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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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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월러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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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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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월러스
헌액 연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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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enwallace.jpg
<colbgcolor=#1d428a>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No. 3
<colcolor=#fff> 벤 월러스
Ben Wallace
본명 벤 캐미 월러스
Ben Camey Wallace
출생 1974년 9월 10일 ([age(1974-09-10)]세)
앨라배마 주 화이트 홀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버지니아 유니언 대학교
신장 201cm (6' 7")[1]
체중 113kg (250 lbs)
윙스팬 219cm (7' 2.5")
포지션 센터 / 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1996 NBA 드래프트 언드래프티[2]
소속 구단 워싱턴 불리츠-위저즈 (1996~1999)
올랜도 매직 (1999~2000)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0~2006)
시카고 불스 (2006~2008)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8~2009)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9~2012)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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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 - 워싱턴
4번 - 올랜도 / 클리블랜드
3번 - 디트로이트 1기 / 시카고
6번 - 디트로이트 2기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소개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2.2. 왜 미지명됐나?2.3. NBA 언드래프티의 전설로
3. 플레이 스타일
3.1. 장점3.2. 단점
4. 수상 내역5. 기타

[clearfix]

1. 소개

NBA 소속 센터. 별명은 'Big Ben'.

괴물같은 수비력과 리바운드로 NBA를 평정했던 언드래프티의 전설임과 동시에 농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다. 2021년에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월러스는 1974년 9월에 앨라배마에서 태어났다.(11남매중 10번째고 남자형제중 막내) 벤은 어릴적부터 가난했기에 용돈을 벌기위해 근처 농장에서 알바를 했고 형제들과 3:3이나 4:4농구를 하며 심심함을 달래곤 했다.

NCAA 디비전2에서 MVP를 수상하는등 활약했지만 포지션 대비 너무나도 작은 2부 대학출신 4학년을 뽑는 팀은 없었고, 보스턴에서 서머 리그에 초청했으나 장신 스윙맨으로 쓰려고 생각했을만큼[3] 특색없는 그저그런 C급의 유망주에 불과했고 빠르게 방출당했다.

2.2. 왜 미지명됐나?

파일:external/i.cdn.turner.com/starting5_800_140616.jpg
리즈시절 배드 보이즈 2기 스타팅 5인방.
포지션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센터 파워 포워드
이름 천시 빌럽스 리처드 해밀턴 테이션 프린스 벤 월러스 라쉬드 월러스
신장 6ft 3in 6ft 6in 6ft 9in 6ft 9in(?) 6ft 11in

이 사진 하나가 말해준다. 벤 월러스는 프로필상 6피트 9인치, 206cm라고 되어있지만 실제 착화 신장이 같아야 할 옆 테이션 프린스보다 작고, 리처드 해밀턴보다 조금 크다. 아프로 헤어스타일 때문에 속기 쉽지만 벤 월러스의 실제 착화 신장은 신발 신고 6피트 8인치, 203cm, 맨발키는 잘봐줘도 200~201cm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신장은 월러스의 데뷔 기준으로 쳐도 NBA에선 빅맨으로 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4], KBL에서도 평균적인 빅맨 용병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NBA에서 스몰 포워드로 포지션 전환하려 했지만 후술할 공격에서의 약점 때문에 당연히 실패하고 방출당한 것.

2.3. NBA 언드래프티의 전설로

NBA 입성에 실패하고 이탈리아 리그로 방향을 잡던 그를 눈여겨 본 것은 똑같이 201cm의 신장으로 NBA에서 빅맨으로 활약한 단신 빅맨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빅맨이자 1978 파이널 MVP였던 웨스 언셀드 당시 워싱턴 불리츠 단장. 당시 워싱턴에는 전체 1순위 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가 자리잡고있어 많은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이후 조금씩 출장시간을 늘려가며 활약하지만 아이작 오스틴과 3:1의 트레이드에 포함되며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 되고 여기서 월러스는 주전으로 출전하며 평균 4.8득점 8.2리바운드 1.6블록을 기록하면서 괜찮은 빅맨으로 점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한시즌 후 처키 앳킨스와 함께 2:1로 그랜트 힐과 트레이드 되었다. 사실 말이 2대1 트레이드지 이때 앳킨스와 월러스는 자유계약 선수였던 슈퍼스타 힐을 아무 대가 없이 잃기 싫었던 디트로이트가 얻어온 '덤'에 가까웠다. 그러나 월러스는 디트로이트에서 기량을 만개한다.

