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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8:49

김병현/성격 및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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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실제 모습3. 별명4.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5.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6.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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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경력에 비해, 인터뷰 때 발언이나 이런저런 일화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이다. 다만, 일반적인 한국인들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고, 다소 4차원적인 성격에다가 그다지 대인친화적이지 못한 탓에 언론 매체들의 먹잇감이 되어 고생을 많이 했다. 데뷔 초기에 첫 세이브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일 한국신문에 이거 대문짝만하게 나오나요?' 발언 등으로 PC통신 유저들 사이에서는 끼가 많고 재미있는 청년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언론도 그에 대해 공격성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내한 후에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그 때부터 언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당시 PC통신에 김병현의 후배 고등학생의 글에 따르면 김병현이 내한 후에 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기자들이 미리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 김병현에 대한 쌍욕이 난무 했었다고 한다. 이는 홈런을 친 뒤 모자를 벗어 답례를 하자 기자들이 이를 곡해하여 거만하게 굴었다는 식으로 비난성 기사를 게재한 이후 현역 시절 동안 결코 답례로 모자를 벗지 않았던 테드 윌리엄스와도 비슷한 케이스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주목받는 것은 특유의 정신세계로 인한 기행을 들 수 있겠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그라운드의 악동들 편에서 소개를 했는데, 악동이라기보단 기인인듯 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 덕분에 전성기 때나 막장이 된 10년도 후반이나 야갤에서 매우 좋아한다. 거의 김성근이나 이준 급으로 소스를 끊임없이 공급해주기 때문에...

다만 한국도 좀 정서나 문화가 20년 동안 많이 바뀌기도 했고 김병현 본인도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이 유해지고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옛날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 이에 김병현 본인은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처자식이 생기면서 언행이 과거보다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라고 스스로 밝혔다.

김병현의 현역 시절이었던 90~00년대와는 달리 지금은 솔직하고 개성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다보니 지금은 숨김없이 직설적인 언행을 선보이는 김병현이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옛날의 압도적인 실력이 주목을 받고 과거의 여러가지 기행과 전설로 내려오는 여러가지 썰들이 맞물려서 다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래서, " 야구는 관심 없어도 김병현의 기행은 잘 알고 있다." 같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데, 김병현이 무례한 기레기들에게는 나쁘게 대하더라도 야구 팬들에게는 팬 서비스를 매우 잘 해줘서 미담도 많은데다 딱히 나쁜 범죄를 저지르는 사고를 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발언도 한게 없는 등, 사생활도 매우 깨끗한 사람이라 악평을 받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특유의 기행들이나 전설적인 썰들 관련해서는 이분과 투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21년 기아에 그와 비슷한 인물이 나와 주목 받고 있다.

2. 실제 모습

개인주의적인 성격에,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이다 보니 경기 외적인 구설수나 논란에 휘말릴 때가 있어, 악동이나 트러블 메이커 이미지로 왜곡된 편이다.

이렇게 독특한 성격을 가진 김병현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일탈 행위나 작은 경범죄같은 이력도 전혀 없어서 사생활도 깨끗한 편이다. 굿데이 기자와 마찰 사건 때문에 사생활에도 문제가 많을 듯한 이미지인데도 눈에 보이는 편견과는 다르게 범죄에 연루되는 일도 전혀 없이 조용하다.

체육계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셔틀하는 고질적인 똥군기가 너무 당연했었던 90~00년대의 대학생 시절에 후배들이 자신의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야, 이 자식아. 내 빨래를 왜 니가 하냐?"라면서 하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 직접 빨래를 뺏었다고 한다. 이에 후배들이 놀라서 그냥 자신들이 빨래를 하겠다고 하자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담이 있어서 그런지 김병현은 기레기와의 폭행 사건이나 공항 법규 사건 등 온갖 기행으로 유명했어도 선후배 선수들과는 전혀 마찰이 없었다. 아마도 남들에게 빚을 지고 사역행위를 요구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부당한 행태를 참지 않는 듯 하다. 심지어 운동선수들의 학폭 미투 사건이 유행했을 때도 김병현은 후배들에게 똥군기를 가했다거나 부당하게 후배들을 폭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도 않았다. 실제로 후배들한테도 인망이 넓은 편인지, 악담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 나쁘다는 말도 전혀 나오지 않고 미담도 많은 편이다.

