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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국제시장(영화)
1. 주요 인물
1.1. 윤덕수
윤덕수 ( 황정민 / 아역: 엄지성) |
영화의 주인공. 1939년생이다.[1] 즉 영화가 나온 시점의 나이는 70대 중반.
외항선 선장을 꿈꾸며 부모님, 세 명의 동생들과 흥남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로 인해 가족들과 피난길에 오른다. 여동생 막순을 등에 업고 배에 올라타고 있던 그때 그의 뒤로 수많은 이들이 우르르 막 배에 오르려는 엄청난 난리통 속에 어떤 사람이 실수로 막순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덕수에게서 떨어져 버려 막순을 잃어버린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 진규는 가족들을 잘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배 밑으로 내려가 막순을 찾기 시작한다. 그 사이, 배가 출발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여동생과 헤어지면서 어린 나이에 소년가장이 됐다. 이때부터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이후 부산에 사는 고모네 잡화점 '꽃분이네'[2]에서 얹혀살게 된다. 그리고 임시천막학교에서 죽마고우 천달구와 만났고[3] 그와 함께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번다. 여기서 달구가 미군에게 쇼를 하고 초콜릿을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된 덕수. 처음엔 직접 돈을 벌어 공부해서 진학하고 국내에 취직할 생각을 했던 듯하다. 1963년 검정고시 학원에 멋대로 침입해서(...) 도둑 공부를 하다가 들켜 책가방도 내동댕이쳐지고 본인도 머리끄덩이를 잡혀 내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머리 좋은 남동생이 먼저 서울대학교에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자신이 일해서 남동생부터 공부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지만,[5] 대학 입학금이며 등록금 등 형편이 형편이라서 고뇌 중 달구의 파독 광부 지원 제안을 받아들여 광부 선발에 참여한다. 이후 면접에서 투철한 애국심을 보여[6] 결국 서독으로 가게 된다. 서독에서 이후 일생의 동반자가 되는 오영자를 만나 연애도 하지만, 사고를 당해 갱도에 매몰당하기도 하는 등 죽다 살아날 위기를 겪는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입원하던 도중 병상에서 비자가 만료되어 귀국한다. 귀국 직전에 작별인사 격으로 영자의 기숙사에 침입해서 영자에게 마지막으로 같이 귀국하자고 설득한다. 영자의 기숙사에서 만나는 모든 장면이 덕수의 침입이다. 마지막(?) 인사 때도 덕수는 인사를 마치고 창문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영자는 귀국 대신 속도위반(...)을 시전하고, 이걸로 혼전 임신이 되어 간호사 일에서 해고당해 영자 역시 귀국을 하게 된다(...). 영자는 덕수를 찾아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렸다. 이때 영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 줄 알고 실망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아이의 성이 어떻게 되냐고 묻고 독일 애들은 슈씨 많으니까 슈씨냐는 드립을 치다가 윤씨라고 싸대기를 맞는다.[7] 그렇게 둘은 부산에서 결혼하게 된다.
이후 늙은 고모는 덕수의 귀국 후 수입상 '꽃분이네'를 덕수에게 물려주겠다고 하는 등 평온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고모가 죽자 알코올 의존증자인 고모부가 꽃분이네를 멋대로 팔아치우려 한다. 덕수의 아버지는 흥남에서 가족과 헤어지기 직전, 덕수에게 고모의 가게인 '꽃분이네'서 다시 만나자고 했기 때문에 덕수는 아버지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 줄 유일한 연결고리인 꽃분이네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일생의 꿈이었던 선장이 되기 위한 해양대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무리해서 가게를 자신이 인수한 다음, 그 돈을 메우기 위해서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진출을 결심한다.
민간 기술자라서 전쟁에 휘말릴 일은 없을 거라며 가족들, 특히 노모와 영자를 설득했으나, 베트남 전쟁은 전선이 따로 없는 게릴라전이라서 2번이나 전쟁의 참화에 노출된다. 덕수는 달구와 함께 그때 서독 광부시절 만큼의 엄청난 온갖 개고생들을 또 한 번 겪게 되고 어느 날 건설 동료들과 함께 미군도 철수해버린 한 정글 지역에서 베트콩들한테 죽을 뻔한 걸 남진이 분대장으로 있던 해병대원들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 남는다. 그후 현지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이 베트콩들에게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해있자 덕수는 지역 주민들을 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과거 흥남 철수에서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이 결단했듯이 물자를 전부 버리고 주민들을 구하기로 한다. 배로 철수하는 도중 베트콩들의 기습을 받아 아이가 물에 빠지게 되고, 물에 빠진 여동생을 애타게 부르짖은 남자아이를 보고 자신이 막순이를 잃어버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더니 여자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로 뛰어든다. 아이를 구해 배에 오르던 중 허벅지에 총을 맞게 되고 다시 물로 떨어지는데 이때 남진에게 다시 한번 구조되며 살게 된다.[8] 이로 인하여 덕수는 평생 다리를 절면서 살게 되었고, 한국으로 다시 귀국한 뒤에 영자는 덕수가 다리를 다친 것으로 보고 크게 놀라 "어떻게 된거야? 다리가 왜 그래!" 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하고 덕수는 애써 괜찮다면서 위로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이후로 조용히 꽃분이네를 운영하면서 살다가,
그러나 긴 시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미국으로 입양되어 자라난 여동생과 연락이 닿아 겨우 다시 만나게 된다. 너무 어릴 때 입양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막순의 귀 뒤쪽에 사마귀가 있던 점, 헤어지기 얼마 전에 여동생에게 말하던 '여긴 운동장이 아니다' 라는 말, 그리고 어릴 적에 입고 있다가 헤어질 때 소매가 찢어진 저고리 등을 근거로 막순이를 알아볼 수 있었으며 그 덕에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현재 파트에서는 엄청 고집쟁이에 툭하면 온갖 주책스러운 꼰대짓을 해대며 승질을 잘 내는 골치 아픈 영감 님이지만[9] 외국인 노동자 혹은 이민자를 인종차별하는 학생들에게 화를 내며 외국인을 편들어주기도 하는 등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어느 스리랑카인이[10] 고급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자, 교복을 입은 불량학생 무리가 지들끼리 " 그지 나라에서 온 잡것들이 이런 데서 커피를 얻어 쳐먹냐" 라며 흉을 보자 그걸 알아들은 그 스리랑카인은 패기 있게 부산 사투리로 “커피 얻어묵지 않았다! 내 돈으로 사 묵읏다 와, 문제있나!?” 받아친다. 그걸 듣고 불량학생들은 "느가 와 부산 사람이고 깜디 새끼야" 하고 조롱하는데, 스리랑카인은 "부산에서 살믄 부산 사람이고 한국에서 살면 한국 사람이다!"라며 다시 받아친다. 이때 자신도 외국인 노동자였던 시기가 있었기에 불량학생들이 열이 받아서 일어서는 걸 늙은 덕수가 막아서며 불량학생들을 마구 참교육 하며 혼쭐을 낸다. # [11] 그런데 덕수의 회상에서 보다시피 또 한국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알다시피 한국은 파독 광부를 포함하여 해외 여러나라들로 사람들을 보냈고 그렇게 보내진 사람들도 외국인 노동자로 현지인 일자리 뺏는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즉 그 양아치들은 덕수 본인을 조롱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인종차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서 나서주는 덕수를 보고,
