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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ニメ最萌トーナメント
Anime Saimoe Tournament(AST)
일본 인터넷상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된 인기투표 행사이자, 최초의 메이저 모에 토너먼트.[1]
1. 설명
일본에서 2ch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의 여성 캐릭터 중 어떤 캐릭터가 가장 모에한가를 뽑은 토너먼트. 2002년에 최초로 개최한 이래 2014년까지 매년 열렸으며, 참가 자격은 지난해 7월-이번해 6월에 방영된( TV판 방영, OVA 출시, 극장판 개봉 모두 포함) 애니 여캐들.참고로 Saimoe란 단어는 외국에서 모에 토너먼트와 동의어이기 때문에, 이 대회를 지칭할 땐 J-Saimoe라고 줄여 부른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 최고모에토너먼트'를 개최했었고, 일본에서는 영향을 받아 동방 프로젝트의 캐릭터들만으로 투표를 진행하는 동방 사이모에 토너먼트를 개최하였으나 여기는 2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것의 영향을 받아 아예 세계구 레벨로 모에 캐릭터를 가르는 국제 사이모에 리그란 것까지 열리게 된다.
다만 하기의 비판 항목 등에서와 같은 문제들이 심화되고 점점 관심도가 낮아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하고, 2014년을 끝으로 사실상 폐지되었다. 그나마 먼저 망한 최모토는 애캐토라는 대회가 나타나 그 역할을 이어받았지만, 사이모에엔 그것조차 없었다.
2. 형성[2]
2001년경 2ch에서는, 일본 최초로 댓글 생성 IP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유동 감지 및 다중 계정 방지에 적용하였다. 본래 완전 익명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유언비어·비방·욕설 등 악행을 규제하겠다는 취지인데, 이 덕에 이전까지 정당화되지 못했던 형식인, 사실상 관리자가 규제 가능한 기명 투표를 만들 수 있었다.2ch 유저들은 2001년 가을 최초로 서브컬쳐 인기투표를 시범 개최하게 되는데, 이것이 게임판 사이모에의 전구체인 Leaf 캐릭터 사이모에이다. 이 대회의 성공으로 2002년 초반부터 미연시 회사별 모토가 양산되다가 연중에 사이모에가 창설 및 개막했다. 이후 02년 말에서 03년도 상반기에 걸쳐 분야별 사이모에 아류격 대회가 2ch 내에서 퍼졌으나, 그 열기는 2003년 말부터 사그라들며 2ch에서 모에 토너먼트는 이것만이 10년 넘게 이어지게 된다. 대신 여러 군소 규모 대회들은 04년부터 야후 재팬을 타고 타 커뮤니티로 확산되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 대회의 초기 개최 동기는 2ch의 사이모에 3원칙[3]에서 엿볼 수 있다. 본래 뉴타입 등 잡지 인기 차트의 상업적 운영 모델에 불만을 품고, 철저히 개인 취향을 추구하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위한 동영상, 글, 그래픽, 음악 등 '응원물'의 창작은, 더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이모에의 예상치 못한 순기능이었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은, 진영 개념이 등장한 2005년경부터 서서히 사라지며, '정치'가 응원물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3. 비판
가장 인기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뽑아보자!!라는 취지와는 달리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상당히 엄정하게 관리되는 투표였으나 어느 샌가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몰표를 유도하는 건 예사고 관리 허술, 인신공격, 위표 등 정치판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갖은 흑색 선전의 수단으로 얼룩졌다.[4] 본격적으로 이런 경향이 보이게 된 것은 2005년 《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와 《 로젠메이든》이 참가하게 되면서 부터인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진영이라는 개념이 생겨 본격적으로 빠들의 치고 받는 싸움이 시작되게 된다.인기와 전혀 상관 없이 표를 던지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면 유력한 라이벌을 미리 떨구기 위해 관심도 없는 캐릭터에게 표를 던지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떨군 상대에게 ' 복수하기 위해' 다음 대결에서 '원수'의 상대 캐릭터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밀어주거나. 그래서 전혀 의외의 캐릭터가 어부지리를 얻는 사례도 꽤 있다. 이러다 보니 의외로 그 해에 대세인 캐릭터가 우승하기 힘들고, 심지어 시드 개념조차 없는 대회라 한 번 뽑힌 대진표가 고정되는 등 모토 치고 후진적인 병폐[5]도 있어 그런 캐릭터들끼리 서로서로 터져나가기 때문.
