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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9:21:37

호리이 유지

호리이 유지
堀井 雄二 | Yuji Horii
파일:img_horii.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1954년 1월 6일 ([age(1954-01-06)]세)
일본 효고현 스모토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게임 개발자,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
학력 와세다대학 (학사)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특징, 작품론
3.1. 시나리오3.2. 완벽 주의3.3. 그래픽, 디자인3.4. 시스템3.5. 기타
4. 참여작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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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게임 개발자이자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지적재산권을 총괄하는 회사인 Armor Project의 CEO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IP 소유주다.[1] 드래곤 퀘스트의 아버지[2]로 유명하며 그 외의 대표작으로는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 이타다키 스트리트 시리즈 등이 있다.

자세한 건 후술하겠지만 게임 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로도 매우 유명한 인물로, 호리이 유지가 개발한 작품들은 대부분 시나리오도 그가 직접 집필했다. JRPG라는 장르를 설계한 게임 디자이너일 뿐만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의 효시라고도 평가받는다. 본인이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지 않고 원안만 담당한 작품으로는 크로노 트리거가 있다.[3]

2. 생애

어린 시절 집 바로 뒷집이 만화대여점을 하여 온갖 만화를 읽고 자랐다.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주변에서 만장일치로 재밌다고 해서 자신은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의외로 문학보다는 수학이 특기라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수학 성적이 높아 와세다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와세다를 선택한 이유는 수학 성적이 높은 사람이 문예부를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와세다 밖에 없었다고 한다.[4] 와세다에 입학하자 전공투의 학생운동이 벌어져 학교가 락다운 되어버렸고 거의 놀면서 다녔다고 한다. 다만 그때 놀았던 경험이 인생을 살면서 생각치도 못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를 졸업했으며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원래는 만화가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때 나가이 고의 제자가 되려고 직접 만났으나 거절당한 적도 있다.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간 것도 만화 스토리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고. 지인인 게임제작자 사쿠마 아키라[5] 말로는 원래는 그림도 곧잘 그렸다고 하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내장이 터지는 중상을 입고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어서 글쓰기로 전향했다고 한다. 이때 만화 스토리 작가였던 코이케 카즈오의 제자로 들어갔다.[6] 코이케의 학원에 다닐 때 같이 들어간 동창이 타카하시 루미코였다고 한다.[7]

대학 졸업 이후에는 프리 라이터로 활동해서 소년 점프를 비롯해 이런저런 잡지에 여러가지 글을 투고하였다. 소년 점프로 간 이유는 그림을 못 그리게 됐지만 어떻게든 만화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때의 호리이 유지는 '패미컴 신권(ファミコン神拳)'이라는 게임 리뷰와 소개 코너로 유명했으며 유우테이(ゆう帝)라는 닉네임의 독설가로 인기를 끌었다.[8] 나이 먹고 이미지가 많이 온화해졌지만 이때의 호리이 유지는 거침없이 욕하면서 게임 리뷰를 하는 컨셉으로 유명했다.[9] 돈을 받고 리뷰를 하면 욕을 할 수 없다면서 사비로 게임을 사고 리뷰했다. 드래곤 퀘스트의 개발 이유도 당시의 플레이어를 고려하지 않는 게임에 실망한 호리이 유지가 "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라고 하면서 개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발매 당시에는 "그렇게 게임에 욕을 하는 사람이 만든 게임이 과연 어떨까?" 라는 화제를 끌었다.

1981년에 여러가지 사무의 편의를 위해 컴퓨터를 구입했으나, 당시 일본 PC의 성능이 지나치게 후져서[10] 그 컴퓨터로는 게임이나 했다고. 프로그램도 취미로 공부했는데 수학적인 뇌라 아주 쉽게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에닉스(현 스퀘어 에닉스)에서 PC 게임 개발 대회를 주최했을 때 호리이 유지는 소년 점프의 업무로 이 대회를 취재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직접 게임을 제작해서 대회에 참가한다는 기행을 저질렀다. 호리이 유지가 제작한 게임은 '러브 매치 테니스'로 놀랍게도 입상을 하게 되어 에닉스의 지원을 받아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이 대회에서 호리이 유지는 ' 도어도어'라는 게임을 제작해 입상한 천재 프로그래머 나카무라 코이치를 만나 그와 친분을 쌓게 된다.

