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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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末明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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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교체기의 전개[1] |
1. 개요
중원 왕조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는 시기로 원명교체기(元明交替期)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사건으로 몽골족은 북쪽으로 달아났고, 중원에서는 한족 최후의 왕조인 명나라가 건국되었다. 1351년 홍건적의 난 발발부터 명나라가 건국되고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를 함락시킨 때인 1368년, 또는 원 세조 쿠빌라이 황통의 북원이 와해된 시기인 1388년까지를 원명교체기로 보고 있다.2. 경과
2.1. 배경
1271년에 건국된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씨의 원나라는 1279년 한족 왕조인 조씨의 남송을 정복하여 중국 대륙을 통일했으나 이후 황족들간의 제위 다툼, 취약한 행정, 전염병[2]의 창궐, 잇따른 자연재해 등으로 쇠락하게 되었고, 인구의 주류인 한족들에 대한 가혹한 차별정책으로 인해 제국 전역에서 한족들의 반원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2.2. 홍건적의 난과 대명의 건국
1351년 백련교도 계열인 홍건군이 봉기하면서 홍건적의 대란이 시작되었다. 이 중 동계홍건군 내에서 두각을 나타낸 탁발승 출신의 주원장이 1363년 서계홍건군의 수장인 진우량의 세력을 파양호 대전에서 격파하여 화남을 평정한 뒤 1368년 남경을 근거지로 하여 명나라를 건국했다.2.3. 대도 함락 및 북원의 성립
1368년 명나라를 건국한 직후, 주원장은 대규모 북벌을 실시해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함락시켰고, 이에 몽골 제국의 우카가투 칸이자 원 혜종인 보르지긴 토곤테무르가 몽골 고원으로 도주하면서 북원이 성립되었다.2.4. 북원의 멸망
북원은 잃어버린 중원을 되찾기 위해 명군과 격렬한 전쟁을 여러 번 벌였으나 큰 성과는 내지 못했다. 1388년 아리크부카의 후예인 예수데르가 세조 쿠빌라이 칸 황통의 북원 제3대 황제인 천원제를 시해한 다음 조리그투 칸으로 즉위하면서 몽골의 대칸 자리만 계승하고, 북원의 황제직을 포기하면서 북원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몽골은 중흥의 군주인 다얀 칸의 치세때 6투멘(부족) 연맹체로 재편되었고 숙적인 서몽골의 오이라트 및 남쪽의 명나라와 대립했다.3. 영향
3.1. 중국
중국 한족들은 100년 가까이 지속된 몽골족의 지배기를 끝내고 명나라를 건국했지만 북쪽으로 달아난 몽골족은 남쪽의 왜구와 더불어 명나라의 변경을 침입하여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고 이에 명나라는 대군을 편성하여 몽골을 공격했지만 제6대 영종 정통제가 오이라트군에 포로로 사로잡히거나, 제11대 세종 가정제때 투메드군에 의해 수도인 북경이 포위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3.2. 한반도
홍건적의 난과 같은 한족들의 반란으로 원나라가 혼란해졌기 때문에 때마침 즉위한 고려의 공민왕은 적극적으로 반원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 혜종의 황후인 기황후가 행주 기씨 가문의 철천지 원수인 공민왕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려를 공격했고, 얼마 안 있어 한족의 홍건적 및 만주의 몽골계 군벌 나하추의 침략까지 겹치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와 최영 같은 신흥 무인세력들의 맹활약으로 외침을 물리쳤다.이후 들어선 신생제국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가 고려에게 과거 원나라가 설치한 쌍성총관부 지역에 있었던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면서 고려 조정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제2차 요동정벌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개경 공방전을 통해 우왕과 최영 일파를 일망타진하고, 이성계 일파와 신진사대부가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되면서 조선 건국의 나비 효과가 되었다.
4. 사건 목록
5. 관련문서
[1]
명 태조 홍무제가 만주의 몽골인 군벌
나하추의 항복을 받고 원나라의 운남왕 바자르오르미를 정벌하여 중화의 통일을 이루고,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고려의 정권을 완전 장악하는 사건들까지 묘사되며, 최종적으로는 1390년까지 다루고 있다.
[2]
흑사병의 일종으로 추정된다.