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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8:47: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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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등번호 7번을 달고 활약했던 선수들에 관해 소개하는 문서.

본래 축구의 에이스라고 한다면 10번을 달고 뛰는 선수를 주로 떠올리는 편이었으나 이후 7번 역시 에이스의 번호로 인식되는 경향이 커졌는데, 이러한 상징성의 근원이 레알 마드리드 CF[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둘 중에서도 특히나 맨유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팀들은 7번의 활약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정도로 그 상징성이 깊다.

이러한 인식에 걸맞게 맨유 7번의 계보는 화려하기 그지 없다. 특히 조지 베스트를 기점으로 브라이언 롭슨을 거쳐 에릭 칸토나 - 데이비드 베컴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이어지는 계보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등번호 대물림을 논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준. 비록 호날두가 레알로 떠난 이후 무게감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마이클 오언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7번을 달고 부진하다고 말할 활약을 보이진 않았으므로 여전히 맨유의 7번은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알렉스 퍼거슨의 은퇴 이후 데이비드 모예스 - 루이 반할 - 주제 무리뉴로 이어지며 맨유는 도저히 반등하지 못했고, 이 시기 야심차게 영입된 7번 선수들이 하나같이 심각한 수준으로 실패를 겪으며 본격적으로 7번의 저주라는 말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그러나 올레 군나르 솔샤르 체제 이후 조금씩 맨유는 반등의 기미를 보였고, 이 시기 7번을 달고 뛰었던 에딘손 카바니가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저주도 타파하고 7번의 성쇠가 구단의 흥망을 반영한다는 말도 그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허나 야심차게 복귀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첫 시즌의 활약 이후로는 구단과 지속적으로 잡음을 일으키다가 끝내 2022년 11월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해 맨유를 떠나며 호날두마저 7번의 저주를 이어버리며 저주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는 2023-24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메이슨 마운트가 7번을 달고 있지만, 이쪽도 갑자기 첼시 시절에 비해 부상이 훨씬 많아지며 맨유 7번의 저주에 아주 극단적으로 걸린 모습이다.

본 항목에서는 맨유 7번 출신들의 선수 커리어 중 맨유 시절에 한해서만 논한다. 선수 커리어와 지도자 커리어는 별개이므로, 은퇴 후의 지도자 커리어에 한해서는 타 클럽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한다. 맨유 출신 선수들이 지도자로서 리그에 기여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 항목은 큰 역사적 흐름으로 맨유 7번을 논하고 있는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커리어가 진행되고 있는 현역 선수에 대해서는 짧은 설명으로 요약해서 언급한다.

2. 역대 7번

2.1. 알프 스코필드

"그는 왼쪽 수비수를 매우 비참하게 만들었다."