월러스는 올스타에 선정되고 올해의 수비수상을 쓸어담았고 디트로이트는 루키 시즌 한시즌만에 철저한 무명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를 괴롭히는 수비수로 변모한 테이션 프린스, 트위너라 평가절하당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준수한 득점력과 괜찮은 수비력 등이 디트로이트의 팀농구 시스템과 잘 맞아떨어져 좋은 가드로 인정받기 시작한 천시 빌럽스, 중거리슛의 달인이었던 리처드 해밀턴 등을 중심으로 탄탄한 팀을 구성했지만, 2002-03 시즌까지는 동부의 강자 정도로만 인식되고 '진지한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2003-04 시즌을 앞두고 명장 래리 브라운을 영입하고 시즌 중반에 슈퍼스타였지만 멘탈이 문제가 많았던 사고뭉치 라쉬드 월러스[5] 영입한 '배드 보이즈 2기' 디트로이트는 사고를 친다. 당시 2004 NBA 파이널 상대는 전당포 라인업을 자랑하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거의 모든 전문가와 팬들은 레이커스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으나 결과는 4:1로 디트로이트의 압도적 우승. 1패도 코비 브라이언트의 기적같은 위닝샷으로 당한 것. 월러스는 매치업 상대인 샤킬 오닐과 10cm, 30kg 이상 피지컬차이가 났으나 파울트러블 없이 그를 효과적으로 막았고[6], 스탯은 쌓았으나 더블팀을 몰고다니며 골밑을 파괴하던 오닐은 없었다. 월러스의 맹활약과 다른 팀원들 특히 백코트에서 로스앤젤레스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면서 결국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후 2005-06 시즌까지 올해의 수비수상을 거머쥐며 NBA 내 최고 수비수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다졌다. 2004-05 시즌 준우승, 2005-06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등 디트로이트는 명실상부 동부 최강의 팀이였고 월러스는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계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조금씩 줄어가는 운동능력과 스탯, 팀 페이롤 등의 문제로 계약에 난항을 겪었고 월러스는 시카고 불스와 4년 60밀의 계약을 맺는다. 크고 작은 부상속에서도 이전만은 못했지만 여전히 신뢰할만한 리바운더에 수비수로 제 몫을 다했다. 2007-08 시즌 도중 팀의 하락세 속에서 시카고 클리블랜드 시애틀의 3자 트레이드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 된다.

클리블랜드에는 이미 노련한 장신센터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가 있었고 월러스는 주로 파워 포워드 포지션에서 출장한다. 잦은 부상에 떨어지는 운동능력으로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든다. 2008-09 시즌 이후 피닉스 선즈 샤킬 오닐과 트레이드 된다. 피닉스는 팀의 샐러리를 줄이기 위해 월러스를 방출한다. 이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계약을 맺는다.

돌아온 디트로이트에서 3시즌을 더 뛴 후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3.1. 장점


21세기 NBA를 대표하는 첫 빅맨 수비수로, 공격력의 부재에도 괴수급 수비력만으로 탑클래스 센터가 되었다. 디켐베 무톰보, 루디 고베어와 함께 역대 최다 수비수상 수상자.

