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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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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개
2.1. 한국 관련
3. 사건·사고
3.1. 산케이 신문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3.2. 산케이 신문 여론 조사 조작 사건
4. 계열지/계열 서비스5. 관련 문서

1. 개요

産経新聞 (さんけい (サンケイ) しんぶん)

일본 신문. 명칭인 산케이(산경)는 발행자인 산업 경제 신문사(産業経済新聞社)의 약어다. 현재 대표는 쿠마사카 다카미츠(熊坂隆光). 1933년[1] "일본 공업 신문(日本工業新聞)"이라는 이름으로 오사카시에서 창간되었다.

일본의 5대 전국 일간지에 속했다.[2]

2. 소개

일본의 일간지 중 극단적일 정도로 보수, 우익, 반공, 혐한 성향이 가장 강한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논조의 극단성이 워낙 강한 터라 한국에서 보통 극우 언론이라고 평가하지만, 일반적으로 외신에선 산케이를 적당히 '우익 언론' 정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으며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우익 스펙트럼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제도권에 정착한 언론이기 때문에 적당히 에둘러서 지칭해 주기는 하는 것.[3][4]

일본 넷 우익들이 신봉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참고로 산케이 신문의 전신이 되는 신문들 중 하나가 '지지신보(時事新報)'인데[5] 이곳은 일본 제국주의 사상의 정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창간했고[6], 그 유명한 탈아론이 연재된 곳이기도 하다.

1935년 오사카 출신 사업가인 마에다 히사키치(前田久吉)가 지지신보를 인수하여 산케이 신문으로 바꾸었고, 2차 대전 이후 방송 사업[7]에도 뛰어들어 현재와 같은 후지산케이 미디어 그룹이 형성됐다. 또한 도쿄 타워 건설에도 관여했다. 창업자 사주 마에다가 경영하던 중에는 성향이 왼쪽에 가까웠는데, 당시 일본의 이른바 "재계 4천왕" 중 하나라고 하던 미즈노 시게오라는 자가 정부와 재계들의 사주를 받아 마에다에게 헐값을 주고 내쫓은 후 방송 장악을 하여 정부와 재계의 나팔수로 전락하고 현재의 극우 성향으로 급커브하게 되었다.

좌우 안티들에겐 ' 자민당 기관지'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친자민당 언론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는 일본의 혁신, 좌파 진영뿐만 아니라,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를 비롯한 일부 신우파들에게도 지적받는 지점. 실제 일반인이 보기에도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일본 자민당 내각을 옹호하거나, 무턱대고 찬양하는 기사가 종종 실리긴 한다. 예를 들어 '북미 정상 회담은 알고 보면 아베가 트럼프 정권에 조언해서 이뤄진 거다'라는 식.(...) 이 때문에 일본의 입헌민주당, 공산당 등과 같은 '자민당식 평화 헌법 개헌론'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정치적으로 개혁적 성향의 아사히 신문 등과는 매우 반목하는 사이다.

외교적으로는 논조가 친미 성향이라고는 하지만, 이 또한 일본 내의 주류적 스탠스와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내의 주류 보수 친미 블럭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요미우리 신문이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꽤 껄끄러워하는 편인 것에 반해, 산케이 신문은 이를 칭송한다. 덕분에 산케이 신문에 대해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 포스트는 외부 사설을 통해 "1930년대풍 군국주의로의 복귀를 바라는 폭력적 그룹의 일원"이라며 비꼬기도 했을 정도. 미국의 다른 유력지인 뉴욕 타임즈와도 사이가 나빠서, 산케이에 대한 비판 기사나 반박 기사를 자주 싣는다.