게다가 일본 라쿠텐으로 이적했을 때나 넥센으로 이적했을 때도 후배들과 주전경쟁에 한창 민감하던 시절에도 "제가 감독이면 저를 안 써요."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슴없이 할 정도로 선후배 관계에서도 굉장히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1] 이런 성격이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방송에서 푸는 에피소드를 보면, 다른 전직 야구선수 방송인들에 비해[2] 훨씬 소탈한 에피소드를 풀어주는 편이다. 소탈하고 무덤덤하게 풀기는 하지만 워낙 자신의 선수 시절 기행이 어마어마해서 범상치않은 일화를 소탈하게 푸는 데서 오는 괴리감이 유머 포인트이기도 하다. 당장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이 그 유명한 랜디 존슨이니 말 다했다. 전혀 소탈하지 않은 레전드다.

3. 별명

그의 별명들 중에서 인터넷 상에서 가장 유명한 별명은 바로 핵잠수함과 김좆키. 자세한 건 김좆키 문서 참고. 또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쎄우는 욕의 단어를 순화시켜 표현한 '김중지' 혹은 '김법규' 등이 있다. 김좆키보다는 덜하지만 간혹 쓰이는 표현. 2000년대 말까지는 좆키 합성짤과 함께 김좆키로 불렸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 복귀 후부터는 법규, 법규형님, 법규성님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출신이라는 것에 착안해 법대 나온 법규형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예능과 해설 등으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방송국에서 주로 법규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데, 별명의 어원과 가장 비슷(?)하면서도 방송심의 상 충분히 우회 가능한 표현이라 법규를 애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부정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사실상 애칭으로 고정되었다는 면에서는 라뱅의 이병규, 빵형/빵회장의 박재홍과 비슷하다.

김병현이 사업을 위해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법인명이 무려 주식회사 법규이다.(...) 조롱하기 위해 붙인 별명이 당당히 법인명으로 승화되었다.

멘탈왕 김병현에 대한 메이저리거들의 증언.

이런 특이한 면모는 어디 안가는지 뭉쳐야 찬다에서는 '유니크 킴'으로 불렸으며 후속작인 뭉쳐야 쏜다에서도 계속 불리는 중이다.[3]

4.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

여러 어록이나 일화 중에서도 김병현 폭행 논란이라 불리는 굿데이 스포츠와의 트러블[4]은 매우 유명하다.

당시 김병현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김병현이 모 헬스클럽을 자주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스포츠 신문, 굿데이의 한 기자는 해당 헬스클럽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김병현을 나타나자마자 허가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며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강제로 진행[5]하려고 했다. 이에 김병현은 촬영과 인터뷰를 거부했고, 결국 강제로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와 이를 거부하려는 김병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져 기자의 카메라가 손상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에 앙심을 품은 해당 기자가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과 결탁하여 이 기회에 이전부터 취재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던 김병현을 모함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헬스클럽에서 만난 김병현에게 정중히 취재를 요청했으나, 김병현이 이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거만하게 굴더니 급기야 기자에 폭행까지 가해 카메라를 부수고, 해당 기자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또한, 이후 결탁한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 역시 해당 특종이 터지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폭행 사건을 대서특필, 김병현을 쓰레기로 몰아붙였다. 이날 목격자도 폭행을 한 것으로 당시 보도되어 사태는 점차 악화 되었다.

물론 김병현 측도 이에 대한 해명을 나서긴 했으나, 기존부터 언론을 통해 줄곧 안 좋은 모습으로 묘사됐던 김병현이었던 터라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김병현은 억울하게도 휴식 기간 동안 내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으며,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어 시즌 자체를 전부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해당 기자가 "그 XX, 거들먹 거리긴."이라고 말한 동영상이 퍼지고, 당시 사건의 정확한 내막과 전후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반대로 무고한 김병현을 음해한 기레기들 쪽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와중에 김병현을 옹호하던 차두리 싸이월드에 욕설이 섞인 악플을 단 이가 있었는데, 이 IP를 추적한 결과, 악플을 단 게 다름 아닌 굿데이 측이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자들을 향한 비난 수위는 더욱더 높아졌다. 사실 이러한 기사가 데스크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굿데이 측의 계속된 경영부진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역풍을 맞으면서 판매 부수가 급감하고, 광고까지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결국 굿데이는 6개월 뒤 폐간되고 말았다.