결론은 '그들만의 리그'였고, 엄밀히 보자면 그때 대세가 되는 캐릭터 집단 군을 지지하는 오덕들의 이너서클(inner circle) 리그였다. 한 명이 올라가려면 누군가 떨어져야 한다는 토너먼트의 방식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 리그 방식이었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실제로 리그 방식으로 치러지는 국제 사이모에 리그에서는 팬들끼리의 싸움이 여기에 비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후 투표율이 급격히 내려감에 따라 사이모에가 망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2014년은 운영진 자체가 막장이 되어버린 바람에 정해진 일정에 맞춰 투표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 계속 미뤄지더니, 거의 연말이 되어서야 결과가 조금씩 발표되며 꾸역꾸역 진행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다중을 허용하는 바람에 특정 작품만 잘 나가는 현상이 벌어지다가 마지막엔 대회가 철저히 망가져 끝장나버리고 만다.
4. 역대 기록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경기 기록을 작성한 문단. 8강 이후의 경기는 모두 작성하며, 그 이전 라운드의 경기는 그 해 우승자와 주요 캐릭터( 8룡, 왕조, 시대 맹주)가 포함된 것만 작성한다. 캐릭터 링크 역시 주요 캐릭터들과 결승전에만 첨부한다.===# 2006년 #===
- 284강
- 96강
- 32강
- 16강
- 8강
===# 2007년 #===
- 284강
- 96강
- 8강
- 타카마치 나노하 1436 vs 1474 류구 레나
- 산젠인 나기 1334 vs 1272 이즈미 코나타
- 후루데 리카 1473 vs 1191 루이즈 발리에르
- 신쿠 1697 vs 1369 히이라기 츠카사
- 4강
- 류구 레나 1209 vs 1301 산젠인 나기
- 후루데 리카 1372 vs 1367 신쿠
===# 2008년 #===
- 284강
- 96강
- 32강
- 16강
- 8강
===# 2009년 #===
- 384강
- 나가토 유키 443 vs 352 호죠 사코토, 127 텐쿠지 나지미, 86 니시죠 나나미
- 히이라기 카가미 558 vs 736 아사히나 미쿠루, 106 시에스타, 99 그레이스 펠트
- 사카가미 토모요 358 vs 203 라라 스탈린, 157 미야마에 카나코, 87 코이즈미 치카
- 현랑 호로 494 vs 148 카자키리 효오카, 145 미나카미 미사오, 55 안톡 니나, 44 렙 클래스
- 카츠라 히나기쿠 870 vs 138 토우카, 108 블레스 셀바리아, 95 츠키시마 아오바
- 아이사카 타이가 726 vs 521 비숍 라이네테, 68 할레비 루이스, 36 토죠 루비
- 아키야마 미오 526 vs 563 미나미 칸나, 188 히로, 33 마리아 타오루
- 미사카 미코토 450 vs 182 야마나카 사와코, 110 치아키, 90 카가 아이
- 96강
- 16강
- 아이사카 타이가 825 vs 711 나카노 아즈사
- 8강
- 사기노미야 이스미 736 vs 812 아이사카 타이가
- 루이즈 발리에르 716 vs 910 하라무라 노도카
- 카타오카 유키 613 vs 660 후쿠지 미호코
- 아마에 코로모 819 vs 873 히라사와 유이
- 4강
- 아이사카 타이가 1077 vs 998 하라무라 노도카
- 후쿠지 미호코 988 vs 1019 히라사와 유이
===# 2010년 #===