다만 성질이 좀 꼬인 데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거의 이해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소외 당하는 편. 엔딩에서는 마침내 '꽃분이네'를 팔기로 함으로써 과거의 짐과 이별하고 홀가분해지는 듯하다. 방 안에서 꽃분이네 가게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 거실에 있는 가족들이 뒷담하는 말들을 듣다가, 방 안에 걸어둔 아버지 사진[12]이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거야, 나 대신 가족들을 돌봐줘서 고맙다" 비슷한 말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격려하는 환영을 본다. 여태까지 주변인들이 가게를 하는 이야기만 벙긋 하려고 막 욱하면서 대노하며 가게 이름으로 가족들에게마저 뒷담을 들으면서도 이름을 굳이 바꾸지 않는 이유나, 동료 상인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들으면서까지 알박기를 시전하는 이유가, 흥남 철수 당시 아버지가 살아서 꽃분이네에서 만나자 는 약속을 끝까지 잊지 않고 있어서 이기에 가게를 정리해 버린다면 더 이상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며, 환갑이 넘은 이후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셔서 영영 못 오실거라는 걸 뻔히 잘 알면서도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크게 사무친다는 뜻이다.[13] 그리고 영화 맨 막판 엔딩에서는 아내와 창밖을 내다 보며 사색에 잠긴채 지난날들을 추억하고 회상하는 맨 첫 장면으로 부터 이어진채 인자는 정말로 영영 못오시것지, 고만 인자 가게 내놔라' 라면서 꽃분이네를 팔고 국제시장에서 퇴거하기로 결정한다.[14]
1.2. 오영자
오영자 ( 김윤진) |
간호사로 서독에 파견되어 일하던 중 덕수와 만나서 연애하게 된다. 처음에는 덕수가 자전거를 타고 독일 강변을 다니다가 한국 여자가 강변에서 독일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넋이 빠져서 여자만 바라보다가, 전방주시를 안 해서 채소 파는 노점상의 탁자에 앞구르기를 해서(...) 얻은 상처를 영자가 전공을 살려서 치료해 주는 것으로 인연을 맺는다. 작중에서 묘사된 것만 봐도 이 때 영자가 덕수에게 붕대를 매주는 솜씨는 분명히 제대로 배운 사람의 솜씨다. 이 때는 덕수도 그저 한 순간 스쳐 지나간 사이로 생각하는 듯 했지만
여담으로, 영자는 독일어에도 능통하고 대학교도 다닌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덕수와는 달리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덕수가 석탄을 캐고 있을 때 영자는 간호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독일어로 책을 읽고 독일어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덕수 일행이 갱도에 매몰되었을 때 무너진 갱도를 통제하고 있는 독일인 관리자에게 독일어로 따지는데, "가스가 다 빠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못 들어간다. 지금 들어가 봤자 그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라고 할 때 그 말에 흥분해서 딱 1번 한국어로 쏘아붙인 것 이외에는 독일어로 전혀 막히지 않고 말싸움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꽃분이네'를 지키면서 어느새 평범한 부산 아지매가 되어버린 게 아쉬운 부분. 하지만 이 시절에는 여성의 경력단절이 당연했기 때문에 자식을 키우려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이기도 했다.[16][17]그리고 덕수와 결혼하기 전과 후에도 미묘하게 말투에 차이가 있는데, 결혼하기 전에는 표준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혼한 후에는 점점 사투리를 쓰고, 그 이후 완전히 사투리로 이야기 한다.
결혼 전엔 내성적이었던 듯하다. 전통혼례 잔치 때 달구가 덕수를 묶어놓고 발을 때리며 영자에게 "노래 한 곡 안 하면 덕수는 계속 맞는다." 르고 위협을 하자(...) 자긴 노래 잘 못 한다고 엄청 빼다가 결국 한 곡 부른다는 게 로렐라이|Die Lorelei. 였지만 당연히 반응은 영 좋지 않았고 덕수도 그냥 체념하고 다시 발바닥 맞을 준비를 하는데다 달구가 뭐 저런 재미없는 색시를 데려왔냐며 발바닥을 계속 때리자 결국 한국 노래인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르게 된다. 그래도 파독 시절 기숙사에 한국 요리를 싸 들고 온 덕수에게 "눈은 제 가슴을 훔쳐보고 계셨지만 귀는 제 말을 다 듣고 계셨군요" 라고 정곡을 찔렀던 것이나, 광산 관리인에게 독일어로 대들었던 것이나, 그리고 덕수 귀국 전날 밤의 거사(...)를 생각해본다면 나름대로 괄괄한 성격에다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덕수가 베트남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도 가지 말라고 하면서 심하게 반대를 한 것을 봐도 그렇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자상한 엄마/할머니로 많은 사랑을 받는 듯 하다.[18] 그리고 아무래도 남편이라서 가족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덕수를 잘 챙겨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단 같은 시대를 공유해 왔고, 덕수의 무한한 희생정신과 가족애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1.3. 천달구
천달구 ( 오달수 / 아역: 장대웅) |
1939년 10월 20일 생.[19] 덕수네 집안이 흥남 철수때문에 부산으로 피난왔을 때 임시 천막 국민학교에서 처음 만난 친구다. 첫만남에서 덕수와 수업시간에 투닥거리면서 싸우다가 "너랑은 평생 볼 일 없을 거다!" 라고 말했는데, 어느덧 평생을 같이하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북에서 왔다고 덕수를 빨갱이라고 괜히 놀리기도 했지만[20] 이후 곧 의기투합해서 같이 구두닦이를 하면서 친해진다. 편모가정의 맏아들이라 시종일관 진지한 성격인 덕수에 비해서, 영화관 집 아들인 달구는 아는 것도 많고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 서독에 광부로 간 것도 딱히 돈이 궁해서라기보다는 순전히 백마 한번 타보자는 음란한 욕망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디스코 파티 중 오영자의 기숙사 사감인 독일 중년 여성에게 껄떡댔다. 파티 때 달구가 사감에게 귓속말을 받는 장면이 있었고 덕수가 영자의 방에 들어갔을 때 영자가 "달구 씨는 어디 갔냐" 라고 물을 때 덕수가 "달구는 어디 따로 약속이 있어서 갔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는 사감이 귓속말로 밤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듯. 그리고 사감이 그녀의 방에서 달구를 침대 위에 패대기친뒤, 쿨시크하게 묶은 머리를 푼뒤 옷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닥쳐! 귀여운 녀석...”