위에서 설명했던 굿데이 기자와의 논란 때문인지, 디씨에 김병현기자폭행논란 갤러리가 개설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접속 불가능하다. 사실 공항에서 법규 날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5.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

파일:BK_5.gif * 2006년 1회 WBC 당시에는 경기 전 영상을 찍고 있던 허구연 한광섭 뒤에서 '카메라에 나오고 싶어하는 초딩' 같은 모습을 연출하여 인터넷 상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6. 여담

파일:gucHz5h.jpg * 넥센 시절 파울볼이 덕아웃으로 튀었을 때의 짤방 때문에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출처
파일:bkrings.jpg *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이런 면모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한국 팬들을 위해 월드 시리즈 반지[12]의 국내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당분간 이 반지를 끼지 않고 집에 보관한 뒤 귀국 후 한국야구위원회나 제주도의 야구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증할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국내은행에 보관을 하였다. 대한민국에 복귀하고 얼마 후, KBO 측에선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를 KBO 박물관에 기증하지 않겠냐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고, 김병현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김병현이 언젠가 은행에서 찾아왔는데 정작 이 우승 반지를 어디에 둔지 몰라서 기증을 당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병현 특유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상술한 사건들이 있는 터라 마냥 좋은 추억만 담긴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그 반지 하나 얻어 보고자 온갖 비난과 푸대접을 감수하고 팀을 옮기는 선수도 굉장히 많다.
* 시간이 흘러 그냥 분실로 끝나나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2016년에 차 트렁크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먼저 알려왔다. 일련된 과정을 보면 이해가 가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KBO가 명분 없이 우승반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욕을 하였고, 김병현은 주기 싫어서 잃어버린 척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정말 주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기증 이야기도 안했고, 분실한 반지를 찾고도 못 찾은 척 입 다물 수 있었는데 먼저 나선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다시 언급될 때 뭐 잃어버릴 수도 있지란 반응을 보인 듯. 그런데 2019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이사를 하면서 또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5분 12초부터 그런데 2020년 2월 29일에 방영된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반지 두 개를 실물로 보여주는 모습이 나왔다. 어찌저찌 찾은 듯. 그래서 기증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기증하겠다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 기증자의 의사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김병현의 성격이라면 말 했을 확률이 높으니 그냥 깜빡했을 듯 하다. 어차피 KBO의 입장에서도 강제로 협박하면서 우승반지를 뜯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 준공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JsqCj0K.jpg * 넥센 시절에도 별반 다를 것은 없어서 김성갑 전 2군 감독과 유이가 같이 방송에 출연하였을 때 본인 팀의 감독을 디스하였다.

파일:1702086065_image.jpeg.jpg

*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연상은 아나운서와 함께 출연해서 좋은 케미를 보여주고 그야말로 온갖 썰을 풀었다.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맞은 얘기도 했다. 한번, 두번까지는 별 데미지가 없다가 세번째 피홈런엔 주저앉게 됐는데 낙심해서가 아닌 팀 고참이면서 자신과 친한 마이크 모건[20]이 생각나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또한 김선우와 전화연결 시간을 가졌는데 김선우 본인이 김병현에게 야구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 2019년 4월 24일 트위치를 통해 진행된 SBS 모바일 24의 '배거슨 라이브'에 출연하여[21] 야구 관련 에피소드, 명대사 해명의 시간과 근황을 풀고 갔는데, 배성재 아나운서의 타노스 건틀렛으로 짤방을 남기고 갔다. 여기서 해방촌에 지분투자 형태로 태국 음식점도 열었다고 언급했다.


