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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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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자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제출년도 2000년
등록년도 2001년[1]
링크 유네스코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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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권하 1면 출처
1. 개요2. 역사3. 형태 및 내용4. 목차5. 의의6. 기타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고려 시대 청주목(淸州牧)에 있었던 사찰 흥덕사(興德寺)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쇄된 불교 요절(要節)이다.

직지심체요절의 정확한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제목을 풀이하면 백운[2]이라는 고승( 화상)이 간추린(초록) 부처님(불조)의 깨달음(직지심체[3])을 요약한 책( 요절)이라는 뜻이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로 축약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 직지심경'으로 부르기도 하나, 직지는 불경이 아닌 요절이므로 엄밀히 '직지심경'은 잘못된 표현이다.

2. 역사

1377년(우왕 3년), 고려 청주 흥덕사에서 고승이었던 백운 경한이 쓴 책을 금속활자로 뜬 것이다. 이 경전은 학승들이 대교과(大敎科)를 마치고, 수의과(隨意科, 현재의 대학원 혹은 사회 학습)에서 공부하는 데 사용되는 학습서 역할을 했다. 그 후 행방은 알 수가 없다가 구한말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공사이자 고서적 수집광이기도 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한 고물품들 중에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파일:Courant_-_Souvenir_de_Séoul,_Corée-03a.jpg
빅토르 콜랭 드의 이름은 한자로 갈림덕(葛林德)이라고 한다. 아마도 '콜랭 드'를 한자로 적은 것 같다. 때문에 직지의 첫 페이지에는 갈('')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이후 1911년,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이 재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베베르가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다. 1900년 파리 엑스포 한국관에 소개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은 접어두더라도 오리엔트(근동) 지역에서 워낙 유물 유입이 빈번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알려졌기 때문에 직지심체요절까지 병인양요 프랑스군에 약탈당한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직지심체요절은 외규장각에 있지도 않았다. 외규장각과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로 가게 된 바에는 하등 관계가 없다. 9급 공무원 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이 점을 노리고 문제가 출제된 바 있다. 둘 다 약탈과 관련된 문항을 고르면 틀리는 함정문제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사실도 1972년, 박병선 박사에게서 밝혀졌다. 발견 당시 학계에서는 직지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말을 믿지 않고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박병선 박사는 혼자서 연구를 시작했고, 한국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어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임을 입증해냈다. 이로써 그녀는 \'직지대모'로 불리게 됐다.

상기의 내용이 그간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조선일보에서 이것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지 및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고서적들을 반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약속한 것은 사실이며, 실제로 의궤는 반환받았지만, 직지는 반환받는 데 실패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주도한 직지 반환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반출 경위가 약탈이 아닌 구입이었기에 명분도 부족하다.

3. 형태 및 내용

직지심체요절은 고려의 승려 백운경안 화상이 중국에서 가져온 요절을 재구성하여 엮은 책으로, 여러 선종 조사들의 어록과 게송이 주된 내용이다. 때문에 영어로는 ' anthology'로 번역됐다.

이 책은 '무심선(無心禪)'이라는 특유의 선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 방법은 무심무념으로 있으면서, 사람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깨달음(불성)이 자연스럽게 깨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백운경한은 현대 한국 불교에서 주력으로 삼는 의심 기반의 간화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무(無)’·‘만법귀일(萬法歸一)’·‘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등의 화두를 유용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화두마저도 버릴 것을 권하고 있다. 이는 당나라 시대의 선풍을 되돌리기 위했던 백운의 노력인 것으로 풀이된다.

직지는 각 상권, 하권의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프랑스에 있는 원본은 하권에 해당하며, 상권은 한때 현상금까지 내걸고 찾았지만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 이는 최초본의 상권 책 실물이 실종되었다는 뜻으로, '직지'라는 책의 텍스트 자체는 인쇄물의 특성상 오늘날에도 잘 남아 있다. 후에 간행된 목판본 직지는 완본이 제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주도 아래에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금속활자본 직지 하권의 글자체와 판형을 본떠서 2015년 상권 내용의 디지털 복원이 이루어졌고, # 복원된 상권을 보면 권말의 출간 연도도 二千十五年(2015년) 을미년 12월로 인쇄되어 있다. 후에 실물활자를 전통방식 그대로 다시 만들어 상권을 복원할 계획이다.

