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px; display:inline-block; color: #FFFFFF; min-width: 50%" {{{#!folding [ 음반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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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New Radiancy Group (1997.11.01) |
정규 2집 Race (1998.08.07) |
베스트 앨범 Season's Greetings (1998.11.01) |
베스트 앨범 Kiss In Christmas (1999.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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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3집 NRG 003 (1999.11.04) |
라이브 앨범 N.R.G 2000 Live Concert In China (2000.09.06) |
정규 4집 悲 Sorrow (2001.06.05) |
라이브 앨범 1st Concert With Antonio (2001.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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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5집 Hit Song (2003.02.07) |
정규 5집 리패키지 New Radiancy Group 05 (2003.08.14) |
정규 6집 NR6G (2004.04.30) |
정규 7집 One of Five: 따로 또 같이 (2005.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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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기념 앨범 20세기 Night (2017.10.28) |
디지털 싱글 통화중 (2018.01.25) |
디지털 싱글 평창 올림픽 헌정곡 (2018.02.04) |
1. 개요
NRG의 활동을 정리한 문서.2. 데뷔 초기
1집 앨범이 무려 40만 장이 팔리고 1위 후보를 통보받았으나 하필 그때 IMF가 터져서 음악 방송 순위 제도가 사라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1위를 하지 못했다.[1] 이후로 김환성은 항상 방송이나 잡지 인터뷰에서 소원이 음악 방송 1위라고 말했었다. 게다가 이 시점부터 아이돌 방송 복장 규제가 강화되어 멤버들 중 머리가 유독 길었던 김환성은 종종 가발을 쓰고 무대에 오르곤 했다. #데뷔 초(1~2집)에는 Hi-NRG 장르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90년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유로비트 장르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유로비트는 하이에너지의 영향을 받은 장르이나 엄밀히 말하면 두 장르는 별개의 장르다.
NRG는 격한 퍼포먼스와 고난이도 춤을 전 멤버가 소화해서[2] 화제가 되었고 이런 격한 퍼포먼스 덕에 중국에서 거의 문화 충격급의 큰 인기를 얻었다.[3][4]
당시 국내에서 H.O.T.나 젝스키스만큼은 아니었지만[5] 나름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이성진의 뛰어난 예능감 덕분에 각종 쇼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다.[6] H.O.T.와 젝스키스가 1군이라면 NRG는 1.5군 정도인 셈.
2.1. NRG 1, 2집 무단 샘플링 의혹
NRG 1, 2집에서 상당수 곡들의 전주 일부[7]가 외국의 유로비트 장르 곡들을 무단 샘플링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그러나 오피셜은 없다. 앨범에 제대로 실리지 않은 <와>를 제외하면 보컬 멜로디는 한 곡도 논란이 없으며, 전부 전주 문제이다.[8]외국 곡을 거의 그대로 또는 가공하여 전주에 삽입한 곡들은 다음과 같다.
