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 |
법률 | 이벤트 | 정당과 이념 | 주요 국제 분쟁 | |
국가 | |
국가 |
북아메리카 |
남아메리카 유럽 ( 독일, 브리튼 제도) 구소련 | 동아시아 | 동남 · 남아시아 중동 및 북아프리카 | 서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
|
관련 모드 | |
The Red Order | Victoria 3 버전 |
1. 개요
중동 국가들은 시작시점에서 대부분 이탈리아의 세력권에 들어와있지만 1960년대 말 이탈리아의 착취에 지쳐 바트주의[1]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기세를 떨치고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이 일어나 석유 위기가 발발하게 된다. 오일 쇼크 이후 바트주의 국가들은 아랍 연합(United Arab States, 이하 ☭로 표시함)[2]에 가입한다.북아프리카 국가 중 알제리는 현재는 명목상의 프랑스 지배령으로, 프랑스를 대신하여 트라움비라투스 세력이 각국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두 나라는 트라움비라투스 붕괴 이후 알제리의 지배권을 두고 격돌한다.
해당 지역에는 플레이 가능 국가가 없다.
1.1. 이란 제국
업뎃 예고[추후 결정]- {{{#!folding 국민정신
-
도이치-페르지셰 석유회사
본래 앵글로 이라니안 석유 회사(AIOC)였던 이 회사의 소유권은 제2차 세계 대전 말 대영제국이 분할되는 가운데 독일에게 넘어갔습니다. AIOC는 도이치 페르지셰 석유 회사(DPÖ)로 이름을 바꾸고 이란에서 나오는 석유를 한 방울까지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때문에 우리는 석유를 팔아도 헐값밖에 받질 못합니다.
자원 획득 효율: +10.00%
시장으로 가는 자원량: +10%
석유당 연료 획득량: +20.00%
독일이 이스파한과 파르스 석유 자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
모사데크의 유산
우리 나라는 여전히 1953년의 모하메드 모사데크 총리 당시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은 모사데크가 DPÖ를 국유화하자 독일이 주도해 일으킨 쿠데타를 이란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친독 정권이 집권하고 샤가 크게 힘을 얻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0.10
소비재 공장: 20.0%
안정도: -10.00% -
근위대
샤에게 맹렬히 충성하는 근위대는 중동에서 가장 정예한 전투부대입니다. 샤의 호위병이자 군대의 엘리트 집단으로 우리나라의 최고의 병사들이 이곳에서 나옵니다.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장비들과 가장 혹독한 훈련, 그리고 엄격한 채용 시험을 통해 그들은 페르시아의 불사부대의 진정한 후계자로 거듭납니다.
더위 적응 획득치: +10.0%
정예병 공격: +10.00%
정예병 방어: +20.00%
-
{{{#!folding 멸망 문구
왕관과 권좌는 피의 유약한 반석 위에는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 집권이념: 준입헌군주제(가부장주의, 인민당)
페르시아 침공과 전후 독일이 벌인 막대한 지원의 영향으로 친독 국가가 되었다. TNO 세계에서는 모하메드 모사데크 실각에 독일이 개입했다.
내부 상태는 실제 역사처럼 별로 좋지 않은데,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바닥을 기고 사람들은 개혁을 원하고 있다. 거기다가 독일에서 전파된 우생학 때문에 인종 간 갈등도 심각한 상황이다. 독일은 이러다가 이란이 뒤집어져 독일 영향권에서 빠져나갈까봐 자유주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오일 쇼크 이벤트를 겪고 1971년에 팔라비 황제가 암살당하면 내전이 일어난다.
오일 쇼크 도중에 벌어지는 이벤트인지라 냉전 당사자국들 모두가 사활을 걸고 참여를 하고 내전에서 승리시 이란 지역을 자신의 진영 밑 경제권으로 완전 편입시킨다.
- 파라 팔라비[3]의 이란 제국 - 전제군주제 (전제주의, 신이란당) 독일의 지원을 받는다. 수도는 테헤란
-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 - 신정 (전제주의, 이슬람 공화당) 일본의 지원을 받는다. 수도는 콤
- 샤푸르 바크티아르[4]의 이란 샤국 - 자유보수주의 (보수주의) 수도는 야즈드.
- 이라즈 에스칸다리[5]의 이란 사회주의 연방 - 공산주의 (이란 투데당) 수도는 타브리즈.
- 카림 산자비[6]의 이란 민주공화국 - 자유주의 (이란 국민전선) 수도는 시라즈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
- 셰르 모하마드 말리의 발루치 해방전선 - 이슬람 민주주의 (보수주의) 수도는 이란 동남부인 이란샤르. 발루치 분리주의 세력답게 정부 전복을 위해 봉기한 이후 동맹이 무너질 때 내전에서 아예 이탈한다.
