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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주(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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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배구인
<colbgcolor=#eeeeee,#191919> 황현주
黃鉉柱 | Hwang Hyeon-Ju
출생 1966년 4월 20일
경상남도 하동군
사망 2014년 12월 4일 (향년 48세)
경상남도 진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77kg
직업 배구 선수 ( 세터 / 은퇴)
배구 감독
학력 악양초등학교 (졸업)
진주동명중학교 (졸업)
진주동명고등학교 (졸업)
서울시립대학교 (학사)
실업 입단 1987년 금성사 배구단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금성사 배구단 (1987~1994)
코치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1995 / 트레이너)
LG정유 배구단 (1995~1997)
LG화재 배구단 (1999~2001)
흥국생명 배구단 (2001~2003)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2006)
감독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배구부 (1997~1999)
흥국생명 배구단-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3~2006, 2006~2008)
세화여자고등학교 배구부 (2009)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09~2014)
선명여자고등학교 배구부 (2014 / 총감독)

1. 개요2. 현역 및 코치 경력3. 지도자 경력4. 총평
4.1. 대표팀 감독이 안 된 게 신기한4.2. 허재 이상의 드래프트 능력4.3. 여자배구계 육성의 신4.4. 어필의 신, 하지만 코트 바깥에서는 다정다감했던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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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세터였으며 은퇴 후에는 흥국생명 현대건설 감독을 지냈다. 배구 갤러리에서 불리던 별명은 황버럭.

2. 현역 및 코치 경력

학창 시절에는 윙 공격수 이상렬과 더불어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이후 이상렬과 같이 금성사에 입단했지만, 입단 초기 2년 동안은 최봉호에게, 이후에는 최영준에게 밀려 백업으로 떨어졌고 이상렬과 달리 6년 간 별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현역병으로 입대하면서 은퇴했다.

코치 시절에도 그렇게 인지도가 없었고 감독으로서도 실업 시절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3. 지도자 경력

3.1.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감독

2003년에 팀 선배였던 이정철 감독이 사임하여 이정철의 후임으로 흥국생명의 감독으로 부임한 당시, 왕조를 구축한이라고 쓰고 저물어 가던 류화석 현대건설에게 흥국생명 고양이 앞의 였다.

그러나, 프로화가 된 이후 첫 시즌인 2005년 반년 리그에서 2월 23일 대전[1]에서 현대건설을 3-0으로 털어 버리면서 6년 간 슈퍼리그에서 겪은 17연패를 끊었다.

이후 순항하던 2005-2006 시즌 중 런트의 1차 뻘짓 갑작스럽게 호남정유 시절 상관인 김철용 감독이 선임되면서 감독직에서 해임, 우승 팀 감독이 되지 못하고 세화여고 감독으로 쫓겨났다. 직전 성적이 1위였는데도 프런트에게 짤린 것.

이후 2006-2007 시즌 도중 김철용 감독이 선수단의 항명으로 물러나자 복귀해 김연경- 황연주-윌킨스를 활용하여 첫 통합 우승을 기록한다. 이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정규리그 우승팀 감독[2]으로 기록된 것은 덤.

2007-2008 시즌에도 정규 리그 1위를 했지만 이숙자, 정대영이 이적해 온 GS칼텍스에게 밀리고 4차전에서는 지난 시즌 요긴하게 먹힌 판정 항의가 역효과가 나며 완전 퇴장을 당하는 불명예[3] 속에서 결국 챔결 시리즈에서 1-3으로 지며 2시즌 연속 리그 1위에 만족해야 했다.

2008-2009 시즌, 김연경 - 황연주 - 카리나 - 한송이라는 사기 전력을 갖추고 순항하다가 카리나 외 선수들이 부상을 이유로 수술이 급해 출전이 어렵다고 전했다가 또 짤렸다. 흥국생명 측에서는 '황현주 감독이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했다' '황현주 감독이 너무 강성이어서 팀과 안맞았다'는 어이없는 언플을 했다. 하지만 실상은 프런트가 부상인 선수들을 강제로 출전시키라고 했고 황현주 감독이 거부하자 짤랐다고 하며, 정작 선수들은 황현주 감독을 잘 따랐다고 한다. 2차 뻘짓 이 당시 주전 선수들이 멘붕이 와서 무려 3일 동안 훈련을 못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선수단에 멘붕이 왔다. 그 후 결국 어창선 코치가 대행을 맡아 리그를 3위로 마감했을 정도의 카운터 펀치를 프런트가 갈긴 격. 이러고도 베띠의 GS칼텍스를 꺾고 챔결 우승을 한 것이 참 대단하다

