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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 (1970) Love 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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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283a> 장르 | 드라마, 로맨스 |
감독 | 아서 힐러 |
원작 | 에릭 시걸 |
각본 | 에릭 시걸 |
제작 |
데이비드 골든 하워드 G. 민스키 |
출연 |
라이언 오닐 알리 맥그로우 존 말리 레이 밀랜드 |
촬영 | 딕 크래티나 |
편집 | 로버트 C. 존스 |
음악 | 프랜시스 라이 |
개봉일 |
1970년
12월 16일 1971년 12월 15일 |
상영 시간 | 100분(1시간 40분)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clearfix]
1. 개요
1970년에 출판된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영화의 제목이다. 소설은 에릭 시걸의 작품으로 그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소설보다 영화가 더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대히트를 쳤다. 다만 원작 소설 역시 위 포스터에도 나와있듯이 1970년 2월 14일에 출간 직후 무려 41주간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고, 1위도 여러 번 달성했다. 1970년 당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자, 33개국에 번역 출간될 정도의 베스트셀러였다. 출처이 영화의 상징이 된 눈에서 알콩달콩한 러브씬이다.[2] 그런데 이게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라서 그냥 대충 애드립으로 후다닥 찍었다고 한다. 촬영하던 곳도 오래전부터 알아본 것도 아닌, 지나가다가 여기가 좋겠다라고 후다다다닥 찍었는데 이 장면이 명장면이 되어 감독이나 배우들도 40년 지나도록 거참 신기한 일이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영화는 1970년 12월 16일 개봉했으며, 한국에서는 1971년 12월 15일에 개봉하여 서울 개봉관 관객 24만을 기록하며, 당시 기준으로도 대박을 쳤다. 재개봉관에서는 더 대박을 쳤으며, MBC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채시라가 혼자 관람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아서 힐러, 남주인공 올리버 역은 라이언 오닐, 여주인공 제니 역은 알리 맥그로우. 배급은 파라마운트 픽처스. 대부 시리즈와 더불어 1970년대 파라마운트의 대표작이다.
그 뒤로도 비슷한 제목의 아류작들이 줄줄이 나왔지만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그냥 묻혔다.
그 유명한 연애관련 명대사 중의 명대사인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3]가 등장하는 영화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속 100대 명대사 중 13위다.
이 명대사의 이후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영화 개봉 51년 뒤 이 영화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두 주연배우는 함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게 되는데, 입성 당시 기자들은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대사가 어떤 의미인가요?를 물어보니깐 그 51년이란 시간 동안 두 주연배우 라이언 오닐, 알리 맥그로우는 이 대사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지라, 모르겠다고 답했다. 먼저 라이언 오닐은 지독한 바람둥이로 세 번째 아내[4] 파라 포셋[5]은 라이언 오닐의 이런 바람기를 알면서도 끈질긴 구애에 넘어갔지만 전남편 6백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리 메이저스도 만만찮은 바람둥이였던지라 이번엔 결혼은 안 하고 동거만 했는데 둘 사이엔 아들 Redmond O'Neal(1985년생)도 한 명 있다. 그 후 2009년 암으로 사망한 파라 포셋의 장례식에서 슬퍼하던 라이언 오닐을 위로해 준답시고 첫 번째 아내와의 자녀 테이텀 오닐이 다가와 위로를 건넸는데,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금 한창 사랑하는 동거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와중에 친딸에게 작업을 걸었다. 이걸 본인이 직접 인정하며 자신은 참 답 없는 쓰레기라 인증하기도.(...) 알리 맥그로우는 두 번째 남편 로버트 에반스가 지독한 바람둥이라 맞바람이긴 했지만 스티브 맥퀸과 겟어웨이(1972) 찍다가 눈맞아 로버트 에반스에게 이혼을 청구했다.[6]
다만 감독 아서 힐러는 후술 돼있듯, 정말 이 영화와 걸맞은 사랑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었다.
제작 비화
파라마운트+에서 드라마화 된다. #
2. 예고편
공식 예고편 |
50주년 예고편 |
3. 줄거리
줄거리는 당시엔 신선했으나 현재로서는 진부해진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명문가의 상속자인 하버드 대학교 학부생 올리버가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 출신인 래드클리프 여대(현재 하버드 학부의 일부)[7] 학생 제니와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이 결혼을 반대한 올리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절을 선언하고 원조를 끊어 버린다.올리버는 자비로 어렵게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고 제니는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하여 둘은 학교 근처에 위치한 집의 꼭대기 층을 얻어 힘들게 생활한다. 마침내 올리버가 로스쿨을 전교 3등으로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로펌에 취직함으로써 겨우 이제 인생이 피는구나 싶었는데 올리버는 제니가 백혈병 말기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주인공은 그제사 좀 더 잘해주지 못한것에 후회하지만, 결국 그녀는 죽고...