논조와 이념이 극단적이라는 평가, 그리고 읽을거리가 적다는 평가 때문인지 현재 산케이의 매출과 발행 부수는 2010년대 일본 전국지들 중 가장 적었으며, 이 때문에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신문 산업이 급감하고 지출이 증가하여 2020년엔 전국망 간판까지 포기하게 되었다. # 앞으론 수도권과 관서권 중심 판매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는데 잘될진 미지수.[8] 그만큼 일본 전국지들 중 가장 전망이 어두우며, 오죽하면 경영 사정이 지방지인 주니치 신문[9] + 도쿄신문[10] 및 블록지에도 밀리고 있다. 2019년 신규 채용을 2명으로 대폭 줄였으며,[11] 180명 희망퇴직을 받을 만큼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이다.[12] # 게다가, 산케이 신문 사장은 후지 TV의 지주 회사인 후지 미디어 홀딩스(약칭 FMH)의 사장단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서 "산케이 신문의 경영이 어려우니, 그룹 차원의 지원을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지만, FMH의 내부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13] 경영 사정이 얼마나 안 좋으면 혐한 반중 신문사 인상이 너무 강하여 광고주들에게 제대로 광고를 못 받고 있다며 하소연하고 있으며, 이런 인상을 탈피하기 위해 기사 논조까지 수정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퍼질 정도이다. # #

하나 이렇게 열악한 경영 사정에 비해, 의외로 일본 인터넷상에서 발휘하는 영향은 꽤 큰 편인데, 이는 넷 우익 혐한들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기사를 많이 내놓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다른 언론들과 달리 무료로 인터넷에 기사 대부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큰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이게 일본 젊은 층들의 우경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도 듣는다.

2001년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을 일으켰던 새역모가 이 신문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우익 성향 역사 교과서 출판사인 후소샤가 후지-산케이 계열의 미디어 회사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웹을 좀 뒤져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일본 넷 우익들이 최대의 정보 소스로 이용하는 곳이다. 거기에다가 한국 지부장이라는 어그로꾼은 툭하면 혐한을 일삼다 보니 키배의 재물이 되기도 한다. 이렇기에 일본에서도 산케이 신문 읽는 사람은 넷 우익 아니냐는 식의 시선을 받는다. 아예 경제 관련 전문 뉴스를 읽으려면 니혼게이자이 신문을 권한다.

한국어를 잘하는 기자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14], 이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전달해야지라기보단 한국에서 뭔 일 터지면 어떻게든 잘 깔 수(...) 있기 위해서라고. 덕분에 일본 신문 중에선 북한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편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소스가 풍부할 뿐이지 장사를 위한 자극적인 기사를 많이 내놓기 때문에 오보도 당연히 많으며, 2010년대 즈음부턴 소스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편이다.

실제로 보면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기사를 실을 때가 상당히 많은데, 2018년 2월엔 기자가 취재도 제대로 안 하고 오키나와 미군 관련 카더라성 오보를 냈다가 사실 여부에 의문을 품은 류큐 신보, 오키나와 타임스 등 다른 신문사들과 팩트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가짜 뉴스로 밝혀져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15]

어쨌거나 자회사인 후지 TV가 1960년대에 대만 방송국 TTV[16] 지분 일부분을 취득했기 때문에 당시엔 중화민국 정부와의 관계도 나름 돈독했고, 연장선상에서 1970년대 말에는 산케이 신문이 중화민국(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장제스 비록>이라는 것도 출판했는데, 여기서 중화민국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난징 대학살 30만 명 사망설을 기재하는 등 가끔 성향이 어딘지 헷갈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17] 그 외 중국의 언론 탄압도 집요하게 까는 등 반공 자유(?) 노선 하나는 분명한 신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 근데 어째 다 수십 년 전 소스들 하나 정작 남한의 군부 독재 정권은 옹호한 흑역사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산케이 신문은 자극적인 기사나 써대며 돈도 안 되는 넷 우익을 대상으로 조회 수 장사질이나 하는 망해가는 신문사이다.[18] 지금은 지방 신문에도 밀리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 신규 채용할 돈도, 회사를 경영할 돈도 없어 재직 중인 직원들까지 백 명 단위로 명예퇴직시키는 상황이다. 다른 일본 신문들처럼 유료 구독으로 수익 모델을 바꿔보려 해도 산케이 신문의 독자들은 돈도 없는 넷 우익들이 대부분이라 그러지도 못한다.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 셈. 그에 비해서 존재감이 큰 이유는 일본 미디어 중 가장 한국 중국의 어그로를 많이 끌면서 최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2.1. 한국 관련