- 289강
- 샤나 450 vs 397 나카무라 유리, 117 쿠자키 린코, 69 셀리나 플라메하트
- 나가토 유키 270 vs 137 코우메이 쇼카츠류, 122 코로네, 67 호시노 우타우
- 페이트 테스타로사 428 vs 125 세이버, 118 키노시타 유우코, 71 모리시타 코요미
- 현랑 호로 190 vs 224 히메지 미즈키, 121 카지키 유미, 92 유사
- 카츠라 히나기쿠 564 vs 605 시이나 마후유, 87 마리아 마켄지에, 75 우메노모리 치세
- 아키야마 미오 411 vs 262 묘도인 이츠키, 36 세키네 시오리, 34 아리아
- 미사카 미코토 364 vs 138 카나에 나루코, 73 소노자키 시온, 55 에인
- 타치바나 카나데 646 vs 536 인덱스, 67 파브리첸코 스오우, 47 하나사키 츠보미
- 72강
- 24강
- 8강
- 산젠인 나기 721 vs 531 시이나 마후유
- 아마에 코로모 931 vs 825 사텐 루이코
- 샤나 890 vs 946 하라무라 노도카
- 야마다 아오이 627 vs 961 나카노 아즈사
- 4강
- 산젠인 나기 1228 vs 923 아마에 코로모
- 하라무라 노도카 769 vs 939 나카노 아즈사
5. 분석
5.1. 2005 - 2010년
2005년도에는 신쿠 팬덤이 동진영 내 경쟁자를 다 없애기 위해 나노하 진영과 결탁했다가, 결선에서 신쿠 자체도 뒤통수를 맞고, 결승에 올라간 소우세이세키의 이미지까지 망치는 등 대단한 민폐를 끼쳤다. 결국 그 덕에 타카마치 나노하가 우승. 이 때문에 대회 끝나고 한 동안 로젠 진영은 안티 측에서 앨리스 게임[6]하냐고 조롱받아야 했다. 참고로 이 대회가 남긴 폐해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관리국 쪽에서 실장석을 최초로 연방 에이스 스이세이세키의 비하 용도로 써먹기 시작하면서 2ch 외부로 참피 밈이 퍼지는 계기를 제공한 것.2006년 당시는 하루히즘의 여파로 대회는 쿄애니 vs JC 중심의 반 쿄애니로 갈라졌는데, 여기서 로젠 연방의 갑작스런 단결이 변수가 되었다. 연방은 작년의 역적인 신쿠를 반대표를 던져 미리 숙청해버린 뒤 스이긴토 + 스이세이세키 투탑으로 갔으며, 그 내전이 일어났음에도 원한에 의한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도록 조기에 단속하였다. 그리고는 관리국과 가짜 연맹을 맺어 8강 나가토 유키, 4강 샤나를 처리하는 데 힘을 쏟아 쉽지 않은 승리를 거둔다. 그렇게 작년에 이은 나노하 vs 로젠 결승이 열리자 뒤늦게 관리국 측에서 견제를 시작하나, 이미 연방의 설계에 말려들었기에 때는 늦었고, 미리 해외 유입 투표자들에 원시참피의 DESU 밈을 푸쉬해 나온 화력에 힘입어 스이세이세키가 우승.
2007년엔 대회 초기부터 나노하와 쿄애니 팬덤이 대립했는데, 각각 히이라기 자매의 우승 vs 쿄애니의 우승 저지를 목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정작 대회의 비선실세였던 공국의 수장 나노하는 그러라고 키워준 류구 레나에게 통수를 맞고 광탈했으며, 그 레나는 카가미까지 꺾으며 씬 스틸러로 부상한다. 한편 그 와중에 로젠 연방에서 혼자 남은 신쿠 팬덤은, 2년 전의 사건에 앙망문까지 써가며 진영 내 도움을 요청했고, 이도 모자라 8강전에 모바일 P 다중 투표 사건까지 일으키며 마지막 쿄애니 캐릭터인 츠카사를 탈락시킨다.
이 사건에 분노한 타 팬덤들은 "로젠 불멸, 대회 멸망" 같은 구호를 내세웠다. 반면 신쿠를 밀어주기로 했던 나노하 진영은 배신자인 레나를 처단하는 데 바빴고(...), 나노하와 성우가 같은 리카를 밀어주느라 이들을 또 배신하였다.