호리이 유지는 입상의 대가로 에닉스의 지원을 받아 게임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개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호리이 유지는 PC 어드벤처 게임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의 기획서를 에닉스에 제출했으나 이를 에닉스는 별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회에서 각 수상자에게 상을 수여하고 수상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아 관리하고 있던 에닉스의 프로듀서 치다 유키노부가 호리이 유지의 기획서를 적극적으로 상부에 타진해서 다행히 게임 개발에 대한 승인이 떨어졌다. 다만 에닉스의 불신과 당시 PC 게임의 개발 환경으로 인해 자본만 제공받고 개발 인력(외주 개발사)은 제공받지 못해 호리이 유지 혼자서 게임을 전부 제작하게 되었다. 에닉스의 예측과는 달리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은 히트를 기록했고, 나카무라 코이치가 설립한 회사인 춘소프트가 이식한 패밀리컴퓨터판도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부터 에닉스는 호리이 유지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게 된다.

치다 유키노부 프로듀서의 밑에서 에닉스의 지원을 받는 호리이 유지는 게임 대회 때부터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 나카무라 코이치, 소년 점프 편집장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주선으로 알게 된 토리야마 아키라, 치다 유키노부의 주선으로 알게 된 스기야마 코이치와 함께 드래곤 퀘스트를 제작했고 이게 대박을 치게 된다. 호리이 유지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시나리오 라이터로 드래곤 퀘스트 개발진의 중역을 맡게 된다.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직책[11]은 아니지만 게임 전반을 설계하는 핵심 개발직이며, 실제로 드래곤 퀘스트의 맵, 던전 구성, 밸런스 등도 호리이 유지가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12]

3. 특징, 작품론

3.1. 시나리오

호리이 유지 게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필력과 스토리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가 일본에서 오랫동안 누려온 인기에는 호리이 유지의 시나리오가 크게 기여했다. 초기 작품은 초기 비디오 게임의 열악한 용량의 문제로 스토리를 선보일 여유가 없어 전투 위주였지만 그때부터 이미 게임의 구조나 스토리로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선보였다. 그리고 점점 용량이 늘어나면서 스토리의 분량이 늘어나고 본격적인 필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드래곤 퀘스트의 경쟁작이었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도 "글로는 호리이 유지 씨를 이길 수 없어서 파이널 판타지는 그래픽에 사활을 걸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에닉스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제작한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의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을 통해 스토리와 연출이 있는 텍스트 게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게임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구성과 플래그, 스크립트 관리법을 선보였단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을 전공하고 프로그램도 공부한 사람이라 프로그램적으로 시나리오를 구현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창시할 수 있었던 것.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란 직업은 이 사람 덕분에 생겨난 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게임 시나리오 쓰는 것에 대해서 이론, 방법적으로 접근할 때는 이 사람이 창시한 방법부터 접근한다.

드래곤 퀘스트 7 이후부터는 동료 회화 시스템 등의 추가로 인해 보조 작가들이 붙어서 여러 자잘한 대사를 써주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모든 대사를 혼자서 집필했다고 한다.[13] 현재도 메인 스토리는 여전히 호리이 유지가 직접 집필하고 있다. 특유의 뒤통수치는 전개와 정신나간 대사 센스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사람이 쓴 글은 특유의 코믹한 맛이 있어 금방 알 수 있다. 대놓고 개그를 하는 게 아니라 설명문( 그냥 시체)이나 대사( 그걸 버린다니 당치도 않다!) 하나하나에서 은근한 코믹 센스가 묻어나온다.