어쨌든 덕수의 거의 의형제로 봐도 될 정도의 좋은 친구인 덕분인지 베트남에도 함께 가고[22], 그 와중에 남진 사인 3장도 받고 베트콩과 미군 양쪽으로부터 위협받던 현지 주민들을 구출해주면서 그곳 여성과 플래그를 세워 결혼에도 골인한다. 한-월 국제결혼 1호 커플로 신문에도 난다. 당시 신문기사에 37세로 된 것으로 보아 1976년에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덕수의 이산가족찾기도 같이 따라다녀 주는 등 이제는 말이 부랄친구이고 사실상 형제나 다름없는 절친한 사이다. 영화관 자리에 멀티플렉스를 세워 달구 본인은 여유롭게 은퇴한 삶을 즐기는 듯.
2. 덕수네 가족
2.1. 윤진규
윤진규 ( 정진영) |
1910년생. 덕수네 사남매의 아버지. 흥남 비료공장 노무부 주임으로 재직하다가, 한국 전쟁이 터지자 아내와 아이들과 피난길에 올랐다. 흥남 부두에서 화물선에 올라타는데 성공했지만 덕수가 막순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덕수에게 가족을 맡긴뒤 자신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배에 올라오려는 피난민들 사이에서 막순을 찾는사이 배가 출발하면서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막순도 미군들에게 구조된것으로 보아 아이를 찾는데는 실패한듯 하다.
이후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흥남 철수 항복을 보면 알겠지만 이때 뒤에 남겨진 피난민들은 대부분 반동분자로 몰려 고생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었다고 하니, 그 역시 무사히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25] 덕수에게 맏이로서 가장의 책임을 강조하며 주지시킨 바람에 덕수는 이후로 모든 것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긴 하지만, 덕수에게 더 나은 삶의 길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바람에...[26] 이산가족 상봉 때 등장하는 줄 알았지만 덕수를 자기 아들 "유덕수"로 잘못 알고 나온 다른 이산가족 할아버지였다. 이산가족 상봉때도 등장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흥남 철수때나 또는 조선인민군에게 사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영영 북한에 있게 되었거나. 회상 장면으로 나온 모습으로 추정하자면 이미 흥남 철수 당시 북한군들에게 죽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방안에 들어와 앉아 "아부지, 내 열심히 살았지예?"하고 한탄하는 덕수의 앞에 환상으로 나타나 "내가 못한 것 네가 대신 해줘서 고맙다"며 어린 덕수를 꼭 안아준다.
2.2. 박길례
배우는 장영남.[27] 덕수의 어머니. 흥남 철수 당시 남편과 큰딸과 헤어진후 남은 세 아이들을 데리고 시누이가 사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바느질을 하며[28] 남은 아이들을 키운다. 주인공 덕수의 아내인 오영자와 함께 아들 덕수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동생들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안타까워 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오죽하면 막내딸 끝순이가 결혼 자금 없어서 결혼 못해 화가 나 주인공 덕수를 욕하자 '니 오빠가 탄광에서 죽기 살기로 돈을 벌어와가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사는기다'하며 울분을 토해 영자가 간신히 말릴 정도였다. 이후 1983년, 미국으로 입양된 큰딸 막순과 말년에 재회했지만 남편과는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 다음해인 1984년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장남의 나이를 고려하면 1910년대 중후반생인데도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별세했음에도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80대 노인처럼 보인다.2.3. 윤승규
배우는 이현.덕수의 남동생. 하지만 출연장면은 많지 않다. 어린 덕수가 엄마에게 "막순이가 그립지 않냐"면서, "어떻게 막순이 얘기는 한번도 안 할 수가 있냐"면서 나무라는 어린 덕수에게 엄마가 "나도 막순이 생각에 마음이 아프지만 막순이만 그리워하느라 너랑 다른 동생들을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첫 등장. 윤막순보다 손위로 추정되기에 1942~ 1944년생으로 추정된다. 두번째에서는 제대로 나온다. 학비가 없어 고시학원에서 도강(盜講: 도둑 공부)하는 형을 제치고 뜬금없이 서울대에 합격했다.[29] 하지만 대학진학 대신 파독 광부 생활을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합격한 대학인데 이러냐는 어머니에게는 동네 사람들이 형 보고 "부모형제 잘못만나서 1년 365일 뼈빠지게 일만 한다고 한다"면서 그런 돈으로 학교를 다니면 자기 마음도 편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 술에 취한 형으로부터 인생은 타이밍이라며 헛소리말고 대학가서 공부나 하라는 핀잔을 듣는다.
3번째는 파독 광부 생활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동생, 엄마, 고모와 맞이하는 장면. 참고로 마지막에 고모 라미란이 업히다 넘어진다(...) 4번째는 덕수가 베트남 전쟁에서 귀국후 꽃분이네의 간판을 새롭게 교체했을 때 주변 상회 사람들과 가족들과 같이 박수를 치며 축하하는 장면. 참고로 이때 결혼을 했는지 딸을 손에 안고있다. 5번째는 막내 끝순의 결혼식에서 어머니 뒷좌석에서 우는장면, 6번째는 가족들과 함께 이산가족 찾기를 볼때 어머니 옆에 앉아있는 장면이다.[30] 6번째 등장은 돌아온 막순이 어머니께 인사드릴때 뒤에서 가족들과 서있는 장면. 그리고 이만기의 씨름을 보며 이만기를 응원할 때.[31] 이만기가 이기자 덕수를 붙잡고 환호한다. 마지막은 덕수가 늙어 가족 모임할 때 잠깐 지나가는 역할로 형인 덕수가 늙은 몸으로 가게를 보는 게 안타까워 '행님도 인자 가게를 큰 아(장남)에게 맡기고 좀 쉬라'며 말하는 장면, 후에 함께 제사를 지낼때, 그리고 손자들이 재롱잔치를 할 때다. 이게 다다. 막내 끝순이도 결혼식이 나오는데 승규는 결혼식도 생략당하고 아이가 늘어난다(...)
