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8:00:28

다원그룹

다원그룹
Dawon Group
기업 CI (로고)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기업명 다원그룹
설립 1997년
모기업 다원그룹
대표 이금열
업종 건설, 골프
기업 분류 중견기업

1. 개요2. 이금열3. 역사
3.1. 적준개발용역 시절3.2. 새날 설립3.3. (주)청구 인수
4. 논란 및 사건사고

1. 개요

용역깡패 업체인 입산개발의 인사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인 '적준'의 후신이다. 적준 회장의 수행기사였던 이금열이 회장으로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용역깡패 관련으로 악명이 가장 높은 다원디앤씨의 모회사이다. 그리고 이름이 같은 다원시스와 일체 관련없다.

다양한 불법행위를 범한 끝에 2013년, 회장 이금열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며, 각종 불법 건물 철거를 자행하다가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를 일으켰다.

2. 이금열

1970년([age(1970-01-01)]세)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읍에서 출생한 이금열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 육군 701 특공대에서 복무했다.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에서 조직폭력배 쪽에 잠시 몸담은 뒤 20대 초반부터 적준용역 사장의 수행비서, 현장관리이사로 일하다가 1997년부터 대표이사가 됐고, 2000년대 들어 건설업, 시행사, 골프장 등지에 손을 대며 2007년에는 부실건설사 (주)청구를 인수해서 일약 재벌 반열에 들었다.[1]

1990년대 용역깡패로서 이름을 크게 날려 '철거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회사에서 갖가지 불법 행위들을 저지르다가 결국 1천억대 횡령, 배임 등으로 징역 7년을 받았는데 5년으로 감형됐다.

3. 역사

3.1. 적준개발용역 시절

도심재개발 초기이던 1970~80년대 초중반까지 정부나 지자체가 인부들을 파견해 철거했다가, 1980년대 들어 '합동재개발 사업'이란 상업적 철거 방식이 도입된 후 1986년 12월에 최초로 철거용역업체 입산개발이 설립됐다. 이 업체는 신한환경 등 3개사를 거느리며 서울 사당동, 돈암동, 동소문동 철거권을 따내 성업하자, 1990년대 초반까지 무창인력, 따이한용역, 범양용역 등 후발주자들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이 입산개발 출신 인력들 중 일부가 1990년 적준개발용역. 적준은 초기에 거산안전관리, 인덕씨티씨 등과 각축을 벌이다 1994년부터 재개발 현장을 독점해서 악독한 철거로 유명했다. 1997년, 이금열은 다원을 세워 독립해 철거업계의 대부가 되었다. #

1998년 '다원건설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낸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철거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1991년부터 7년간 폭력 47건, 주거침입 55건, 성폭행/ 성추행 16건, 재산손괴 5건, 위협/ 협박 10건, 어린이 인권유린 9건, 살인(!) 2건을 각각 저질렀다고 밝혔다. 특히 1995년 4월 서울 봉천4동 철거현장에서 당시 철거대책위원장이던 주부 전씨를 성폭행하는가 하면, 1997년 전농동 재개발 당시 당사 측의 방화작전으로 철거민 1명이 투신해 숨졌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65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65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1998년 12개 시민사회단체가 펴낸 <다원건설(옛 적준용역) 철거범죄 보고서>(상자 기사 참고)는 이금열 회장의 ‘출발’을 “ㄱ(이니셜 처리) 등은 적준개발용역을 1996년 12월 적준개발로 변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1998년 1월 5일에는 주식회사 다원건설로 변경하여 ㄴ과 이금열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ㄱ은 ㄴ의 힘이 커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운전기사였던 이금열을 내세우게 되며, 이에 따라 1970년생인 이금열이 ㄴ과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고서는 당시 이금열씨를 ㄱ씨 형제의 ‘대리인’으로 묘사했다. ㄱ씨는 친동생 및 ㄴ씨 등과 철거용역의 시초인 ‘입산’에서 일을 시작한 뒤 1990년 ‘적준개발용역’을 만든 인물이다. 다원건설은 적준 시절인 1994년 이후부터 재개발 철거 현장을 독점하며 악명을 떨쳤다. 끔찍한 폭력을 동원해 철거용역계의 ‘천하통일’(수주율 80%)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철거업체 대표였던 이금열은 대리인이 아닌 확실한 주인으로서 40대 중반의 ‘회장’이 됐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다원건설은 2003년 12월 2일 공식 해산한다. 3년 뒤인 2006년 12월 4일엔 최종 사업청산 절차를 마무리한다. ㄱ씨가 이 회장을 통해 견제토록 했다는 ㄴ씨는 2003년 12월 회사 해산과 동시에 이금열과 함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ㄴ씨는 다원 쪽 임원 명단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다원건설이 해산하기 2년 전인 2001년 11월 8일 이 회장은 '다원이앤씨'를 설립한다. 다원건설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3.2. 새날 설립