2008년에는 전반적으로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 캐릭터 진영(단순 캐릭터 인기가 아님)이 역사상 유래가 없는 강세를 보이게 되었는데, 그간 쿄애니 진영이 관리국과 연방의 공작 때문에 모토 전반에서 죽을 썼던 역사 때문에 해당 팬덤들이 철저히 복수의 칼날을 갈며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작년의 업보가 퍼진 뒤로 본토 내의 안티가 급속도로 늘어버린 저 두 진영은 극도로 배척되었으며, 같은 해 해외 투표의 규제가 추가되자 재기가 불가능한 몰락에 접어든다. 그 자리를 제대로 파고 든 게 클라나드 진영이며, 쿄애니는 아예 키빠 세력과도 위장 동맹을 맺는 등 그들이 가장 혐오했던 관리국/연방을 철저히 배워왔다. 그래서 이 시기 대회답지 않게[8] 진영 싸움의 여지가 원천 차단되었다.
반 쿄애니 세력은 결선 들어가서야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16강에서 후지바야시 쿄에게 타카마치 나노하가 참패한 것을 기점으로 원동력을 상실했다. 4강에선 마지막 비 쿄애니 우승후보 카츠라 히나기쿠가 히이라기 츠카사에게 무너지고, 카가미가 쿄애니 내 다른 경쟁자《 클라나드》진영을 무너뜨리며[9],《 러키☆스타》의 히이라기 자매 두 명이 결승전에 동반 입성해 1-2위를 나눠먹는다.
2009년 7월 18일에 사이모에 홈페이지의 운영자 중 하나가 도망가는 바람에 토너먼트 자체가 중지될 뻔 했다. 다행히 그 운영자가 경질되는 것으로 끝나서 향후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피했다. 한편, 당해 루키《 사키 -Saki-》진영은 대회 초부터 엄청난 무력을 뽐냈지만, 쿄애니 팬덤이 이를 가만두지 않고 결선에서 응징해버린다. 화난 사키 팬덤은 결승에서 히라사와 유이 반대쪽인 《 토라도라!》 진영에 붙었고, 그 덕에 09년 탑 신인 아이사카 타이가가 역대 두 번째로[10] 한/일 양국 모토를 동시 재패하는 기록을 달성한다.
2010년에는 케이온 진영이 엄청난 강세를 보이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일례로 본작에서 엑스트라에 가까웠던 타치바나 히메코조차 상당한 표를 받았다. 다만 아키야마 미오의 경우에는 아즈사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그녀의 우승을 밀어주기 위해 케이온 진영에서 버림패로 사용되었다. 사실 당시 진영 내에서 가장 강력한 건 미오였지만, 대회 도중 최모토 미오 우승 소식이 전해졌고, 초대 국사모 결선에서 사이모에 우승자 카가미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기에, 팬덤은 무관이었고 안티거리가 없었던 아즈사로 일제히 선회하는 대국적인 결정을 했다.[11]
쿄애니 진영은 작년에 큰 미움을 받은 히라사와 유이까지 포기하고 아즈사에 집중하며, 미리 반 쿄애니 세력을 제거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고로 미코토가 제거된 결선에서 아즈사 독주 대진 구도가 완성되었고, 큰 실망을 한 투표자들은 이 때부터 점차 대회를 이탈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해《 케이온!》의 나카노 아즈사 우승은 대회의 정점을, 산젠인 나기와의 결승 화제도 감소[12]는 대회 몰락의 시작을 의미했다.
