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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1:35:01

철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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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역
(폐역)
다른 문자 표기
로마자 Cheorwon
한자 鐵原
간체자 铁原
가나 [ruby(鉄原, ruby=チョルォン)]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4
(외촌리 505)
개업일
경원선 1912년 10월 21일 ~ 1950년
2024년 예정
금강산선 1924년 8월 1일 ~ 1950년
철도거리표
경원선
철 원
(계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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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폐선 철도거리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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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철 원
(폐역)
기점
금강산선
철 원
(폐선)
}}}}}}}}}
파일:철원역.jpg
승강장 터[1]

1. 개요2. 역 정보
2.1. 6.25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2.2. 복원
3. 역 주변 정보4. 기타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경원선 금강산선의 폐지된 철도역.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655-27번지 일대 소재.

참고로 철원역은 민통선 내부이기 때문에 출입심사를 통과해야 철원역 터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거리뷰를 통해서 볼 수 없다.

2. 역 정보

원래 철원역이 자리한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춘천읍(현 춘천 시내)에 버금갈 정도로 번성하던[2] 철원군의 시가지 지역이라서 기본 수요가 큰 데다가, 금강산선 분기점이었기 때문에 기본 철도 시설 말고도 금강산선 조차장, 사무실, 전기시설, 여관이 밀집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무려 서울역이나 용산역과 견줄 만한 전철역이었을 정도로 손꼽히는 번화가였고 위상이 높은 지역 중의 하나였다.

사실 예전부터 철원은 한성부 원산을 잇는 삼방간로가 관통하는 지역인데다 역참도 있었고, 금강산선 철도를 타고 원산의 해수욕장과 금강산을 여행할 수 있는 분기점이라서 재래시장까지 있었던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3]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서울이나 평양에서 동해안으로 놀러간다고 하면 으레 경원선 금강산선을 타고 원산이나 금강산으로 놀러간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한반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까지 들어섰으니 더더욱 번성하는 것이 당연했고, 사실상 강원도 북부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다. 오늘날에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지적도를 보는 것인데, 전철역 터가 보전관리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28년에 역사를 신축했고, 1934년 3월 9일에는 구내과선교와 승강장 지붕까지 설치했다. 남아 있는 사진들을 보면, 옛 조치원역처럼 벽돌색 2층 역사이다.

네이버지적도로 살펴보면 규모가 60,000여 평에 이른다. 의왕역이 55,000평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직원들도 80여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정도로 배치된 역은 청량리역, 영등포역, 오봉역, 수원역, 제천역, 익산역, 영주역, 동해역 등 정말 굵직굵직한 철도역들 뿐이다. 물론, 일일이 사람 손으로 만져줘야 하는 부분이 많던 20세기 전반의 철도를 단순하게 견주는 것은 좀 무리가 있기는 하다.[4] 사실 근무 인원이 더 많은 들도 있다.( 서·대·동·부, 수색 등)

강원도에서 추진하는 원주춘천선의 종점으로 계획되어 있다. 해당 문서 참조.

2.1. 6.25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a0048039_52a951ad93236.jpg
출처는 여기 구내 과선교가 박살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부서진 과선교(구름다리)는 철원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였다.
파일:舊철원역사54년항공사진.png
옛 철원역의 1954년도 항공사진[5]

애석하게도 6.25 전쟁으로 인해서 완전히 사라졌다. 승강장은 없어지고 급수탑은 폭파되었으며, 선로도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물론 옛 철원 시가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까닭은 철원읍 지역을 중심으로 백마고지 전투와 같은 대격전이 장기간에 걸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역사(驛舍)는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없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1945~50년 사이에는 이 지역이 삼팔선 이북 소련 북한의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측은 자료가 없다. 따라서 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북한 측의 자료가 상세히 알려져야 한다.

선로는 철원역 터 이남으로 신탄리역 방향과 금강산선 분기점 사요역 방향, 이북으로는 월정리역 방향으로 모두 세 방향으로 있었으나 이는 역시 오래전 철거되었으며, 노반흔적들은 휴전 이후 주민들이 땅을 논과 밭으로 개간하며 조금 없앤 곳도 있으나 일부 보존되어 있다. 구글어스로 주변을 보면 옛 경원선, 금강산선의 노반이 조금씩 보일 것이다.

한동안 방치되다가 1988년에 안보관광목적으로 잔해를 복원[6]한 뒤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민통선 이북 지역에 있기 때문에 관광시간과 인원이 철저히 제한되고 출입할 때에 검문검색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또 상태가 워낙에 빈약[7]하다 보니 안보관광교육 등의 코스도 차라리 월정리역[8]으로 가지 철원역은 지나가면서 설명만 이루어지는 정도로 끝난다. 따라서 직접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 지역을 위수지역으로 삼는 대한민국 육군 제6보병사단의 허가를 받아 개인방문하는 편이 쉽다.