독일의 지원을 받은 이란 제국이 내전을 진압할 경우 그대로 컨텐츠가 종료되지만 일본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혁명동맹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해 2차 내전이 벌어진다.
1.2. 이라크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회원국
- 집권이념: 사회민족주의(가부장주의, 주권위원회)
- {{{#!folding 국민정신
-
7월 14일의 유산
7월 14일 혁명 이후 거의 5년이 흘렀지만 여러 면에서 혁명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혁명은 이탈리아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대중적이고 광범위한 봉기로 시작되었지만, 급속하게 서로가 서로와 싸우는 전쟁, 즉 무정부 상태로 진행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시아파와 싸웠고, 민주주의자들은 군국주의자들과 싸웠으며, 모두는 바트주의자와 싸웠습니다. 싸움을 종식시킨 것은 압둘카림 카심 장군의 군사 쿠데타와 그의 국민적 합의에 의한 정부 수립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카심은 모든 정당에서 이라크의 지도자로 인정받았지만 그다지 강력한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들러리 정당들이 그에게 대항하기에는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약하고, 이탈리아인들은 독일이 지원하는 바트주의에 대한 보루로서 그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영원히 필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합의에 기반한 권력입니다.
안정도: +15.00%
전쟁 지지도: +5.00% -
부상하는 다와당
이라크의 많은 정치적 현장은 수십 년 동안 일정했습니다. 외세의 지원을 받는 허약한 꼭두각시 정부, 다수의 지지를 받지만 나머지가 모두 반대하는 범아랍주의자들, 민주주의를 주절거리는 노인들, 공산주의를 설파하는 젊은이들, 군대(그리고 다른 모든 곳)의 기회주의자와 부정부패. 그러나 이라크의 경제 침체와 중동 전역에서의 그들의 신앙에 대한 억압(실제로나 인식적으로나)에 고무된 이라크의 시아파들은 그들과 그들의 불만을 대표할 목적으로 설립된 이슬람 다와당에 가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수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당 자체는 단합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라크의 안정이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당의 위상은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안정도: +5.00% -
이탈리아의 간섭
서류상으로 이라크는 틀림없이 이탈리아 영향권에서 가장 독립적인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로마의 후원자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석유는 이탈리아인에 의해 추출되고, 군대는 이탈리아 고문에 의해 증강되고 훈련되며, 국가를 무기력하고 의존적으로 만드는 굴욕적인 조약으로 내정간섭에 시달립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자국이 직면한 끈질긴 노예 상태를 비난하지만, 그들 중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후원과 부정부패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어 함부로 그것에 대해 행동할 수 없습니다.
정치력 획득: -5%
안정도: +5.00%
무로 생산 단위: -2.0 -
비효율적인 석유 산업
막대한 석유 매장량의 발견이 일종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라크를 방문한다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이라크의 사막에는 우뚝 솟은 유전이 있으며 도시에는 정제소가 가득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평균 이하입니다. 생산된 석유는 종종 도난당해 암시장에서 팔리거나 이라크의 관료주의, 인맥주의, 부정부패의 미로 속 어딘가에서 분실됩니다. 모든 확률을 제치고 배럴이 실제로 선적된다 해도 돈은 대부분 그것을 선적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갈 것입니다. 여분의 동전 한 두 개가 제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해도 실제로 석유를 발견, 추출, 정제한 사람이 아닌 정계, 재계 엘리트의 주머니에 빠르게 들어갈 것입니다.
합성 석유: -10.00%
석유당 연료 획득량: -10.00%
필요 소비재: +5.00%
정제소 건설 속도: -10.00% -
바트주의의 유령
이 권역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의 아랍인들은 제국주의와 서구의 퇴행으로부터 자유로운 통일된 국가를 원하며 점점 더 흥분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조짐은 이전 7월 14일 혁명(이집트와 다른 국가의 봉기에서 영감을 얻음)에서 터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의 실패는 이라크의 범아랍주의를 패배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트당을 통해 이라크의 범아랍주의를 은밀하고 효율적으로 고도로 조직화시키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바트주의자들이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있습니다. 선전물을 제거하려는 정부와 수비대의 공동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전물은 밤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막에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닥칠 것이라 예상되는, 권력에 굶주린 열렬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무진장 공급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안정도: -15.00%
영국-이라크 전쟁에서 추축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가 승리한 후 파시스트 성향 대령 4인방[7]을 바지사장으로 한 이탈리아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1958년 범아랍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괴뢰정부를 무너뜨리고 이탈리아 제국주의를 몰아내려 했다. 이에 범아랍주의자이자 이탈리아와 연줄이 있는 장교인 아브드 알카림 카심이 쿠데타를 일으켜 괴뢰정부와 혁명가 모두를 무너뜨리고 이탈리아와의 협상을 벌였다. 협상 결과 카심은 이탈리아의 소규모 주둔군을 받아들이고 아랍 통일을 외치지 않는 대신 이라크 공화국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카심은 이라크를 현대화시키기 위해 토지 개혁, 사회 개혁, 교육 정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감시를 받고 있으며 이라크 내에 점점 퍼지는 바트당과 가말 압델 나세르 지지자들은 카심을 끌어내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1970년에 석유 위기와 함께 내전이 일어난다.
