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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0:46:59

구로다 가쓰히로

파일:3wrgvrM.jpg

1. 개요2. 활동3. 화려한(?) 기사 모음
3.1. 특징
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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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로다 가쓰히로([ruby(黑, ruby=くろ)][ruby(田, ruby=だ)] [ruby(勝弘, ruby=かつひろ)])는 일본 신문 기자/언론인이다. 구체적으론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 논설 위원 겸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대표적인 일본인 중 한명. 고령이 된 2020년대 현재는 대외 활동이 뜸해 인지도가 줄어든 편이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일본 극우 논객으로 유명했다. 사실상 반일제조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2. 활동

1941년 오사카부 오사카시 태생으로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교도통신(共同通信)에 입사하여 서울주재원으로 파견되면서 한국과 연을 맺게 되었다.

일본 현지에선 한국 지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거주한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본래 교도통신 기자였던 그가 산케이신문으로 이직한 것도 가능한 한 한국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해서 이직했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며 한국에 관한 저술만도 30종 이상 펴내고 부인도 한국 사람이다.

전두환 정권 시기 한국에 부임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도 제법 썼고 야당, 재야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아 공안 당국에게 마크를 꽤나 당하기도 했다. 당시 출판한「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는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이라며 인기를 끈 책. 이것이 1986년작인「한국인의 발상」으로 넘어가면 "한국인은 아시아의 이탈리아인"이라는 묘한 표현이 된다. 후술하겠지만 한국을 '야성, 미성숙 상태로 발달한 국가'라고 프레임을 쓰고 바라보는 것이 구로다의 주된 한국 독해법이다. # 15년여 지난 2000년 칼럼에서 요약한 80년대 저작

다만 이 부분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한국 못지않게 일본의 정치 스펙트럼도 자못 복잡하다. 좌익 신좌익, 반군국주의, 국제주의, 스탈린주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정파가 존재하고, 우익도 왕정복고파, 군국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족사회주의 등 엄청나게 복잡하다. 구로다나 가세 같은 경우는 우익 중에서도 입헌군주제나 그에 준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부류로,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1]

1990년대 MBC의 모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출연해서는 경상남'남'도 출신이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상당한 미식가로 일본에서의 저술 중에는 한국 음식에 관한 책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먹는 것이긴 하지만 특히 고래고기 말고기를 좋아한다고. 그중에는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서술도 있다.

그가 출간한 미식책에서는 죽 덕에 겨우 복통을 고쳐서 당시 집주인에게 고맙다는 글까지 있다. 다만 한국을 내려다보는 그의 기본적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한국 음식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상당히 낮춰 보고 있다. 맛있다고는 해도 세련되다거나 조리가 깔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국적이고 야성적이라는 어투. 이 자의 한국 음식에 대한 상투적인 표현으로 야취(野趣)가 있다. 즉, 야성적이고 소박하다는 말이다.

KBS에서 당시 정부 슬로건이었던 한식 세계화를 주제로 다큐를 만들었을 때 잠깐 출연하여 삼계탕을 예로 들며 손님에게 닭을 부위별로 요리하지 않고 한마리를 통째로 내놓는 한국의 식문화가 넉넉하고 푸짐하다며 예찬한 적도 있었다. 비빔밥 비하 발언을 했다가 혼쭐나기 불과 몇 달 전이다.

스스로는 그의 발언이 국내 언론에서 마구 확대 해석되어 도마에 오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권희로의 한국 송환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한국 언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사실 기사의 논조는 일본인들에게는 살인을 저지른 범법자에 불과한 자를 마치 개선장군인양 추켜세우는 당시 정계와 한국 언론에 대한 질타였다. 그리고 이후 권희로가 치정 문제, 정착금 문제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되자 이 부분은 재평가되기도 했다.

구로다 본인의 서술로는 자신에게 가장 비판적인 한국 언론사가 조선일보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그의 둘도 없는 친구가 월간조선 출신이자 지금도 조선일보 계열에서 꽤 인맥이 큰 조갑제라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선 "고령이라서 신변에 위험한 발언은 자제한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우파 경향을 숨기고 있는건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극우파 잡지 " SAPIO"(소학관)에도 정기적으로 <서울의 바람(ソウルの風)>이란 기사를 싣고 있고 "정론"(후지/산케이 미디어그룹)에도 한 번씩 기사가 실린다. SAPIO에서는 김완섭과의 대담 기사도 실린 적이 있다.

정론이 구 보수우익의 대변지라면 SAPIO는 신우익의 대변지이다. 이를테면 정론에는 미국 비판은 잘 오르지 않으나, SAPIO는 매 호마다 양념처럼 오른다. 혐한 기사도 자주 오르는 편인데, 사실 SAPIO는 한국 까기용으로 김완섭 고 젠카라는 전문요원을 두고 있기도 하다.