반대로 이를 영어 등의 서구권 언어로 번역할 경우 그 센스를 전달하기 힘들어서 읽는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일본 외에서 드퀘 시리즈의 인기가 저조한 이유 중 하나다. 호리이 유지도 "내 문체는 현대적으로 해야 되는데 영어 번역을 고어체, 문어체로 해놨다더라."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호리이의 게임이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해외에서 부진했던 건 전부 번역 탓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어, 중국어로 번역할 경우에는 호리이 유지 테이스트를 90% 가까이 살려내는 것이 가능해서 한국, 중국에서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

게임 시나리오를 쓸 때 대사로만 상황 전달을 하는 것을 유의하고 있다고 한다. 설명문을 많이 넣으면 지루하지만 대사는 그렇지 아니하며 설명도 대사를 빌려서 하면 덜 지루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필력이 많이 발휘되는 게 마을 사람들의 대사이다. 마을 사람들의 대사가 이벤트의 진행에 따라 수시로 바뀌며, 시간이 지나서 돌아가보면 또 바뀌어 있기도 하다. 동료와 대화를 할 수도 있는데 이것도 반응이 수시로 바뀐다. 이러한 NPC의 대사를 통해 스토리를 간접적으로 풀어나가므로 드래곤 퀘스트는 스토리의 전모를 다 파악하려면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아야 한다.[14]

대사를 쓸 때 한 번에 너무 길게 쓰지 않는 걸 유념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 시나리오를 수정할 때도 간결하게 줄이는 작업을 주로 한다고 한다. 토리시마 카즈히코 말로는 호리이의 글은 대체로 7 X 3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21자를 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리듬감이 있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라고 한다. 호리이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했을 때 "이 게임은 대사가 길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게임으로 인생을 표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며 글을 쓸 때는 희노애락을 모두 담는다고 한다. 중요한 건 희락만 넣는 게 아니고 노, 애도 넣는다는 것이다. 토리야마 특유의 그림체와 그의 유머러스한 문체 때문에 첫인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드래곤 퀘스트는 슬픈 내용이 굉장히 많다. 오히려 충격적인 전개를 위해 유머러스한 문체로 플레이어를 안심하게 해놓고 허를 찌를 때가 많다. 플레이어의 분노와 짜증을 유발시키는 시나리오도 종종 들어간다.[15]

플레이어를 놀래키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며 게임을 만들 때 항상 반전이나 기발한 리액션을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스포일러를 매우 싫어한다. 이미 스포일러가 많이 된 작품이 많아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자신의 작품은 되도록이면 스포일러를 보지 말고 해달라고 한다. 일본의 드래곤 퀘스트 공략본은 호리이 유지의 감수를 받아야 했으며 스포일러가 되는 것, 특히 후반은 공략을 넣지 못하게 했다. 다만 인터넷이 발전해서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게 되었고 많은 분들이 새로운 플레이 방법을 발명해주고 있다며 인터넷에서 공략, 스포일러, 방송하는 것은 특별히 막지 않겠다고 한다.

유행하는 건 다 해보는 성격이라 당시 유행하는 것을 작품에 많이 넣는다고 한다. 드퀘3 때는 이직이 유행이라 전직 시스템을 넣었고, 드퀘 6 때는 자아찾기 서적이 베스트 셀러라 자아 찾기를 테마로 했다고 한다.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에 만화 같은 게임을 추구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른 작품을 만드는 데즈카 오사무도 대단한 작가지만[16] 자신은 작가로서의 핵심은 바꾸지 않고 유지해나가는 후지코 후지오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나가이 고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토리야마 아키라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와 상반되는 잔혹하고 암울한 스토리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점, 섹슈얼 조크가 많이 나오는 건 나가이 고의 영향으로 보인다. 나가이 고 작품 중 좋아하는 건 아바시리 일가, 바이올런스 잭이라고 한다.[17] 거인의 별, 내일의 죠도 좋아한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이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른 미디어로 나올 때는 기획할 때만 좀 도움을 주고 이후로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세계관과 캐릭터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독자로서 지켜보고 싶다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의 미디어 믹스는 그걸 만든 작가 여러분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런 작품에서 나온 설정을 게임 본편에 도입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그의 필력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본 드퀘 플레이어들에겐 호리이 유지가 시나리오 라이터라는 게 잘 알려져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 번 말을 걸어보고 대사를 통한 특유의 스토리를 체험하는 플레이가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이렇게 플레이하는 사람이 적었다. 보통 다른 JRPG는 마을 사람들의 대사가 스토리와 큰 관계가 없거나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번거로운 행동, 안 해도 되는 행동으로 인식하는 게이머가 많다.[18] 일본도 신세대 드퀘 게이머들은 이렇게 안 할 때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19] 거기다 2010년대 중반까지 한글화된 작품도 많지 않아 그의 필력이 알려지지 못 했다.