빅 벤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신장은 센터 기준으로 상당히 작은 2m 정도에 불과했지만[7] 7'2(218cm가량)에 달하는 긴 윙스펜, 버티컬 39인치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점프력, 그리고 엄청난 근육질의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 이를 상쇄했다. 활동량과 스피드가 출중해 헷지를 가장 깊숙히 들어가는 선수였고, 때때로 앞라인의 선수도 막을 수 있을만큼 사이드 스텝도 뛰어났으며, 손이 빠르고 패싱레인을 자르는 수비에도 능했다. 시즌 평균 3.5블록 1.7스틸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 이 선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비수였냐면, 배드 보이즈 2기 시절 그가 결장한 경기에서도 디트로이트는 이미 상위권의 수비팀인데, 그가 출장한 경기에서는 상대팀의 득점이 5점가량, 필드골이 5%정도 하락하면서 최고의 수비팀으로 변모한다.[8]

다만, 센터로서의 1:1수비는 명성에 비하면 다소 부족했다. 아무래도 타고난 신장과 체중이 모자라다보니 샤킬 오닐, 야오밍 같은 S급 센터를 상대로는 고전했던 편.[9] 물론 저 둘은 벤보다 사이즈가 훨씬 좋은 NBA 대표 피지컬 깡패였던 드와이트 하워드가 붙어도 하고싶은 거 다 할 정도로 포스트업이 위력적이었기에 벤을 폄하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가 최강의 수비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팀의 플레이 스타일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 덕분이었다. 디트로이트는 역대급 조직력을 바탕으로 해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빈틈을 메우는 시스템 수비를 했고, 사기적인 기동력과 천재적인 수비센스를 갖고 있는 월러스는 자기 매치업만 막는게 아니라 상대 팀 전부를 견제하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 그의 블록 슛 역시 자기 매치업을 찍어내리는 수비보다 대부분 도움수비를 하면서 막아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픽앤롤에서 대부분의 빅맨들은 픽에 걸려 작고 재빠른 가드와 매치업이 되면 발이 느려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가드를 견제하는 헷지 수비를 하곤 자기 매치업에게 돌아가는[10] 정도이다. 그러나 월러스는 기본적으로 스윙맨 사이즈에 가깝기 때문에 포인트 가드까지 막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이 경우에 가드를 끝까지 쫓아가 강한 압박으로 턴오버를 유발하곤 했다.[11]

물론 위에 언급한 대로 덩치가 작아 7피트급 빅맨들과의 1대1 수비에선 고전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2005 NBA 파이널 당시 7피트에 가까운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에이스 팀 던컨과 주로 매치업된 것은 월러스가 아니라 던컨과 비슷한 덩치에 수비력이 좋은 라쉬드 월러스였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특급 센터들이 거의 사라지면서 이런 약점이 부각될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2004년에 라쉬드가 합류하기 전에 벌써 올해의 수비수상을 두 번 탄 것에도 볼 수 있듯이, 빅맨 수비도 비교적 약하다는 거지 진짜 약한게 아니다.[12][13]

2010년대 선수들과 비교하면 수비 면에서 드레이먼드 그린과 유사하다. 그린과 마찬가지로 상대 공격전술을 읽고 적재적소에 헬프수비와 로테이션을 들어갈 수 있었으며, 체력과 활동량이 좋아 한사람이 더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여러 곳에서 출몰해 상대 공격을 뻑뻑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덩치의 그린보다 더 나은 점은 운동능력의 차이로 샷 블로킹 능력은 훨씬 더 뛰어났고, 더불어 파워가 더 강해 골밑 1대1 수비력도 좀 더 뛰어났다는 것.[14] 물론 공격에서의 기여도는 그린이 빅벤을 훨씬 앞서긴 하지만, 대신 빅벤은 보드장악력이 아쉬운 그린과 달리 리바운드왕을 두 번이나 해낸 적이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사이즈가 모자라다보니 운동능력에 많이 의존하는 스타일이라 운동능력이 저하되면서 수비력이 급감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부상이 엄청나게 늘어 시카고 불스에서 첫 시즌을 보낸 이후 급격히 평범한 선수가 된 감이 있었다. 디켐베 무톰보 팀 던컨 등 사이즈가 되는 수비수들은 꽤 늦은 나이까지 준수한 수비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15] 다만 웬만큼 수비가 뛰어난 자원이라도 30대 중반이라면 수비력 저하가 많이 일어나는 편이고, 월러스의 경우 본인의 몸관리가 철저했던 만큼 그래도 언더사이즈 빅맨 치고는 수비력 유지가 꽤나 잘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3.2. 단점

수비력에 있어선 농구 역사상 탑3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했다. 그건 바로 여타 수비 스페셜리스트들과 비교해도 공격력이 확연히 떨어진다는 점인데, 냉정하게 말해 공격 리바운드와 단단한 스크린 정도를 제외하면 공격코트에서의 경쟁력은 없다시피 했다.