게다가 아예 잔여 연봉도 안 주고 내쫓았다는 것은 전설급. 3차 뻘짓

져주기 게임 의혹과 이영주, 진혜지, 윤수현의 조기 은퇴 의혹 그리고 김연경 황연주 혹사 논란에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김연경양녀 황연주 지명과 김나희[4]으로 흥국을 미녀군단이자 박미희의 부임 이후에도 떠올리게 만드는 리즈 시절로 이끈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3.2.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감독

2009년 여름 당시 하위권을 전전하던 구미 한국도로공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감독을 구하던 상황에서 도로공사가 희대의 병크인 황거신을 시전하며 신만근을 선임하자, 홍성진의 후임 감독을 찾고 있었던 현대건설과 계약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건설의 입장에서 초대박이 터져 버렸다. 2006-2007 시즌 챔결 당시의 거친 판정 항의 등 나쁜 이미지가 넘쳐나던 감독이었지만, 그걸 상회하는 실력과 육성을 보여 주며 답이 없던 현대건설을 김연경만 오면 국가대표급이 되는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2009-2010 시즌 미리 점찍었던 외국인 선수 케니 모레노를 영입하고 당시 센터 유망주인 양효진을 폭발시키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정확히는 김사니와 몬타뇨의 인삼공사에게 2-4로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FA로 풀렸던 한유미와 재계약이 불발되고, 세터 한수지가 양녀 황연주의 FA 영입[5] 대가로 인삼공사로 간 데다가[6] 케니를 레프트로 돌렸지, 범실도 시즌 최다 1위였다. 이러면? 꼴지겠지만... 상을 쓸어담는 양녀의 활약과 함께 케니가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고 양효진이 건재하며 3각 편대를 구축하고 3세트 외인 출전제한 속에서 박슬기가 조커로 맹활약을 했다. 더블 리베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며 무려 3번을 물먹인 흥국을 챔결 전적 4-2로 이기며[7] 2시즌 연속 리그 1위와 프로화 이후 현대건설에게 최초의 챔결 우승을 안겼다.

2011-2012 시즌, 한유미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인삼공사로 보내 구제하고 리빙스턴이라는 금지어 용병 때문에 개판이 된 와중에서 초반엔 황연주가, 후반기에는 취리히에서 데려온 임대생 브란키차를 다듬어서 폭발시키며 기적적인 3위를 통해 챔결을 갔지만, 2시즌 전처럼 몬타뇨몬타신의 인삼공사에 시리즈 2-3으로 지며 준우승을 했다.

2012-2013 시즌에는 야나가 브란키차만큼 성적을 냈지만, GS의 각성으로 3위로 밀리며 PO 탈락...근데 이 존재감이 희미했던 야나는 2년 뒤 동생의 현대 입단을 추천해 준다

마지막이 된 2013-2014 시즌은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시즌이었다.

용병인 옐리츠 바샤가 레프트보다 라이트 공격이 좋아서 결국 양녀를 레프트로 돌렸더니 양녀는 커리어 로우를 찍고, 김연견은 시즌 전에 부상을 당하며 반 시즌을 날리고, 덕분에 대타로 리베로를 뛰었던 김주하 정미선은 과부하에 걸리고... 결국 센터 양효진 말고는 답이 없던 시즌이었고, 결국 현대건설 부임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계약 만료를 앞둔 그는 자신과 함께 코칭스탭으로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양철호 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사임하였다. 그러면서 남긴 건 팀에 절실했던 세터 이다영이다.

3.3. 사망

현대건설을 떠난 후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여자배구 경기를 참관하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4년 11월 선명여고 배구부의 총감독으로 선임된 그는 가족들을 수원에 두고 자신의 모교가 있는 진주로 내려가 오피스텔 생활을 하며 선명여고에서 후진 양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총감독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녀의 걱정대로[8] 12월 4일, 현대건설이 1위를 하며 즐기던 때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48세.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였으며,[9] 선명여고 관계자가 황현주 총감독과 연락이 닿지 않아 오피스텔에 찾아갔다가 작고 사실을 알렸다.

김연경, 한유미, 이보라 등의 선수들도 인스타그램 추모글을 올렸다.