"무시하세요. 한층 더 관심을 끌려고 극단에서 극단으로 나아갈 겁니다. 계속해서 무시하세요. 해도 해도 관심을 못 끌면 자기들끼리 안에서 싸우면서 자멸하게 됩니다. '산케이'는 신문이 아닙니다. '언론의 자유'를 가장한, 유머도 없고 아무도 읽지 않는 ‘화장실 휴지(トイレペーパー)’위에 쓴 ‘화장실 낙서(トイレ落書き)’에[19] 불과합니다. 가까이 가면 눈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코도 상합니다. 일본인들조차 무시하는데, 낙서를 읽고 응답하는 한국 언론과 정부가 이상할 뿐입니다."
[집중분석] 日 《산케이신문》은 어떤 신문인가?[20] - 월간조선. 2015년 10월 호. 워싱턴 주재 기자로 일한 적이 있는 일본 현직 기자의 코멘트를 인용한 대목이다.[21]
한국 내에 존재하는 진보 성향 세력들 뒤에는 중국이나 북한 공산 세력들이 암적으로 지원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은 한국 내에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22] 일본(우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3]

상술했듯 한국에 대한 보도는 온갖 찌라시 덩어리다. 사실상 "반일 제조기"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산케이 신문의 서울 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노출도가 크다 보니 반일 감정 증폭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산케이의 이런 행보는 같은 계열사 및 계열지에도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친다. 넷 우익발 혐한 선동 문구랑도 비슷한데, 지나치게 과격하면서도 수준이 매우 낮다 보니 논지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 넷 우익 뻘글과 차이가 없는 카오스한 사설이나 칼럼을 게재하기도 하며, 특집으로 한국과 범죄에 관련된 한자어를 합성해서 만든 저주문을 정기적인 특집으로 싣기도 하는데, 결론은 언제나 한국인의 저열함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결론 짓는 등 상당히 뿜는 시대감각을 보여줄 때도 있다(...). 본래 극단적인 신문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또 연장선상에서 당연히(?) 북한 관련 뉴스의 취재 비율도 높은 편이다. 물론 해당 보도의 근거는 없거나 미약하다.
한국민의 대다수는 군인으로서, 혹은 생산 종사자로서 일본의 전쟁을 위해 동원되어 일본인 이상의 큰 희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다른 민족으로서 받은 박해나 굴욕은 도저히 잊기 어려운 것이리라. 진정한 속죄 정신을 일한(日韓) 관계의 근저에 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론 1980년 12월 호 시카나이 노부타카 산케이 신문 사장 #[24]
한편으론 의외로 상식적인 논조를 보일 때도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이들을 옹호하는 사설을 자주 낸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당시만 해도 트루먼 독트린- 한국 전쟁 이래 한일이 같은 반공 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정신이라면 다른 일본의 신문사들처럼 독재 정권은 까고 한국에 대한 사죄는 사죄대로 하는 게 맞겠지만.

경향신문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갸웃하기도 하지만 이는 경향신문이 정수장학회 소속 신문사였던지라 군부 독재 시절엔 전형적인 친정부 성향 언론이었기 때문도 있다.[25] 다만 경향신문의 논조가 민주화 이후로 노조가 결성되면서 이전의 친정부적인 논조에 대한 반성으로 달라지기 시작했고, 특히 1998년 한화그룹에서 독립한 이후부턴 진보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면서 2014년 기준으로 지금은 사무소를 임대하는 수준 정도에 그치는 듯.[26]

2019년 공개된 외교 문서에 따르면, KAL기 폭파 사건 당시 남북 지도자를 변태 성욕자로 묘사하는 만평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당시 한국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편집장 파면과 만화가와의 계약 해지, 산케이 그룹 회장의 사죄, 사과문 게재 등을 요구했고, 거부 시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을 폐쇄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한다. 이에 산케이 그룹 의장이 당시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방문해 사과하면서 일이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

2020년 1월, 한국 언론이 기레기로 몰리는 현상에 대한 기사를 내기도 했다. #

2020년 4월에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모범 사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27] 하나 아베 정부 지지율이 휘청이자 또 혐한을 이용하려는지 아베가 한국의 일본 기업 압류 자산 관련 보복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둥 강제 징용 문제를 끌고 오기도 했다.