슈팅 폼과 스트로크는 나쁘지 않았지만 후술할 손목 문제로 인해 중장거리 슈팅 능력은 전무했다. 그보다 더 문제가 된 건 역대 최악을 논하는 자유투 성공률이었는데, 커리어 통산 FT%가 0.414에 불과했으며 단 한 시즌도 5할을 넘은 적이 없을 만큼 일관적으로 못 던졌다. 윌트 체임벌린, 샤킬 오닐, 드와이트 하워드조차 한 수 접고 갈 이 경이로운 수치로 인해[16] '핵어샥'과 비슷한 개념인 '뱅어벤'이란 작전까지 있었을 정도. 샤크의 경우 핵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되었고 오히려 파울하는 수비자 측의 부담도 상당했다면, 빅벤은 볼을 쥐는 시간 자체가 짧다보니 핵을 훨씬 덜 당하긴 해도 한 번 걸리면 자유투 한 구라도 제대로 넣어주길 기도해야 했다.

사실 농구에서 노골적인 핵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게 자유투 고자의 기준점인 60% 성공률을 기준으로 보면 해당 선수의 자유투 포제션 기대득점은 1.2로, 이는 60% 성공률의 2점 야투나 40% 성공률의 3점 야투와 동등한 효율이다. 즉, 어지간히 자유투가 구린 센터들도 성공률 60%는 넘는 NBA에서, 특정 선수에게 노골적인 핵을 걸어 자유투 포제션을 내준다는 것 자체가 쉽게 할 수 있는 발상은 아니다. 핵이 경기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에 "프로씩이나 돼서 핵을 당하는 그 선수가 문제다." 라는 반박이 달리는 것도 이 때문. 여하튼 빅벤에게는 자칫하면 4쿼터에 팀원들의 야투 기회를 본인의 저효율 자유투 포제션으로 말아먹을 수 있다는 위험이 항상 존재했다. 당장 19-20 플레이오프에서 자유투 성공률이 4할 아래로 내려앉은 벤 시몬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생각해보자.

슛과 자유투에 약한 선수들이야 NBA에도 널렸지만, 유독 빅벤이 독보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손목 관절이 굉장히 안좋았기 때문이다. 빅벤은 커리어 초반에 이미 슛 몇 번만 던져도 무리가 올 정도로 오른쪽 손목이 망가져있었고, 수술을 하면서 손목 인대 몇 개를 제거한 뒤로는 틈만나면 손목이 빠지거나 느슨해지는 증상에 시달렸다. 때문에 자유투나 중장거리 슈팅 뿐 아니라 손끝 감각 자체가 많이 아쉬웠던 편.

결국 공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주워먹기나 공리 후 세컨찬스 득점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야투율은 가장 높을 때조차 5할 턱걸이에 그쳤다. 그의 공격 비중을 늘린 래리 브라운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는 42.1%까지 떨어졌을 정도. 슛을 거세한 받아먹기형 센터들이 공격 영향력은 다소 미비하더라도 야투율은 그럭저럭 잘 뽑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고려하면 이는 명백한 감점 요소였다.

정리하자면 역대 최고수준의 수비력과 역대 최저수준의 공격력을 가진 극단적인 선수였다. 예로 데니스 로드맨은 나름 리그 야투율 1위도 해봤을 정도로 쉬운 찬스는 잘 마무리 했고[17], 디켐베 무톰보는 11시즌 연속 두자릿수 평득을 기록할 정도는 되었으며, 드와이트 하워드는 슛이 없고 기술이 투박함에도 평득 20점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몇 있다. 즉, 같은 수비 스페셜리스트들과 비교해도 빅벤의 공격력이 유달리 낮은 것이었다.