- 이라크(과도정부(전제주의)): 지도자는 비토 미첼리.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다. 이탈리아가 OFN에 가입했다면 미국의, 공영권에 가입했다면 일본의 지원을 받는다.
- 이라크 이슬람 공화국(이슬람 민주주의(보수주의)): 지도자는 아부 알 카심 알 호에이. 이탈리아가 공영권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일본의 지원을 받는다.
- 바트주의 이라크(바트주의(사회주의))☭: 지도자는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 독일의 지원을 받는다.
- 이라크 공화국(가부장적 보수주의(보수주의)) 지도자는 아브드 알-라만 알-바자즈. 이탈리아가 OFN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
- 쿠르디스탄(사회민족주의(가부장주의)): 지도자는 무스타파 바르자니
1.3. 레반트 총독부
업뎃 예고[추후 결정]-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이탈리아 제국의 식민정부
- 집권이념: 식민정부(전제주의, 이탈리아 군정청)
- {{{#!folding 국민정신
-
총독군
달라치에사 총독의 강력하고도 공정한 통치 아래, 레반트의 군대는 이탈리아의 식민지들 중에서 최강으로 등극했습니다.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 양쪽의 반란을 진압해야 하는, 어쩌면 소모전으로 갈지도 모르는 레반트의 군대는 중동 지역의 상황과 전투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2.00%
보급 소비량: -10.0%
사단 회복률: +1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20.0%
더위 적응 획득치: +15.0% -
불편한 평화
이탈리아식 식민지배의 고전적인 통치 방법은 극단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레반트 이탈리아 당국은 중동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레반트의 정치 및 준군사조직인 하가나와 파타와 협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가나는 총독부의 승인을 받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하는 민병대이고, 파타는 독립 아랍국으로써 레반트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온 아랍 단체이자 준군사 조직입니다. 두 조직 모두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총독부와 협력하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지만, 서로 간에 관계 진전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탈리아인과 유대인과 아랍인들 사이에 종잇조각처럼 얇은 불안한 평화는 당장이라도 찢겨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10.00% -
맞부딪히는 극단주의
레반트 소요사태에 대해 일반적으로 비폭력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이탈리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엔 여전히 이탈리아 정부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가나의 온건주의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레반트 전체를 걸친 유대국가를 위해 싸우며, 이탈리아인들과 아랍인들을 계속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정시오니즘 준군사조직 이르군을 결성했습니다.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수많은 공산주의자, 좌익 민족주의자 및 기타 단체들의 느슨한 연합체로 결성되어 있는 하라킨 또는 아랍 민족 운동이라 불리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독립 아랍 레반트를 위한 운동을 벌이는 중이며, 이탈리아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꼭두각시로 여겨지는 시오니스트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단체들은 이탈리아 정부의 중요한 골칫거리로 판명되었으며 이탈리아 군인과 민간인들을 모두 공격함으로써 주민들 사이에 두려움과 공포를 퍼트렸습니다.