2020년 6월 18일에는 1면 칼럼을 통해 남북미 외교 관련해 뜬금없이 '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똥도 못 눈다'는 소설의 한 대목을 맥락에도 맞지 않게 인용해 타국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근데 이게 웃긴 건 언젠 문재인이 반일 반미라고 까더니 그게 안 먹히자 이젠 종미주의자라고 정반대로 까는 꼴일뿐더러, 트럼프 비위 맞추며 골프 치다 골프장에서 뒹구르기까지 한 아베를 총리로 두고 있는 일본 언론이 이런 소릴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셀프디스다. 실상은 문재인을 이용한 아베 까기?

2022년 7월에는 급격히 떨어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이 낮다고 반일을 하면 안 된다는 훈수를 두기도 했다. #

2024년에는 사도 광산 관련해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했던 한국 정부의 태도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변했다는 기사를 작성했다가, 한국 외교부에 바뀐 적 없다고 반박당하기도 했다. #

3. 사건·사고

3.1. 산케이 신문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2014년 8월, 한국에 특파원으로 있던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기자가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당일 정윤회와 밀회를 가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기사에 썼고, 해당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한국 검찰에 기소되어 2014년 8월 18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 문제는 한일 양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등극했다. 당연히 정부가 언론사의 의혹 제기에 대하여 명예훼손으로 기소를 한다는 것 자체에 논란이 일었는데, 다만 '국가 기관'은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피해자는 당연히 대통령 개인으로 기소한 것이긴 했다.[28]

결국 기사를 쓴 가토 다쓰야 전 서울 지국장은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이에 일본 언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일제히 1면 기사와 주요 뉴스로 '언론 탄압'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게 되면서 외교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김원진 주일 한국 공사를 외무성에 소환하면서 강하게 우려를 표시했고 # 미 국무부도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미 행정부는 한국의 법률에 우려는 표한다고 언급했다. 프랑스의 르몽드 신문에서도 이 사건을 가지고 기사를 쓰며 "고소당한 기자들과 감시받는 소셜 네트워크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 한편, 경향신문에서는 "외국 언론 보도를 보면 군 위안부 강제 연행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혐한·반한 감정을 부추겨 온 극우 언론 산케이의 실체는 사라지고,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기자를 기소한’ 한국 정부의 행위와 그에 대한 일본 측의 반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산케이 신문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 이후 한국의 우익 단체들이 산케이 신문 기자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지국장 형태를 한 인형의 참수 퍼포먼스를 하려고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중단되었다. 가토 지국장이 출국 금지 상태에 놓인 적도 있었는데[29] 법무부가 가토 지국장에 대한 출국 금지를 4월 15일까지 연장하자, 가토 지국장은 출국 금지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2월 13일 법원에서 기각하였다. # 가토 지국장은 "가족과 만나고 싶으며, 출석을 확약했다."고 발언했으나 법원에서는 "가족이 한국에 오면 된다.", "재판 출석을 확신할 수 없다."고 기각하였다. 그나마 4월 14일, 출국이 허용되었다.

2015년 12월 17일, 한국의 재판부는 1심에서 가토 다쓰야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가 허위 사실을 직시했다고 봤지만 면책 사유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해당 사안이 공인인 박 대통령에 대한 것으로 일본인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알릴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으며, 공인에 대한 기사는 허위 사실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비방의 목적을 가진 것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면책 사유가 되며, 기사 내용도 한일 양국 시민 사회의 사회적 판단에 맡겨야지, 범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토가 한 행동 자체가 반드시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5일 뒤 검찰도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죄가 확정되었다. 하나 사실 유무죄를 떠나서 수사 후 재판정에 세우는 것 자체가 이미 표현의 자유나 언론에 대한 강력한 압박의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계속 남게 되었다. 특히 이는 마음에 안 드는 한국 언론에도 정부나 공인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여담으로 여론 자체는 한일 양국을 막론하고 무죄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이후 가토 다쓰야는 2016년 1월 《왜 나는 한국에 승리하였나. 박근혜 정권과의 500일 전쟁》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였다. 책에서 그는 '한국은 중세 국가와 마찬가지', '한국은 대통령과 국민 감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법이 해석된다고 했다.', '오히려 일본을 악의 제국으로 매도하는 한국이 일방적인 견해를 시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30]

