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과 무관한 2005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에 대한 내용은 혈의 누(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한제국의
소설 혈의 누 血淚 Blood R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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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 |
▲ 1908년 재판된 단행본[1] | |
<colbgcolor=#CCCCCC,#4B4B4B><colcolor=black,white> 저자 |
[[대한제국| |
공개 | CE 1906년 7월 22일 ( 만세보) |
언어 | 한국어 ( 한글) |
종류 | 소설 |
장르 | 신소설 |
배경 |
시간
CE
1894년 ~
1902년( 대한제국 고종) 공간
조선의
평양,
부산일본의 오사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
등장인물 |
김옥련, 구완서, 최춘애, 김관일, 최항래, 이노우에, 이노우에 처, 고장팔, 장팔 모,
캉유웨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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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
권수 1권 (한국어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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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血淚이인직이 쓴 소설.
한국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제목인 '혈의 누'는 일본식 표현인 '血の淚'을 직역한 것으로, 더 자연스러운 말로는 '혈루' 내지는 '피눈물'이 된다. 비슷한 제목으로 역시 이인직이 지은 '귀의 성'이 있다.
청일전쟁 때 부모[2]와 헤어진 조선의 소녀를 일본군이 구출해서 일본에서 신여성으로 자라나고, 헤어졌던 부모도 다시 찾고 조선의 신청년과 만나 커플이 되어 유학을 떠난다는 줄거리[3]다. '혈의 누'가 《 만세보》에 연재된 시점은 1906년 7월 22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직후다. 결국 '혈의 누'는 "일본이여, 빨리 우리를 구출해 달라"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쓰인 친일 문학인 것이다.
2. 주제
조선 민중의 계몽을 목적으로 한 다른 신소설들과는 달리 '가족 상봉'을 주 주제로 하고 있어(물론 계몽적인 내용도 포함된다) 다른 신소설들에 비해 문학적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다만 소설 중 "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 같은 마음" 같은 표현이 나오는 등 이인직이 노골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 때문에 인물 자체는 평가나 연구가 무시되어 왔다.그나마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것에서도 일본에 대한 높은 우호적 감정, 근대에 대한 무한한 찬양 같은 부분이 더 크게 강조된다. 사실 혈의 누 하나만 이런 게 아니라 이게 계몽소설의 특징이긴 한데, 작가가 작가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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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련(金玉蓮)
김관일과 최춘애의 딸. 조선 평안남도 평양부 출신. 나이는 7세 ~ 16세(1894년 ~ 1902년). 청일전쟁의 평양성 전투로 아수라장이 됐을 때 집을 벗어나서 모란봉 근처에 있다가 총을 맞아서 다리를 다친다. 일본군 소속 군의(軍醫)인 이노우에가 구해주고 측은하게 여겨서 양녀로 삼는다. 이노우에 부인에게 의지하며 살지만 결국 그녀로부터 미움을 받고 집을 도망친다. 그러다가 조선에서 온 서생 구완서를 만나서 미국까지 가게 됐으며 캉유웨이의 도움을 받아서 워싱턴 D.C.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아버지 김관일을 우연히 만나게 됐으며 구완서와 결혼까지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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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완서
조선 출신 서생. 나이는 17세 ~ 22세(1898년 ~ 1902년). 일본 오사카에 왔다가 우연히 가출한 김옥련을 만났으며 박식했던 옥련에게 무언가 꽂혔는지 그녀를 미국까지 데려가 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캉유웨이를 만나서 옥련과 함께 워싱턴 D.C.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12세 ~ 13세 때 혼인 얘기가 나왔으나 그걸 거부하고 노총각으로 남았는데, 결국 옥련과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 개혁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작가 이인직의 생각이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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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애
김옥련의 어머니이자 김관일의 아내. 부산부의 부호 최항래의 딸. 첫 등장 당시 나이는 30대 초반. 평양성 전투로 집안이 엉망이 된 후 남편과 딸 걱정을 하다가 양력 1894년 10월 1일[4]에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고 한다. 강에서 배를 띄우고 노름을 하던 고장팔과 뱃사공에 눈에 띄어 목숨을 구한다. 《속 혈의 누》에서는 오랜 세월을 평양성 북문 근처에 위치한 집에서 홀로 버티며 살다가, 딸 옥련의 편지를 받고 갑자기 신여성으로 변신하여 아버지 최항래를 데리고 남편과 딸을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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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일