주인공의 이름을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것[20], 주인공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감정 이입에 좋다고 생각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이 법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 부분은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고 한다. 다만 그래픽이 발전하면서 말 없는 주인공을 묘사하기 힘들어졌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3.2. 완벽 주의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평이지만 게임에 대해선 완벽주의자다. 드퀘를 만들 때도 다 만들어놓고는 맘에 안 든다고 갑자기 갈아엎은 적도 많다고. 드퀘 발매 연기의 원인은 대부분 이 사람에게 있다. 비슷하게 갈아엎기로 유명한 미야모토 시게루와 비견되기도 한다. 실제로 제작자 입장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방법론도 미야모토 시게루와 많이 비슷하다. [21]

한때 드퀘는 호리이 유지의 재수정 요구로 발매 연기가 굉장히 많았으며 발매 연기의 마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발매 연기는 줄었지만 대신 개발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가게 되었다.

3.3. 그래픽, 디자인

게임을 만들 때 그래픽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드퀘1 제작 당시 그래픽을 더 리얼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기록 용량이 초과되는 문제가 있어서 고민하던 중, 공원에서 아이들이 역할극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상상력의 중요함을 다시금 알게 되어 그래픽 쪽을 희생하고 텍스트적인 재미를 늘렸다는 일화도 있다. 드래곤 퀘스트는 라이벌 게임으로 거론되는 파이널 판타지보다 항상 그래픽이 떨어졌다. 대신 게임의 용량을 텍스트나 컨텐츠에 많이 썼다고 한다.

게임을 낼 하드웨어를 정할 때도 하이 스펙을 고려하지 않으며 "게임을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라며 당시 보급량이 가장 많은 게임기로 게임을 낸다. 그래서 드퀘 9은 넘버링이 휴대용으로 나오면서[22] 8보다 그래픽 수준이 추락해버렸다. 드래곤 퀘스트 11은 "그래픽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라면서 그래픽이 떨어지는 휴대용판도 동시 개발해서 발매했다. 11부터 세계 시장도 고려해서 PC로 게임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2023년 인터뷰에서는 "요즘 게임은 그래픽은 많이 좋아졌지만 새로운 것으로 충격을 주는 게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2024년 인터뷰에서는 "그래픽이 너무 발전하면서 대사가 없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그래픽을 중시하는 비디오 게이머들은 그의 게임을 날림이라고 하고, 호리이 유지의 팬들은 호리이 유지의 게임은 그래픽이 다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충돌하는 일이 많다. 드래곤 퀘스트 11은 언리얼 엔진을 사용해 꽤 좋은 그래픽으로 나왔지만 이건 그의 게임 중에서도 예외 사례이다. 호리이 유지의 게임은 스토리나 게임성을 보고 해야하며 그래픽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작품의 세계관은 직접 디자인하며 그림을 못 그리게 됐지만 디자인 센스는 꽤 있다는 평이다. 자신이 감수하는 만화의 콘티도 그려준다. 크게 기대할 정도는 아니고 가모우 히로시 수준이지만. 이 때문에 드래곤 퀘스트의 몬스터는 호리이 유지는 본인이 직접 설명과 함께 그림을 그린 후, 토리야마 아키라한테 전달하여 그것을 토리야마가 실제 형태한다는 흐름으로 태어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슬라임처럼 토리야마가 크게 고치거나 아예 새로 창조한 것도 있지만, 거의 다수가 호리이 유지의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에 토리야마가 그림체만 자기 스타일로 바꾼 정도이다.

