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10 20:57:25

홍순형

조선귀족
朝鮮貴族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8px -3px -11px"
수작 공작
-
후작
박영효 · 윤택영 · 이재각 · 이재완 · 이해승 · 이해창
백작
민영린 · 이완용 · 이지용[1]
자작
고영희 · 권중현 · 김성근 · 김윤식 · 민병석 · 민영규 · 민영소 · 민영휘 · 박제순 · 송병준 · 윤덕영 · 이근명 · 이근택 · 이기용 · 이병무 · 이완용[2] · 이용직 · 이재곤 · 이하영 · 임선준 · 조민희[3] · 조중응
남작
김가진[4] · 김병익 · 김사철 · 김사준 · 김영철 · 김종한 · 김춘희 · 김학진 · 남정철 · 민상호 · 민영기 · 민종묵 · 민형식 · 박기양 · 박용대 · 박제빈 · 성기운 · 윤웅렬 · 이건하 · 이근상 · 이근호 · 이봉의 · 이용원 · 이용태 · 이윤용 · 이재극 · 이정로 · 이종건 · 이주영 · 이항구[5] · 장석주 · 정낙용 · 정한조 · 조동윤 · 조동희[6] · 조희연 · 최석민 · 한창수
거부
김석진 · 민영달 · 유길준 · 윤용구 · 조경호 · 조정구 · 한규설 · 홍순형
습작 공작
-
후작
박찬범 · 윤의섭 · 이달용 · 이덕용 · 이덕주 · 이병길
백작
고중덕 · 고흥겸 · 송종헌 · 이영주
자작
고희경 · 권태환 · 김호규 · 민병삼 · 민충식 · 민형식 · 민홍기 · 박부양 · 윤강로 · 이규원 · 이종승 · 이창훈 · 이충세 · 이택주 · 이해국 · 이홍묵 · 임낙호 · 임선재ㆍ조대호 · 조용호 · 조원흥 · 조중수
남작
김교신 · 김덕한 · 김세현 · 김석기 · 김영수 · 김용국 · 김정록 · 남장희 · 민건식 · 민규현 · 민병억 · 민영욱 · 민철훈 · 민태곤 · 민태윤 · 박경원 · 박서양 · 박승원 · 박정서 · 성일용 · 성주경 · 윤치호 · 이강식 · 이경우 · 이규환 · 이기원 · 이능세 · 이동훈 · 이범팔 · 이병옥 · 이병주 · 이완종 · 이원호 · 이인용 · 이장훈 · 이중환 · 이창수 · 이풍한 · 이홍재 · 장인원 · 정두화 · 정주영 · 정천모 · 조원세 · 조중구 · 조중헌 · 최정원 · 한상기 · 한상억
승작 백작 → 후작
이완용
자작 → 백작
고희경 · 송병준
[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 ||

조선귀족 작위 거부자 8인
<rowcolor=#dca600> 김석진 민영달 유길준 윤용구
<rowcolor=#dca600> 조경호 조정구 한규설 홍순형
※ 김석진, 민영달, 조정구는 독립유공자이다.
조선귀족 작위 거부자 8인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대한제국 판돈녕원사
홍순형
洪淳馨
이름 <colbgcolor=#fff,#222>홍순형(洪淳馨)
출생 1858년
사망 ?
본관 남양 홍씨(당)
여문(汝聞)
주요 관직 조선 성균관 대사성
조선 형조판서
조선 한성부판윤
조선 예조판서
대한제국 장례원 경
대한제국 판돈녕원사
대한제국 태의원 경
대한제국 궁내부 특진관
대한제국 의정부 찬정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조선, 대한제국의 문신. 본관은 남양(당). 조부는 헌종의 국구인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이고, 아버지는 상호도감 제조[1] 홍석종(洪奭鍾)이다. 고모는 헌종의 계비 명헌왕후(明憲王后)이다.

2. 생애

1874년(고종 11) 문과에 급제하였고, 1882년(고종 19) 개성부유수, 1887년(고종 24) 성균관 대사성, 1888년(고종 25) 사헌부 대사헌, 1890년(고종 27) 형조판서, 1891년(고종 28) 한성부판윤, 예조판서, 1892년(고종 29) 개성부유수, 1894년(고종 31) 광주부유수, 1895년(고종 32) 왕태후궁 대부를 지냈다.

대한제국 성립 후 1898년(고종 35) 장례원 경, 1900년(고종 37) 명헌태후궁 대부, 1901년(고종 38) 판돈녕원사, 명헌태후궁 대부, 1902년(고종 39) 명헌태후궁 대부, 태의원 경, 궁내부특진관, 표훈원 부총재, 1903년(고종 40) 태의원 경, 1904년(고종 41) 의정부 찬정, 홍문관 학사, 판돈녕원사, 1905년(고종 42) 규장각 학사, 중추원 찬의, 1906년(고종 43) 궁내부 특진관, 규장각 학사, 시강원 일강관을 지냈다.

1910년 8월 한일합병 후 일본이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여하자 이를 거부하였다.

[1] 2품 이상 판서급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