1집
* 2. 할 수 있어: Ken Hunter - Taxi Driver(1996) + Valentina - Wake Up Honey(1995)
* 3. 미소: Luke Penn Feat. Time Force - Halleluya Tokyo(1997)[9]
* 6. 나쁜 아이들: Garcon - Bazooka Man(1995)
* 12. 할 수 있어 (NRG Ver.): Domino & Aki - Hot & Soul(1995)
* 13. 미소 (Remix): Dave Rodgers Feat. Jennifer Batten - Music For The People(1995) + Mr. Groove - Over And Over(1996)
* 미공개 음원 <와>[10]:
Domino & Aki - Hot & Soul(1995)
Karen - Nothing's Gonna Take My Love From You(1992)
* 2. 할 수 있어: Ken Hunter - Taxi Driver(1996) + Valentina - Wake Up Honey(1995)
* 3. 미소: Luke Penn Feat. Time Force - Halleluya Tokyo(1997)[9]
* 6. 나쁜 아이들: Garcon - Bazooka Man(1995)
* 12. 할 수 있어 (NRG Ver.): Domino & Aki - Hot & Soul(1995)
* 13. 미소 (Remix): Dave Rodgers Feat. Jennifer Batten - Music For The People(1995) + Mr. Groove - Over And Over(1996)
* 미공개 음원 <와>[10]:
Domino & Aki - Hot & Soul(1995)
Karen - Nothing's Gonna Take My Love From You(1992)
2집
*3. 사랑만들기: Go Go Girls - Yellow Magic(1996) + Virginelle - Lovin' Like A Fire(1996)
*4. 마라톤: Marko Polo - Money Go!(1996) + Larabelle - Love As A Weapon(1996) + Maltese - Body Language(1995)[간주]
*6. Hey Ya: Niko - Night of Fire(1997)
*7. 떠나자: Madison - Don't Let Me Down(1996)
*9. 우리 함께해요: Sally Rendell - Suit Case Sally(1996) + Dr. Love - Eurobeat(1998)[간주]
*10. 사랑만들기 (Remix): Go Go Girls - Bad Desire(1996) + Za-Za - Big Desire(1996)
*3. 사랑만들기: Go Go Girls - Yellow Magic(1996) + Virginelle - Lovin' Like A Fire(1996)
*4. 마라톤: Marko Polo - Money Go!(1996) + Larabelle - Love As A Weapon(1996) + Maltese - Body Language(1995)[간주]
*6. Hey Ya: Niko - Night of Fire(1997)
*7. 떠나자: Madison - Don't Let Me Down(1996)
*9. 우리 함께해요: Sally Rendell - Suit Case Sally(1996) + Dr. Love - Eurobeat(1998)[간주]
*10. 사랑만들기 (Remix): Go Go Girls - Bad Desire(1996) + Za-Za - Big Desire(1996)
전주에 사용한 곡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1996년~ 1997년 발표된 SUPER EUROBEAT 시리즈에 수록된 곡들이다. 90년대에는 국내에 유로비트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었고 표절과 무단 샘플링이 가요계 전반의 악습이었기 때문에 위의 곡들도 의혹을 받았다. 앨범에 참여한 작곡가 중 한 명인 이용민은 훗날 NRG 곡과 별개로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원작자와의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일단 두 앨범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곡인 <할 수 있어 (NRG Ver.)>[13]는 삽입한 곡명과 아티스트명을 1997년 발매 당시부터 앨범에 표기했다.[14] 그리고 합의를 하고도 음저협에 원작자 이름을 등록하지 않는다든지, 앨범에 따로 표기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즉, 당사자들이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은 제3자가 그들의 합의 여부를 알 방법은 없다. 문서 참고. 의혹이 생긴 계기인 이니셜D First Stage 국내 방영은 2003년으로, 당시 NRG는 현역이었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 음악 방송 출연과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화제성이 높던 시기였다. 2003년이면 인터넷 게시판도 매우 발달해 무단 샘플링이 확실한 경우 한바탕 공론화될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이후로도 수년간 멀쩡하게 활동했다. 나중에나마 합의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NRG 측이나 원작자 측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모든 게 추측에 불과하다.
한편 무단 샘플링일 거라 여기는 사람들도 NRG 멤버들을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멤버들은 1, 2집 곡들의 작곡이나 편곡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3집부터는 논란된 곡이 없다. 멤버들 중 가장 작곡 능력이 뛰어난 천명훈은 샘플링을 적극적으로 했고 대표적으로 5집 < Hit Song>은 Boney M.의 < Happy Song>을 샘플링했지만 음저협에 천명훈만 작곡가로 등록되어 있고 편곡자도 유건형 이름만 확인할 수 있다. 앨범이나 음원 사이트에도 <Happy Song> 표기는 없다. 그럼에도 아무 논란 없었으며 <Happy Song>의 인지도를 고려할 때 무단 샘플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단순히 표기 여부로는 무단 샘플링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정식으로 샘플 협약이 되어 있으면 불법이나 표절이 아니다.