다만 위에 언급된 로드맨에 대해 좀 더 추가하면, 시카고 불스 시절의 로드맨은 세 시즌 통틀어 평균 5.2점, 야투율 45.2%에 불과해 월러스와 비슷한 공격력이었다.[18] 물론 제기량을 유지했던 디트~샌안 시절에는 토탈 평균 8득점 가량을 0.56의 ts%로 유지했던 로드맨이 월러스보다야 훨씬 나은 효율이긴 했지만, 애초에 둘 다 득점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미미한 선수들이라 이걸 가지고 로드맨이 월러스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19]

하여간 불스 시절 로드맨은 피스톤즈 시절 월러스와 공격력이 도찐개찐이었지만, 팀 차원에서 보면 월러스의 공격력 부재가 더 부각되었다. 우선 2차 3연패 당시 불스는 공격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로드맨을 데리고도 오펜스 레이팅이 3년간 1위/1위/9위[20]를 기록한 팀이었지만, 피스톤즈는 50승을 넘긴 02시즌부터 12위/15위/18위/17위, 정규시즌에 큰 힘을 들인 05-06시즌에만 4위를 기록한 적이 있을 뿐이었다. 전원공격/전원수비에다 5명만 뛰는 농구 특성상 코트 위의 한명의 공격력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는 건 큰 리스크가 따르는데[21], 로드맨 하나가 수비를 덜받아 생기는 답답함을 마이클 조던 중심으로 어떻게든 풀어나갈 수 있었던 불스와 달리, 피스톤즈에는 그러한 크랙 타입의 특급 스코어러가 마땅히 없어 월러스의 득점력 부재가 좀 더 두드러졌다.[22]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 NBA 챔피언 (2004)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세컨드 팀 3회 (2003-2004, 2006)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2회 (2002, 2005)
파일:NBA-Allstar2021.png NBA 올스타 4회 (2003-2006)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수비수상 4회 (2002-2003, 2005-2006)[23]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5회 (2002-2006)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2007)
파일:NBA 로고.svg NBA 리바운드왕 2회 (2002-2003)
파일:NBA 로고.svg NBA 블록왕 (2002)
파일:HOF-Logo.png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1)

5. 기타

생계가 어렵던 월러스를 많이 도와주고 멘토가 되준 사람이 시카고 불스 뉴욕 닉스에서 활약했던 찰스 오클리이다. 그가 나온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교도 오클리가 나온 대학교 였고, 오클리와 1:1 대결을 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세차장에서 일하게 해주는 등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나온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교에 장학금 입학을 추천한 것도 오클리였다. 아마 찰스 오클리의 이러한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수비왕 'Big Ben'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2016년 1월 16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월러스의 등번호 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주었다. # 그날 선수들도 NBA 1위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완파하면서 분위기를 살렸다.