사실 그 당시에 국내 영화계뿐만 아니라 영미 영화계에서도 이런 신파 영화는 드물지 않았고. 딱히 새롭고 극적인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문자 그대로 잘만들어져서 대박을 쳤다. 특히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정말로 적절하면서도 퀄리티 높은 OST[8], 그리고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정말로 아름답게 두 사람의 사랑을 묘사한 영상미의 삼박자가 어울러져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너무나도 수없이 많이 회자되어서 흰 눈밭만 봐도 누구든 알아채는 두 사람이 눈밭에서 알콩달콩하고 천진난만하게 뒹구는 러브신만 봐도 진짜로 연애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렇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연인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게다가 자기가 출세하겠다고 자기 배우자만 실컷 부려먹다가 출세하면 차버리는 남자주인공들이나, 이용당한 뒤에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복수귀가 되곤 하는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근래의 국내 드라마와 달리,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은 선량하고 상식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남자주인공은 하버드 대학교 학부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되기위해 고생하는데, 알바와 공부를 같이 병행하면서 애쓴다.
애초에 여주인공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죽을 고생을 하는거니... 여주인공도 남편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다가 불치병에 걸려 죽는데도 단 한 마디도 원망하지 않는다. 게다가 극 중간에 사이가 나빠진 시아버지와 남편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애쓰는 등... 진짜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이 안타까워 눈물이 앞을 가리고 펑펑 쏟아질만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정에 힘입어 영화는 전미 흥행 1억 639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흥행성적을 거뒀고,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충 전세계적으로도 무려 5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에 성공했다. 지금이야 워낙 블록버스터들이 판을 치니까 1억불이 크게 인상깊지 않을수도 있지만 당시와 현재의 통화가치를 비교하면 3억 달러 이상은 되는 대박으로 로맨스 영화로서도 가공할 정도로 거대한 대박이다. 게다가 제작비가 220만 달러였으니 미국 흥행만으로도 무려 50배가 넘어가는 대흥행이었다.
사실 파라마운트는 당시 재정난으로 어려움에 처했는데 작가인 에릭 시걸이 각본으로 이걸 영화로 만들자고 할 때 코웃음쳤다. 다만 파라마운트 간부들은 소설로 내보라고 하여 책으로 먼저 냈는데 알다시피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후다다닥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 대박으로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기사회생했다.
한국에서도 1971년 12월 15일에 개봉하여 서울관객 24만을 기록하며 당시 기준으로 대박을 쳤다.
지금 봐도 그리 심심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의 외모가
3.1. 국내 성우진
국내에서도 여러번 방영했는데 1981년 1월 4일 방영, 1981년 4월 12일, 1983년 10월 30일, 1985년 9월 1일 재방영 할 정도였다.성우진은 제니는 주희, 올리버는 박상일. 그 밖에 이광자 외
그리고 1997년 11월 10일에 KBS 2TV에서 재방영하면서 새롭게 더빙했는데 16년전 주인공 올리버를 맡은 박상일이 이번에는 올리버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올리버의 아버지를 연기한 박상일 외에 구자형이 주인공 올리버, 함수정이 제니를 연기했으며 올리버의 어머니는 김정희,제니의 아버지는 김정경,후반부에 지니를 치료 담당하는 샤펠리 의사는 김계원, 이외에 남기원, 전인배, 양정애, 김영진 성우는 올리버의 주변 인물 및 기타 배역을 맡았다.
1997년에 방영할 당시에 KBS가 방송 70년[9], KBS 50년[10]를 기념하여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싶은 영화 50를 선정하였으며 이 중에서 러브 스토리는 12위를 기록하였다. 출처 이후 2011년 7월 23일 명화극장에서 재더빙판이 다시 재방영했다.