[1] 물론 라쿠텐에 입단하던 시기의 김병현은 현역에서 은퇴가 가까워진 시기라서 이미 돈도 많이 벌어왔던데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45세가 된 이후 매달 2억 4천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쿠텐이나 넥센에서 활약하던 때는 거의 반쯤 취미 생활로 야구하던 시기나 다름없었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만큼 주전경쟁이 그렇게까지 절박하지는 않았던 때라 "제가 감독이면 저를 안 쓴다." 라고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병현 본인의 성격상 프로 선수로서 주전경쟁이 밀리는 것은 분명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맞는데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선수들과 주전경쟁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2] 정수근, 박명환의 경우 아프리카TV에서 토크의 수위가 19금을 넘을 때가 많아서 편집자가 애를 먹고 있다. [3] 그 기행으로 말할 것 같으면 뭉찬에서는 사이드라인으로 공이 나갈 거라 생각해서 아직 나가지 않은 공을 집어서 스로인을 하려 한 바람에 핸드볼(핸들링의 올바른 표현) 파울을 받기도 했고, 뭉쏜에서는 자유투를 2개 쏘는 상황에서 한 개째를 던졌을 때 혼자 리바운드를 잡으러 골밑으로 달려나온 모습을 2번씩이나 선보였다. 전자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끝나겠지만, 후자는 프로경기였다면 방해공작으로 오해하여 자유투를 던진 선수와 시비붙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4] 굿데이 스포츠의 대주주가 경향신문이어서 이 논란은 경향신문과 엮이기도 했으며, 당시 경향신문 차세현 기자가 현물투자 지분관계만 있다고 언급하며 편집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의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힌 사건. [5] "너 취재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라고 반말까지 하고 계속 김병현이 뚜껑 열릴 때까지 무시했다고 한다. [6] 이 중 양키스 레전드 데릭 지터의 미스터 노벰버라는 별명을 붙여준 11회 끝내기 홈런의 허용투수도 김병현이었다. [7] 이 경기는 체이스필드에서 치러진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경기였는데 마침 다저스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다. [8] 서재응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부상전엔 김병현만한 구속에 제구까지 잡힌 완성형에 가까운 투수였고, 짧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둔 선수다. [9] 참고로 정대현은 1978년생, 김병현은 1979년 2월생으로 같은 학년이다. [10] 물론 프로로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정대현도 메이저리그에서도 마무리로서 성공한 김병현 급이 아니라 그렇지,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은 위대한 투수 중 하나다. 국가대표로서는 정대현이 김병현보다도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궁내 체고의 싱카볼투수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11] 원래 마무리투수는 경기와 상관없이 5회까지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긴 하는데, 자면 몸이 굳기 때문에 잠은 금기다. 오히려 몸이 굳지 않도록 따뜻한 물로 목욕이나 마사지를 하는 선수도 있을 정도. 보통은 등판일엔 가벼운 스트레칭을 많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기가 진행되는 락커룸은 시끄러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거기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락 콘서트장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엄청난 직책이기에 저렇게 편안히 잠을 자기도 쉽지 않다. [12] A는 애리조나 시절, B는 보스턴 시절. [13] 기아 출신은 아니지만 강정호까지 합하면 광주일고는 무려 매이저리거만 4명 배출한 고등학교다... [14] 식당위치는 전남대학교 후문 부근 산쪼메라는 식당이다. [15] 가장 안 좋은 사례가 광주일고 선배였던 이호성이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과욕으로 나름 잘나가던 예식장 사업을 말아먹고 큰 빚을 지고 몰락해버렸고 결국 살인까지 저질렀다. 또한 같은 팀 동료였던 커트 실링 역시 게임 사업을 하다가 파산선고를 당했다. 반대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광주 내 중화요리점 체인의 대표로 자리잡은 해태 포수 최해식 푸르밀 CEO까지 오른 실업 롯데 투수 남우식이다. [16] 첫 단체주문 손님은 손혁 코치가 80개를 주문한 SK 와이번스. 특히 광주제일햄버고 쯔양 등이 방문하기도 했고 진월동에 2호점을 열었으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도 입점했다. [17] 415명 중 308표 [18] 최종순위는 50명 중 12위, 11위가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이다. [19] 랜디 존슨 폴 골드슈미트가 1-2위에 올랐고, 비운의 투수 브랜든 웹과 우승멤버 루이스 곤잘레스 커트 실링이 Top 5에 자리했다. 이후 스티브 핀리-저스틴 업튼-A.J. 폴락-댄 해런-잭 그레인키 순. 그 다음이 윌리엄스와 김병현이었다. [20] 1959년생으로 1978년 프로에 데뷔해 디-백스가 마지막 팀이던 저니맨 투수인데, 이전 팀에서 획득한 우승반지가 없었다고 한다. [21] 이 앞에 이승우, 구자철 인터뷰가 있었다. [22]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거라서 불만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23] 김병현의 키는 프로필 키 178cm인데, 보통 운동선수들 신장은 스파이크를 신고 재며 또 언더사이즈 선수들은 조금씩 뻥튀기가 일상이라 실제 맨발신장은 174~5정도다. 한국남성 평균인 173~174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야구선수로서는 상당한 언더사이즈다. 그런데 랜디 존슨은 키가 210cm인 초장신이라, 둘의 키는 35cm가까이 차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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