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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5:52:56

이인직

신소설 3대 작가
이인직 이해조 최찬식
한국의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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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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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적 운율·정서를 계승한 시인. [2] 조국 광복 염원·의지 및 부정적 현실 극복을 다룬 시인. [3] 정치적 이념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한 유파. 특정 사상이나 계급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반발하며 등장했으며, 시 동인지 《시 문학》을 중심으로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했다.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의 시인이 활동했다. [4] 부정적 현실을 지식인의 관점에서 비판한 소설이 많았다. 특히 의식의 흐름 기법이 많이 쓰였다. 대표적으로 이상 날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있다. [5] 장편소설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부정적 인물이 득세하던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 이때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채만식 태평천하, 염상섭 삼대가 있다. [6] 계몽주의에 기반한 농촌 계몽 소설, 향토적 삶을 다룬 향토적 농촌 소설, 식민지 지배와 통치 제도의 억압성과 부조리로 인한 농촌의 현실을 다룬 현실 비판적 농촌 소설이 있다. [7] 만주 사변 이후 더욱 극심해진 일제의 사상 통제와 검열을 피해, 역사적 사건을 다루어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8]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어 아예 한국어 사용 자체를 금지할 지경에 이른 관계로 주제 의식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몇몇 단편들만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순수 소설인 황순원 '별'이 1941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전후세대(1920년대생) 작가들은 체계적인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다른 세대와 비교도 안되는 굴곡진 인생 경험을 했음에도 이를 풀어내는데 한계가 있었고 이전 세대와 60년대 부상한 한글세대(김승옥 등) 사이에 끼어버렸다.
고전문학 · 장르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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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
李人稙
[1]
파일:이인직.jpg
출생 1862년 6월 7일
조선 경기도 이천
사망 1916년 11월 1일 (54세)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본관 한산 이씨[2]
별칭 호(號) : 국초(菊初)
주요
이력
일본 관비 유학생
일본제국 해군 통역
《국민신보》 주필
대한제국 중추원 부찬의
경학원 사성(司成)
주요
저작
혈의 누》, 《모란봉》
은세계》, 《치악산》
종교 남묘호렌게교) → 풍류도
비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2. 생애3. 유학

[clearfix]

1. 개요

조선 말기 ~ 일제강점기 시절의 신소설 작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호는 국초(菊初). 경기도 음죽(陰竹)(현재의 장호원) 출생.

광복 이후 한국 국사 국어교과서에서는 이인직을 최초의 신소설을 쓴 선각자로만 가르쳐왔고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했지만 1990년대 국어교과서에서는 《 혈의 누》를 기재하면서 작가 소개에 작품과 별개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걸 서술하기도 했다.

2. 생애

1862년( 철종 13년) 7월 27일에 경기도 음죽현 동면 거물리(現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노탑리 거머리마을)의 몰락한 양반 인천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관비 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도쿄정치학교의 청강생으로 입학한 1900년( 광무 4년) 이전까지의 행적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 유학 시절 우수한 성적을 기록해 러일전쟁 일본 해군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종군하면서부터 출세길이 열린다. 전쟁 후 일본 통감부의 추천으로 실세 이완용과 인연을 맺어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들어간 것. 이 때부터 친일 행적이 시작됐다.

이후 이완용의 추천으로 일진회의 기관지 《 국민신보》의 주필을 맡게 되았고, 이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신소설의 집필에 들어갔다. 1906년(광무 10년) 《 만세보》에 〈 혈의 누〉 등 친일소설을 연재하고,[3] 1908년( 융희 2년)에는 원각사라는 서양식 신파극 극장을 만들어 친일희곡 은세계〉를 상연했다. 이 공(?) 때문인지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로부터 성균관 대사성직을 임명받아 죽기 전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4]

1916년 11월에 신경병으로 사망했다. 언제 입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의 신종교인 남묘호렌게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1916년에 사망했을 때에도 풍류교 예법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3. 유학

작품 내적으로 주인공의 미국 유학 부분은 "화성돈( 워싱턴 음역)에서 선진 사상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한 마디로 대충 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해조의 작품을 비롯해 당시 신소설 대부분의 작품에서 유학을 가는 장면은 이런 식으로 묘사된다.[5]

당시 유학이라는 개념은 선진국에 갔으니 당연히 선진 문물을 배워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단순한 사고였고, 따라서 유학해서 배우는 신학문의 실체와 그 구체적인 실천 과정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당시 집필하던 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신소설에서의 유학이라는 것은 일종의 수사적 장치처럼 행위의 구조 속에 끼워넣은 것이다.[6] 고전 소설에서 광대, 왕, 사또, 포도대장이 그 이름에서 기대되는 역할을 작중에서 맡듯이. 사실 이런 부분은 근대소설인 이광수도 마찬가지라서, 무정에서도 유학이 이런 식으로 다이제스트 처리된다.


[1] 히라가나로는 'りじんしょく' [2] 25세 직(稙) 항렬. [3] 상편은 만세보에 연재하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은 1913년 2월부터 6월까지 63회에 걸쳐 《 매일신보》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4] 그러나 낭비가 심했는지 생활은 가난했다. 자전소설인 1912년 《빈선랑의 일미인》(가난한 조선 남자의 일본인 아내) 에서는 돈이 없어 사기를 쳐서 돈을 벌 목적으로 옛친구를 만나고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즉 이인직은 일본식 저택을 지어서 살고 있었는데 이를 유지할 비용이 없었던 듯하다. [5] 이해조의 《구의 산》, 《춘외춘》, 《화의 혈》, 최찬식의 《안의 성》 등. 당시 유학 장면이 나오는 신소설 치고 그 세부 행적을 자세히 묘사하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6] 《한국현대문학사 1》, 권영민, 2002, 민음사, p.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