3.4. 시스템

게임의 시스템적인 면에서 변화를 주거나 새로운 시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혁신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JRPG라는 장르의 창시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과소평가다. 그가 원조이기 때문에 혁신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 그가 JRPG의 틀을 완성시킨 개발자라는 걸 잊지 말자. 그리고 시나리오 라이터이기도 한 호리이 유지는 시나리오 측면에서는 여러 참신한 시도를 계속 선보여 게임계의 시나리오 작법에 큰 영향을 몇 번이고 끼쳤다.[23]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 작품의 중심이 되는 핵심 시스템을 먼저 구상하며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쓴다고 한다.

혁신적인 사례를 보자면 당시 어드벤처 게임, RPG에서 난잡하게 많았던 커맨드를 편리한 커맨드 몇 개로 축소시킨 점 [24], 프리퀄 개념의 도입, AI 전투의 도입 같은 것이 있다. 훗날 다른 게임에서 기본으로 쓰는 것인데 그 당시엔 이런 거 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실제 경험을 게임 디자인에 반영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봤더니 무너져가는 신사가 있어 재밌었던 경험[25], 축제가 끝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 가져다 줬더니 가게 아저씨가 선물을 준 경험[26] 같은 걸 게임에 반영했다고 한다.

게임을 만들 때는 어린이도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자신은 나이를 먹어도 철들지 않은 어린이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감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게임할 때 전혀 상상도 못한 플레이를 하거나 엉뚱한 부분에 몰입하는 걸 보고 느낀 게 많아 드퀘는 레벨 노가다 + 눈 앞의 보스 공략이라는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해도 보상이 나오도록 게임을 설계했다고 한다. 게임 본편에서 벗어나 다른 것부터 한다는 '샛길(寄り道)' 이라는 플레이 방식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메뉴얼을 전혀 안 봐도 자연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추구한다고 한다. [27] 이유는 자신이 다른 게임을 할 때도 메뉴얼을 안 보고 했으며, 그게 더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컴퓨터를 배울 때도 메뉴얼을 전혀 보지 않았으며 그래서 포토피아를 만들 때도 단 4개의 명령어만 써서 만들어 주변에서 특이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 게임은 튜토리얼이 너무 많다, 직관적인 시스템이 별로 없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상엔 무의미한 것이 없다고 하며 드래곤 퀘스트에서도 뭔가 용사의 모험이랑 관계없는 짓을 했는데 세상을 구했다 같은 스토리가 많다. 드래곤 퀘스트에 AI 전투를 도입할 때 일부러 이상한 짓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판타지, 이세계물에서 나오는 용사의 이미지를 창시한 사람이기도 한데 용사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포기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한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다른 RPG는 죽으면 게임 오버지만 드퀘는 돈만 잃고 경험치는 남겨준다고 한다.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이전엔 이런 RPG가 없었고 바로 게임오버, 리트라이였다며 이것 또한 호리이 유지의 사상이 드러나는 혁신적인 발명이라고 평했다.

수치 밸런스도 중시한다. 직접 디버그를 하면서 밸런스를 맞춘다고 한다. 다만 드퀘 2는 바빠서 이 작업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한다. 문제점은 인식했지만 수정할 시간이 없어 그대로 출시했다고 한다.[28] 대신 2에서 인식한 문제점은 3를 만들 때 고쳤다고 하며 덕분에 3는 갓겜이라는 평을 받았다. 드래곤 퀘스트 9 때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 라면서 수정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게임의 플레이의 추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게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게임 팬을 위한 이벤트를 자주 주최하며 다른 게이머와 교류하면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넣기도 했다. 호리이 유지 말로는 이러한 기능을 통해 결혼을 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다만 일본 밖에서는 이벤트에 참여할 방법도 없고, 드퀘의 유저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교류도 쉽지 않아 보상을 얻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해외판에선 아예 기능을 빼버리기도 하는데 새로운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빼버릴 뿐이다. 이런 점은 평이 좋지 않다.