3. 중국 진출
1998년 한중수교 6주년 기념 축하 공연 차 중국에 방문했는데 당시의 반응이 상당히 선풍적이었다. NRG의 공연을 본 중국인들은 그들의 퍼포먼스에 놀라워했고[15], 이에 대응하여 NRG는 1999년부터 중국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16] 결과는 대성공이었다.이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도 점차 해외 진출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즉, NRG는 최초로 1세대 한류 대표스타로 중화권으로 진출한 것이다. 물론, H.O.T.와 젝스키스에게 밀려서 은근슬쩍 해외진출을 한 케이스나 다름없었지만, 절대로 저평가를 할 수 없는 대성공이었다. 실제로, 중화권에서는 NRG가 H.O.T.와 젝스키스보다 더욱 높은 인기를 누렸다.
중화권에서 한류 1세대의 역할은 안재욱과 클론[17], 베이비복스와 NRG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NRG는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기업의 CF에도 출연했다. 중국에서는 나중에 진출한 H.O.T.보다 더 인기가 많아서 #, 호텔에 레드카펫이 깔리고[18], NRG가 이용하는 호텔 벽에는 NRG 멤버들의 사진이 붙어있었으며 호텔 한 층을 전부 비워줬고, 리무진 차량이 각 멤버의 수만큼 대기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중국에서 국빈(國賓)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셈.
인기만 보면 수익을 억 단위로 쓸어모았을 것 같지만 정작 그렇게까지 큰 수익을 얻지는 못했는데, 당시 계약 구조가 불평등했기 때문에 중국 공연을 하면 공연사가 9, NRG는 고작 1밖에 못 받는 식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9]
4. 천명훈과 이성진의 탈퇴, 부진한 3집 활동
1999년 8월 말, NRG는 기자회견을 통해 천명훈과 이성진이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이성진은 불화에 의해서 팀을 떠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20] 이후 3집은 문성훈, 노유민, 김환성의 3인 체제로 활동하였다. 사실 데뷔 초부터 소속사에서는 형들보다 어린 멤버들 위주로 푸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NRG의 인기를 끌어올린 건 리더 이성진이었고, 결국 3집 앨범은 두 리더의 부재가 음반 성적의 부진으로까지 이어졌다.[21][22]이후로 천명훈은 음악 공부를, 이성진은 Mnet 핫라인 스쿨에서 VJ로 활동하기도 했다.[23] 탈퇴했다고는 하지만 NRG 팬미팅에 이성진이 MC를 보거나 천명훈이 축하를 위해 등장하기도 했고, 김환성이 이성진에게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거는 식으로 멤버들끼리는 여전히 가깝게 지냈다.[24]
5. 김환성의 갑작스런 사망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던 그 때, 팀의 막내였던 김환성이 돌연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6. 2001년 ~ 2002년
김환성의 사망을 계기로 탈퇴했던 이성진과 천명훈이 재합류하여[25] 북경에서 추모콘서트(For Antonio)를 열고 약 1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2001년 6월, 타이틀 곡 <비(悲)>를 내세운 4집으로 음반 활동을 재개한다. 이 즈음에 국내에서도 데뷔 이래 첫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김환성을 기억하는 추모 앨범 형식이었으며 타이틀 곡은 강타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이 때부터 천명훈이 작곡한 곡이 들어가면서 NRG의 전체적인 컨셉이 바뀌기 시작한다.[26][27]이후 NRG의 업적은 이성진이 절반 이상을 쌓아 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멤버를 잃고 무너져가는 NRG를 다시 살리기 위해 개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간 쌓아온 미소년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28] 이때부터 '주접쟁이' 이미지를 선보이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29]
7. 2003년 ~ 2005년
2003년 2월, 5집을 발표하고 천명훈 작사/작곡[30]의 타이틀곡 < Hit Song>[31][32]이 노래 제목대로 히트해 데뷔 6~7년 만에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33]당시 음악캠프의 MC이기도 했던 이성진은 수상 소감을 밝힐 때 울먹이면서 "원래 이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환성이에게 너무 고맙고 이 상을 하늘에 있는 환성이에게 바치겠습니다"라는 말을 해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SBS 인기가요에서는 이성진과 친분이 있었던 강타[34]가 " 이성진 씨가 제게 가슴 아픈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요. 열심히 하니까 되죠?"라고 말했다.