사단 손실: +10.0%
안정도: -20.00% -
트란스요르단 토후국
레반트 총독부의 총독께서 서부 지역의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전쟁 명분 정당화 묘수로 요르단 강 너머의 영토에서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을 구성했습니다. 사실상 이탈리아의 종속국인 트란스요르단은 장교단(이탈리아인 장교단)에게 통제당하고 있지만, 명목상으로는 ENI와의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성 넘치는 석유 거래를 위해 이탈리아와 협력하여 에미리트를 현대화하고 개발할 수 있는 충분한 부를 제공받은 에미르 후세인 빈 탈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최근 트란스요르단의 에미르인 후세인은 전통주의적이고 온건한 정당인 파타의 후원자가 되었고, 그의 이러한 행보에 이탈리아는 약간의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안정도: +10.00% -
식민정부
이곳은 독립국가보다는 이탈리아가 총독으로 다스리는 총독령에 가깝습니다. 외교 정책과 내부 정책은 로마의 의지에 묶여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로마 독수리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AI 변동치: 동맹 호출 욕망: -1000
AI 변동치: 동맹 참전 욕망: -1000
프랑스의 붕괴 이후 공백이 된 레반트에 이탈리아가 세운 식민지. 현 총독은 이탈리아 헌병군 출신인 카를로 알베르토 달라 치에사[8]
텔아비브야파에 유대인들이 많은데, 이는 무솔리니가 아틀란트로파에 대한 보복으로 나치 독일에서 도망쳐오는 난민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유대인이었던 난민 대부분이 시오니즘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는데, 이 때문에 원래 살던 아랍인들과 시오니스트들이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이르군[9] 등 준군사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공격했다. 달라 치에사 총독은 극단적인 조직들은 때려잡고 온건한 조직들은 협상하는 상태로 일시적인 평화를 이루었지만 이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터키와의 영토 분쟁이다. 트리움비라투스가 와해되기 시작하며 터키는 이탈리아에게 "본래 터키의 것이 되어야 할 땅들"을 내놓으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땅들에는 도데카니사와 키프로스 뿐 아니라 레반트 총독부가 다스리는 레바논과 다라도 있었다. 터키의 침공이 머지 않았기에 레반트 총독부는 전쟁을 빨리 준비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질 경우 결말은 다음과 같이 난다.
- 터키가 승리: 터키가 도데카니사, 키프로스, 레바논, 다라를 가져가고 거기 살던 이탈리아인들을 팔레스타인과 트란스요르단으로 돌려보낸다.
- 치아노의 이탈리아가 승리: 터키에게서 보상금을 뜯어내고 다마스쿠스 지역을 비무장지대로 만든다.
- 스코르차의 이탈리아가 승리: 이탈리아가 다마스쿠스 지역을, 이라크가 모술 지역을 가져간다.
터키와의 전쟁 이후 유대인과 아랍인, 이탈리아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회의가 열린다. 회의 이벤트 및 중점에 따라 여러 결과가 도출된다.
- 회의 성공시
- 2 국가 방안: 예루살렘은 중립화하고 나머지 영토는 이스라엘, 레반트 등으로 분할되어 예루살렘을 지도자로 하는 세력 '레반트 연합'에 가입한다.
- 예루살렘(과두정 (가부장주의, 이탈리아 법률 자문단)): 지도자는 움베르토 라 로카
- 이스라엘(노동시오니즘 (진보주의, 마파이)): 지도자는 다비드 벤구리온. 이후 시몬 페레스, 혹은 골다 메이어가 승계한다.
- 팔레스타인(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 파타 - 사회주의 파벌)): 지도자는 야세르 아라파트
- 요르단 왕국(전제군주제 (전제주의, 압둘라 궁정)): 지도자는 압둘라 1세 빈 알후세인
- 레바논 공화국(국민자유주의 (자유주의, 국민자유당)): 지도자는 카밀 샤문
- 아랍 연합 왕국: 민족문제에 대한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모든 영토를 압둘라 1세 빈 알후세인에게 넘겨버린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 회의 실패시
- 공산주의 혁명☭: 지도자는 주르지 하바시.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성향의 아랍인들이 들고 일어나 아랍 공산주의 정권을 세운다. 이후 아래의 두 경로로 성향이 변화한다.
- 팔레스타인 민주 공화국 (아랍공산주의 (공산주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요르단 사회주의 공화국(아랍 공산주의(공산주의), 지도자는 나예프 하와트메흐), 레바논 사회주의 공화국(바트주의 (사회주의, 알-모라비툰), 지도자는 라시드 카라미)을 속국으로 독립시킨다.
- 아랍 인민 공화국 (아랍공산주의 (공산주의, 아랍 민족주의 운동)): 요르단, 레바논을 그대로 유지한다.
- 이르군의 봉기: 지도자는 메나헴 베긴. 시오니즘 민병대 이르군이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임시정부 (가부장주의, 헤루트))을 세운다. 레바논 자유국(국민자유주의 (자유주의, 국민자유당), 지도자는 카밀 샤문)을 속국으로 분리시키고 이후 아래의 두 경로로 성향이 변화한다.
- 이스라엘(수정시오니즘 (자유주의, 일반 시오니스트들)): 요르단을 유지한다.
- 이스라엘(수정시오니즘 (보수주의, 리쿠드)): 트란스요르단 에미르국(전제군주제 (전제주의, 압둘라 궁정), 지도자는 압둘라 1세 빈 알후세인)을 독립시킨다.
이후 압둘라 1세는 2년 내로 사망하고 장남인 탈랄은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차남인 나예프, 혹은 손자인 후세인이 뒤를 잇는다.