4. 여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배우 토미 리 존스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룸메이트로 나오는데 그의 20대 시절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러브 스토리'의 작가 에릭 시걸은 실제로 영화배우 토미 리 존스와 미국 前 부통령 앨 고어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 올리버를 구상했다고 한다.[11]북미에선 엄청난 인기를 몰았다. 그 대표적인 증거로 1970년대 태생의 수많은 북미권의 여성들의 이름이 제니퍼가 많다는 사실인데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12]
국내에서도 당연히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지금도 당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한 많은 분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영화일듯 하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부터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잘 살다가 백혈병이나 불치병에 걸리는 클리셰가 브라운관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내려오면서 지겹도록 사골처럼 우려먹히는 중이다.(...)
더더욱 슬픈 사실은 이와 비슷한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이 영화 이상의 혹은 못지않은 퀄리티를 낸 작품이 별로 많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진부한 전개를 가지고 좋은 작품을 내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역으로 말하자면 진부한 내용도 잘 만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 급 작품이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라이언 오닐은 신인 배우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소위 말하는 청춘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뒤에는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찍지도 못했다. 그나마 딸 테이텀 오닐과 같이 나온 페이퍼 문, 큐브릭의 배리 린든에 주인공으로 나온 것 정도가 인정해 줄만한 커리어다.
1978년에 만들어진 속편 영화 올리버 스토리(Oliver's story)는 역시 에릭 시걸이 쓴 소설이 원작이지만 소설은 더 욕먹어 영화가 낫다는 평도 있다. 제니퍼가 죽고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고 폐인같이 살던 올리버에게 제니퍼의 부모는 "거꾸로 자네가 죽고 내 딸이 살아있다면 이제 그만 그를 잊고 네 삶을 살아라!"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이제 제발 제니퍼를 잊고 재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라고 애원한다.
그래서 조금씩 그녀를 잊던 올리버는 어느 여성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 작품이 그저 그런 평을 받았고 흥행은 본전치기로 제작비는 600만 달러인데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달러를 겨우 벌었다. 그 뒤로는 머나먼 다리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이혼 스캔들 등을 겪으며 하향세. 지금은 간간히 TV드라마 조연으로나 얼굴을 비치게 되었다.
여주인공이었던 알리 맥그로우는 느와르 영화의 거장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겟 어웨이에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쌓다가, 거기에서 만난 명배우 스티브 매퀸과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다. 그 뒤로도 배우와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80년대 대작 미드 전쟁의 폭풍이 후기 대표작이다.[13] 참고로 여주인 알리 맥그로우는 1939년 생으로, 1970년 작인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이미 30대였다. 그래도 백인치고 상당한 동안이다.
그리고 2016년, 46년만에 두 배우가 하버드 대학으로 찾아가서 직접 영화장면을 다시 재현했다. 이제는 각각 77세와 75세 나이가 되었다.
감독 아서 힐러(1923.11.22~ 2016.8.17)도 이 작품을 넘는 대박을 거두진 못했다. 그래도 코미디물 실버스트릭이라든지 '포츈'이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으며 뮤지컬에도 진출해 피터 오툴과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맨 오브 라만차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진 허숄트 박애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감독인 아서 힐러는 아내인 그웬 피쳇(1924~2016)과의 순애보로도 유명하다. 바로 어릴적부터 소꿉친구였던 것!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던 이들은 힐러가 8살때 그웬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그웬은 단번에 승낙하고 부모에게 가서 우리가 크면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알렸다고.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각자 25살, 24살인 1948년까지 기다렸다 결혼했고, 68년을 해로했다.
슬하에는 아들 헨리크와 딸 에리카를 뒀는데 2016년 6월 그웬이 먼저 세상을 뜨자 아서 힐러도 폐인처럼 되었다가 결국 석달도 안가 2016년 8월 17일에 만 92세로 아내의 곁을 뒤따라갔다. 68년동안 어떠한 스캔도 없이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것이다.