3.5. 기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 성우가 잘 도입되지 않아 한국 팬들 사이에서 "호리이는 게임에 음성이 도입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굉장한 성우 덕후다. 베테랑부터 신인 성우까지 다 파악하고 있으며 라이안 스기타 토모카즈, 핫산 야스모토 히로키 같은 경우는 직접 지명했다고 한다. 녹음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연기 지도까지 해줄 정도였다고. 그래서 음성이 들어간 8 리메이크, 드퀘 히어로즈, 드퀘 11 S 같은 경우에는 성우 팬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드퀘에 음성 도입이 잘 안 되는 것은 게임 완성 직전까지도 시나리오 라이터인 호리이 유지가 대사를 계속해서 수정하기 때문에 성우 녹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일단 도입되면 호리이 유지가 생각한 이미지 그대로의 성우가 캐스팅되니 평은 매우 좋다.

오픈 월드 게임도 좋아하며 특히 위쳐 3는 "내가 게임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걸 다 해버린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도 좋아한다고 한다. 다만 오픈 월드 게임은 만드는 측뿐만 아니라 즐기는 플레이어도 즐길 줄 아는 재능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며, 대중을 위해 만들고 있는 드퀘를 오픈 월드로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오픈 월드는 플레이어에게 뭘 해야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줄 수 있다며 어느 정도 가이드 라인을 주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드래곤 퀘스트 11 국내 발매 때 제작진들이 인터뷰에서 추후 언젠가는 드래곤 퀘스트를 오픈 월드로 제작해보고 싶다고 밝혔는데 호리이 유지가 이를 허가할지는 미지수. 다만 여러 컨셉의 외전이 무수하게 출시되고 있다는 시리즈 특성상 언젠가는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판타지 세계관 게임을 만들지만 일본인 같은 NPC, 몬스터 이름이 나올 때가 많다. 개발 스태프의 이름 혹은 별명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 III HD-2D Remake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검열이 들어가 논란이 되었는데 호리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고 서양 쪽의 심의를 준수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자신은 "이런 거 까지 검열해야 되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호리이는 예전부터 "요즘 세상의 검열이 너무 심해졌다." 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4. 참여작