업데이트로 플레이 불가 국가가 되었다.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등 지중해 국가들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면 컨텐츠가 더 생길 것으로 보인다.
1.4. 모술-키르쿠크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터키의 통합 괴뢰국
- 집권이념: 귀족적 보수주의(전제주의, 바르자니-합작파)
정식 명칭은 모술-키르쿠크 총독부. 지도자는 아마드 바르자니.
1.5. 시리아 국민국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터키의 괴뢰국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시리아 국민국 위원회)
석유위기가 발발하면 터키에게서 독립한다.
1.6. 걸프 총독부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이탈리아 제국의 식민정부
- 집권이념: 식민정부(전제주의, 걸프 이탈리아 행정부)
1.7. 예멘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회원국
- 이탈리아 제국의 제휴국
- 집권이념: 전제군주제(전제주의, 하미드 알-딘)
- {{{#!folding 국민정신
-
아덴 병기창
이탈리아가 예멘의 보호령 지위를 줌에 따라 이탈리아는 국가에서 제일 소중한 곳인 아덴 도시를 차지하였습니다. 인도양에서 제일 중요한 항구였던 아덴은 남아라비아에서 이탈리아가 제일 많은 병력과 함선을 배치시킨 최거점 도시가 되었습니다. 도시민 대부분은 이탈리아의 지배에 분개하고 있지만, 아덴 병기창은 이탈리아가 유일하게 예멘과 가까우면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 군사력을 투영할 수 있는 유일한 주요 거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5.0%
조선소 생산량: +20.00% -
사우디의 영향
예멘은 명목상으로는 사우디의 보호국이고, 이탈리아가 그곳에 실제로 영향을 끼칠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가끔 반역적인 부족 지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급습 외에는 예멘의 교두보를 떠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최근들어 예멘 국왕은 점점 사우디의 돈과 정치적 자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내부에서는 리야드가 남쪽의 새로운 왕국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것에 대해 몹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매일 정치력 획득: +0.10 -
부족과 종파
예멘의 풍경은 거의 대부분 산지, 언덕, 시골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국왕과 이맘은 명목상 사나에 있는 궁전만을 지배하는 한편, 넓은 시골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각자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나라의 지배적인 소수민족이 자이드파인 반면 예멘인의 대다수는 수니파로 이미 분단된 나라에서 종파주의가 더해졌습니다. 이에 예멘 젊은이중의 많은 수가 개혁적인 범예멘주의로 이념을 차츰 변화하면서 나라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안정도: -10.00%
이탈리아 식민지 중에서는 쩌리에 가까운 세력. 1950년대에 무솔리니가 트리움비라투스 회의장에서 예멘 이맘의 이름을 까먹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지도자는 에미르 아흐마드 빈 야햐. 1969년 6월에 예멘 내전이 발발한다.
- 예멘(전제군주제 (전제주의)): 지도자는 아마드 빈 야히아. 이탈리아가 OFN에 소속이면 미국의, OFN소속이 아니라면 일본의 지원을 받는다.
- 예멘 아랍 공화국(좌익 민족주의 (사회주의)): 지도자는 입둘라 알살람. 예멘 내전 승리시 사우디 아라비아를 공격한다. 독일의 지원을 받는다.
1.8. 오만
- 집권이념:전제군주제 (전제주의, 사이드 왕가)
- {{{#!folding 국민정신
-
늙은 술탄
술탄 사이드 빈 타이무르는 틀림없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통치에 매우 자신있는 술탄은 궁궐을 떠날 필요조차 없습니다. 대신 진정한 권력의 풍족한 사치를 즐기고 다니죠. 우리나라의 비교적 적은 석유 매장량은 분명히 이 규모의 사치를 감당할 수 없고, 그 돈은 더 어두운 원천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착각에 빠진 바보들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200년 동안 오만을 이끌어온 왕조는 앞으로 천년 동안 오만을 이끌 것입니다.
안정도: +10.00%
이념 변화 방어: +25.0% -
젊은 계승자
쇠락하는 제국의 끝없는 비극 중 하나는 힘없는 통치자가 대게 힘없는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카부스는 그의 아버지와 다르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총명하고 부지런하며, 통치자의 권리와 책임을 갈망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발코니에서 이따금 하는 연설을 제외하고는 공적인 생활을 삼가고 있습니다. 아랫사람들은 둘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통치자와 신하, 또는 간수와 죄수 중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15.00% -
사막의 속삭임
천 년 동안 중동은 술탄과 셰이크의 영역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골목과 모래밭에서 새로운 이념을 가진 새로운 세력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맨 사막에는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고, 부족민들은 사냥을 나갔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총과 발라클라바를 잡기 위해 농기구를 내려놓은 젊은이들은 사회주의 해방이나 이슬람 부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술탄 사이드 빈 타이무르 폐하께서의 선언에 따르면, 그러한 소문은 말도 안 되는 소문에 불과하며 응징이 필요한 반역자들만이 퍼트리고 다니는 소문에 불과하답니다.