2.2. 빌리 메레디스


파일:external/www.parlonsfoot.com/billy-meredith.jpg

2.3. 조 스펜스


파일:external/www.footyposters.co.uk/mufc076.jpg

2.4. 지미 델라니


파일:external/flashbak.com/PA-684906.jpg

2.5. 조니 베리

2.6. 조니 자일스

2.7. 조지 베스트







▲ 조지 베스트 다큐멘터리

2.8. 윌리 모건

(당시 윌리 모건에겐 공격본능으로 가득 찬 축구의 파라다이스였다) 정말 엄청난 팀 아닌가? 로, 베스트에 찰튼이라니! 그런 선수들과 같이 뛰는 건 정말 특권이지. 내 이름이 그런 선수들과 함께 출전 명단에 올라가있다고 생각해봐. 누가 싫어하겠어? 난 아직도 그때 그 팀이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이었다고 생각하네. 솔직히, 컨디션이 절정이었을 때는 못 이길 팀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 (65세가 된 윌리 모건이 맨유 시절을 회고하길) 잘 들어봐. 얼마 전 내 손자녀석 하나가 다락방에서 놀다가 옛날 내 주급명세서를 찾았더라고. 아마 당시 영국에서 가장 주급을 많이 받는 선수이었을 거야. 그때 최고 세율이 파운드당 97.5펜스였어. 일정 금액이 넘어가면 1파운드를 벌어봤자 내게 떨어지는 금액은 2.5펜스밖에 안 되는 거야. 믿을 수 있겠나?
● 삶이 정말 내게는 너그러웠어.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는 말도 못하지. 축구로 돈을 번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그게 바로 '운이 좋다'라는 거야. 가죽 다루는 능력을 봐선 탄광에 들어갔어도 충분히 제 몫을 했을 테지만. 우리 아버지처럼 말이야."
● 그 시간들 다 어디로 갔는지 도대체 모르겠어. 맨유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누비던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말이야. 정말 어제 같아. 아직도 느낄 수 있어. 냄새도, 맛도 생생해. 그거 알아? 지금도 현역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야. 정말이라니깐. 겉이야 주름투성이 노인이지만, 내 속은 아직도 젊은 날의 윌리 모건 그대로거든. 자네 생각에 퍼거슨 감독이 내 생일 선물로 한 경기 뛰어보라고 해줄 것 같나?
● (도허티 감독의 세대교체 정책으로 윌리모건이 맨유를 떠난 후) 내가 39세였을 때, 맨시티와 리즈의 영입 제의를 받았어. 둘 다 거절했지. 나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갈 길을 가고 싶었거든. 재미있는 건 그러고 7년간 지나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그러는 거야 '왜 여기 있는 거에요? 부상 중인가요? 그래서 안 뛰는 거에요?'라고. 팬들도 내가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못한 거야.

2.9. 스티브 코펠





▲ 스티브 코펠이 감독으로 있었던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제작한 영상. 3:40경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으로 맨유를 만난 스티븐 코펠을 확인 할 수 있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FA컵에서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난타전 끝에 리버풀을 4-3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이때 결승골을 집어넣은 사람이 앨런 파듀. 그리고 FA결승전에서 맨유를 만나 준우승을 했다. 영상에서는 당시 크리스탈 팰리스 분위기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클럽인 맨유를 만난 것은 꿈을 실현한 것이라고 표현되었다.

2.10. 브라이언 롭슨





2.11. 에릭 칸토나





▲ 올드 트래포드의 왕, 칸토나 맨유 시절

2.12. 데이비드 베컴







▲ 당시 베컴의 인기를 체감해보자.

▲ 칸토나에 이어 광고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맨유 7번, 베컴.
파일:베컴vs나카다.jpg
▲ 클럽 인기를 전세계적으로 캐리한 베컴의 존재.
베컴이 LA에서 AC밀란으로 임대 이적을 확정짓고 밀란 선수들과 인사하기 위해 밀란 훈련장을 찾은 베컴을 마르코 보리엘로가 보고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13.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13.1. 1기

내가 맨유에 왔을 때, 난 28번의 등번호를 원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님은 No, 넌 7번을 달게 될거야라고 말했다. 난 정말 놀랐다. 왜냐하면 베컴이 그 셔츠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도전을 했고, 그 후로 7번은 내게 있어 행운의 숫자가 됐다. 난 그 셔츠와 함께 축구에 있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 국내의 해외축구 팬들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7번이다.[6]

* 데이비드 베컴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고이자 현재까지 최후의 슈퍼스타.

* 2002-2003년 스포르팅에서 데뷔한 호날두는 03년 퍼거슨의 러브콜을 받고[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003년 여름 호날두가 베컴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았을 때, 그는 잉글랜드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무명에 가까웠다. 팬들은 맨유가 당시 알려지지도 않은 유망주에게 1천2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했다는 사실에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 퍼거슨의 눈에 띄어서 이적의 계기가 된 바로 그 경기
▲ 호날두의 맨유 1기 통산 리그 골 모음 (프리미어리그 한정)


