인 허브 도시로 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32] 2022년 7월 현재 1미국 달러 = 300 아르헨티나 페소로 기록적인 최악의 격차가 벌어졌으며 사태가 더 악화될 여지를 열어 놓은 상태이다. [33] 불가능의 삼각정리 참조. 물가 안정, 환율 안정, 수출입 안정은 동시에 실현이 불가능하며, 때문에 세 가지를 불완전하게 실현되도록 조절하는 것이 이상적인 정책이다. 헌데 아무리 그래도 웬만한 선진국은 저 세 가지가 동시실현이 안 되더라도 경제가 막장까지 가지는 않음을 감안하면 아르헨티나가 얼마나 상황이 나쁜지 알 수 있다. [34] 이것이 마냥 멍청하다고 비웃을 일은 아니다. 아르헨티나같이 부채가 많은 나라는 화폐를 인위적으로 높여서 부채상환율을 낮추는 것도 한 가지 방법으로 채택한다. [35] 물론 한국의 명목상 경제규모가 아르헨티나의 3배가 넘고 실질적인 경제규모 차이는 더 크거니와, IMF라는 뼈 아픈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더욱 착실히 모으기도 했다. [36] 한마디로 아르헨티나는 외채를 빌려서 공업화를 완성하고 공업, 농업 그리고 서비스업의 균형있는 산업구조를 만들려고 했는데, 환율조작을 하다 보니 시장에서 가격적으로 메리트도 어정쩡할 뿐더러, 워낙 공업이 낙후되다 보니까 질까지 좋지 않아서 경쟁력이 없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같은 경우 자원의 저주도 있다. [37] 칠레는 남미에서 잘사는 나라이지만 여기도 대학교육이나 의료비용은 비싸다는 문제점이 있고, 우루과이는 복지수준이나 경제력은 나쁘지 않지만 빈부격차는 아르헨티나보다 크다. [38] 한때 가장 친한 우방이었다. [39] 극우파로서, 달러화 외에도 낙태 금지, 장기매매 허용(!), 총기 자유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극우파를 표방하고 있다. 진보적인 성향의 교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 [40] 법으로 고정환율을 사용하며, 시중의 통화량만큼 중앙은행이 같은 양의 달러를 보유하는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