또한 연말 가요대상에서도 본상을 수상했으며, 이때 이들의 인기는 남성 그룹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2004년에는 6집 <대한건아만세>로 활동하여 체감 인기로는 5집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뒀다. 아테네 올림픽을 겨냥했기 때문인지 이성진과 문성훈이 올림픽 성화 주자로 뛰었다.
2005년에는 천명훈도 활발하게 예능에서 활동하면서 '부담보이' 이미지도 이때 만들어졌다.
2005년 10월경 문성훈이 탈퇴하고, 3인조로 7집을 발표하여 <별책부록>으로 활동했으나 5, 6집에 비해서는 신통치 않았다. 멤버들의 예능에서의 활약상은 여전히 좋았으나 음악적인 실적은 그렇지 않았다. 팀의 메인 래퍼나 다름없던 문성훈의 부재로 노래 퀄리티가 떨어진 감도 있다.
8. 2006년 이후, 공백기
2006년 이후로 NRG 그룹 활동은 중단된다. 공식적으로 해체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NRG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은 중단되고 각자의 길을 걷는다. 이 시기 개인의 근황에 대해서는 개인 항목을 참고.이 시기 NRG에 대한 인식은 "개그맨 그룹"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이돌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고 이미지를 망가뜨리며 예능 활동에 집중했기 때문에 NRG가 H.O.T., 젝스키스, 신화, god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아이돌'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35][36] 2010년을 넘어서도 계속되다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까지의 가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2013년이 돼서야 1세대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천명훈이 20세기 미소년에 출연하면서 비로소 NRG에 대한 인식이 '
사실 천명훈과 노유민의 군 제대 이후인 2010년도에 컴백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이성진이 불미스러운 송사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룹 활동의 휴지기는 본의 아니게 더욱 길어져만 갔고 이후 천명훈과 노유민만 간간이 방송에 출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멤버 가운데 한 명이 연예계를 떠나고 활동 당시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멤버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활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어 나머지 멤버들이 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방송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은 재결합 이전의 젝스키스의 행보와도 많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9. 2010년대 초반 ~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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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다시 모인 NRG |
2014년을 기하여 1세대 아이돌 팀의 잇단 재결합 러쉬 및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히든싱어 등의 음악 예능을 통한 90년대 가요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NRG 컴백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갔다.
노유민이 " 이성진이 대중에게 용서를 받는다면 NRG로 컴백한다."고 밝히고, 문성훈과 오랜만에 만나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천명훈은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NRG singer songwriter'로 바꾼다던가 나 혼자 산다와 플랜맨에서 "재결합 의지가 매우 강하고 만나고 있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이후 노유민이 2016년 6월 7일에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장을 올렸는데 바로 NRG의 네 멤버들이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고 연습실에 모인 사진이었고 사진에는 없지만 NRG의 소속사 뮤직팩토리의 대표인 소방차의 김태형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H.O.T.도 이수만과 회동을 가지면서 재결합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데다, 젝스키스도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여 이슈가 되었던 시점에 NRG 역시 김태형과 회동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은 바 있었는데...[38]
2016년 10월 22일, 문성훈을 제외한 3명의 멤버가 참여한 19주년 팬미팅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통해 컴백을 공식화하며 20주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39]
10. 2017년, 컴백과 데뷔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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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주년 기념 컴백 공식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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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G 미니앨범 '20세기' 자켓 |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던 10월 28일,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배출한 작곡가 김유민의 프로듀싱으로 제작된 20주년 기념 미니앨범 20th 세기 Night (20세기 나이트)를 발표하였고 이에 발맞춰 당일 쇼케이스를 기점으로 약 2개월 간의 앨범 활동을 벌였다. 아울러 최대 걸림돌이었던 KBS, MBC에서의 이성진의 출연금지[40]도 2017년 11월에 해제되었다.