▲ 호날두의 맨유 1기 통산 모든 골 모음

2.13.2. 2기

2.14. 마이클 오언



2.15. 안토니오 발렌시아

2.16. 앙헬 디마리아

2.17. 멤피스 데파이

2.18. 알렉시스 산체스

2.19. 에딘손 카바니

2.20. 메이슨 마운트 (현재)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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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대표적으로 레몽 코파, 아만시오 아마로,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라울 곤살레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에덴 아자르와 같은 선수들이 7번을 달았고 현재는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이어받았다. 이쪽 사례는 아자르를 제외하면 모두 구단의 역대급 레전드들로 칭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아자르는 다른 의미로 역대급 업적을 남겼다. [2] 뉴턴 히스 [3] 비틀즈의 다섯번째 멤버라는 뜻 [4] 1992년부터 맨유에 합류한 칸토나에게 7번을 양보하여 롭슨 본인은 1994년까지 12번을 달고 뛰다가 팀을 떠났다. [5] 1군 데뷔는 1993년에 했으나 7번은 칸토나 은퇴 이후인 1997년에 받았다. 그 당시에는 10번이었는데 칸토나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베컴의 10번 자리가 빼앗기면서 베컴은 퍼거슨 감독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후 7번을 받으면서 10번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아했다고 한다. [6] 맨유 팬들은 레알팬, 유베팬 등을 포함한 다른 축구 팬들과는 호날두를 바라보는 감정이 꽤 다르다. 맨유 팬들은 호날두가 10대 시절 팀의 막내일 때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단순히 그의 기량을 찬양하는 것 외에 성공한 자식을 본 듯한 뿌듯함도 가지고 있다. 맨유는 호날두가 입단했을 때는 '세계 축구 클럽 가치 최상위였던 메가 클럽'이었다. 그러나 너무 어렸던 당시 호날두에게 기회를 주느라 3시즌이나 리그 우승을 놓친 여파로 퍼거슨의 경질설까지 나온 적도 있다. 심지어 그 당시 퍼거슨은 호날두와 불화설이 돌던 반니스텔루이를 레알 마드리드로 내쫓아버리거나 또는 루니와 불화설이 있을 때 그를 보호하였다. 그러니 맨유가 희생하며 키운 느낌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거기다 박지성 맨유 시절 7번이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았었다. [7] 당시 맨유와 스포르팅의 친선경기에서 호날두가 보여준 활약이 퍼거슨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했다. [8] 실제로 호날두는 역대 퍼거슨이 지도한 선수들 중 일관되게 가장 높은 랭크에 오른다. 애초에 호날두와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평가를 받는 선수들은 퍼거슨이 감독 커리어 대부분을 보냈던 EPL에서 뛴 적이 한 번도 없다. [9] 실제 축구 선수는 100미터 기록보다 30미터 기록이 더 중요하다. [10] 19년까지 맨유에서 뛰었지만 7번은 12-13 시즌 단 1년만 달았다. [11] 원래는 해리포터의 도비를 닮았다며 붙은 별명이었다. 게다가 이름인 앙헬이 영어로 천사를 뜻하는 Angel과 철자가 같아서 더욱 안성맞춤인 별명이었다. 하지만 15-16 시즌 트레이닝에 참여하지 않고 잠적하여 감독인 반할이 본인도 디마리아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인터뷰를 하게 만들었다. 이후 PSG로 이적해버렸고, 이에 별명이 재평가되며 자유의 몸 도비라는 추가 수식어가 붙었다. [12] 잠적 후 도망한 것 때문에 이름을 부르기조차 싫어하는 팬들이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13] 월드컵에서 3백에 반페르시-로벤(발빠른 왼발잡이)로 재미를 보며 3위를 한 반할이 반페르시-디마리아 투톱이라는 말도안되는 전술을 꺼냈다. [14] 보통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르게 주제 무리뉴 감독은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이에 우드워드가 상업적 계산과 맨시티를 영입전에서 이겨보겠다는 쓸데없는 판단을 하면서 공격적으로 영입을 시도했다. [15] 77ㅓ억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7억으로 알려져 있으나, 기본급은 5억이고 각종 보너스를 모두 합해야 7억이다. [16] 부진을 겪거나 활약상이 다소 아쉬웠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적어도 허니문 기간에는 살아났다. 대표적으로 래시포드, 포그바, 루카쿠 등이 있다. [17] 카바니는 파리와의 계약이 종료된 이후 이적시장 내내 FA 상태였다. 만약 영입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영입할 수 있었는데, 이적시장이 끝나갈 때쯤에야 급하게 영입하려는 것이 패닉바이로 보이기 충분했다. [18] 오언과 발렌시아를 제외하곤 호날두 이후 7번들이 죄다 활약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7번의 특별한 의미는 이제 없다고 봐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오언을 제외하곤 다들 충분히 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선수들이었다. 역대 최악의 7번인 데파이조차 당시 받았던 기대가 카바니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