김옥련의 아버지이자 최춘애의 남편. 나이는 29세 ~ 38세(1894년 ~ 1902년). 장인 최항래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이다. 오랜 시간 후 미국의 신문 기사를 통해서 자신의 딸로 추정되는 소녀에 대한 소식이 실린 것을 발견했고 그걸 계기로 딸과 재회한다. 옥련에게 도움을 준 구완서가 마음에 들었는지 혼인 얘기도 먼저 꺼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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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래
김옥련의 할아버지이자 최춘애의 아버지. 별칭은 '최 주사\'. 《속 혈의 누》에서의 나이는 60대(1902년). 부산부의 부호이다. 평양에 들렀다가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퍼하며 잠결에 가위에 눌렸는데, 딸이 살아 돌아오자 안도한다. 아들이 없어서 양자도 뒀지만 친딸 최춘애만 애지중지 아낀다. 어린 시절 재혼한 아내(최춘애의 계모)가 춘애를 미워하자 균형을 잘 잡아서 해가 미치지 않게끔 한다. 《속 혈의 누》에서는 신여성이 된 딸 최춘애를 따라서 미국에 사위와 손녀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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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
최항래의 후처. 괜찮은 인물이라고는 하는데 유독 전처의 딸 최춘애를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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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井上)
일본군 소속 군의(軍醫). 김옥련의 양부. 본가는 오사카. 청일전쟁으로 평양부에 왔다가 평양야전병원에 실려온 김옥련을 구하고 양녀로 삼는다. 옥련을 오사카 본가로 보냈다가 요동반도로 옮겼는데 이때 청군에 대패하면서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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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부인
군의 이노우에의 부인. 김옥련의 양모. 눈이 무섭고 쌀쌀맞은 인상이지만, 자식 하나 없다가 옥련이 양녀가 되자 좋아한다. 이노우에의 전사 소식이 담긴 호외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후에 재혼을 하려다가 옥련이 마음에 걸려서 포기했지만, 날이 갈수록 옥련에 대한 미움이 커지며 홀대한다. 어느 날 밤 집안 노파에 옥련을 버리자는 얘기를 하고 그날로 옥련은 가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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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팔
자살하려던 최춘애를 구한 인물이다. '밤윷'이라는 노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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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팔의 모
최항래 집안 사람이었다. 집을 떠나서 평양에서 시집살이를 하게 된 최춘애를 따라 왔으며, 춘애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때 그녀를 돌본다.
- 장팔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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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동이
최항래의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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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
이노우에 가문의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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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
이노우에 가문의 하녀. 이노우에 부인에게 옥련을 버리라고 부추기는 인물이다. 옥련이 가출하면서 잠에 취한 노파에게는 험담을 한다.
4. 기타
- 이인직은 혈의 누 후속작으로 《모란봉》이라는 신소설 또한 쓴 적 있다. 다만 연중작이라서 문학적 가치는 낮게 친다.[5]
- 2017학년도 대수능 대비 수능특강 문학편에 수록되었다. 물론 친일파스러움이 다분한 글이다 보니 많은 까임을 받았다고. 학교에서 혈의 누를 가르칠 때에는 국어교사 성향에 따라 친일 문학이라고 언질을 주기도 한다.
- 1975년 하편이 발견되었다.
- 작품에 등장하는 일본의 지명 및 인명에 쓰이는 한자를 모두 한국 발음으로 표기하였다. 도쿄(東京)는 ' 동경', 오사카(大阪)는 '대판'이라고 쓰는 식. 사실 이정도는 지금도 은근 쓰이는 편이지만, 이 외에 고베(神戸)는 '신호', 시모노세키(下関)는 '하관', 오사카 근교의 이바라키(茨木)와 이바라키역은 '자목', '자목 정거장'으로 표기하는 등 이와 관련된 지식이 없으면 상당히 위화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정상'이라는 이름의 일본인도 ' 이노우에(井上)'라는 성을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어색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흔한 표기법이었다.[6]
[1]
기록상으론 1906년에 초판했다고 하지만 그 초판본의 행방이 묘연하다. 따라서 현존하는 혈의 누 단행본 중 1908년 재판본이 가장 오래된 단행본이다.
[2]
이때 어머니는 외진 산속에서 낯선 사람(조선인)에게 강간당할 뻔 하는데 일본군에게
구출된다.
[3]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해외 작품으로는 1962년 나온, 위구르어로 된 아나르한(ئانارخان, 阿娜尔罕)이라는
중국 공산당 찬양 영화로, 2013년에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특히 그 드라마는
디리러바의 데뷔작이다.
인터뷰
[4]
음력으로는
1894년
9월 15일.
[5]
NTR물이다(...)
[6]
일본 고유명사를 일본음으로 읽게 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말기에 들어와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