[1] 공식 신장은 206cm (6' 9")로 표기되어 있으나 NBA의 대표적인 신장 뻥튀기로 알려져 있다. 비약이 지나쳐 사진상으로 비교해보면 실제 맨발 신장은 198cm ~ 201cm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2] NBA에서는 1라운드 상위픽이라 하더라도 결코 생존을 장담할 수 없고 2라운드 출신들의 상당수는 전력취급조차 못받다가 해외 리그를 떠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드래프티인 월러스의 경우 아예 픽을 소모할 가치조차 없는 자원이었다는 소리. 그럼에도 무려 5번에 달하는 올-NBA 팀 선정, 디켐베 무톰보와 함께 역대 최다인 4번의 DPoY, 거기에 리바운드왕과 블록왕은 물론 주축으로서 우승까지 해내는 등 정말 많은 것을 이루며 이상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때문에 역대 최고의 언드래프티를 논할때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1순위로 언급되는 선수이다. [3] 월러스는 대학 시절 내내 빅맨으로 뛰었고 파워포워드 기준으로도 슈팅력이 평균 이하다. 애초에 철저하게 4~5번의 롤을 수행해왔던 단신 빅맨을 스윙맨으로 쓰려고 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그의 가치와 재능이 형편없는 평가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4] 아예 불가능하지만 않다. 비슷한 신장이었던 선수는 데니스 로드맨, 래리 존슨 등이 있지만 매우 극소수이고, 존슨은 대학시절 슈퍼스타였다. 대학시절 명성이 낮은 월러스나 로드맨은 정말 특이한 케이스. 찰스 바클리는 이들보다도 키는 더 작지만 덩치 자체는 굉장히 크고 이를 기반으로 압도적인 파워와 골밑존재감이 있었기 때문에 좀 케이스가 다르다. 실제로 정통빅맨 스타일의 공격을 커리어 말기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이즈가 되는 바클리 뿐이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운동능력과 활동량으로 사이즈를 극복한 케이스. [5] 월러스의 영입은 단순히 준수한 스코어러 한 명 영입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월러스는 팀 던컨 케빈 가넷보다 커리어나 전체적인 실력에서는 현저히 밀렸지만 1대1 매치업에서 그들과 대등하게 매치업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넷이 '가장 막기 힘든 선수'라고 할 정도였다. 피스톤즈의 가장 큰 단점은 그들이 점프슈팅 팀이었다는 것이었다. 벤 월러스의 공격력은 없어도 좋은 수준이었고, 그와 골밑 파트너였던 엘든 켐벨은 노장이라 별 기대를 하기 어려웠고 메멧 오쿠어는 득점력은 있었으나 포스트업 옵션이 없다시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쉬드는 (비록 외곽슛이 많다고 까이긴 했어도) 강력한 포스트업 득점원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피스톤즈는 인사이드-아웃사이드의 균형잡힌 공격력을 갖추게 된다. [6] 그러나 월러스가 오닐을 경기 내내 1대1로 막았다는 건 잘못 전해진 설이다. 실제로 2003-04 시즌 중에 트레이드로 얻어온 7피트 1인치 279파운드에 달하는 노장 센터 엘든 켐벨이 큰 역할을 했다. 켐벨은 비록 노장이었지만 그의 엄청난 덩치와 힘 덕분에 오닐을 육체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선수였고, 실제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던 2004-05 시즌에도 중요한 플레이오프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출장해 오닐을 효과적으로 막으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아무리 월라스가 덩치에 비해 힘이 세고 수비력이 지존이라도 저 정도 덩치 차이가 나면 답이 없다. 사실 이때 디트로이트가 쓴 전략은 오닐에게 어느 정도 줄 건 주되 최대한 괴롭히고 다른 동료들을 막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실제로 26.6점을 무려 63.1% 확률로 넣었으나 득점의 대부분은 초반에 나왔고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활약이 떨어졌다.(특히 동료인 코비는 22점을 넣긴 했지만 3할대의 야투율과 1할대의 3점 슛 성공률로 삽을 제대로 펐다.) 