후반부 이산가족찾기 장면에서도 제대로 못 나오는 등 아예 남인 달구에 비해서도 비중이 지나치게 작은 감이 있다. 그냥 가족들에 껴서 나오는게 다다. 그리고 실제로도 친척들은 다같이 고생하는데, 자기 혼자 성공해서는 밑에서 고생하는 친척들에게 입 씻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도 한다. "밑에서"란 표현은 저렇게 입 씻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서 서술한 표현이지, 고생하며 살아온 분들을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 물론 작중 승규가 그런 유형의 인간임을 나타내는 장면은 없다.[32] 애초에 가족 모두가 이산가족 찾기에 힘을 보탰다는 설정은 없다.[33]
2.4. 윤막순
배우는 최 스텔라 김.[34] 아역은 신린아. 1945년생이며 덕수의 큰여동생.흥남 철수 당시, 큰오빠 덕수의 등에 업힌채로 배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소매가 찢어질 정도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배 밑으로 떨어졌다. 이걸 들은 아버지 진규가 곧바로 딸을 찾으러 다시 내려갔지만 배가 출발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행방이 묘연해졌다. 떨어진 이후의 행방은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밝혀졌는데 미군들에게 구조되어 부산에 어느 고아원에서 지내다 미국으로 입양됐다.[35]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면서 미국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36] 아주 어린 나이에 입양 되어 30년이나 미국 생활을 한지라 한국이름과 고향은 모두 잊었고 한국말조차도 못하게 되어 통역 없이는 소통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귀 뒤의 사마귀, 흥남 철수때 덕수가 해 줬던 "막순아, 정신 똑똑히 차리라!! 여가 운동장 아이다!! 놀러가는 게 아이다!! 오라바이 손 꽉 잡아라!!"라는 뜻은 까먹었을지언정 기억은 하고 있던 말, 결정적으로 흥남철수 당시 입고 있었던 분홍저고리까지 한쪽 소매가 찢어진 상태로 간직하고 있었다.[37] 그제서야 덕수는 그녀가 자신의 여동생 막순이란걸 알아봤고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보고있던 다른 가족들도 오열했다. 덕수는 아버지와 막순이를 찾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으나 아버지는 결국 만나지 못했는데, 막순이가 미국에서 이 방송을 보고 있던 덕분에 급히 방송국에 연락을 해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실로 천운이 따로 없을 정도. 이때 왜 자신을 버리고 갔냐며 울부짖는 막순이를 통해, 그녀가 겪었던 과거와 심정을 여러모로 느끼게 한다.[38]재회 후, 남편과 딸과 함께 한복을 차려입고 어머니에게 절을 올렸고 절이 끝나자마자 한국말로 "엄마"라고 부르며 어머니에게 다가가 안겼다. 이후에는 가족 모임에 꼬박꼬박 나오고 어머니 기일이면 항상 남편과 딸을 데려와 덕수 가족과 제사를 지내는 등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하다.[39]
2.5. 윤끝순
배우는 김슬기. 아역은 김설. 노인은 박혜진4남매 중 막내. 막순이보다 더 나이 어린 여동생이다. 흥남 철수 당시 아직 걸음마조차 못 뗀 아기인 것으로 보아 1949년생 또는 195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 극적으로 막순이를 찾자 TV 화면을 보며 "언니"라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나름 착실하게 사는 큰오빠 덕수, 작은오빠 승규와는 달리 날라리로 뺀질뺀질한 남자만 만나며 극장에서 덕수에게 귀를 잡혀 오기도 하는 사고뭉치. 자신의 결혼자금을 위해 덕수에게 전쟁 중인 베트남에 다녀오라고 압박을 주며, 큰올케가 덕수에게 "당신이 베트남에서 죽으면 어쩌냐"고 하자 "그럼 여긴 과부촌이네~~"[40] 같은 패드립까지 치는(…) 철없는 여동생이다.[41] 인간성이 영 아닌 것치곤(…) 남편과는 잘 살면서 아이도 낳고
2.6. 윤꽃분
배우는 라미란.[43]6.25 전쟁 이전부터 부산에서 꽃분이네라는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덕수의 고모. 6.25 때 미국인들을 상대했던 경험 때문인지(수준급까지는 아니지만) 영어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김봉남의 영어 패션 용어가 난무하는 만연체를 똑바로 알아듣고 물건을 내온다.[44] 작중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영어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북에서 피난 온 덕수 가족을 거두어 들이고 계속 같이 산다. 남편(즉, 덕수의 고모부)이 일은 안 하고 맨날 술만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였기에 신뢰하지 않았고, 자식이 없는 자신이 죽으면 덕수에게 가게를 물려 줄 생각이었다. 이후 덕수가 독일에서 돌아온 뒤 얼마 안 되어 사망하고, 덕수는 멋대로 가게를 처분하려는 고모부한테서 가게를 사게 된다. 만약 그녀가 고모부보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덕수가 베트남에서 다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막순과의 재회 때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 쉬웠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분단 후 덕수네 가족은 북쪽 흥남에선 살고 있었는데 왜 윤진규의 동생인 그녀는 어째서 홀로 남한의 부산에서 살게 되었는지가 나오지 않았다.