사단 조직력: -5.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안정도: -20.00%
훈련 시간: +10.00%
}}}
지도자는 사이드 빈 타이무르. 1969년 예멘 내전 직후 무능한 술탄을 몰아내고 그 아들인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가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집권하고 그와 동시에 오만 내전이 발발한다.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에드의 오만 - 준입헌군주제 (가부장주의): 친 이탈리아 성향
갈립 아히나이의 오만 이맘국 - 신정 (전제주의, '앗바' 이맘): 친 사우디, 일본 성향
라일라 파흐로의 도파르 반군 - 아랍 공산주의 (공산주의, 걸프와 무흐탈 해방을 위한 인민전선): 친 독일 성향
1.9.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 집권이념:전제주의(사우드 왕가 - 전통주의 파벌)
- {{{#!folding 국민정신
-
이슬람 공동체의 보호자
사우드 왕가는 두 신성한 모스크의 보호자로서 무슬림 세계의 일부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닙니다. 사방, 특히 이탈리아 제국주의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보호자로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눈길을 돌렸고, 이는 무슬림 형제단과 같은 단체들의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명목상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탈리아 제국의 관계가 서서히, 하지만 꾸준하게 약화되면서 양국 간의 불신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매주 인력: +100%
안정도: +10.00% -
살라피 영향력
금욕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이슬람 개혁 운동인 살라피즘은 18세기부터 사우디의 문화에 있어 지배적인 세력이었습니다. 살라피즘의 창시자인 이반 압둘 와합의 가르침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이슬람 분파이며, 살라피 성직자들은 사우디 궁정에서 영향력 있는 세력입니다. 아마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구상에서 신앙과 정치의 경계가 가장 모호한 국가일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매주 안정도: +1.00% -
검은 황금의 왕국
한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한낱 부족 국가에 불과했으나, 알라의 가호와 석유 덕에 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검은 황금은 끝이 없어 보이는 모래 사이에서 흘러 나오며, 그것이 사우디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다른 어떤 분야도 무색하게 합니다. 이탈리아 제국과의 동맹 덕에 사우디는 어떻게 써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합성 석유: +10.00%
석유당 연료 획득량: +20.00% -
애틀랜틱 리치필드 - ENI 양해각서
추축국 군대가 중동을 침공했을 때, 사우디는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이탈리아와의 협력 정책은 양국의 국영 석유 회사 간의 합의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무역 외교의 진정한 걸작으로서 사우디는 이탈리아와의 동맹을 재확인했고, 에니는 애틀랜틱 리치필드와의 비경쟁 조약을 채결했습니다. 이 자금의 일부를 대가로 에니 유조선은 사우디의 석유와 무역상을 싣고 대양을 항해하며, 그들이 가는 곳 마다 리야드의 영향력이 뒤따릅니다.
연료 보유량: +10.00%
}}}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중동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오일 쇼크 중 내전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과 함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도우며 의용군을 보낼 정도이다. 하지만 예멘에서 압둘라의 예멘 아랍 공화국이 승리하면 예멘이 사우디를 침공하며 아라비아 공화국을 세우려 한다.
지도자는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이며 파이살이 후계를 잇는다. 이탈리아가 민주화되었을 경우 석유 위기 이후 이탈리아의 사주를 받아 개혁파 탈랄이 쿠데타로 집권해 이탈리아 세력에 가입한다. OFN, 공영권에도 가입할 수 있다.
1.10. 이집트 왕국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이탈리아 제국의 의존국
- {{{#!folding 국민정신
-
아랍 사회주의 연합
나세르!!!!!!!
일일 정치력 획득: -0.2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사단 회복률: -10.0%
전쟁 지지도: -20.00% -
파루크의 쾌락주의
우리들의 국왕 파루크 1세는 낭비벽으로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한 주에 600개 이상의 굴을 먹는다고 알려진 파루크는 국왕보다는 플레이보이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왕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낭비벽은 국가 경제에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2.0%
안정도: -5.00% -
무슬림 형제단
쿠틉!!!!!!!