2006년 5월 3일에 구내에 통일 염원의 침목이라고 쓰인 상징탑이 건립되었다.

2.2. 복원

파일:철원군 CI_White.svg 철원군의 관광
도피안사 백마고지역 월정리역 철원 노동당사 철원역 한탄강

2007년에 신탄리역에서 끊긴 경원선 철원 부근까지 연장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철원역 자리인 외촌리 지역이 민통선 이북인 관계로 옛철원까지 복원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다가 민통선 이남인 대마리에 백마고지역을 만드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철원군민들은 옛날의 철원에 철원역이 들어서야 된다고 생각해서 대마리에 들어서는 역을 철원역과는 별개인 역으로 간주하여 백마고지역으로 이름을 정함에 따라 철원역은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2017년 11월까지 백마고지역 ~ 철원역 ~ 월정리역 ~ 군사분계선 사이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 2015년 8월 5일 백마고지역에서 백마고지-월정리구간 단선비전철 복원구간 기공식이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민통선 북쪽에 있어서, 경의선 도라산역처럼 개통 뒤에도 출입증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월정리역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2016년에 들어서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사업 자체가 난항을 겪고, 토지보상도 지연되면서 사실상 복원 중단 상황에 이르렀다. # 관련 기사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면서 완벽하게 중단되었다. 당연히 철원군 주민들은 기를 쓰고 재개하라고 1년 넘게 요구하며, 릴레이 편지쓰기를 하고 있다.

백마고지역을 직접 답사하여 확인해 보면 철원역, 월정리역 방면으로는 공사가 전혀 진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네이버 지도를 보면 백마고지역 이북으로 연장 공사 진행 중이라는 공사 진행 표시선이 되어 있으며 이 구간의 공사는 멈춰 있는 대신 경원선 백마고지-월정리 간 용지 매수(토지매입)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수도권본부 사업지원처 토지보상부를 보면 경원선 남측구간(백마고지~군사분계선) 토지보상업무를 하는 담당자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22년 11월 국토교통부 고시 제2022-620호를 보면 실시계획을 2024년 12월 31일까지로 연장한 상태이며, 해당 고시문에 강제 수용할 토지 목록도 나와 있으니 참고할 것이다. 전자관보

2022년 7월 철원역 인근 노동당사 건너편에 일제강점기 시절 철원역과 철원 시가지를 재현한 철원 근대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역사문화공원 내에 재현복원되는 철원역에서는 대합실에서 표를 구입해 소이산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정상 인근까지 올라갈 수 있다. # 하지만 재현과 관련하여 왜색 및 일제 침략 미화 논란이 있다. #

3. 역 주변 정보

역사로부터 약 1㎞ 떨어진 곳에 2009년에 개관한 철원근대문화유적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데, 철원얼음창고(등록문화재 제24호), 농산물검사소(등록문화재 제25호)와 더불어, 제2금융조합건물지(등록문화재 제137호)가 있다. 옛 시가지 관련 유적과의 연계를 목적으로 조성된 것.

4. 기타

1990년도에 제일제당 다시다 광고에서 월정리역과 금강산 철길 노반, 그리고 철원역 터를 촬영 했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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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목제 행선안내판이 남아 있을 시절의 승강장 터 사진은 해당 링크에서 열람 가능하다. [2] 1944년에 춘천읍 인구가 37,542명, 철원읍은 30,186명으로 강릉읍, 원주읍보다도 많은 인구가 거주하던 곳이었다. 가히 그때에 철도 중심지로서의 높은 위상을 알 수 있다.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휴전선이 가깝다는 현실 때문에 그런거지, 분단이 안되었거나 적어도 철원역 일대가 최전방이 아닐 정도로 휴전선이 북상했다면 현재도 원주역이나 춘천역급은 되었을 지도 모른다. [3] 금강산은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8.15 광복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문학과 예술의 배경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관광지였다. [4] 한국철도공사에서 인력 감축이 눈에 띄게 진행된 것도 고려해야 한다. [5] 전쟁 때에 항공폭격으로 생긴 화구가 보인다. 오른쪽 상단은 월정리 방면, 왼쪽 하단은 서울 방면이고 가운데 하단은 금강산선이다. [6] 이때에 월정리역도 같이 정비되었다. 철원역은 북쪽으로, 월정리역은 남서쪽으로 조금 옮김. [7] 위 사진대로 역사도 없고 1면 1선의 승강장에 역명표를 세워놓은 것이 전부이다. [8] 일단 이쪽은 역사(驛舍)가 있고 폐기관차 등의 전시물이 보다 충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