2.7. 윤서연
배우는 이예은.덕수의 손녀. 영화의 도입부가 늙은 덕수가 꼬마 서연이와 산책을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2.8. 덕수의 고모부
배우는 홍석연. 윤꽃분의 남편. 덕수네 4남매의 고모부.아내가 일하는데도 술만 퍼마시는 알코올 중독자. 자기가 먹고 살기 위해 아내 사후에 가게를 파는 파렴치한 짓을 하여 덕수가 베트남에 가도록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덕수가 온갖 개고생을 하고 다리를 절게 된 만악의 근원이 된 사람이다. . 또한 한편으로 보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로서 가족들과 동료들을 잃었거나 그에 따른 정신적인 PTSD로 인해 육체와 심신이 폐인처럼 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첫 등장 시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에 적어도 낙동강 방어 전투에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다.[45]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사정상 갑자기 군 입대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를 못했기 때문에,[46]전쟁 후유증으로 오직 술을 마시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 부인인 윤꽃분을 포함한 덕수네 가족도 그런 고모부를 원망하면서도 애써 받아주는 것을 보면 아마도 딱한 사정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시 전쟁 통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참전 군인들의 대한 상징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2.9. 윤도주
배우는 김민재, 아역은 최유찬, 오승환.윤덕수와 오영자의 장남, 윤서연의 아버지. 영화 메인 포스터 가족 사진에 오영자(김윤진) 무릎위에 앉아있는 아이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인 윤덕수와 의견충돌이 잦고 이해를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부에 아픈 오영자를 보곤 윤덕수에게 "병원을 먼저 데려가야지 이거 이거 약쪼가리 먹고 낫겠어요." 라며 핀잔을 준다. 아버지가 장사가 되지도 않는 가게를 팔지않는 것[47]과 자신의 딸인 윤서연에게 노년층이 부를만한 < 굳세어라 금순아>를 가르쳐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안 좋게 보았다. 참고로 덕수는 39년 생이며 본인은 베트남 파병 당시 대여섯 살이었으니 최소 71년생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큰 딸이 (2014년 기준으로) 겨우 유치원 생이나 초등학교 1 학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건 설정 오류이거나 아님 본인이 장가를 늦게가서 30대 중후반에 아이를 낳았다는 뜻이 된다.
2.10. 윤기주
배우는 태인호, 아역은 안정우, 유재상.윤덕수와 오영자의 차남. 영화 메인 포스터 가족 사진에 윤덕수(황정민)이 안고 있는 꼬마.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인 윤덕수와 의견충돌이 잦고 아버지가 가게를 팔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형 윤도주와는 달리 허허실실한 표정을 자주 짓는 것을 보면 성격은 꽤나 널널한 듯. 확실한건 아니지만 본인의 딸이 형의 딸인 서연이보다 더 나이가 많다(?)
2.11. 윤선주
배우는 황선화, 아역은 김나희.윤덕수와 오영자의 장녀(막내).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인 윤덕수와 의견충돌이 잦고 이해를 못한다. 초반부에 아픈 오영자를 보곤 윤덕수에게 "아빠는 뭐하노, 엄마 좀 잘 좀 안돌보고." 라며 뭐라 한다. 남편의 아는 사람의 초대로 남편, 오빠들 부부와 함께 태국으로 놀러가기 위해 본인의 자식들과 조카들을 전부 다 윤덕수와 오영자에게 맡긴다.
3. 실존 인물
영화 《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하게 유명인들이 등장해서 주인공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들어가 있다. 차례대로...-
현봉학 (
고윤[48])과 10군단 민사부 고문(통역관), 그리고
미 육군 10군단장 육군 중장
에드워드 알몬드 [49]와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 레너드 P. 라루 선장[50].
흥남 철수 장면에서 현봉학이 철수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에게 부탁하여 미군들이 배에 실려 있던 무기들을 버리고 대신 피란민들을 태워 철수할 수 있게 한다. 이들은 스탭롤에도 맡은 역할이 가상의 인물이나 대명사가 아닌 실명으로 등장한다. 현봉학 박사는 2000년 4월 그리고 2013년 7월에 호국 인물로 지정되고 2014년 12월에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6.25 전쟁 영웅으로 뽑히기도 하였다.[51] 다만 현봉학 혼자 9만8천명을 구한 것 까지는 아니고, 당시 한국군의 한국군 1군단장인 김백일 장군[52] 등 한국 측이 지속적으로 알몬드 소장을 설득하여 한국인들을 데려가달라고 한 것이고, 10군단의 군수 책임자로 상륙을 담당한 에드워드 포니 대령이 중간의 가교 역할을 하며, 결정적으로는 알몬드 군단장의 결단이 있었다. 이에 국가보훈처에서는 2018년에 '1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포니 대령을 선정하였다.
즉, 김백일 장군과 같은 거물의 설득과, 포니 대령이라는 실무자의 역할, 최종 책임자인 알몬드 장군의 고뇌와 결단이 합쳐져서 이루어 진 것이지, 영화에서처럼 20대의 어린 통역관이 옆에서 몇마디 했다고 해서 알몬드 장군이 즉석에서 마음을 돌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대의 어린 통역관은 영화 처럼 알몬드 장군에게 우리 국민들을 살려 달라고 몇 마디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설득하기 위해 포니 대령과 함께 동분서주 하면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따라서 흥남철수 작전에서 한국민 9만 8천명을 구한 공로는 알몬드 군단장, 김백일 군단장, 포니 대령, 현봉학 박사가 각자 1/n만큼 역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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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2대, 3대
대통령
이승만 (
정성호)
목소리 출연. 라디오를 통해 전쟁에 관해 이야기 하는 모습으로 짧게 지나가듯 출연한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온 줄 모르거나, 알더라도 실제 음성을 사용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대모사 공장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대모사로 유명한 코미디언인 정성호가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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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
남진복)
구두 닦는 어릴 적 주인공들에게 조선소 이야기를 한다.[53][54] 이 때는 이름이 직접 나오진 않고 '정 사장님'이란 대사와 함께 정주영이 몰고 가는 트럭에 써 있는 現代建設 글자가 잡히는 식으로 나온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명언을 말한다. 하지만 어린 애들에 불과했던 (그리고 전쟁으로 나라가 가난한 걸 잘 알던) 주인공 아역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 심지어 천달구는 '왜? 자동차도 국산으로 만든다 카제?'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훗날(주인공의 성인 시절) 정육점에서 고기 싸는 장면에서, 고기 싸는 신문에 현대 조선소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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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선수
이만기 (엄보용)