안정도: -10.00% -
식민정부
이곳은 독립국가보다는 이탈리아가 총독으로 다스리는 총독령에 가깝습니다. 외교 정책과 내부 정책은 로마의 의지에 묶여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로마 독수리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AI 변동치: 동맹 호출 욕망: -1000
AI 변동치: 동맹 참전 욕망: -1000
파루크 1세가 통치하는 이탈리아의 종속국. 1956년 하급 장교들이 이집트 독립을 위해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해 이탈리아의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국정 운영에 관심을 잃은 파루크는 세계를 누비며 국고를 펑펑 쓴다. 이베리아의 와인, 이탈리아의 패션, 터키의 부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트리움비라투스의 가상적국인 공영권, 유니티-팍트, OFN까지 방문한다. 이후 이집트로 돌아와 대규모 파티를 열다가 음식이 파루크의 목에 걸리는 일이 일어난다. 파루크는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지만 다른 파티 참석자들은 웃고 떠드느라 파루크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한다. 결국 파루크는 혼자 남을 아들 푸아드 2세를 걱정하며 세상을 떠난다.
이후 즉위하는 푸아드 2세는 12살 먹은 어린애이기에 섭정 위원회가 대신 통치한다. 이후 행보는 여러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로는 이탈리아 식민정권이 들어서는 루트이다. 두번째는 기존의 파루크와 비슷한 정책을 유지하는 귀족적 보수주의 정권, 마지막은 안와르 사다트의 친민주주의 루트다.
1969년 10월이 되면 석유 위기와 함께 내전이 발생한다
이집트 지역
- 이집트 왕국/공화국[10] - 귀족적 보수주의/식민정부 (전제주의) / 임시정부 -> 사회민족주의 (가부장주의)
-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 혁명평의회- 좌익 민족주의 (사회주의)
- 사이드 쿠틉의 무슬림 형제단 - 쿠틉주의 (국수주의)
수단 지역
- 가파르 니메이리의 수단 자유장교단 - 좌익 민족주의 (사회주의)
- 이스마일 알아자리의 수단 공화국 - 자유보수주의 (보수주의)
- 이브라힘 압부드의 수단 방위군 - 군사독재 (전제주의)
남수단 지역
- 아그레이 자덴의 아냐냐 - 민간독재 (전제주의)
- 조셉 오두호의 아자니야 해방전선 - 사회민족주의 (가부장주의)
1.11.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이탈리아 제국의 강력한 제휴국
- 집권이념: 식민정부(전제주의, 국가 파시스트당 - 동아프리카)
- {{{#!folding 국민정신
-
식민정부
이곳은 독립국가보다는 이탈리아가 총독으로 다스리는 총독령에 가깝습니다. 외교 정책과 내부 정책은 로마의 의지에 묶여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로마 독수리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AI 변동치: 동맹 호출 욕망: -1000
AI 변동치: 동맹 참전 욕망: -1000 -
첫번째 식민지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안정도: +15.00% -
끝나지 않는 전쟁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안정도: -20.00%
전쟁 지지도: -10.00%
건설 속도: -20.00%
공장 생산량: -20.00% -
소말리아 청년동맹
정치력 획득: -10%
안정도: +10.00% -
마우마우 반란의 유산
정치력 획득: -20%
매월 인구: -5.0%
안정도: -10.00%
사보이아 왕조의 일원이자 암바 알라기의 영웅인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11]가 총독으로 있는 식민지. 아프리카의 뿔 지역이다.
아메데오는 장기간 개혁을 벌여 동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삶의 질을 어느 정도 향상시켰지만 근본이 침략자 총독인지라 좋은 소리는 못 듣고 있다. 사실 원주민에 대한 불평등 대우도 여전히 남아있고. 건강 문제로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아메데오는 마지막으로 뭘 할지 선택할 수 있다.
- 예비군을 동원하고 이탈리아로부터 지원을 받아 에티오피아 저항군을 소탕한다.
- 부정부패와 동아프리카 검은 셔츠단을 몰아낸 후 원주민들을 위한 복지를 제공한다.
- 폐하, 두체, 친척들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고향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TT 업데이트 이후 아메데오 사후 붕괴되는 스켈레톤 컨텐츠가 추가되었다.
1.12. 알제리 군사사령부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이베리아 연방의 통합 괴뢰국
- 집권이념: 식민정부 (전제주의, 알제리 군사 사령부)
- {{{#!folding 국민정신
-
외인부대의 존재
스페인 군단은 포르투갈 형재들이 이 땅에 다시 정착하면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 당국이 없는 상황에서 이 땅을 통제하기 위해 배치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 지역에서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단 훈련 시간: +5.0%
특수부대 공격: +3.0%
특수부대 방어: +3.0%
더위 적응 획득치: +25.0% -
구 포르투갈 식민지 출신자
독일의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침공 이후, 많은 우리 시민들이 이베리아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 정부는 그들의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비공식적으로 이베리아 지배하 알제리 지역에 포르투갈인들을 이주시키는 곳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날까지 포르투갈 정착민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더 강한 국가를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5.00% - 원주민 불안
압도적인 수의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알제리 원주민들은 정권의 행동에 항의하고 우리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
일일 정치력 획득: -1.25
안정도: -15.00%
지도자는 페도리코 고메즈 드 살라자르.