5.2. 2011 - 2014년
10시즌까지만 해도 사이모에는 외부표를 개방하는 등 찬란한 리즈 시절을 보냈지만, 2011년부터 외부표를 규제하면서 점차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갔다. 정확히는, 다중 투표가 발각되고 총 투표자 수가 수백명도 안 될 만큼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을 겪기 시작한 2012년부터 아예 실제 인기 지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공신력이 전무한 투표가 되고 말았다.[13] 먼저 2011년 결승전은 마마마 vs 마마마의 집안 싸움이였으며, 이번 우승 캐릭인 토모에 마미는 사이모에 사상 첫 거유 캐릭 우승자다. 샤프트 캐릭터로서도 처음, 롤빵머리 캐릭터로서도 처음. 이어진 2012년 결승전은 8강 결과 4강 4사키[14]가 되어버려서《 사키 -Saki-》의 우승이 확정되었고 거기서 토키가 우승.2013년 저번 년도에 힘을 다 쓴 《사키》가 거짓말같이 죄다 본선 탈락. 사실 사키 몰락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성공이 모두 다중투표로 이루어낸 것이었고, 그것이 이번에 밝혀진 것이다.[15] 이 때문에 마마마 진영이 운영진들이 사키 팬덤과 한 편 먹은 거 아니냐며 게시판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운영자 측에서 부정투표를 근절하겠음을 설득하고 타협점으로 패자부활전 도입을 제의하면서 길었던 키배는 대회 시작 보름이 지나서야 끝나게 되었다. 주목해 볼 만했던 전력은 카나메 마도카와 아케미 호무라, 니시즈미 미호 등 각 만화 인기 캐릭터들을 모두 제치고 온 아라가키 아야세와 전년도 우승자인 온죠지 토키를 이기고 올라온 그 전년도 우승자 토모에 마미.
이후 토너먼트 결과 4강에 오른 캐릭터는 마마마의 마도카 - 쿄코 - 사야카, 인류는 쇠퇴했습니다의 여자 주인공. 4강 대진은 카나메 마도카 - 사쿠라 쿄코 / 와타시 - 미키 사야카로 결정됐다. 마마마 캐릭터 3명 + 다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1명이란 조합에서 2011년 대회 때의 4강 때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 결승은 카나메 마도카 vs 미키 사야카로 결정. 2011년의 사쿠라 쿄코 vs 토모에 마미에 이어 두번째 마마마 집안싸움. 공교롭게도 마도카는 본선에서 자신을 1번 짓밟은 아야세를 16강에서, 재작년 준우승자인 같은 팀 동료 쿄코를 준결승에서 꺾었고, 사야카는 전년도 우승자 마미를 8강에서 밟고 올라왔다. 결국 마도카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마마마 진영의 주연 5인 중 호무라[16]를 제외한 4명은 모두 한번씩은 결승까지 올라와 우승 혹은 준우승을 차지한 경력을 갖게 되는 영예를 얻었다.
2014시즌은 열릴 것인지에 대한 예상조차 분분했고, 그들만의 리그가 된 대회에 대한 투표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대다수 투표자들은 다중이 발각된 사키는 뭘해도 안 될 것인 반면, 같은 진영 이외에 한번도 지지 않고 타 진영을 압도한 마마마 무쌍은 계속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허나 뚜껑을 열고 보니 사키 팬덤의 활약은 상상 너머의 무언가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해 사키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1차 예선 통과를 대거 이뤄내면서[17] 무려 44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을 본선에 올려놓았다. 물론 마마마도 약해지진 않아서 기존의 주연 5인방은 물론 신캐 모모에 나기사에 큐베까지 본선에 진출 시켰다. 그 외엔 최근 떠오르고 있는 러브 라이브!가 뮤즈 9인방 전원을, 얼마전에 완결난 신만이 아는 세계도 5명을 본선에 진출시켰다.