고깃집에서 중학교 씨름부원들이 회식하는 가운데 가장 어린아이. 중학교 씨름부 잠바를 입고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을 보며 씨름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좆문가질을 시전하는 달구에게 빡쳐서[55] 고기를 먹다 말고 가게를 나가는 장면으로 나온다.[56] 고깃집에서 달구가 "씨름은 그래 마이 쳐묵는다고 되는 기 아이고 뒤집기, 잡치기" 라며 훈계질을 할 때 이만기 역을 맡은 소년은 다른 소년들보다 상대적으로 달구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이만기는 선수시절 130kg에 육박하던 씨름 선수들 사이에서 날렵한 체격과 화려한 기술뒤집기, 잡치기을 바탕으로 한라급(85~95kg)으로 출전하여 백두급(무제한) 선수들을 이기고 천하장사에 오른 적이 있는 걸 보면 아마 노린 장면인 듯하다. 이후 이산가족찾기 후 온 가족이 다 모인 80년대 장면에서 TV로 경기 모습이 나온다. 그가 이기자 온 가족들과 심지어는 애들까지 무슨 월드컵에서 역전 골 넣은 것처럼 환호하는 장면에서 굉장히 시대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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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앙드레 김[57] (박선웅)
달구의 소개로 덕수네 가게인 '꽃분이네'에 옷감을 찾으러 서울에서 온 디자이너. 작 중 주인공 덕수의 모친은 가족들이 입는 옷 소매에 일종의 가족 표시처럼 꽃과 나비 모양 수를 놓았는데, 이제 막 의류 디자인 사업을 시작한 앙드레김은 원단을 보러 왔다가 덕수 고모의 옷소매에 수놓은 꽃과 나비 문양을 보고 큰 영감을 얻고 간다. 이 때 천달구가 "김봉남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장면과 앙드레 김이 뭔가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해도 한번에 알아듣고 패브릭을 꺼내는 고모의 모습이 이 장면의 백미. 이 꽃과 나비 문양은 80년대 이산가족찾기 장면에서도 주요 요소로 등장한다. 훗날 흑백 TV속에서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로 성공한 앙드레 김을 윤덕수가 감탄하는 모습으로 한번 더 나온다. 참고로 작중에서 앙드레 김 역시 정주영과 비슷한 방식으로 비아냥을 듣는데, "다가오는 제너레이션에서는 남녀의 영역 파괴fㅏ궤가 토픽이 될거고요" 라며 유니섹스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앙드레 김의 말에, 앙드레 김이 떠나자 꽃분이 할머니가 "왜 남자가 애를 낳는다고 하지 그러냐" 라면서 비아냥거리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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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남진 (
정윤호)
베트남 정글에서 주인공들을 구해주는 해병대원.[58] 작중 주인공 덕수의 생명의 은인이다. 2번이나 구해주는데 한번은 베트콩에게 사로잡히려는 찰나에 베트콩들을 사살해 구출해줬고 물에 빠진 베트남 소녀를 구하려다 베트콩이 쏜 총에 맞고 강물에 빠졌을 때 이를 구해준 것도 남진이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남진의 열성적인 팬이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시점 장면에서 나훈아 팬인 부인한테 "가수하면 남진이제!" 라고 주장하며 언쟁한다.[59]끝순이 남편이 나훈아와 닮아서 더욱 질색하는 듯 하다.작중에서는 전투 기술 면에서 상당한 베테랑인 것으로 나온다.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의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와 털털하고 정감있는 캐릭터로 영화에 활력을 더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참고로 우연히도 남진과 유노운호 둘다 전남 출신이며 그덕에 유노윤호가 전라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기에 처음부터 그를 캐스팅 한걸로 보인다. 실제로 윤제균 감독의 초청을 받아 국제시장을 직접 관람한 남진은 자신을 연기한 유노윤호의 "괜찮소?"라는 대사가 참 괜찮았다고 말했다. 남진에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이 있는데, 남진이 엘비스를 많이 연구한 창법을 사용해서 이기도 하지만, 둘 다 최고의 인기가수 상태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엘비스의 경우 냉전의 최선봉이었던 서독에서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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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 아나운서 (황인준)
덕수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 출연 할 때 사회 진행을 맡은 사람으로 1983년 실제 이산가족 찾기 방송 당시 진행을 맡았던 아나운서가 바로 가요무대 진행자로 알려진 그 김동건이었다. 그때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의 차분한 말투와 외모까지 진짜 그때 그 시절 실제 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싱크로율이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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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노동자 (
아누팜 트리파티)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60]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에 나올 땐 호리호리한 미남형이었다.아래 영상 자막에선 왜 서연이가 수현이라고 나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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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인 (
현봉식)
시장 내 다른 가게 차로 물건을 납품하며 차를 내부에 들여놔서 덕수와 언쟁이 오간다.
[1]
파독 면접 씬 당시 이력서를 보면 1939년생이라고 명시되어있다. 다만 덕수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80대 후반 노인으로 보인다. 아내는 같은 노인임에도 미노년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2]
실제로
부산광역시의
국제시장에 존재하는 가게다.
[3]
달구가 자신을 빨갱이라고 불러 화내다가 선생님한테 혼나는 바람에 첫인상은 삐걱대긴 했지만 결국 친해졌다.
[4]
이때 미군이 저 힘센 동네 아이들을 잘 알았는지 초콜릿을 주면서 받는 순간 최대한 빨리 튀라고 한다...
[5]
하지만 윤덕수도 절대 공부를 못한건 아니었던 게 훗날
한국해양대에 합격한다. 70년대 해양대는 해사대학만 있던 시절이고, 학비가 들지 않아 가난한데 공부는 잘하는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던 대학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입결을 보면
한양대보다 높다.
#
[6]
면접을 보던 중 면접관이 이력서에 이북 출생이라 쓰여있는 걸 보았는지 체력도 필기도 모두 합격한 덕수에게 '광부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에 덕수는 재빨리 일어나 태극기를 향해 애국가를 불렀다. 주인공이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지원자들도 경쟁하듯 일어나고, 면접관들도 당황해하다 주춤주춤 일어나 따라 부르는 촌극이 당시 애국을 강조하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때 면접 합격을 줄 때 도장 찍힌 사유가 애국심 투철이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적혔다...
[7]
이때 영자의 표정을 자세히 보면 다소 단호한 표정이었다가 덕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띠었으나 슈씨 드립을 듣고 다시 표정이 굳어져 싸대기를 때린다. 영자는 자기 임신시켜놨으니 책임지라는 뜻으로 얘기를 꺼냈고, 덕수의 축하한다는 말이 책임져주겠다는 뜻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남의 아이인지 물으니 자기 아이임을 부정하고 책임회피하는 것으로 보여 정신차리라고 싸대기를 때린 것이다. 영자 입장에서는 기껏 관계를 가져놓고 막상 아이 가졌다니까 발뺌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8]
늙은 덕수와 영자가 시장 데이트를 하며 가수에 대한 실랑이를 벌이는 씬이 있는데 영자가 "가수 하면 나훈아"라고 하며 옆에 있는 생선가게 아주머니에게도 그렇지 않냐고 맞장구 치는데, 덕수는 "가수는 무조건 남진이제!!"라며 화를 낸다. 부산에서는 전라도 출신인 남진보다는 같은 고향 출신인 나훈아의 인기가 압도적인데, 그럼에도 덕수가 남진을 감싸는 배경에는 이런 인연이 있었던 것. 애초에 덕수는 경상도 출신도 아니다.