방송 출연 외에도 V앱을 통한 대기실, 출퇴근길,
V앱을 비롯하여 다양한 노선의 떡밥 양산을 통해 오랜 기간 그룹 활동을 고대했던 팬들의 오랜 기간의 그룹 활동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충족시켰고, NRG 멤버 전원이 인스타그램을 개설함으로써 인스타그램 게시물 외에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특히 노유민은 인스타그램으로 팬들과 소통을 자주 하기 시작하였다. 이성진도, 천명훈도 인스타그램으로 천재일우들에게 자주 고마움을 표하였다. 이를 보면 NRG가 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 셈.
여러 컨텐츠로 진행된 방송과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통해 멤버들 간의 케미가 자주 목격되었다. 하모하모 라인인 이성진과 천명훈은 투닥거리면서도 그들의 오래된 우애를 보여줬고, 맏형 이성진이 무대와 무대 밖에서 현 막내 노유민을 귀여워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졌다[41]. 천명훈과 노유민도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무대에서 실수가 없었으며, 프로 아이돌답게 무대를 상당히 즐겼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무대가 많이 그리웠던지 2018년 1월 13일에 방영된 KBS 2TV 불후의 명곡에서 무대가 끝난 후 다같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42] 특히 노유민이 점수를 떠나서 형들과 함께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감사하다. 라고 말하여 모두를 울컥하게 하였다. 추가로 이 무대에서 마지막 파트에 노유민과 이성진이 무려 백덤블링을 선사하였다. 그들의 녹슬지 않은 백덤블링[43] 기술을 증명하였으며, 무대는 좋은 호평을 받았다. 불후의 명곡 NRG '통화중' 영상 그리고 방영된 지 약 한 달여 만에 경연곡이었던 '통화중'을 편집해서 음원으로 발매하고 활동까지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다.
여담으로 반전미 또한 많이 발견되어서 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성진은 자상한 면을, 천명훈은 예능에서의 모습과 달리 평소에는 시크한 면을, 노유민은 예전보다 어른스러워진 면을 보였다.
2018년 3월 6일 비디오스타를 통해 문성훈을 포함한 4명의 완전체로 방송에 출연하였고. 후반부에 완전체로의 선택을 통해 13년 만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8년 이후로는 완전체 활동이 없으며, 2020년 9월 침묵예능 아이콘택트에 천명훈과 노유민이 출연하여 근황이 알려졌는데 앞으로 NRG로서의 활동은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44]
11. 2021년, 멤버들 간의 불화, NRG 상표 출원 논란
2021년 7월 이성진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나도 모르게[45] 내가 (팀원들에게) 안 좋은 일을 겪게 됐다. 사실 따돌림을 좀 당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방송을 좀 안 했고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다. 근데 지켜보니 아무 말도 안 하면 그냥 바보 되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 천명훈과 노유민은 이성진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 반박했으며 여러 차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성진을 향한 대중의 아니꼬운 시선 때문에 여론도 이성진의 주장보다는 천명훈과 노유민의 주장으로 쏠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전부터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팬덤 여론은 정반대였는데, 이는 팬덤 내에서 이성진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도 있지만[46] 노유민과 천명훈이 함께 재결합 활동을 해오던 이성진을 팽하고 자기들끼리 NRG 상표 등록을 시도한 사실을 2020년 6월쯤부터 팬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NRG를 제작하고 데뷔시킨 뮤직팩토리 김태형 대표는 "이성진의 발언이 사실"이라며 천명훈과 노유민의 주장에 반박했다. 김태형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재결합 활동 도중 천명훈, 노유민이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소속사와 체결한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마음대로 쿨 김성수와 함께 노훈수라는 그룹을 결성해 행사에서 NRG의 곡들을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2020년 2월, 이들이 소속사와 이성진 몰래 NRG 상표 출원을 했고 이를 알아챈 김태형 대표가 특허청에 신고해 겨우 막았다고 한다. # 이에 천명훈과 노유민은 상표 등록 시도를 인정하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후 현재까지도 침묵하고 있는 상태이다. 천명훈은 2006년에도 김태형 대표와 계약 분쟁이 있었는데 #, 15년이 흐른 2021년에 또다시 대립각을 세운 셈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급격하게 식었으며, 팬들만 한동안 해명을 기다렸지만 약속한 해명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2. 2022년, 논란 이후
2022년 2월 13일, 천명훈은 개인 인스타그램에 새 앨범이 발매된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이성진을 제외하고 노유민과 문성훈만 앨범 피처링에 참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NRG로서 마지막 앨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이성진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봐선 이성진과의 의절을 아예 못박은 듯하다. 다음 날인 2월 14일[47], 예고한 대로 앨범 'Never Going Back'을 발표했다. 가사의 주 내용은 이성진에 대한 디스이다. 더 이상 멤버 전원의 사이좋은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2월 20일, 이성진이 4년 동안 사귀어온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으나 다른 멤버들은 모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19일, 김환성의 생전 모습을 3D 아바타로 재현한 TV CHOSUN 예능 프로그램 아바드림에 노유민과 천명훈은 출연했으나 이성진과 문성훈은 불참했다.[48]
[1]
여담으로 경쟁 상대는
S.E.S.였다고 한다.