감독과는 달리 정작 많은 여성들을 울렸던 남자 주연인 라이언 오닐은 소문난 바람둥이이며, 심지어 68세였던 2009년에는 친딸도 못알아보고 ‘작업’을 걸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연인 파라 포셋[14]의 장례식에서 금발의 미녀가 다가와 위로의 포옹을 해주길래 그녀의 집에 함께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금발의 미녀는 “아빠, 난 테이텀이에요”라고 소리치며 경악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오닐이 직접 밝혔다.(...) 테이텀은 당시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부녀가 서로 연락 없이 지낸지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며 아빠가 워낙 바람둥이라 놀랄 일도 아니었다고.(...) 라이언 오닐은 집안의 부끄러운 비밀들을 낱낱이 공개한 2004년에 발간된 딸의 자서전 때문에 크게 분노했고 그 후 서로가 연락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에 관계를 개선시키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하고, 지금은 그냥저냥 평범한 사이로 지내는 듯하다가 테이텀이 2020년 자살 시도를 하면서 충격을 줬다. 사실 테이텀과 라이언의 불화는 주연으로 동반 출연했던 1973년 영화 페이퍼 문에서부터 시작이었는데, 테이텀이 10살이란 나이에 최연소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따내자 라이언이 질투를 하였다. 이로 인해 테이텀은 라이언으로부터 큰 압박감을 느껴 마약과 정신병원을 드나드는 일탈을 벌였다. 이것뿐만 아니라 라이언은 아내도 외면하고 계속해서 파라 포셋과 바람을 폈으며, 그의 아들 그리핀(1964년생)이 1986년 친구인 지안 카를로를 태우고 조종하던 보트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아들이자 배우인 지안 카를로 코폴라는 23살로 요절했다. 그리핀은 아역시절부터 꾸준히 배우로 활동은 했지만 전혀 빛을 못 보고, 1992년에 은퇴했다. 이후 2011년 그리핀 오닐은 마약을 먹고 운전하여 교통사고를 내는 통에 16달 징역형을 사는 등,여전히 사생활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라이언은 저 아들 그리핀과도 사이가 안 좋아 총으로 죽일 뻔까지 했다고 한다. 때문에 라이언 오닐은 미국 현지에서는 막장 아버지로 까이는 편이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을 정도로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프란시스 레이(1932 ~ 2018)가 맡은 OST가 인상깊은데, 특히 눈밭 씬에서 쓰였던 Snow Frolic은 한동안 TV에서 뭔가 로맨틱한 씬이 나올때면 마구 틀어대던 음악 중 하나로, 마성의 BGM 급의 명곡이다.[15]
이 영화의 명장면은 음악의 버프가 큰데, 음소거로 들어보거나 일반 로맨틱 장면에 흔히 쓰이는 잔잔한 BGM을 넣어서 들어보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쌈마이한 트롯트를 넣으면 개그 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80년대에 개그맨 최양락과 아내인 팽현숙이 KBS2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 장면을 더빙하고 음악도 웃기게 다른 음악을 넣어 닭살커플 코미디같이 만든 적이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명곡인지라 지금까지도 CF건 방송이건 꾸준히 쓰이고 있기 때문에 러브스토리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사실 엄청난 스토리라거나, 엄청난 명배우나 명감독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대부분 러브스토리 하면 OST와 명장면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OST빨이 절대적이다. OST없는 러브스토리라면 한때 흥행했던 많은 로맨스물처럼 한때의 유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과거 화제가 되었던 "음악 하나로 사이코패스된 조인성"에서도 BGM빨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조인성이 흐뭇하게 미소 짓는 평범한 커피CF를, 음산한 스릴러 음악으로 바꿨더니 똑같은 조인성의 미소가 사이코패스처럼 보여 소름돋는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특히 러브스토리의 OST는 반세기가 흐른 2020년에도 여기저기서 종종 흘러나올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명곡인데, 하물며 반세기 전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으니, 어찌보면 다소 평범할 수도 있었던 장면이 '전설'로 남을 정도로 버프를 주었다. 촬영 비화를 봐도 알 수 있듯, 눈밭에서 장난치는 장면은 그다지 심혈을 기울이거나 스토리에 중요한 장면이 아니었고 오히려 원작에는 없던 장면이라 그냥 '애드립'으로 찍은 장면이었다. 여느 로맨스물처럼 남녀가 서로 장난치며 화기애애한 흔한 클리셰를 넣었을 뿐인데, 기억도 나지 않는 타 로맨스물의 BGM과는 달리, 이 장면에 쓰인 러브스토리의 BGM은 한번 들으면 안잊혀지고 가슴에 남을 정도로 강렬하기에, 그 BGM이 쓰였던 장면 역시 시대를 초월하여 같이 기억되게 되었다. 오히려 원작소설은 잊혀진 판국에 영화에서 원작에 나오지 않는 장면 정도만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역시 BGM빨이 크다. OST가 없었다면 러브스토리도 원작소설처럼 잊혀졌을 수도 있었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OST를 빼고 보면 영화는 그냥 그 시대의 감성에 맞춘 평범한 로맨스물이기 때문이다.