2014년 대회 기준 운영진이 득표 수가 극히 줄어들자 아예 다중을 허용하며 위의 사키판 결과가 나온 것인데, 이렇게 된 이상 사실상 사이모에의 의미 자체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냥 해당 판 내부의 다중 싸움 비슷하게 흘러간 상황. 주로 사키, 마마마, 금서목록 등이 다중 동원력이 강한 작품으로 꼽히며 실제로 이쪽 진영의 캐릭터들은 꽤 오랫동안 살아남은 상황이다. 이런 다중 허용으로 인해 2014년의 대회는 여러모로 폐해가 많아진 편인데, 그 중 가장 황당한 일은 진격의 거인 진영에서 개그성으로 진출한 조사병단의 말[18]이 1회전 광탈하나 싶더니 패자부활전에서 2위로 올라온 사건.이 전무후무한 기록은 모토 전반을 다루는 사이모에 위키에도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32강 중 절반을 사키가 독식했으며, 마마마도 주연 5인방 전원이 블록 제패에 성공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반면 나름 초반 강세를 보였던 금서목록, 러브라이브 진영은 한 두명만 블록 제패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망했다. 하지만 이것도 약과일 뿐이고 신인 진영은 그 이상으로 초토화된 상태다. 그나마 한 두명이라도 블록 제패에 성공한 팀은 금빛 모자이크, 주문은 토끼입니까?, 니세코이가 전부다. 그 외에 신인 진영은 아니지만 역내청의 메인 히로인 둘과 신만세의 나카가와 카논이 간신히 패자부활전을 통해 32강에 올랐다.
플레이오프가 시작되자 그나마 한 두명 살아남은 소수 진영마저도 전부 탈락하였다. 결국 살아남은 진영은 예상대로 마마마와 사키, 그리고 의외의 다크호스 금빛 모자이크[19] 뿐이었다. 그러나 그 킨모자 캐릭터들도 끝내 마마마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16강에서 전원 탈락하고 만다.
결국 2014년 우승도 사키나 마마마 진영에서 가져가게 되었는데, 정작 강력한 대항마가 되리라 예측되었던 마마마 진영은 지지세력이 대부분 떠난 건지 예상보다 저조한 득표율을 보이며 전원 참패를 당한다. 특히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야카는 준결승전에서 하라무라 노도카와 붙었다가 8배 가까운 표차로 완패하기까지 했다. 이 경기에서 노도카가 얻은 득표율은 89.2%로 대회 시작된 이래로 최고의 득표 기록으로 남았다.[20] 결승은 사키 VS 노도카라는, 사키의 주역 2명의 집안 싸움으로 결정. 그리고 그 결과는 놀랍게도 전무후무한 공동우승을 했다.
결국 2014년의 저조한 참여율과 그들만의 리그가 심화된 성향 때문에 2015년은 개최되지 않았으며, 16년 9월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등, 명맥이 끊어졌다. 더 이상 이어받을 사람도 없던 사이모에는 그대로 잊혀진 채 유기되는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21]
6. 역대 우승, 준우승 목록
연도 | 수상 | 이름 | 작품명 | 득표수 |
2002년[22] | 우승 | 키노모토 사쿠라 | 카드캡터 사쿠라 | 580표 |
준우승 | 카스가 아유무 | 아즈망가 대왕 | 534표 | |
2003년 | 우승 | 하라다 리쿠 | D.N.ANGEL | 161표 |
준우승 | 하라 모토코 | 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 | 147표 | |
2004년 | 우승 | 로즈마리 애플필드 | 내일의 나쟈 | 230표 |
준우승 | 나쟈 애플필드 | 내일의 나쟈 | 154표 | |
2005년 | 우승 | 타카마치 나노하 |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 1087표 |
준우승 | 소우세이세키 | 로젠메이든 | 952표 | |
2006년 | 우승 | 스이세이세키 | 로젠메이든 트로이멘트 | 2306표 |
준우승 | 페이트 테스타로사 |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A's | 2239표 | |
2007년 | 우승 | 후루데 리카 | 쓰르라미 울 적에 | 1521표 |
준우승 | 산젠인 나기 | 하야테처럼! | 1488표 | |
2008년 | 우승 | 히이라기 카가미 | 러키☆스타 | 1037표 |
준우승 | 히이라기 츠카사 | 러키☆스타 | 976표 | |