현대건설 선수단은 물론이고, 자신이 흥국생명 지휘봉을 맡기 전에 전임 감독이자 LG정유 김철용 시절 트레이너와 코치로 같이했던 이정철 기업은행 감독 관련기사, 흥국 소속인 김수지, 김나희, 우주리[10] 관련 기사 역시 진주로 내려가서 조문하고, 이후 3라운드 두 경기에서 근조 리본을 달고 뛰었을 정도였다. 마델라이네 몬타뇨도 황 감독의 부고 소식을 듣고 멘붕했을 정도. 관련 기사

그가 작고하고 4일이 지난 후 열렸던 2014년 12월 8일 현대건설 - 기업은행 경기에서 근조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한 현대건설 선수들은 황현주 감독을 위해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나와 영전 앞에 승리를 바쳤으며, 1주기가 지난 2015년 12월 5일 기업은행전에서도 2년 연속으로 셧아웃 승리를 거두었다.

4. 총평

4.1. 대표팀 감독이 안 된 게 신기한

몰빵배구에서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이 삼성 출신이 아닌 인사로 구성한 팀이 겨우 현대건설에 불과한데, 그럴 정도로 역량이 받춰주지 못했다면 절대로 지금의 현대건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대표 감독이 안 된 건? 도하(김명수 감독) 때에는 우승 직전에 해임되어서, 광저우( 박삼용 감독)에서는 준우승 감독이라는 이유로, 인천( 이선구 감독)에서는 타어강... 여자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기용했다면, 남자부가 박기원 체제로 스피드 배구 장착을 위해 최근 몇몇 어린 선수를 점찍고 노력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워낙 육성에 도가 튼 감독이니까... 결론은 배협과 그 배협 재정에 빅엿을 먹인 임태희가 개쌍놈.

다만 1995년에는 여자배구 대표팀 트레이너,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에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은 적이 있다.

4.2. 허재 이상의 드래프트 능력

허재 하승진, 심스 픽은 운이지만, 황현주 감독은 이거로 보면 정말 난감해진다.

김민지를 확보하면서 흥국이 드래프트 참가를 거부할 때 수련선수 픽 2장 중 하나가 바로 주전 센터로 거듭난 전민정이었고, 나혜원 황연주 픽에서 나거황은 그야말로 초대박. GS 입장에서는 황거나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겠지 김연경 설명이 필요한가? 김나희는 5번으로 꼴픽이었고 직전에 지명된 선수가 더 미쳐서 그렇지 이 선수 없었다면 2010, 2011년 넥센 히어로즈의 타선에서 유한준이 없던 격.

현대건설 시절 픽은 그냥 전설 그 자체. 박슬기 픽은 예상보다 성장이 정체되며 삑사리가 났지만 10-11시즌 김주하, 11-12시즌 김연견, 12-13시즌 정미선, 13-14시즌 고유민은 각각 윙-리베로 멀티, 주전 리베로, 주전 윙 리시버로서 팀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4.3. 여자배구계 육성의 신

그와 그의 사단( 어창선, 양철호)이 선수를 뽑기만 잘 했던 것이 아니라, 육성도 미친 수준이었다. 돌호는 빼자![11] 이는 이정철과 다른 점이다. 양녀 황연주는 무릎에 칼만 너댓번을 댄 책임자였긴 했어도 아예 황연주의 어머니가 감독님께 애 다 맡겼다며 일임했었고, 김연경도 만일 육성 노답인 박삼용 당시 GS 감독에게 갔다면? 한송이도 흥국생명 이적 당시 무릎 문제로 못 뛸 때 푹 쉬게 해서 아직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으며, 토니 그윈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에게 벌크업을 지시해서 사이영 위너와 동급으로 만든 것처럼 밀착지도로 기본기와 체격을 보강해 당시 장신 센터 유망주인 양효진을 리그 특급 MVP로 업그레이드한 것, 2009-10 시즌 후 당시 백업이었고 체격이 노답인 세터 염혜선을 주전으로 쭉 기용해 세트상 최다 수상과 국대 주전 세터 0순위로 만들었고, 10-11시즌 1라운더 김주하와 11-12시즌 3라운더 리베로 김연견은 입단 시점에서는 배구선수라고 보기 힘든 체격이었지만 이 두 선수는 팀의 수비를 모조리 책임지는 기둥이 되었으며, 2011-12 시즌 당시 이세윤 통역의 미모로 알려질 정도로 시원치 못한 브란키차의 공격 능력을 단 22경기[12]만에 개안하더만 2015-16시즌 현재 그녀는 세르비아[13] 국가대표팀과 김연경의 동료로 페네르바체의 주전 아포짓으로 활약하고 있다.

참고로 배구는 2군이 없어서 신인을 키우기에 제약이 많아 힘든데 이 와중에 키운 선수들이 리그의 핵심인 것은 그야말로 여타 육성의 신들도 형님소리를 해야 할 수준.