2016년 4월 17일, 가토 전 서울 지국장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 비용을 달라며 형사 보상을 청구했다. 형사소송법 제194조의 2는 ‘국가는 무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 피고인이었던 자가 들인 비용을 보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법원은 가토 전 지국장이 청구한 1,900만 원 중 700만 원만 일부 인용 판결을 내렸다. #

한편, 이때 박근혜 정부와 척을 진 산케이 신문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2015년 8월 31일 노구치 히로유키 정치부 위원이 칼럼을 통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여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이를 사대주의로 비난하며 “이씨 조선에도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 민비는 사대주의 도착으로 암살됐다”는 망언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명성황후 을미사변으로 일본인에게 암살된 것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톈진 조약도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담보하기 위해 맺은 것”이라는 그릇된 역사 인식을 보였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이후 산케이 신문의 사회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던 가토 전 지국장은 "한국 검찰에서 조사받을 당시 검사가 끈질기게 물어 온 것 중 하나가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에 관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과 최씨 부녀의 관계야말로 한국 박근혜 정권의 최대 터부(금기)."[31] 등을 일본에서 떠들고 다니면서 본인의 한(?)을 맘껏 풀고 다녔다.

하나 한국 우파한테 실망했다고 산케이 신문이 좌파한테 딱히 호감을 보이는 것도 아닌지, 산케이 신문 계열의 석간 후지는 2017년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들을 반일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고, 위안부 평화비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시작하더니 결국 부산 소녀상 문제에 대해선 평화의 소녀상 대학생 노숙 집회에 참여한 한국 대학생 모두가 반일 요새화된 좌파라는 색깔론적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

가토는 2020년 8월에 퇴직하고 관변 싱크탱크에 들어갔다. # 1년 후에는 내각정보조사실에 들어갔다. #

3.2. 산케이 신문 여론 조사 조작 사건

2019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실시한 산케이 신문의 여론 조사 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우익 산케이신문 여론조사 1년간 조작돼…답변 조작 드러나, 산케이신문, 1년간 14차례 여론조사 조작했다.

NHK에 따르면 산케이 신문과 후지 TV는 최근 1년간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020년 6월 19일에 발표했다. 해당 기간 동안 유권자에게 실제로 전화를 걸지 않고 가공의 응답을 입력해 왔었는데 이러한 가공의 응답은 지난해(2019년) 5월부터 올해(2020년) 5월까지 실시한 14건의 여론 조사에서 전체 응답의 약 17%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산케이 신문과 후지 TV는 조작이 드러난 여론 조사를 바탕으로 한 기사와 방송을 모두 취소했으며 또한 공정성이 확보될 때까지 당분간 여론 조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산케이신문> 여론조사 조작 드러나... '가공 응답' 입력 아베 지지율도? 日산케이, 1년간 여론조사 조작

4. 계열지/계열 서비스


이 외에도 산케이 닷컴에서는 GQ, Wired의 일본어판 기사도 전재하고 있다. 비언론 분야에서는 하코네에서 조각의 숲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관련 문서