2009년 | 우승 | 아이사카 타이가 | 토라도라! | 1332표 |
준우승 | 히라사와 유이 | 케이온! | 1278표 | |
2010년 | 우승 | 나카노 아즈사 | 케이온! | 1516표 |
준우승 | 산젠인 나기 | 하야테처럼! | 1339표 | |
2011년 | 우승 | 토모에 마미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512표 |
준우승 | 사쿠라 쿄코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435표 | |
2012년 | 우승 | 온죠지 토키 | 사키 아치가편 | 311표 |
준우승 | 마츠미 쿠로 | 사키 아치가편 | 291표 | |
2013년 | 우승 | 카나메 마도카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277표 |
준우승 | 미키 사야카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191표 | |
2014년 | 공동우승 | 미야나가 사키& 하라무라 노도카 | 사키 -Saki- | 187표 |
6.1. 번외 대회 목록
전시(컵) 대회명 | 수상 | 이름 | 작품명 | 득표수 |
2002년 남성부 | 우승 | 후지와라노 사이 | 히카루의 바둑 | 221표 |
준우승 | 리키 | 디지몬 어드벤처 시리즈 | 144표 | |
2004년 투표컵[23] | 우승 | 카스가 아유무 | 아즈망가 대왕 | 76표 |
준우승 | 마기 무이 | R.O.D the TV | 73표 | |
2005년 남성부 | 우승 | 신 아스카 | 기동전사 건담 SEED 시리즈 | 243표 |
준우승 | 카이바 세토 | 유희왕 | 182표 | |
2006년 URA컵 | 우승 | 레인 | 신비한 별의 쌍둥이 공주 | 234표 |
준우승 | 아사히나 미쿠루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 219표 | |
2007년 남성부 | 우승 | 코이즈미 이츠키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 579표 |
준우승 | 엘 로우라이트 | 데스노트 | 522표 | |
2014년 칸코레컵 | 우승 | 콩고 | 함대 컬렉션 | 101표 |
준우승 | 이나즈마 | 함대 컬렉션 | 88표 |
6.2. 삽화 일람
{{{#!wiki style="color: #000000" {{{#!folding 공식 우승자 포스터 |
<tablealign=center><tablewidth=700>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wiki style="color: #000000" {{{#!folding 공식 결승 포스터 |
<tablealign=center><tablewidth=700>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2012년 | 2013년 | ||
7. 관련 바깥고리
[1]
사실 이 대회는 알려진 것과 달리 최초의
모에 토너먼트가 아니다. 발견된 것 중 최초의 모토는 2001년 10월에 열린
Leaf 캐릭터 사이모에이다.
[2]
출처
[3]
개인의 취향 다원성, 타인의 취향 존중, 공정하고 깨끗한 투표.
[4]
이는 애니존의
최고모에토너먼트도 마찬가지였다.
[5]
2016시즌을 제외하고 이런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2세대 메이저 모토
Bilibili Moe는 역사가 아예 사이모에의 압축판인데, 더욱 격렬하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갈등이 폭발한 끝에 4년만에 대회가 단절되었다.
[6]
로젠 원작에서 일곱 자매가 서로를 해치워
로자 미스티카를 완성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들 인형이 살기 위해 싸우는 것에 빗대어,
2ch
엠생들이 현실 삶을 뒤로하고 투표 하나에 과몰입하는 것을 조롱하는 개념.
[7]
재미있게도 관리국은
쓰르라미빠와 대회 초반 쿄애니 저지를 위한 동맹을 맺었다가,
류구 레나의 배신에 열 받아 기존 동맹을 파기하고 연방과 새 동맹을 체결했으며,
후루데 리카 쪽의 청탁을 받아 연방을 배신때리고 쓰르라미빠와 재동맹을 맺으며
한 대회에서 2번이나 배신을 대놓고 저지르는 추태를 보였다.
[8]
폭발기 전후(2005-2009년)에 메이저 모토가 아닌 이름난 대회까지 범위를 넓히더라도, 진영 싸움이라는 개념 없이 우승한 케이스는 이 대회와 2008년도
슈퍼모에토너먼트의
스이긴토가 유이하다.
