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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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杜慈(? ~ 356)
전진의 인물. 자, 출신지 모두 불명.
2. 생애
두자는 황제 부생의 재위기인 수광 연간(355년 ~ 357년)에 전진의 조정에서 상서랑을 지내고 있었다. 황제 부생은 매번 연회가 열릴 때면 지각하는 사람들을 모두 참수하였기에, 두자는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와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려온 나머지 피곤해져 졸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검은 당나귀를 타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그대가 여기에 남는다면 홀로 죽을 것이나, 장차 떠난다면 혼자만 살 것이다."
두자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놀라며 깨어났고, 이내 다시 말에 올라 급히 자리를 떠났다. 과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두자 혼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진 황제 부생에 의해 참수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