[9]
가게를 팔라고 도장을 찍으라는 상인들에게 도장으로 대갈빡을 뽀샤분다 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잠시 물건을 받으러 옆 가게에 주차를 한 택배기사 에게 괜히 또 막 화풀이를 해대고 그런 그를 모든 사람들이 불쾌하게 노려보자 뭘 꼬라보노!! 라며 고함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녀 옆에서 한없이 누그러지는 모습은 덤
[10]
엔딩 크레딧에 배역 이름이 스리랑카인이라고 나온다. 배우는
오징어 게임의
알리 압둘로 유명해진
트리파티 아누팜이다. 다만 아누팜의 실제 국적은 스리랑카가 아닌 인도다.
[11]
이때 "남이사 커피를 마시건 숭늉을 마시건 니가 와 지랄이고?" 라 호통을 치자 당연히 불량학생들은 “아따 할배요 점마들이 지금 커피나 처먹을 짬밥입니까 지질이도 몬살아서 남의 나라 일하러 온 주제에” 라고 지껄이자 “와? 남의 나라 일하러 오면 커피도 몬사묵나? 으이?!” 라며 그놈들을 마구 때린다.
[12]
덕수는 아버지 윤진규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장례식 또한 치르지 않았기에 정식 영정사진은 아니다. 다만 윤진규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머지 가족들에겐 사실상 영정사진으로 받아들여진다.
[13]
참고로 캐릭터 이름은
#윤제균 감독의 아버지 성함에서 따 왔다고 한다. 영화 전반적인 메시지도 그렇고, 이를테면 아버지 세대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인 셈이라고. 아래 나오는 천달구와 함께,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서도 윤덕수라는 인물은 나온다.
[14]
여담이지만 소설에선 저 말을 하곤 눈을 스르륵 감은 채 옆으로 쓰러지고, 영자가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만 영화가 막순이를 만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구조 상 지병으로 골골대지도 않는 상황의 덕수가 갑자기 죽는 장면을 넣기엔 어색하거니와 여운이 깨진 억지감동 씬이라고 욕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서 뺀 것으로 보인다.
[15]
이에 자극 받은 동료 광부들이 위험하다는 현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덕수와 달구를 구출해낸다.
[16]
당장 장남이자 남편인 덕수부터가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가정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여 베트남으로 가며 꿈을 포기했다.
[17]
불과 십여년 전만해도 미혼여성이 면접을 보면 결혼얘기는 당연한듯 나왔다
[18]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9]
파독 광부 면접 당시 응시 원서에 합격 도장을 찍는 도중에 생년월일이 나왔다.
[20]
결국, 전쟁통에 선생님이 천막치고 수업하고 있는데 덕수가 발끈해서 "내 빨갱이 아이라고 했제!" 라고 소리치자 선생이 듣고 "수업 중에 빨갱이 와 나오노"하고 덕수를 혼낸다. 정작 빨갱이라고 놀린 달구는 선생님이 돌아보자마자 잠자는 척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21]
사실 처음부터 달구는 서양인 여성과 한번 자 보겠답시고 독일까지 온 것이었고 사감도 본인 스스로가 관심을 가지고 먼저 들이댔던 것이었지만 뒤늦게서야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딱히 묘사되지 않는다. 음탕한 말과는 달리 사실은 순수한 연애를 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보통의 여자들처럼 쑥쓰러워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인지, 매우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사감에게 크게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사감이 춤을 추며 본인을 유혹하는 달수를 보며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생각보다 키가 너무 커서 당황했을 가능성도 있다.
[22]
"친구를 전쟁터에 데려오는 놈은 니밖에 없을 기다"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구시렁대면서도 생사를 함께한다. 물론 이 얘기를 들은 덕수도 "니도 내 서독에 데리고 갔잖아!"라고 웃으며 받아치고 달구도 다시 "탄광이랑 전쟁터랑 같나 이 X끼야~"라며 또 웃으며 받아친다.
[23]
천달구가 37세인 1976년에 결혼했으니 자식이 있다면 1970년대 후반생~1980년대생이다. 갓 사회에 정착할 나잇대여서 달구와 따로 사는 듯하다. 부산 토박이인 달구의 형제자매도 없거나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24]
아니면 고지식한 성격 탓에 가정 내에서 겉도는 덕수의 사정을 알고 굳이 찾아와 준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제사 때 덕수의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족같은 친구라는 증거다.
[25]
이 아버지가 살아있었더라면 막순이를 찾지 못했더라도 북한에 계속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봐야 가족들도 없을 테고, 또 시기가 시기다 보니 후에 따로 월남하려고 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철수 이후에 월남한 흥남 피난민들이 몇몇 있었던걸 보면... 따라서 살아 있었더라면 별다른 상황이 없는 이상 모든 가족들이 있는
부산으로 갔을 가능성이 큰데, 그렇지 아니한 걸 보아 흥남 철수가 얼마 안 지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만약 이렇다면 이걸 모르고 아버지를 기다린 덕수는 그저 비참하다. 혹은 어찌저찌 살아남았고 사정상 못 갔다고 해도 1983년 이전에는 확실하게 사망했을 것이다.
[26]
이걸 마냥 이렇게만 보기도 그렇다. 당시 시대상으로서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덕수는 돈을 벌 수밖에 없었고, 특히 공부 잘 하는 남동생의 뒷바라지나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덕수는 더욱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덕수는 남동생을
서울대에 보냈고, 여동생도 시집 잘 보낸 것을 보면 자신의 할 일도 잘 했고, 나름대로 그 시대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당장에 주위를 보면 본인이 학교를 못 나온 것은 둘째 치고, 동생이나 자식 학비까지 못 대줘 줄줄이 학교를 못 나온 사람도 많다. 덕수가 자신의 인생만 챙겼다면 덕수 본인은 영화에서 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동생들은 지못미...
[27]
참고로 아들로 나온 황정민보다 3살 어리고 며느리 김윤진하고 동갑이다. 그래도 노인 분장을 해서 그런지, 위화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28]
가족들의 옷에 바느질로 나비와 꽃을 장식했는데, 이를 반영한 건지 영화의 시작에 덕수네 가족을 상징한 나비가 날아오고, 영화의 끝에 덕수 부부의 주위 담벼락에 앉아 있던 나비가 다시 날아간다.
[29]
그래서 달구는 승규의 서울대 합격 소식을 듣고 놀라서 "와? 진짜 미친 놈(...)이네!" 라고 반응을 하기도 했다. 물론, 재수도 안하고 곧바로 서울대에 합격해서 대단하다고 칭찬한 것이다.