5. 여담

6. 관련 문서



[1] 드래곤 퀘스트는 당시 에닉스에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가 없어 여러 유명인들에게 위탁해서 화제를 끄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호리이 유지, 토리야마 아키라, 스기야마 코이치도 저작권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만약 호리이 유지가 회사 직원일 때 게임을 만들었다면 업무상 저작물이 되어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수익도 나눠 가지므로 스퀘어 에닉스 회사 입장에선 드래곤 퀘스트는 파이널 판타지보다 돈이 덜 된다고 한다. [2] 다만 의외로 게임 개발진을 총괄하는 디렉터나 실무 프로듀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게임 감수를 담당하는 총괄/제너럴은 종종 맡지만 말이다. 나무위키 등지의 각종 웹사이트에는 그가 DQ의 프로듀서나 디렉터였던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호리이 유지는 게임 전반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시나리오 라이터이다.(+일부 작품은 감수도 담당)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초창기 디렉터는 호리이 유지의 파트너였던 나카무라 코이치였다. 다만 게임 디자이너 또한 게임 개발에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핵심 개발자라는 건 동일하며, 디렉터인 나카무라 코이치가 개발진에서 하차하고, 프로듀서인 치다 유키노부도 원래부터 게임 프로듀서라는 직책 자체가 개발과는 거리가 있는 직책이었는데 드래곤 퀘스트 7부터는 아예 총괄 프로듀서로 승진해 제작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호리이 유지가 직책하고는 별개로 드래곤 퀘스트 실무 개발진의 확고한 1인자라고는 할 수 있다. 애초에 드래곤 퀘스트의 저작권이 호리이 유지에게 있으니 말 다했다. 정확히는 그의 업무는 게임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기획, 시나리오를 만들어주고 게임이 만들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이상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수정을 요청하는 식이다. 던전의 구조라던가 수치 밸런스 같은 건 호리이 유지보다는 다른 디렉터의 영향이 크다. [3] 원안과 감수는 호리이 유지가 담당했지만 크로노 트리거의 스토리를 직접 집필한 메인 시나리오는 카토 마사토가 담당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글을 직접 집필하는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만 아닐 뿐, 호리이 유지도 일반적인 시나리오 원안 작가들과는 달리 시나리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보다 자세한 개발 과정은 크로노 트리거 문서 참고. [4] 실은 혹시나 해서 메이지대학, 호세이대학도 지원했는데 다 붙었다고 한다. [5] 사쿠마와 호리이는 대학은 다르지만 다른 대학 만화 연구부끼리 교류를 해서 친했다고 한다. [6] 코이케 카즈오와 자신은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르므로 크게 배운 것은 없다고 한다. 대신 코이케 카즈오 덕에 자신 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이후로도 스승님이라 언급하며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는 편. [7] 다만 별로 친하진 않았는지 그때 친해졌어야 했다고 후회하였다. [8] 이때 워낙 다른 회사를 상대로 문제 발언을 많이 해서인지 2016년까지 유우테이가 자신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호리이 유지가 유우테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며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드래곤 퀘스트의 비밀 테크닉이나 개발 정보를 잘 알고 있다." 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9] 드퀘 발매 초기에는 패미컴 신권 코너의 이미지가 있어 계속 이런 이미지를 유지했으나 국민 게임이 되고 그만두었다. [10] 일본의 PC는 한자 변환 등의 문제로 90년대 중기까지는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없어 문서 작성을 할 때는 와프로라는 전용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을 정도였다. [11]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는 나카무라 코이치가 맡았다. [12] 다만 수치 밸런스 쪽은 다른 디렉터들의 영향이 강하다. 호리이 유지가 밸런싱을 할 때 하는 업무는 테스트 플레이를 해보고 영 아닌 것 같으면 수정을 요구하는 식. [13] 5까진 모든 대사를 집필. 6부터 일부 보조 작가를 도입했으며 7부터는 감수라고 한다. 다만 수정하는 양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14] 포켓몬스터 니혼 팔콤의 게임 등 JRPG에서는 종종 이런 방대한 NPC 대사를 가진 게임들을 볼 수 있는데 호리이 유지의 드래곤 퀘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15] 착한 사람이 아무 보답도 없이 죽는다거나, 나쁜 놈이 뻔뻔하게 잘 산다던가. [16] 존경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언급하면 반드시 데즈카 오사무를 언급하곤 한다. [17] 나가이 고 작품 중에서도 수위가 가장 높고 독하기로 유명한 두 작품이다. [18] 니혼 팔콤 궤적 시리즈 또한 드래곤 퀘스트와 비슷하게 방대한 NPC 대사를 채용했으나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NPC 대사가 지나치게 많다고 비판을 가하는 유저들도 꽤 있다. 