1.13. 알제리 군사 구역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예속국
- 이탈리아 제국의 식민정부
- 집권이념: 식민정부(전제주의, 식민주의)
- {{{#!folding 국민정신
-
거친 국경지대
프랑스 해외영토에 있는 비공식적인 군정으로서, 우리는 로마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를 쓸모없고,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형제들로부터의 원조가 필요합니다.
사단 손실: +5.0%
보급 소비량: +10.0%
안정도: -15.00%
전쟁 지지도: -5.00% -
비공식 이탈리아인 정착지
그 영토가 정착하기 좋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이탈리아 하층민들이 땅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이곳에 이주하였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탈리아인들의 대규모 이민은 이 지역 대한 우리의 약한 지배력으로 인해 우리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매월 인구: +3.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
안정도: -10.00%
전쟁 지지도: -5.00% -
만연한 도적들
병력의 한정됨과 인력의 부족은 도적들이 끊임없이 우리 호송대를 습격하고 정착촌을 약탈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빈곤한 원주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에게 몰려들면서, 이곳에서의 이탈리아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훨씬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사단 손실: +2.5%
보급 소비량: +5.0%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10.00%
(알제리군 사령부)국가에 대한 공격 해택: -15.0% -
식민정부
이곳은 독립국가보다는 이탈리아가 총독으로 다스리는 총독령에 가깝습니다. 외교 정책과 내부 정책은 로마의 의지에 묶여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로마 독수리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AI 변동치: 동맹 호출 욕망: -1000
AI 변동치: 동맹 참전 욕망: -1000
지도자는 주세페 카스텔라노.
1950년대 프랑스의 붕괴와 함께 이베리아 연방과 이탈리아가 전격적으로 알제리 지방에 진군하면서 세운 국가. 다만, 알제만은 여전히 프랑스국의 지배 하에 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알제리를 프랑스가 지배하기 때문. 트라움비라투스 와해 이후, 두 국가는 알제리의 지배권을 가지고 격돌한다. 또는 타협이 성공하면 알제리인이 지배하는 괴뢰 국가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최근 공개된 티저에서 알제리의 상황이 프랑스의 지배 아래 있는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베리아, 이탈리아, FLN등의 독립세력등이 알제리에 개입해서 내전을 벌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출시 극초기에 플레이 컨텐츠가 존재했는데, 완성도 문제와 함께 포커스를 타고 갈 시 상대해야 할 이베리아령 알제리와의 전력차가 너무 크게 압도된다는 문제로 인해 최초로 플레이 불가로 변경되었다.
[1]
원래는 사회주의의 일종이나 파시즘이 승리한 세상이라 일부 파벌이 파시즘에 경도되었다.
[2]
아랍 연합은 이후 아랍 연방공화국으로 통일된다.
[3]
팔라비 황제의 셋째부인.
[4]
실제 역사에서 팔라비 황제가 혁명 때 잠시 총리로 임명했던 사람이며, 해외로 망명한 뒤 암살당했다.
[5]
이란의 대중적 좌익정당이었던 투데당의 당수.
[6]
팔라비 2세 때 외무장관을 맡은 망명 정객.
[7]
살라흐 알 딘 알 사바그, 카밀 샤비브, 파미 사이드, 마흐무드 살만. 일명 황금 4인방(Golden Square).
[8]
본래 육군 장교로
유고슬라비아 침공 당시 공을 세웠지만 아버지와 동생이
헌병군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헌병으로 전군했다. 1943년 이탈리아가 연합국 편으로 돌아서서 독일군에게 정복당하자 유격대의 일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전후
마피아와
붉은 여단을 때려잡으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제2차 마피아 전쟁 당시 차를 타고 가다 마피아에게 암살당했다. 암살 방식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란히 달리며
AK-47을 난사하는 방식이었기에 같이 타고있던 아내와 경호원도 사망했다.
[9]
TNO 세계관에서도 활동한다. 심지어 달라 치에사 전에 레반트 총독이었던
로돌포 그라치아니를 암살하기도 했다.
[10]
사다트가 정권을 잡으면 내전 도중 왕정을 폐지한다
[11]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총독으로 해당 식민지 내 모든 이탈리아군의 총사령관이었다. 1941년
암바 알라기 산에서
이탈리아 왕국군을 이끌고 저항한 끝에 항복했다. 이후 케냐의 포로수용소에서
결핵과
말라리아의 합병증으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