[30]
이때 심하게 우는 어머니를 힐끗 보는데, 이장면은 두번 사용됐다. 덕수가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과 대화하는데, 바로 전에는 흰 와이셔츠를 입고 어머니를 쳐다보다 바로 다음장면에서는 파란색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있다. 마지막에 막순을 찾았을 때는 울면서 얼굴 개그를 시전 아무래도 감독의 실수거나 장면 부족등이 원인인듯 하다.
[31]
이때
전소미가 살짝 나온다.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 이만기가 이기자 일어서서 환호하는 장면.
[32]
그리고 승규는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형한테 미안한 감정이 있어 본인이 파독을 가겠다고 자처했을 만큼 인간성은 좋다. 물론 그는 형 덕수에게 공부나 하라고 핀잔을 듣고 포기하지만, 오히려 일도 하면서 공부도 몰래 도강하면서 고생해야했던 덕수의 짐을 덜어주게 된 부분도 있다. 승규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덕수는 공부까지 해야했던 짐을 덜었기 때문.
[33]
노년 때도 가족 모임에 참석한 것과 비수기도 꽤 많았던 꽃분이네가 오랫동안 유지된 걸 보면 승규가 졸업 후 좋은 곳에 취직하여 덕수에게 큰 경제적 도움을 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덕수의 자본만으로는 꽃분이네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34]
실제로 한국계 미국인이다.
[35]
실제로 고아원에서 오래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된 경우는 1980년대까지도 흔할 정도로, 가족을 찾은 장기실종아동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으로 입양되어 살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36]
전소미가 딸 역할로 살짝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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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소매는 오빠 덕수가 갖고있었다.
[38]
그녀가 겪었을 인종차별 문제 등
[39]
남편도 가족들과 꽤 두터운 관계를 유지 중인데 재회 때 아내, 딸과 함께 먼 길을 같이 달려온 것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씨름 경기를 봤을 때 같이 환호하는 등 인성이 꽤나 좋은 사람인 듯 하다.
[40]
자신의 아버지도 실종 되었음으로.
[41]
결국 이 패드립에 빡친 어머니가 닥치라고 욕하면서 한 대 때린다.더 때렸어야 했다.
[42]
윤덕수는
베트남에서
남진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났기에 남진의 팬이 되었는데, 끝순의 남편은 헤어 스타일이며 눈매까지
나훈아를 빼다 박았다(…)
[43]
작중에서는 황정민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황정민보다 5살 어리며, 조카며느리인 김윤진보다도 2살 어리다.
[44]
여기서 대본에는 있지만 영화에는 안 나오는 대사가 있다. 덕수가 앙드레 김한테 "남자가 창피하게 여자 옷이나 만들다니, 안 쪽팔려요??"라고 물으니까, 앙드레 김이 "다음 세대에는 남녀가 평등한 시대가 올 거야."라고 말하면서 간다. 그리고 덕수가 혼잣말로 "아예
여자 대통령도 나온다고 하지??"라고 하면서 비웃는다.
[45]
굳이 낙동강 방어전투가 아니여도 기타 전투에서 참전했지만 거기서 부상을 당해서 전역했을수도 있다. 혹은 독립군이거나 의병이거나
[46]
아직도 충분한 보상은 못 해줬고, 이젠 그들이 떠나가고 있으며, 국가는 은근슬쩍 그 보상을 파묻으려 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도, 베트남전 참전용사도 그 충분한 보상은 영영 받지 못할 전망이다.
[47]
이것으로 보아 덕수가 영자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었을지 몰라도 자녀들에겐 딱딱한 아버지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덕수의 노년기 성격을 보면 아버지(도주 할아버지) 일을 본인 혼자서만 끙끙 앓는 모습이 보인다.
[48]
정치인
김무성의 아들.
[49]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군사작전에 관해서는 천하의 등신으로, 미국 역사상 최대의 패전이었던
장진호 전투로 미국 내 평판도 안 좋다. 게다가 맥아더의 참모장이자 그가 뒤를 봐주는 심복이었기에 전쟁사 서적 등에서 그 자신 뿐만 아니라 맥아더의 실책까지 대타로 나서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게다가 국군 3군단이 와해된
현리 전투 패주의 단초를 제공하기까지 해 국내외로 똥별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흥남철수를 승인하고 지원한 것 때문에 한국 한정으로 위인급 평가도 받는다.
[50]
선장은 직책일 뿐 아니라
상선사관의 계급 명칭이기도 하므로 두 번 기재. 라루 선장은
한국 전쟁 이후
가톨릭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여 '마리너스'라는 이름(수도명)의
수도자가 되었으며, 평생
흥남 철수와 관련된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리너스 수사는 2001년에 선종했고, 사후에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마리너스 수사가 지내던
미국의
수도원이 2000년경 경영난으로 폐쇄되려던 것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지원해서 복구했다고 한다.
# 이 사연은
공지영 마리아 작가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51]
현봉학의 남동생 현시학 제독은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 멤버 중 한 사람으로, 그 또한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의 7번함 함명(PKG-718 현시학)으로 이름이 쓰이고 있다.
[52]
간도특설대 출신의 친일반민족 행위자
[53]
조선소 이야기 중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땅 사진을 보여주며 이 땅에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만들테니 니들이 이 배를 사가면 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정주영 회장은 1972년 울산 미포 바닷가 사진과 유조선 도면 사업계획서만 들고 조선소 허가를 받는 데 성공한다
[54]
영화 대사에서는 배만드는게 꿈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이분의 요청으로 현대중공업이 탄생되었다.
[55]
정확히는 그 옆에 앉아있던 애가 빡쳐서
[56]
그냥 고기만 먹고 있을 땐 일개 엑스트라로 보이지만, 빡쳐서 나갈 때 껴입은 점퍼 뒤에 이만기 이름을 비추는 장면이 있다.
[57]
본명이 김봉남이다.
[58]
남진이 작중 등장한 이유는 그가 정말 실제로 베트남 파병 참전이 경력이 있기 때문.
[59]
그 시절 가수 팬덤에 있어서, 호남은 남진, 영남은 나훈아라는 일종의 지역감정섞인 팬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지라 때문에 부산사람인 영자와 주변에 모든 사람들 모두 나훈아의 편을 들었지만 만약 영자가 남진이 베트남에서 남편을 구해준 은인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나훈아가 남진보다 낫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테니, 덕수는 한번도 베트남에서 그와 만날 얘기를 전혀 한적이 없는게 확실하다.
[60]
훗날
오징어 게임의
알리 압둘로 유명세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