이 회장은 2003년 4월 시행사 ‘새날’을 만든다. 철거를 뿌리로 성장한 다원이 ‘시행사→시공사→골프업’으로 사업을 넓히는 분기점이었다. 새날씨앤피를 세우고(2006년 1월), 건설사 청구를 인수( 2007년 8월)하며, 이와소종합건설( 2010년 7월)을 설립한다. 마론뉴데이CC와 화순도곡CC도 다원 소유의 골프장이 된다. 새날 설립 전후로 철거 쪽 업무는 공식적으론 둘째·셋째 동생인 이표열·이중열 등이 맡았다.

다원은 2004년 첫 건설사업으로 ‘아인스건설’이란 이름으로 시행·시공한 화성마도산업단지 개발 사업을 했으며, 사업은 성공했다.

이 회장은 2005년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에 뛰어든다. 다원 계열사 중 새날은 시행사로, 청구는 시공사로, 다원이앤씨는 철거업체로 참여했다. 농협 중소기업은행 등 11개 금융기관에서 6500억원이란 거액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이 회장은 김포 사업을 벌여놓은 채 이듬해 평택 가재지구 개발사업에도 참여했다. 새날씨앤피가 시행을 맡았다. 자금은 군인공제회로부터 PF대출로 2700억원을 조달했다. 그러나 사업이 커지면서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사채를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엔 이사회 의결없이 새날의 사업자금 150억원을 새날 씨앤피에 대여했다. 새날은 도시개발사업 조합 성립 요건(토지 67% 이상 매입과 토지소유주 3분의 2 이상 동의)을 충족하기 위해 ‘지분쪼개기’(해당 면적 토지소유자 부풀리기)를 저질렀고, 이에 법원은 2011년 12월 ‘조합설립 인가 무효’를 판결해 2012년 8월 신곡6지구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이에 PF에 연대보증을 섰던 시공사 남광토건과 신동아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11개 금융기관은 65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일은 새날의 돈이 넘어간 평택에서도 터졌다. 이번엔 횡령이었다. ‘허위 지주작업’이란 방식이 동원됐다. 용역업체가 땅 1평을 매입해줄 때마다 1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계약을 이용해 하지도 않은 용역 대가를 지급했다고 꾸며 134억원을 횡령한 것이다. 허위 용역업체로 내세운 두 회사는 동생 이표열씨가 대표로 있는 ‘프라나’와 이 회장이 사채를 빌린 ㄴ사다. 횡령 금액은 이 회장 개인의 채무 상환에 활용했고 일부는 청구 인수자금으로 썼다. 피해는 군인공제회 회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됐다.

서대문 가재울뉴타운에서도 횡령이 발생했다. 이 회장은 하도급 업체 공사비를 과다 지급한 뒤 돌려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 다원 계열사 이와소종합건설과 비젼이 엔지 자금 370억원을 횡령했다.

이금열은 다원이앤씨·다원이앤아이·다원환경의 매출도 누락했다. 비자금을 만든 뒤 67억원을 횡령했다. 이 돈은 이표열씨 명의로 전남 화순에서 건설하는 골프장 사업자금으로 활용하였으며, 중부지방국세청 공무원 로비 자금으로 쓰인 5300만 원이 이 돈에서 나오기도 했다.

3.3. (주)청구 인수

2007년 8월, 한때 중견 지역건설사였지만 IMF 외환 위기로 부도가 나 화인파트너스에 인수되었던 청구를 ‘새날’에 재인수한다. 당시 새날은 “새날의 신용도와 자금력에 청구의 명성과 기술력이 합쳐져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청구의 옛 명성을 되찾도록 하겠다”고 공언으나(2007년 8월26일 <영남일보>), 새날은 빨릴 수 있는 모든 단물을 빨고 청구를 파산시킨다. 그 선두에 이 회장 및 새날 자금담당 ㄹ씨와 공모한 ㄷ씨가 있었다.

이 회장은 청구 인수를 위해 CK홀딩스를 급조했다. 자기자본 없이 금융기관에서 700억원을 대출받고 개인 차입금 300억원을 보태 청구를 인수했다. 당시 인수 금액은 1080억원이다. 인수엔 LBO[2] 방식이 활용됐다. 청구가 새날에 합병되기 위해 청구가 보증을 서는 모양새다. 청구의 한 퇴직 임원은 “대구 수성구 청구 사옥, 대구방송 사옥, 경주 시래지구 땅 등을 팔았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담보 금액 상환을 빼고라도 남은 돈은 청구로 와야 하는데 행방을 알 수 없다. 새날이 청구를 껍데기로 만들었다”며 분노했다. 새날은 청구 자산을 매각해 대출금 700억원을 변제했다. 청구 재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청구를 인수한 뒤 청구 재산을 팔아 빌린 돈을 갚는 구조다. 이 회장은 청구 자금 372억원을 횡령해 인수대금을 갚거나 골프장을 사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청구 인수가 끝난 뒤 ㄷ씨는 청구의 바지사장 뒤에서 실질적인 사장 역할을 한다. ㄷ씨와 ㄹ씨는 이 회장에 앞서 구속됐다.