4.4. 어필의 신, 하지만 코트 바깥에서는 다정다감했던

어필이 많고 잦은 버럭과 간혹 나오는 폭언이 문제였지만 그건 경기장 한정이었기 때문에 선수단과 문제가 된 경우는 적었다[14][15]. 실제로 현대건설 배구단 프런트의 말에 따르면, 경기장 바깥에서는 사람이 180도 달라진다고 한다. 언제나 선수들 편에 서서 선수들을 생각해 주었던 감독이었다는 것. 상기한 대로 코트에서는 적인 몬타뇨도 그의 부고 소식을 알고 울었다는 사실, 김나희가 2008-09 시즌 우승 후 프런트 때문에 짤린 황감독 얘기를 하며 안타까워한 것, 부상이었던 한송이를 프런트와 싸워가면서까지 쉬게 해주려다가 짤린 사실, 프로에서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부상이 잦았던 이보라(현 실업 수원시청)를 트레이드로 데려와 2013년까지 같이 가게 했다는 미담들이 있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열혈남

또한, 감독으로 있으면서 여자부의 열악한 현실(지원금, 샐러리 캡, 과한 임의탈퇴 공시 등)에 대해 제안을 꾸준히 했고, 실제로 한유미와 윤혜숙 등 떠난 선수들을 임의탈퇴 공시 없이 거저 풀어줬다. 선수권익 향상 기여 FA 계약을 하지 못해 1년 동안 쉬었던 한유미 인삼공사 이적 당시 이적에 탐탁지 않았던 현대건설 프런트를 설득해 승낙을 끌어내고 직접 GS 외의 모든 구단에 전화해서 영입 의사를 타진한 존재가 바로 황현주 감독이었던 것은 유명. 당시 FA로 풀렸는데 황현주 감독과 마찰이 있었던 한유미는 2015-2016 시즌 우승 후 "황현주 감독님이 현대건설에 계실 때 나 보고 희생을 하라고 하셨다. 그 때는 희생이 너무 하기 싫었고 에이스 역할을 하고 싶었다. 이해도 안 가고 정말 싫었다"면서 "지금은 그 역할이 뭔지 알 것 같다. 지금 내가 희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알았다면 현대건설에서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뒤늦게 깨달은 황 감독의 마음에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만일 이러지 않았다면 한유미는 그대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배구팬들은 현재도 그의 죽음을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 50세도 채 안된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탓에 여배계에 큰 기여를 한 인물 중 하나임에도 그 이후를 보지 못했다. 7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부의 위상이 올라가는데…

5. 관련 문서



[1] 2005 반년 시즌은 지역 순회 대회였다 [2] 2015-16 시즌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40세의 나이로 리그 우승을 하며 경신한다. [3] 별것도 아닌 문제로 항의를 하고 소란을 피웠다며 배구팬들에게 많은 욕을 들었다 [4] 이 선수마저 없었으면 전민정 영구제명되고 김지애가 똥군기 때문에 은퇴하면서 센터진이 답이 없어졌을 것이다. [5] 황연주의 FA 영입 당시, 황현주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현대건설로 이적한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황연주는 원래 흥국에 남으려고 했으나 양아버지 따라서 이적 [6] 정확하게는 흥국으로 한 큐 거쳐서 갔다. 중간에 김사니가 끼였기 때문 [7] 이전과 달리 여자부 챔피언전 최초로 1차전 승리 팀이 우승한 사례이기도 하다. [8] 12월 3일 지인의 모임에 참석한 후 오피스텔로 돌아간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황연주는 실제로 스페셜V에서 감독님의 과음으로 인한 혈압 등 건강이 걱정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9] 사실 황현주 감독은 경기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곤 했고, 심장마비가 오기 며칠 전에도 계속된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술담배는 백해무익이라 건강에 가뜩이나 안 좋은데 거기에 스트레스까지 받았으니 과로를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10] 김수지는 황현주 시절 현대건설 소속이었고 김나희(김혜진)와 우주리는 황현주 시절 흥국생명 소속이었다. [11] 이호의 손만 거치면 리베로들이 모두 망했다. 결국 이호는 리베로를 키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12] 후반기 15경기+플옵 2경기+챔프전 5경기 [13] 현대 임대 시절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적이었다가 12-13시즌 칸 임대 당시 세르비아로 국적을 바꾸었다. [14] 시청자들에게 자주 호불호가 갈릴 정도였는데 선수들과 문제가 없었다는 게 정말 신기한 일이다 [15] 이정철만 해도 선수들이 감독님이 너무 무섭다고 불만을 표한 적이 있고, 황감독의 후임으로 온 양철호도 작전타임 때 가끔 나오는 비아냥과 폭언 때문에 선수들과의 갈등이 있었는데 황현주 감독은 선수단과의 불화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