인쇄 상태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그다지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직지를 찍어낸 활자는 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글자획의 굵기와 가늘기가 일정하지 않고, 어떤 글자는 기울어져 있고, 각 열이 곧지 못하고, 삐뚤빼뚤하고, 어떤 글자는 희미한 데다가, 획수의 일부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으며, 어떤 데는 윗열의 글자와 아랫열의 글자의 획이 맞물려 있는 등 조잡한 오류가 많다. 이는 관청에서 제대로 된 거푸집을 사용해서 주조한 게 아니라, 민간 사찰에서 밀랍을 이용해 주조했기 때문이다. (박문열,『고인쇄출판문화사론』, 피아이, 1999. 참조)[4]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문헌에도 일부 면에 구결이 기입되어 있다. 여말선초 음독구결의 전반적인 특징을 따라가고 있다. # 구결 기입 면은 약 3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언어적 특징이 약간 차이를 보여 각 부분 모두 다른 사람이 구결을 기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김두찬 1987:145-148).[5]

4. 목차

과거 7불(佛) 7장, 서천(西天)의 조사(祖師) 27장, 중국의 조사 138장(총 172장)으로 구성되어있다. 하권은 중국의 조사 중 1명인 대주 혜해(大珠慧海)부터 시작한다.

5. 의의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있다. 2010년대에 발견된 활자 증도가자가 직지보다 138년 앞선 1239년의 유물로 더 앞선 시대의 금속활자 인쇄의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2015년은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검사 결과로 증도가자는 위작으로 밝혀졌다. 또다른 세계 최고(最古) 타이틀로 알려진 문화재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도 헷갈리기도 하나 이것은 금속으로 만든 금속활자가 아닌, 나무로 만든 활자로 인쇄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목활자 기술이 금속활자보다 더 먼저 출현하기 마련이므로 시대는 그 쪽이 직지보다 500여 년 앞섰다.

현재 남아 있는 본은 1372년 제작이 시작되어 1377년에 간행되었다. 이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더 앞섰다. 기록에 따르면 직지 전인 1134년 인종 시기의 '고금상정예문( 상정고금예문)', 1239년(고종 26년) 고종 시기의 '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같은 금속활자 인쇄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소실되어 현대에 전해지지 않기에 인류에게 남아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이 직지이다. 당시 고려의 발달했던 인쇄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이다.

현재 남아 있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후대에 목판으로 재간행된 목판본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보물 제758-2호)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판명되어 달라질 수 있다. # 2015년 진위논란이 일었던 증도가자는 ' 활자'고, 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적어도 과거에는 실제로 존재했을 그 금속활자로 인쇄한 '문서'이므로 증도가자 유물의 진위 논란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이 문서는 일단 최소한 가짜는 아니고 이미 심사를 거쳐 대한민국의 보물 7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기존에는 목판본으로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결론날 경우는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는 당대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한계로 유럽과는 달리 폭발적인 사회 변혁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금속활자 문서의 해당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기타

7. 관련 문서


[1] 9월 4일에 등재되어 대한민국의 법정기념일, 지식재산의 날로 지정된 날이기도 하다. (지식재산기본법 제29조의2 제1항 의거). [2] 본명은 ' 경한'(景閑, 1298/1299-1374)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였다. 현 정읍시 출신이며 전라북도 장수군 신광사(神光寺), 경기도 장단군 흥성사(興聖寺)의 주지였다. # [3] ‘직지심체(直指心體)’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는 오도(悟道)의 명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 뜻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깨달을 때 그 심성이 바로 부처의 실체라는 것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사실 한반도의 고문헌이 유독 국가 편찬이 많아서 인쇄 품질이 좋은 편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민간에서 찍은 책이 많아서 도서의 수는 한반도보다 많지만 그런 만큼 인쇄 품질은 낮은 편이었다. [5] 김두찬(1987), 직지심체요절의 구결에 대하여, "국어학" 16, 125-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