물론 켐벨과 같이 막았다곤 하나 파이널만 오면 날아다니던 오닐을 저만큼 막은 것만 해도 엄청난 게 맞다. [7] 본인 말로는 신발을 벗고 6'7"라고 하며, 실제로 맨발키가 198cm인 리차드 해밀턴보다 딱 1인치가량 크다. [8] 두 포제션에서 나올수 잇는 점수를 혼자 막아낸다는 뜻으로 볼수도 있다. [9] 특히 야오밍은 2년 차이던 2003-04 시즌에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최초로 20득점 2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10] 이걸 극악으로 못하는게 샤킬 오닐로, 워낙에 큰 덩치와 비교적 느린 발 때문에 사이드 스텝이 느린데다가 팀수비 센스도 부족해 (물론 센터들과의 1대1 수비는 특급이었다) 스크린에 걸리고 나면 골밑으로 뒷걸음 치기 일쑤였다. 결국 1998년 플레이오프에서 2대2 공격에서 극강인 유타 재즈를 만나 영혼까지 털리고 만다. [11] 비슷하게 PG까지 무난히 막아내는 수비범위가 넓은 스타일의 케빈 가넷과 비교하면 키가 큰 가넷이 1대1 수비는 우위, 기동력이 뛰어난 벤이 팀수비는 우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두 선수 다 두 분야에서 일급 이상이며, 전체적인 수비력을 놓고보면 둘다 리그 역대급으로 꼽힌다. [12] 원래 농구는 수비력을 떠나서 자기보다 월등히 크고 기술을 갖춘 선수들을 막는게 힘들다. 기본적으로 큰 선수, 그리고 공격수에 극단적으로 유리한 스포츠이기 때문. 실제로 수비왕 3연패를 이룬 드와이트 하워드도 큰 센터들을 막는건 어려워했고 특히 야오밍에게 많이 털렸다. [13] 물론 야오밍에게 털리지 않은 센터는 그나마 샤킬 오닐 정도밖에 없다. 그마저도 보통의 센터들은 골밑 공격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오닐을 상대로 10점 후반 혹은 20점 이상 폭격했다. 그만큼 전성기의 야오밍은 리그 최고의 센터조차 고전할 정도로 괴물 그 자체였다. [14] 둘 다 자신보다 월등히 크고 힘과 기술까지 겸비한 선수에게는 어느정도 줄 건 줄 수 밖에 없지만, 1대1을 거는 빅맨 입장에선 아무래도 빅벤이 더 까다로운 스펙이다. 민첩성을 위해 커리어 초반에 크게 감량하여 빅맨치고 체급이 작은 그린과 달리 빅벤은 그 키로 체중이 250파운드에 달하는 근육덩어리였고, 그럼에도 운동능력은 더 뛰어나 블로킹 타점은 훨씬 높았기 때문. [15] 젊은 시절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워낙 험하게 소년가장 역할을 하며 구른 케빈 가넷은 몸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월러스보다 늦은 만 36세까지 올디펜스 팀에 올랐다. 게다가 가넷이 일찍 데뷔해 마일리지가 훨씬 많이 쌓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16] 그래도 저들은 커리어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5할은 넘기는데, 벤은 5할을 넘긴 단일시즌조차 없고 아예 3할대로 내려앉은 시즌도 많았다. [17] 불스 시절의 경우 마이클 조던에게 수비가 쏠려 로드맨이 완전히 비워지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런 완벽한 오픈 찬스에서는 미들을 간간히 넣어주기도 했다. [18] 심지어 97-98시즌엔 4.7점 43.1%로 위에 언급된 디트 시절 월러스의 커리어 로우인 42.1%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페이스가 빠른 공격을 하고 리그 전체적으로 야투율이 높은 편이던 86~90년까지 그는 57.1%를 기록했지만, 90-91시즌부터 은퇴하는 99-00시즌까지 야투율 48.7%에 6.4점을 기록했다. [19] 둘 다 사이즈 메리트가 없기 때문. 무톰보처럼 키라도 크다면 슛이나 이렇다 할 개인기가 없어도 이런저런 쉬운 득점 찬스가 꽤 나오는 편이지만, 이들은 근본적으로 스몰포워드의 규격이니까. [20] 이 시즌(97-98)에는 2옵션 스카티 피펜의 결장이 많았다. [21] 물론 이들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만큼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22] 불스에는 원래도 더블팀을 커리어 내내 달고 살았던 조던이 있었고, 극단적으로 말해 로드맨 자리에 (적어도 로드맨보단 득점력이 훨씬 좋은) 호레이스 그랜트가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조던을 막는 팀의 수비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조던을 막는 데 수비 역량을 쏟아붇는 건 불스의 로스터가 어떻게 달라지든 동일했으니까. 물론 피스톤즈 역시 천시 빌럽스, 리차드 해밀턴, 라쉬드 월러스 등 수준급 득점원들이 있었고 테이션 프린스 역시 수비형 선수치곤 득점력이 준수했지만, 이렇게 확고부동한 1옵션 없이 조화롭게 볼륨을 나눠가지는 구성이라면 나머지 하나도 기본적인 득점력은 갖춰줘야 볼이 잘 돌고 강해진다. [23] 디켐베 무톰보, 루디 고베어와 함께 올해의 수비수상 최다 수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