3. 화려한(?) 기사 모음

신문이 신문이니만큼 일본 우익 독자의 입맛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경향이 강하다. 30여년 동안 그 글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그네들의 구미를 잘 맞추어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통해 짐작해 보자.

3.1. 특징

구로다의 칼럼이나 인터뷰를 보다보면 일본인의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와 혼네(本音, 속마음) 개념이 어떤건지 대략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고 한 뒤 논란이 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강 한국을 칭찬하면서 얼버무린 뒤 다음 칼럼부터 어김없이 한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반응을 번역한 게시물들로 일본인의 혼네만 보게 되거나, 오프라인에서 일본인과 만나서 다테마에만 보게 되는 일반적 경우와 달리 혼네, 다테마에 모두를 접해볼 수 있는 산 표본인 셈이었다.

사실 구로다가 겉으로 한국을 칭찬해주는 경우도 파고 들어가면 교묘히 비꼬는 뉘앙스가 강하다. 논리나 자기 발언에 대한 옹호, 극우파에 대한 비판이나 옹호 이런 모든 걸 제쳐두고, 일단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것 자체에만 집중해서 그의 발언들을 보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강만 봐도 바로 반박할 수 있을 정도다.

1990년대에는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에 한국에 대해 정이 많다느니 어쩌니 하는 긍정적인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책들을 보면 한국인들에게 의외로 호감적인 시선들이 느껴지는 내용도 제법 있다. 그러나 그는 지한파(知韓派)일 뿐 친한파(親韓派)가 아니다. 좀 더 세밀히 분석해보면 한국에도 일본 정부나 우익 등으로 인해 일본을 싫어하지만, 일본 음식이나 문화, 관광은 좋아하고 사람들 개개인에 대해선 호감을 갖는 사람이 있듯, 구로다도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몇몇 한국인에게 든 정은 분명 있을 테지만 정치적으로만 보자면 전형적인 우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케이스로는 2013년 이글루스를 한바탕 뒤흔들었던 이마무라 사건의 장본인이 있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한국 문화를 즐기거나 입에 발린 칭찬 좀 하면 바로 "친한파"라는 식으로 얘기해버리는데 그런걸 한다고 "친한파"라고 보는 것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 가세 히데아키나 미즈노 슌페이 같은 사람도 원래 "친한"이었다가 갑자기 돌아선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지한파"와 "친한파"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실제 그의 논조가 일본 보수 우익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논설위원이니만큼 그가 쓰고 있는 기사는 팩트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일본 보수우익의 시각과 구미에 맞춰 재단된 정치적 대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수우파 + 지한파라는 입장은 상반된 것도 아니고 성립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그가 쓰는 기사의 행간을 짚어내어 일본 보수우익의 시선을 짚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4. 여담

5.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1993년 '추한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혐한 서적으로 한국을 헐뜯은 가세 히데아키도 1970년대까진 일견 친한파로 평가받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이시하라 신타로와 절친한 일본 극우견으로 활약한다. 일본 극우 홍보영화 프라이드나 무르데카 감수를 맡고 야스쿠니 신사에도 자주 나간다. 참고로 가세 히데아키는 책을 낼 때 한국인인 척하기 위해 박태혁이란 가명을 썼으며 전여옥이 그를 깐 바 있었다. 한때 한국 방송에 자주 출연해서 호감도 많이 샀던 미즈노 슌페이 교수의 사례도 있다. 이렇듯 단순히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입에 발린 칭찬 좀 해주고 한국 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친한파"다라고 보는 것 자체를 지양해야한다. 이들도 원래 저런 사람이었을뿐이지 친한이었다가 갑자기 돌아선게 아니다. "지한"과 "친한"은 전혀 다른 얘기다. [2] 중세에 그런 교전수칙이라는게 어디 있다는건지도 의문이지만 전세계 전투에서 다수의 사상자는 전열이 무너져 후퇴하는 도중에서 생긴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당연히 뻘소리다. 과거 기병대의 주요 임무도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사살하는 것이었다. 물론 현대 인권적 측면에서 보면 병사들도 지도부 결정에 따르는 희생자적 측면이 있으니 사람 죽이는게 좋은건 아니지만, 이땐 엄연히 중세 전쟁 중인데다 그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일본 도요토미 세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3] 물론 교토대학이 명문대학교긴 하지만, 정작 성향적으론 구로다보단 좌익적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넌센스. [4] 그나마 이런 비이성적 혐한 현상은 2010년대 후반 들어 일본내 제3차 한류붐의 영향 등으로 상대적으로 가라앉았다. [5] 발음적인 측면에서,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유명한 일본인 가운데 가장 유창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