[2]
기본적으로 온몸을 쓰는 춤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할 수 있어> 간주에는 그 악명 높은 트레이드 마크, 전원 백덤블링이 있고, <Messenger>의 안무는 공중에 붕 떠서 떨어지거나 전갈 춤과 윈드밀이 있는 등 몸을 확 던지듯이 거칠다. 여기서 말하는 던지듯이는 그만큼 격하다는 게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몸을 던진다. 애초에
천명훈은 당시 비보잉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었다.
[3]
당시 춤으로 아이돌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었던
문희준이 NRG의 1집 타이틀 곡인 <할 수 있어> 무대를 봤는데 전 멤버가 덤블링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단체로 덤블링을 하는 그룹은 몇 없다. 굳이 꼽는다면
갓세븐 정도이다.
[4]
이는 NRG의 제작자가 아크로바틱을 활용했던
소방차 출신
김태형,
정원관인 이유가 크다. 후에 이러한 아크로바틱 퍼포먼스 아이돌 명맥은 JYP의
2PM,
갓세븐이 이어갔다.
[5]
다만,
중국에서는
H.O.T.,
젝스키스보다 우위였다.
[6]
천명훈이 현재는 예능 위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 당시엔 꽤나 조용했는데 과묵한 미소년 이미지를 통한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인 듯하다. 실제 이런 이미지 덕분에 당시
천명훈의 별명은 '카리스마 천', '천장군'이었다. 하지만 적자엔 못 버텼다. NRG가 나왔던 예능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다른 멤버들은 말수가 적었던 것에 비해 유독
이성진만 굉장히 시끄러웠다.
[7]
각 곡의 전주가 짧게는 30초, 길게는 44초가량 되는데 그중 12초 정도 분량에 해당한다. 해당 구간은 곡의 마지막에 동일하게 쓰였으며 곡에 따라서는 간주에도 쓰였다.
[8]
1집의 <정상에서 만나자>의 경우 초창기 유로비트 중 하나인
Is For You와 멜로디가 유사한 부분이 존재하긴 하나 구간이 워낙 짧아 <와>처럼 문제시되진 않았다.
[9]
엄밀히 말하면 "This is the test of the emergency broadcast system"이라는 목소리 자체는 미국의
EBS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멜로디가 같다.
[10]
NRG의 전곡 중 보컬 멜로디가 문제된 유일한 곡이다. 그래서 1집 14번 트랙 <Mega (Mix)> 11분 33초부터 일부를 들을 수 있을 뿐 앨범에 온전히 실리지 않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도 등록조차 되지 않았다. 한때 곡의 전체가 벅스에 공개되어 유튜브에 저음질로는 남아 있다.
# 원래 1집 타이틀곡이 될 뻔했으나
R.ef의 2집 수록곡 <니가 뭔데>와 표절 시비가 붙어 제외됐다. 황당한 점은
R.ef의 <니가 뭔데>부터가 Karen - <Nothing's Gonna Take My Love From You>의 후렴구 표절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니가 뭔데>의 작곡가
이용민은 NRG 1, 2집에서 총 3곡을 작곡했는데 모두 무단 샘플링 의혹을 받는 데다 이중 <할 수 있어 (NRG ver.)>의 전주는 <와>의 전주와 똑같다. 따라서 <와>의 작곡가도 이용민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음저협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확인은 불가능하다.