[1] 일본이 만주국 건립(1932년)을 반대하는 국제 연맹에 반발해 국제 연맹을 탈퇴한 해이다. [2] 다만 2020년 10월 이후에는 전국 일간지 간판을 포기한 상태이므로, 신문의 보급 지역 범위로 보나, 언론사 체급으로 보나, 현재는 지역 언론에 가깝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즉, '일본의 5대 전국 일간지'라고 하면 산케이 신문이 포함되지만, 최근에는 '일본의 4대 전국 일간지'라고 표현하며 산케이를 제외하고 보기도 한다. [3] 심지어 일부 서적 등에서는 산케이 신문을 요미우리 신문과 같은 중도우파(centre-right나 right of centre)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 # [4] 다만 '극우'라는 설명도 제도권 언론에서 나온 경우가 있는데,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 중 하나인 포브스에서도 산케이를 두고 '일본의 극우 신문(Japan's far right newpaper)'이라고 대놓고 지칭했다. # 한국의 연합뉴스에서도 도쿄 특파원이 송고한 기사에서 산케이를 '극우 보수 성향'이라고 규정했다. # [5] 다만 방계에 가깝고, 지지신보는 1930년대에 도쿄니치니치 신문(= 마이니치 신문)에 합병되어 폐간되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후신은 산케이 신문이 아니라 마이니치 신문이다. [6] 인물 자체는 활동 초기엔 자유주의, 계몽주의적 성향도 보였다. [7] 후지 TV, 간사이 TV, 닛폰 방송, 라디오 오사카 [8] 다만 산케이 신문은 원래부터가 관동 지역과 관서 지역에서만 보는 전국지 간판을 단 사실상 지방지긴 했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산케이 신문의 발행 부수는 150만 부였지만, 도쿄 본사 63만 부, 오사카 본사 87만 부였기 때문에 99% 이상이 일본 수도권과 관서 지방에서만 보는 신문이었다. # [9] 물론 주니치 신문 자체가 지방지 중 돋보이는 1위 기업이긴 하다. 단독 부수만으로도 산케이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며, 후지 TV 네트워크 및 독립 방송국 내에서도 강력한 발언권이 있다. [10] 주니치 신문의 자회사로, 주니치는 일찍부터 방송 사업 지분 투자 및 사업 다각화 등으로 리스크 분산을 꾀했다. [11] 여담으로 동시기 아사히 신문은 72명, 마이니치 신문은 61명, 요미우리 신문은 80명을 채용했다. # [12] 참고로 180명은 산케이 신문 전체 직원 수의 1할 정도에 해당되는 인원이라고 한다. [13] FMH 내부에서는 주가 폭락의 우려 때문에 산케이 신문이 자회사가 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편이지만, 산케이 신문에 우호적인 아베 신조의 권유(?), 그리고 총무성의 방송 재승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 게다가 산케이 신문뿐만 아니라 후지 테레비 역시 시청률 하락으로 대규모 해고를 할 만큼 사정이 안 좋기도 하여 다른 곳 챙길 입장이 못 된다. # [14] 그중 최고참이 구로다 가쓰히로이다. 이 사람은 2020년 기준 한국에서만 40년 가까이 살았다. [15] 산케이는 전국 취재망이 상당히 약한 편이라, 지방 뉴스는 정확성이 더 뒤처지는 편이다. [16] 21세기 들어선 위상이 예전 같지 않지만, 1970~90년대까지는 나름 대만 3대 방송국으로 손꼽혔을 만큼 제법 세가 있는 방송국이었다. [17] 일본 극우들은 장제스 비록을 불쏘시개라고 비난한다. [18] 기사를 무료로 풀어서 조회 수 장사질이나 하며 지방지로 전락한 산케이 신문과는 반대로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종이 신문 발행 수가 일본 4대 전국지 중 가장 적지만 인터넷 유료 구독자 수 93만 명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 유료 구독 상품이 4천 엔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봤을 때 산케이와 비교할 수 없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애초에 주요 경제지라는 점에서 이제는 사실상 간판만 경제지인 산케이와 비교하는 것부터가 난센스. [19] 원문 직역은 변소간 낙서이나, 한국식 어감으로 번역하면 화장실 낙서란 표현이 더 그럴듯하다. [20] 보면 알다시피 기사 내용도 산케이 신문을 비판하는 논조인데, 정작 그 기사를 작성한 곳이 한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보수 우익 반공주의 매체이자, 때로는 극우로까지 분류되기도 하는 월간조선이었다는 게 웃음 포인트. 극우 vs. 