2021년에 들어서야 두 주연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게 되었다. #
제목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인 묘한 대척점의 영화 ' 러브 어페어'[16]와는 줄거리부터 정반대이다. 특히 1994년 버전은 왕년에 희대의 바람둥이로 악명 높았던 워렌 비티가 남주인공을 맡았는데, 이쪽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현실에서 여주인공 아네트 베닝에 대한 지극한 순애보, 순정남으로 바뀌었다(...).[17][18]
[1]
이 중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은
2차대전에서 탱크를 몰며 전장을 누볐던 전쟁광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돌아갔다(...)
[2]
21분에서 22분 사이에 이 장면이 나온다.
[3]
"사랑이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야."
[4]
다만 법적으로 부부는 아니다.
[5]
인기
미국 드라마
미녀 삼총사의 주인공.
[6]
여담으로 알리 맥그로우의 이혼 통보에 로버트 에반스의 반응은 "올 게 왔구먼.. 제기랄!"이었다고. 로버트 에반스는 평생 7번 결혼했고, 그에게 이혼이란 돈 나가는 과정일 뿐이었다고 한다.(...)
[7]
하버드 대학은 러브 스토리가 제작, 상영되던 시점까지도 남학생만이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일종의 자매 학교인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 하버드가 여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다.
[8]
음악을 맡은 프란시스 레이는
프랑스에서 각본을 보고 영화 관계자들과 전화 몇 번만 한 것으로 이 음악을 작곡했다.
[9]
1927년에 JODK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로 먼저 개국했다.
[10]
194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한국의
호출부호를 'HL'로 할당하였고, 이에 따라 방송국이 출범하여 호출부호 'HLKA'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50년이라고 불렸다.
[11]
실제로, 위의 인물들은 모두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12]
다만 제니퍼는 1960년대부터 슬슬 인기를 얻고 있던 이름이었다.
[13]
여기서는 독일에 살던 유대인 여인으로 나와 미국 군인집안의 아들로 나오는
잔 마이클 빈센트와 애절한 사랑을 하는 역을 맡았다. 그런데 잔 마이클 빈센트가 알콜중독에 빠지면서 시퀄인 '전쟁과 추억'에서는 다른 배우로 교체되었는데, 그 배우보다 늙어보인다는 문제로 알리 맥그로우도 하차당하고
제인 시모어가 그 배역을 맡게 되었다.
[14]
미국 드라마
미녀 삼총사로 유명한 70년대 금발 미녀 배우.
[15]
프란시스 레이의 대표작으로는 본작 외 데뷔작인
남과 여가 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는데, 영화 플라스틱 트리의 영화음악을 담당한 적이 있다.
# 그의 타계 소식은 국내 기사로도 보도된 바가 있다.
#
[16]
'러브 스토리'는 말 그대로 '사랑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러브 어페어'의 '어페어(affair)'는 불륜, 특히 유부남과 유부녀와의 혼외정사(情事)를 의미한다.
[17]
<러브 스토리>와 <러브 어페어>는 은근 공통점이 많다. 둘 다 현실에선 바람둥이로 유명한 남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이고, 여주인공들은 모두 촬영 당시 2번째 결혼의 유부녀들이었고, 공교롭게 그녀들의 남편들은 모두 해당 영화들의 제작자들(워렌 비티는 러브 어페어(1994)의 제작자이기도 하다.)이었다. 스토리상 여주인공들이 극중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과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들이 음악을 담당한 점, 이런 빼어난 OST로 인한 명장면이 등장한다는 점 등등의 공통점이 있다. 다만 흥행은 <러브 스토리>는 당해 세계 1위 흥행을 기록한 대박임에 반해, 러브 어페어(1994) 흥행은 망했다.(...) 대신 <러브 어페어> 39년 원작, 57년 첫 번째 리메이크작은 흥행에 크게 성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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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가 음악을 담당했다고 항상 OST가 좋은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 <
아라비아의 로렌스>, <
닥터 지바고>, <인도로 가는 길>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3회 수상한
모리스 자르는 <
사랑과 영혼>의 음악도 담당하게 되는데, OST를 호러 영화풍으로 만들어 놔서 미리 들어 보던 감독 제리 주커, 주연배우
데미 무어가 함께 경악했던 유명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