[간주]
[간주]
[13]
활동을 이 버전으로 했고 뮤직비디오 역시 이 버전이다. 2013년
20세기 미소년의 방송 기획으로
핫젝갓알지가 리메이크한 <할 수 있어>도 이 버전이다.
[14]
[15]
당시 선보인 곡이 2집 후속곡 <Messenger>였는데, 랩과 비트가 상당히 강한 곡이었고 퍼포먼스도 곡에 맞게 매우 강렬했다. 곡이 끝나고 마지막 동작으로 붕 떴다 옆으로 누워 착지했는데, 3초간 조용하더니 순간 기립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정적이 흐르던 3초 동안
이성진은 '끝났다. 이게 무슨 망신이냐.' 생각했다고. 그런데 <Messenger>의 실제 안무는 이 설명과 조금 다르다. 붕 떴다가 옆으로 누워 착지하는 동작은 곡이 끝날 때가 아니라 간주 부분에 나온다.
NRG - 한중 우호 방송 문화교류 공연
[16]
원래는 일본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만약 원래 계획대로 일본으로 진출했다면 중국에서만큼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김환성이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여러모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17]
단, 클론은 NRG와 반대로 중화인민공화국보다는 대만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한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듬해에 같은 멤버인
강원래의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되면서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이때 예정되었던 초대형 콘서트를 열 수 없게 되었던 것.
[18]
이때 레드카펫을 처음 본 멤버들은 자신들이 아닌 성룡을 위해 준비한건 줄 알고 당황해서 레드카펫을 밟지 않고 옆문으로 기어들어 갔는데, 그 광경을 보고 호텔 측 매니저가 와서 어디 기분 안 좋으시냐고 물으면서 안절부절했다고 한다. 하도 인상 깊었는지 중국 진출에 대해 물으면 다들 이때 경험을 이야기한다.
[19]
실제로
천명훈이 작곡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NRG 활동으로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자 작곡으로 돈을 벌자는 마음에서였다고.
[20]
탈퇴 후,
천명훈이
사장님에게 의상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홧김에
사장님 앞에서 고가의 의상을 찢어버리는 바람에
이성진과
천명훈이 탈퇴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21]
당장
메인보컬인 이성진이 떠났고, 천명훈 역시 나머지 고음을 김환성과 분담했던 멤버였다. 이 둘이 동시에 탈퇴하였으니 문성훈은
랩 전담이고 노유민은 랩, 노래 모두 참여는 했지만
비주얼 담당 측면이 강했기에 보컬 셋 중에 라이브도 제일 불안했던 김환성 혼자 남았고 김환성 혼자 짊어지기엔 부담이 컸으니 어떻게 보면 예견된 일.
[22]
실제로 이성진 탈퇴 당시 팬들 사이에선
메인보컬을 누가 할 것이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결국
메인보컬은 김환성이 맡았다. 음반 성적이 크게 좋진 않았더라도, 1~2집 때에 비해 전반적으로 성장한 보컬 실력을 보여주긴 했다.
[23]
이 프로그램에 003이 출연하기도 했는데 서로 모르는 척 장난치다가 003이 "아빠 앞에서 재롱떠는 건데요."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24]
김환성이 하도 전화를 많이 걸어서 나중에는 이성진에게 전화가 오면 매니저가 "또 환성이야?"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25]
원래 탈퇴 선언이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고 밝혔다.
[26]
이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NRG는
미소년 그룹의 이미지와 웃긴 그룹의 이미지가 합쳐져 있는 묘한 그룹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27]
후속곡이
천명훈이 만든 <삶은... 계란>이었는데 저작권료가 8만원(...) 들어왔다고.
[28]
사석에서와 이미지 차이가 굉장히 컸다고 한다. 사석에서는 큰 형답게 점잖고 조용했지만 카메라가 도는 순간 돌변한다. 그래서인지 5집이 크게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원래 성격대로 주접을 최대한 자제하기도 했다.
