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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8:11:21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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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산광역시 휘장_White.svg 부산광역시 소재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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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4122804230005100_P2.jpg
해당 사진이 영화 국제시장의 무대가 되었던 꽃분이네가 있는 골목이다. 원래 '영신'이라는 가게였으나 영화 촬영으로 인해 바꿨고 잡화점이였으나 현재는 커피숍으로 바뀌었다.

1. 개요2. 역사3. 대중교통4. 관련 문서

1. 개요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 作) 中, 2절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3가, 신창동2가, 신창동3가, 신창동4가, 창선동2가에 위치해 있는 재래시장이다. 부산의 또다른 대형시장 자갈치시장이나 부평깡통시장, 근래 유명해진 보수동 책방골목 등과도 길 하나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 전부 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이곳에 간다면 한꺼번에 가보는게 좋다.

2. 역사

일제강점기 당시 이 곳은 일본인 구역이었으며 조선인 구역은 지금의 동구 일대였다. 일본인 구역이라서 조선인은 출입금지까지는 아니었지만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대도시들은 이렇게 주 활동구역이 민족별로 나눠진 경우가 많았다. 가령 서울의 경우 중구 명동, 충무로(혼마찌도오리) 일대가 일본인 구역이었고 야인시대 등에서 그 분위기가 묘사된다. 그러다가 8.15 광복과 함께 수만 명의 일본인이 한꺼번에 고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겨버린 도시 중심부의 빈 공간에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떼기시장이라는 이름이었다.[1][2]

6.25 전쟁이 터지고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되면서 전쟁에서 안전한 유일한 곳이 되자 전국에서 엄청난 피난민과 미군 구호물자, 밀수품이 부산항으로 유입되었고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에 국제시장은 구호품을 빼돌려 팔면서 그야말로 뭐든지 구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외제품을 주로 취급하던 흔적은 지금도 이웃인 깡통시장 등에 남아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국한 재일교포와 돌아갈 곳 없는 이북 출신 피난민들은 연고가 따로 없어 근처에 정착해 국제시장 상권에서 활동한 경우가 많았다.

1953년 1월 30일에 일어난 국제시장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일본 제품이나 한소수교 이후에는 러시아 보드카 등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건들을 다양하게 취급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부산이 관광지가 되며 조금씩 알려지다가 동명의 영화가 히트를 친 이래 전국에 알려져 방문객 수가 늘었다고 한다.

3. 대중교통

부산 지하철 1호선 남포역, 자갈치역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정도면 찾아갈 수 있다. 다만 자갈치역이 더 가깝다. 중앙역에서 내려서도 갈 수 있지만 제법 거리가 있다. 꽃분이네를 기준점으로 잡는다면 자갈치역에서 가는게 제일 좋다.

그 밖에도 국제시장을 직접 경유하는 15번, 40번, 81번, 86번, 126번, 186번 등을 타면 올 수 있다. 이 중 국제시장을 양 방향 경유하는 노선은 40번과 81번, 86번 186번[5] 뿐이니 이 점 참고해야 한다.

4. 관련 문서



[1] 광복직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들 상당수가 귀국하는 배에 오르기 전 가방이나 물품등을 한국인들에게 압수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압수된 물건들을 경매로 파는 곳이 당시 도떼기시장 지금의 국제시장이다.(그 밖에 장물이나 밀수품도 많았다) 도떼기 란 말은 일본말 돗따(取った, Totta)에서 나왔는데, 챙겼다, 땄다, 잡았다는 뜻으로 경매시장에서 물건을 낙찰받기 위해 사람들이 '돗따'라고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 [2] 지금도 부산 방언으로 지나치게 시끄럽거나 어수선한 분위기를 두고 "이 무슨 도떼기시장도 아이고"라는 식으로 나무라듯 말하는 데에 사용빈도가 높다. [3] 전쟁 중에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체가 숫제 미군PX이던 시절도 있었다. [4] 보통 빼돌려지는 망실률이 1~5% 정도였다는데 최소 그 두 배 이상을 해먹은 셈.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워낙 사람이 많고 못 살았기 때문에 빼돌려지는 것을 알고도 일선 차원에서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5] 이들 두 노선은 국제시장 경유 후 중구청, 메리놀병원으로 올라가서 산복도로를 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