극우 참고로 당시는 후술된 산케이 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와 산케이 신문이 한창 갈등하던 시기라서, 서로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를 적극 지지하기 위한 의도로 월간조선이 일본의 산케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던 것이다. [21] 물론 엄연히 제도권 언론인 만큼, 낙서라고만 치부하기엔 해당 기자의 사견도 많이 들어간 문구라는 건 감안해야 한다. 산케이는 일본 내에서도 치우쳐진 언론사로 유명하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22] 웃긴 건 정작 본 항목에도 나오듯 그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소스는 자기들이 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23] 사실 이것도 색깔론적 측면은 있다. 일본에서 '우익=혐한'이고 '좌익=친한'이라고 규정짓는 네티즌들도 상당하지만, 현실은 우익 중에서도 여러 이유로 친한은 있을 수 있고 좌익 중에서도 반한은 있을 수 있다. 애초에 세부적인 논의로 가면 그들 사이에서도 많은 이견이 있을진데, 친/반이라는 논법 자체가 극단주의적 성격이 있다. [24] 다만 출처가 트윗 문구 딸랑 하나뿐이라 좀 더 정확한 인용이 필요해 보인다. [25] 경향신문이 지금의 진보적인 논조를 지니게 된 건 한화그룹으로부터 독립한 때인 1998년부터이다. 되레 이전엔 친군사 정권 성향이 높다 보니, 1987년 6월 민주 항쟁 당시 경향신문은 호헌을 지지했단 이유로 시민들에게 신문이 불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오히려 이때만 해도 동아일보가 진보 스탠스를 취하고 있을 때니. [26] 참고로 한때 경향신문과 한솥밥을 먹었던 문화방송(MBC)은 산케이 신문과 한 식구인 후지 TV와 지금까지도 공동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협력 관계가 원만한 편이다. 게다가 후지 TV는 한때 한류 관련 방송을 무진장 하며 나름 친한의 길(?)을 걷기도 했다. 물론 돈이 되니 한 거겠지만, 그러다 2010년대 초반엔 2011년 후지 테레비 시위 사건으로 혐한 시위대의 먹잇감이 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7] 다만 당시엔 일본의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칭찬하는 보도를 하고 있었으므로 산케이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은 칭찬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의 시스템상 다른 점'이나 이동 경로 공개를 두고 '프라이버시 문제도 제기된다'라고 하는 등 은근한 뒤끝을 남기기도 했는데, 순수하게 칭찬하는 곳은 아사히 신문과 사카가미 시노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정도였다. 하나 어찌 됐든 일본이 한국보다 대처가 엉망이라는 건 일본 방송에서도 일관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라 아베 정부 입장에선 곤혹스럽긴 했을 것이다. [28] 과거에는 정부 기관을 피해자로 하여 기소를 했으나, 법원의 판단으로 정부 기관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공무원 개인이 피해자 입장에서 기소를 하는 것만이 가능해졌다. [29] 이 일은 후일 2016년 5월 9일 북한의 당 대회를 취재하던 영국의 BBC 기자들의 보도 내용을 문제 삼아서 추방한 사건과 관련, 적어도 북한은 출국 금지는 시키지 않았다며 비아냥거리는 대상이 되었다. # [30] 다만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점은 일본의 사법 체계의 문제점이 한국의 사법 체계의 문제점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꼽자면 한국에는 헌법재판소가 있어서 법률이 잘못되었거나 하면 위헌 심판을 통해 이를 시정할 기회가 있는 반면 일본에는 최고재판소을 통해 결정하기도 하지만, 70년 이상 동안 위헌이라고 꼽힌적이 적다. 아예 일본 검찰은 엔자이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국제 사회에서도 일본의 사법 체계를 중세 국가라고 비유하는 등 결코 일본도 후진적인 사법 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카를로스 곤이 일본에서 탈출한 후 가토와 거의 동일한 비판을 일본에 가했는데, 정말 난형난제의 블랙 코미디다. [31] 출처: (중앙일보)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날 조사하던 한국 검사가 최태민 부녀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 [32] 출판사는 우시오쇼보코진신샤로 되어있는데, 이 회사는 밀리터리 간행물 전문 출판사다. 2017년 산케이후지가 인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