[29]
모 방송에서 자신을 하이에나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연예인들이 펑크낸 방송을 다 주워먹고 다녀서. 이때도 NRG는 유난히 고생하고 구박받는 신데렐라 이미지가 강했다.
[30]
상술되었듯
Boney M의 <
Happy Song>을 샘플링했다. 편곡은
언타이틀 멤버이자 <
강남스타일>의 작곡/편곡자이기도 한
유건형이 맡았다.
[31]
당시 인기 개그맨이었던
정종철과
이정수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32]
더블타이틀곡 <용서>는 인기는 좋았으나 발라드여서인지 짧게 활동했고 <Hit Song>을 밀어붙이고 크게 히트쳤다. <용서>로 포문을 열고, 빠르게 <Hit Song>으로 넘어가 5월 초까지 활동 후, 후속곡 <나 어떡해>로 여름 내내 활동하다, 8월 삼속곡 <친구>로 넘어간 후 활동을 종료했다. 앨범 하나로 반년을 버틴 셈. 모든 곡들의 반응이 좋았던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수록곡 <하루>도 인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NRG의 명반으로 5집을 꼽는 사람이 많다.
[33]
여담으로 이 당시에
이성진이
천명훈의 통장을 슬쩍 봤는데 <Hit Song> 저작권료가 억 단위로 들어왔다고 한다.
[34]
이성진이 강타 집에 놀러가 자고 오기도 하는 사이였다. 이때로부터 상당히 세월이 흐른 2018년에도 방송 도중 전화연결하기도.
[35]
이 시기가 하필 예능 프로그램의 가학성과 자극성, 외모 비하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는 것도 이미지 악화를 가속시킨 원인이었다.
[36]
사실 2000년경까지만 해도 NRG는 아이돌 이미지가 강했지만 2001년 이성진이 주접쟁이로 인기를 얻고, 2003년 5집 히트송부터 발랄한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개그맨 그룹 이미지가 굳어져버렸다.
[37]
방송에서 틀어주는 영상을 통해서만 과거를 알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유튜브나 방송사 아카이브 VOD를 통해서 개인이 얼마든지 NRG의 아이돌 시절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한 몫 했다.
[38]
젝스키스를 따라한다는 비난 여론이 많았지만,
천명훈에 따르면 NRG의 컴백은
젝스키스의 컴백 이전부터 계획되었다고 한다.
[39]
이후 당초 2월로 예정되어 있던 컴백은 2017년으로 미뤄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후술.
[40]
천명훈이 2013년 3월 6일,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였을 당시 MC들이 NRG를 5인 단체 사진을 준비했는데, 이성진은 이 출연금지 처분으로 인해 이 사진에서조차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 되었다.
[41]
이 라인은
노유민의 과거 본명인 갑성 + 성진을 합쳐 '갑성진'이라고 불린다.
[42]
방송에선 편집되었지만, 녹화 날 현장에서 NRG와 팬들이 많은 눈물을 흘렸고, 오열한 팬도 있었다.
[43]
무대 끝나고 썰을 풀었는데, 연습 때 노유민이 백덤블링 연습을 하다가 팔을 휘둘렀는데 허리춤을 잡아주고 있던
이명호 유도선수가 얼굴에 팔을 정통으로 맞아서 코피가 터졌다고 했다. 그것도 쌍코피 이명호 선수는 난생 처음으로 코피가 터졌다고... 얼마나 크게 맞았는지
영상에서 엄청난 소리가.
[44]
이성진은 개인 사정, 노유민은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으며 문성훈은 사업을 하고 있어서 활동이 어렵다고 한다. 현재 천명훈을 제외한 멤버들은 방송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45]
후술하겠지만 나머지 멤버들끼리 이성진과
김태형 대표 몰래 NRG 상표 등록을 하려 했다. 이 일을 두고 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46]
원래가 NRG 멤버들 중 유일하게 개인 팬클럽이 있을 정도였고, 재결합 활동을 하는 동안 팬미팅이나
V LIVE 등으로 팬들과 소통할 때 멤버들 중 가장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 호감을 샀다.
[47]
참고로 김환성의 생일이다.
[48]
이 둘은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연예계 은퇴 상태로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