2008년에는 심지어 한 발 더 나아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청구, 새날, 새날씨앤피 및 기타 계열사 임직원 90여 명에게 청구가 시공한 경북 포항 우현아파트를 허위 분양받도록 했다. 회사에서 대준 계약금 1천만원으로 분양 신청을 한 뒤 계약을 근거로 은행에서 각각 1억5천만∼2억원을 대출받을 것을 강요했다. 직원들은 대출금만큼은 회사 공사대금으로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돈 168억원마저 이 회장이 착복하고 자신이 가져간 은행 대출금을 개인이 갚도록 했고,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이들에겐 파산 신청을 종용했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 중엔 대출금을 갚지 못해 가정이 해체되기도 했다. 행방불명은 물론 자살한 사람까지 나왔다. 월급 압류를 피하느라 4대보험이 안 되는 열악한 직업을 전전하는 사람도 많다. 이 짓으로 인해 이금열의 친·인척 다수도 피해를 입어 측근들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

#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이금열 회장 로비 사건

2010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가재울에 뉴타운 열풍이 불고있던 당시, 가재울 4구역에서 몇몇 재개발 관련업체가 철거 면적을 속여 수십억 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비리의 중심에는 이금열이 있었다.

이금열은 2006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직원들에게 지시해 회삿돈 884억원과 아파트 허위분양으로 대출받은 168억원 등 1천52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4년 기소됐으며 2015년 징역 5년형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이와 더불어 이금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당시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 국세청 간부 2명 등이 구속되었다. # #

또한 2012년 말 검찰은 다원환경이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중부지방국세청 5~7급 공무원 3명에게 각각 2300만원과 1600만원, 14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적발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다원환경 계좌에 숨겨둔 비자금을 발견했다.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매입대금을 허위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비자금 조성 업체가 다원이앤씨와 다원이앤아이(2006년 3월 설립)란 사실이 확인됐다. #

2020년 3월 하순, 경찰 지명수배 명단에 있던 폭력조직 ‘모래내파’ 부두목 박아무개씨가 체포되고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구속 송치됐다. 박씨는 이씨의 ‘오른팔’로 통하던 인물로, 자금책을 맡고 있었다. 박씨는 폭행 및 입찰방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또 서울 가재울 4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로 활동할 당시 대형건설사로부터 50억원을 챙긴 혐의도 수사 대상이다.

4.2.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

다원이앤씨는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학동4구역의 한 5층짜리 건물의 석면 철거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해당 건물은 학동4구역의 마지막 철거 건물이었다.

그런데 다원이앤씨는 이 과정에서 건물 철거를 맡은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하청업체인 '한솔기업'과 이면계약을 맺고 두 회사는 석면 해체 면허가 없는 신생기업 '백솔건설'에 불법 재하청을 주게 된다.

해당 건물은 원래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차적으로 철거해야 했으나, 실제 공사 현장에선 건설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순서 상관없이 빠르게 철거했다. 실제로 재하청 과정에서 원래 평당 28만원 수준이었던 시공단가가 4만원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 이를 통해 예상 시간보다 20일 앞서 90% 철거에 달성했으나, 결국 부실공사로 인해 건물이 붕괴되었다.

무너진 건물은 하필 버스정류장을 덮쳐 광주 버스 운림54를 매몰하였고, 그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중 뒷좌석에 탑승한 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앞좌석은 불행 중 다행으로 가로수가 완충역할을 해 중상으로 그쳤다고 한다. 버스 외에 사상자는 없었으며, 이미 붕괴 조짐이 보여 철거 현장과 인도의 모든 사람을 대피시킨 상태였다고 한다.

다원이앤씨는 2020년, 석면 철거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안전성 평가에서 끝에서 두번째인 C등급을 받았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B등급 이상으로 입찰 자격에 제한을 두거나, C등급 이하는 감점을 주는 곳이 많다. 이에 다원이앤씨가 비리를 통해 계약을 따낸 것이 아닌지 수사중이다. #

2021년 6월 26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회사에 대해 다루었다.


[1] 2013년 10월 20일 < SBS 스페셜> 참고 [2] 매수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매수자금 조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