[9]
당시 결선에서
히이라기 카가미는 클라나드 쓰리톱
토모요,
쿄,
나기사를
모두 격파하고 우승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러키스타 팬덤이 쿄애니 단결을 외치며 자기보다 체급이 높은 히나기쿠를 멈춰세웠던 것과 비교해, 같은 편인 클라나드는 체급으로 찍어누르는 등
내로남불 행적이 미움을 사게 된다. 그 영향으로 같은 해
국사모 결선에서
카가미 안티팬과 클라나드 팬덤이 합작하여 그녀를 패자조 결선에서 저격하였다.
[10]
첫 번째는 2006년의
스이세이세키.
[11]
이 판단이 미오의
최모토 우승 이후,
국사모 결선에 앞서 안티 쪽의 반대표 저격 명분을 없앤 신의 한 수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케이온 진영이 한 해 메이저 모토 스윕에 성공하게 만들었다.
[12]
물론 결승전 흥행을 대표하는 투표자 수는 2006-2007년에 이은 3위로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결승을 제외한 모든 16강 이상의 경기들 투표수는 '아즈사 - 미오 - 미사카 예선 최종전'보다 적었으며, 그 만큼 진영 싸움에 신물이 나버린 투표자들이 상당하다는 얘기였다. 좀 더 극단적인 주장에 의하면, 리카와 아즈사의 우승으로 사이모에란 대회가 최고 인기캐를 가리는 존재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고 몰락에 접어들었다고도 한다.
[13]
그나마 11년 마마마는
국사모에서 유독 부진했을 뿐,
최모토나 다른 마이너 모토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사키 진영은 그렇지 않다는 게 큰 차이. 이 때문에, 사키는 본 작품 뿐만 아니라 제작사
스튜디오 5조가 만든 작품들까지
본선 문턱조차 두드려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14]
온죠지 토키,
하라무라 노도카,
마츠미 쿠로,
타케이 히사.
[15]
이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우승 근처에도 발을 붙이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16]
호무라의 경우 화력 자체가 약한것은 아니었으나, 2011년에는 1회전에서
어딘가의 츤데레 여왕님과 맞대결 끝에 탈락했고, 2013년에는 2회전에서 마도카와 같은 조에 속해 일종의 버림패가 되는 등 대진운이 이상할 정도로 나빴다.
[17]
심지어 E04조의 경기는 1위부터 10위까지가 전부 다 사키 캐릭터다! 심지어 2차 예선을 1, 2, 4위로 통과한
사텐 루이코,
유우키 아스나,
산젠인 나기 등이 모두 1차 예선 때 이 조에 있었는데 순위가 밀려 2차 예선으로 갔었다. 그 외에도 E04조에서 20위권 내에 있던 캐릭터들은 모두가 후에 2차 예선을 통과했을 정도로 인기캐들이었다.
[18]
캐릭터 설명에는 "장의 친척"이라 나오는데, 이는
엘런이 장을 말상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비유가 아니고, 진짜 그냥
말이다!
[19]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2명의 캐릭터,
쿠죠 카렌과
앨리스 카트렛이 모두 살아 남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특히 앨리스는 사키 3명이 포진한 진영에서 살아 남았고, 카렌은 그
토모에 마미를 1표차로 이기고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0]
당연하지만 이게 좋은게 아니다. 그만큼 이번 대회가 다중을 허용하다보니 갈 데까지 갔다는 걸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기 때문. 물론
국사모에서도 85% 이상의 득표율이 나온 적이 5번 있다. 그러나 그 경기 모두 본선은 커녕, 계절 전시 경기 예선 첫 라운드의 경기들이다.
[21]
일반적인 모토들은 대부분 작별 인사가 포함된 폐지 공고를 통해 수명을 다하는데, 그 조차도 못 한 점에서 볼 때 최모토나 앤모토, Bilibili Moe보다도 더 비참해 보이는 것이다.
[22]
이 당시 캐릭터 참가자격은 1년이 아니었다.
[23]
원래 geocities에서 만든 별도 대회 Tōhyō AST 명의로 태어났지만, 05시즌 도중 중단된 뒤 여기 본선에 병합되었다. 그래서 이 투표컵은 고대 모토 마이너 대회이면서, 사이모에의 역사라는 양면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