그나마 포켓몬스터는 드래곤 퀘스트, 궤적 시리즈만큼 NPC 대사가 많지는 않고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있어서 호불호가 별로 갈리지 않는 편. [19] 한때 호리이에게 잠시 게임을 배웠던 요시다 나오키는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게임에서 스토리에서 꼭 필요한 말을 하는 NPC는 말을 걸어보라고 ! 마크로 강조 표시를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며 이건 호리이 유지도 최신작에서 도입 중이다. [20] 드퀘1 당시 이런 기능을 넣기엔 용량이 부족하던 시대임에도 이름을 입력하는 기능을 기어코 넣었다. 심지어 키보드가 없어서 무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컨트롤러로 글자 하나하나 선택하는 인터페이스를 발명해 넣었다. [21] 호리이 유지는 게임 리뷰를 하던 시절에도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은 호평했었다. [22] 당시엔 대형 프렌차이즈 게임은 본편은 하이스 펙 기종으로 내고, 휴대용으론 스핀오프나 이식작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3] 2부 이상으로 구성된 방대한 시나리오, 단순한 권선징악에서 탈피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시나리오, 예기치 못한 반전 등. 오늘날의 게이머들은 시나리오가 좋은 게임들은 다 이런 요소가 하나 정도는 있는데 뭐가 참신하냐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이런 시나리오 구성을 보편화시킨 게 호리이 유지다. 실제로 일본 게임 평론계에서는 "드래곤 퀘스트처럼 단순한 권선징악에서 벗어나 심오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드래곤 퀘스트처럼 ○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표현이 오늘날에도 종종 쓰이는 걸 볼 수 있다. 지금은 흔해진 스토리지만 일단 드래곤 퀘스트가 원조이기 때문에 비유로 거론되는 것이다. 당장 호리이 유지의 첫 상업 작품인 포토피아부터가 범인은 야스라는 희대의 밈을 탄생시켜 수많은 작품이 이를 패러디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는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들의 역량이 굉장한 수준으로 상향평준화되었고 온갖 소재란 소재가 이미 다 사용되어 정말 참신하다고 할 만한 시나리오를 쓰기가 힘들어진 탓에 더 이상 호리이 유지가 게임 시나리오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쟁쟁한 현세대의 천재 라이터들에게 밀리지도 않는다는 걸 드래곤 퀘스트 11을 통해 다시 증명했다는 점에서 많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의 역량이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24] 그의 작품 홋카이도 연쇄살인 오호츠크에 사라지다가 최초이다. 호리이 유지가 게임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이라 볼 수 있다. [25] 그래서 일부러 가지 않을 법한 곳에 아이템 같은 걸 배치한다고 한다. [26] 작은메달이 탄생한 이유라고 한다. [27] 자신 외에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걸 잘하는 것 같다고 한다. [28] 없는 시간 중 그나마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조치가 마지막 던전에 세이브 포인트를 넣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그것도 없었다고. [29] 10은 크로노 트리거처럼 초안을 낸 정도이며 실제로는 기여한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이건 그의 제자인 후지사와 진(藤澤 仁) 게임으로 여겨진다. 관련 인터뷰도 전부 후지사와가 했다. 후지사와 퇴사 후에는 다른 스태프가 제작 중이다. [30] 주로 총괄이나 제너럴이라는 직책으로 참여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권력 자체는 크지만 게임 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고 최소최저한의 감수만 하는 직책이다. [31] 아무래도 신세대 사이에서는 드퀘가 옛날 게임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주 시청층의 나이대가 홀로라이브보다 낮은 니지산지 쪽은 드퀘를 하는 멤버가 별로 없다. 다만 니지산지도 2023년 들어서 내부 유행이 돌아 드퀘를 하는 멤버가 많이 늘었다. [32] 칭찬하면서 한 말이 "용사를 죽여버리다니 무슨 짓이냐!" [33] 드래곤 퀘스트 7 이전엔 현실 기반 작품에 주로 나왔다. [34] 10은 호리이 유지의 터치가 거의 없어 사실상 후지사와가 다 만든 게임으로 드래곤 퀘스트 10 오프라인 버전은 후지사와가 만든 ver 1, 2를 수록한 것이다. 그 이후 분량은 다른 사람들이 제작한다. 9도 후지사와가 직접 자신있는 스토리라고 하기도 했으며 호리이가 9은 후지사와 없으면 안 나왔을 게임이라고 했으므로 후지사와가 많이 관여한 게임으로 보인다. [35] 후지사와는 드퀘10을 만들던 중 드퀘9의 개발이 위험해져서 드퀘9의 디렉터로 잠시 옮겨갔는데 그때 요시다에게 잠시 10을 맡기지 않았다면 10은 망했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후지사와가 생각한 것과 좀 달라 많이 고쳤다고 한다. [36] 다만 윌리엄 샤트너가 호리이 유지보다 고령인데도 우주에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