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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3:13:3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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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white,black> 군정 종결
(1946)
북조선인민위원회
헌법
(1948)
내각
사회주의헌법
(1972)
중앙인민위원회
제1차 수정보충
(1992)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제2차 수정보충
(1998)
국방위원회
제7차 수정보충
(2016)
국무위원회
* 제1차 수정보충된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중앙인민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병존했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유훈통치 기간에는 국방위원회가 사실상 최고통치기관으로서 기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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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법적 근거3. 연혁
3.1. 역대 주석3.2. 역대 부주석3.3. 역대 서기장3.4. 역대 위원
3.4.1. 1972년 5기 최고인민회의3.4.2. 1977년 6기 최고인민회의3.4.3. 1982년 7기 최고인민회의3.4.4.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3.4.5. 1990년 9기 최고인민회의
4. 부문별 위원회5. 여담6. 참고문헌

1. 개요

1972년부터 1998년 사이에 존재한 북한의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

2. 법적 근거

2.1.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7장 중앙인민위원회

2.2. 1992년 헌법

제6장 국가기구
제4절 중앙인민위원회

3. 연혁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소집과 함께 김일성은 사회주의 헌법을 실시하면서 기존의 내각수상제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국가주석으로 헌법 6장 89~99조에 의거하여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을 통솔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국무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감독하는 중국의 국가주석에 비해서도 더욱 강력한 권한이었다.

중앙인민위원회는 인민무력부를 비롯하여 국가무력기관에 대한 지도 및 인사권, 대외정책에 대한 지도권, 정무원 지도권 등 핵심적 권한을 모두 장악한 최고 국가기구였으며 1972년 12월에 선출된 인민위원들은 대부분 현직 정치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들, 당비서와 부서장, 정무원 부총리들로 단순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최고지도기관이었다. 훗날 김정일 시대에 최고지도기관이 되는 국방위원회도 어디까지나 중앙인민위원회의 산하 기관에 불과했다. 북한은 중앙인민위원회를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의 국가주권의 상설적인 최고지도기관으로서 모든 국가기관들과 국가사업에 대하여 주권적인 지도와 감독"한다고 규정하며 그 기능에 대해 "수령님의 교시와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국가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정확히 관철하며 공화국 주석의 유일적 령도 밑에 모든 국가기관들이 한몸과 같이 움직이도록 전투적 기능을 높일 수 있게 하는 확고한 담보"라고 했다.

그런데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준비되면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는 국방위원회를 중앙인민위원회에서 분리승격시켰으며, 1992년 헌법 개정에서도 관련 단락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1972년 12월에는 25명의 인민위원이 선출되었으나 1990년 5월에는 위원 수가 15명으로 축소되었으며 그나마도 실제로 각 지방 인민위원장들로 구성되는 등 최고지도기관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 아니나다를까 김정일은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 헌법을 채택함으로 중앙인민위원회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와 통합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복원한 다음에[1] 국방위원회를 통해서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3.1. 역대 주석

대수 성명 임기 비고
1 김일성 1972년 12월 25일 ~ 1977년 12월 14일
2 1977년 12월 15일 ~ 1982년 4월 4일
3 1982년 4월 5일 ~ 1986년 12월 28일
4 1986년 12월 29일 ~ 1990년 5월 23일
5 1990년 5월 24일 ~ 1994년 7월 8일 임기 중 사망, 1998년 직함 폐지 때까지 공석

이후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되었으나 김정은 시대 들어서 이 부분이 헌법에서 사라졌다.

3.2. 역대 부주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 문서 참조.

3.3. 역대 서기장

대수 성명 임기 비고
1 림춘추 1972년 12월 25일 ~ 1977년 12월 14일
2 1977년 12월 15일 ~ 1982년 4월 4일
3 1982년 4월 5일 ~ 1983년 4월 9일 부주석으로 승진
4 리용익 1983년 4월 9일 ~ 1984년 1월 27일
5 김이훈 1984년 1월 27일 ~ 1985년 11월 19일 최고인민회의 7기 3차 회의에서 보선
6 리용익 1985년 11월 19일 ~ 1986년 7월 8일 조선로동당, 중앙인민위원회 합동회의에서 보선
7 지창익 1986년 12월 29일 ~ 1990년 5월 23일
8 1990년 5월 24일 ~ 1997년 10월 9일
9 리명철 1997년 10월 9일 ~ 1998년 9월 5일 중앙인민위원회 폐지

3.4. 역대 위원

3.4.1. 1972년 5기 최고인민회의

3.4.2. 1977년 6기 최고인민회의

3.4.3. 1982년 7기 최고인민회의

3.4.4.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

3.4.5. 1990년 9기 최고인민회의

4. 부문별 위원회

5. 여담

김정일 시대에 기능하기 시작한 국방위원회, 그리고 김정은 시대의 국무위원회의 조상 쯤 되는 기관이지만 현재는 거의 잊혀졌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김정은은 국무위원장으로 직함을 가지고 다녔지만 김일성은 중앙인민위원장이 아닌 국가주석이라는 좀 동떨어진 직함이었기 때문도 한몫할듯.

중앙인민위원회와 개헌 이후 독립적 권력기관으로서의 국방위원회에서 모두 활동한 인물 오진우, 연형묵 사람 밖에 없다. 김정일은 김일성 시대의 엘리트가 아니라 자신과 친한 엘리트들을 중용하면서 특유의 선군정치를 추진하기도 했고, 김일성 시대 말엽에 국방위원회가 중앙인민위원회에서 독립한 이후에는 중앙인민위원회가 정말로 각 도 및 주요 도시 인민위원장들의 친목단체로 전락하면서 김정일 집권 시점에는 중앙인민위원 중에서 딱히 국방위원회로 불러들일 양반이 별로 없기도 했다.

6. 참고문헌


[1] 이와 동시에 정무원이 내각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